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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아키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01 [친구들 영화제] 죽음을 앞둔 구로사와의 자화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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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란>은 아키라 후기 작품세계의 완성체인 동시에 그가 살아생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위대한 시대극으로 알려져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10년여의 제작기간에 걸쳐 75세의 나이에 <란>을 완성했다. 아키라의 비관적인 휴머니티에 대한 고찰은 그의 50년대 작품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결국 <란>에 이르러 집대성된다. <란>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에 기대고 있지만, <란>을 단지 각색 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영화 속에 인간의 폭력과 전쟁, 그리고 종말에 관한 은유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란>을 통해 몰락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비관주의적 인간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을 잃은 채 방황하는 혼란스런 꿈 때문에 성주 히데토라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 재산 분배를 하게 된다. 히데토라는 자신의 ‘성주’라는 지위를 제외한 모든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나머지 동생들에게는 영지를 고루 분배해준다. 이에 반한 막내아들 사부로는 히데토라를 설득하려 하지만 히데토라는 격분한 채 막내아들을 쫓아낸다. <란>은 히데토라의 꿈으로부터 출발해 히데토라의 참혹한 현실로 끝을 맺는다. 히데토라의 불행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전제로 둔 것이며, 그는 결국 자신이 행했던 과거의 업보를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다. <란>은 한 도시 그리고 한 가족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 영화지만, 그 이면에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개인적인 인생사가 짙게 배어있다. <도라 도라 도라>의 제작이 무산되고 <도데스 카덴>의 흥행이 참패하자 급기야 아키라는 1971년에 자살을 시도한다. 아픔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이후 전설적인 영화 <카게무샤>를 만들어낸 아키라는, <카게무샤>가 결국 <란>을 위한 리허설에 불과했으며 <란>이 결국 자신의 유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기를 배제한 채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히데토라는 결국 아키라의 분신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히데토라의 입을 통해 환멸스러운 사회에 대한 비관의 시선을 유감없이 던져낸다.

<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클로즈업 씬이 없다는 것이다. 히데토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발산되는 장면에서조차 <란>의 카메라는 인물로부터 꽤나 거리를 둔 곳에 위치해있다. 때문에 <란>의 인물들은 스스로의 감정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주변의 환경에 파묻힌다. 완연한 전지적 작가시점을 구사하는 카메라는 영화의 중반, 히데토라가 불타는 성을 등지고 걸어 나오기 직전의 전투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하나의 웅장한 오페라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란>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영영 구원받지 못할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말년에 이르러 영화들의 콘티 제작에 공을 들이던 구로사와 아키라는 <란>의 콘티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어쩌면 <란>을 영화로 찍지 못할 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세대의 사람들에게 적어도 내가 머릿속에 그린 비전이 어떤 것 인지라도 보여주고 싶다.’ <란>은 결국 구로사와 아키라가 죽음을 앞두고 바라보아야만 했던 아키라의 또 다른 자화상인 것이다.

(2009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 데일리에 송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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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going.net BlogIcon egoing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좋은 평 잘 봤습니다. 우연히 EBS을 통해 보게 된 영화입니다. 건조한 화면구성이나, 딱딱한 대사가 거북스러워서 다른 채널로 돌리려고 했습니다만, 그 묘한 매력에 끝까지 다 보게된 영화였습니다. 의미심장한 평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2.0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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