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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6 [굿'바이]가 보여준 풍경과 공간의 미학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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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아트선재센터 앞 길모퉁이에는 아담한 일본식 적산가옥이 한 채 서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저 집을 개조해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 살기에 충분한 공간일 거라는 짐작이 들었고 길가로 난 창이 보이는 방에서 글을 쓰면 제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도 술술 풀릴 것 같은 망상에 젖기도 하였다. 얼마 전 뒤적이던 잡지에도 한복디자이너가 창동의 적산가옥을 개조해 집들이를 했다는(별 시답지 않은)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방과 복도를 장식한 암갈색 문틀이었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소담스러운 삶의 여운이 배어나오기에 족한 공간들, 아마도 내가 두 집에서 눈을 떼지 못한 이유는 무한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법한 공간배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에서 졸지에 전문납관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 <굿‘바이>를 보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적지 않았으니, 유사성으로 보자면 장의사를 소재로 죽음에 대한 따뜻한 성찰을 그려낸 장문일 감독의 <행복한 장의사>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겠고,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와 임권택 감독의 <축제> 역시 죽음과 장례의식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빼어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일가견 있는 일본 영화답게, <굿’바이>가 실직과 낙향이라는 평범한 이야기 위에 납관사라는 특수한 직업을 덧입힘으로써 통속성을 돌파한다는 점은 인상 깊다.

삶과 죽음, 그리고 망자에 대한 숭고한 자세가 빚어낸 이 영화의 장점을 한두 가지로 요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으나, 이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풍경과 공간의 미학이었다. 오래된 풍경들이 없었더라면 유려한 드라마가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 공간의 미학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굿‘ 바이>의 힘은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풍경의 힘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납관사라는 생소하고 불편할 수도 있는 직업과 염습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잊혀져가는 풍경의 힘은 죽음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주인공의 고향마을이라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이다.

도시의 풍경이 시각적이라면 시골의 그것은 다분히 서사적이다. 더욱이 막연한 시골이 아닌 자라고 성장한 고향이라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더욱 무궁무진할 터이다. 그렇다고 시골이 도시보다 좋다거나 시골은 사람 냄새가 풀풀 풍기고 도시는 삭막하다는 근거 없는 이분법을 들이댈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시신수습과 염습이라는 불편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무마시키고 오히려 따뜻한 감성으로 그 손길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것이 풍경의 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공간의 힘이다. 공간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현대식 주택은 기능성과 생활편리성에 맞추어 설계되고 지어진다. 이때 실내 구조란 문턱을 없애고 동선을 축소하여 단시간에 주방과 거실로 모여들 수 있는 형식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저택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생활공간은 이와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에 맞추어 주방과 거실과 욕실과 방을 최단거리에 위치시키고는 언제라도 문을 열고 뛰쳐나갈 수 있도록 배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5분 대기조가 모인 공간인양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형태야말로 최신 유행하는 주거양식에 다름 아니다. 한편 유럽의 주택을 가보았거나 혹은 유럽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펼쳐진 가옥구조를 기억해 보면, 방에서 나와 복도를 따라 몇 발짝이라도 걸어야 거실이 나타나거나 주방이 보임을 알 수 있다. 형제자매의 방과 아버지의 서재는 이미 지나쳐왔다. 집의 크기와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복도식 구조는 좀 더 복잡해지거나 심한 경우 미로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반면 기능성이라는 미명하에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현대식 주택구조는 삶의 여유를 박탈해버린 지 오래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주인공 다이고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낙향하게 된다. 물론 오케스트라가 해체되었기 때문이지만, “내 재능의 한계를 좀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다”는 그의 말처럼 설사 그대로 악단에 있었던 들 큰 차이가 없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첼리스트의 꿈을 포기하고 아픈 기억이 서린 고향으로 돌아간 남자를 기다린 것은 한 때 아버지가 찻집을 열었고 어머니의 채취가 스며있는 고향 집이다. 이제부터 영화가 보여주는 풍경과 공간미는 인물의 움직임을 그림자처럼 쫓아 백그라운드로 작용하게 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고향마을은 정적이면서도 삶의 생기를 곳곳에 지닌 공간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를테면,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만나는 실개천에는 연어의 회귀가 벌어지고, 개울가에는 아버지와 주고받던 ‘돌편지’의 추억이 애증으로 남아 있으며 당장이라도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하모니 바의 고풍스럽고 소박한 주방은 부부가 마주 앉아 식사하기에 더 없이 아늑해 보인다. 또한 세월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식과는 거리가 먼 NK에이전트의 사무실과 동네 목욕탕이 보여주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정서들에 이르기까지, 하나 같이 납관의식이라는 불편하고 생경한 정서가 스며들 공간을 만들어내는 ‘풍경의 미학’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낙향한 첼리스트에서 납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동안을 지켜보는 눈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향취가 서린 옛집이고, 자식을 버린 후 떠돌던 여성을 받아들인 오래된 회사이고 망자들이 누워있는 다다미바닥이며, 50년 단골이 여전히 몸을 녹이고 피로를 푸는 유서 깊은 목욕탕이다. 이처럼 영화 속 공간들은 주인공의 직업이 가지는 편견과 부정적 시각을 누그러뜨릴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굿‘바이>의 실질적 주인공은 고향마을이 품고 있는 풍경이고 다이고가 머무는 공간들이다. 만약 다이고가 고향이 아닌 도쿄에서 납관사가 되었다면, 영화 종반부에 등장하던 죽음을 돈으로 계산하는 데 급급한 (세인들의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한낱 직업인에 머물렀을 것이다. 결국 죽은 자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유족을 위로하는 온정 넘치는 납관사로 만든 것은 그가 밟고 서있는 풍경과 공간으로부터 나왔던 것이며, 이를 세밀하게 풀어낸 다키다 요지로 감독의 연출력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처럼 풍경과 공간의 미학은 얼마나 멋진가!

일찍이 김우창은 그릇된 장례문화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죽음을 가지고 흥정하고 장사하는 일을 목도할 때마다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바닥에 이르렀는지를 실감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아름답고 숭고해야 할 상제가 일부의 몰염치 속에 곤두박질쳤다는 얘기다. <굿‘바이>는 납관사의 태도를 통해 영원한 여행을 돕는 자의 자세를 이야기한다. 애정이 한껏 배어있는 다이고와 스승의 절도 있고 기품어린 손놀림을 떠올려보라. 그러니 어찌 유족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을 수 있으며, 납관사를 남편으로 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인가. 5분 늦게 도착한 다이고 일행에게 “죽은 사람으로 장사해먹는 놈들”이라고 욕을 퍼부었던 유족이 “오늘 아내는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예뻤습니다.”라며 사과하는 것도 죽은 자에 대한 경건하고 애정 어린 손길이 아니고서는 가당치 않은 일일 터이다.

영화 중반 옛 친구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그게 사람이 할 일이냐?”고 말한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영원한 여행을 준비하고 길 떠나보내는 일을 하는 납관사야말로 신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고상하고 우아한 첼리스트에서 납관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둔덕에 앉아 첼로를 켜던 다이고의 모습이 눈에서 가시질 않고, “저희 남편이 전문납관사이거든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미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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