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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가 증명한 것

필진 리뷰 2007.11.23 14:04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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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감독의 신작 <스카우트>는 놀라운 영화다. <스카우트>가 2000년대 들어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 가운데 가장 재밌는 작품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가장 영리한 각본으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라고 손가락을 치켜들어 침 튀기며 흥분하고 멱살을 잡아 쥔 채 극장을 향해 엉덩이를 걷어차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볍고, 재밌고, 흥미로우면서 웃음 그 자체만을 위해 구성된 불편한 서사와 상황은 찾아볼 수 없고, 종반에는 기어이 심정적 절정을 경험케 하는,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대중 상업 코미디영화다.

<스카우트>는 고교 괴물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까지 내려와 애간장을 태우는 Y대 야구부 직원의 소동극이다. 또한 과거 주인공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던 옛 애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추적해가는 환기의 여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80년 5월 광주의 맥락이 개인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반추해보는 역사의 재확인이다. 그 세 가지 서로 다른 맥류가 결국 영화의 종반에 이르러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 80년 5월 18일이다. 이 순간에 관객의 가슴팍을 움켜쥔 채 놓아주지 않는 절정의 공기, 해소의 타격감은 몇 마디 언어로 단정지을 수 없는 진폭으로 다가온다. 짜임의 묘가 영리하기 이를 데 없다. 곧잘 서사와 따로 놀던 임창정의 연기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비교적)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그가 잘해서라기보다 워낙에 이야기의 흐름이 탄탄하다. 임창정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 극과 무관한 희극 연기를 자주 선보였던 박철민도 웃음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맥락을 거스르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김현석 감독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사적 욕망을 좇으려 했던 개인을 심판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그 모든 개인들이 광주라는 파고 앞에서 결국 어떤 식으로든 선택의 단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다는 걸 탁월하게 투영해낼 뿐이다. 극 중 농담처럼 등장하는 비광의 노래(광이되 광 노릇도 못하고 쌍피만도 못한, 나는야 비광)에서 우리는 시대의 절망 앞에 선 수많은 비광들의 비애를 읽는다. 현실에 등을 돌리는 걸 패션인 척 에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애써 관조하려 하지도 않는 감독의 시선은 광주를 다룬 여타 영화들 중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심도를 보여준다.

<화려한 휴가>의 서사와 화법이 맘에 들지 않았어도 결국 지지할 수 밖에 없었던 건, 그간 단 한 번도 작심하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준 대중 상업영화가 없었다는 점과, (5.18과 8.15를 혼동하는 시대에) 어찌됐든 많은 관객들에게 광주를 알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먼지처럼 많은 먹물들의 글과 영화가 해내지 못한 걸, 얕고 얇은 상업영화 <화려한 휴가>는 성취해냈다. 문제는 이후였다. 두 번째 <화려한 휴가>가 아닌 <화려한 휴가> 그 다음이 필요했다.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스카우트>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동시에, 상업 대중영화로서의 자기 정체성도 탁월하게 쌓아올리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변해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애잔함, 비관, 한숨을 제외하고도 광주를 배경으로 투사한 대중 화법의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냈다. 지금보다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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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만큼 재미 없는! 영화 보기도 힘들듯...

    2007.11.24 13:53
  2. 까네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름대로 영화를 많이 봐 온 사람으로서 이정도면 볼만한 축에 속하드만-_-

    2007.11.24 14:04
  3. 슬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뭐랄까... 이리저리 짜맞추다 마지막에 억지 감동을 유발시키려 했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즐겁게 웃을 수 있기도 했지만... 자꾸 무언가가 비어있고 얼기설기 짜맞추다
    마지막에 간신히 맞는듯 아닌듯 하는...그런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2007.11.25 11:24

[스카우트] 엄지원이 돌아왔다!

필진 리뷰 2007.11.19 09:18 Posted by woodyh98


엄지원과 리얼리즘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의 호흡이 가장 뜨거웠던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이리라. 엄지원은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여배우(최영실 역)로 극중 김상경(김동수 역)의 현실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초현실 그 자체였다. 동수는 영실을 쫓아 종로 극장가에서 남산을 배회한다. 동수는 시종일관 영실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그녀에게 말을 걸지만, 그녀를 향한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 뿐이었다. 영실은 잡히지 않는 여자였다. [극장전]은 스크린의 빛과 어둠을 빠져나온 한 인간이 현실세계를 영화와 혼동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영실은 현실이었으며 동시에 영화였다. 엄지원은 다른 영화에서도 몸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배역을 도맡아하면서 연기력으로 자신을 포장하였다. 그녀의 연기는 인위적이지 않았지만 그녀가 맡은 캐릭터들은 인위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홍글씨]에서는 위장결혼을 통해서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흠모하는 역이었고, [가을로]에서는 유지태의 전 여자 친구의 혼을 담은 연기를 해야만 했다. 엄지원의 얼굴은 일종의 가면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캔버스라면 감독들은 그녀의 얼굴위에 짙은 유화 물감으로 거침없이 덧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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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엄지원이 가벼워졌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두터운 층을 떨어냈다. 이제 엄지원은 눈물을 참아내지도 않았으며, 슬픔을 억눌러 자신을 다독이지도 않았다. [스카우트]의 세영은 엄지원이 출연한 전작의 캐릭터들처럼 상처와 비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영은 유치함을 알고 있으며, 눈물을 감출 때를 알고, 펑펑 울어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영화를 빚대어 표현하면 감독의 지시가 없어도 도루할 타이밍을 적절히 간파하는 눈치가 빠른 주자가 되었다. 극중 엄지원은 치고 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YMAC에서 문학 수업을 진행하는 세영은 곤태(박철민)가 들려주는 사랑의 시를 심드렁하게 듣는다. 무심히 볼펜을 떨어뜨려 먼 산을 바라볼 타이밍을 확보하는 그녀. 세영은 호창(임창정)과 재회했을 때도 그의 정치적 태도가 심경에 거슬리는지 전두환을 ‘대머리 아저씨’라고 비아냥 거린다. 세영은 감정 표현에 있어서 혹은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였다. 대학 신입생당시 자신을 소개하면서 약간의 비음이 섞인 하이톤으로 광주 사투리와 표준어를 반반 섞어 쓰던 그녀. 세영은 도서관학과에 오면 책을 마음껏 볼 줄 알았지만, 정작 대학와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며 자신이 무공해 여인임을 널리 알린다. 세영은 자신의 지방색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화가 덜 되었다기보다는 폭압의 시간을 애써 무시하던 소녀의 순결함을 넌지시 보여줌이리라. 하지만 소녀는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는 투사였다. 게임에서 승자가 되기보다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자신의 명예와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래, 이 영화는 분명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였던 것이다.

헌데, 이상한 건 이 여자가 장타를 날리지 않는다는 거다. 세영과 호창은 7년 전 헤어져 다시 만난 사이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제리 맥과이어>처럼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는 척 하지만 정작, 영화의 본심은 흐트러진 사랑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려는 호창과 달리 세영은 지난날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르고 사는 게 약이란다. 세영은 애써 줄무늬와 민무늬의 차이를 말하지 않는다. 호창은 그 차이를 모르고 있으며, 영화는 툭툭 던지는 소품들을 통해서 둘 사이의 균열이 시작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영리한 기교를 뽐낸다. 세영은 모든 것에서 솔직한 여자였으며, 줄무늬 남방이 빛나는 여자였으며 땡땡이 원피스가 화사하게 어울리는 여자였고, 청바지가 착 달라붙는 80년대 여자였다. 유치한 사랑 놀음에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동화책에서 나온 소녀를 연상하게 하게 하다가도 빛을 받은 그녀의 모습은 베르메르의 화폭을 장식하는 진주 귀걸이 소녀보다도 더 우아한 자태를 선사한다. 그녀는 고딕스러운 멋을 아는 배우인데, 이는 그녀가 7년의 시간을 두고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영은 사랑에 빠지면 누가봐도 유치한 여자로 돌변하지만, 80년 광주로 돌아왔을 때는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는 투사로 변한다. 이 때 그녀는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 시대와 저항해오면서 말해야 할 것과 말해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영은 뼛속 깊숙이 시대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스카우트]의 가장 역동적인 장면은 호창이 전경들 틈을 뚫고 세영을 구하러가는 씬이다. 호창은 돈 키호테가 되어 모두가 무모하다고 생각했을 전경들과의 싸움을 단행한다. 그리고 세영을 구하는 데 이때 호창은 돈 키호테가 되고 세영은 돈 키호테가 흠모하던 둘 시네아 공주가 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화려한 남자가 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풍차와 맞서서 무참히 뭉개지는 돈 키호테처럼 풍자속의 주인공이 되어도 좋겠다. 비록 우리가 사라져도 세영은 오랜 세월동안 천천히 자신을 사랑한 남자를 기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스카우트]의 엄지원은 희미한 미소를 띄우면서 지나간 시간을 회고한다. 그 웃음의 파장이 스크린 위에 오랫동안 진동한다. 엄지원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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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침묵하게 하는 영화

필진 칼럼 2007.08.07 13:19 Posted by woodyh98
2007.08.05

해가 뉘엇해지자 사자산 기슭에 있는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극장에 '화려한 휴가'를 보러 갔다.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저녁식사를 급하게 마치고 목포까지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내내 달렸다. 영암을 지나 목포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 길이 막히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한여름밤은 여전히 더웠다.

엄마와 아빠에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화려한 휴가'와 같다. 살풋이 긴장된 부모님들의 들뜬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셨고, 언니와 나는 옆에서 키득거렸다. 평소에 말이 많기로 유명한 아빠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내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80년 오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앞에서 둥그렇게 서있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무 가슴이 아리고 아파서 눈물이 안나오더라. 그 때가 생각이 나서..." 광주,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의 역사. 나는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 극장안의 관객들은 이준기와 안성기가 죽을 때,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고 김상경의 마지막 총알세례를 마음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안에서 광주와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저렇게 다죽고 끝난거야?"

"응, 그랬나보지."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뭐가?"

"공개사과를 한다던지, 보상을 한다던지..."

"몇 차례 보상을 받고 그러지 않았나?"

...중략(전모씨에 대한 욕설이 오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무섭다야."

"응... 무서워. 불공평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5.18관련 행사가 있었다. 전라도 각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금남로는 80년 그 때처럼 시민들로 가득했다. 잔뜩 흐린 회색빛 오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그 음울한 분위기에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었다. 이발사였던 사람, 택시 기사였던 사람, 집에 가던 학생, 시내에 나온 사내, 길 가던 아주머니, 광주에 있던 누구라도 희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는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군으로 싸우던 그 몇일 동안, 태어나서 처음 누렸던 자유와 연대의 분위기를 꿈꾸듯 말했었다. 모든 시민이 친구요, 동지였다고. 광주에는 도둑도 없고 사람에 대한 의심도 없고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이상 공동체였다고. 그 힘, 그 에너지는 결국 짓밟히고 끝나버린 걸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는 총알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생각만큼 괴롭지 않았다.(영화니까) 내가 생각하던 광주와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에 80년 5월의 광주가 장식이나 배경처럼 놓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더 뜨거웠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감정의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그래서 이제 영화와 역사가 관계를 맺는 것과 영화와 사회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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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더 뜨거웠다면...

필진 리뷰 2007.07.27 15:30 Posted by woodyh98
2007.07.27

5-18 광주 민중 항쟁에 대해 조금만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즉 <화려한 휴가>의 귀결은 장엄한 죽음으로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화려한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내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고 70대이신 아버지(참고로 나의 아버지께서는 늘 정치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선택을 하셨던 분이다)께서는 ‘전두환’에 대해 분노하셨다. <화려한 휴가>는 어느 정도 영화 자신이 의도하고 있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일으키도록 한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보고 나서 100% 동의하기에는 영화의 힘이 부족하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 영화의 비판 지점은 ‘너무 감정적’이라서가 아니라 좀 더 ‘감정적’이고 뜨거웠어야 한다는 데 있다.

지식인은 없다.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장선우(<꽃잎>)나 박광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또는 이창동(<박하 사탕>)이나 봉준호(<살인의 추억>)나 박찬욱(<공동 경비 구역 JSA>)이 아니라 김지훈(<목포는 항구다>)인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으며 실은 많은 사람들이 ‘광주’라는 무게 때문에 애초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었다. 앞서 말한 장선우와 박광수 그리고 이창동은 이미 한국 근현대사의 무게를 담아냈던 영화들을 연출한 바 있고 봉준호와 박찬욱은 그들의 출세작들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능력을 선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제까지 가장 광주 항쟁을 가장 극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이유가 어쨌든 김지훈 감독의 전작은 뚜렷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한 영화였고 그 영화의 정서는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김지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상업 영화인 <화려한 휴가> 역시 매우 표피적이고 감정적인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지식인’이 거세되어 있다.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 장선우의 <꽃잎>에는 지식인의 시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화 전반에 그런 지식인들의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이 영화들의 제작을 추진했던 ‘먹물’들을 위한 장치지만 다수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적 안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의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좀 더 대중적인 호흡의 영화가 되기를 바랬다. <화려한 휴가>의 등장 인물 중 지도층 인사는 신부(송재호) 정도가 유일하며 주요 등장 인물은 광주 항쟁에서 최대의 희생자를 낳았던 전남도청의 시민군들이며 그들은 모두가 평범한 시민들이었으며 결코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광주의 에이리언, 공수부대

<화려한 휴가>는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최소화한다. 이 영화에서 ‘공수’들은 일종의 ‘외계인’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민우(김상경)은 녹색이 흐드러지는 시골 길에서 택시를 몰며 찬란한 태양광을 즐긴다. 이 안온함이 영화의 도입부를 장악한다. 천애고아인 민우와 진우(이준기)의 일상, 진우와 친구들, 코믹한 용대(박원상)와 인봉(박철민)의 에피소드, 부녀간인 신애(이요원)와 흥수(안성기)의 식사 장면, 성당의 야유회 등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 영화의 전반부를 장악한다. 실은 이 영화의 전반부는 민우의 신애에 대한 연정(戀情)을 묘사하는데 할애되며 그들을 둘러싼 평화로운 공동체 ‘광주’를 포괄하여 설명한다.

그 공동체의 안온함을 위협하는 것은 위장복을 입고 곤봉과 M16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에이리언’ 공수 부대이며 그 뒤에는 자신들의 부하마저 ‘군사용’으로 여기는 정치군인 최장군이 있다. 이 영화에서 ‘공수부대원’들은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끊임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에이리언들이며 킬링 머신이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은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괴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역사의 진짜 괴물인 ‘전 장군’은 대사로 두어 번 언급될 뿐이다. <화려한 휴가>는 1980년 당대의 복잡한 정치적 음모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양심적인 퇴역 군인으로 묘사된 흥수가 그런 상황들을 간략히 전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며 ‘애국가’와 함께 자행되는 학살 장면이 그 괴물의 실체가 ‘국가’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영화의 ‘악’의 실체를 뭉뚱그려 설명해 놓은 후 <화려한 휴가>는 광주의 영웅들의 어쩔 수 없는 싸움을 보여주는데 관심을 쏟는다. 그들의 사연들은 가족의 결핍으로 귀결된다. 앞서 말했듯 민우와 진우 형제에게는 부모가 없다. 또 흥수와 신애에게는 아내와 어머니가 없다. 또 남문희가 연기한 장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고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으며 교사(손병호)는 제자들을 잃는다. 이 영화의 감정적 고양은 바로 이런 ‘가족의 결핍’으로부터 온다. 민우와 신애의 결합은 온전한 가족의 완성을 의미하지만 그것 역시 공수부대라는 ‘에이리언’에게 위협받는다.

결핍의 공포

물론 <화려한 휴가>의 장르적 장치는 민우와 신애의 관계에서 비롯된 멜러 영화적 구성이다. 둘은 서로를 구하며 광주 항쟁의 한복판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죽고 사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들이 극적으로 배치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앰블런스를 몰고 사지에 뛰어든 용감한 의사는 사살되고 친구를 잃은 동생은 계엄군의 총알에 목숨을 잃고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은 주검이 되어 거리에 늘어져 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민우와 신애는 언젠가 서로를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그것은 ‘결핍의 공포’이며 또한 1980년 5월 광주의 현실이기도 했다.

필자가 <화려한 휴가>에 느끼는 아쉬움은 바로 그런 점이다. 이 영화는 좀 더 절절하게 다가왔어야 했다. 아쉽게도 <화려한 휴가>에는 주요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민우와 신애의 조금은 미지근한 멜러적 설정 때문에 관객의 호응을 끌어낼만한 조역 캐릭터들의 상실감과 공포가 잘 살아있지 못하다. 그건 이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조역 캐릭터들의 사연이 차곡 차곡 쌓여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영화의 코믹한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인봉의 가족사나 양아치에서 투사가 되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용대의 에피소드가 좀 더 강화되었다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좀 더 큰 감정적 고양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가 의도하는 바는 영화의 말미에서 신애의 방송에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외침. 그래서 쉽사리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마무리의 스틸 컷 시퀀스에서 혼자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애의 얼굴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적으로 <화려한 휴가>는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형식적 스타일을 광주 항쟁에 도입했을 때 과연 관객의 호응을 잘 끌어낼 수 있었을까 ?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화려한 휴가>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 무조건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수 없으면서도 또한 무조건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영화평자의 고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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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unjena.com BlogIcon Hee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벽한 영화는 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형식적 완성 모델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바로 폴 그린그래스의 <블러디 선데이>다'

    동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블러디선데이류를 택하는 것보다
    실미도류를 택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도 같고..
    이 영화도 그렇게 한 것 같네요..

    그리고 포스팅 전체적으로도 공감합니다만..
    충분히 봐 줄 만한 영화라는 생각도 듭니다.
    엄지 손가락을 올려 세울 순 없지만 충분히 권할 만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2007.07.27 16:26 신고

[화려한 휴가] 감정에 파묻힌 기억

필진 리뷰 2007.07.27 15:2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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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7


이 영화, 보는데 꽤 힘이 들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1980년 5월의 광주’ 라는 역사적 의미,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간 사실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건 광주를 다루는 그 어떤 영화를 보든 간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두 번째 이유는 [화려한 휴가]가 고유명사 광주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카메라의 시선이 굉장히 불온하다.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내 가슴에 남은 건 안타깝게도 광주의 기억이 아니라, 피로 물든 몇몇 극단적인 스틸 사진에 불과했다. 그건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왜 내가 영화를 보고 사진을 느껴야 하는가.

여기서 사진을 언급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런 사진들이 있다. 전장의 참혹한 순간을 다룬 사진들. 일명 (섬뜩한) 결정적 순간들. 로버트 카파의 ‘어느 병사의 죽음’, 혹은 에디 에덤스의 ‘사이공의 즉결처형’ 과도 같은 바로 죽음을 목도한 사진들 말이다. 이러한 보도 사진은 굉장한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전쟁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은 좀 더 가까이에서, 좀 더 참혹한 광경을 좇는데 혈안이 되었다. 우리는 이 사진들의 시각적 강렬함에 안타까움 혹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반전운동 행렬에 맨 앞에 설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보도사진들이 갖는 최대의 선의다. 하지만 이미지 과잉 시대에 더부룩한 배를 늘 부여잡고 사는 지금, 이런 시각적 강렬함의 자극은 말 그대로 말초적인 감각만을 좇을 수 있다는 선정성 역시 내포하고 있다. 수잔 손택이 말했듯이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소유한다는 착각에서 생겨나는 값싼 감상 혹은 동정. 이 관음증에 가까운 시선은 고통의 소유라기 보다 이미지의 소유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그 어떤 블록버스터 보다 스릴 넘쳤던 9.11 테러를 실시간으로 반복 재생하며 지켜보았으며, 탈레반 납치 뉴스는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는 중이다. 이미지의 시대에, 본다는 것의 의미는 오히려 한층 예민한 윤리 의식을 수반해야만 한다.

나는 이 영화가 본다는 것의 윤리적인 태도에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 불쾌했다. 과연 상업적으로 잘 팔리려면 이런 윤리적인 태도는 간과해도 될 부분인가? 단 한 가지, 이 영화는 별다른 고민 없이 시각적인 스펙타클과 연민의 쾌감을 전달하는 데는 매우 애썼다. 필자 역시 이준기가 죽고, 김상경이 실성해 가는 감동의 슬로우 모션에 동화되어 눈물 흘렸다. 하지만 이도훈 필진이 지적했듯이 이 눈물, 의심해야 한다. 영화를 보기 전, 우연히 뒷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아, 나 울지도 몰라” “질질 짜도 뭐라 하지마.” “ 그래? 뭐 같이 질질 짜지” 상식적인 대화는 아니다. 우스갯소리일 수도 있지만, 굉장히 이상한 대화다. 이들의 대화는, 이 영화의 전략에 딱 부합되는 반응이다. 눈물 하나가지고 까탈스럽게 생각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눈물 흘리고 싶어 하는 심정, 역시 이해한다. 하지만 80년 5월의 광주가 이런 값싼 카타르시스에 단돈 7000원에 팔려 넘어가는 광경은 가히 보기 불쾌하다.

영화에서 ‘시체’와 ‘피’는 가히 포르노에 가깝게 전시된다. 내가 볼 땐 여기엔 숏과 숏을 구성하는 선택의 순간이 거의 없다.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 이 영화를 보면 재현을 통한 '기억'이 남는다기 보다, 충격요법을 통한 분노와 울음의 '감정'이 남는다. 80년대 광주를 지켜보는 동시대인에게 전달하는 메멘토 모리? 당시 광주가 이렇게 끔찍했다. 대한민국에서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 영화가 그것을 보여줄게? 그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시체와 피 뿐이라면, 그리고 능글맞게 모정과 우애, 사랑으로 영화를 포장을 한 거라면, 그건....좀 쉬운 방법이다. 일례로 배우 나문희의 등장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간단명료하고 편의적인 여러 선택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 나문희의 등장과 울음만으로도 이 영화에서 모성 분야는 신속히 처리된다. 물론 배우는 자신의 이미지를 파는 사람들이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건 이 영화가 취하는 여러 안일한 선택 중 하나를 예로 든 것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 영화에서 광주 사태 이전의 장면들이 좋았다. 오프닝부터 김상경이 이주일 흉내를 능청스럽게 내는 그 순간 까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광주사태를 다룬 [화려한 휴가]는 광주사태가 시작되는 순간, 광주의 공기를 증발시킨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이요원은 울부짖으며 말한다. “광주 시민 여러분, 죽어가는 저희를 기억해주세요” 물론 1980년, 봄날의 광주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 [화려한 휴가]가 그것도 모든 영화에서 감독들이 고심해 마지않는 앤딩 장면에서 외칠만한 구호로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그건 좀 뻔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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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zgq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놔 증말 뭐하는 인간인지모르지만....

    잘난체를 할려면 끝까지 하던가..

    광주사태가 뭐니 광주사태..

    2007.07.3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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