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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0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도리스 되리 감독의 일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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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일본에 대한 감정이 곱지 않다. 일제강점기를 겪어본 적이 없음에도 일본은 언제나 경계와 타도의 대상이었고 일본인은 이중성을 지닌 경제적 동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의 반일감정은 극에 달하곤 했는데, 현재진행중인 WBC 한일전은 물론이고 공식적으로 상대를 흠씬 두들겨 팰 수 있는 프로복싱에서의 한일전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학창시절 보았던 류제두가 와지마 고이치를 KO시킨 장면이라든지 홍수환이 가사하라를 5번이나 다운시킨 경기를 잊지 못하는 것 역시 상대가 일본선수였다는 점과 일본 땅에서 상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쾌감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많은 스포츠 경기마다 일본은 숙적 혹은 영원한 라이벌의 이름으로 내게 또는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와 TV화면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의 모습은 잔인하고 셈이 빠른 약삭빠른 왜놈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 이를테면 정갈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깃든 가옥과 생활양식과 깨끗한 거리 풍경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고 질서와 친절이 몸에 밴 생활습관은 선진국민의 표상처럼 다가왔다. 사실이지 영상프로그램을 통해 이국적 풍경을 숱하게 봐왔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던 반면 일본은 꼭 가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때문인지 초밥과 가부키와 게이샤의 나라 일본에 대해 할리우드가 매혹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이는 제국주의시절 서양이 동양에 대해 품었던 단순한 호기심과는 달리 해석되어야할 것인데, 아마도 그건 역동적인 도쿄의 초현대적 이미지와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교토의 고전적 이미지 사이를 관류하는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해 애정을 가진 감독을 꼽자면 독일의 ‘도리스 되리’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2000년대에 만든 자신의 영화 중 절반에서 일본을 공간적 배경으로 사용해왔다. 예컨대 <계몽시대>에서 <내 남자의 유통기한>과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 이르기까지 되리의 영화 속 인물들은 인생의 근원적 질문들을 풀어낼만한 장소로 일본을 선택한다.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아예 일본여행에서 만난 커플이 일본식으로 결혼까지 할 정도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아내의 죽음을 견딜 수 없어하던 남편은 아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일본으로 향한다. 젊은 시절 무용수였던 아내에게 영향을 끼쳤던 ‘부토댄스’와 후지산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몽시대>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이 이 사람 또한 대도시 도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그가 경험하는 것은 아내가 그렸던 일본의 모습이 아닌, 스트립 바와 일본식 증기탕로 상징되는 욕망과 쾌락에 찌들어 부유하는 군상들의 공간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경험하는 일본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아내가 동경했던 대상으로의 신비감을 지닌 일본 그 자체이고, (자식들이 사는 베를린조차도 답답하고 맞지 않아 서둘러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그가 도쿄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외와 외로움을 견디면서까지 일본 땅에 머물고 싶어 한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감독의 일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는 일본에 대한 감독의 애착을 보여주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령 “후지산은 수줍음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인물의 말을 빌려 료칸(旅館)의 창문을 수차례 열어젖히면서 조바심을 자극하더니, 어느 새벽 황홀할 정도로 푸른빛 감도는 후지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에 대한 경외감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러하다. 아마도 되리의 영화를 본 독일인이라면 한 번쯤 일본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지 않을까 싶다.

도리스 되리의 영화를 보면서 외국영화에 그려진 한국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바로 떠오르는 작품도 별로 없지만 그나마도 철저하게 단순배경에 머무르거나 기꺼해야 욕설을 내뱉는 모습 아니면 돈에 눈먼 일벌레에서 한 발짝도 개선되지 않은 것이 외국영화 속 한국인의 모습이기 십상이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한국의 문화와 풍경을 배경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우리는 일본문화를 베끼기의 산물이라 애써 폄하해왔지만 정작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보다 일본문화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일본영화 <굿 바이>가 아카데미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도, 일본인의 정서와 삶의 풍경이 외국인에게 어필한 까닭일 것이다. 자기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것만을 고집하느라 소탐대실해서는 곤란하다. 원자폭탄을 맞고도 살아남았고 90년대 버블붕괴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필요에 따라 거침없이 뒤집고 바꿀 수 있는 ‘앗싸리’ 한 일본인 특유의 정서 때문인지 모른다. 솔직히 이런 일본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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