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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가 안겨준 특별한 경험

필진 칼럼 2008.07.08 12:0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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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모름지기 영화란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컴퓨터 모니터로 DVD를 보곤 했는데, 지난 6월 말 이사를 핑계 삼아 텔레비전을 장만했다. 물론 당분간 시사회나 극장출입이 수월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제법 큰 화면에 화질 좋은 영상으로 감상해 보니 진즉에 결행치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또 절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였다. 어찌 알았는지 개봉예정인 <궤도>의 PREVIEW용 DVD가 도착한 것도 이때 즈음의 일이다. 텔레비전을 들여놓고도 짐정리로 보름 남짓 허비한 후에서야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특별히 김광호의 <궤도>가 인상적이면서 흥미로웠으니, 잊혀져가는 영화형식을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연변출신의 감독 김광호가 연출한 <궤도>는 한마디로 지독하게 느리고 지루하게 응시하다 집요하게 주시하는 영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려 3번을 시도하고서야 끝까지 보았을 정도로 감상자체가 쉽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것은 대사가 없기 때문이 아닌 너무나 단순하게 구성된 영화형식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궤도>를 카메라가 주도하는 드문 영화라고 말하고 싶고, ‘응시’에서 ‘주시’로 변화하는 영화미학을 보여주었다고 규정하고 싶다.

감독은 영화 속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카메라의 위치변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말없음으로 일관하며 끌고 가는 이 영화에서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변화하는 과정이 인물의 행동뿐 아니라 대상을 잡는 카메라의 위치로도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그다지 어렵거나 심오한 기교는 아니며 과거 무성영화시대의 감독들이 즐겨 썼던 기법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보아온 많은 영화들에서 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인물이나 화자의 입을 통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설명해왔고 이러한 설명을 통해 내러티브가 완성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서사를 통해 묘사를 대치시켜온 근래의 영화형식과 비교할 때 김광호의 <궤도>는 특별한 이야기를 내놓지 않고도 시공간의 다각적인 변화 없이도 묘사만으로도 서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할 것이다.

예컨대 벙어리 귀머거리인 여자가 팔 없는 남자의 집에 머물면서 남자의 내적변화를 끌어내기 이전까지를 보여주는 카메라는 언제나 남자의 시선이 여자 위쪽에 위치하는 반면, 어느 순간엔가 카메라의 위치가 뒤바뀜을 통해서, 즉 여자가 남자를 내려다보는 신들을 통해서 여자가 남자 마음속에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때 인물들의 변화에 맞춰 좀 더 세밀하게 보여주고자 감독이 선택한 것은 ‘응시’와 ‘주시’이다. 그러니까 남자의 집에 머물게 된 여자를 바라보고 또 그 남자를 바라보는 둘의 시선의 시작은 ‘응시’에 가깝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주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막연히 바라봄에서 시작하여 감정이 담긴 시선을 던지고 관찰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감독은 둘의 심리적 변화를 말 한마디 없이도 근거리에 놓지 않고도 살 부딪힘을 제거하고도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남녀의 심리적 단절을 물리적 거리와 위치로 치환시켜낸 영화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점철되는 가운데 사랑과 애증이 뒤범벅되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멜로드라마를 아련한 연변의 초록 위에 펼쳐놓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비록 곰살궂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온전한 대사하나 없을지라도 낯익은 연변의 풍광은 끝 모를 지루함을 상쇄시켜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너무나 평범해서 지루하고 그럼에도 자꾸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초록과 나지막한 언덕아래의 풍경들. 그러나 이것은 관계의 단절 속에서 소통에 목말라 허우적대는 우리들의 낭만적 상상적이 그려낸 전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감독이 선택한 배경이란 겉은 연변이로되 몇몇 장면을 뺀다면 세상 어디라고 해도 무방할, 인간을 둘러싼 보편적 삶의 환경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내가 <궤도>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는 무관하게 변함없는 푸름을 보여주었던 어느 마을 풍경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반복적 영상이 부리는 마법이라니!

덧붙여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장광설에 지쳤다면, 너무 빠르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영화에 식상했다면 연변에서 날아온 김광호의 <궤도>를 볼 일이다. 말 한 마디 없이도 이어지는 감정의 파동과 지루한 동어반복적 카메라 워크에 오기가 나서라도 눈 부릅뜨고 영화를 보는 희귀한 경험을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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