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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8 길 위에서 영화를 만나다 ②

길 위에서 영화를 만나다 ②

그리고... 2008.07.18 15:2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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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청산도, <서편제>의 세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 속 푸른 섬



장흥을 뒤로하고 완도로 달려와 또다시 찜질방에서 불편한 잠을 청한 나는, 다음날 모기들에게 물어뜯기며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시계바늘은 5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고 평소 같으면 잠자리로 다시 곤두박질 칠 시간이었지만 청산도로 가야하는 내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완도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편은 성수기 때는 오밤중에도 여러 척 다니곤 하지만 비수기 때는 다섯 번 정도밖에 없다. 청산도로 가는 첫 배가 오전 8시에 있고 그 후에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배가 오므로 청산도에서의 이틀을 꽉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배를 타야했다.

완도 터미널에서 청산도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넘어가는 배편이 아주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나 외국인들, 관광차 온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제주도로 넘어가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청산도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생필품을 조달하기 위한 업자들과 한국 관광중인 듯한 일본인 아주머니들 정도다. 새벽에 자다가 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이 많이 흐리다. 배가 뜰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을 했지만 통통배도 아니고 걱정을 붙들어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라던 선장님의 말에 안심하며 청산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청산도는 완도에서 뱃길로 약 한 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작은 섬이었다. 청산도로 가는 길에 많은 섬들을 지나치며 어떤 섬이 청산도일까 혼자 설레어 하기도 했지만, 남해는 섬이 많은 ‘다도해’라 불리는 곳이므로 미리 청산도의 모습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서울에 비하면 몇 되지 않는 가구들이 사는 섬, 청산도. 벌써 집을 떠나 온지 닷새째였고 집이 그리울 법도 했지만 내가 늘 꿈꾸어 오던 섬에 들어왔다는 생각만으로 또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해둔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항구에서 민박집까지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아주머니와 함께 차를 몰고 데리러 오셨다. 산길을 지나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편하게 민박집에 도착한 나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으니 느긋하게 청산도를 구경해도 좋을 여유가 생겼지만, 서둘러 <서편제>에서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걸어오던 그 길을 밟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낭 속 짐들을 꺼내서 물통이나 카메라 등 필요한 짐들만 빼서 재빨리 짐을 새로 꾸렸다. 날이 그다지 맑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비를 만날까봐 보성에서 사두었던 몇 개의 우비도 챙겼다.

“민영씨, 비가 올 것 같은데요? 청산도에는 원래 비가 잘 안 오는데 별일이네.”

가벼워진 배낭을 챙겨들고 숙소에서 나오려는 나를 보며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하늘을 보자 완도에서 한창 하늘을 뒤덮던 검은 구름이 청산도의 끄트머리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우비도 챙겼는걸요. 청산도에는 비가 잘 오지 않나 봐요?”
“북쪽 지방에 폭우가 내려도 청산도는 늘 맑아요. 비가 좀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비가 쏟아질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왜 하필이면 오늘 날이 흐릴까?”

민박집은 청산도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쪽 하늘을 보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차하다가 비를 만나면 우비를 입고 계속해서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웃음을 지으며 걱정하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도로를 따라 왔던 그대로 산길을 올라가니 온통 푸르른 논밭이 보였다. 최근에 부쩍 청산도로 흘러오는 사람들이 많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청산도는 섬마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돌로 올려진 집들과 함께 양쪽 어디를 둘러보아도 초록색 풀들이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터미널에서 청산도 남쪽으로 올 때 지도를 가져온다는 것을 깜빡했지만 어느 길로 가도 <서편제>에서의 소리길이 보일 것이 분명하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천둥소리가 들렸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한 두 방울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리 챙겨둔 우비 하나는 입고 나머지 하나는 배낭과 카메라가방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칭칭 감은 뒤 다시 걸었다. 근처에서 논을 돌보고 계시던 어르신들은 걱정스런 말투로 숙소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셨지만,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빗길을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소리 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영화 <서편제> 中

청산도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린 목적지였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는 전라남도 일대를 두루 걸쳐있으나 영화 내에서 약 6분에 달하는 가장 길고 평화로운 유봉 가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청산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편제>보다는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유명한 드라마 한 편의 전체 세트장보다 유봉 가족이 걸어오는 소박한 흙길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더욱 즐겁게 했다.

처음 <서편제>를 만났을 때 나는 어렸었다. 당시 나에게 영화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울 백만명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쾌거를 이룩했다는 것 외에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 영화가 주는 이야기의 맛에 매료되어있던 나는 <서편제>가 보여주는 한(恨)의 굴곡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편제>는 소리를 주제로 한 매우 지루한 영화였으며 나의 생각과 내 또래 아이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이 영화를 대할 시간이 점차 늘어났고, 한국 영화사에 쓰여 진 기록보다 마음속에 영화 <서편제>를 담아두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송화와 동호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일기인양 그들과 나를 동화시켰고 <서편제>를 보면서 흘린 눈물도 적지 않았다.

<서편제>의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다. 늘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봉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남도 천지를 떠돌아다닌다. 유봉은 동호와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쳐 자신이 이루지 못한 득음의 경지를 깨우치고 싶어 하고 그의 기대에 맞게 동호는 북을, 그리고 송화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내가 <서편제>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는 이 세 사람이 맑은 하늘 아래 진도아리랑을 부르면서 먼 길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송화와 유봉의 소리를 팔아 수많은 잔칫집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세 가족은 어느 날 자신들의 돈벌이가 되는 잔치판을 훌쩍 떠난다. 밥 한 끼를 해결할 돈 없이 여기저기에 붙어사는 생활을 반복하던 유봉은 소리공부를 위해 두 남매를 데리고 배를 타고 청산도로 넘어온다. <서펀제>에서의 가장 유명한 롱테이크, 진도아리랑이 길가에 울려 퍼지는 장면은 그들이 소리를 팔아 하루를 채우던 삶을 잠시 그만두고 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아리랑을 부르며 길을 지나가는 그들의 인생은 그 이후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힘든 생활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청산도의 소리길 위에서만큼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유봉과 남매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는 소리길을 얼마 남기지 않고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로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고 길가에 그저 서서 고개를 넘어가려던 나는 소리길 옆에 작은 초가집으로 몸을 피했다. 엉겁결에 피한 초가집이 송화, 동호 남매가 어린 시절 유봉에게 아리랑을 배우던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우비는 소용없을 정도로 퍼붓는 빗줄기에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물건이 물에 빠진 듯이 젖었고 그것을 말리기 위해 배낭에 있는 소품들을 모두 꺼내어서 초가집 바깥마루에 늘어놓았다.

한참을 초가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잠이 든 지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빗줄기는 여전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를 맞아 퉁퉁 불은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한번 쭉 피고 일어났다. 청산도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고 한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날이 저물고 돌아갈 길이 더욱 힘들 것 같아서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옷을 추스르고 배낭끈을 다시 조였다. 비는 아까보다 더 강하게 쏟아 붓고 있었고 소리길에서는 흙물이 줄기를 이루며 아래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걸음을 빨리 해야 지친 몸을 편하게 누일 수 있었지만, 선자마을의 주막에서와는 같이 마음이 길을 벗어나게 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젖어들고 있는 배낭을 멀리 그늘에 놓고 우비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감싼 카메라 하나를 든 채 소리길을 걸었다. 내가 비를 맞고 있는지, 아니면 비가 나를 맞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고 곧이어 몸에 한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오기로 길을 걸은 지 몇 십분, 갑자기 귓가에 반복해서 울리는 진도아리랑과 빗소리가 내가 걷는 길 위에서 하나가 되자 나는 넋을 잃었다.

“송화야. 내가 니 눈을 그리 만들었다. 알고 있었냐? 그럼 용서도 했냐? 니가 나를 원수로 알았으면 니 소리에 원한이 사무쳤을 텐디 니 소리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더구나. 이제부터는 니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혀라.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 영화 <서편제> 中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젖은 옷가지를 모두 빨아 방안에 걸어놓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 해도 지지 않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청산도의 반을 걸어 다녀 피로가 쌓인 덕분에 나에게 시간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중간에 몇 번 깨어서 풀벌레 소리를 듣곤 했지만 곧 깊은 잠이 들어 이튿날 해가 뜨고 훨씬 지나서야 주인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차리신 아침밥을 먹고 청산도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밖을 보니 오늘은 어제만큼 흐리지 않고 바람이 선선히 불어 맑은 날씨였다. 남은 여행의 시간이 짧지 않았다면 날이 좋아 하루정도 더 청산도에서 머물고 싶었다. 아쉬움을 몇 가지는 남기고 가야 다음에 청산도로 들어올 때 한결 반가움을 느낀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민박집을 나섰다.

어제 쏟아지던 빗길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땅은 벌써 웬만큼 말라있었다. 빗줄기에 가려 올곧은 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까닭도 있기도 했고 맑은 길을 보고 떠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서편제>의 고개를 찾았다. 날이 좋기 때문인지 북적북적해진 길 위로 사람들은 저마다 덩실 춤을 추며 웃음을 흩뿌렸다. 서편제 길의 시작점이 되는 곳에 올라 가만히 앉아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아주 약간의 이야기를 흘려주었다. 몇 몇의 관광객 무리가 길을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될 무렵까지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서편제>와 <천년학>이 교차하는 곳, 해남의 유선관

서울로 올라가는, 그러니까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해남에 있었다. 원래 해남은 남도 여행의 일정에 없었던 곳이지만 난생처음 땅끝 마을이라는 곳을 구경하고 싶기도 해서 하루를 해남에 머물렀다. 해남의 일정에 대흥사가 빠져서 되겠느냐며 추천해주시던 군 내 버스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 문득 대흥사의 입구에 있는 유선 여관이 생각났다.

남도 전체를 중심으로 <서편제>와 <천년학>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실제로 두 편의 영화가 맞물려 공존하는 공간은 단 한 곳이고 그곳은 해남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유선여관이다. 오래 된 한옥으로 지어진 유선관은 <서편제>에서는 유봉이 부르는 어사출도를, <천년학>에서는 백사노인의 칠순 잔치를 동시에 담고 있다.

대흥사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차를 위해 닦여진 차도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걸어서 절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였다. 두 가지 길 모두 한참을 가야 대흥사에 당도할 수 있는 길이었고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산책로 길을 택했다. 나무가 빼곡하게 드리워져 햇빛이 잘 보이지 않는 그늘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반시간을 조금 넘게 걷자 희미하게 큰 한옥집이 한 채 보였다. 올라오는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 대흥사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쓰여 진 것을 얼핏 보았는데 유선관의 주인 할머니도 그것 때문인지 분주해보였다. 안마당에는 송화와 동호가 놀던 느티나무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잔치가 한창이던 고운 한옥들도 영화 속 그대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대흥사의 행사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 몇 마디에 대답이 없으신 할머니를 뒤로 하고 유선관의 주변을 산책했다.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두 영화에서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천년학>과 <서편제>가 잠시 마주치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해남읍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목에 또 다른 영화의 환상을 만나다

다섯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돌아온 서울의 공기는 탁했다. 단 일주일동안 푸른 벌판을 보며 지냈을 뿐인데 어쩐지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정말 우스운 말이겠지만, 터미널에 내려서 익숙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달려왔던 시간은 일주일. 고작 일주일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여행에 있어서 가장 짧은 시간을 달려온 것이 분명한데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낯선 나라를 다녀온 듯 어깨에선 좀처럼 여행의 바람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찍는 것, 그리고 영화에 대해 쓰는 것. 많은 사람들은 영화라는 단어 아래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열정을 분출하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나는 대만에 가고 싶었다. 차이밍량의 영화가 나의 영화적 삶에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이라는 나라에 볼 것은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관광모토로 내세우고 있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단지 영화 속 한 장면을 만나기 위해서 대만이라는 낯선 나라에 발을 딛고 싶었다.

나에게 남도는 대만이라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꽤나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다. 다른 나라를 다니던 시간보다 자국의 여행 시간이 짧았던 것을 자책하며 훌쩍 남도로 떠난 이유도 있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영화적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허락된 곳은 남도뿐이었다. 여러 날 두 편의 영화와 한 명의 감독에 대한 상상은 풀숲을 파헤치며 길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판타지는 끝났다. 정확히 서울로 오는 버스에 내리는 순간, 나는 영화적 환상에서 깨어나야 했다. 매번 영화관에 나오며 겪는 약간의 공허함을 또다시 느껴야만 했다. <서편제>와 <천년학>을 오가는 유봉의 삶이, 그리고 송화와 동호의 고리가, 결코 내 것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청산도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많았다. 길을 걸을 때마다 마치 다른 세계의 동물을 보는 듯 염소들과 소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며 나를 불렀다. 청산도는 집집마다 막혀져 있는 담장이나 대문은 없었지만 그와 비례해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모자를 눌러쓰고 길을 걸어 다닐 때마다 스스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혼잣말을 해야 했다. 이따금씩 어릴 때 하던 버릇처럼 작은 풀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는 벌레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홀로 다녔던 여행이니만큼 누군가 나와 같은 목적으로 청산도를 들렸기를 기대하면서 한참을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삼켜야만 했었다.

판타지는 끝났지만 여전히 또 다른 영화로의 환상은 남아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길고 긴 판타지는 나의 테두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문득 느꼈다. 영화 속으로의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무게를 벗어내기에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임권택이 사랑한 남도의 길을 걸어오며 수 만 가지 작은 기쁨을 느꼈다. 유봉 세 가족이 길 위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처럼, 나도 길 위에서 두 팔 가득 안아야 할 영화들을 생각하며 행복을 느꼈다. 누군가의 삶 일부분을 하나의 이야기로 인해 일정 움직일 수 있다는 것처럼 매력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온 길처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두 영화를 기억하며 늘 그렇듯 앞으로 걷게 될 것이지만, 때때로 한번 혹은 여러 번 뒤를 돌아 그들을 확인할 것이다. 초여름에 만난 아름다운 남도의 길처럼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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