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추격자] 살기위해, 내리쳐라

필진 리뷰 2008.02.22 14:42 Posted by woodyh98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고 싶으면 상대를 내리꽂아야 한다. 태생적으로 수직상승하기 글러먹은 놈이 하나 있고, 후천적으로 땅으로 떨어진 녀석이 하나있다. 중호(김윤석)는 전직 형사였지만 지금은 보도방 사장이다. 경찰로 국가의 녹을 받아먹을 당시, 중호는 검은 돈을 챙기면서 자기 배를 채웠고, 그 결과 경찰직에서 쫓겨났다. 중호는 후천적으로 땅에 떨어진 녀석이다. 더 이상 갈 곳도 없고, 하루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여자들을 등쳐먹으며 밤에 쾌락을 찾는 남정네들의 지갑을 열어야만 한다. 태생적으로 땅에 떨어진 남자는 연쇄 살인범 영민(하정우)이다. 그는 발기가 되지 않아 성적 쾌감을 느껴보지 못한 남자다. 성기가 일어설 수 없듯이, 그의 원초적 쾌감은 수직상승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악의를 품고 여자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망치로 정을 내려쳐서 여자를 살해할 때 쾌감을 느끼는 영민. 얼추, 두 사람은 비슷하게 생겨먹었다. 골목을 기어다니며 돈을 긁어모으는 중호나, 여자들을 정으로 내리치며 성적 쾌감을 얻는 영민이나 하류인생이긴 마찬가지. 두 녀석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상대를 흘겨보며 붙었을 때는 유도나 레슬링이 연상된다. 애초에 둘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제로에 가깝기에 <추격자>를 보면서 상대를 견제하면서 잽을 날리는 아웃복싱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중호와 영민은 상대의 호흡을 느껴가며 적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갈고 있다. 땀이 쏟아지며, 그 사이사이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레슬링에서 심판의 지시로 빠떼루 자세를 취한 것과 모양새가 비슷하다.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땅에 밀착해야 하며, 승점을 따기 위해서는 적을 뒤집어 매트에 내리 꽂아야 한다. <추격자>는 인간이 극복하지 못한 중력의 법칙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중력의 법칙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지구가 인간을 끌어당긴다면 인간은 하늘로 수직상승 할 수 없다. 영민의 발기부전, 중호의 타락한 모습. 여기에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들 역시 추락하는 이미지 일색이다. 한 시민은 정치인의 얼굴에 배설물을 던져 경찰서를 발칵 뒤집어 놓는다. 위신이 떨어진 정치인의 모양새. 경찰들은 배설물 투기 사건으로 향할 여론의 시선을 살인 사건으로 돌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권력 앞에 쪼그라든 경찰들의 정치적 행태는 추락한 관료사회의 모습이다. <추격자> 안에는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이 만들어 놓은 풍경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현실 정치의 권력 구조가 있으며, 권력 앞에서 꼬리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몇 가지 풍경을 먼 배경으로 하여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과 수평을 유지하며 중호와 연민의 숨 가쁜 질주를 따라가기에 바쁘다. 달리다가 지친 영민과 중호의 육체를 대변하듯, 카메라의 포커스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즉 굳이 이 영화의 리얼리즘을 인물과 사건으로 논하기 이전에 카메라는 현장성을 보여준다.

2시간짜리 영화는 대략 24시간의 도망과 추격을 밀도 높게 보여준다. 미로처럼 엮인 골목길을 야심한 밤에 질주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한국 영화에서 (필자 스스로 칭하길) ‘골목길 느와르(혹은 스릴러)’로 정면 승부하지 못했던 한국영화에 숨통을 틔어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추격이 벌어지는 골목길과 반 지하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언덕진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맥거핀처럼 등장하는 교회의 십자가 역시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롱샷으로 찍힌 마을의 모습은 서울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득히 멀고도 높다. 교회의 십자가는 어두운 밤 외롭게 그리고 밝게 빛난다. 마지막으로 살인에 쓰이는 망치와 골프채는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영민의 손에서 수직상승한 망치는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영민의 손에 살해당한 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추격자>안에서 살아가는 자나 죽은 자 모두 땅으로 내려가 있으며,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하늘에 떠 있다.

중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그에게도 인간의 악한 본성이 있다. 하지만 중호는 남의 간을 빼먹으며 지갑을 채울지언정, 남의 피와 살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못한다. 감기로 앓고 있는 미진에게 매정하게 전화를 걸어 여름에도 감기가 걸리냐며 핀잔을 주는 그는 인간미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이다. 영화 속 미진과 미진의 딸의 입을 빌리면 쓰레기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다. 공직의 힘을 빌려 깡패들에게 기생했던 사람이며, 지금은 변태들을 이용하고, 몸 밖에 가진 게 없는 여자들을 매매하며 살아간다. 중호가 하류인생으로 살아오면서 배운 건,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법이다. 중호에게 미진은 재산의 일부였으며, 영민은 중호의 재산을 앗아간 (중호에겐) 더 극악한 녀석이다. 중호가 영민을 찾아다니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영민은 보도방 아가씨들을 불러서 살인을 저질렀으며, 이를 계기로 중호와 영민의 동선이 만나게 되고 충돌하게 된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중호의 차와 영민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도, 어찌보면 단순한 우연일 뿐이지만 사건으로 보자면 영화의 전개과정이다. 이 장면은 중호의 사유재산이 훼손되는 의미에서 사건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계기가 되어준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영민이 범죄자임을 알게 된 중호. 이제 중호와 영민은 지리멸렬한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영민의 범죄는 성적 트라우마와 연관되어 있으며, 영민은 자기폐쇄적인 정신분열증 환자의 모습이다.

<추격자>는 중호와 영민을 통해서 선-악을 이분법하지 않는다. 중호에게도 악한 모습이 존재한다. 다만, 중호와 영민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지켜야할 재산과 대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사유재산을 잃은 중호의 분노는 영화 후반부가 되면 사라지게 된다. 영민은 자신이 미진을 살해했다고 경찰서에서 밝히지만, 중호는 영민이 여자들을 팔아먹은 인간이지 살인을 저지를 위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찰에 넘겨진 영민을 뒤로하고, 중호는 자신의 재산인 미진을 찾으러 다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호는 미진의 숨겨놓은 딸을 만나게 된다. 미진의 딸은 중호의 인간미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사건에 집착하는 중호를 향해 한 경찰 동료는 “언제 인간될래?”라고 말을 한다. 중호가 사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미진을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중호의 뇌리 속에서 미진의 딸이 스쳐지나가고, 딸아이의 모습위로 살아서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미진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김윤석이 연기한 중호라는 캐릭터는 후반부로 갈수록 지쳐간다. 세탁기에서 탈수해낸 인간마냥 그의 몸은 수분이 모두 빠진 것 마냥 맥없이 늘어진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중호가 자신의 목을 누르는 영민의 손아귀를 뿌리칠 수 있었던 불가사의한 힘은, 가시화되지 않은 그의 선한 본성 때문이다. 김윤석은 이빨을 깨물며 자신의 육체를 땅 바닥에 수차례 내리꽂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이에 그의 육신은 흔들리고 뒤섞이면서 일종의 중화과정을 거친다. 거짓으로 살아온 인생. 거짓과 위선적인 삶을 통해 가시적으로 악해 보였던 중호의 내면과 외면이 마지막 남은 연민과 동정이라는 감정과 만났을 때,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분노가 폭발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어금니 깨무는 소리가 들리는 중호의 처절한 모습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다.



사건은 골목에서 벌어졌고, 도심에서 외진 곳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종로의 고층건물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병실의 잠든 미진의 딸의 손에 중호의 손이 포개어질 때 카메라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메트로폴리스는 많은 것을 감추고 은폐한다. 결국, 이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은 매스미디어에서 감추고 싶을 혹은 정치권력이 개입하고 싶지 않은 또는 소시민조차도 보고 싶지 않은 일이었음을 말해준다.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더라도 감추고 싶은 삶의 모습과 잔혹함. 도시는 늘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뽐낸다. 병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 고층 빌딩아래의 모습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는 아래쪽을 보지 못한다. 결국 많은 일들이 은폐되어왔고, 암묵적으로 은폐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서울의 도심 속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땅과 가장 가깝게 찍은 영화이다. 기쁜 마음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추격자>가 아니라면 보지 못할 도시의 공기와 도시의 이야기가 끈질기게 살아있다. 감추려고 해도, 숨으려고 해도 살아있는 이야기를 감출 수는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최병준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훈님 글 정말 정말 잘 쓰십니다.
    땅을 향해 있다는 영화분석도 날카롭고요.
    영화 내공 정말 대단대단....

    인천에서 준이 드림.

    2008.02.23 01:36
  2. Grace  수정/삭제  댓글쓰기

    색다르고 명쾌한 해설..
    웬만하면 읽지 않는 영화 리뷰인데 잘 읽고 갑니다^^

    2008.02.23 03:18

[추격자]와 단편영화의 힘

필진 칼럼 2008.02.18 17:14 Posted by woodyh98


오랜 만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나홍진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보았다. “물건이 등장했다”는 기자시사회에서 흘러나온 입소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영화는 관객의 바람을 온몸에 안고 쫓는 자와 이러한 기대감을 하나씩 깨뜨리며 쫓기는 자 사이의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미진이 사투하는 모습과 엄중호 곁에 붙여놓은 그녀의 딸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소외되기 쉬운 인물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데뷔작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전례가 그리 많던가.

돌아보면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최동훈의 [범죄의 재구성] 정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데뷔했지만, 관객까지 사로잡은 작품은 [범죄의 재구성]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하드고어에 가까운 스릴러 [추격자]가 보여주는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관람등급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관람 후 만족도 또한 최고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성급한 언론은 “한국영화의 희망” 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전형적인 뒷북이다. 알려진 대로 나홍진 감독은 단편영화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단편영화를 찍는 가능성 높은 신인일 뿐이었다. [완벽한 도미요리]와 [한]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의 결과는 그의 말대로 “후회 없이 쏟아 부운” [추격자]로 나타났다. 가히 단편영화의 힘이 상업 장편영화에서 고스란히 발휘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의 등장은 딜레마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단편영화를 찍음으로써 영화감독에의 꿈을 시작한다.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길어야 30분 미만인 시간 동안 감독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압축과 터뜨림을 두루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비랄 것도 없는 소자본으로 한편에 영화를 찍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로지 필모그래피가 쌓일 뿐이니,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와 재능에 대한 상호부조성 칭찬만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에 대한 유일한 보상일 따름이다. 비록 어설프고 허술한 촬영현장이지만 미래의 대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찍은 영화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보물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삼력 감독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자신의 후배가 “영화 좆도 못 만들면서 영화제 돌리지나 말지 쪽팔리게...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들자,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재능 없이 열정만 품고 살아온 영화지망생의 서글픈 탄식이지만 그나마 영화제라도 초청 받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김삼력 감독만 해도 10년 세월을 단편영화를 통해 내공을 닦으며 때를 기다린 끝에 비로소 상업 장편 [아스라이]를 찍을 수 있었다. 눈을 돌려 보면 주위에 이런 젊은이들이 꽤 많이 있다. 영화제마다 응모해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초청되지 않는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들에게 (단편)영화는 삶의 의미이자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단편영화에서 나름의 지명도와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들의 대다수가 상업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편영화와 절연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제 앞가림에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더러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유명세를 탄 이들에 한정된다. 상업 장편으로 데뷔한 감독이 단편영화 찍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쉬운 대목이다. 차기작을 기다리는 동안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단편영화를 통해 초심을 다잡고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학생시절 인상 깊은 단편 [지리멸렬][백색인]과 [2001 이매진]을 연출했던 봉준호와 장준환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단편영화를 찍어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년 묵은 쑥을 찾는 사내가 있었다.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서는 반드시 3년 된 쑥이라야 했다. 대체 누가 쑥을 3년씩이나 묵힌다는 말인가. 세상천지 어디에도 3년 된 쑥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흘렀고 모친은 임종했다. 이 어리석은 남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3년 전에 쑥을 심었더라면 그는 모친을 살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3년 묵은 쑥을 찾을 생각만 했지 쑥을 심어 3년을 기다릴 생각은 안 했던 것이다.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가 어렵다는 소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당장 살아남아야하니 자본의 선 순환구조를 위해 자금회수가 빠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참신한 창작물보다 검증된 원본 있는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할 테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대작에 한 눈 팔고 흥행의 단맛에 취해있는 동안, 매체들이 스타에 넋이 빠져 여배우의 쇄골 따위를 친절하게 전달하는 동안, 현장비평가들이 구색 맞추기로 독립영화를 언급하는 동안에도 단편영화 감독들은 (너무나 익숙한)경제적 어려움을 당연시 여기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나홍진은 이렇듯 척박한 토양이 배출해낸 단편영화의 힘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독립영화제를 찾고 졸업영화제에 관심 갖는 것은 될성부른 나무를 찾기 위해서일 터이다. 이왕이면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찾아낸 신인 중에 제 2, 제 3의 나홍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미래는 단편영화에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blog.divershigh.com BlogIcon SUPERCOOL.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문화든 기초가 탄탄해야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로 상업영화가 추구할수 없는 새로운 시도등으로 점점 문화는 탄탄해지고 다양해지며 강해질수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2008.02.18 17:29 신고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이었다. 배우는 검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고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도 난 마치 그 현장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렇게 만들었던 살인자와 추격자의 피말리는 전투를 그린 <추격자>. 사실 이 영화는 시사회 전까지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연기 잘한다는 배우가 있지만 주연은 사실상 처음에 가깝고, 두편의 단편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감독 '나홍진' 또한 장편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과연 신인감독의 작품이란 말인가? <추격자>는 신인이 만든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대단한' 스릴러의 표피를 가지고 있다. 마치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도 맞먹을. 더불어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는 어떠한가? <타짜>와 <용서받지 못한 자>등을 통해 주목할만한 입지를 다지긴 했지만 확실한 임팩트가 없었던 그들에게 이 작품은 최상의 선물처럼 보인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살인자와 추격자

무엇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캐스팅' 그 자체이다. 첫번째 이유는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배우들이 너무나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처음으로 '캐스팅' 얘기를 꺼낸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살인'에 관한 광적인 집착과 잔인한 장면 묘사가 충격을 주긴 하지만 그보다 공포스러웠던 것은 두 배우의 '목소리'였다. 기본적으로 김윤석과 하정우는 저음의 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더욱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공포속으로 몰아가게끔 만든다. 그리고 울먹일 듯하지만 담담하게 보여지는 외로움의 감정들이 목소리에 묻어난다.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가족없이 혼자인 '엄중호'(김윤석), 태어났을때부터 혼자였던것처럼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게 굳게 자신의 자물쇠를 가지고 있는 '지영민'(하정우).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장면은 대부분 목소리톤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한사람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겐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살인자'와 그를 '쫓는자'가 실은 사회 정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이다.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을 쫓을 수 밖에 없는. 나는 왜 너의 목소리로 너를 부르는가?

전형성을 극복한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

윤석이 미진의 딸이 있는 입원실에서 묵묵히 앉아있고 창문위로 보이는 먼 산을 보여주는 엔딩 신은 헐리웃 무비의 마지막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철학적으로 보면 중호가 왜 죽을 힘을 다해서 영민을 쫓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며 미진의 딸을 통해서 자신의 흔적을 돌이켜보고 왜 사람의 목숨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어쩌면 그로 인해 자신의 변화를 후에 체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솔직히 그런 전형적인 장면이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극복하고도 남는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이다. 주변인물이 사라지고 중심인물들이 그로 인해 맞부딧히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일부러 그 속에 곁가지 사건들을 심어 놓지 않고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획득하게끔 만든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자주 관객을 시험하는데, 도대체 중호가 찾고 있는 것이 '미진'인지 '영민'인지 아니면 그도 아닌 '돈'인지에 대해 혼돈스럽게 만들며, 영민의 살해 의도가 '성불구'에 관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악마적 속성 때문인지에 대해서 갈등하게 만든다. 감독은 영민의 살해의도에 대해서 일부러 여지를 심어두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무수히 많은 관객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매춘부'를 상대하면서 느꼈을 '성불구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비참함. 그것은 심문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조카'의 머리를 정을 가지고 상처를 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이며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부부를 그렇게도 쉽게 살해하는 것은 또 무슨 의도인가? 이렇게 <추격자>는 알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이 통 답답하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스릴러라는 장르랑 잘 맞아 떨어지는 장치로 느껴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

영민은 가시면류관의 흔적을 그가 죽이는 사람들에게 남긴다. 도구는 정이고 그 방법은 끔찍하다. 또한 교회 앞에 놓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조각한 석재 조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조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죽음을 당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땅에 묻히거나 어항속에 얼굴을 헌납한다. 예수를 처단한 것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면 지영민은 그런 존재인가? 사회에서 반드시 처벌 당해 마땅할. 어떠한 변명도 동정도 필요없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확실히 찾아서 예수처럼 처단해야한다. 지영민도 그래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존재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살인 사건은 경찰이나 형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또한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은 그래서 분하고 억울한 영화였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런 감정을 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처럼 우리에겐 그런 존재들이 실제 삶에서 적지 않다. 그래서 더 어지럽고 두려움에 떨어야할 우리의 모습을 <추격자>는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7.09.13


결코 달콤하지 않았던 [달콤한 인생]과 우아할 수 없었던 [우아한 세계], 그 반어적 화법으로 꼬여버린 인생을 우린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에둘러 가지 않는다. [즐거운 인생]은 정말로 ‘즐거운 인생’그 자체를 그리는데 공을 들인다.“사는게 어떻게 즐거울 수 있니.”“이 빌어먹을 현실을 보라구.”“ 에잇, 더러운 세상.” 물론 ‘인생’ 혹은 ‘세계’, 이 참을 수 없이 진중한 단어에 부과된 가치관은 제각각 자유다. 그러니까 [즐거운 인생]이 즐거운 인생을 그리려는 시도를 애시 당초 받아줄 용의가 없으신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이 영화를 볼 필요도 없다.

영화는 2시간짜리 판타지 놀이다. 앤딩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 밖을 나설 때 얄밉게 전해오던 그 이질감으로 영화 속 세계를 애타게 그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즐거운 인생]은 이러한 극장에서 영화보기 체험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킬링타임용 영화라는 게 아니다. 뭐랄까. 현재진행형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꿈과 행복 등 ‘즐거운 인생’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영화 속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끝낸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식의 사려깊은 배려는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 속 밴드 ‘활화산’이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이 영화가 갖는 힘은 신기루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이 영화를 지탱하는 두 가지 요소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영화 속 남자들의 환상.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바로 그때,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그들의 외침. 그리고 “나이들면 마누라보다 친구야” 라는 남성 연대의 끈끈함.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활화산’만큼 촌스러운 작명센스를 보이며 ‘충고브라더스’ 라는 밴드가 등장한다. 그들 역시 중년이 되어 다시 모이는데 그 중 단 한명만이 지방 밤무대를 전전하며 음악을 한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그에게 “넌 행복하니?” 라는 질문을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상황, 그러나 같은 결론.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는 밴드를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수 없지만 [즐거운 인생]의 인물들은 밴드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를 붙잡는다. 두 영화가 놓인 지점이 다름을 알려주는 상황들.

둘째,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근석이 연기한 현준이다. 현준이 없다면 이 영화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불안한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 것도 바로 현준의 존재 때문이다. 중년 상대의 나이트 클럽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던 밴드 ‘활화산’은 오로지 현준 덕분에 홍대 클럽으로 레벨 업! 한다. (‘현준빠’ 들이 이미 죽치고 있을 정도로 그의 외모, 연주.보컬 실력은 진작부터 홍대 클럽에서도 통한다) 현준과 죽은 아버지 사이에 어느 정도의 교감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하지만 현준이 ‘활화산’이라는 곳에서 보컬로 활동하는 이유는 아비에 대한 일종의 ‘제의’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의 활화산 멤버들도 친구 잃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친구 영정사진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기영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친구의 시선처럼 부감으로 찍혔다. 그 시선 앞에서 기영은 절대적으로 무기력하다. 불타던 기타는 그런 그에게 결정적인 구실로 다가오면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니까 현준과 활화산 멤버 사이의 암묵적인 제례의식.

덧붙여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덧붙여' 얘기되고 있다. 김호정이 연기한 기영의 처가 그 중 조금 독특한 위치에 있다. 경제력과 가장의 권위를 가진 그는 기영을 주눅들게 한다. 하지만 이게 조금 애매한 게 그가 기영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님 기영이 그렇게 요령있게 포지셔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하여튼 그는 바람피는 기영에겐 철썩! 뺨 한대를, 음악하는 기영에겐 짝짝! 박수를 보낸다. 후회와 피곤함은 내 몫이니, 그대라도 꿈꾸소서? 환상 속의 그대를 보는 건 다시 내 몫이 될테니. 혁수와 성욱의 처에 대한 캐릭터는 설명이 부족하거나, 설명이 쉬워 다소 아쉽다.

남,녀의 환상과 제례 의식으로 이들의 영화 속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한다. 이 영화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이미 서두에서 밝혔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준익 감독은 [즐거운 인생]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자기는 그걸 말이 되게 만드는데 애썼다. 라고 했다. 그렇다. [라디오 스타]도 그렇고, [즐거운 인생]도 그렇고, 말이 안 되거나 혹은 같은 의미로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클라이막스 지점에 가선 분명 울컥! 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혁수는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어린 아들에게 말한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너바나, 신중현, 사랑과 평화, 시나위 는.... 꼭 들어야 한다” 물론 아들은 그들이 누군지 모른다. 이건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읊조림이다. 이 읊조림은 20년 전 그가 락을 모르는 대학후배에게 했을법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더 이상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고 싶은, 오로지 즐거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진행형으로 드러난다.

[즐거운 인생] 은 판타지로서의 꿈을 무조건 지지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들이 꾸는 꿈이 한낱 백일몽에 불과할지언정 그 백일몽이 그려지는 과정을 무책임하게 쓱쓱 그리진 않는다. 그리고 꿈은 꾸는 게 아니라 지금 하는 거라고, 행동하는 행복론을 거슬리지 않게 설파하고 있다. 인생 뭐 있어. ‘active' 하게 놀다 가면 그뿐인 걸. ‘아, 나도 기영의 생글거리는 웃음처럼 즐겁게 살아야지.’ 라는 다짐이 어린 시절 일기 끄트머리에 습관적으로 덧붙었던 ‘참 즐거웠다’ 식의 무심한 감상이 아니라는 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7.09.04
하성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딱 1년 만이다. <왕의 남자>의 1000만 동원을 거쳐 <라디오 스타>로 자신만의 인장을 꾹 찍었던 그가 40대 아저씨들이 록 밴드에 도전하는 음악 영화로 귀환했다. 바로 오는 13일 개봉을 앞둔 <즐거운 인생>이다.

최근 SBS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40대 '동방신기'가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면 영화 속에는 록밴드 '활화산'이 부활했다. 20년 전 대학가요제 3년 연속 탈락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세우고 자진 해체한 록밴드 '활화산'. 리더인 상우의 죽음을 계기로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와중 은밀한 눈빛이 교환된다. '그래, 까짓 것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은행에서 명퇴한 후 주식으로 퇴직금 날려먹고 선생님인 아내 선미(김호정)의 눈칫밥을 먹고 사는 리드 기타 기영(정진영), 초등학생 아들 둘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택배, 밤에는 대리 운전을 하는 열혈 가장 베이스 성욱(김윤석), 중고차 판돈으로 캐나다로 떠난 자식과 마누라를 부양하는 기러기 아빠 드럼 혁수(김상호)가 그 얼굴들이다. 여기에 유일무이한 활화산의 노래 '터질거야'를 요즘 감각으로 불러 제낀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합세 하며 밴드는 활기를 띠게 된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비주류들 합치면 주류보다 훨씬 많다. 비주류들이여, 주류의 음모에 놀아나지 말자. 주류가 부러워하는 비주류가 되자는 거야"라며 록과 마이너리티, 유희 정신을 설파한 바 있는 이준익 감독. 세련된 영화 언어보다 대중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촌스러운 준익씨'의 최신작이 <라디오 스타>에 이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기세다.

재가동된 '이준익표' 감수성

투덜이 L : "우리 오랜만인데? 꼭 '활화산' 멤버들이 다신 뭉친 기분이야."

시니컬 H : "우리도 이제 영화 속 현준이 처럼 스무 살이 아니잖아. 먹고 살다 보니 바빠져서 그런 것 아니겠어? 아, 영화 보면서 이런 감정 느끼는 관객들이 하나 둘이 아니겠구나."

투덜이 L : "선배는 작년에 <라디오 스타>에도 감동 먹었었잖아. 눈물 쏟는 거 옆에서 다  봤다고. 우리 준기 씨랑 우성 오빠가 빛났고 1000만 관객이 인정했던 <왕의 남자>는 그렇게 탐탁치 않아 하더니 말이야."

시니컬 H : "그건 개인의 취향과 기호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형이 와서 좀 비춰주라'라는 대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올해는 더 치열하다는데 작년 추석 개봉작 중 호평을 얻었는데 흥행은 가까스로 200만을 넘겼잖아. 기자들끼리 흥행 예측 내기 했었는데 지는 바람에 아까운 돈만 날리고 말이야."

투덜이 L : "올해도 기자 시사회 반응은 좋지 않았어? 아무래도 이준익 감독은 먹물들한테 인기 인가봐. 하긴 확실히 울리고 웃기거나, 영상이 세련됐거나, 잘나가는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니까."

시니컬 H : "<라디오 스타>랑 겹쳐지는 부분만 봐도 그렇지. 한물 간 록스타랑 매니저와 록밴드를 결성하는 40대 아저씨들. 이준익 감독도 전작보다 '더 확장된 이야기'라고 하더라고. 하긴 주인공의 숫자도, 그 주변부 인물도 늘어난 데다 무엇보다 스타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인물들이니까."

투덜이 L : "아무래도 공감대를 형성할 관객층은 <라디오스타>와 비슷할 거 같지 않아? 지식인, 남성, 20대 중후반 이상 관객층 말이야."

시니컬 H :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당신이 언급한 것처럼 <왕의 남자>를 봐. 장생과 공길 외에도 연산군이나 처선의 시선을 확보하면서 폭넓은 관객을 끌어 들였잖아. <라디오 스타>의 그 짠한 정서나 '이준익표' 감수성이 그대로인데다 이 30, 40대를 위한 응원가는 어쩌면 보편성을 공유할 가능성도 적지 않거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덜이 L: "아무리 그래도 이야기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는 것 같아. 무기력했던 아저씨들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뭉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그마한 성공을 일궈낸다는 거. 최석환 작가가 이번에도 3일 만에 후다닥 시나리오를 썼다지?"

시니컬 H : "예쁘게 본다면 그런 순발력이 장점이고 까칠하게 본다면 독창성을 접어두는 거겠지. 사실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여느 할리우드 장르 영화와 다를 것이 없거든. 올해 미국에서 히트한 영화 중에도 존 트라볼타가 나온 <거친 녀석들>도 아저씨들이 모터싸이클 타고 미국 횡단하는 이야기거든. 비슷한 소재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일본 원작이라잖아. 중년들의 꿈을 응원하고 일탈을 그린 영화들은 차고 넘치지."

투덜이 L : "자꾸 아저씨, 아저씨 하는데 당신도 얼마 안 남았거든? 중요한 건 우리가 공감할 만한 감수성이고, 또 소재로 록 밴드를 다뤘다는 차별점이 아닐까?"

시니컬 H : "그 놈의 한국적인 정서 좀 그만하자. 할리우드 대중 영화들이 전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물론 그간의 물량공세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그 만큼 인터내셔널한 보편성을 지녔다는 의미도 간과할 수는 없거든? 전체적인 흐름이 무난하다는 건 미덕이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쌍수 들고 환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봐."

투덜이 L : "이 아저씨, 또 딴지 거시긴. 난 두 명의 실업자와 한 명의 기러기 아빠가 자기 꿈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우리 상황 안에 딱 대중영화 만큼의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봐. 김윤석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매몰되어 있는 아내에게 '애들이 다야?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살아'라고 말할 때 울컥 하던걸."

시니컬 H : "그래. 이준익 감독이 관객을 울컥 하게 만드는 건 촌스러운 내러티브나 화면 구성은 아니니까. 라스트 공연을 앞두고 세 아저씨가 아카펠라로 록 연주를 하는 일종의 판타지 신은 누구라도 응원할 수 없게끔 만드는 끈끈한 정서로 가득 차 있으니까."

전략적인 '꽃미남' 장근석, 촌스러운 연주 장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투덜이 L
: "아무래도 중년 배우들로만 이뤄진 캐스팅이 약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많던데 우리 근석이가 영화를 살려놨어. 10대나 20대 초반 여자 관객들을 위한 팬서비스랄까? 자기 반영의 개그기는 하지만 오디션 볼 때 나이트 상무의 은근한 눈빛을 봐. 딱 관객들이 스무 살 장근석을 바라보는 시선 아닐까?"

시니컬 H : "그렇게 좋았어? 그런 점에서 이준익 감독은 영악하기도 해. <라디오 스타>에서 '노브레인'이 담당했던 활력을 장근석과 트랜스픽션이라는 인디밴드가 맡았으니까. 노브레인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신은 은근히 웃기던데. 감독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거지.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구!" 

투덜이 L : "다른 이야기인데 여성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지는 모르겠어. 현실 반영 차원인지 해석의 문제인지 세 명의 아내들은 악녀까지는 아니더라도 걸림돌처럼 느껴지거든."

시니컬 H : "뭐, 남자들이 철이 없으니까 구박받아도 마땅한 거 아닐까. 여성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 여성, 남성을 떠나서 늦더라도 '니 꿈 찾아 맘대로 살아봐'라는 이 지극한 판타지에 얼마나 공감하느냐의 문제겠지."

투덜이 L : "역시 아저씨도 철이 없으시군요. 그나저나 공연 장면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어. 연습 장면은 가볍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무대에서 공연하는 장면은 여타 음악 영화에 비해 쾌감이 적더라고. 경쾌한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데 불구하고 말이지."

시니컬 H : "응. 연습 장면의 대사나 표정들은 밴드 경력 있거나 음악 좋아하는 친구를 둔 관객들이라면 쉬이 공감하겠지만, 록 공연의 활력을 화면으로 전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 비루한 인생에 대한 응원, 즐거운 놀이 같은 인생, 이런 모토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에 걸맞은 영상이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

투덜이 L : "그걸 상쇄하는 게 아무래도 배우들의 몫인 거 같아. 특히 구수한 아저씨 김상호는 최대 수혜자이자 <즐거운 인생>의 발견이야. 이준익 감독이 어찌나 편애하던지 클로즈업에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던데? 혁수 캐릭터도 셋 중에 가장 인간적이고 말이야. 드럼 칠때나 아이들과 통화할 때 짓던 그 환한 미소가 어찌나 귀엽던지 말이야."

시니컬 H
: "난 '아귀' 김윤석과 정진영씨 아내로 나온 김호정. 위의 그 김윤석씨의 대사도 좋았지만 판타지 신이라든지 소주 잔 기울이는 장면에서 특유의 너털웃음이 잘 살아있더라고. 김호정은 <플란더스의 개> <모두들, 괜찮아요> 등을 통해 바가지 긁는 아내 전문배우가 되어 버린 것 같지만 그 만큼 넉넉하고 현실감 있는 연기가 없었다면 선미 캐릭터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전락했을 거야, 아마."

투덜이 L : "추석 시즌 개봉 작 중 어떤 작품이 흥행적으로, 작품적으로 살아남을지 미지수이지만 <즐거운 인생>이 관심이 가는 몇몇 작품 중에 하나인 건 사실이야. 이준익 2년 연속 안타를 칠 수 있느냐도 궁금하고."

시니컬 H : "그러게. 기획이나 인물, 영화 자체는 참 뻔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완성품을 보면 왠지 정감이 간단 말이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96
  • 75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