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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되살린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이 삼성가(家) '홍 여사'의 갤러리에서 그림 찾기에 혈안이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그림을 확보해 놓고도 공개시점과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삼성가의 갤러리가 경기도에 한두 개가 아니라고도 한다. 삼성과 특검이 힘겨루기와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고가의 그림 30여점의 행방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삼성가 미술품의 근저에 다가선 이들이 있었다. 비록 이 그림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고스란히 놔둔 채 덜미를 잡히긴 했지만. 도널드 주드의 1980년 산 <무제>를 털려 했던 '더 늙은 도둑'과 '덜 늙은 도둑'이 주인공인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 이야기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던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목전에 둔 2008년. 날카로운 풍자극에서 배우들의 개인기가 돋보이는 코미디로 탈바꿈한 <늘근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삼성과 '홍여사'가 되살릴 줄이야.



녹슬지 않은 풍자의 칼날과 코미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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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는 '대학로의 간장게장'으로 불러도 무방할 스테디셀러다. 맛깔 나는 풍자극으로 유명한 극단 '차이무'의 이상우가 극본과 연출을 맡고 강신일과 문성근이 출연한 <늙은도둑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한 것이 1989년 4월.


 이후 김영삼 정권이던 1996년과 1997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막집권한 2003년까지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정은표, 이대연, 박철민, 최덕문 등 연극판의 실력파 배우들이 거쳐 가며 매진사례를 일궈낸 바 있다.


특히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명계남이 '더 늙은 도둑'으로 두 번째 출연했던 4번째 작품을 관람해 화제를 모았다. 절대 권력인 '그 분'을 가감 없이 풍자하는 이 작품을 보고 대통령이 파안대소 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2008년의 <늘근도둑 이야기>.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극의 구조는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도둑질과 사기로 평생을 살아 온 두 노인이 한밤 중, 고가의 미술품이 즐비한 '그 분'의 집에 잠입했다 경비견에게 들켜 붙잡힌다는 내용. 주요 공간도 '그 분' 저택 거실과 취조실 단 두 곳이요, 주요 등장인물도 수사관까지 합이 셋이다. 그러나 이 단출한 연극의 힘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언중유골'의 매력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대통령을 여덟 분 다 모신 도둑놈이야. 이승만 때는 미군부대 전문적으로 털어먹고, 박정희 때는 금고 전문가로 데뷔해 가지고 전국 수사기관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최규하 때는 꿈에 떡 맛보듯 지나가서 내가 제대로 못 모셨어. 전두환 때는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전국의 부잣집 금고만 털어먹었지. 노태우 때, 김영삼 때, 김대중 때는 죽 안(감방)에 들어가 있었다고!" '더 늙은 도둑'의 걸쭉한 입담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사들은 '절대 권력'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 정도는 약과다. 금고 털이의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눌까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덜 늙은 도둑'은 이제 그만 헤어지자며 이렇게 외친다. "YS랑 DJ도 헤어지고, 노무현, 정몽준도 헤어지고, 국현이랑 DY는 만나지도 않았어! 인제는 인제, 인제 안돼!" 또, 신윤복 선생과 '학교' 생활을 함께 했다는 더 늙은 도둑이 그의 저서를 '학교로부터의 사색'이라고 바꿔 부른다거나, 시대에 맞게 원더걸스의 '텔 미'로 슬랩스틱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동시대에 대한 풍자와 함께 젊은 관객들과의 호흡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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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풍자의 칼은 <화려한 휴가>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연출가 김지훈조차 피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아들 중 몇 명이 학교에 갔다 온 줄 아나? 홍업이, 홍걸이, 현철이도 다 갔다 왔다, 자고로 크게 되려면 별을 달아야 한다"고 비꼰다. 그리고는 "<씨네21>이란 잡지를 보면 <화려한 휴가>가 별을 두 개 받았다, 그 감독은 아직도 세 번이나 더 갔다 와야 한다"고 농을 친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더 늙은 도둑' 박원상과 '덜 늙은 도둑' 박철민과의 관계를 떠 올린다면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연출인 셈이다.


우리 시대의 '그 분'은 삼성?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며 삼성을 떠올린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누군지 모를 권력자의 집안에 떡 하니 걸린 미술품들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90억을 호가한다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이 가장 큰 이슈다. 연극 속 '그 분'의 소장 목록은 현실과 일치하는 주드의 '무제'를 필두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 막스 에른스트의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등이다. 팝 아트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홍 여사'의 취향과 딱 맞아 떨어진다. 1980년대의 끝자락 노태우 정권 때 극본을 썼던 연출가 이상무는 이런 취향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하필 1980년에 완성된 '무제'라는 작품이 일치하는 건 우연이라고 치자. 그리고 <늘근도둑 이야기>가 80, 90년대만큼 강력한 풍자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이 '못해먹겠다'고 읍소하는, '반미'가 '용미'로 변모해야 된다는, 1980년 5월 광주를 대중 영화로 소비하는 시대에 '절대 권력'과 정치인들에 대한 비아냥은 이제 인터넷 상의 일상이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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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현실을 돌아보라. 한화 김승연 사장의 폭력사건에서 보듯 초현실적이고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연극 속에서 수사관은 "도대체 거기가 어딘 줄 알았느냐, '그 분'이 누구인 줄 알고는 있느냐"며 다그친다. 거대한 금고를 감춰놓고, 세계적인 명화를 컬렉션 해 놓은 '그 분'은 물론 독재자와 권력에 대한 풍자다. 이는 노태우와 김영삼 정권에 이 풍자극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 더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으리라.


역사는 돌고 돈다. 현명한 이들은 그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2008년에 '실향민'인 '더 늙은 도둑'과 '광주' 출신 '덜 늙은 도둑'이 벌이는 풍자극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불분명한 절대 권력은 이제 시장과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것.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그 분'이 '무제'를 몰래 소유하고 있던 '그 분'들일지 모른다는 것. 코미디로 변모한 <늘근 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되살려준 것은 삼성과 '홍 여사', 다름 아닌 그대들이다.



덧붙이는 글 | '연극열전'의 두번째 작품인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는 3월 9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상연된다. '더 늙은 도둑'은 박원상, 유형관이, '덜 늙은 도둑'은 박철민, 정경호가 더블 캐스팅 됐으며, '수사관' 역은 최덕문이 연기한다.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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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 아닌 황사에 당황하다.

- <스파이더 맨3> <트랜스포머> <다이하드 4.0> : 모래의 제국

극장가에 때 아닌 황사가 불었다. 황사는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왔다. 도심에 뭔 모래 바람이 부냐고 질문할 수 있지만, 올 여름 헐리우드 영화들은 도심 속에서 ‘모래 폭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스파이더맨 3>는 전작들과 달리 ‘악의 축’과 비슷한 세 명의 악당을 등장시켰다. 이 영화에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뉴 고블린’이 된 해리(북한?), 세포 하나하나가 모래 알갱이로 구성된 ‘샌드맨’(이라크?), 심비오트에 감염된 ‘베놈’(이란?)이라는 세 악당이 등장한다. 스파이더맨은 ‘심비오트’라는 외계 생물체에 감염되어 블랙슈트를 입게 된다. 일부 평자들은 여기에 주목했다. 스파이더맨이 블랙슈트를 입었을 때, 기존의 선한 이미지는 사라진다. 영화 홍보에 사용된 포스터 속에는 빌딩에 매달려 건물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스파이더맨이 있다. 쇼윈도 밖의 스파이더맨은 붉은 슈트 차림이지만, 쇼윈도에 비친 스파이더맨은 검은 슈트를 입고 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선-악의 대립이 명확하다.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때, 성조기가 펄럭인다. 좀 심하다 싶지만, 슈퍼 영웅을 절실히 원하는 부시 휘하의 미국을 ‘애쓴다. 애써!’ 하면서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반면 ‘샌드맨’은 가치 판단이 어려운 캐릭터다. 샌드맨이란 악당은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는 피터(스파이더맨)의 삼촌을 죽인 악한으로 등장한다. 샌드맨은 딸과 아내에게 하소연한다. 자기는 그렇게 나쁜 녀석이 아니라고. 영화도 샌드맨의 본성은 착하다는 것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샌드맨’은 악당인가, 아니면 그저 운이 나빠 악인으로 낙인찍힌 평범한 시민인가? 샌드맨이 흥미로운 건, 슈퍼 영웅이 되어가는 ‘스파이더맨’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면은 스파이더맨의 자아 분열된 두 가지 모습이 아니라, 스파이더맨과 샌드맨의 대립으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하다. 스파이더맨은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하고, 시민들을 지키려 한다. 샌드맨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다. 샌드맨의 딸은 병으로 죽어가지만, 돈이 없어 수술을 못하고 있다. 샌드맨은 자신의 불행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불만을 표한다. 이 때 스파이더맨은 샌드맨에게 화해의 제스츄어를 취한다. 미국은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듯 말이다.

샌드맨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그는 미국을 상징한다. 모래와 제국의 이미지를 연상하면 로버트 W. 메리의 저작인 <모래의 제국>이 떠오른다. 미국의 개입주의와 네오콘의 일관성 없는 보수주의를 경계한 이 책은,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가 전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견고한 민주주의의 수호자인가? 아니면 언젠가 쓰러질 ‘모래의 제국’일 뿐인가? 스파이더맨은 평화의 수호자가 되고, 샌드맨은 악인으로 남지 않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샌드맨은 왜 사라지는 걸까?

샌드맨은 ‘중동’ ‘아랍’ ‘이슬람’ ‘석유’로 은유된다. 스파이더맨과 베놈이 싸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샌드맨은 사라진다. 영화는 샌드맨이 악당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샌드맨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살인은 사고였고, 그의 집은 가난하고, 그의 인생은 불안하다. 샌드맨은 스파이더맨의 애국주의와 손잡지 않는다. 그러나 샌드맨은 스파이더맨이 수호하려는 가치관과 질서에 흡수된다. 이 말은 미국식 개입주의가 이슬람을 포섭하거나, 이슬람이 미국에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석유가 필요했고, 더 이상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전세계의 보편적 체제가 되어야 했다. 미국은 모래의 땅을 원했던 게 아닐까? 미국은 그들의 완전한 영향권 아래 ‘석유의 땅’을 두고 싶었던 것 같다.



<트랜스포머>는 더 노골적인 은유로 ‘모래의 제국’ 미국을 설명한다. <트랜스포머>의 초반부 전투 씬은 중동 카타르 지역 미군기지에서 벌어진다. 로봇은 기밀문서를 빼내기 위해서 카타르에 있는 미군 기지를 습격한다. 왜 하필 모래 언덕밖에 없는 카타르를 습격한 것일까? 애초에 국방부를 습격하거나, 에어포스원이나 백악관을 침입하지 않고 말이다. 중동 지역으로 날아가 미군 기지를 습격한 오프닝. 그곳에 미국의 모든 핵심이 있다고 중요성을 부과한 것 자체가 이미 미국의 중심이 세계를 향해서, 더 직접적으론 중동의 석유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트랜스포머>는 발칸반도와 중동지역에 개입정책을 펼치며 세력을 확장하는 미국의 야욕을 보여준다. 우선, 첫 장면을 보자. 전투가 벌어지는 사막이라는 장소는 로봇과 지구인의 대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 대결을 외계 생명체(로봇) VS 미국이라고 보아도 되지만, 필자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문명 충돌로 보였다. 전투는 마치 이슬람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군과, 반서구 반미를 외치며 지하드를 자행하는 이슬람 테러분자들의 대결로 보인다. 위치상으로도 로봇은 마을 밖에 있고, 미군들은 마을 안에 들어가 있다. 안과 밖의 차이. 미군이 안으로 들어간 상태고, 로봇은 밖에 나와 있는 상태다. 집을 빼앗긴 자는 되찾으려 하고, 남의 집을 강탈한 자는 그들의 저항에 맞선다.



살아남은 미군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제 남은 건 본토를 수호하는 일. 이 때 등장하는 건 ‘존 맥클레인’ 이라는 추억 속 영웅이다. 시간이 흘러도 영웅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다이하드 4.0>은 제 발 저린 미국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영웅 신화다. 마이클 베이가 기술 문명으로 시대를 앞서갔다면, <다이하드 4.0>은 디지털과 결별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버튼 하나로 백악관이 무너지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미디어 시대에 존 맥클레인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와 맞선다. 그리고 승리한다.

몇 장면만 언급해 보자. 이 영화야말로 미국이 포스트 9.11 이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주로 유색인종과 싸운다. 적들은 아랍계와 아시아계가 대부분이고, 최고 우두머리만이 백인 미국인이다. 이게 무슨 인종 간 대결도 아니고. 재미있는 건 공격방법도 무식하다는 거다. 맥클레인의 자동차는 기둥을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헬기와 충돌한다. 이건 흡사 자살 폭탄 테러나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을 연상시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맥클레인은 공격자보다는 수비자의 위치에서 적들과 맞선다. 이 때 적의 공격형태도 쿵푸나 야마카시가 대부분이다. 단순히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결이 아니라, 인종간의 대결로 보아도 이 영화는 흥미롭다. 유색인종과 대결하는 액션 씬이 난무하는 <다이하드 4.0>은 다인종 국가 미국을 보여준다. 한편, 이 영화는 백인 우월주의를 은근히 뽐낸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다. 맥클레인의 런닝과 옷은 갑옷처럼 보이며, 그런 맥클레인의 행동은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다. 세계화 시대에 미국을 견제하는 세력은 증가하고, 이에 미국은 무너질지도 모르는 그들의 신화를 다시 세워야만 한다. <다이하드 4.0>은 아직 미국이 건재하다는 걸 뽐내는 영화다. 하긴, 브루스 윌리스는 멋졌다.



2. 영화가 없는 시장 - 이데올로기가 된 영화

- <화려한 휴가> <디 워>

이제 한국 영화를 이야기하려 한다. 올 여름, 두 편의 영화가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충무로의 위기라고 칭얼거리는 한국 영화. <화려한 휴가>와 <디워>는 총체적 난국에 빠진 영화계를 돈놀이로 구출하자고 선봉장으로 나선 영화다. 앞 글에서 헐리우드 영화 세 편을 곱씹은 건, 영화를 즐기는 한 방편일 뿐이다. 영화가 재미있거나 없거나, 씹은 후 뱉어야 한다. H군의 말을 빌리면 ‘영화란 로또’다. 영화를 볼 때나, 보고 나서 즐기는 방식이 적절하면 당첨된 거고, 틀리면 그만이다. 7000원의 소비는 인생대역전이 아니다. 영화가 돈으로 탄생한 거라면 소비 형태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하고, 태생적으로 영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펠리니는 “더 이상 돈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영화는 끝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슬프지만 돈과 영화가 만나야만 결과물이 나오고, 그 영화가 소비가치를 얻으면서 상품이 된다. 영화란 소비에서 시작된다. 헌데 여기에 이상한 국가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영화들이 있다. 굵직한 영화가 많았던 올 여름 극장에서는 영화가 아니라, 메이드인 코리아를 단 상품만 보고 온 기억 밖에 나지 않아 씁쓸하다.



두 영화는 위대하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화려한 휴가>가 광주를 다루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는 건 사실이며,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논쟁이 되는 이유는 대중적 방식으로 역사를 사유함에 있다. 영화가 오락이 되고 상품이 될 때, 영화는 역사 안의 주체였던 사람들을 망각하는 우를 범한다. 광주를 다룬 이전의 작품들(꽃잎, 박하사탕, 오래된 정원)은 개인의 역사 안으로 들어간다. 혹자들은 이를 ‘먹물 영화’(지식인 영화)라고 불렀다. 먹물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역사를 한 개인의 사유 안에서 반성하고, 저주하기도 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되지 않던 역사는 상처를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그때서야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을 유죄라고 생각하며 죽어간 자를 애도한다. <화려한 휴가>가 지적받아야 할 부분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화려한 휴가>가 살아남은 자들의 안락을 위한 영화라면, 죽은 자들의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오늘날 극장에 앉은 우리들은 편하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코드와 컨벤션으로 이루어진 영화로 역사를 대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죽어간 이들을 위한 눈물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슬픔을 접한 관객의 눈물이다. 왜? 세트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지고 인공적으로 창출된 시공간은 역사를 가장한다. 금남로와 도청 세트는 광주를 겨냥하고 있지만, 그 지명과 세트를 거세하면 익숙한 소재-형제애, 가부장제, 전쟁의 상처-만 남는다. 도청 앞에서 불을 뿜는 특전사들의 총부리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 <화려한 휴가>. 이 영화는 민중과 광주 시민의 의심을 거세하고, 단지 피와 눈물로 범벅된다. 이 때, 이것을 보는 자는 편안하게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도대체 저 총부리 위에 무엇이 있었고, 고립된 광주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역사를 의심하지 않고, 상황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골치 아픈 의혹들을 모두 거세하고, 전쟁영화와 휴먼드라마로 탈바꿈한 광주를 보는 건 가슴 아프다.

<화려한 휴가>는 전쟁영화의 신화를 세운다. 광주란 지명을 지우고 보면 이 영화는 그저 내전영화일 뿐이다. 어느 학생이 역사 교과서를 달달 외운다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다. 관객을 대신해 울어주는 영화보다는, 뼈 속에서 우러나는 눈물을 만들 수 있는 영화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화려한 휴가>는 우리가 울어야 할 이유를 주지 않는다. 관습적인 눈물만이 존재한다. 다시 물어본다. 이 영화는 죽어간 자를 위한 애도인가? 보는 자들의 안락을 위한 영화인가?



<디워>를 상품이라고 본다면, 여타의 영화와 견주어도 크게 손색없다. 거기에 심형래의 B급 취향과, 키치적 색채가 섞이면 골수팬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영화다. 헌데 이 영화도 극장 밖에서 환영받고, 뜨거운 감자가 된 영화다. 극장 안에서는 누구도 이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다가 극장 밖을 나서서야 입에 올린다. 사람들은 <디워>에 민족주의와 애국심이란 외피를 두른다. 그 순간 영화는 사라지고, 감정적 대립과 가치관의 차이만이 남는다. 이미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심형래를 둘러싼 숱한 논쟁이 있었고, 개봉 후에도 이송희일 감독의 글을 두고 격심한 논쟁이 일었다. 심형래는 자기의 고생을 눈물로 호소하고, 맨 땅에 헤딩했던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디워>의 마지막 영상은 충격이다. 심형래는 너무 일찍 자기 회고전을 개최했다. 불안했던 걸까? 그의 사후에 누구도 심형래를 기억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 혹은 루카스나 스필버그도 하지 못한 일을 당당하게 뽐내면서 자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던 걸까? <디워>에는 700억원의 경제적 가치를 환수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고, 그 파급 효과를 기대하는 대중이 있다. 반대로 영화가 돈과 민족주의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 더, 이 영화가 심형래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강하게 의식한 관객들의 인식의 오류가 발생한다. 개그맨 심형래와 영구를 가슴 속에서 끌어낸 관객들의 태도는 양분된다. <디워>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건, 심형래의 광대 이미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심형래는 광대 이미지를 벗으려고 하고, 일부 사람들은 그것에 강한 저항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이상한 건, 광대의 이미지가 오인되고 있다는 거다. 위대한 희극인들은 자기를 비하하면서 웃음을 선사한다. 개그맨 심형래는 그걸 보여주었지만, 영화에서는 희극성을 버리고 자기비하를 용납하지 않는다. 자기를 희화화하면서 대중을 웃겼던 심형래는 사라졌고, 민족영웅이나 영화감독의 권위를 얻으려는 심형래만이 남았다. 그러니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디워>는 심형래의 독특한 개인 취향이 녹아있는 페티시 영화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무기와 한국적 정서를 세계화 시키려는 그만의 취향. 그 취향은 무시될 게 아니라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두드러기를 느끼는 자들이 있다. 어차피 그것도 취향 차이일 뿐이다. 여하튼 올여름 극장가에는 영화가 없고, 이데올로기만 난무한 것 같다. 한국영화는 이 둘뿐이던가?

뜨겁고 덥다. 이 긴 글의 가치를 찾는 날, 나는 좀 더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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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이마주 8월 특집은 [화려한 휴가]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결정했다. 그의 일환으로 이영 편집스텝이 ‘80년의 광주’당시 학생이었고 지금도 광주에 살고 있는 정인호, 기형훈 두 분을 섭외해 글을 받았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엄연한 광주 출신의 스물여섯 박유선씨에게 [화려한 휴가]에 관하여 관람 단상을 받았다. 이 세분의 글을 하나로 묶어서 특집 세 번째 기사로 올린다. 글의 분량은 길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가 솔직한데다가 각각의 특색이 있음으로 해서, 결코 지루하지 않으리란 생각이다.

80년의 광주를 그린 이 영화를 정작 광주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보았을까? 40대와 20대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그들에게 80년의 광주는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에 대하여 단편적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고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을 꾀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바쁜 와중에도 글을 보내주신 세 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정리: 이영)



하나.  광주에서 정인호(43) 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의례 시원하려니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덮다. 그래서 다른 상상을 한다. 오늘 같은 날, 하일 없는 내 집 마루에 앉아 차 한 모금 향 머금어 마시고 처마 끝에서 그냥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두울 여섯 방울 하고 세면서 대나무 속에서 휘감아 울리는 맑고 평온한 섬유질 소릴 듣고 싶다.

나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를 학수고대했었다.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다른 이들에게 이 영화 보기를 권했었다. 그러다 그만두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자 했었던가? 나 말고 남들은 또 무엇을 보길 바랐을까? 역사적 진실?

나는 내 젊은 날, 그것도 군 제대 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해마다 오월이면 적어도 15일은 자발적인 외박을 했다. 그 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금은 영화 세트장 속에 박재되어 처박힌 그런 곳에서 살았다. 도청에서 금남로로 그리고 망월동에서 아니면 금남로의 어느 허름한 골목길에서 또는 수많은 막걸리 집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그 격렬함 보다 더 뜨겁게 더더욱 비장하게. 왜 그랬을까? 그 때 나는 그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년이었다. 현란한 논리도 없고 정치적 야심은 더더욱 없는 그냥 가슴만 뜨거운 그 뜨거움만을 간직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그 뜨거움으로 그 수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냈다.

나는 잠시 그날의 그 공간이 필요했었다. 그 날의 그 시간이 필요했었다.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 오월의 그 어느 날도 필요했었다. 자고 나면 대문 밑에 낙엽처럼 쌓여 있었던 그 날의 그 ‘삐라’ 그 함성들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들을 간직하지 못했다. 그 때 죽어간 내 친구들의 모습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 어떤 친구는 그 날의 함성을 녹음기로 녹음했었다고 나에게 자랑하듯 늘어놓았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그 함성을 보관하고 있을까? 나도 그날 그 ‘삐라’를 주워 모아 몇 달 동안이나 보관했었지. 그러다, 그러다 어느 날 시나브로 사라졌다. 나는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꼭 ‘죄’를 지은 것 같다.

이것을 ‘죄’로 치면 무슨 죄일까? ‘점유 이탈물 횡령죄’, 아니면 ‘괘씸죄’. 그래 괘씸죄가 맞다. 괘씸죄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냐?”이고 적어도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문제는 아니므로.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내가 괘씸죄 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그 무리들의 죄목은 무엇이지? 오월 그 어느 날 내가 금남로의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보도블록을 깰 때, 그들의 죄목을 그렇게 외쳤는데 적어도 27년을 외쳤는데.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자들에 대하여 왜 침묵하지. 하기야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용서가 안 되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을 베푸는 것이 세간의 풍속이라서 그러는가? 그렇다면 “화려한 휴가”는 괘씸하다. ‘괘씸죄’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그 ‘인간’들에 대하여 침묵하는 “화려한 휴가”는 괘씸하다.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비가 오는데 지금 막 연주자가 휘몰이를 연주한다. 이제 곧 연주를 맺으려나 보다.



둘.  서울에서 박유선(26)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1980년 5월 18일.

내가 1981년 12월생이니, 엄마 뱃속에 내가 만들어 지기도 전의 일이다. 내 친지 중에서도 내 이웃 중에서도 이 일로 화를 당한 사람이 없다. 말하자면 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하면 뜨거운 두부를 식히지 않고 한입에 먹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우면서도 싸해지는 까닭은 왜지?

중. 고등학생 시절 5월은 매웠다. 코가 맵고 선생들의 어투가 맵고 그랬다. 지금은 5월에 광주를 가도 맵지 않지만, 그때는 맵고 그랬다. ‘화려한 휴가’ 속의 ‘광주사태’(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은 낯설다.)는 이런 간접 경험이 다다. 그런데 왜 가슴은 뜨겁지?

‘화려한 휴가’ 속의 캐릭터 들이 다 싫다.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 같아서다.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 동생의 죽음으로 확 변하는 강민우나 예쁘고 참하며 강인하기까지 한 박신애나,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은 녀석이 급우의 죽음으로 운동에 선두에 설 줄도 아는 강진우도, 옳은 것만을 위해 살 듯 한 박흥수도 다 싫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빠나 엄마가 정말 그랬던 사람일 것 같아서 싫다.

‘화려한 휴가’ 속의 진짜처럼 잘 만들어 논 세트가 싫다. 그때의 도청은 본적 없지만, 여태껏 봐온 도청의 모습을 역으로 돌려가며 기억하다 기억 전을 상상해보면 딱 영화 속 세트다. 아마도 딱 그 모습일 게다. 실제로 총을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는 그 벽에 핏자국이 누구누구의 아빠나 엄마의 핏자국일 것 같아서 싫다.

결국 난 ‘화려한 휴가’ 속 광주사태가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빠나 엄마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서 무서워서, 가슴이 뜨거운가 보다.



셋.  광주에서 기형훈 님(46)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화려한 휴가]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화려한 휴가]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마음의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늘 부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주의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끌어올린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난 하나도 보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해왔기 때문이다.

80년 당시 광주 서석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엔 시 외곽에 있었다. 세상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나 관조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학교가 쉬는 내내 광주에 있었으며 광주시내를 전체적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요소요소의 일들은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다. 27년이 지났어도 현장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짧은 평

1. 우선은 내가 광주의 40대를 대변할 수 없다. 경험이 적고 실제로 아는 것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2. 518과 관련된 영화,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더구나 그것이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518을 다루었다는데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이 영화의 의도는 사건의 실체화이며 진실성과 시민의 정신이었다고 본다. 그 진실을 그 정신을 우리사회에 아직도 알지 못하며 한 과거의 아픈 기억정도로 만 다루어 왔고, 그 곳에서 한발작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 진실을 다루고자하는 방향성이 설정된 것이며 각오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광주사태하면 폭도요, 고정간첩의 선동이며, 불순분자들의 내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간혹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권력관계에 연원이 있으며, 지금도 그 권력은 오롯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광주시민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518관련 재단이 생기고 유공자로 대우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시민들의 투쟁의 산물일 뿐이다. 17년의 세월(7년, 5년 그리고 문민정부 5년) 동안 많은 것이 감추어지고 사라지고, 핵심적인 진실에 접근할 자료가 전무하다는데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전체적인 흐름은 광주의 일들을 보여주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사건의 진행과 규모, 그리고 이야기의 깊이가 다소 부족했다. 다만, 그 속에 담겨있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데 나름대로 고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폭도가 아닌, 선량한 일반인이었다는 것, 군부의 계획적인 유도에 의한 참극이었다는 점,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이 아닌 순수함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은 광주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왜곡되고 오도된 사실들에 대한 알림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어느 부위를 부각하여 주역으로 하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라 전체의 정서에는 오히려 소시민의 주역설정은 접근하기에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영화는 12세 관람가 등급으로 허가가 난 것이다. 영화의 상업적인 장면들에 대해서도 이런 접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광주의 시작이 아닐까한다.

4. 좋은 점과 나쁜 점 : 광주는 오직 5.18하면 좋다 나쁘다의 생각은 없고 진실을 알려야한다는 것과 살아있음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히려 광주에서는 518에 대한 논의하기가 더 어렵다. 많은 이들이 경험했고 그것들의 왜곡과 은폐와 악의적인 선전들을 많이 봐왔고, 당해왔기 때문이다.

좋은 점 : 영화에서는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설정이라는 점이 좋았다. 518하면 그저 무겁고 힘들고 아프기 만한 것이 아닌 영화로 제작되면서 서민의 삶과 서민의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들을 담을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나쁜 점 : 글쎄, 부분으로만 치우친 경향이 있다. 설정 자체가 극화된 것이기에 그 내용과 진행 상황만을 가지고 논하게 될 때, 자칫 그 속에 머물러 한정된 시각만을 제시하는 틀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518에 대한 영화가 27년이 걸렸다. 광주에 대한 영화가 자주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꼭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이번 영화를 기점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그 진실에 접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그 의의를 체계화 할 수 있는 논의의 완성본이 만들어질지 난 의구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518에 대한 재평가, 연구 그리고 재조명이 더 깊어지고 다양화되면서 보완될 것으로 본다. 518의 완성은 통일로 그리고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6. 광주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듯하다. 하물며, 타 지역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하나의 유혈극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좀 더 흥행성을 위하여 심하게 표현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이고 흘러간 일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하자고 한다. 광주는 계속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광주사람들이다. 그런데 진실을 모르고 있다. 광주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들 스스로가 다짐하고 반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은 없다. 영화의 액션과 눈물에는 반응하면서 실제 삶 속에서의 애환을 남의 일인 것이다. 광주는 말한다. 광주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평등한 사회, 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경제의 논리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기회균등의 사회 자신의 노력의 대가를 바르게 가져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광주는 힘이 없다. 참 민심의 향배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7. 광주의 사태가 크게 된 것은 그전해의 부마사태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군부는 그리고 권력의 핵심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시대상활과 긴 맥락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해석되지 않으면 왜곡, 축소와 조작 등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8. 더구나 올해는 대선이 있다. 실제사건을 영화한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며, 자칫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릴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나의 5.18 경험

초기 급박하고 처절했던 1주일의 시간은 그 누구도 정신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1주일의 전의 상황과 그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외지에서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난 고등학교 3학년으로 광주에 그 기간 내내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본 것은 아니다. 도청 앞 상무관에서 관이 늘어져 있는 곳에서 묵념한 것, 도청 분수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고 토론하던 모습들, 버스를 탄 사람들과 다니면서 ‘전두환이 신현확이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등 노래하고 종일 돌아다닌 것, 집에 돌아오면 방송국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오는 연속극 그래서 방송국 MBC와 KBS방송국이 타게 되는데 그 장면, 외곽에 갔을 때 처음으로 본 탱크와 그 위에 헬멧을 쓰고 있던 군인의 모습, 요소요소에 나무로 쳐진 바리케이드, 동네를 들어가면 주먹밥, 슈퍼에서 과자나 음료를 자발적으로 제공해주던 분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면서 격려 해주시던 분들, 거리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일그러지고 깨진 얼굴의 사진들, 헬기가 머리위에서 폭도들의 선동에 휘말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계속해서 방송하던 기억들, 아침이면 누구나 어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분개하고 욕하던 장면들, 동네 아줌마들이 집집에서 가져온 쌀은 가지고 밥을 해서 지나가는 차량에 넣어 주던 주먹밥, 계엄군에 끌려가서 3일 후에 나온 이웃집 누나의 모습, 언제부턴가 시민들도 무장을 하게 되고 길거리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가끔 들리는 오발인 듯한 총소리, 그러나 광주에서는 한 달 동안 은행이나 가게 등 강도사건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계엄군이 투입되고 학교가 개학하기까지 정확하게 25일이 걸렸다. 우리학교는 당시에는 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개학 후 우리학교 학생들 중에는 총에 부상을 당한 학생이 몇 명(3학년만 2명) 있었다. 지나고 난 후의 소감이랄까 난 광주에 머물러 있던 기간 내내 힘들다거나 답답한 것이 아닌 오히려 편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난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방송에서는 폭도들이 점령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지만...


앞으로 우리는...

518과 관련한 진실성이 확보되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정신을 다루는 일들이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518은 시민의 승리이면서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이일로 인하여 피해를 봤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는데 있다. 그 정신이 살아나고 사회의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입장, 마지막까지 도청이나 YMCA에 남아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이들의 각오, 나아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의 입장에서도 광주가 조망되는 시기가 조속히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광주의 마무리는 통일이 아닌가 싶다.

네오이마주에 올라온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평에서 ‘영화에서 광주는 고립되어있다’는 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언제나 계속해서 고립되어있었고 지금도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힘들지 않다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생활해 왔다. 일부를 가지고 확대하지 말라.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 뿐이다. 광주를 518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일반화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에서도 광주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그 참 뜻이 사그라지고 흩어지고 있다. 역사가 잘못 쓰여 졌고 왜곡되었다. 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오직 가진 자 만의 세상일뿐이다. 40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허허로움이며, 절망감이다. 그래서 광주에서는 선에 대한 영혼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팔리는지도 모른다. 현세에서의 아픔을 나의 수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광주는 광주사태(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직도 광주는 진행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때 자신의 경험을 깊이 있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지겹다고 한다. 그만하라는 것이다. 과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을...86년 6월 항쟁 때 군 투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다가 광주사태의 경험 때문에 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가 , 감옥에서의 생활, 잡혀간 사람들의 마음, 광주시민의 마음가짐, 마지막 도청과 YMCA를 지켰던 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진압군의 심정에서 다시 쓰여 져야 한다. 나아가 통일로 완성되어야한다.


덧붙이는 말

어쩌면 화려한 휴가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과 흥분이 저 속에서 밀려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 영화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다시 곱씹으며 재현해 보면서 그 의미가 뭔가를 찾고자 했으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고 고등학교 때 일기장도 펼쳐보고 했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을 움직이질 않았거든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만, 그 역사의 참의미는 과거의 역사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형이지요, 오직 현재만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실천이 역사를 만들고 현재와 과거를 규정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현재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과거를 현재에 조망하지 않고 반성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되풀이되고 아픔으로 다가설 것이라 여깁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것을 말하고 있고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바를 큰 틀 속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여깁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세상은 부족하지 않고 우리 모두는 하나다’라는 글귀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건강하시고 밝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8월 9일 광주에서 기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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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과거를 현재화 하는 영화의 상업화된 기억 자체는 제 목적과 이데올로기에 따라 조정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집단적으로 공유된 기억을 역사라 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을 기억이라 한다. 이에 따라 영화는 개인이나 등장인물의 기억과 그 기억을 관객과 공유하기 위해서 역사화하곤 했다.(註1) 그러므로 민족의 기억은 관객의 동일화를 얻어내기 위한 적절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관객들이 집단적 기억이나 공적 경험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역사화 된 기억과 개인적 경험에 머무른 기억 사이에서 발생한 괴리는 관객을 혼동 시키게 된다. 게다가 역사의 행위주체자로 여성이 전면에 등장할 때 관객은 갈등과 모순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가 남성중심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하위 텍스트에 머물거나 후일담의 형식으로 거론될 뿐인 여성역할의 축소 은폐 경향은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되고 있다. 이제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화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심장부까지 들어간 여성의 모습을 역사의 행위자로서 그려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성주체의 수동적 조력자에 머물고 있는가?’에 집중해서 읽어볼 것이다.


애도하는 자로서의 여성

다이 진화 戴錦華가  「그녀의 행동과 내레이션은 역사의 이면에서 발생한다. 남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아름답게 색칠된 스크린의 덧칠 혹은 동떨어진 모호한 배경이 바로 그 이면 」(註2) 이라고 강조한 바대로, 대체로 영화 속 여성들, 특히 전쟁물과 역사적물처럼 남성세계를 그려낸 영화 속 여성들은 남성의 조력자를 넘어서지 못했거나 가정과 몸담은 조직의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법이 드물었다. 즉, 여성은 역사의 주체나 행위자가 되지 못한 채, 죽은 남성을 애도하는 자로서 혹은 죽은 남성의 아이를 낳는 생산자로서 아니면 민족의 상징적 담지자로서 재현되곤 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80년의 광주를 다룬 몇 편의 영화들, 이를테면 장선우의 [꽃잎](1996)과 이창동의 [박하사탕](1999)에서 여성은 남성을 애도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꽃잎]의 소녀는 죽은 오빠를 애도하며, [박하사탕]의 순임은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김영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여전히 두 여성은 소녀 오빠의 친구들에 의해 기억되거나 김영호의 기억 속에 남겨진 첫사랑이라는 존재에 머물고 만다. 그렇다면 [화려한 휴가]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부여 받았으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

80년 광주의 이야기를 그린 [화려한 휴가]에서 주요한 여성 캐릭터는 세 사람으로 압축된다. (영화초반 용대의 분탕질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사라진 다방여급 미스 김도 포함해야 할까?) 어쨌거나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신애와 광주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창수 모친, 그리고 인봉의 처까지, 이렇게 세 명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주인공 중 한사람이라 할 수 있는 신애를 보자.


광주의 목소리- 신애

영화에서 신애는 간호사이면서 한 남성의 흠모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멜로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영화에서, 10일간의 투쟁 기록은 이루지 못한 슬픈 연가와 등가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전면에 멜로드라마를 내세운 전략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를 표명하고 역사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들어간 영화들 치고 여성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묘사한 사례가 거의 없었거니와 하나 같이 멜로드라마라는 안전판 위에서 인물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전술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대체로 영화 속 여성은 이중적으로 서술되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즉 여성이 홀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내러티브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남성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그 역할과 의미를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남성의 회상이나 시점, 혹은 기록을 통해서 자신의 이미지와 기호를 획득하게 된다. 이렇게 텍스트 내에서 또 다른 텍스트가 생성되는 미장 아빔 mise-en-abyme(격자구조)은 여성의 주체성 형성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기제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애는 영화담론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가?

영화에서 신애는 강민우와 거의 한 몸을 이룬 채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고 있다. 동생 진우를 태우고 간 성당과 운동회와 극장은 물론이고 시위현장과 시민군과 계엄군이 총격전을 벌이던 금남로에서도 어김없이 그녀는 목격되고 있다. 강민우가 연모하는 대상으로서의 신애의 잦은 등장을 문제 삼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우와 신애 사이에서 싹트던 애정과는 별개로 그녀의 등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애는 영화가 진행될 수 록 다양한 남성들과 관계 맺으며 사소한 개인에서 역사의 목격자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운전기사가 총을 들게 되는 명분을 동생의 죽음이 제공했다면, 그 명분을 강화시키고 광주사수의 정신을 북돋우며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다짐의 부추기는 것도 신애의 역할이다. 이렇듯 신애는 남성인 민우의 정체성 분열을 막아내면서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기능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광주를 사수해달라고, 우리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는 외침을 통해 마지막 증인되기를 자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애는 이 모든 역할을 독자적으로 수행해왔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신애를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놓이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강민우라는 남성주인공이다. 그녀가 민우의 시야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녀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애초에 그가 신애의 병원으로 찾아가지 않았다면, 영화 관람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계엄군의 만행을 목도하지 못했다면, 진우의 죽음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그녀가 총을 들어 계엄군을 쏠 일도 없었을지 모르고 마이크를 들고 광주의 목소리 되기를 자처하지 않았을 런지도 모른다. 그저 실려 오는 부상자를 치료하는 역할에 그치고 말았을 런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물론 이것은 그 시절 광주 여성의 역사의식이 남성에 못 미쳤다거나 수동적 위치에 머물렀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화가 여성을 재현해내는 방식을 말하려는 것이다.


광주의 여인- 창수 모친과 인봉의 처

다음은 창수 모친의 경우이다. 민우가 계엄군에게 쫓겨 숨어들어간 집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끝내 주검이 된 아들을 부여안고 오열을 터뜨린다. 사실 영화에서 이 어머니의 역할과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배우 나문희가 가진 무게감은 수많은 희생자의 어미를 대표하는 상징적 어머니로 그려지고 있다. 게다가 눈까지 먼 그녀의 육체가 드러내는 한은 그래서 더욱 비극적이다. 또한 영화에는 몇몇의 아내 혹은 어머니인 여성이 등장하고 있다. 계엄군에게 뭇매를 맞아 죽은 병조의 어머니와 인봉의 처가 그들인데, 인봉의 부인의 경우는 도청에 애를 업고 와서는 집으로 데려가는 데 까지 성공하지만, 최후의 결전을 앞둔 밤 인봉의 출정에 이를 악물로 눈물을 참고 보내야 했던, 그 시절 광주 여인을 대리하고 있다. 그녀 역시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훗날 역사의 주체가 될 남성(아들)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재생산자 역할 또한 충실히 수행 할 것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화려한 휴가]속 여성들은 기존의 역사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 속 여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신애라는 여성주인공이 남성의 성적대상이기는커녕 숭고한 정신의 계승자로서 그리고 그 정신을 전파하고 사적기억을 공적역사로 치환시키는 담지자로서의 역할확장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다른 캐릭터들과의 차이를 둘 뿐이다.


역사의 각주로 표기된 여성들

주지하다시피 [화려한 휴가]는 멜로드라마의 이름으로 공적역사를 소환하고는 환기시키는 영화다.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0일 간의 치열한 투쟁이 남성중심으로 이뤄졌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단순가담자로 분류시키어,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거나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아니면 거룩한 전투를 앞둔 남편의 옷소매를 잡아끌면서 남성 정체성을 균열시키는 수동적 조력자 정도에 머물게 만든 것은, 이 영화가 이룬 성취나 의미를 떠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역사 속 여성의 강인함을 논한다 할지라도, 모든 남성이 몰살되는 상황일지라도, 여성은 남성을 애도하고 그의 죽음을 기억하여 증언할지언정 총을 들고 적의 심장을 겨누는 대열에 당도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것마저 스펙터클로 치환하면서 관객의 심금을 울리려 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남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에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자로서의 여성, 설사 그 매개체에 힘입는다 하더라도 역사의 각주로 표기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위치를 영화가 재확인시켜 주는 지점이다.

모두가 웃고 있는 사진 속에서 결코 웃지 않는 신애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광주의 끝나지 않은 아픔을 본다. 그것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역사가 빚어낸 그림자 뒤에 웅크리던 여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 산화하지 못한 채 죽은 자를 애도하는 처지에 놓인 자신이 못미더운 표정이다. 또한 살아남았으되 20년 가까운 세월을 침묵해야했던 광주 시민들의 단장을 애는 심정이 담긴 얼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외상(外傷)의 기억은 향수라는 감정 등을 통해서 주체가 보존하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 의식 속에 사라졌다고 여겼던 것이 현실로 뒤늦게 갑작스럽게 되돌아와서 고통과 상처를 낳는 것이다. 외상이 잠재성과 뒤늦음을 특징으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간당한 도시, 광주를 위하여

너무 늦게 너무 멀리 돌아 우리 앞에서 다가온 80년 광주의 이야기가 [화려한 휴가]를 통해 첫 발을 뗐다. 그 의미 있는 시도에 박수 보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영화 속 여성들이 그리고 신애가 그날 살아남은 자로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외치는 광주의 목소리가 되기에 적합한 인물로 그려진 것인지 되묻게 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화려한 휴가]에는 도저한 역사의 시선이 결여되어 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꿈틀거리는 희망과 새 시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 절절한 아픔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광주는, 그저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 ‘종료된’ 역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만 [꽃잎]의 소녀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강간당한 소녀가 광주요 광주가 곧 강간당한 소녀라는 메타포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녀가 당신에게 다가오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말고, 그녀가 지나간 후 뒤를 돌아보지도 마십시오. 그녀를 무서워하지도 말고, 그녀를 피해 뛰면서 위협의 말을 던지지도 마십시오. 그저 그녀의 얼굴을 잠시 관심 있게 바라보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 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중에서


註1 : <한국영화라는 낯선 경계 > 김선아, 커뮤니케이션 북스.
註2 : <영화와 욕망 : 다이진화의 연구에서 페미니스트 맑시즘과 문화정치학(Cinema and Desire:A Feminist Marxism and Cultural Politics in the Work of DaijinHua)> 다이 진화, 뉴욕: 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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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4

문학이 80년의 광주를 다뤄온 어떤 방식
<봄날>과 [화려한 휴가]의 차이


 ‘아아, 끝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서울은, 부산은, 대구 ․ 인천 ․ 대전 사람들은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왔는데도, 끝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고 마는구나. 아아, 결국 우리들만, 우리들의 도시만 이토록 홀로 처참하게 버림 받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임철우, 『봄날5』, 문학과 지성사, 336p)



80년 5월 항쟁의 막바지, 광주 시민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27일 새벽, 이 고립된 도시로 그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바라마지 않았다. 마침내 공수부대가 도청을 밀고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이요원)가 27일 새벽, 가두방송으로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절규하던 그 목소리야 말로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투쟁의 요체였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인간 최고의 의무를 타인을 기억하는 데 있다고 했던가. 광주를 기억하는 건 결국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역동의 시대를 살아내 온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 거기에서 바로 광주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중요하다. 추억으로 고착화 시킬 것이냐, 여기, 오늘, 현재와 맞닿아 인식하느냐는 큰 차이를 지닌다. 물론 장르의 차이를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2007년의 [화려한 휴가]가 지니는 시간차와 우리 문학이, 우리 소설이 견지해 왔던 온도차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과 참여의식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밀양]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이청준의 단편 소설 「벌레 이야기」는 광주 항쟁의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당혹함을 은유한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살인자. 이청준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을 받았으니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사건을 화두로 삼았다. 이제는 노작가가 된 이청준은 20년 전, 기가 막힐 정치적 화해 제스추어를 보고 인간 심리의 본질적 문제로 심화 확장시킨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벌레이야기」처럼 80년대 광주를 다룬 소설들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앞에서 암울한 은유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지성계를 대표하던 두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강제 폐간하는 것은 물론 고은, 송기숙, 황석영 등 광주와 관련됐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수산, 현기영 등을 보안사로 끌고 가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문학은 공히 1980년대 초, 중반까지 오월, 남쪽 등으로 은유적인 형상화 작업을 거쳐야 했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다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중에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 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 「그리운 남쪽」중에서

우리 시에 있어 광주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아도르노의 테제와 비견될 만하다. 본래 자아와 세계가 일치하는 속성을 지니는 서정시는 물론 80년 이후 우리 시 중 일부는 좀 더 직접적인 운동성을 뛰어왔다. 80년대 초반 발행된 계간지 ‘오월시’를 본거지 삼아 지속적으로 광주를 알레고리로 녹여내던 시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대 분위기를 외재화하며 광주를 직설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고은, 황지우, 김준태, 김용택, 백무산, 조태일 등이 오월을 노래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까지 김남주의 「학살」과 같은 연작시나 광주항쟁 관련 시선집인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나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가 묶여져 나온다.

한편 광주와 문학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가 1985년 소설가 황석영이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함께 발간한 광주 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다. ‘5.18’을 몸소 체험한 200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기록은 80년 5월 광주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이전까지의 소극성과 달리 광주와 관련한 단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 이 시기며, 이후 6월 항쟁과 맞물려 광주를 노동자 계급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홍희담의 「깃발」이 발표된 해도 바로 1987년이다.

80년대 후반 광주는 리얼리즘과 노동문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쳐버린 소녀의 독백체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진술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장선우의 [꽃잎]을 낳았고, [박하사탕]에서 공수 부대원을 시작으로 참호하게 망가져갔던 영호(설경구)는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에서 시민군인 동생을 사살한 소대장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가 대학생들과 마주하게 되는 공수 부대 출신 만복의 형제와도 같다. 이밖에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초점을 맞춘 「밤길」, 광주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 이순원의 「얼굴」,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성과 신진 작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광주를 형상화해 낸 것이다.

물론 그 전까지 광주의 아픔을 꾸준히 다뤄 온 작가는 단연 임철우다. 80년 5월, 전남대 영문과 출신이던 그는 자기 체험의 참혹함을 작품세계에 꾸준히 녹여냈다. 아이들을 낳지 못하는 마을(「불임기」)로 광주를 형상화하거나 수배로 열다섯 곳이나 거처를 옮기거나(「동행」) 마지막 밤 친구의 외침을 묵살하고 미쳐버린 친구(「봄날」)로 천형과도 같은 부채의식을 소설 속에 그려왔다.

하지만 미시사와 개인주의 열풍이 휩쓸고 간 90년대 이후 문학은 더 이상 광주를 기억하는 것에 게을러 진 것도 사실이다. 광주에 관련된 소설이 거의 90년대 초반까지 집중됐으며 2000년 이후 관련된 작품이 홍희담의 소설집 『깃발』,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 황지우의 희곡 『오월의 신부』정도라는 점은 27년이란 세월을 감안해도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광주를 놓아 주고 동시대로 시선을 옮긴 것은 무엇보다 1998년 5부작으로 발간된 임철우의 『봄날』이 이루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총체성을 담보로 한 고통의 성과물

“한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흐린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시간들. 그 시간 속의 목소리, 웃음, 빛깔, 체취, 움직임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 오래 전 지상에 머물렀다 떠난 무수한 인간의 꿈과 절망, 사랑과 고통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들의 눈앞에 되살아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다시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꿈꾼다. 그 가당찮은 망상이, 혹은 끝내 버릴 수 없는 소망이 내게 소설을 쓰게 한다.”
(임철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2002.10.09,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서)



5부작 『봄날』은 공간적으로는 광주, 시간적으로 5월 17일에서 27일 새벽, 그 열흘간에 집중한다. 극중 영남대 대학생인 명기의 30일자 에필로그는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는 작가의 다짐이며 서울은 공수부대가 광주로 입성하기 직전 필연적으로 등장시키는 동국대가 전부다. 임철우는 그간 단편적으로, 은유적으로, 후일담 형식으로 파편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광주를 정면으로 돌파해내기 위해 10년을 쏟아 부었다. 귀신들의 원혼을 달래어 온 고통의 그 10년.

임철우는 소설적 리얼리티는 물론 총체성을 담보해내기 르포 형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드’ [24시]의 시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마치 황석영의 항쟁 기록에 기초한 듯 날짜와 시간을 명기해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갔던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복원해낸다. 여기에 격렬한 시위의 복판이던 금남로와 도청을 중심으로 광주 시내 지도와 철저히 봉쇄된 언론을 대신했던 ‘투사회보’의 내용, 계엄군의 경고문, 그리고 사망자들의 실명과 정확한 일시, 사망 경위까지. 이 같은 실제 기록은 5권의 막바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5.18’ 일지와 함께 픽션을 넘어 광주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 속 생생하고 세세하게 재현된 참살의 현장을 목도한 뒤, 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석방될 때까지의 일지를 읽고 있노라면 학살자에 대한 분노는 배가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은 6.25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 한원구의 세 아들, 무석, 명치, 명기다. 초반과 말미에 등장하는 한원구가 광주의 비극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맞닿아 있음을 명시하는 인물이라면 집을 나온 일용 노동자 무석, 강원도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광주로 차출된 공수부대 하사 명치, 전남대 연극반 단원이자 투사회보 선전 작업에 뛰어드는 명기는 광주 항쟁을 구성하는 세 축을 대변한다. 여기에 계엄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맞서 항쟁의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무석의 노동자 친구들, 실존인물인 윤상원에서 따온 민주재야 세력을 대표하는 들불야학의 윤상현, 무력했던 언론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기자 김상식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또한 참혹하게 죽어갔던 사망자들의 다성적 목소리도 주변인물과 엮어내 소설적 구성에 무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봄날』이 담보해낸 총체성은 열흘간의 대하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층적인 인물들과 생생한 재현이 전부는 아니다. 명치와 그 동료들의 갈등을 통해 신군부에 꼭두각시였던 계엄군 개인의 혼란은 물론 당시 무능했던 언론이나 민주 재야 세력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균형 잡힌 시선을 견지한다. 또 윤상현과 김상섭의 대화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민주 항쟁과 학살을 묵과한 미국의 자국 중심의 이기적 행태도 자연스레 고발된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함께 ‘5.18’의 시작과 최후까지 저항했던 원동력이 풀뿌리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었을 분명히 한다.

‘폭동이 아니야, 이 자식아. 이건 항쟁이야. 저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 저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거야. 네 눈엔 저게 폭동으로 밖엔 보이지 않아? 폭동이라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폭동이라는 게냐’
(임철우, 『봄날 3』, 문학과 지성사, 221p.)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니 군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김상섭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임철우, 같은 책, 229p.)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봄날』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계엄군을 몰아낸 뒤 시민들이 맛 본 해방구의 짜릿함도, 아버지와의 화해의 순간도, 달콤하지만 짧게 끝나버린 첫사랑 때문만도 아니다. 학살의 끔찍한 현장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쩌면 찰라 일지 모른다. 임철우가 복원해 낸 10년간의 기억은 우리에게 심상한 정서와 뚜렷한 분노, 이 두 감정을 나란히 전달해 준다. 도청에서 사그라져든 목숨들, 그리고 숱한 부상자들. 왜 그들이 자국 군대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 결국은 우리 현대사에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분노와 더불어 또 다른 현실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역사에 결코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믿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2007년의 블록버스터 영화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에서 김지훈 감독이 작가적 인장을 찍은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라스트 신애의 상상신이다. 죽은 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고 홀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살아남은 자 신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깔리는 이 라스트 신은 상업적인 엔딩에서 약간은 비껴나 있지만 광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란 정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대로 의롭게 앞서 간 이들과 반면 따르지 못하고 폭도로 내몰려야 했던 산자 신애. 하지만 그 간의 역사적 궤적을 놓고 봤을 때 그들이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5.18’을 100억짜리로 재현된 상업영화 한 편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말이다. 어쩌면 망각하고 있었지 모를 우리들을 위한 면죄부의 증거로 이 블록버스터를 소환해 낸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너무 늦었거나 너무 타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서울 그리고 지식인들인 어디에 있었느냐를 자기 성찰한 [꽃잎]이 나온 것이 1996년이다. 10년 전에도 발포 순간의 아픔은 소녀(이정현)가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든 흑백 플래쉬 백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민우(이준기)가 준우(김상경)의 품안에서 죽어가고, 나주댁(나문희)이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신애가 준우와 작별하던 그 눈물의 스펙터클을 위해 100억 들였다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너무 타협했다. 대중들의 감성에 맞게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유사한 구조로 만들었다지만 영화를 본 고등학생이 왜 사건의 인과관계 빠져있느냐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면(김귀현, “10대들이 말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그리고 '전 장군'”, 『오마이뉴스』, 2007.08.12.) 이건 영화적인 타협이자 불성실한 계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곱씹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정점에 광주가 그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했던 [박하사탕]과 비교해도 너무 늦었다. 한 논객이 왜 하필 지금이냐며, 주인공들이 호남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대선용 영화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건 전적으로 감독과 제작진의 탓이다.

[봄날]로부터 10년 뒤, 80년 5월로부터 27년 만에 도착한 [화려한 휴가]는 절반의 공과는 가져갈 것이 분명하다. 2시간 동안의 감정의 소비를 통해 공적 기억의 자명종을 울리는 일.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신애의 절규는 아프게 다가온다. 망각은 과거 중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망각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는 야스퍼스의 전언이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유의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봄날]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필독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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