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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9 진실을 돌려서 말하기 [별빛속으로]

[4인용식탁]에서 연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진실이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들에 국한된다. 왜? 진실을 정면으로 응대하는 것은 심각한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이가 진실을 직선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가장 손쉽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은 판타지이며, 이는 판타지가 늘 가장 잔혹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스테리 멜로라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수식어로 치장된 이 영화의 실상은 멜로영화가 아니다. [별빛속으로]라는 영화는 판타지라는 세련된 화법으로 우리가 겪어온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대한 경각심을 유발시키기 위한 작품이다. 내 정서가 메말라 있다고? 뭐,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다. 어쨌거나 운을 뗀 이상 나름대로 내가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그들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늘에 대공사격을 행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불꽃놀이인줄 알고 구경을 나갔다고 한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는 이다지도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받아들인 아름다움에 비교할 때 그것의 실체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이 대공사격 중의 총탄 하나가 노란샤쓰(수영, 김C분, 주인공과 구분하기 위해 노란샤쓰로 언급할 것이다)의 몸을 파고 들었다. 그는 죽었다. 군부의 총질이 무엇을 향했는가는 상상에 맡긴다고 하더라도(대충은 짐작 가능하리라 믿는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이다. 정부에 의해서.


노란샤쓰의 연인이었던 삐삐소녀는 그의 죽음 이후 줄곧 방황한다. 그러고는 죽은 연인의 이름과 같은 수영을 만나고 마음의 결심을 내린다. 진정한 사랑이란 죽음까지 쫓아가는 것.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에 야유를 하고 반항하다 투신한다. (그렇다고 노란샤쓰가 민주화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히피적인 인물이고, 시대와는 조금 벗어난 듯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필 그런 노란샤쓰가 시대에 의해 희생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죽음이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전태일의 분신이 세상을 조금 정도는 바꿀 수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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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영에게 죽은 이들이 나타나는가?

삐삐소녀가 죽고 난 후에 수영에게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죽었을 것이 분명한 삐삐소녀가 자꾸 그에게 나타나는 것. 왜 하필 귀신들이 수영에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수영이 삐삐소녀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삐삐소녀의 죽음은 수영에게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그 이후로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생전의 그녀와의 경험들도 수영이 조금씩 세상에 눈뜨도록 만들어가는 무엇이었다. 아름다운 연애질 같아 보였던 비밀의 공간에서의 장면. 실은 그 곳은 그녀가 죽기 전에 뿌려댔던 삐라를 만들었던 장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은 그가 시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암시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죽기 전 그에게 진실한 사랑은 죽음까지 쫓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실제로 자신을 따라 죽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의지를 계승해 달라는 의미로 탈바꿈한다. 그녀는 자신의 뜻을 이을 사람으로 수영을 택했던 것이지, 그를 사랑하는 연인 대신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다. 그가 맺어진 사람은 노란샤쓰의 동생이며, 삐삐소녀의 귀신은 항상 노란샤쓰와 함께 한다. 또한 삐삐소녀는 계속하여 시골쥐 수영에게 각성할 것을 재촉한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왜 그들은 수영에게 여동생을 부탁하는가?

꿈을 꾼 후 무턱대고 수지를 찾아간 수영은 흡사 시월애에서의 한 장면처럼 이렇게 말을 던진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 그는 자신이 겪은 그 비밀에 대해 자신의 아내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당연히 오빠의 이야기일 것임에도 - 관객이 보기에는 -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그의 말을 막는다. 그의 경험은 단지 그녀를 만날 수 있도록 한 매개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귀신들이 수영에게 동생을 부탁하는가?


동생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꿈을 통해 삐삐소녀의 49제를 함께 경험한 수영은 그 환상 속에서 오빠가 아니라 똑같은 방식으로 죽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째서?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억울하게 죽은 선배들처럼 역시 이 세상에 의해 또다시 희생될지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지는 자신들의 죽음으로 인해 차마 지켜지지 못하고 남겨진 무언가를 상징하게 된다. 이런한 맥락에서 귀신들이 수영에게 나타난 목적은 의지의 계승,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신들이 지켜주고 싶었던 무엇을 대신 보호해주는 것임을 확신하게끔 만든다.


현실과 꿈, 그리고 경계

삐삐소녀의 죽음을 함께 경험했던 마지막날, 수지는 하늘에 당구공을 던지며 "이 나쁜 놈들"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하늘에 별이 환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잠시 후 무수히 쏟아진 대공사격은 그 별빛을 가려버린다. 70년대,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그런 곳이다. 교묘한 폭력이 언제라도 별빛(진실)을 가려버릴 수 있는 곳. 너무나도 교묘해서 보는 이가 오히려 그 폭력에 동조하게끔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곳. 이렇게 혼란스러운 곳을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애매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도 꿈 속처럼 헤맬 수 있다. 7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사용되었던 조명들은, 플롯과 함께 이 영화를 좀 더 몽롱하게 느껴지게끔 만들고 있다. 삶의 실체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은 결국 자신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이다. 물론 삶과 죽음의 이분법이란 너무 순진한 것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봐야할 진정한 현실이란 존재하기 마련이다. 영화의 제목 '별빛속으로'가 결국은 그러한 진실에의 접근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점차 자신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수영은 스스로가 죽어있음을 알게된다. 영화에서 경계를 헤매는 것은 수영 뿐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영혼의 카니발]을 떠올릴 법한 공중전화부쓰씬.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사전적으로 살아 있을 뿐이다.


영화가 요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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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난 수영이 시를 쓰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에서 수영은 주위의 운명에 이끌리듯 수동적인 형태로 각성을 요구받는 대학생 캐릭터로 읽힌다. 그가 시를 쓰는 행위, 즉 창조적이고도 주도적으로 말을 할 수 있도록 변했다는 사실은 바로 수영이 세상에 대한 눈을 깨우쳤다는 각성의 증거이다. 어른이 된 수영.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생과 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학생들 -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인 청년들 - 에게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며, 진실한 현실로 귀환하기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그가 지식인이라 말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희망적인 설정이다.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삶을 가르치는 선생이 얼마나 있던가? 영화는 어른이 된 수영의 입을 빌어 교통사고를 겪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눈을 뜰 것을 요구한다. 최근의 많은 한국영화들이 응석부리는 남자들을 그려놓고 자신들은 이 험한 세상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회피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보다 서너발짝은 앞서 나간 것이다. 젊은 자들에게 일깨워줄 의무.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반성 역시 이루어져야 함을 영화는 느끼게끔 한다. 동시에 우리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과거의 인물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 합당한 역사 없이 세상이 갑자기 우리에게 무언가를 던져주는 경우는 드물다. 귀신들의 가호는 우리들에게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의지는 이어져 왔고, 또 이어져야 한다. 모른 척하거나, 징징거리고만 있을만큼 시간이 넉넉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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