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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필진 칼럼 2007.10.20 16:58 Posted by woodyh98


그날 밤, 나는 경북 칠곡의 어느 한적한 소읍을 향하고 있었다. 연고하나 없는 지방으로의 주거이동이 주는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도대체 서울에서 이곳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곳에 문화 편의시설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의문 속에서 지도를 펼치는 일이었는데, 황당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등고선과 지형도를 봤을 때의 허망함이라니. 정확하게 말해서 2003년 10월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이후 2년 여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명과 칠곡을 거쳐 대구 시내로 향하곤 했는데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가능했으니, 숨 막히는 시골을 떠나 동성로 일원에 즐비한 극장들을 순례하며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던 시절이었다. 서울과는 달리 예술영화나 단관개봉작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역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마주친 동성아트홀은 내게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만나는 작은 매표구, 첨단 시스템으로 좌석을 지정해주는 상냥한 안내원의 미소 가득한 멀티플렉스가 창궐하는 시대에 그 옛날 동네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또는 시골의 시외버스 정류장의 매표소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니. 20여 년 전 쯤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좌석은 물론이고 허름한 매점을 지키는 맘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까지. 분명 21세기 극장의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였다. 어쨌든 놀라움과 신기함에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연신 주위를 둘러보다 나온 것이 내가 만난 동성아트홀에 대한 첫 기억이다. 혹자는 ‘동성아트홀을 지원사격하려는 것이냐’고 물을 런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 4년 전 동성아트홀과의 첫 대면을 떠올리면서, 진즉에 그랬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음을 고백하려는 것이다.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표명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예술(작은)영화전용관을 살려야 하고, 독립영화를 육성해야 하며, 작은 영화를 보호해야 하고, 한국영화도 지켜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계획과 정책만 난무할 뿐 정작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은 미미한 상태다. 꼭 1년 전 2006년 10월 발표된 '영화산업 중장기발전계획’에 따르면 예술영화전용관을 70개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관객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한 양적 증가만으로 영화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전시행정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직 예술영화전용관이 없는 지자체가 114개에 이른다는 점은 문화정책입안자들의 사고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비록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아트플러스의 예술영화전용관에 관한 선정, 지원책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술영화전용관은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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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영화전용관들이 홈페이지 외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공식 블로그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건상 대규모 마케팅을 펼칠 수 도 없거니와 시장의 규모가 빤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은 인터넷을 통한 회원 모집과 관리 등 나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멀티플렉스의 숲을 뚫고 오늘까지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특히 몇몇 극장의 공식 커뮤니티는 일반극장의 그것들과 비교해 역동적이면서 멤버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행사와 상영일정과 이벤트가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며 극장주와 관객회원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모 극장의 공식카페의 실망스러운 운영방식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마치 그곳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인 양, 작은영화전용관이 대단히 숭고한 장소인양, 남들 안 하는 사업에 뛰어든 모험적 선각자인양 관객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운영주체의 사고가 이렇다 보니 비판적 관객의 언로를 봉쇄함으로써 극장운영방침에 맞도록 길들이려는 시대착오적 발상도 횡횡하는 지경이다. 세상에나! 바로 여기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관객이 극장의 눈치를 보고 마치 공짜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찬일변의 태도를 요구받다니. 게다가 기회 있을 때마다 특별전 형식으로 몇 번 씩이나 우려먹는 프로그래밍을 무조건 반겨야 할까? (물론 명분은 좋다. ‘놓친 영화를 다시 한 번!’)

이렇듯 노출된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씨네큐브와 동성아트홀 등의 예술영화전용관이 보여준 회원모집과 극장운영 및 관리방식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결국 카페나 유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화마니아들이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며 추억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극장운영자의 겸허한 태도와 배려가 더해질 때 예술영화전용관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양의 눈이 대구에 내린 2004년 크리스마스 전야를 기억한다. 도무지 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을 걸어 내려와서야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갈 수 있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성아트홀로 찾아들어가는 일이었다. 대구를 떠나 서울로 복귀한 지 벌써 2년이 넘어선 지금에도 대구 시절을 생각하면 동성아트홀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군가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로 영화 두 번 보기를 말했다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작은 영화와 내 지역의 작은영화전용관을 사랑하는 것도 반드시 그중에 포함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사랑은 단순히 온라인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에 앞서, 극장을 찾아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그 작은 극장에 정부지원이라는 단비가 내려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볼 일이다. 혹여 멀티플렉스의 화려함이 없다고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고, 조악한 매표구가 의심스러워 발길을 돌렸다면 이제는 웃으면서 표를 받고 오래된 상영관 속에 예술영화 속에 자신을 맡겨보자. 정말로 작은 영화관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자. 왜 그래야 하는가? 그곳에 가면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영화’가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하며 한국영화의 미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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