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깊고푸른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6.13 배창호의 영화를 보며 얻은 사적인 깨달음들

김숙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그건 가난한 동네, 특히 집창촌이 있던 동네에 살던 여자애에겐 당연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형사가 나에게 가끔 과자를 주곤 했던 어떤 언니가 살해당했고, 그게 동거하던 남자의 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해줬던 일도 있다.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며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고, 딸을 가진 엄마들은 더욱 억척같이 일을 하던 그 동네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멋도 모르고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선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교양있는 동네에서 섹스는 보다 음습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섹스는 노골적이기 마련이다. 머리와 눈을 '나보다는 윗쪽' 사회에 두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섹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 특히 영화는, 그저 어른들과 관련된 일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심지어 무서운 것이기도 했다. 섹스와 가난이 합쳐지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삶과 세상에 대한 공포는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네 배가 된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들도 미아리의 그 가게들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 동네에 살던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곳은 별로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언니들이 드레스를 입고 깡충깡충 뛰어가는 곳이기도 했고, 공포와 위험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깜박이는 듯 느껴지기는 곳이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알아서 공부를 했던 건, 가난한 집안의 첫째딸에 외모도 볼품이 없으면서 공부까지 못 하면 저 언니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사춘기의 호르몬의 폭발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시상영관에 드나들며 에로영화들을 보다가 우연히 뇌에 충격을 주는 영화를 발견하고 점차 영화광이 되어가는 수순을 밟았을 그 나이에, 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키워나갔다. 용돈이 따로 없었고 영화관에 따로 갈 돈도 없었던 데다 영화는 그렇고 그런 저질스러운 오락이라 여겼던 만큼, 내가 충무로 키드나 헐리우드 키드가 될 일은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집에서 구독하던 조선일보에 실리던 영화평은 가끔씩 읽곤 했던 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궁금증과 매혹을 느끼던 금지된 어둠의 세계를 대표해주는 것이 내게는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단,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또렷이 인지하고 있던 내게는 매혹보다는 공포와 불쾌감이 더 압도적이었지만.

2.
한국영화에 대해 저런 식의 편견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던 건 그저 하필 그런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특이한 비극이겠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해 스크린, 섹스, 스포츠(이른바 3S 정책)를 장려했던 당시 시대상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점심을 500원짜리 학생회관 라면으로 때우거나 선후배한테 빌붙고는 그 돈으로 비디오방에 쳐박혀 영화들을 보거나, 그 당시부터 시작된 시사회라는 것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얼추 94, 5년 대학 시절 때부터다. 문화원 세대인 내 윗세대들과 달리 나는 PC통신 영화동호회 세대로, 동호회 사람들과 시사회 정보를 공유해 달려가거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상영회’라는 형식으로 카페를 빌려 누군가 어찌어찌 구해온 불법 복사판 비디오를 틀어놓고 다 함께 둘러보았다. 세상에, 영화에 누벨바그니 뉴 저먼 시네마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저 뒷골목에서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채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자들만 보며 경멸감을 갖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게다가 어떤 영화들은, 나이를 꽤 먹어서까지 순진함을 버리지 못했던 나보다 더 소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었다.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처음 보았던 상영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동호회 시솝이던 형은 누벨바그와 그 이후에 대해 40분에 가까운 설명을 했고, 나는 ‘즉석에서 저런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할 수 있다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움과 감탄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저게 대체 뭐냐 싶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가슴이 벅차서 창가에서 한참동안 담배를 피우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옆동네 하이텔 영화동호회의 어떤 영화소녀의 일화를 들으며 무려 ‘열등감’ 씩이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게는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 양지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들이나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거다.

영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고 한국영화사에 대해 이것저것 주워듣기 시작하면서, <어우동>의 이장호와 <깊고 푸른 밤>의 배창호 같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나중에 비디오로 본 <어우동>은 격렬한 심리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당황했다.) <깊고 푸른 밤>이야말로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 뒷골목에서 그런 식으로 '말없이 얘기되는' 듯한 섹스영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겠답시고 10여 년 전에 <깊고 푸른 밤>과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비디오로 챙겨보았을 때, 다른 두 작품엔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저 <깊고 푸른 밤>만큼은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장미희의 상당히 양식화된 연기와 발성이 그저 거북살스럽기만 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여전히 순진했을 뿐 아니라 완고한 도덕율을 가지고 있던 내게, 장미희가 연기했던 제인이나 안성기가 연기한 호빈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넌 왜 그러고 사니, 이게 둘을 향한 내 반응의 고작이었다.

3.
배창호 감독의 전작을 상영할 거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비디오로 보면서 감탄했던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드디어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두 영화와 함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꼬방동네 사람들>과,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배창호 감독을 80년대 최고의 흥행술사 자리에 확고하게 올려놓은 <고래사냥>을 확인하는 게 당시 내 계획이었다. <러브스토리>는 오랜만에 다시 봐야겠다 싶었고, 다른 작품들은 시간 되면 보고 아니면 말고. <깊고 푸른 밤>을 다시 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적도의 꽃>을 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황진이>는 말하자면, 그저그런 영화들만 있었고 의무감으로라도 별로 보고싶지 않다는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을 깨준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에 필름으로 꼭 봐야만 했다. 물론 제작된 연도상 <황진이>를 ‘옛날영화’로 분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내게는 무조건 ‘옛날영화’로 구분되곤 한다. 사실 배창호 감독이 한창 한국영화를 주도하던 80년대는 내가 고작해야 국민학생, 중학생이던 때다. 배창호 감독은 나보다는 내 바로 윗세대의 감독이었다.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의 개봉 사이에는 불과 3년의 텀이 있을 뿐인데도, 내게는 어쩐지 <천국의 계단>은 옛날영화, <젊은 남자>는 현대영화로 구분되는 듯 느껴지니까. <젊은 남자>와 <러브스토리>를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 그저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옛날 감독은 어쩔 수 없나봐, 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건 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 버렸지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작업이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한 모 영화제의 영화 번역을 하느라 특별전의 첫 주를 날려먹은 후,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총 17편 중 내가 본 건 11편.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360도 회전이동 샷, 컷을 하지 않고 패닝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전환을 하는 샷 같은 건 이제는 마치 감독의 인장처럼 느껴진다.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이 <고래사냥 2>보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흥미로웠고, 영화 내내 고정컷이다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단 두 컷에서 카메라가 움직인다거나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비스타비전 비율인 대신 화면의 ‘깊이감’을 활용하며 공간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황진이>의 컷들도 신비로웠다. <러브스토리>는 너무 시대를 앞질러 나온 선구적이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였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보다 이명세 조감독의 터치가 더 많이 보이는 듯해서 또 재미있었다. <고래사냥>은 거의 열광을 하면서 보았는데, 특히 이미숙의 연기에 눈물을 꽤 쏟았다. <정>은 이 감독이 내 편견대로 80년대의 영화가 아니라, 계속 그 영화세계를 확장해가고 진화시켜가고 있는 ‘현재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런데, 애초에 서너 편 봐야지 했던 걸 열한 편이나 보게 만든 영화, 그게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정확히 하면, 비디오로 봤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름으로 상영된 <깊고 푸른 밤>.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을 보며 ‘건졌구나’ 싶었다. 솔직히 두 영화 모두 이제 다시 보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배창호 감독이 독립영화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 전까지 작품 중에서는 여전히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 거기에 이번에 처음 본 <고래사냥>이 가장 좋고, 내 정서도 다소 이런 예쁘고 고운 쪽에 맞다. 그럼에도 저 두 작품이 내게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비로소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의 두 번째 장벽이 깨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래 전 <황진이>를 보면서 편견의 첫째 벽이 깨진 바 있지만,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비열하고 계산적인 인물들이 어둠의 포스를 한껏 몸에 두른 채 쾌락과 욕망을 좇다가 추락한다는 본격적인 ‘어른영화’ 중 품격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깊고 푸른 밤>에서의 안성기는 딱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연상시키는, 지독하게 섹시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안성기의 전신누드 씬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영화에서의 안성기는 예의 그 사람좋고 순한 표정을 드러내지만, 이 영화에서만은 차갑고 비열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젊은 남자’의 매력을 선보인다. 차이나타운을 걷는 장면에서의 안성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영문포스터 속에서 자켓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로버트 드니로와 똑같다. 안성기가 연기한 백호빈이라는 캐릭터는 <젊은 남자>에서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인 이한의 전신인 한편, 이한보다 훨씬 비열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역시나 360도 회전이동 씬으로 표현되는,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백호빈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단단하고 비열한 외피 안에 숨어있는, 순수와 선을 향한 지향과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그 끝없는 욕망과 꿈이 얼마나 가련한지, 그럼에도 얼마나 절박한지, 또 이것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피로한 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바로 그 씬에서 이 남자가 쥐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더욱 대비시켜 드러낸다. (그는 수동적으로 딜레마에 처해있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딜레마와 모순을 쥐고 있다.)




4.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영화사에서 자신의 영화적 영감과 영향을 찾으면서 정작 한국영화의 과거와는 철저히 단절돼 있다. 단순히 사대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선배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가해진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우리는 다시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 상처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형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이 반쪽짜리 영화 만들기의 역사는 영화를 ‘딴따라’로 취급하며 자료 보존과 정리에 있어 소홀히 했던 외적인 환경과 맞물린다. 제대로 시스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 오락거리로서 괄시받았던 영화라는 이 매체가 문화의 일부, 혹은 예술의 일부로서 재평가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의 분위기와 관련해 영화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첫인상을 기술했고,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인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특별한 인상이 가능했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반은 불과 20년 전 우리의 한국영화가 사고되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독은 고작 임권택 감독 한 명에 불과했다. 일부 평론가와 진지한 관객이 임권택 감독에게 그토록 연구를 집중하는 이유, 그리고 많은 숫자의 일반 영화팬들이 임권택 감독을 그렇게도 모질게 외면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임권택 감독은 저 상처의 역사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서) 고스란히 증언하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그 임권택 감독의 영화마저도 100편을 모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편수의 문제가 아니라 프린트 유무의 문제에서.

배창호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펴낸 김영진의 [이장호 vs. 배창호]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를 읽었다. 그 책들에 의하면 ‘배창호 특별전’을 통해 재발견한 ‘현재의 감독’ 배창호는 실은 이장호 감독과 연결돼 있고, 그 이장호 감독은 다시 신상옥 감독과 연결이 돼 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장호 감독이 아닌 배창호 감독의 전작전을 먼저 한 것도 전적으로 프린트 수급과 상영허가 확보라는 아주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마저 전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여기에서 배창호 감독의 존재가 왜 특별한가, 의 이유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창호 감독은 80년대에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재’의, 한국의 현대영화를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배창호 감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저 단절된 과거와 지금 현재 사이를 잇는 가교적 존재, 혹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현목 감독과 이만희 감독, 이두용 감독, 신상옥 감독은 이미 과거의 감독이고, 이장호 감독 역시 과거 속으로 떠밀려진 채 다시 현재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명세 감독은 너무 현대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배창호 감독이 있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전편을 필름으로 보는 게 어쨌건 가능하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는 지금 동시대에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이미 활동을 접은 옛 배우들을 동시에 보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젊은 배우’로 활약 중이다. 봉인된 한국의 과거영화에 대한 탐색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겠구나, 라고,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배창호 감독을 추가하면서) 중얼거리게 된 이유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84
  • 03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