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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1.28 [검은 땅의 소녀와] 땅 위에선 구원할 수 없는 삶



돌보지 않는 독립적인 삶, 전수일

여기 아무도 뒤돌아 보지 않는 땅,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소녀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보는 소수의 관객이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건 때론 위태롭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검은 땅의 소녀와>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수일은 로컬리티의 특징을 가지고 영화를 찍는 감독이다. 철저히 충무로를 벗어나 자신의 주활동 무대인 부산에서 '동녘필름'이란 제작사를 차리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단 한편도 흥행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없지만 아직도 그는 최소 2년에 한편씩은 신작을 내고 있다. 그의 영화 작업에 대한 열정은 지방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표본과도 같다. 그래서일까? 그는 그가 사는 공간을 그리고 이야기하는데 더욱 친숙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

그의 영화에는 원작이 있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향(태백)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그의 전작을 보면 강원도 탄광촌을 찾아가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정처없이 유랑하는 그들은 배회하며 그곳에서 흔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지나간 추억을 그리워할 뿐 다시 그곳을 이내 떠나고 만다. 그런데 <검은 땅의 소녀와>는 좀 다르다. 소녀와 아버지, 그리고 오빠는 이미 탄광촌에 산다. 그들은 예전부터 그곳에 계속해서 살아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전 영화들이 탄광촌의 희미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더 구체적으로 그곳의 광경을 묘사하고 사라져가는 것의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진폐증으로 직업을 잃고 보상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해곤은 마치 곧 있으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될 태백의 탄광촌과 같아 보인다.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았지만 남은 것은 마음의 상처와 육체의 아픔인 해곤과 일자리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처럼 흉측한 몰골이 된 태백이 뭐가 다르겠는가?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아픔들을 전수일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변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으로 표현한다.

땅위의 천사 영림

그런 해곤에게 영림은 유일한 낙이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오빠 동구를 보살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영림으로 인해 해곤은 꿋꿋히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가끔씩은 외면할 때도 있나보다. 새로운 장사를 시작한 해곤은 사기를 당하고 그 어떠한 해결방법도 구해지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영림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가 바라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 최후의 방법을 실행한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영림은 감독 전수일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예전 고향의 모습처럼 보인다. 9살 소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세계로 가득하지만 영림은 그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닭장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꼬꼬댁~'하며 해곤과 차 속에서 부르는 모습은 그녀의 행위로 인해서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서 영림은 '천사'와도 같다. 천사는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려 한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어 보이는 마지막 장면. 천사는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오빠 동구는 장애시설로, 아버지 해곤에게는 라면에 쥐약을 섞어 먹게 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줄만 알고.

검은 땅, 사북

검은 땅, 사북은 그런 곳이다. 진심으로 다가서려 해도 진심이 허용되지 않는 메마른 땅. 그곳에 남기 위해서는 먼지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곳. 그나마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질 땅 위에서 그리움으로 가득찬 가슴은 운다. 그곳을 멀리 떠나 '히말라야'로 간 전수일은 또 무엇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게 될까?

더불어 조영진

<밀양>에서 아이 유괴범으로 등장해 전도연의 가슴을 흔들고 간 조영진은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전도연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는다. 더불어 <내 안에 부는 바람>의 '노인' 편에서 노숙자로 등장했던 그가 그의 주변을 함께 배회하던 지체 아이와 함께 10여년이 지나 아버지와 아들로 나온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그리고 그때의 노인은? 영림네 가족을 말없이 껴안는 동네 아저씨로. 이렇게 전수일의 작품은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잘 살펴보면 더더욱 흥미로운 점이 생긴다. 아직 챙겨보지 못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도 그래서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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