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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를 다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일 년을 기다려온 시네필이 앞 다퉈 고전걸작의 향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해온 이들의 온전한 노력 덕분이다. 이 풍성한 잔치를 만들어낸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네오이마주와 ‘프레시안무비’가 함께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년간 시네마테크와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영화계 전반의 점검과 친구들 영화제와 미래 발전 방향 등 꽤나 묵직한 주제를 놓고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무겁다는 얘기는 아니니 지레 덮지 마시라.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이하 백):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 영화제의 모토가 "시네마테크의 영년" 이었다. 일 년이 지나서 그 때 주창했던 "시네마테크의 영년" 으로서의 2008년 한 해를 결산하고 소회하는 프로그래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이하 김): 지난해 '영년'을 설정했던 것은 시네마테크의 역할과 공간을 새롭게 구상하는 거였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2007년에 본격화됐고, 2008년에는 좋은 말로 하면 첫 삽을 뜨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것들을 다 지워버리자는 말은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네마테크' 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나. 이런 걸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의미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영년이 된 거 같다. (웃음) 2008년에 기존에 영화정책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당한 변화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더니만, 하반기쯤에는 전용관 사업이 거의 백지화됐다. 현상적으로 보자면 백지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원래 설정했던 취지와는 다른 의미의 ‘제로 이어’가 됐다.


김숙현 프레시안무비 기자(이하 숙): 나쁜 쪽으로 제로화가 되어버린 셈이다.

김: 그렇다. 나쁜 쪽으로 (웃음) 이게 오히려 제로 이하의 것이 돼버렸으니까. 2008년도가 끝나갈 때쯤 되니까 그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 아니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새롭게 정립하자고 했던 게, 아예 새로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시작해야 하게 된 거다. 2007년 12월의 시점만 해도 가능성 있게 구상했던 것이 2008년의 상황에서 이렇게 되리라고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대신 2008년도에는 새롭게 시네마테크의 컬렉션을 구비했고, 여름 시즌 ‘시네 바캉스’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소개한다. 이건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턴 어쨌든 영화제의 재정적인 문제가 제일 부담으로 느껴졌다. 일단 공간이 좀 해결되면 재정적인 보완은 좀 늦어지더라도 공간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관객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전용관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다 보니 재정적으로 문제 또한 해결하기 어렵게 됐다.


숙: 나도 기억난다. 작년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문제가 거의 백지가 되었었다. 처음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을 한 것도 전용관을 기대하고 시작을 했던 거라고 알고 있다. 올해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슈화가 되겠구나, 했었는데 결국엔 기대만큼 안 되더라. 어쨌든 올해도 모토를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로 잡으셨는데, 이렇게 잡으신 데에는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게 가장 큰 이유인가.

김: 일단은 그 문제가 가장 컸고. 근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결국 두 가지다. 조건들이 주어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반어법적으로 나온 거다.(웃음) 안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자, 이런 생각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하니 지금이라도 우리 행복해지자,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이게 궁극적인 건 당연히 아니고, 궁극적으로 보자면 전용관 세우기 문제가 남아있는 거고. 전용관 뿐 만 아니라, 지금 많은 상황들이 변화 중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낙원상가 재개발 문제도 있고. 시네마테크도 200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8년째다. 십 년 안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작년의 생각이었는데 십 년 안에 해결이 될지 모르겠다.


백: 낙원상가 재개발이 2009년에 한다고 발표난 걸 봤는데 그거 자체도 백지화가 된 거 같다.

김: 그 계획 자체가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거 같다. 얼마 전에 용산 철거 문제도 있었지만 재개발이라는 게 제대로 발표도 안 하고 그냥 진행되어 버리니까.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숙: 재밌는 게, 옛날 서울아트시네마가 둥지를 틀고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금방 뭘 할 것처럼 시네마테크를 쫓아내고.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다시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는 거다. 씨네코드선재가 생겼는데, 그걸 보는 감정도 그리 좋진 않으실 거 같다.(웃음)

김: 기억이란 게 언제든 장소와 연동이 된다. 그 장소가 연결이 되어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래서 처음의 장소가 변경되면 기억의 거주할 곳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다시 그 공간이 활용되는 건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다. 묘하게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백지화될 것 같은 시기에 예전 쫓겨났던 아트선재 공간이 다른 식으로 변모하더라. 생각해보면 아주 최근의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기억도 쉽게 사라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흔적도 없이... 사람들이 예전에 대한극장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이 대한시네마로 바뀐 걸 보면서 예전에 대한극장이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례들이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청광장의 재건축 문제도 있었지 않나. 기억은 어떤 구체적인 공간을 가질 때 보존되고 유지되어져 간다. 그런데 공간이 변경되고 사라지면 그 기억이 떠돌게 된다.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시네마테크는 계속 공간을 찾아다니고 있고 그 시작이 2002년인데, 이제 진정한 기억의 거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환경 안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기억이라는 거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형성하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 자체가 현 시점에선 부정될 수 있다. 영화 뿐 만 아니라 사회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영화 자체가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네마테크의 문제임과 동시에 현실사회의 문제다. 문제해결이 공통적인 노력 아니면 어렵다.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숙: 기억이 부정되는 현상을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이 많이 보인다.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김: 이제는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싸움인거 같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과거를 보존하고 꺼내서 앞으로 나갈 것인가, 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영화제를 하면서 카탈로그를 만드는 것부터 해서 내부적으로라도 그런 기억들을 남겨놓는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가 더 영년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기도 하더라.


숙: 참 정권이 바뀌자마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중 전용관 문제가 맨 처음 일어났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시작인거 같고. 더 심각해질 텐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시네마테크도 영진위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클 텐데 그것도 줄어들 것 같고.

김: 영진위의 지원은 실질적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필수적인 거니까. 이를테면 공간이 없다면 영화를 당장 상영할 수 없으니. 없는 것과 있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영진위의 지원은 현재로서는 큰 변경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요즘엔 세상의 변화가 결코 예측이 안된다. 가장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화나 예술과 관련한 정책이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야는 신종사업도, 투기사업도 아니고 과거의 역사가 있고 또 보존해야할 부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 점으로 사실 보수적conservative인 면이 있는데, 세상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사고의 기준을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기준에 두고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비현실이 현실에 더 가깝다. 최근에 보면 ‘필름2.0’같은 잡지도 못 나오는 처지이다.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너무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시네마테크도 사실 자명한 거 같진 않다. 지금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위기의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백: 그렇다면 올해 친구들 영화제 모토를 생각해보자. 현재 공간을 긍정한다고 표현 되어 있는데,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서, 말씀하셨듯이 일단 현실에서 지금 있는 공간 자체를 지키고 가겠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공간의 긍정과 같은 것들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모토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간의 긍정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 달라.

김: 시네마테크가 그간 해온 것들이 부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미래의 공간이라 여긴 ‘시네마테크 전용관’ 또한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니 현재의 공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긍정이라는 표현 안에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져 왔고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영화정책과 관련한 가장 큰 불안은, 지금까지 왜 이렇게 되어왔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냥 현재시점에서 모든 걸 다 다시 재구성해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들이다. 시간 안에서 영화가 지속되어 온 건데도 말이다. 그런 부분들을 다시 봐야 어떤 식으로 나갈지를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이런 일들이 문화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에선 몰라도 문화예술에선 너무 위험하다.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공간의 재인지, 재긍정이 필요하다.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표현이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사무국장이 이 슬로건을 떠올렸다. 처음엔 이 표현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는데, 몇 번 듣다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추구권 같은 걸 떠올려봤다. 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영화와 함께 이 공간에서 행복할 수 없는가? 아니, 이미 우리는 행복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누군가가 더 행복한 걸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헛된 기대가 언제나 지금의 시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일 수도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거나 상영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영화와 관련해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 않겠나. '행복을 추구해나가자. 불행 안에서도.' 이런 마음가짐이다.


백: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한다. 정권 바뀌면서 문화도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고. 기억의 거처라는 얘기처럼 기억에 담아둘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소멸되어 가고.. 없어지지 말아야 할 공간들도 정치적인, 외적인 이유로 없어지니까 답답하다. 그래도 기자회견 보면서, 긍정이라는 단어 들으면서 안도감을 가졌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이걸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도모하고, 현실을 발판으로 삼으면서 준비하는 거 같았다.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자조적인 느낌도 있지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 질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건 누가 꼭 물어봐 달라 그래서..(웃음)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이 너무 좋아서, 감독들이나 영화배우들이 어떻게 영화를 뽑는지, 어떤 원칙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선정되는지 궁금하다고들 한다.


김: 올해 2009년에는 어떤 콘셉트를 정해볼까 생각을 했었다. 아마 내년에는 공통적인 콘셉트를 정할 거 같다. 주제나 테마 같은 것 말이다. 근데 이 영화제가 ‘후원 영화제’라는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후원을 하면서 참여하는 거다.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면 거절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까지 끝까지 요청하진 않는다(웃음). 참여의사가 있으신 분들에게만 한다.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 가장 큰 건 후원의 의미다.

참여하는 분들 다들 영화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하다. 시네마테크를 대중적으로 좀 더 널리 알리는 게 이 영화제의 취지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자체의 콘셉트를 강요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후원의 취지로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영화라는 게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욕망의 자리로서의 영화제는 사실 아니다. 보고 싶은걸 보겠다, 보여 달라 이런 의미보다는 ‘나중에라도 우리가 영화를 보기 위해 후원을 하자’라는 그런 의미로 영화에 참여해주면 좋을 텐데.(웃음)




 

상영작품의 결정은 일단, 참여하는 분들에게 세 편 정도의 복수추천을 받는다. 그 가운데 가능한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건 아시다시피 한 편이다. 영화제 기간이 상영하기 어려운 작품이거나, 그 시기에 필름 프린트를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요즘은 워낙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으니, 영화가 쉽게 주문만 하면 필름으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착각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은 언제나 결핍을 품게 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름이 오가고 상영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건 물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받아 보는 영화는 자기 맘대로 선별할 수 있지만 이건 다르다. 결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훨씬 더 영화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정가형제가 원래 처음 선택한 영화는 안토니오니의 영화였다. 현재로서는 좋은 프린트를 구할 수 없었다. 반면,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변영주 감독도 여러 편의 역사극을 추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하게 됐다.


숙: 현실적인 문제라고 하면 역시 프린트수급 문제인가?

김: 거의 그렇다. 작년에 이걸 수급하던 시기가 환율이 엄청나게 올랐을 때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를 얘기해 보면, 이번에 선택한 <탐욕>은 원래 할리우드 컬렉션으로 구비하려 했던 영화였다. 구매하는 과정에서 추진을 했는데 현재 가장 긴 버전은 TCM상영버전인데 그건 프린트로 없더라.


숙: TCM은 케이블 방송인가?

김: 그렇다. 외국에서도 비디오 판만 있다. 근데 그것도 완전한 버전은 아니었고, 그래서 결국엔 못 샀던 영화다. 그런데 이번에 추천을 받았고 역시 가능한건 140분 버전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나 했지만, 홍상수 감독도 이걸로 봤다 했고, 더 긴 버전은 과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웃음). 그래서 상영 결정했다. 안성기 선생님은 배우중심으로 세 편 정도를 추천했다. <디어헌터>, <미드나잇 카우보이>, <아마데우스>. 최종적으로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선택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이었다. 원래대로 하면 열편에서 스무 편 가까이 된다.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게 열두 편이었다. 작년도 기준으로 보면 두 분이서 열두 편정도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환율이 두 배로 올라서, 그리고 예산도 없고 해서 편수를 줄이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두 분이 세 편씩, 여섯 편을 상영하게 된 거다.


숙: 기자회견에서 감독들이 "이건 맛 뵈기에요" 했던 게 생각난다.

김: 맛 뵈기란 게 일차적으로 맞다. 진짜 좋은 조건이라면, 맡겨서 여러 편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게 하면 좋겠다. 그러니 프로그래머로선 언제나 아쉽다. 다들 참여할 때마다 상영 못한 추천작들을 다 얘기한다. 상상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거다.


백: 내년에도 최선의 악인들 섹션 같은 이런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가?

김: 자주 참여하는 분들이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하면 어떨까. 주제를 잡아서. 3년 전 ‘김지운의 B 무비’, ‘류승완의 액션스쿨’이란 프로그램을 했었다. 영화감독 뿐 아니라 평론가, 배우들이 맡아 하는 것도 좋겠다. 원래 해외프로그래머들의 초청 프로그램도 기획했었는데 취소했다. 두기봉 감독의 초청전이나 유럽감독의 초청전도 기획했다가 취소했다. 올해가 심플한 느낌이 더 있다. 더 참여하고 싶은 분들도 있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이렇게 됐다.


백: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꼭 이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영화 몇 편을 말해 달라.

김: 사실 선정작들을 놓고 보니 다 한 번씩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공통적으로 묶을 만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점들이 많다. <탐욕>이나 <선라이즈>는 시대 안에서 우리들의 감정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보게 해준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라는 게 좋은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잘 살아가면서 꾸려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떠올리게 해주는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실물보다 큰>도 그런 영화다. <4월>에는 미디어와 영화의 결투의 흔적들이 있다. 예전에야 영화관에 가서 영상을 봤지만 이젠 텔레비전미디어로 인해 영상이 늘 주위에 있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영상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난니 모레티는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 타종식 영상의 보도와 관련해 문제가 생겼고, 미디어 법 문제도 있고 하니 이 영화가 새롭게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포도>도 대공황기에 일어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인데, 형상적으로 보면 존 포드 영화 중 가장 사회적 리얼리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물론 존 포드 감독 머릿속에는 19세기말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했던 선조에 대한 얘기들도 어느 정도 녹아 있어서 같이 겹친다. 동시대적으로 우리 시대에서 재개발과 관련한 경제적 빈곤의 문제, 사회문제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는 <캘리포니아 돌스>를 상영하는데, 알드리치의 유작이다. <선라이즈>에서 시작해서 <캘리포니아 돌스>로 끝난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지극히 희망적이다. 곤경 안에서도 어떤 규칙 안에서 게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에는 이렇게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안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그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의리적인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장르적인 범죄영화를 묶기보다는 그 시대의 흔적- 그게 지금과 연결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숙: 유명한 대표작들보단 낯선 상영작들이 많다. 그래서 이거 진짜 한 방이다, 이거 진짜 꼭 봐야지 하는 영화는 없더라, 는 의견이 있었다.

김: 음,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틀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표작들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숙: 그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결정적인 영화가 상영작 중 없다는 게 아닐까.

김: 결정적, 대표적 영화보다는 이런 시국에 어떤 영화를 틀면서 함께 얘기를 나눌까, 라는 생각이 많이 반영된 선택들이라 생각한다. 정윤철 감독의 경우에도 10년전의 이탈리아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난니 모레티의 <4월>을 선택한 거다.


숙: 역시 시대가 어지러운 것이 친구들 영화제 영화선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김: <란>도 그렇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발생하는 허망한 일들이 겹친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영화들을 다 보면 공통적인 멘탈리티가 있는 거 같다. 시대적인 곤경, 고통, 불행 안에서의 사람들의 일들을 다루는 영화가 많다. 영화란 게 현실적으로 한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고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들은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 같다(웃음)


숙: 근데 박찬욱 감독은 기자회견 때, 흥행성을 고려해서 여러 사람들이 두루두루 좋아할만한 영화를 골랐다고 했는데. (웃음)

김: 물론 그 흥행성도 10퍼센트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게 아닌가(웃음). 근데 과거적 시점에서 보면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따라왔던 영화도 있다. 현실적으로 10퍼센트의 영화지만, 90퍼센트까진 못 보겠지만, 그래도 10퍼센트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픈 마음에 골랐을 것이다. 영화를 갖고 어떤 부분을 주창해 나가느냐, 는 것은 전체적인 프로그래밍 안에서 고려될 수 있다. 1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그 영화는 금방 쉽게 없어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백: 이제 아카이브가 아트시네마에 들어온다. 좀 더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게 사무실 밖으로 오픈시켜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겠지만.. 이런 걸 뒷받침하게 할 기술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까?

김: 공간이 제한적이라 하고 싶어도 어렵다. 전용관이 생기면 그런 점을 가장 많이 염두에 뒀다. 관객은 사실 묵묵히 앉아 영화를 지켜보는 역할이지 않았나. 하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관객을 설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방문자 개념으로. 자유로운 방문자 관객들을 위해선 책이라든가 미디어자료들이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공간 안에선 좀 힘들긴 하지만, 현재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가가 올해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지금도 테이블을 설치하는 공사 중인데, 친구들 영화제에 좀 이용할 수 있게 할 거다.


그리고 재 상영. 첫 상영. 이 두 가지 사이의 배분들을 잘 맞춰 나가야한다. 지금까지 재 상영을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가 현재의 영화 태도를 망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라이즈>를 ‘무르나우 회고전’때 했다. 이번에 또 상영하게 됐다. 어떤 영화는 일 년 전에 틀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게 시네마테크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 이상적인 시네필이라면 두 번째 볼 때에는 그 영화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두 배 이상 늘 수 있을 거다. 자기가 봤었던, 중요하다고 판단되어지는 영화들에 대해 글을 쓰거나 알릴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게 이상적인 시네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줄짜리 프리뷰, 리뷰 쓰기에 너무 몰두한다. 저널도 그렇게 잘 안 쓰니까. 개인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네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작품에 대해 더 공격적인 이야기를 그들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다시 보는 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서 보는 것과 새로운 영화를 보는 건 병행되어야 한다.





 

숙: 영화라는 게 한번 소비하고 끝나는 걸로 자꾸 인식되어 안타깝다. 아트시네마를 출입하는 관객들은 그걸 알고 있는데, 기본적인 관객들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걸 신기하게 생각한다. 영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

김: 근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네필도 그런 경향이 많다.


백: 관객들의 선택 영화가 <열대병>이다. 개인적으로 좀 의외였다. 난 페드로 코스타 영화에 투표했다. 그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열대병>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트시네마의 시네필들의 취향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관객들의 선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 참여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인데, 첫 번째는 보는 거고, 두 번째는 글로 참여할 수도 있다. 보는 것 이외의 참여도 아주 중요하다. 저널의 역할도 크다. 변화시켜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나마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여기서 퍼져나가는 대중화의 흔적도 보인다. 미국영화들도 5,60년대 영화들을 많이 틀었는데, 알드리치 ,돈시겔, 풀러,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모아 튼다면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거 같다.


백: 북적북적하던 영화제 기간이 끝나고 나면 아트시네마도 공허해진다. 쉬어가는 느낌의 프로그래밍들이 많더라. 올해는 베네수엘라 영화제다. 아 이때 쉬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이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왜 생소한 영화제를 넣었을까 궁금하다.

김: 영화제는 영화제니까. 근데 열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웃음) 이후의 공백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필름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좀 더 다양해질 순 있을 거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스무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서 세 달 동안 웨스턴만 틀고, 필름누아르를 상영할 수도 있다. 물론 DVD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각자 열성적이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거다.




숙: 천사들의 선택 영화 <무셰트>는 어떤 과정으로 상영하게 된 건가?

김: 처음 그게 시네마 엔젤의 이나영 씨 쪽을 통해 필름기증 형태로 하게 되었다. 이나영 씨가 원래 <무셰트>를 좋아해서 인터뷰에서도 그 영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그 영화로 진행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이나영 씨를 포함한 다른 배우들도 ‘시네마 엔젤’이라는 함께 참여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한 편씩 그렇게 진행될 수 있을 거 같다.


숙: 좀 놀랬던 게, 이나영 씨는 아트시네마에 자주 온다고 말은 들었지만 아트시네마랑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배우는 아니었다.

김: 알게 모르게 많이 왔었다. 아트선재시절부터(일동 놀람).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얘기는 안해 봤지만 영화를 많이 보더라. 사실 기증을 하고 그런 게 참 큰일인데...


숙: 이나영 씨가 적극적으로 먼저 제안한 건가?

김: ‘시네마엔젤’쪽에서 먼저 제안해 왔다. 그 곳은 우리 뿐 만 아니라 독립영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숙: 외국배우 들은 영화제 가서 먼저 감독을 알아보고 제안하고 그러는데, 한국배우들은 좀 그런 거랑 멀지 않나 막연하게 오해를 하는데, 이번 일을 보고 놀랐다. 모임을 결성하고 필름을 기증하고.. 멋지다.

김: 영화라는 건 늘 패배해 왔었다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자본이건 권력이건, 국가이든 영화는 늘 그런 것들에 패배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무력감이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숙: 그 역설이 오히려 희망적이다. 어차피 늘 패배해 왔으니까 지금 패배는 별 거 아니다...

백: ‘웹 데일리’를 맡아서하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띈다. 아트시네마에서 따로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을 했었나.


김: 간단하게 했었다. 프리뷰를 써보고. 함께 얘기하고, 하는 정도다.


백: 그 젊은 친구들도 자발적 참여인가. 그들의 글, 태도를 보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다.

김: 참여를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웃음) 특별히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영화제에 대한 느낌 같은 글도 조금 더 쓰자, 이런 얘기도 하고. 또 보러 오는 사람들이 ‘웹데일리’로 인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촉발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백: 일반관객도 웹 데일리에 쓸 수 있나?

김: 일반 관객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카페에 글을 올린다. 데일리는 데일리니까, 그냥 내부에서 하려고 한다. 카페나 블로그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모든 분들이 다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더 자유롭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극장상영엔 제한이 있지만 보고 이야기 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으니까. 영화에 윤리가 있다면 쇼트에 있는 건지, 감독의 멘탈리티에 있는 건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이런 고민 속에서 관객 스스로 자기조절하면서도 자유롭게 쓰게 되면 좋겠다. 사실 현실 안에서 자유가 별로 없지 않나.(다들 웃음)


백: 끝으로 올해의 소망을 듣고 싶다.

김: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로서는 전용관의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언제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영화 제작의 자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영화에 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였다. 당시 자크 랑 문화성 장관은 구로사와 감독에게 ‘일본에서 구로사와 같은 감독이 영화 자금의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작품에서나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표했었고,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계의 수뇌부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뇌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일본의 뛰어난 감독들은 죽어, 나 혼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시간이 오래 묵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와 관련해선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사실이 부정되곤 한다. 과거를 지워버리면서 산업은 승리한 것 같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는 언제나 후퇴가 있었다. 지난 8년간, 아니 1999년부터 작가들의 회고전 필름 상영회의 역사를 보자면 이미 십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언하자면,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자면 니콜라스 레이나 알드리치, 타르코프스키, 존 포드, 무르나우 등의 영화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도 언제든 쉽게 부정될 수 있다. 거장들이 영화계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듯이 말이다.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반대로 이곳은 후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를 문화로,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장 뒤늦게 변하는 곳이다. 영화는 산업으로 무성을 버리고, 흑백을 버리고, 필름을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런 영화의 유산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배창호 감독님이 ‘장 르누아르는 “영화가 산업과 예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술은 산업에 졌다’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네마테크에 오면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소망이라면, 그래, 이랬으면 한다. 모든 불행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 까지다. 시네마테크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는 새삼 이야기하지 말자. 남은 20여 일 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눈 밝게 귀 기울여 고전영화들과 만나고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친구들을 만난다면, 먼발치서나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시네마테크가 조금은 더 가슴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끔찍할 정도의 열약한 인터뷰 환경으로 인해 소음과 잡음이 뒤섞인 녹취록을 불굴의 신념으로 깔끔하고 매끄럽게 풀어준 강연하 스태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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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09.02.06 20:55

고민을 멈추고 그곳으로 가자

필진 칼럼 2009.01.21 14:3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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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작년 이맘 때 즈음일 것인데, 2008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글에서 나는 ‘꿈처럼 꿈꾸듯이’ 고전영화의 향연 속에 빠져보라고 권한바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은 그 꿈에서 너무 쉽게 깨어나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면, 공교롭게도 친구들 영화제를 기점으로 신상의 변화가 생기는 바람에 시네마테크와의 꿈꾸기에 열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사고체계의 작동패턴마저 변하지는 않는 법. 그러니까 12월 서울독립영화제로 막을 내리는 영화저널리즘의 여정은 언제나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시작되곤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게 친구들 영화제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진군 나팔소리와도 같은 행사인 셈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올해 영화제는 극심한 환율여파로 인한 프린트수급비용 상승 때문에 예년보다 적은 상영편수로 운영된다. 하지만 괜히 시네마테크이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인가. F.W.무르나우의 <선라이즈>로 열고 로버트 알드리치의 <캘리포니아 돌스>로 닫는 이번 영화제는 라인업만 보더라도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푸념이 엄살로 들릴 만큼 알찬 섹션으로 구성되었을 뿐 아니라 개별 작품 또한 만만한 것이 없으니, 맘 푹 놓고 가서 보고 즐기고 탐닉하면 될 일이다.

몰락한 감독으로 출연해 자신의 처지를 완벽하게 연기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선셋대로>와 그가 연출한 걸작 <탐욕>에서부터 태국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까지, 여기에 공효진과 서우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스크린에서 재회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나? 아!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또한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고, 숨이 멎을 정도의 매혹적인 금발미녀 로렐라이로 변신한 마릴린 먼로의 속삭임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줄스 다신의 <밤 그리고 도시>와 르네 클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가 가장 구미를 당기고, 이탈리아영화 마니아 아니랄까봐 난니 모레티의 <4월>과 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또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중에는 DVD로 소장하고 있어 필요하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작품도 상당수이다. 이미 보았고 더러는 기억에 가물가물한 영화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네마테크에 갈 것이다.

누군가 굳이 이들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세월의 연륜으로 겹겹이 쌓인 포장지 위에 극장관람용이라는 당위성까지 보태어 매듭지어진 의심할 바 없는 고전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시네마테크뿐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예컨대 <카비리아의 밤>에서 흥겹게 연주하는 소년들에 둘러싸인 줄리에타 마시나의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어찌 작은 화면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비록 꿈같은 밤이 지난 후 비루한 현실에 다시 침잠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영화의 존재 이유라면 기꺼이 꿈꾸고 싶어 하는 동종의 관객과 함께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직도 무슨 영화를 볼지 어떤 감독과 만날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만 멈추기를 권한다. 2009년 2월 시네마테크에서 보낸 한 철이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 무엇을 보더라도, 영화이외의 것들까지 풍성하게 담아올 수 있을 테고 우리가 할 일은 설레는 마음 담긴 낙원동으로 나가는 발걸음이면 족할 터이니, 다른 영화관들과는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유일한 그곳,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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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영영 가지 않을 것만 같던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이 시작되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으레 그렇듯 사람들의 마음엔 희망과 다짐의 각오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극장을 전전하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새해가 밝았다는 건 곧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 영화제’는 연초를 밝힌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일 년 중 가장 북적이는 시기, ‘2009년 친구들 영화제’는 1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약 한 달동안의 촛불을 밝히며 관객을 기다린다.

지난 15일 오후 3시, 인사동 리틀 차이나에서 네 번째 ‘2009년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반적인 기자회견 장소보다는 다소 작고 오붓한 장소에서 분주하게 영화제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김홍록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국장, 그리고 박찬욱 감독, 전계수 감독이 참석하여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것을 발표한 후 영화제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의 1년 사업계획을 간략히 설명했다.


박찬욱: 일 년 내내 이 날을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즐겁고 행복하고 마음 설레는 시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영화를 골랐을지, 나는 어떤 영화를 선택해서 관객과 함께 웃고 떠들며 볼지를 고민하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영화를 보는 자체가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안성기: 시네마테크에서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지나간 한국영화를 통해 우리 영화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의 길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영화를 가지고 계신 분, 영화를 볼 분들이 모두 시네마테크에 함께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변영주: 시네마테크의 영화들은 꼭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속에 우리보다 먼저, 우리보다 일찍 세상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선배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고, 그런 영화들은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는 20여명의 친구들이 시네마테크를 위한 열렬한 사랑을 보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특별히 영화감독을 프로그래머로 초빙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객원 프로그래머가 되어 가장 좋아하는 악당들에 대한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섹션을 선보인다. 이 섹션은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으로, 언젠가는 악인들의 영화를 대규모 상영하고 싶다는 각 감독들의 포부가 녹아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이번에는 배우 이나영씨를 포함해 정재영, 김주혁, 신하균, 박해일, 김강우, 하정우씨가 참여한 배우들의 후원모임인 ‘시네마엔젤’이 후원기금을 조성해 프린트로 구매한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를 상영한다. 시네마테크의 ‘시네마엔젤’은 매년 후원을 통해 고전 명작 프린트를 구매해 지속적으로 상영을 할 것이라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운영을 시작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이다. 이미 시네마테크에서는 지난 2008년 고전 영화의 발전을 위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네 편을 프린트로 구매했고 기획전을 가졌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은 이에 대한 연장으로, 정성일 영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오승욱 영화감독 등이 작품 선정에 참여했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의 영화들은 <선라이즈>, <분노의 포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실물보다 큰> 등이다.





매년 관객의 직접 투표로 선정되는 ‘관객들의 선택’에서는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상영된다. 또한 영화 상영 외에 시네마테크가 야심차게 준비한 부대행사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소개되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사진전’이 열린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아트시네마를 밝힐 사진전 또한 다양한 영화인들로 꾸려져 있어 영화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한가득 보여줄 예정이다.





2009년의 시네마테크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제법 분주하게 움직일 예정이다. 시네마테크는 교육적, 문화적 목적의 영화상영이라는 본연의 활동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2007년부터 운영해왔던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는 앞서 말한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구축하여 영화제 기간에 맞춰 상영한다. 2009년에는 이를 확대해 6편 이상의 작품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후원기금으로 조성된 ‘시네마엔젤’ 또한 지속적인 고전영화 애호를 밝힐 예정이며, 올해에는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지원센터’를 설립해 연 4회 가량 진행되던 지역순회상영을 확대하고 지역 시네마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영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시네마테크의 오랜 바람인 ‘시네마테크의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도 추가된다. 아직까지 많은 제약이 따르는 전용관 설립에 관해서는 추가로 연간 연구사업과 해외 사례를 토대로 영화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쓴다. 아울러 현재의 공간인 낙원상가를 긍정하기 위한 일환으로, 서울 최초의 전문음악영화제인 ‘낙원음악영화제’를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감독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배창호, 변영주, 오승욱, 이명세, 이현승, 전계수, 정가형제(정식, 정범식), 정윤철, 홍상수, 영화배우 권해효, 안성기, 하정우, 영화평론가 김영진까지 모두 17명의 친구들이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객과 함께 참석한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정한 영화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더불어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많은 영화인들의 사랑을 담은 영화제는 ‘친구들 영화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들이 입을 모아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옹호하는 것은 분명 너무나 매혹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겨울, 영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매서운 한파에 대항하는 자세를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가장 든든한 친구 ‘영화’가 당신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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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일시 : 2008년 10월 19일 (인사동 PALAZZO DUE)
좌담 :
백건영(영화평론가)
김성욱(영화평론가)
이용철(영화평론가)
박부식(영화평론가
김숙현(프레시안무비 기자)




백건영 : 네오이마주가 문을 연지 3주년이 됐다. 그 동안 인터뷰는 여러 번 했지만 객원필진들과 이렇게 모이가 자리는 처음인 것 같다. 먼저 올해 개봉작 중 주목하고 관심을 가졌던 영화가 있다면 얘기해보자. 내 경우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이 굉장히 좋았고, 의외로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도 좋았다. 이윤기 감독의 다른 영화에 비해 참신하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숙현 : 돌아보니 올해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더라. 최근엔 <고고70>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런데 의외로 평이 좋지 않아서 신기했다. ‘7080세대’의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고 얘기하는데 영화적 재미만이 아니라 70년대를 그리고 있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대중문화에서 음악이란 것, 특히 한국에서도 록이란 게 자생적으로 발생 할 수 있었는데 그게 유신이나 어떤 정치적인 사건에 의해서 확 끊겼다.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 전반적으로 그랬다. 사회가 경직되면 대중문화도 같이 죽어버리는, 이런 현상을 <고고70>이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시대는 풍기문란 이랍시고 사람들 머리를 자르고, 미니스커트를 규제하고, 음악도 그랬다. 다 아시다시피 김추자 노래는 목소리가 야하다는 이유만으로 금지가 됐다. 단적인 이미지를 보자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젊은 가수들 데려가다 술시중을 들게 하는 자들이 풍기문란 법을 만들어낸 사람들인데, 그러한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예전 감독들이 이를 보여주기 위해 역사의 정치적인 면에 함몰되어 있었다면, <고고70>은 정치적인 면을 빼고도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정치와 일상이 분리될 때 일상이 어떻게 정치의 영향을 받는지에 주목한 셈이었다.




이용철 : 상반기는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을 제외하고 크게 흥미로운 영화가 없었다. 반면 최근 5일 동안 내리 봤던 한국 영화들은 전부 좋았다. 상황이 이럴 때 오히려 제대로 된 사람만 생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 7~8년 동안은 여러 영화들이 나와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작중인 영화가 거의 없다고 하더라. 얼마 전에 만난 PD 한 분은 젊은 피디 모임 구성원이 2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현재 일하고 사람이 두 명밖에 없다는 말을 하더라. 그런 상황에 정작 본 영화 5편이 다 좋았다. 모두 걸작이란 뜻이 아니라, 놀라운 영화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이 영화들을 걸러내는 그런 효과를 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기에 영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주목했던 영화는 신동일 감독의 작품이다. 곧 개봉한다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말이다. <사과>도 4년 정도 묵으면서 오히려 더 성숙해진 느낌이더라. 풋사과가 능금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기덕의 <비몽>도 최근 작품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이윤기의 경우 <멋진 하루>가 왜 나왔는지, 다시 말해 앞에 영화들을 이제야 알겠더라. 솔직히 이윤기의 전작들은 별로였다. 뒤로 갈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 사람 영화는 처음부터 비슷했는데 내가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이 감독이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는지를 <멋진 하루>를 보고야 알게 됐다.


 



박부식 :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볼수록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마케팅에 많이 현혹되는 것 같다. 기대치에 어느 정도 맞춰지면 좋겠는데 많이 그렇지 못한 것 같고.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었다. 영화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신인이나 중견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들에서 그들의 해야 할 역할들이 어떤 게 있을까. 신인 감독들이 보이는 신인다움. 첫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의 모든 것들을 쏟아 붓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이 잘 보이는지, 중견감독은 필모그래피를 파악하고 기준을 세워서 보려고 한다. 그런데 좀 이상해진 건지, 보고 나서 만족스럽다는 영화가 별로 없었다. 가장 최근에 부산영화제에서 본 <걸어도 걸어도>란 영화가 참 영화적이고 굉장히 뭐랄까…. 세심하고 치밀하면서도 영화적 힘이 느껴졌다. 서울에 와서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봤는데, 그게 더 좋던걸(웃음). 한국영화 중에서는 <추격자>가 좋았다.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서 대중영화들이 갖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영화의 완성도나 문법을 밀어붙여서 평가 받는 다기 보다, 대중적인 평가들이나 취향들과 영화적인 잘 어우러지는 게 한국영화의 미덕이라고 흔히 말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영화들에 대해서는 영화적 완성도 보다는 그 영화가 다루려고 했던 테마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하는 점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미학적인 취향에서만 더 나았던 영화나 못했던 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한국영화가 사회에서 다뤄지는, 관계하는 방식들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한국사회 잔인하지? 한국사회가 뭐 그렇지 라고만 받아들일 문제만은 아닌 것 같기도 싶고.


김성욱 : 어떤 “영화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들에서 뭔가를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개봉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영화를 보는 게 드물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에 대해 좋은 평가, 혹은 나쁜 평가를 가지고 있는 영화 일반 독자처럼 뒤돌아 생각해보면, 영화들에 관련해서 음성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영화자체가 아니라 영화가 좋았다면, 그 좋았던 지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남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중에는 뭔지 잘 생각이 안 나고.



박부식 : 김성욱 평론가에게 궁금한 게 있다. 고전 영화를 많이 볼 텐데, 최근에 봤던 영화 중 영화 역사상 관심 가지고 있는 볼만한 부분들이 어떤 게 있었나?


김성욱 : 개봉 영화는 놓치는 스타일인데, 한국영화는 어떤 영화는 개봉이후 저평가 받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렇지 않나? 결국 좋은 건 평가 받고 아닌 건 아니다 라고 평가 받는 것 같다. 물론 찬반으로 나눠지는 경우도 있지만…. 비평이 좋은 영화는 잘 놓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제는 좋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해보면 뭐였는지를 잘 모른다는 점이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밤과 낮>도 좋았다. 그런데 그것의 어떤 점이 좋았던 것일까. 그걸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분명하게 남아있다. 언제나 많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좋은 걸 좋은 거라고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데, 어떤 것이 좋았을까를 생각을 해 보면…. 저널에서 충분히 그런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평가 안에서 영화에 관련된 무언가를 끄집어냈나 생각해보면 여전히 미혹의 상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다크 나이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다크 나이트>는 거의 만장일치로 좋았다고 그랬는데 뭐가 좋았다는 건가. 조금 따져봤는데, 악마성? 몇 가지가 있는데 그럼 팀 버튼의 배트맨은 그렇지 않았나? 이런 테마에서 훨씬 떨어졌었나? 최근에 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든지 <데어 윌 비 블러드>같은 영화들도 그 영화 안에서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해프닝>까지 올 초부터 시작된 미국 대작들을 보면 자국 내에서 화제가 됐고, 아마 담론적으로 미국영화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저널이 만들어낸 담론들이 가장 크고 중요한 이슈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을 통해 ‘리프레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극장과 관련한 생각도 몇 가지 있다. 몇 년 전부터 카운터라는 말이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전통적으로 카운터라는 말은 별로 존재성이 없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에 보면 어떤 한 영화가 또 다른 영화들에 대한 카운터로서 작동하는 방식을 찾는 게 어려워졌다. 이를테면 <데어 윌 비 블러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 자체의 존재성도 있지만 그게 미국영화 자장 안에서 카운터 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경우 코폴라가 얘기하기를, 이 사람은 미국에서 디지털 편집기를 쓰지 않는 유일한 감독이라더라. 손작업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도 생각한다는 거다. 맨 처음 남자 주인공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행위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영화를 만드는 행위가 겹쳐진다. 반면 한국영화를 봤을 때 그 영화가 그 자체로서 미학적으로 뛰어나는 영화는 있는데 그것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 카운터를 해나가는지는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일정 정도 그런 거 같고.

세상이 너무 스펙터클하게 변모하고 있다. 그런 스펙터클의 중심에 영화가 있다. 스펙터클 한 부분이 사람들에게 흡입력을 갖고, 대단히 짧은 시간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흡입 시켜서 화제를 불러 모으고, 홍보와 마케팅을 전체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 스펙터클에 대한 대항점이 있어야 한다. 올해가 ‘68혁명’ 40주년이다. 그 당시 영화들은 스펙터클에 대항했다. 파멸의 의미는 좀 다르지만, 영화 스스로가 파멸해가기를 바라는. 그런 부분들과 카운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박부식 : 카운터에 관련시켜서 말씀을 드리자면 2000년대 초반쯤에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친구>가 80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면서 시장이 커졌던 것 같고. 그때 들었던 생각이 주류 메인 스트림 시장이 커지면 독립영화도 따라 커질 것인가? 그때 암묵적인 합의는 같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팽창을 관대하게 용인하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전부 상업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주류에서 벗어나있는 독립영화라고 이름 붙여진 영화들도 마케팅이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백건영 : 매체나 평론가들이 확실하게 호불호를 표하는 영화들이 있는 반면, 애초에 아예 배제되고 소외되는 영화도 굉장히 많은 게 현실이다. 차라리 악평이라도 들으면 좋을 텐데 대체적으로 독립영화들은 그런 비평자체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어 왔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네오이마주가 처음 만들어질 때, 이왕이면 알려지지 않고 비평적으로 수혜를 못 받은 지나간 영화들을 재발견하고 찾아보자는 생각들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 년에 대략 100편 이상씩 개봉한다. 그 중 비평의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영화들의 원인이 어디 있을까? 매체의 한계인지, 산업구조의 문제인지, 아님 영화자체의 문제인지 말이다.


김숙현 :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김성욱 평론가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들은 난무하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거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없다. 평가만 나열되고 끝난다. 카운터로 작동할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게, 비평담론의 실종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단적으로 얘기 하면 <키노>가 망한 이후 현상이나 평가가 나열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글에 대한 리액션이 오고 가며 담론을 만들어지고, 그 시대에 있어 그 영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키노>가 잘했다기보다 월간지라는 형식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줬다. 현재 영화전문지도 그렇고 영화 리뷰들이 다 짧다. 온라인 시대라지만 온라인에서 긴 글은 못 읽겠고. 온라인 매체에 글을 쓰고 있지만, 편집장이 항상 하는 얘기가 글을 길게 쓰지 말라는 거다. 지금은 전문가의 평을 안 읽는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고 블로거들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깊이 있게 하고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시대냐. 각자 다 벽에 다 대고 혼잣말을 하면서 그렇게 모여 있는 상태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형태가 아니다. 카운터로 작용을 할 만한 영화가 안 나온다는 것도 지금의 어떤 경향을 공유할 것인지,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영화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으니 신변잡기적이고 혼잣말을 하는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사회전체와 연관을 짓고, 그것에 대해 다시 얘기하는 과정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블로그에 ‘월간지가 필요해’ 라는 글을 썼다. 그런데 이 시대에 월간지에 뜻있는 평론가나 기자들이 모여서 직접 만든다고 해도 시장에서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일단 사람들이 정말 긴 글을 읽지 않을까, 정말 수요가 없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깊이 있는 담론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담보하는 매체가 안 보인다. 굉장히 멋진 글이 천명도 안 되는 사람들한테 읽히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가버리는 상황도 너무 속상한다. 매체 환경이 중요한것도 같고 모두 그 탓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꽤 절망적인 상황으로 느껴진다.


김성욱 : 난 내 글을 만 명이 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2백 명, 3백 명? 극장에 오는 숫자만큼?(웃음) 개인적으로 비평담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비평가들의 숫자는 많아졌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기존 사람들은 남아있고, 새로운 사람들도 들어왔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은 열심이고 숫자도 많고 다양하다. 동시에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글을 덜 읽는다는 판단도 맞는지 잘 모르겠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몇 명의 글을 읽는 게 증가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생각해보면 백 명 정도의 좋은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쏠림 현상은 정당한 것이니까.

오히려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틀거나 이런 이유 때문에 늘 생각하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영화 글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알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담론과 대중들과의 접점이 굉장히 불분명한 상태라는 거다. 이를테면 이번 씨네휴 영화제에서 소쿠로프 영화가 상영이 됐다. 정식 개봉 형태는 아니지만 에릭 로메르의 <로망스>도 상영됐고. 두 영화에 대한 어떠한 글도 찾아본 적이 없다. 로메르의 <로망스>는 대체 무슨 영화지? 영화를 본 천 명 중 이백 명 정도 그런 생각을 할 텐데 통로가 없는 것 같다.

또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영화들과 만나고 있는데 반대로 각각의 영화에 대해서 거꾸로 얘기해주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다시 말해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경로가 전혀 없다. 그 부분에 대해 비평가들이 얘기하는 장소가 잡지일수도 있다. 어쨌든 자꾸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해 주길 원한다. 비평가가 상대적으로 마이너리티한 부분들과의 접점을 각개 형태로 진행해 나간다면 전체적으로는 네트워크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네트워크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건 저널일 테지만 각개로 진행될 수 있는 경로도 굉장히 많을 것이고, 이 미들급 부분이 중요하다. 주류 저널의 기획이 있고,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 쓰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비평이건 감상이건 자기가 빠져있는 감독에게 대해 좋은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미들급인 거다. 비평가는 비평가대로, 대중은 대중대로 그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박부식 : 직접 애기한다면 스폰지와 관련된 문제인 거 같기도 하다. <알렉산드리아>라든지. 시네휴 영화제 상영작들은 스폰지에서 수입했지만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는다.


김숙현 : 마케팅을 하지 않을뿐더러 정식개봉을 하지도 않는다. 자기네 영화제에서 한번 틀고 말면서 DVD 출시도 안 하고.


박부식 : 이런 영화들이 저널에서 소외된 것이다. 나를 포함해 비평가들의 열의가 없을 수도 있고(웃음). 일반 개봉작이 아닌 영화들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확대개봉하고 아니면 그냥 묻힌다.


김성욱 : 일반 저널의 문제는 그런 거다. 거기서 그런 것까지 다 소화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쪽도 소통을 해야 되니까. 백 억 짜리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과 십 억 짜리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다르다. 요지는 여기서 말하는 비평가도 너무 추상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고유의 역할을 잘 설정을 한다면 더 좋지 않나 싶다. 각자 자기의 고유한 세계가 있다. 각각의 비평가들이 신문에서 하는 영역, 블로그에서 하는 영역이 있고, 저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거다. 각각의 고유한 세계들이 겹쳐있는 현상 중에 언제나 얘기가 주류 중심적인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주류는 언제나 문제가 있어 왔는데 말이다.

또 월간지를 만드는 게 과연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말이 많은데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상업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 없이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필사를 만들어낸 예도 있으니까. 하지만 미리 사람들이 보지 않을 거라고 전제해버리면, 영화제작사가 이 영화는 만 명도 안 볼 거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숫자를 먼저 겨냥해놓고 진행한다는 건 옳지 않다. 그럼 주류의 태도를 비판할 수도 없다. 저널 하나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은데. 디자인비를 줄이면 할 수 있다. 문제를 제시하고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많은 영화학과가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영화제작자와 똑같은 마인드 아닌가? 해봤자 안 된다 이런 건.


박부식 :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각자 영역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싸이더스를 예를 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싸이더스가 주류 영화와는 다른 감독중심의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어내다 위기와 맞물려서 주목할 만한 영화들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살인의 추억> 이후 그런 상황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주류에서도 카운터 적인 영화들이 나와 주지 못하고,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서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다양한 글들을 적시에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영화 내적인 지향점이라든지 비평과도 맞물리겠지만, 유통방식 등 산업과도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김숙현 : 사실 월간지는 해보고 싶다. 그런데 <키노>의 실패가 주는 두려움이 크다. 주간지나 온라인 매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있다. <키노> 폐간 될 때 다들 했던 얘기가 ‘최근엔 <키노>를 사보지 않았다, 그런데 ≪키노≫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로 통합되고 그나마 CJ에 인수됐다 없어졌다. 분명히 필요한 지점들은 있지만 실패의 경험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질 좋은 종이의 무가지들이 아닌, 한글로 편집하고 그림도 <필사>가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다른 쪽에서 그런 잡지를 만들어봤다. 한 달에 3만원씩 각출해서 조악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영화잡지도 그런 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누가 읽을 것인가부터 만들면 읽기는 할까까지 두려움이 크긴 하다(웃음).


이용철 : 암울하다고 두려워하는 게 문제다. 읽히지 않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장 콕도가 영화를 열 명 밖에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만들었나? 왜 비교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언제와 비교해 열악한지에 대한 질문. 일제시대부터 연극해왔던 사람들, 그 사람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언제와 비교해서 못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못 봤다. 그런데 영화 쪽에서 말하는 걸 들어보면 딱 10년이다.

80년대나 90년대 초 만해도 이런 문화가 없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영화산업이 형성되면서다. 사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영화학과는 딴따라들이 갔다(일동 웃음). 정말 그때는 영화학을 하기 위해 영화학과를 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거나 영화산업에 들어가고 싶어서 영화학과에 들어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학과의 인기는 사회적 추세를 반영하지 않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영화 산업 자체가 커지고 인기를 얻으면서, 산업 쪽에 몰렸다가 언론 쪽에 몰렸다가, 영화 쪽에 몰리는 상황에서 파이가 상당히 커졌다. 그간 10년을 경험한 뒤 그 시대와 비교해보니 읽는 사람이 줄었다. 그때에 비해 더 안 읽는다는 비교는 옳지 않다. 사실 세계 어디서도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그에 대한 글까지 읽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없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내적으로 글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지, 외부적으로 이게 옛날에 비해 못하다, 두렵다 하는 이야기는 수긍하기 힘들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담론보다 정보가 더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라는 건 상영되는 영화의 배우가 누구고, 상은 뭘 타고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영화가 지금 나와 있고 어떤 영화를 주목해야 하고, 어떤 영화에 의미가 있는지 모든 평론가들이 드러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우리나라 잡지의 평론가들은 똑같은 영화에 대해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사실 그러다 보니 다뤄지는 영화가 몇 개 없다. 담론 형성보다 그게 더 문제다. 온라인이나 주간지의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은 그야말로 일주일 단위로 글을 쓴다. 기자들 기획은 단시안적인 것이다. 평론가들도 자기가 멀리 떨어져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기획에 따라 써주는 거다. 독자들은 결국 상영되는 영화 안에서 맴돌고 있다.

사실 베르히만이 죽었을 때 그의 유작을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소개하지 않았다. 그런 게 문제라는 거다. 평론가들은 주류 영화나 담론에서 떨어져 자기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지금 걸리는 영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영화들, 볼 수 없지만 내가 호기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영화들을 궁금해 해야 한다. 일반 독자들의 파이를 넓히려면 그래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잡지 만드는 사람들의 내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돌아가는 사정이 너무 뻔하다. 판매부수 걱정하고, 마감일 지켜야 되고. 그러다 보면 해결책은 딱히 없는 것도 같고(웃음). 개인적으로 담론보다 소개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김숙현 : 위에서 언급된 정보라는 것도 담론이라 생각된다.


이용철 : 담론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형성되는 것이다. 근데 영화 자체를 안 보는데 어떻게 담론이 생기나?


김숙현 : 어떤 영화에 주목해야 되나 자체가 담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무수하게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하는데, 금방 상영되고 다 사라진다. 이후 그 영화에 대해 아무런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주목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에 대해 소개를 해주는 것 자체가 담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철 : 국내에 개봉되거나 소개되는 영화들은 어느 정도는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본 개인적인 영화라 하더라도 나만 알고 있는 영화는 하나도 없다. 내가 말한 정보는 그게 아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한국영화가 수혜를 받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홍상수 같은 스타일의 감독을 주류 언론에서 특집으로 다루는 나라는 드문 예라고 본다.

지금 매체들은 답답하다. 예를 들어 누보시네마가 지금 상영되고 있다. 뒤라스나 로브그리예 영화들은 국내에서 보지 못한 영화도 있지만 그에 맞추어서 글이 나오는 경우가 없다. 사실 해당 나라에 가서 그 감독들을 전공한 평론가들도 있는데 그들이 전혀 노출이 안 된다. <씨네21>도 매번 쓰던 평론가가 자기가 모든 영화를 통달한 양 글을 쓰게 된다. 뒤라스 영화를 한편이라도 봤다고 하면 다 쓰라고 하고. 하여튼 그런 식의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영화를 다 보고 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각자의 영역을 좀 더 드러내야 한다. 영화평론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재야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이 자꾸자꾸 드러나고 사람들과 접점을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처럼 매일 쓰던 평론가가 누보시네마를 두, 세 페이지로 쓰게 될 텐데, 글도 심심하다. 어려운 영화를 더 어렵게 써놓는다(웃음). 그럼 독자가 그 영화 보러 가고 싶을까?






백건영 : 가끔 놀랄 정도로 해박하고 여러 인문학적 소양도 상당한 블로거들이 눈에 띈다. 그런 블로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 친구들 중에 주류 저널들이 다룰 수 없는 것들을 골라 쓰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들을 활용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이들을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모아낼 것인가. 이것이 내 고민이다. 이런 글들이 모일 수 있는 허브를 만들 방법은 없을까. 굳이 월간지가 아니더라도 팀블로그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네오이마주도 그런 역할을 하고자 시작하긴 했지만, 우리도 결국 대중성과 시의성에 맞춰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용철 : 그런 것들을 모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 자체로 있으면 되면 아닌가? 수요가 있으면 어떻게든 접점이 생긴다고 본다. 그런 블로그들이 소개가 안 되고 드러나지 않는 것보다 주류 언론이 더 문제고 역할이 더 크다는 거다.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기 글을 쓰고 있고 필요한 사람들은 가서 읽는다. 그런 사람들의 글이 전사회적으로 읽힌다는 게 더 이상하다. 똑같은 영화를 놓고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는 점. 나는 예술영화보다 대중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백 년간의 영화의 역사를 볼 때 실험영화라든지 아주 극한의 예술 영화는 수천, 수백만이 공유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거다. 지금도 대중영화 찍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지 독립영화 하는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다는 말은 안 한다. 사실 예술영화를 전 국민이 보는 문화가 오히려 이상하다.


김숙현 : 매체 쪽에서는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는 게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잡지에서 봤던 평론가가 다른 매체에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멋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왜 초야에 묻혀있나 싶다. 주류에서 좋은 글쟁이가 될 것 같은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용철 : 그런 면에서 블로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블로그에 조악한 글도 많고 대단한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실 잡지입장에서 여러 명의 평론가를 많이 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평론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글이 잘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평론가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블로그는 계속 글을 써야 유지가 되잖은가. 글을 계속 쓰면서 자기 자신에게 수정이 계속 들어간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좋아지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블로그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이쪽으로 유입된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끄집어내서 모으고 이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김성욱 : 주류 얘기로 논의가 흐르는 거 같다. 주류는 늘 문제가 있었다. 물론 마이너도 마이너 나름의 문제도 있겠지만…. 자꾸 개별성을 얘기하는데,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게 더 중요하다. 주류라는 건 언제나 화두가 되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건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걸 다 받아들이면 주류가 아닌 것 같고. 필요하다면 할 수 있겠지만 뜬금없이 어떤 감독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어떤 감독이나 작품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고 분개하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 로브그리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지는 주류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일동 웃음).


박부식 : 어떤 사람에 대해 소개가 안됐다는 사실에 분노를 하는 것은, 그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았다는 것이고 이 좋은 영화를 같이 봤으면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비디오를 가지고 소규모로 나눠서 보고 기쁨을 나누었고, 지금도 파일로 공유해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람직한 형태는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즐기는 것이다. 주류 대중영화가 아닌 좀 더 새로운 사람들, 보게 만들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개라고 본다. 주류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분노도 아니지만, 내가 산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가 그 누군가나 블로거들에 의해서 봐야 한다고 평가하고 미덕을 글로써 나타낸다 한다 해도 극장에서 상영이 되지 않고 그친다면 안타까운 일인 거다.






백건영 : 네오이마주 3주년 좌담이니 우리에 대한 야기를 듣고 싶다. 3년이 됐다. 처음에는 고정필진이 있었고, 작년에는 필진을 없애고 독자들까지 글을 쓸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네오이마주에 대한 가능성과 쓴 소리를 듣고 싶다.


이용철 : 국어사전에 어떤 단어를 넣느냐 마느냐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처럼, 언어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블로그나 일반 20대들이 이런 평론을 안 읽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자기들과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적인 언어인지 철학적인 언어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소통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제가 만나 본 아이들도 그런 얘기를 많이 한다. 그것을 단지 너희들이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생각을 안 해서 그래, 영화를 많이 안 봐서 그래 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평론가들은 자기반성이 아니라 그런 언어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유행어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에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오이마주는 워낙 예전에 나와 있던 그런 정적인 평론만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숙현 : 사실 개별 영화보다 시대의 어떤 비슷한 배경을 다룬 영화들이라든지, 한 발짝 떨어져 영화의 흐름을 짚어주는 특집 기사나 주류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에 대해 기대를 했었다. 또 한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연작 식의 긴 글을 많이 기대했다. 그런 글은 매체가 다루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오래 관심을 가진 것이 경성영화, 근대화에 관한 영화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잡아 쓰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다. 이런 건 주간지나 온라인 매체에서 하기 어렵다. 여건상 어려워도 욕심이 나는 부분이다.


백건영 : 네오이마주의 경우 이끌어가는 사람이 전업이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의지해야 하고, 객원필자에게 비중을 많이 두려고 한다. 그런데 각자 바쁘니까 써달라고 얘기하기는 힘들고. 그래도 다행인 게 예전에 쓴 글들 중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할 수 있겠다. 비록 지나간 글이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가져다 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의성과 전혀 상관없는 글들도 있다.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쓸 수 있는 풀이 적은 거다. 그런 것들을 위해 객원필진들을 모셨다. 김성욱 평론가의 경우는 글 대신 한 달에 한 번 좌담을 해서 대화를 정리하자고 했었지만 여러 여건상 이뤄지지는 못했다.

시네마테크처럼 오프라인 소식지 같은 것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원초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스텝들한테 각출 할 수도 없고 독자들한테도 요구하기 힘든 부분이다. 내년에 지원을 받아 한 달에 한번 오프라인 소식지를 낼까 생각 중이다. 글의 품질을 떠나 네오이마주가 꼭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다면 조언을 해 달라. 대체적으로 독립영화는 어떤 저널보다 많이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양에 불과하지 만족할만한 질적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용철 : 좌담이나 대화를 기록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시네마테크 지에도 두 세 페이지 정도는 그 달에 했던 감독과 대화를 정리해서 나오는데 사실 쉽지 않다. 어떤 주제를 놓고 두 세 명이라도 준비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다. 굳이 기획해서 각자 써달라고 하면 각자 자기 일도 있고 힘드니 좌담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까 말씀하신 모더니티 문제는 개인적으로 올 초부터 관심이 있었다. <청춘의 십자로>를 놓고 한국의 현대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도 많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비를 하다 보니 너무 커져서 포기한 상태다. 대화를 하면 상대방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이 바뀌는 면도 있다. 어느 주제가 있다면 관심 있는 몇 사람을 모아서 얘기를 한다면 한 달에 한번 기획이나 특집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숙현 : 근대화에 관심이 있다니 반갑다. 내가 <키노>세대인데 PC통신에도 영화 동호회가 있었고 어떤 형태로든 커뮤니티가 있었다. 인터넷 세대에 회의를 느끼는 이유는 다들 혼잣말을 하지 모여서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있는데 공동 작업이다. 시너지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각자 고민하고 끝나버리는 것, 담론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로 끝나버리는 게 커뮤니티가 상실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박부식 : 근대 초기 영화는 몇 년 전부터 화두가 됐고, 또 그쪽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국문학 하시는 분들이 예전에 그런 글을 많이 썼다. 일주일에 한번씩 예종에서 강연회가 있기도 하고. 네오이마주에서 그런 쪽을 소화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또 잘 알아야 짧게 쓸 수 있지 않나. 30년대 영화 관련해서 논문을 쓰는 분도 아는데 만약 한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대중매체는 소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네오이마주가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그런 글들을 실을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대담 같은 경우는 전주에서 벨라타르를 만났을 때, 인터뷰를 했으면 좋았는데 충분치 않더라. 지면상 말이다. 네오이마주가 영화제를 찾은 감독들과 대담이나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특집기사를 써도 아이템이 많을 것 같다. 미리 심사위원이나 중요 감독들을 다뤄도 좋을 것이고.


이용철 : 요청해도 온라인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제는 몇 개 매체로 정해 져 있다. 하고 싶어도 응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체에 대한 선입견도 존재한다.


박부식 : 안타깝다. 그런 어려움이 있겠지만 준비를 좀 더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백건영 : 30년대와 근대성의 경우 워낙 방대하니 일 년 정도로 기획을 잡고 조금씩 파고 들어가도 좋을 것 같다. 네오이마주 편집장으로서 고민은 장기적인 기획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의욕부족인지 모르겠지만 과연 어떤 사람들과 함께 진행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사라지는 것도 많다. 가능하다면 한 달에 한번 객원들이 모였으면 좋겠다. 오늘 나온 얘기들은 글로도 읽을 수 없는 내용이지 않나. 이런 부분을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좌담 장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인사동에 이렇게 고요한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공간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정리된 기사만으로는 가늠이 안 되겠지만 현장에서는 특정 대상과 현상에 대한 성토도 있었고, 영화비평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논점의 중요성과 시의성 때문에 중복되는 이야기를 뺐음에도 상당한 분량의 녹취록이 만들어졌다. 네오이마주 3주년 특집좌담이긴 해도 영화와 비평과 담론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제껏 우리가 해온 일이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장시간 열변을 토해준 참석자들께 감사드린다. (당일 촬영한 동영상은 편집이 끝나는 대로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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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는 늘 거기 있을 것만 같은 사려 깊은 친구와도 닮았다. 이곳은 단순히 고전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 아닌, 고향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런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고향이라는 공간, 거기에 얽혀있는 기억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곳에서 그곳까지 가는 거리와 시간과 공간의 이동.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한 편의 영화를 만나고, 그 영화는 내게 위안을 주는 친구가 된다. 그렇게 공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단 하루의 시간을 투자해 단 한명의 친구를 만난다. 애쓴 노력과 얻어진 결과의 차이를 효율이라 한다면, 최고의 효율로 최고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이 공간이 바로 서울 아트 시네마다. 시네마테크는 이번에도 자신들의 친구들을 초대한다. 새로운 친구든, 이미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친구든 시네마테크는 차등을 두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에 응답할 의무는 없다. 다만 그 희한한 친구의 사랑을 느껴보길 바란다. 2008년을 코앞에 둔 일요일, 제 3회 친구들 영화제 준비에 한창인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백건영(이하 백): 오늘 인터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진행될 예정인데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그리고 “2008년도의 시네마테크의 방향성” 내지는 라인업 등 총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친구들 영화제 까지 약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필름 수급이나 진행은 잘 되고 있어요?

김성욱(이하 김): 페라라 영화도 다 들어왔고요. 경우에 따라서는 한 두 작품정도 변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백: 지난 기자회견에서 이번 시네마테크 영화제의 슬로건을 ‘새로운 영년’ 이라 말씀하셨는데, 올해를 ‘영년’이라고 부른 이유가 있을 텐데요.

김: 우리나라에서는 영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원년이라는 말은 쓰는데...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인데요. 올해 2007년이 시네마테크 5년째라는 의미가 있고요. 처음에 시작을 할 때 공간, 예산 문제가 있었는데,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가장 컸고요. 3년 안에 1000편 정도를 틀어보자 라는 이상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내년에는 지금까지의 고민에 더해져 좀 다른 시도를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7년에는 시네마테크의 전용관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웠잖아요. 2008년에는 공간문제는 계속 고민하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게 필요한거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건 문화적 연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시네마테크는 상업적인 기능보다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기능을 하고 있으니까, 이런 문제를 중점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2008년부터는 다른 단체, 기관이랑 연대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우리만 생각할게 아니라. 그러니까 단지 시네마테크 문제에서만 생각하지 말자는 거죠. 각 개별 영역에서 영화 애호가 아닌 영화우호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시장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손실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연대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종 영화제, 영화 단체, 감독조합, 기타 다른 기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구요. 더불어 씨네클럽이나 소규모 영화집단이랑 어떻게 연계가 될 수 있을까 하는...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영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게 되었어요.


백: 이번 친구들 영화제 라인업을 보니까 홍상수 감독이 추천한 [라딸랑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7,80 년대 영화더라고요. 의도인지, 우연인지. 하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 궁금했어요.

김: 하다보니 그렇게 됐죠(일동 웃음) 홍상수 감독은 [라딸랑트] 외에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북극의 나누크], 이렇게 3개를 추천했는데, [라딸랑트] 를 가장 먼저 연락했더니 된다고 해서 그걸로 선정하게 되었어요. 7,80년대 영화가 많이 선택된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를 선정한 친구들 세대 특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해보면 7,80년대가 가깝기도 하고 먼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다른 연대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조명되거나 소개되는 거 같지도 않고요. 영화사적으로만 봐도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제외하고는 좀 퇴조현상이 일어났던 시기라는 일반적인 얘기도 있고요. 이두용, 아벨 페라라 감독도 7,80년대에 작품 활동을 했고요. 얘기를 하시니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 시기의 영화를 다루는 게 한편으로는 꽤 의미 있는 작업인거 같아요. 영화 미학적으로 저 평가받은 작품들도 많이 있는 것 같고요.


백: 다른 감독이나 평론가들이 추천한 작품들 중 틀지 못한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김: 정성일 평론가는 몬테 헬만 영화를 추천했는데,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했던 적이 있어서요. 몬테 헬만으로 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도 해요. 최동훈감독, 김혜수씨는 [선셋대로]를 추천했었는데요. 시네마테크에서 빌리 와일더 영화를 몇 번 틀었지만, [선셋대로]는 공개된 적이 없잖아요. 그런데 수급과정에서 이번에는 [글로리아]로 선정하게 되었어요. 다른 분들은 대부분 지금 선정된 거 그대로 수월하게 수급이 되었어요. 아, 임순례 감독은 앙겔로풀로스의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영원과 하루] 와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의 시간]을 추천했는데요. [집시의 시간]이 (수급과정이) 좀 어렵지 않겠느냐 생각했는데 [영원과 하루]가 더 어렵더라고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프린트 상태도 안 좋았고요. 개봉했던 앙겔로풀로스 영화는 대여가 불가능하더라고요. 필름 수급과정을 겪다보면 한국영화든 외화든 개봉했던 영화를 다시 틀기가 어려운 조건이 꽤 많아요. 상업적으로 트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오히려 상업적이지 못해, 배급사나 수입사로부터 수급상의 어려움이 있죠. 가장 큰 문제는 저희가 아카이브가 아니어서 원한다고 틀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죠. 종종 영화제를 하다보면 가끔 왜 이런 영화는 상영 안 해주냐. 이런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선수들끼리만 알 수 있는 문제 같아요. (웃음)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이런 필름수급과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좀 물리적인 면들인데. 물론 정당한 문제제기인데 현실적으로 좀 어려운 문제가 꽤 있죠.


백: 관객들 입장에서는 선정해서 틀어주는 영화 말고, 자신들이 원하는 영화들이 있을 테지만, 그런 수급과정을 관객이 다 알 필요가 없다고 느낄 테고요, 또 상영하는 입장에서는 일일이 이해를 구하면서까지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웃음)

김: 어떤 사람이 어떤 영화를 보려고 할 때 그 과정이 있잖아요. 그 과정의 어려움을 요즘 관객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언제나 주문하고 검색을 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는 편리성과 같은 측면에서 필름수급의 메커니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10여년 전만해도 어떤 영화를 비디오로 찾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나. 라는 생각을 하죠. 아, 내가 그 영화를 찾아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은 외국에 나가서 겨우 사왔다. 영화 한편을 보려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리는 그런 경로가 있었죠. 그 경로 속에서 찾는 과정, 발견의 과정, 보게 되는 과정이 포함되었고요. 영화를 보게 되는 다양한 경험, 다층적인 경험이 있을 텐데요. 지금은 거의 주문. 제작 형식으로 영화를 본다는 거죠. 영화를 본다는 게 사실은 기다림의 시간까지 포함되는 거잖아요. 그런 시간이 압축되는 것 같아요.

선정 과정에서, 박찬욱 감독이랑 기자회견 끝나고 얘기한건데요. 아주 색다른 작품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교과서 적인 작품을 트는 게 크게 나쁘지 않다는 얘기를 했거든요. 왜냐면 사실은 그런 작품도 필름으로 경험하지 못한 게 현실이지 않느냐. 라는 얘기죠. 물론 박찬욱 감독이 선택한 [순응자]도 굉장히 취향이 가미된 것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자기 취향적인 방식으로 초이스를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었죠. 저도 박찬욱 감독의 그런 부분에 공감했어요.


얼마 전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을 할 때 어느 잡지에서 소개 글을 잠시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랬거든요. “큐브릭은 너무나도 소개가 많이 되어서 진부한 감이 있지만...” 근데 소개가 많이 된 적이 있나 (일동웃음) 물론 DVD나 다운로드를 통해 많이 소개가 되었죠. 근데 필름 상영이 된 적은 없지 않느냐. 라는 거죠. 아트시네마에서 필름으로 어떤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은, 너무 많이 소개되어서 진부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필름으로 그런 영화를 트는 것 사이에 생기는 경험의 충돌성이 공존하게 되는 거 같아요. 여기서 전자의 생각을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번 선정작을 보면 이두용 감독의 [뽕] [내시] [물레야 물레야] 같은 것도, 재개봉관에서 보았던 경험이거든요. 페라라 영화도 비디오로는 많이 봤지만 필름으로 온전하게 본적은 별로 없거든요. 제대로 한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공동의 체험이 어떤 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상영자체가 갖는 의미성을 그런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 텐데요. 너무 콘텐츠로만 생각하면, 뭐랄까 ‘뉴 커런츠’로만 소개되는 국제영화제 선정 작품이나, 개봉하는 영화는 그런 쪽이지만. 시네마테크는 그와는 좀 다른 역할이 있는 거 같아요. 영화에 대한 겸손함이랄까, 그런 작품을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 갖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너무 그런 식으로 빠져드는 건 좀 이상하지만요.


백: 말씀하신대로 관객들이 일반 개봉작은 말할 것도 없고 아트시네마의 영화들도 DVD나 다운로드를 통해 많이들 보잖아요. 스크린에서 보는 게 더 좋다는 느낌과 이미 그 영화는 보았다는 것 사이에서 충돌이 있는 거 같아요. 박찬욱 감독도 기자회견에서 “기술복제 시대라고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으로 보는 게 진품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타당한 생각이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에요. 굳이 필름으로 다시 봐야 하는 당위성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의미들, 필름이 아닌 ‘시네마’가 갖는 원초적인 의미에 대해 인식을 바꿔줄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끔 시네마테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그런 학생들도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안본영화에 대해서 우쭐하는 그런 것 같은 거..(웃음) 그것보다 영화가 도대체 뭐고, 필름으로 본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물론 아트시네마 입장에서 수급과정의 어려움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그런 ‘시네마’로서 영화를 대하는 과정을 사람들한테 느끼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차상윤(이하 차): 요새 개봉영화들이 불법다운로드의 피해를 많이 보고, 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는데, 실제로 아트시네마는 불법다운로드에서 받는 영향이 있나요?

김: 크게 영향을 받는 거 같진 않아요. 물론 불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만큼 또 마이너하고 마지널한 영화를 그나마 수급할 수 있는 게 불법다운로드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부분도 있으니까요.(웃음) 물론 분명 문제도 있지만 현재의 조건에서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대신 그런 생각을 하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그 영화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야, 그 영화는 극장에서 필히 봐야해. 이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사람들이 영화가 좋다, 재밌다, 놀랍다. 이런 표현은 자주 쓰지만, 극장에서 봐야해. 스크린으로 봐야해. 이런 감흥의 인식이 좀 예전보다는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지금의 문제는 다운로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극장에서 봐야하는 그 체험이라는 인식이 많이 없어지고 콘텐츠나 내용에 함몰되는 경향에서 오는 문제겠죠.

4,50대의 분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무슨 영화가 이렇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다 “진짜 극장에서 볼만하지” 이런 얘기가 종종 나오거든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영화는,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웃음) 그건 정말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야. 그런 표현이 많이 실종되는 거 같아요.

블로그에서 영화에 관한 글들을 보면, 그런 감흥, 체험의 느낌이 별로 없어요. 영화가 뭐가 문제다. 뭐가 어떻다. 이런 게 많은데, 좋은 말로 하면 좀 분석적이고 안 좋은 말로 하면 감흥. 이런 점이 많이 누락되고 있는 글들을 보게 되는 거죠. 이번에 큐브릭 회고전할 때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감독은 아닌데,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배리린든] 같은 작품을 극장에서 보는 게 참... DVD로는 분명 30분도 못보고 졸아버린 영화들이었는데, 극장에서는 2시간 이상을 즐기게 되잖아요. 사실은 과거의 감독들은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을 전제로 만들었잖아요. 그 영화를 비디오, DVD 를 통해 보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 지는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거죠. 극장에서 대형스크린으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감동, 감각으로 영화를 보는지, 그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거 같아요. 근데 요새 영화들은 잘 모르겠어요. (웃음) 비디오, DVD 상영을 전제하고 몇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진 영화들도 있고요.





백: 예전에 <벤허>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와 같은 포스터를 보면 시네마스코프 상영, 70mm 초대형 스크린 상영, 이런 식으로 홍보를 했던 게 기억나는데요. 큰 화면에서 보여 지니까 굉장히 좋은 영화일거야. 하는 생각들을 했고요. 물론 처음에는 텔레비전과의 차이를 두기 위해 스크린의 화면비를 영화가 고민했던 적도 있었지만.

김: 우리보다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우리보다 작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거 (두 손으로 작은 프레임을 그리며)사이에 어떤 차이가 발생할까. 과거의 영화가 우리보다 큰 스크린에서 보았다면, 지금은 우리보다 작아진 스크린에, 그 안에 담긴 이미지를 보게 되는 건데요. 사실은 차이가 있죠. 영화가 갖는 힘이나 경이로움, 니콜라스 레이 영화처럼, 우리보다 큰 거기에 압도되면서 뭔가를 보게 되는, 직접 훔쳐보게 되는 그 느낌이 갖는 중요성이 비평을 작성하게도 하고. 영화에 빠져들기도 했는데 말이죠. 지금 상황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백: 관객들이 뽑은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는 몇 번 상영되나요?

김: 2번 상영이 되고요. 관객들이 많은 작품을 선택해주셨는데...


백: 개인적으로는 [안녕 용문객잔] 이 되기를 바랐는데...

차: (갑자기 끼어들며) 저는 봤지요. (의기양양)

백: 아, 나도 봤지. 대만 뉴웨이브 할 때.

차: 아, 보셨군요. 저는 소격동 아트시네마 문 닫을 때요. 저는 [당나귀 발자타르] 보고 싶었는데..



김: [안녕 용문객잔]과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이 두 작품이 최종까지 갔던 거 같은데요. 뭐 관객들이 선택한거라 크게 드릴 말씀은 없는데요. 상영시간도 꽤 긴 것 같은데, [아웃 원]의 여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올해 경이로운 러닝타임을 자랑하면서 이 영화를 틀었죠. 얼마나 많은 관객이 들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상당히 많았어요. 물론 첫 번째 에피소드가 가장 많았지만 (웃음) 그때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지 않나. 작년에는 왜 그 영화를 선택했는지, 관객 스스로 말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올해도 해볼까? 궁금하잖아요.


차: 관객들이 뽑게 될 영화 리스트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해요.

김: 일단은 최근 2~3년 사이에서 호응이 좋았던 작품들 위주로 선정했고요. 선택을 해야 하는데, 작품의 섭외문제가 먼저 걸리죠. 가져오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거나 곤란한 작품은 빠지게 되고요. 관객의 선택에 대해서는 고민을 했어요. 지금처럼 작품을 놓고 선택하게 할까. 아님 한사람씩 이 영화를 보고 싶다. 그렇게 오픈 해놓고, 뭐 50명 정도의 동의를 얻으면 최종에 올라가서 그 중에서 다시 재투표를 할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얼마나 참여가 있을까. 생각도 들고. 다른 방식으론, 감독 이름도 놓고 초이스 해볼까. 하기도 하다, 올해는 작년이랑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됐어요. 어떤 게 좋을까요?


백: 근데 문제는 관객들이 임의로 선택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다 골라놓고 수급이 안 되면.(웃음) 그래서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올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게 수월하지 않나요. 관객 입장에서는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 보는 게 가장 좋은 거겠지만...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이번 영화제에 친구들이 선정한 영화 말고, 이두용, 아벨 페라라, 트뤼포 특별전이 있는데요. 아벨 페라라가 국내에 처음 오는 거죠? 얘기듣기로는 아시아권 국가는 처음 오는 것이 라던데요. 어떻게 초청이 성사되었는지, 그 과정 좀 얘기해주실 수 있어요? 뜻밖의 인물이라서. 저도 90년대 초반 그분의 영화를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김: 지난번에 [킹 뉴욕] 을 한번 틀어보자.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틀었을 때 후속 컬렉션 형식으로 말이죠. 근데 그때 상영 못해서, 그럼 내년에 틀어보자. 고 넘기고는 필름 수급을 하다 보니, 아벨 페라라 본인이 저작권의 일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결국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본인이 서울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해왔고, 그럼 친구들 영화제에 초청하자. 이렇게 된 거죠.


백: 아벨 페라라 마스터 클래스도 아트시네마에서 진행하는 거죠?

김: 네. 재밌는 건 아벨 페라라 감독이 한국에 온다. 마스터클래스도 진행될 것이다. 라고 제 주변에 20대 초반 학생들에게 말하니까. “아벨 페라라가 누구에요?” 라고 하더라고요 (일동 웃음) 지금의 영화조건 내에서는 거의 사장되었구나. 인지되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렸구나. 짐 자무쉬는 잘 알잖아요. 그만큼 아벨 페라라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이 안 되었던 거죠.


백: 음...이번에 상영하는 영화들 중 앞으로 필름으로 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꼭 권하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 일단은 아벨 페라라 영화. 언제 다시 상영될까 싶은데요.(웃음) [순응자]도 그렇고요. 저도 극장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작품을 좋아하는 그런 거를 떠나서...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는 느낌이 어떨까 싶어요.


백: 전 개인적으로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을 비디오로 보고 너무너무 좋아서(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봉제공장을 둘러싼 남루한 배경들도 그렇고. 나중에 김홍준 감독의 [장밋빛 인생]에도 나오지만...이전에 최명길이란 배우가 도시감성의 영화를 찍을 때, 그러니까 [안개기둥] 유의 영화를 찍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오히려 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잖아요. 언제 스크린으로 보게 될까. 이런 기대를 했었어요. 어쨌든 저는 이번에 [순응자]와 [우묵배미의 사랑] [글로리아] 는 꼭 볼 생각이에요.

차: 카사베츠 영화를 여배우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 같은데요. 문소리씨도 이전에 [오프닝 나이트]를 선택했었고.. 카사베츠 회고전은 한 적이 있나요?


김: 예전에 독립영화제에서 카사베츠 회고전을 했었죠. 저희도 간헐적으로 한 두 편씩 튼 적은 있는데요. [오프닝 나이트] 나 [영향 아래의 여자] 나. 2008년에 특별전 계획을 잡고는 있어요. [러브 스트림즈](사랑의 행로) 라든가, 안틀어졌던 초기작들 위주로요. 근데 카사베츠도 좀 상영이 복잡해서(웃음) 여배우들이 카사베츠 영화를 고르는 건 아무래도 캐릭터 문제 때문이겠죠. 나이 들어서도 강렬한 매력을 지닌 여자 캐릭터들. 유럽영화나 일부가 있을 뿐이지 쉽게 찾아볼 수 없잖아요. 작년에는 엄지원씨. 재작년에 문소리씨, 이번에 김혜수씨. 공통적으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3,40대를 넘어서 한국에서 배우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근심, 어려움 같은 거.


백: 이번에 웹 데일리를 발행하게 되는데, 웹 데일리는 처음이죠?

김: 페이퍼 데일리는 했었죠. 1회 때 했었는데, 그때는 정말 힘들게 했었죠. 상영 끝나고 나면 새벽까지 하고 그랬는데,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친구들이었고, 빠르게 진행을 시켰는데,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어요. 다시 해볼까 하다가, 페이퍼는 좀 버거운 거 같아서요. 웹으로 하기로 했죠. 20대 초반정도의 학생들이 참여해서 매일 하는 식으로요. 그런 웹 데일리에 참여할 수 있는 블로거들을 모집을 해볼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백: 이제 2008년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얘기를 해보죠. 지난 기자회견 때 “다양성 복합 상영관” 이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생소하다면 생소할 수도 있는 용어인데요. 아까는 2008년에는 문화연대 가 중요하다. 이런 언급도 해 주셨고요.

김: 그 전의 시네마테크에서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좀 안정적인 공간을 만들자. 의 문제의식은 계속 안고 가면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만이 아니라 영화를 좀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관객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자. 그런 생각을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말인데요. 좀 복합적 용도로서의 상영관을 가져가자. 영화가 놓여 있는 장소와 공간이 중요하잖아요. 예전에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않고 영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잖아요. 지금은 도대체 어디서 이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어요.(일동웃음) 보기는 많이 본 것 같은데 다운받아 봤나, DVD로 봤나, 외국에 나가서 봤나. 영화는 공동적 경험이 중요한건데.... 물론 공동의 체험 뒤에 개인적 감상의 차원이란 게 있는 거긴 하지만요. 실제로 서구에서는 “영화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과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도 함께해왔거든요.

관건은 문화관광부나. 서울시 같은 곳의 행정적 지원이죠. 특히 서울시의 지원이 필요한데요. 저희가 친구들 영화제 1회 때나 2회 때도 제안한 적이 있거든요. 비록 적극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전용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면담을 신청한 적도 있는데. 잘 안됐죠. 말로는 문화도시 만든다고는 하는데,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부지선정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서울시 쪽에서 나서준다면 훨씬 더 빨리 진행될 텐데 말이죠. 부산 만해도 부산시, 부산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하거든요. 외국의 경우 어느 대도시를 가게 되면 시네마테크 같은 공간이나 과거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이런 것을 통해 영화가 상업뿐만 아니라 문화용도로 보여 진다는 거죠. 파리는 인구가 260만인가 하는데 거기에 시네마테크가 4개 있거든요. 서울은 1000만이 넘는 도시인데 문화적용도로서의 영화관심은 대도시 중 최하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 행정 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엔터테인먼트로만 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라는 게 너무 과잉이고 과포화상태이다 보니 시네마테크라는 것을 떠나서 그냥 ‘영화’라고 보았을 때, “이게 극장에 널려있는데, 텔레비전에서도 해주고, 인터넷으로도 해주고, 다운도 받아 볼 수 있는 마당에 굳이 전용관을 왜 만들려고 하느냐” 이런 식의 사고가 있지 않나 싶거든요. 공무원들이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예술이라는, 어떤 문화적인 보존가치 자체를 행정가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누가 그런 인식을 시켜줘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겠지요. 관공서란 게 서류나 문서를 통해 일이 처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뒤에서 누군가가 도와주는 그런 ‘그림자 군단’의 역할도 중요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시네마테크나 영화진흥위원회에서만 움직여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가 그들의 기조인지는 몰라도(웃음) 시네마테크에서는 과거의 영화를 트니까 과거와 역사와 시간의 문제가 개입이 되고, 그쪽 입장에서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또 다른 하나는 영화의 창조성이라는 얘기일 텐데요.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만 보고 크리에티브한 영화감독이나 영화제작자나 평론가들이나 애호가들이 만들어진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잖아요. 요새 나오는 음악만 듣고 좋은 음악가가 나오고, 요새 나오는 그림만 보고 좋은 화가가 탄생하고, 그런거 아니잖아요. 크리에티브한 발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게, 그게 힘이잖아요. 그런 무형적인 것의 관심에서부터 좋은 창작자들이 만들어지는 건데 말이죠. 다시 말해 과거의 것을 손쉽게 접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그런 게 있어야 가능한건데, 그게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이런 조건에서 유능한 창작자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가운데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나온 건데 (웃음) 그런 작품을 끊임없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그들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텐데요. 문화적으로 볼 때, 장기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여기에 상당히 많이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거든요. 아트시네마도 보면 나이든 관객들도 많이 있는데, 미국영화나, 예전 한국영화를 상영할 때 종종 오시죠.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는 극장에서의 공동의 기억이라는 부분이죠. 저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수십 년이 지나 과거에 자신이 봤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지금의 젊은 세대랑 같이 할 수 있는 ‘끈’ 같은 거 말이죠. 아버지와 우리 세대를 연결해주는 공동적 체험이 극장에서 이뤄지잖아요. 음악 같은 것은 화해가 잘 안되는데, 영화는 그 연결, 공동기억, 공동 체험이, 은근히 그 끈이 연결될 수 있어요.

아트시네마에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죠. 과거의 고전영화를 보다보면 나보다 더 앞선 세대에 대한 묘한 존경심들이 생겨요. 다른 영역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드는데...사회. 정치 이런 걸 보면 불만. 반항만이 생기잖아요. 영화뿐 아니라 예술, 문화 영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민을 하고 질문하고 그러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영화를 통해서만 유일하게 전 세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요. 예를 들어 이두용 감독님을 만나 뵀을 때도 그랬고... 거의 유일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웃음) 안정적인 상영공간이 확보된다면, 과거 현재 미래가 묘하게 공존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백: 얘기하신대로, 다양성 복합 상영관이 생긴다면 그 안에 어떤 시설이 구축되는 거죠?

김: 필름 상영 공간, 필름 보관소, 교육적 공간인 세미나 실, 자료실 등이 생기겠죠. 자료실이라는 것은 영상자료, 도서자료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되겠고요. 영화를 보고 자료실에 가서 그에 관련한 자료를 보고, 한 편의 영화를 그렇게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별전이나 회고전을 할 때, 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 역사적인 맥락에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 입장에서는 다층적으로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는 라이브러리 같은 공간이 보완의 형식으로 말이죠. 다시 말해 다양하게 영화를 접근해나갔으면 하는.... 영화라는 게 문맥이 있잖아요. 그 영화들이 처해있었던 문맥들. 영화 상영뿐 아니라 자료, 전시, 교육 활성. 그래서 공간이 다양화될 필요성이 있는 거 같아요. 공간이 다양하게 되면, 영화를 보는 것 뿐 아니라 이야기, 디스커션, 이런 것이 하나의 상영 안에 포함되는 그런 하나의 다층적인 체험의 경로가 만들어지겠죠.


백: 좋은 평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라는 말씀을 좀 전에 하셨는데요. 이전 세대들, 그러니까 문화학교 서울이나 외국문화원을 다녔던 70, 80년대 세대들이 지금 영화계에서 감독, 평론가, 제작자가 되었지요. 반면 요즘은 시네마테크에서 봤던 영화들에 대한 충분한 담론이 없는 거 같아서 아쉬웠는데, 그런 점에서 계획 중인 다양성 복합 상영관이 담론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하네요. 블로그에다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좀 다른 얘기인데, 아트시네마에 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는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전체 숫자는 크게 변동이 없는 거 같은데요. 실제로 관객들의 인원 변동은 있나요?


김: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는데요. 예년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백: 이름 있는 사람의 회고전에는 많이 모이고, 이름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의 상영회 때는 좀 한산하고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프로그래머로서 계속 히치콕만 틀 수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라인업을 결정할 때 제일 중점을 두는 점이 있다면요?

김: 멜빌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 영화를 틀었을 때는 [암흑가의 세 사람]이나 [사무라이]나 [형사] 같은 좀 잘 알려진 영화 위주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다시 할 때는 [그림자 군단] 같은 영화에, 이번에는 [레옹 모래 신부]를 재밌게 본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가능한 알려진 작품을 보게 되고,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덜 중요한 영화들을 좋게 평가하기도 하고. 올해 개봉한 영화들을 보고 베스트를 꼽을 때, 5년 뒤라고 그 리스트가 똑같은 건 아니잖아요.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재상영이 되고, 또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는 건데.
지금은 그런 기회들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많이 알려진 작품에 다수가 몰리는 게 현실적이지만, 다른 영화에서 새로운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건 상영의 문제라기보다 리뷰어들의 문제인 거 같아요. 또 다른 뭔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느냐. 가치평가, 재평가. 이런 게 좀 솔직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외국 평자들의 글에서 좀 솔직한 글들을 읽는 경우가 많은데요. 예전에는 좀 엉망이라 느꼈던 영화를 지금 보니 완전히 잘못 보았더라. 이런 식의 솔직한 고백이죠. 그래서 새로운 평가를 하기도 하고. 물론 처음 영화 볼 때 직관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거죠. 이번에 멜빌 영화를 상영할 때도 예전보다 관객이 크게 많은 것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관객들이 참여도나 반응하는 게 전보다 좀 강렬한 게 있었어요.

라인업과 관련된 것은 고전적인 것과 관련된 것을 찾는 거죠. 영화가 얼마나 뛰어나냐. 보다 영화의 즐거움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고요. 영화가 주는 매혹, 즐거움에 움직여가면서 이런 것도 있는데 저런 것도 있구나. 관심의 영역을 넓혀가는 거잖아요. 오히려 예술의 영역은 크게 변하지 않아요. 일단 한번 평가 내려지면 쉽게 바뀌지 않죠. 오히려 개인적인 매혹의 정도 여부가 재평가의 영역에서 많이 넓어지죠. 어떤 영화가 자신을 매혹시키고 즐거움을 주게 되었는가. 하는 것 말이죠. 그래서 분석, 비평의 방법도 바뀌어 나가고...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누벨바그처럼 너무 잘 알려진 영화들 보다는 조금 덜 소개된 자크 따띠나 멜빌 같은 작가, 혹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나, 멕시코. 브라질 영화들. 6,70년대의 새로운 경향들, 혹은 새로운 영화의 창조성들에서 느낄 수 있는 기운을 찾아나가려 하면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어요.


차: 외국 시네마테크의 라인업이 좀 궁금한데요. 프랑스 같은 곳은 자국영화도 많이 틀 거 같은데요.

김: 프랑스 같은 곳은 두 달 이상, 거의 전작전을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여유가 있죠. 우리의 경우는 파졸리니, 파스빈더가 좀 길었고... 전작까지 가기는 좀 어렵죠. 불가피하게 셀렉션을 하게 되죠. 자국영화 같은 경우는... 옛날 한국영화 중에 저작권이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서요. [최후의 증인] 역시 저작권이 불투명해서, 그동안 상영을 못했고요. 이번에 저작권 공탁을 세달 동안 해서. 그러니까 저작권자를 찾는다는 공고를 내서, 상당히 어렵게 상영을 하게 되었어요. 영상자료원에서 관내상영은 자유롭게 되는데, 바깥에서 상영이 문제죠. 또 일부의 한국의 저작권자들이 상영에 동의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아요. 이유는 정확히 얘기를 안 해주고요(웃음) 이만희나 임권택 감독 영화 도 그런 이유로 상영하기 힘든 조건이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문화적 연대가 필요한 이유도 이런 것과 무관치 않거든요. 수입이 목적이 아니라, 문화적인 목적으로,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과거의 한국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의 역사와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시네마테크의 영화 상영은, 문화적인 영역인데, 제작사나 이런데서 그런 부분을 이해해준다면 다양한 한국영화를 틀 수 있겠죠.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잘 이해가 안가요.


백: 2008년부터 매년 다섯 편씩 필름을 계속 구입해서 라이브러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 있고, 이미 2007년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 4편을 사서, 내년 여름부터 상영하려한다는 말도 들었고요. 최종적으로는 100편 정도를 갖추겠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형태로, 어떤 감독들 위주로, 그리고 왜 하필 첫 번째로 레오네를 선택했는지, 등등 라이브러리에 대한 것을 듣고 싶어요.

김: 일단 세르지오 레오네는 6,70년대 가장 많이 알려진 감독 중 하나이기도 하고... 나중에나 DVD나 비디오로 일부만 소개되었잖아요. 장르영화의 테두리에서 작가적 측면에서 폄하되었던 감독이나 작품이 꽤 많죠. 종종 오해하는 게 사람들이 시네마테크가 예술영화관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진 않죠. 과거의 고전영화는 대중영화였잖아요. 오히려 그 때문에 예술성을 폄하 받았던 작품이 많았는데, 그런 영화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의미가 크지요. 예술영화 컬렉션을 가지고 가보자.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그런 것들이 결합되어서 세르지오 레오네를 첫 번째 작가로 선정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원스 어폰 타임 웨스트]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오리지널로 제대로 튼 적이 없잖아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영화는 개봉 때 마구 잘라 2시간 이하 버전으로 개봉되기도 하고(웃음) 그런 특성들이 있기도 하죠. 2008년에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서 컬렉션들을 계획하고 있어요. 지역 상영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작가위주로 작가 당 4~6편정도로 구성하게 될 것 같아요.


백: 좀 전에 예술영화, 고전영화 해서 생각이 나는 건데.. 얼마 전에 사람들이랑 얘기를 하다가 아트시네마에서 홍콩느와르, 주윤발, 오우삼 얘기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이제는 70년대를 고전이라 부르고 있는데, 점점 고전의 개념이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지금의 한국영화가 과연 후에 고전의 클래시컬함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음악 같은 경우는 클래식이라 하면 문외한이든 전문가든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나 그 이후에는 바그너, 쇼스타코비치 정도까지는 클래식이라 하는데, 그 이후의 작곡가들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단 말이에요. 그렇게 보자면 영화에서 고전영화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 제 경우는 70년대부터는 고전영화라는 느낌이 잘 안 생겨요. 어떤 느낌으로 고전영화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김: 7,80년대 영화들을 편의적으로 모던클래식....그렇게 불러도 될 것 같아요. 불과 10년 전의 영화만 해도 옛날 영화 취급하는 경향이 있긴 해요. 고전이란 게 정확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운데요. 이미 극장에서 상영주기를 끝낸 영화가 너무 많은데, 다시 상영되는 경우가 거의 없잖아요. 사실은 모던 클래식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때의 영화들은 오히려 더 빨리 잊혀지고 상영이 잘 안 되다는 거죠. 오히려 그 이전의 5,60년대 작품들은 여러 군데에서 잘 상영이 되는데. 이시기의 작품들은 상영기회조차도 없는, 근데 또 그게 굉장히 가까운 시기의 작품이거든요.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미 클래식의 상태에 빠져있다고 생각해요 .


백: 친구들 영화제가 얼마 안 남아서, 바쁘실 텐데요. 이런 영화를 보는 게 영화애호가들에게 어떤 의미, 필요성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거 같고요 (웃음) 일단 보고나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상영하는 입장이지만, 일차적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상영이 되는 건데요. 아까 예전 영화 얘기를 하면 말씀드렸지만, 영화를 보게 되면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과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기억이 굉장히 많은데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왜 내가 이렇게 영화를 보나. 그런 질문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잖아요. 어떨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도 있고, 그 아무것도 아닌 거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하고 말이죠. 영화를 굉장히 의식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또, 자신의 개인적인 주관에 따라 영화를 재단해 나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거 같아요.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나는 굉장히 수동적인 입장이 되잖아요. 영화가 프로젝션되면서 무엇을 얻게 되는 순간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친구들 영화제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 놓을 테니, 그 안에서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가 발생하는 순간, 그런 거를 즐겨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죠.

2008년의 시네마테크에 대해 말하자면, 계속 얘기하지만 문화적 연대 같은 것을 생각하자는 거죠. 각자의 영역 내에서 해야 할 것들. 그게 필요한 거 같아요. 개인의 블로그에서 시작해서 굉장히 큰 영역까지... 공동적 영역에서 함께 고민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서울아트시네마는 저희들끼리는 B급 시네마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이 처한 경제적, 물리적 조건을 감안에서 최선을 진행해 나가는 거죠. 그런 조건 내에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거. 예를 들어 영화를 만드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꺼 같아요. 왜 국제 영화제를 하는지, 왜 잡지를 하는지, 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지. 각자의 조건, 역할에서 전체적으로 고민을 해야 할 거 같아요.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A 급들을 보며 저들은 뭘 하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 혹은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죠. 거꾸로 다른 곳은 시네마테크는 무엇을 하는지 염두에 두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단지 만나서 “연대하자.”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올해 에드워드 양이 타계하고 나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에드워드 양 특별전을 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의 추모라면 영화제에서만 틀었다고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안하거든요. 좀 더 많은 사람이 에드워드 양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면 영화가 더 많이 상영되어야 하는데요.

A 급은 A급대로, B급은 B급대로 각자의 영역에서 힘을 써야 한다는 거죠. 아까 얘기했던 각자의 조건에서 발걸음 할 때, 전체 관객이 늘어가고, 영화를 사고하고 좀 넓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5년 정도 아트시네마 일을 해왔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외국의 어느 좋은 예를 들자면, 어디서 회고전, 특별전 하면, TV, DVD, 잡지. 다 하나가 되거든요. 각자의 영역에서 말이죠. 그래서 그게 이슈가 되고,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그렇게 극장을 찾게 되는, 구조가 생기거든요. 탁자에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게릴라적인 위치에서 힘을 다했을 때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물론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서도 성의 있는 답변을 해주었지만, 무엇보다도 2008년의 시네마테크, 혹은 영화를 둘러싼 문화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연대’ ‘우호’ 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제는 “영화 애호보다 영화 우호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는 서울시나 행정당국의 문화의식 수준에, 일부 제작사의 이기적인 태도에 유감을 표명했다. 관객 입장에서 애호가 가능하려면 먼저 우호가 있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있어야 영화를 애호할 수 있다는 너무도 상식적인 깨달음. 인터뷰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아트시네마는 2008년에 여러 계획이 있는 반면 전용관 문제 등 아직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상처로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가슴이 아픈 것처럼, 빠른 시일 안에 이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후원회원 등 여러 가지로 시네마테크의 사랑에 보답할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능력으로는 그곳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유일한 반응의 길이다. 3회 친구들 영화제는 1월 8일부터 2월 3일까지 낙원상가에 자리 잡은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move, 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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