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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4 CinDi 2008에서 보낸 10시간

CinDi 2008에서 보낸 10시간

필진 리뷰 2008. 8. 24. 10:5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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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의외성이다. 카탈로그에 소개된 시놉시스 몇 줄을 보고, 감독 이름 하나만으로 선택한 영화들이 발견의 기쁨을 줄 때, 영화제를 찾는 즐거움은 몇 곱절이 된다. 그러고 보면 오늘 시네마디지털2008에서의 선택은 절반이 넘는 성공이라 자부할 만하다.

먼저 2회 . 오호라, <크레이지 스톤>의 닝 하오다. 그가 올해 완성한 중편 <기적세계>는 압축된 액션활극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준다. 도망치는 범죄자와 뒤를 쫓는 형사 사이의 긴장감과 추격의 서사. 그 틈으로 끼어드는 여자 인질과 인질범의 대치가 주는 긴장감. 이를 매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온라임 게임. 6세대의 리얼리즘이나 장이모우의 무협 대작만이 존재할 것 같은 대륙에 닝 하오 같은 순한 오락 영화를 만드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 <기적세계>다(정성일 선생은 <본 얼티메이텀>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28분이란 시간 안에 두 인물의 성격을 명확히 각인시키는 것도 모자라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라스트의 반전은 보너스다.

이런, 아무런 정보가 없다보니 당혹스러움은 배가 된다. 로토스코핑? 인도 출신 거리의 철학자가 설파하는 명상과 점성술, 그리고 삶에 대한 철학이 그럴싸한데, 내용에 따라 얼굴을 제외한 배경과 형체가 바뀐다. 그렇다. <스캐너 다클리>와 <그녀는 예뻤다>에서 확인한 바 있는 바로 그 기법이다. 감독은 <스캐너 다클리>에 참여했다는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참여했다는 밥 새비스턴. 이런 게 바로 형식과 내용의 합일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현재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심금을 울렸다.

아, 고민 없는 선택은 종종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김곡, 김선의 <임계밀도>와 <자살변주>가 그러한 예다. 실험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찰리(<미녀삼총사>의 바로 그 찰리에서 따 왔다는!)라는 연쇄살인마와 그에 맞서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라고 김선 감독이 설명했다. 내러티브가 있다고 GV에서 강조했지만 이 실험영화는 필릭커(그렇다, 그 깜빡거림!)와 네거와 포지티브 필름의 교차, 노이즈 사운드에 대한 영화적인 실험이다. 아, 이런 건 도저히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닝 하오 감독이 준 오락적 쾌감과는 정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라는 것만은 명심하시길.

뒤이어 마주한 작품은 개막작 상영에서 영사사고가 났다는 바로 그 <24 시티>다. 와우, 지아 장커에게 경배를! <스틸 라이프>와 마찬가지로 <24 시티>는 사그라지는 공간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과 존경을 보낸다. 이번엔 청두라는 공장지대다. 청두는 비행기 군수 공장 ‘팩토리 420’가 들어 서며 전쟁 후 번창했던, 우리와 비교하자면 울산과 같은 도시다. 종종 등장하는 공장의 입구를 정면으로 담은 롱 숏으로 시작하는 <24 시티>는 공간의 영화이자 ‘언술’의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 허물기. 지아 장커는 청도라는 공간을 이미 90년대 후반에 담으려고 계획했다는데, 이 죽일 놈의 형식이 문제였단다. 그래서 그 후 고민을 거듭하며 100여명이 넘는 노동자와의 인터뷰 끝에 극영화를 고집할 필요도,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로 빼곡히 채울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래서 모두 8명의 인터뷰로 채워진 이 영화는 실제 인물과 조안 첸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 배우들이 뒤섞인 형태로 완성됐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8명의 노동자 개개인의 사정으로 그리는 ‘청두’의 점묘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대가 기억하는 청두와 팩토리 240에 대한 사정을 청취하고 혹은 그 이야기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을 관람하며 그들의 기억에 동참하게 된다. 누구는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고, 누구는 공장의 꽃이었던 젊은 시절과 그에 빚진 현재를 한탄하며, 누구는 그 공장에서 은퇴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노동자요, 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일찍 늙는다”거나 “잎은 무성해도 뿌리는 다 하나”라거나 하는 전언은 그들이 사회주의 중국의 ‘노동자’임을 잊지 않게끔 한다. 결국 그들이 건설했지만 쇠락해 가는 청두는 그 스스로 사회주의 중국의 역사이자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증거인 셈이다. 결국 지아 장커는 이 실제와 허구를 뒤섞은 인터뷰집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중국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 감추고 싶어 하는 그 진실로서의 역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치 사진을 찍을 때 포즈를 하고 멈춰 카메라 앞에 선 노동자들의 면면이다. 아련한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그 땅에 발을 디디고 선 현재의 얼굴이 묘하게 겹치는 것이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림을 전달해 준다. 지아 장커를 주목하는 이유는 속도전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24 시티>, 개봉 하면 놓치지 마시라.

물론 영화제에서의 선택이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기적의 메데아>가 딱 그런 경우다. 우훗,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몇 번이고 읽었지만, 그게 다 최소 5년 많게는 10년이 넘은 일이라 ‘메데아’라는 캐릭터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씀. 메데아는 사랑과 복수의 화신인 전형적인 악녀지만 그러한 메데아의 궤적이 반대로 가부장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자벨 위뻬르가 연기한 이렌 또한 비슷한 캐릭터일 수 있겠지만 영화는 분절된 플롯과 널뛰는 편집으로 인해 신화의 인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를 자랑한다. 아, 유럽영화 특유의 ‘아트’ 영화 분위기를 시종일관 뽐내고 있기에 이 영화를 진심으로 즐기기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기적의 메데아>가 불러온 열패감을 해소시켜 준 고마운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린다린다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의 야마시타 노부히로. 42분짜리 소품인 <참 작은 세계>는 기이한 SF 영화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을 보지 않았으니 비교하기는 힘들고, 다른 전작 두 편과 비교하자면 이 영화는 <린다린다린다>에 가까운 작품이다(그러니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다면 안심하시라). 100년 뒤 많은 이들이 화성으로 이주했지만, 한 시골 학교에서 의욕 없는 선생님과 세 명의 초등학생, 그리고 괴짜 남자가 살고 있다. 영화는 6학년 학생의 졸업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다. 그런데 별다를 것 없는 꼬마 아이들의 동심이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게다가 간단한 설정만으로 SF적인 분위기를 띄는 것도 독특하다. 또 무심한 듯 언뜻언뜻 비춰지는 인간미,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 아이들의 천진함 등이 뒤섞여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그러니까 왠만해선 미워할 수 없는 아기자기한 소품 되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키는건 뒤이어 상영된 다큐멘터리 <파리, 텍사스, 모리구치>다. 야마시타가 필모그래피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던 <요짱>이란 작품을 찾아가는 여정인 이 작품은 감독으로서의 자의식과 자괴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포복절도하던 중간 성찰을 요하기도 한다. 모리구치라는 시골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출연으로 가능했던 <요짱>은 ‘시민참여형’ 영화의 선구자 격인(?) 습작 영화지만, 야마시타 본인에 의하면 몇 년 전에 못 만든 <참 작은 세계>의 동생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두 작품을 연이어 보고 있노라면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곧 필견의 걸작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들, ‘진정성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다. 서두를 필요 없다. 그는 벌써 <마츠가네 난사사건>을 만들었고, 이제 33살이다. 이런, 33살 이란다.



자,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에만 지아 장커, 닝 하오, 야마시타 노부히로라는 아시아의 거장과 촉망받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났다(지아 장커는 내 바로 옆을 그것도 두 번이나 스쳐지나갔고, 심지어 GV에 늦어 화장실 앞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코믹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캐릭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그러니까 영화제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시간표를 좍 늘어놓고 누구를 만날까 하는 설렘, 그리고 자신의 안목이 이 정도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일상에서 얼마 되지 않을 거드름, 마지막으로 어떤 작품을 선택하더라도 기본은 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영화제의 성장을 확인하는 안도감. 이 모든 것이 CinDi에서 느낀 감정의 편린들이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CinDi’여, 제발 오래오래 살아 남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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