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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10.16 아슬아슬한 현대인의 자화상 - 큐어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최면행위를 보게 될 때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최면이 가져온 무섭고 불행한 결과 혹은 최면술사의 더러운 야심 따위가 아니라 최면술사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최면상태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낯선 소재가 아니니만큼 아마도 알고 계실거라 믿지만) 최면을 위해서는 단지 반복적인 물방울소리, 라이터의 불빛, 혹은 나긋나긋한 몇 마디 암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조건들은 복잡한 사회와 비교할 때 너무나도 단조로운 무엇의 반복임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지나칠 정도로 일상적이다. 생각해보라. 위험요소는 어디에도 널려있다. 사실 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드라마틱한 사건보다, 반복되는 사소한 것들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면이란 소재의 현실성과는 무관하게, 우리 삶의 속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면을 소재로 한 스릴러, [큐어]는 사회라는 틀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하는 현대인이 얼마나 쉽게 망가질 수 있는 - 아슬아슬한 - 존재인지 보여주는 무서운 작품이다. 아주 조금의 자극만 주면, 그들은 의지를 잃고 허물어진다. (털썩.) 더 무서운 사실, [큐어]에서의 최면이란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다. 단지 그의 내면에 있는 것을 실행하도록 끌어내는 능력일 뿐이다. 최면에 걸리지 않아도 이미 그들은 창녀를 살해하거나, 후배를 살해하거나, 혹은 아내를 살해할 욕구를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화목해 보였거나, 아무 문제도 없어보였는데 말이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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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쇼 쇼지가 분한 타나베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부인과 살고 있다. 따스하게 맞아주는 아내도 없고, 집에 돌아와도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앞선다. 그렇다고 타나베 형사는 문제가 없느냐? 사실 그도 워커홀릭에 빠진 일종의 정신병자일 뿐더러(현대인은 모두 정신병자에 가까울게다), 아내를 방치해서 아내를 병자로 만들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범죄자 때문에 자신이 바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아내를 방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범죄자를 털끝만큼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그는 마미야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그의 분노의 일정 부분은 아내에 대한 불만, 그리고 사회에 대한 불만(범죄자의 수가 줄어들어도 워커홀릭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력을 줄였을 것이므로.)등이 범죄자에게로 그 모습을 바꾸어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마미야는 암시를 건다. 아주 간단하게. "아내에게 너의 날 것의 모습을, 너의 분노를 보여주어라."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어 집으로 뛰어간 타나베의 눈에 목을 맨 아내의 시신이 들어온다. 그러나 잠시 후 그것이 환영 - 자신이 원했던 - 임을 깨닫고 심적으로 무너지는 타나베. 내가 야쿠쇼 쇼지를 알았던 것은 [우나기]부터였지만, 그는 정말 연기를 잘 하는 배우임이 틀림없다.

[큐어]는 희생자의 목을 X자로 그어버리는 연쇄살인을 다루었지만, 기요시는 그 장면들을 끔찍하게 보이게끔 하거나 관객을 무섭게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에는 별반 관심이 없어보인다(그것은 기요시의 다른 공포영화들 - 굳이 말하자면, 분류상의 -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병원으로 카메라가 넘어가는 단 한 장면을 제외하고서는. 장르의 관습을 따르자면 음악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클로즈업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큐어]의 첫 살해씬은 원거리 촬영으로 무덤덤하게 잡아준다. 그냥 턱하고 때리니 픽하더라라는 느낌이 들 정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롱샷과 고정샷은 감정의 몰입없이 최대한 건조하게(혹자에게는 지루하게) 영화를 바라보도록 강제한다. 마치 우리의 일상을 바라보듯이. 그러고는 말한다. 너무 사회에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라고. 그러면 아무리 발버둥친다해도, 쉽게 무너져버릴 수 밖에 없다고. 너무 오래 참아왔던(늦어버린 깨달음의 결과인) 타나베의 칼끝은 아내, 범죄자(마미야)를 넘어 이제 사회(불특정다수)로 향한다. 그렇다면 '큐어(cure)'는 무엇을 치유하는가?

영화 속에서 '치유'된 것은 아무 것도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바깥이라면 다르다. 억지로 참다가 결국은 칼로 긋게 되기 전에 겉치장을 적당히 버리라는 것, 그것이 영화 [큐어]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기요시가 꿈꾸거나 혹은 권하는, 사회로부터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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