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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촬영감독은 감독의 눈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감독뿐 아니라 촬영감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촬영감독의 존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하게 반복되는 말들로 이 특집을 기획한 이유를 쓰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보자. 영화를 보면서 촬영감독의 존재를 잊는 일은 평범한 경우이며, 영화가 잘 되었을 때 그 영광이 감독 한 명에게 돌아가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나는 영화에 있어 이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촬영감독이라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한 편의 영화에서 감독과 가장 가까운 공동 창작자임에도 주목 받는 정도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뒷자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영화는 '보는 예술'이다. 관객인 우리가 보는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을 (감독에 앞서) 촬영 순간부터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은 촬영감독이다. 영화의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 관객인 셈이다. 결국 윗 단락 첫 문장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촬영감독의 특권이자 의무인 이 첫 번째 관객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찍혔을 수많은 쇼트들을 가장 먼저 보고 생각했을 사람들.

영화는 많은 예술 장르 중 상당히 테크니컬한 분야이다. 영화는 후기 산업화 시대의 기술 속에서 탄생했으며, 때문에 영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계와 기술 하에서 창조될 수 있다. 사실 감독은 추상적인 영감과 생각과 글자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 추상을 영화라고 하는 실체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력자가 촬영감독이다. 나는 이것이 참 멋지고 능력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티스트이자, 테크니션이라니.

그렇다면 왜 '독립영화'의 촬영감독인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독립영화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충무로의 촬영감독들을 만나기보다는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이야기를 듣고 때로 함께 일하는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영화계의 차세대 촬영감독 유망주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또 과거 <키노>나 <씨네21> 등에서 늘 일 년쯤에 한 번씩 촬영감독 특집을 하곤 했는데, 독립영화 촬영감독에 대한 정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기회에 "네오이마주"에서 먼저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기획했다.

영화의 선정은 독립장편영화 중 극장에서 정식개봉 했거나 유수 영화제들에서 여러 번 상영한 작품 중 인상 깊게 본 영화들로 먼저 골랐다. 그 후 촬영적으로 좀 더 관심이 가는 작품,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위치나 경력, 시의성 등을 고려하여 최종 네 편을 선정하였다. <은하해방전선>(윤성호 연출)의 권상준 촬영감독, <청계천의 개>(김경묵 연출)의 유일승 촬영감독, <마이 제너레이션>(노동석 연출)의 이선영 촬영감독, <똥파리>(양익준 연출)의 윤종호 촬영감독, 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두 사람은 (현재까지 발표된 필모그래피로만 보아서는) 독립영화 촬영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만큼 독립영화 진영에서 쌓아온 경력이 상당한 반면, 또 다른 두 사람은 상업영화 현장에서 촬영부로 일하는 중간 중간 독립영화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권상준 촬영감독은 독립영화계의 대표주자인 윤성호 감독과 함께 <은하해방전선> 이전의 많은 단편영화들부터 함께 작업해 왔으며, 이선영 촬영감독은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독립장편영화로 널리 회자되는 <마이 제너레이션> 이전부터 노동석 감독의 단편들을 촬영해 왔다. 이에 반해 유일승 촬영감독은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작업한 독립영화로는 <청계천의 개>가 처음이며, 현재 홍경표 촬영감독(<지구를 지켜라!><태극기 휘날리며> 등 촬영)의 촬영부 제2조수로 있다. 윤종호 촬영감독 또한 김우형 촬영감독(<거짓말><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등 촬영)의 촬영부 제1조수로 일했으며 동시에 조금씩 독립영화 작업을 해 왔다.

인터뷰는 한 사람당 한 회씩 이루어졌고,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평소 독립영화를 관심 있게 보던 독자들이라면 '그 때 인상 깊게 봤던 그 영화', '그 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 '보진 못했지만 어느새 알음알음 유명해진 그 영화'의 촬영감독이 누구고 알지 못했던 현장 뒷얘기는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봐도 좋을 것 같고, 독립영화에 특별한 관심 없던 독자들이라면 대체 독립영화 현장이란 일반 멀티플렉스에서 보던 영화와 뭐가 다른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일해서 먹고 사는지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짝 엿보아도 좋을 것 같다. 누가 아는가. 2009년 봄 "네오이마주" 가 소개하는 이 네 명의 촬영감독들이, 몇 년후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OOO' 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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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되면, 인문대 과목이 늘상 그러하듯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한다. 굳이 인문대 과목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전공들을 테크놀로지 위주로 듣는 것은 심심하여 <프랑스 문학과 예술의 흐름>이라는 과목을 신청했다. 자기소개를 하기 보다는 차라리 원탁에 앉아 수업하는 것이 더욱 소통의 의미에서는 더 클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소개는 상향식이다. 나는 앞 자리에 앉은 학생을 모르며, 그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교수는 우리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교수의 소개서를 못 받아보았다. 72년도 불어불문학과 입학을 하여 거의 34년 선배인 것을 제외하고, 앞으로 수업을 토대로 하여 교수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을 통해 면밀하다면 면밀하게, 편린으로서라면 지엽적으로 알아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나의 '제언'을 약간 섞어서 자기소개서를 써볼까 생각도 든다.

불어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프랑스 영화를 봤다고 해도 그건 자막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첫 시간에 이야기가 오갈 시는 한국어번역본으로 나왔는데 사실 아쉽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의 맥락이 제한적인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그것이 한국어와 불어의 격차만큼이나, 물론 그것은 통역과 번역과 어학이라는 습득의 장치로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상태'로 규명되기도 어려운 상태로 인식이 시작되면 가슴아픈 상태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통의 불가능성은 소통수단 혹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통로가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충돌을 일으킬 때다. 그럴 때 해결을 보기 위해 몇 가지 타협점이 필요한데, 의견의 타협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개념들에 있어서 함께 인식이 가능한 상태로의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표현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초반부 2단원부터 나오는 걸로 기억한다. 굳이 왜 고교시절의 학습가이드를 들먹이냐면, 소통에 관해서는 일찍 저학년에서부터 (개별 개념지식 자체보다)개념을 상정하는 합의과정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 우리의 갈등은 조금씩 줄어들까. 우리의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까. 배우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에는 나의 오늘의 상황에 대한 한탄이 약간 섞여있음을 밝힌다. 3월 2일과 3일에는 가슴아픈 일들이 있었다. 정작 나는 행복했는데, 주변인들에게는 힘든 일이 다소 있었다. 나로 인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if not, 의 상황이 될 지라도 내 마음대로의 소통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다가 오늘 새벽의 일을 추가하면 그 소통을 보다 '배려'있게 해야한다는 점까지 추가를 하면서 말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봤다. 새학기와 자기소개서, 불어와 한국어, 3월 초반의 개인사와 관련짓기는 자의적이지만, 그러나 나는 나의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있다. 꿈꾸는 상황, 예를 들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해'라든가 '너의 좀 더 다른 모습에 영향을 주기 위해'라는 욕망에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깃들여 있다.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욕망, '파리로 떠나는 것'이 좌절된 다음 솀에게 "꼭 파리가 아니어도 됐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투영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한 것이리라. 그러나 프랭크에게는 '파리로 떠나는 것'의 원형은 투영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신경질적으로까지 '변화'를 외쳤고, 그것을 악다구니 쓰는 단계까지 갔으나 '변화'의 개념적 정리는 공유되지 못했던 것 같다. 프랭크는 그녀와의 극적인 다툼으로 서늘한 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낸 다음 날 아침, 오렌지 즙을 짜내 주스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그녀가 묻는 '달걀을 어떻게 요리할까요'에 그는 다시 일상의 느낌을 얻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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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미국의 상황, 그 안에서의 에이프릴의 휠러 부인으로서의 삶에 공감한 것은 그녀의 삶이 드러내는 원형이 나의 삶의 원형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3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디 아워스]를 떠올렸는데, 에이프릴의 추후 극적인 선택은 강물에 몸을 떠내려가게 하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의 것,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의 것과도 농후하게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여성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성이다.)에 관한 근본적인 원형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형태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적인 형태란 아주 근원적인 형태로 존재할 것인데, 그것을 지금 어설프게 '소통의 부재', '이상과 좌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대한 소망과는 배치되는 발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의 해결법이 모호한 것, 그리하여 휠러 부부는 '참 좋은 부부였으나' 이혼을 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하는 형태로 그 누구에게도 해결방법을 상식적인 선에서 '긍정적인' 양태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의해 연구되는 예각화된 사회문제의 논점은 비교적 분명한 해결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인생을 대변하는 문학과 예술과 같은 것들은 고민의 원형을 계승하고 담론화를 시키는데, 갈등의 해결에서는 최우선이 있다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죽는 사람들도 있다. 프랭크라는 인격 개체를 존재시키는 것과 에이프릴이라는 개체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많은 해결짓기 모호한 과정의 인생들이 반영된 논담들이다. 그렇게 해서 기록되고 귀납적으로 재현되는 다층적인 면모들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낳게 한다.

그러면 나는 여기까지 고민하고,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러 가야겠다. 고민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지 않도록 '내가 비록 불어는 못하지만, 선생님으로 하여금 이런 정도의 고민은 해봤습니다'와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하니까 이걸로 통한 소통은 학생들의 편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이 말은 쓸지 말지 고민)'라든가 '필요가 있다면 스피치보다는 차라리 원탁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다만 학교에는 원탁에서 수업하는 형태는 없겠지만 말입니다'라는 등의 말은 좀 섞어볼 수 있지 않을까? 당황해하시면, 수강변경 기간이니까 다른 전공과목으로 대체해서 들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만, 그나저나 내가 하는 방식이 일방통행적인 의사소통방식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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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최근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영관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상영되고 광장에서는 오늘의 한국이 지난 세월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건드릴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드러나는 시간성을 잠시 밝혀두어야겠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소재로 했으나 소재로의 접근 방법은 바로 인간의 삶을 낯설게 보는 행위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벤자민에서부터 아기의 모습으로 죽어간 노인 벤자민을 통해 이 영화의 서사와 사건은 유발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꾸로 가는 것은 세포의 활동이고 그것은 벤자민을 특이점으로 남겨둔다.

흥미로운 것은 벤자민의 시간 역시 여주인공 데이지를 비롯한 여타 인간들의 시간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몸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노인의 세포에서 젊은이의 세포로의 '귀화'라기보다는 '성장'에 가깝다. 또한 삶의 생애까지 선형적인 방식에 의해 '나이듦'에 따라 죽는데, 벤자민의 경우에는 그것을 다룰 개념이 '나이듦'과 '더 이상 어려질 수 없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다룬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벤자민의 특이점의 의미가 전반에 드러난다. 벤자민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낯설지 않을 환경을 낯설게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속도감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데 영화에서 벤자민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서의 영화 내 시간의 속도감의 차이는 확연히 두드러진다. 유년기에는 같은 집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과 죽음에 많은 포커스가 맞춰진다. 시간적인 흐름과 공간적인 스케일 면에서 가장 협소하고 밋밋할 수 있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속도가 붙는데, 그것은 시간을 잘라내는 편집으로 점프를 하는 수준으로 된다. 벤자민의 유년에 관해 관심이 많다기 보다는 낯선 상황에 가장 낯설음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지는 벤자민에게 말한다. "당신이 마흔 아홉, 내가 마흔 셋. 이제 우리는 딱 맞는 나이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 그것은 마치 서로 기울기가 대칭관계인 두 직선과도 같다. 단 교점이 생성되는 까닭은 각개 직선이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방향을 뒤틀지 않는 개별적인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제로 시간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특이점을 잡고 삶에 관해 매 시기마다의 화두를 던진다. 이 시기에 왜 이것을 하지 않았을까, 혹은 나는 지난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한다. 벤자민이 러시아의 숙박소에서 만났던 부인이 지난 날 해협 횡단에 실패했고, 이후 해협 횡단에 성공한 것 처럼.

그렇다면 이제 시간성 자체의 속성에 관해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절대시간 자체는 건드릴 수 없다. 이 시간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면밀히 엮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왜 살아가고 있을 지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묶여내 진행되는 것이 오늘에 관한 상대시간일 것이다. 오늘의 시간, 곧 나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는 '어떤'이라는 속성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겠다.




2. 나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지각쟁이 유경씨의 하루.

2월 28일, 토요일. 쾌청한 날이었으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햇살이 나긋했다. 지난 추운 계절 속에서 폐간된 영화잡지를 읽지 못하는 날이며, 오후 2시 반 무렵에는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는 아트시네마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01번 버스가 한강대교를 원활히 지나지 못하고 교통이 꽉 막힌 상태로 대교에서만 10여분을 보낸 토요일이기도 하다. 곧 이을 오후 여섯시가 되면 국민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의 재미있고 친근한 <무한도전>이 방영된다. 본방송으로도 보지 못한다면 인터넷 상영으로라도 볼 것이다. 나의 토요일은 이렇듯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러나 나는 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늘어지는 설명일지는 모른다만은 짚어보겠다. 지난 집회시기를 지나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는 전경들이 토요일마다 나온다. 언론재단 건물 앞 버스정류장 근처와 청계광장 주변에는 전경버스가 서 있고 그로 인해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도로에서 정차를 한다. 버스가 서고 멈추는 범주에 따라 도로는 진행됐다가 멈추는 파동을 탄다. 그 탓에 광화문과 청계광장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차가 막히는 기색이 없으나 그 남쪽으로는 도로 교통이 혼잡스럽다. 서울역이나 용산, 혹은 그 이남의 한강대교, 상도터널로 이어지는 동작구와 관악구의 현장에서는 왜이리 차가 막히는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라거나 '토요일 오후라서 그래'라며 애꿎은 시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평소의 거의 2배가 되는 시간동안 버스에 있어야 했고 아트시네마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먼저 보내야 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 정신감정을 하기로 하는 예고편을 보면서 '이야, 재밌겠는데?'라는 기대감으로 혼자 느긋하게 식사를 한 다음 청계천 변 광교를 걸었고, 동아일보사의 현판에 걸린 '기습 공격을 당한 전여옥 의원'의 기사가 신문 1면에 걸린 것을 봤다. 왼쪽 눈이 깊숙하게 다친 전 의원의 사진을 유심하게 본 뒤 다시금 청계천 변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우울한 생각을 하기에는, 오늘의 이 시간이 참으로 아깝지 않느냐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컴퓨터를 꺼낸 것이다. 오늘의 시간을 서술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연들이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핵심요약어는 고통이다.

2007년의 3월의 학교의 저널에서 한 학생 기자가 베를린으로 건너가 송두율 교수를 인터뷰했다. (http://www.snujn.com/article.php?id=1405 ) 그는 지난 대선을 두고 "일단 급하다고 짠 바닷물을 마신 격"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은 오늘로 대치가 됐고 그것은 "도덕이 밥 먹여주냐"는 논리는 "도덕이 있어야 밥도 제대로 먹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해준다. 방송국 파업에서도 마찬가지다. 501번 버스가 지나온 용산 일대에서도 드러난다. 큼직한 유리가 몸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아픔이다. 2008년 2월은 '기습'으로 시작해 '기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트시네마가 순식간에 '세입자'의 현실로 마주하고 2월 26일에는 우황청심환 한 알이 국회의 정의보다 앞서 미디어 법안을 상정하고야 말았다. 2월은 끝나도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도 않고 재생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재생된다. 오늘날 방송국의 현실에 떨떠름해 하고 대학간 순위 경쟁과 앞으로 부닥칠 수많은 것들에 관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곧 이어 <무한도전>을 보러 갈 것 이다. 분명 나는 누가 제일 못났나, 누가 제일 덜떨어졌나를 보며 박장대소할 것이다. 내일은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잠자리 '순위'를 매기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불행이 올 지 예측하지 못할 두려움을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을 통해 내 일이 아닌양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가장 못난 사람이 모든 걸 감수하는 것 자체로 웃는 것이 코미디로 통하는 속에서 오늘을 보낸다. 웃게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오늘을 이렇게 보낸 까닭을 유기적으로 이어보려 했으나, 이것이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곧 이어 아트시네마 포럼도 끝난다. '아트시네마의 친구들 데일리'를 통해 '어떻게'에 관한 소식들이 따끈따끈하게 전해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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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비행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상영 현장을 가다

(영화비평 전문웹진 네오이마주(http://neoimages.co.kr)와 객원필자인 윤성호 감독의 수상한 통정이 시작되었다. 매월 인디포럼 상영회와 대담을 취재하여 기사화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인데, 그 첫 번째로 지난 2월 2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월례비행을 올린다.)

이젠 더이상 어울리는 단어가 없는 세상이다. 하수상하다는 말, 이상하고 기이한 시절이라는 말은 당연하고 진부하게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그런 단어'들을 되뇌이지 않을 수 없는 건, 아마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 덕분일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그리고 갈수록 영화같은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텔레비젼 앞에만 앉으면 속속들이 터지는 사건사고들덕분에, 창작자들은 참 살맛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우려되었던건 2009년차 비행을 시작하는 인디포럼 월례 상영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독립영화를 모르는 사람마저도 그 제목과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이하 뻑큐멘터리)>. 수도세 절약 운동을 벌이면서 길거리에 엄청난 물대포를 쏴대고, 마스크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철창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공포스런 사회, 그것도 저들이 '사건의 근원지'라 부르는 종로 한 복판에서 <뻑큐멘터리>를 상영한다니, 엄청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창작의 자유마저 앗아가고 문화산업마저 시장경제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저들의 눈에 이건 일종의 '모의공모'인 셈이니까. 아니, 어쩌면 이건 '인디포럼의 역습'일지도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에 관한 나의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실패한 대학교 진학에 재도전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종류의 신문이 집에 배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선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한 신문이었고 한겨레는 엄마를 위한 신문이었다. 나는 두 종류의 신문 중 조금 더 색상이 화려하고 문장들이 유했던 한겨레를 택했다. 할아버지는 집에 잘 계시지 않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특정 당원들의 얼굴이나 한겨레 신문을 볼 때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쓰시곤 했다. 어쩐지 반감이 들었던 할머니의 '빨갱이'라는 단어는 내가 지지하고 관심가지는 정치색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이후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나 어머니와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갔을 때, 집에는 더이상 조선일보가 날아들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좌파를 지지하는 어머니의 충돌이 빚어지면 나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곤 했다. 유난히 박정희 이야기를 많이 하던 할아버지는 다행스레 어린 나에게까지 특정 정치집단을 옹호하기를 강요하진 않으셨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을 거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오는 과정 동안 그 어떤 교과서도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건 박정희와 전두환에 관해 단 두 줄로만 묘사되어있던 국사 교과서였다. 전두환의 손녀와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들었던 이유인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국사 선생님은 그 부분만 나오면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문 투성이인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처음 만난 (비교적)정치적인 다큐멘터리가 <뻑큐멘터리>였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그리고 할아버지가 보셨던 신문인 조선일보가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찬양 기사를 싣곤 했던 '대한민국의 영웅' 박정희가, 그 영화 속에서는 철저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 접하고 배웠던 말이 바로 이거다. 대한민국 꼰대 1세대.

때문에 <뻑큐멘터리>를 떠올리면 담배를 피지 않는 나도 괜스레 담배를 입에 물고 싶어진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야 그동안 배워왔던 국사가 어느 정도 잘못되었고 어느 부분이 미약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학교가 그런 것들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줄 의무는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인디포럼 <뻑큐멘터리>의 상영이 걱정스러운 동시에 반가운 이유는 아마 어린 시절 우파와 박정희, 그리고 조선일보에 대한 사적인 기억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 저녁, 조바심이 앞섰던 <뻑큐멘터리>의 상영은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며칠 전 모 마트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대량 구입하던 검정 잠바를 입은 아저씨들이 들이닥치는건 아닐까 무서운 감정이 앞섰지만, 많은 관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영은 '안전히' 막을 내리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뻑큐멘터리>의 연출자 최진성 감독과, 윤성호 감독, 그리고 이택광 경희대 교수의 대담이 이어졌다.





윤성호 감독 (이하 '윤'): 8년 전에 최진성 감독에게 <뻑큐멘터리> 비디오테잎을 선물 받았는데 다 보진 못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만에 다시 극장에서 보니 소감이 어떤가.

최진성 감독 (이하 '최'): 나도 아직 <은하해방전선> 안봤다(웃음). <뻑큐멘터리>는 2001년도 제작된 작품이고 나의 첫 작품이다. 그 이후로 단편 극영화나 뮤직비디오 등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는데, 어쨌거나 이게 내 처음 영화다. 영화를 보면 양가적인 감정이 생긴다. 27세에 만든, 27세의 최진성이 보여서 흐뭇하기도 하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요즘도 활동하시는걸보면 참 감정이 묘하다.

이택광 교수 (이하 '이'):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뻑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나는 한국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기에 유학을 갔고, 2004년도에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다큐멘터리에 관해 토론한다는 걸 듣고 얼마 전에 DVD를 받아서 처음 봤다. 유학하면서 딴지일보를 종종 보긴 했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빈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윤: 이번에는 최진성 감독의 연출의도를 새로 받기도 했는데, 박정희기념관은 이제 어떻게 된건가.

최: 그 이후는 모른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현재 박정희기념관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간간히 반발성기사로 여전히 한 두번씩은 나오는 것 같다. 물론 mb 시대니까, 잘은 모르지(웃음).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7년 전과는 달리 좋은 소식들이 간간히 들려오고 있다. 특히 허경영선생. 저 분이 이렇게 뜰줄은 당시에는 정말 몰랐다(웃음). 당시만해도 '듣보잡'이었는데. 그래서 작년에 되게 반가웠다. 감회가 새롭더라(웃음).

이: 박정희 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명박 정부가 과연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할까? 이명박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 본다. MB는 노무현의 2세다. 제 2의 노무현, MB 반대로 하면 다 성공하는 세상이다. <워낭소리>도 그렇지 않은가. 상황이 바뀌었다. 다큐를 보며 뭔가 지금과는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뻑큐멘터리>의 장점은 박정희 시대의 피해를 진상규명하기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박정희가 우리에게 뭘 해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본주의의 실체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재밌는건 영화 속에서 박정희를 극 옹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MB정부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진짜 주인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바로 한국의 중산층이다. 한국 사회의 합리성을 박정희에서 찾는, 한국의 중간계급. <뻑큐멘터레>에사 희화되는 존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존재들이다. 여기서 생존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와 같은, 강남 조기유학파들의 우상과 같은 사람들. <뻑큐멘터리>는 파시즘을 보여주는 영화다. 박정희는 파시즘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우리 나라는 유일하게 삼성의 광고도 그걸 여실히 보여주지 않나. 김연아 같은 사람들의 성공사례들을 들먹이며 성공했다는 것 자체 때문에 모든걸 긍정화시킬수있다는 게 무서운거다. 독재를 거쳤지만 지금은 어쨌든 민주화를 이루지 않았느냐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것이고 가장 무서운 논리다. 지만원같은 선동가가 무서운게 아니라 조갑제같은 이데올로그들이 무서운거다. 프롤레타리아들이 끊임없이 소급하는 합리성이 박정희다. 그들이 보는건 인간 박정희가 아니라 영웅 박정희다. 이명박도 마찬가지다. 왜 MB를 찍었냐고 물어보는 물음에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답하더라. "이명박이 되면 나도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서." 그때부터 이명박의 실패는 내정된 거다. 노무현이 해놓은 일을 완성만 하면 될텐데 그걸 아예 청산해버렸다. 황당한 이야기지. 지금 우리 사회의 꼰대, 꼴통 박정희는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군림하고 있는거다.

최: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바뀌며 컨텍스트도 많이 바뀌었다. 안티조선도 없어졌고 이런 움직임들이 다른 식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개혁적이고 진보지만 내부로는 한국의 적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이게 MB로 넘어오면서 교활해지고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만든다면... 뭐, 지금은 무서워서 만들 수나 있을까(웃음). 농담이다. <뻑큐멘터리>를 상영하자고 했을 때 살짝 주저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나.


윤: 우리도 선정할 때, 박정희 모자가 너무 크게 나와서 조금 주저했다, 우리도 나라의 지원금을 받아야하니까(웃음). 요즘 깊어진 인식과 함께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깐느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라가 깐느 갈 소재를 제공하는 것 같다(웃음).

최: 소재가 풍성하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노무현 때도 풍성했고. <뻑큐멘터리>때 같이 작업했던 분들 중 2002년에 노무현이 당선되며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다른 노선을 걷기 시작한 분들이 많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만든 게 <그들만의 월드컵>이다. 노무현을 적극 지지하는 개혁적 민족주의자들이 우리 사회를 망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같은 경우는 정말 소재가 많다. 영화인 입장에서 좋은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는게 참 감사하다(웃음). 이런건 지금은 못 만들지 싶다. 27세의 최진성이 삐딱하게 만들었던 것이니, 지금과는 좀 다르다.


관객1: 박정희라는 인물은 분명히 악의에 충실한 면도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람이 아닌가. 그 시대를 겪지않아서 어느 편에 서야할지 잘 모르겠다. <뻑큐멘터리>의 지만원, 조갑제, 허경영 이런 사람들은 비판 받을 만 한데, 영화 속에서 일반 시민들을 비꼬는 태도는 조금 불쾌했다. 당시를 겪은 사람들 중 박정희가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박정희는 나쁘다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 인터뷰 자체도 너무 편향적이고, 인물소개도 되게 편파적이더라.

최: 일단 명백한 나의 입장이 <뻑큐멘터리>에 있다. 박정희에 대한 이데올로기나 담론이 이미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상황이었고 박정희를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80%는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를 균형있게 만드는 건 의미없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살아있는 김대중, 김종필, 박근혜, 조갑제, 그리고 그 분들을 위시로 한, 박정희의 맥락 속에서 주워먹고 살고 있는 이회창같은 사람들. 이런 영향력이 30년이 넘게까지도 진행되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단순히 20년전에 죽은 박정희를 말하고자 한 건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뻑큐멘터리>가 토론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조그만한 가능성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제작한 것이다.

이: 질문하신 것 자체가 이미 바뀐 맥락이다.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는 냉전체제가 무너질 시절이다. 그들이 무너진다는 공포와 불안감은 영화 맨 마지막의 퍼포먼스에서 모두 드러난다. 민중에겐 이념이 필요없다. 좌파이념이든 우파이념이든 내가 잘먹고 잘사면 되는거다. 자본주의가 탈가치화시키는 것이다. 박정희를 제거한다고 열망이 사라지진 않는다. 풍자는 약자가 강자와 싸울 때 쓰는 가장 고전적인 수법이다.


관객2: 영화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단지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하는 부분은, 이 영화 이전에 필터링을 거치지 않았을 때, 반대입장을 가진사람에게는 비판의 여지를 줄 수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 반하는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기능을 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문제에 대한 환기와 동시에 다수로 하여금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 생각한다. 의식이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설득 할 수 있는 다큐는 아니라 생각한다. 그들을 설득하기위해서는 실제로 공정하고 교묘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최: <뻑큐멘터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2001년도까지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상황들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억울함, 그리고 나의 의견이 담겨진 아카이브 같은 영화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불편하든 통쾌하든 모두 각자의 감정이다. 공정성이라는 부분은 어려운 문제인데, 실은 다큐가 그런 부분이 좀 어렵긴하다. 윤리나 도덕 교과서도 공정하지 않은데 공정하게 보고 있다. 신문과 언론도 마찬가지다. 공정한듯 말하는것. 시민단체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 만원, 이만원 기부하고, 지나가는 거지에게 천원 적선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조기유학보내고 서울대 보내는그런 착한 분들이 사회의 공정성을 흐리지 않나. 다시 한 번 고민해봐야 하겠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은 유치원 꼬마들이 박정희 묘에서 묵념을 하는 장면이다. 유아교육학과를 나온 똑똑한 분들의 인솔 하에 아이들은, 카메라방송의 지시에 따라 세 번을 반복해 묵념한다. 내려가면서 아이들이 용그림, 용그림 하지않나. 실제로 아이들은 용그림을 보고 싶는데, 선생들은 박정희에만 관심있다. 우왕좌왕 내려가면서도 꼬마들은 '한줄로'를 외치며 억지로 줄을 서고 있다. 이런게 중산층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윤: 중간계급을 쉽게 말해 '꼬실 수 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는 중간층을 설득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 <뻑큐멘터리>가 내 입장에서는 귀엽게 보인다. 들이대기도 하고(웃음). 지금의 나는 이러저러한 고민이 많다. 영화 만드는 게 주저스럽기도 하고, 다큐는 더욱 어렵다.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를 많이 봐달라. 나는 이런 스타일로 영화로 만드는 한국 인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윤성호 감독같은 사람도 그런 부분을 굉장히 잘 건드린다. 다른 많은 영화들을 보면 좋겠다. 김동원감독님 영화들은 절실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나. 그런 건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다.


관객3: 박정희로 대표되는 근대와 현대사의 과정을 보면 이분법적사고만 전개되어왔다고 생각한다. 우파니 좌파니 하는 건 말장난같은 느낌이다. 근대사는 왜곡이 대부분이 아닐까. 젊은 세대들은 취업이 우선이지, 인문학이나 역사등은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런 부분에서 자기만의 역사에 관한 입체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부재된 상황에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방법론이나 회화를 제시해주신다면.

이: 무조건 하면 된다. 이것저것 잴 것이 뭐 있나. 이론을 가지고 있으면 적용을 하면 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보수주의 국가다. 한국의 윗대가리에는 좌파, 우파가 없다. 다 학연과 지연으로 연결 된다. 그래서 다들 미친듯이 좋은 학교를 보내려하는 것이다. 중간 계급들은 부동산박사, 교육학 박사, 모든 방면에 박사들이다. 그들에겐 비판적사고가 실종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 지금은 예술적 감수성, 인문학적 비판의식이 필요한 세대다. 이런 것들을 키워야 정말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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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저녁 서교동. 9명이 참석한 가운데 네오이마주 5차 세미나가 열렸다. 프레시안무비 기자인 김숙현 씨의 발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발제자는 ‘켄 로치의 영화들’에 붙여 진 ‘좌파’라는 딱지를 뗌으로써 감독을 둘러싼 담론의 한계를 허물 수 있을 것이라며 운을 뗐다. 아래는 이날 사용된 발제문과 토론문을 요약해 정리한 내용이다.


켄 로치를 둘러싼 담론에는 언제나 그의 정치성과 계급성이 중심이었고, 그는 언제나 ‘좌파 감독’의 수식어로만 불렸다. 물론 켄 로치는 언제나 첨예한 정치적 입장에서 계급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오긴 했지만, 켄 로치의 영화가 언제나 첨예한 계급성만을 다뤘던 것도 아니며 그와 그의 영화에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켄 로치의 영화를 둘러싸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절반으로 축소되고 만다.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며 여전히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종일관된 깊은 휴머니즘과 유머가 배인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이 감독이 소위 ‘이데올로기의 종언’ 시대에 함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매우 부당한 처사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재미있었고, 지금도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의 영화미학 역시 피상적인 리얼리즘의 수준이 아니라, (리얼리즘이 아닌) 리얼리즘을 둘러싼 담론의 한계를 깨나가며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본다.

연기에 경험이 없는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고 대체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많이 차용했던 초기의 영화와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켄 로치의 영화들은 드라마의 극적 플롯이 강해지고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며 캐릭터들도 보다 선명해진다. 이것이 리얼리즘을 해치는가? 그렇지 않다. 현실의 풍경을 그대로 복제해내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듯, 켄 로치의 영화들은 이런 ‘극적 장치’들을 통해 그 어떤 영화의 인물들보다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활기 넘치는 캐릭터들이 넘쳐나며, 다른 감독들이라면 쳐내고 말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이 사건들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뿐더러 그 자체로 캐릭터들의 ‘모험’을 다루듯 묘사된다. 그 와중에 켄 로치가 절대로 잃지 않는 것은 바로 ‘유머’이자 ‘공동체 정신’이다. 켄 로치의 영화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홀로 고독하게 고민하는’ 캐릭터들이 아닌, 무리지어 함께 토론하고 격렬하게 부딪히며 ‘함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애쓰는’ 인물들로 채워진다. <하층민들>에서 무단으로 빈 집을 개조해 사용하는 일련의 노동자들의 장면들, <랜드 앤 프리덤>에서 내전의 와중에서도 바리게이트에서 웃고 울며 농담하고 노래 부르는 게릴라들이 등장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도 데미안은 홀로 고독한 결단 끝에 독립투쟁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고, 기차역에서 일련의 사건을 보며 결단을 내린다. 이들은 영국군에 체포당했다가 옆에서 테디가 고문을 당할 때 다함께 노래를 부름으로써 테디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서 소외돼 있는 이들은 영화 속 착취자들, 특히 최근작 <자유로운 세계>에서 점차 착취자의 논리를 완성해나가는 앤지다.

많은 이들이 켄 로치의 영화들을 절망과 비극으로 치닫는 영화들이라 말하지만, 나는 켄 로치의 영화야말로 진정한 희망의 영화라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유머와 생기 때문이다. 켄 로치 자신도 말했듯, “단기적으로 보면 언제 어디서나 비극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절망적이지만, 사람들이 계속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기 때문에 낙관적일 수밖에 없는” 바로 그 희망을, 켄 로치의 영화들은 진지하게,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1. 랜드 앤 프리덤

대체로 ‘현재의’ 노동자 영화 혹은 청소년 영화들을 만들던 켄 로치가 1930년대로 돌아간 것은 바로 스페인 내전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대체로 공화군 vs. 프랑코 파시스트군의 싸움 정도로만 묘사되는 것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스페인 내전이지만, 켄 로치는 이 영화를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 영화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반드시 세트로 봐야 하는 영화인데,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파시스트 군에 맞서 싸웠던 세 갈래 진영의 대립과 분열마저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무려 12분간에 걸친 토론장면이다. 이 장면은 여러 개의 컷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카메라는 단 한 번도 전체 회의장을 조망하는 부감 숏을 사용하지 않은 채 카메라의 높이를 발언자들의 눈높이에 맞추며 영화를 진행해 나간다. 땅과 재산을 집단화하자는 주장과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일정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부딪치는 가운데, 대체로 주요발언자들은 한 컷에 한 명씩 담기는 미장센으로 연출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비교해서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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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로운 세계


켄 로치가 최초로 피 착취자가 아닌 착취자의 입장을 그려냈다고 해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앤지는 ‘여성 프롤레타리아’다. 대자본가에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인 그녀가 자신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 위에 서게 되며 서서히 소자본가로, 착취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켄 로치는 매우 치밀하게 그려나간다. 절대 악 vs. 선한 우리 편의 싸움이라는 쉽디 쉬운 공식의 영화가 아닌, 평범한 우리, 가난하고 힘없는 우리가, 우리의 사회에 우리보다 더 열악한 이들이 분포하게 됐을 때 얼마나 쉽게 착취자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그리는 영화. 사회가 점차 분화되고 다양해지는 가운데 피착취자의 그룹도 다양해지는 현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와 함께 점차 분열되고 고립되는 노동자의 말로를 고발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층민들>, <레이닝 스톤>, <내비게이터>와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김숙현_프레시안무비 기자)

<자유로운 세계>


이어 백건영 편집장은 토론문을 통해, 「켄 로치 Ken Loach의 영화세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살펴보아야 몇 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아일랜드 해방 전선과 스페인 혁명과 대처리즘과 영국 노동계급의 문제와 노동계급이길 포기한 하층민들의 삶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한 감독의 영화세계를 조명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대변되는 켄 로치 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서도 노동계급에 한정시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면서 프리시네마에 앞서 파악해야 할 것은 영국 뉴 웨이브라고 했다. 보다 세밀하게 말하자면 1930년대 존 그리어슨으로 대표되는 다큐멘터리 운동과 1950년대 프리시네마를 거쳐 뉴 웨이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나 1956년 시작된 영국 뉴 웨이브의 내력과 스타일을 살펴봄으로써 켄 로치의 영화에 대하여 단편적으로나마 탐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덧붙여 켄 로치는 ‘좌파감독’이라는 고착화된 수식에도 불구하고, 브리티시 뉴 웨이브의 적자로 또한 뉴 웨이브의 발목을 잡아왔던 미학적 한계를 가감 없는 시선으로 돌파해온 인물이며, 그의 영화는 스페인 혁명전선에서 아일랜드의 황량한 언덕까지, 맨체스터 공장지대에서 L.A 초고층빌딩 속까지 동서좌우를 막론하고 쉼 없이 횡단하고 종단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달리 보면 켄 로치만큼 적합한 대접을 받지 못한 감독 또한 드물다고 발제자의 주장에 동의하였다. 그러니까 관용구처럼 사용해온 ‘급진 좌파감독’이라는 수식으로 인해 켄 로치의 영화미학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김시광 씨는 켄 로치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영화가 의외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레이닝 스톤>을 예로 들었다. 이 영화는 딸의 성찬식 드레스를 사기 위한 실업자 가장의 눈물겨운 분투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그려냄과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하층민들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전순영 씨 또한 보면 볼 수록 켄 로치의 영화가 재미있다는 점을 들었는데, 다만 그의 영화와 영국 영화들이 다른 유럽영화에 비해 비평적으로 많이 다뤄지지 않는 배경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참석자의 사정 때문에 예정보다 이른 10시 경 세미나를 마쳤고, 못 다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어차피 켄 로치의 영화세계를 단 몇 시간의 세미나로 풀어낼 일은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켄 로치의 영화세계가 오직 노동현장과 혁명전선에 들이댄 카메라에서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는 단편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에게서 발견되었다는 점은 의미를 둘 만하다. 말하자면 켄 로치에게서 급진 좌파의 그림자를 벗겨내는 일이야말로 그를 진정한 거장에 올리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켄 로치 필모그래피 (텔레비전 드라마 작업 제외)

1967 불쌍한 암소 Poor Cow
1969 케스 Kes
1971 가족생활 Family Life (수요일의 아이 The Wednesday's Child)
1979 블랙 잭 Black Jack
1980 사냥터지기 The Gamekeeper
1981 외모와 미소 Looks and Smile
1986 파더랜드 Fatherland
1990 히든 아젠다 The Hidden Agenda
1991 하층민들 Riff-Raff
1993 레이닝스톤 The Raining Stone
1994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995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6 칼라송 Carla's Song
1997 명멸하는 불빛 The Flickering Flame
1998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2000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
2001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
2002 달콤한 열여섯 Sweet Sixteen
2004 다정한 입맞춤 As Fond Kiss
2006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7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2009 에릭을 찾아서 Looking for E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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