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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누굴 때리는 X새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X새끼도 언젠가 X나게 맞는 날이 있어. 근데 그 날이 X같이도 오늘이고, 때리는 새끼가 X같은 새끼네.” 여자를 구타하던 한 남자를 또 다른 남자가 흠씬 패준다. 여자에게 다가선 이 남자, 예상을 비웃듯 따귀를 때린다. “왜 맞고 다니냐, XX년아.” <똥파리>의 상훈(양익준)은 그런 남자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똥파리’마냥, 살면서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형 말이다. 상훈은 입에 걸레를 물었다. 후배들에게 손찌검은 예사다. 운동권 학생들과 노점상, 철거민들을 깔아뭉개는 것이 본업이다. 그래도 직업 정신은 투철하다. 떼인 돈 받아내는 귀신이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양익준 감독은 이런 상훈의 속내를 들여다보자고 권유한다. 사실 이런 괴물에게도 가슴 한 구석에 투박하나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드보이>의 대사를 빌려와보자. “아저씨, 내가요, 아무리 짐승만도 못 한 놈이라도요,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상훈이 이렇게 망가뜨린 연원은 다름 아닌 가정 폭력이다. 어머니와 동생을 동시에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버지의 폭력은 상훈의 삶을 나락으로 이끌었다. 아버지가 15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금도 그 사건은 씻을 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양익준 감독은 반복해서 광기에 젖어 좁아터진 부엌에서 칼을 휘둘러대는 아버지들의 얼굴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잡아낸다. 상훈이 우연히 만나 교감을 나누게 되는 여고생 연희네 사정도 크게 다를 건 없다. 베트남 참전 용사이자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노점상을 하다 용역 깡패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잊지 못한 채 계속해서 폭력을 휘두른다.

이렇게 일상화된 폭력과 아버지, 그리고 핏줄은 <똥파리>를 가로지르는 핵심 주제다. 욕지거리부터 구타를 일삼으며 사채 빛을 받아내는 일까지. 상훈은 이미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됐으며, 또한 스스로도 폭력을 일삼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양익준 감독은 클로즈업과 꽉 짜인 앵글을 통해 우리에게 가감 없이, 아니 집요하게 그러한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볼 것을 강요한다. 실상 이 폭력은 전부 아버지 세대에게 물려받은 유물들이다. “이 나라 애비들은 다 X같아. 근데 자기 가족들한테는 꼭 김일성처럼 굴려 그래”라는 상훈의 절규는 그래서 더 크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가정의 일상화된 폭력이 결국은 한국사회의 폭력과 맞닿아 있지 않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핏줄을 끊을 수 있으랴. 그렇기에 상훈이 가장 신경 쓰는 존재가 바로 조카 형인이다. 배다른 누나와 그의 아들 형인, 이들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느껴갈 때 즈음,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아버지의 존재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훈이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를 흠씬 패 줄때, 이를 목격한 형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러운 피를 다 빼주고 싶다”던 아버지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조카 형인. 그 아이에게만은 폭력의 고리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의지. 그러나 양익준 감독은 끝끝내 이러한 핏줄은 끊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상훈의 더러운 피는 대신 아버지들의 폭력을 공유해 버린 연희의 동생 영재에게 대물림된다. 결국 상훈은 영재의 충동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양익준 감독은 희비를 교차해낸 에필로그를 통해 이러한 폭력의 순환 고리가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사실 <똥파리>의 이야기 구조는 꽤나 전형적이다. 상훈은 우리가 느와르 영화에서 늘상 보아왔던 주인공 캐릭터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잠시잠깐 안식을 맞이한 밑바닥 인생이 맞이하게 되는 예정된 혹은 예상치 못한 파국. 한국영화에 있어 가까이는 <비열한 거리>의 병두가, 약간 멀게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가 보여준 비극성과 닮아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생짜 신인 양익준은 이러한 전형성을 정면으로 돌파해낸다. 생생한 현실의 질감과 캐릭터들의 리얼함, 그리고 편집의 적절한 리듬감이 이 익숙한 이야기의 상투성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더불어 특히나 연희와 나누는 교감 중요하다. 구조적으로 비극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 동시에 상훈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층 공감하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자실을 기도한 아버지에게 피를 빼 준 상훈, 그리고 칼을 빼든 아버지를 물리치고 상훈을 만나기 위해 한강으로 달려온 연희. 끊어버릴 수 없는 핏줄을 인정한 상훈이 연희의 무릎을 베고 오열 할 때, 관객들은 분명 <똥파리>가 내보이는 진심에 가슴을 열어젖히게 될 것이다.

저예산 영화 <똥파리>는 투박하다. 시종일관 욕지거릴 내뱉지만 그것이 유일한 표현 수단인 상훈이 마냥, 시종일관 은유나 상징과 같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위악으로 가득 찼던 상훈이의 일상과 기억을 담담하게 따라 갈뿐이다. 그리고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위무한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훈이 환하게 웃는 연희와의 술자리 장면이나 유일하게 상훈을 이해하는 친구 만석과의 쌍욕이 넘실대는 후반부 대화 장면은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공은 그런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듯 카메라를 정직하게 들이댄 양익준 감독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화면 안에서 배우출신 감독이 이끌어낸 배우들 모두의 기교를 부리지 않은 진심어린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분명 독립영화 <똥파리>는 50개관이란 상영관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이다.

[워낭소리]와 어느 이상한 인터뷰

필진 칼럼 2009.02.18 10:5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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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 <다우트>를 본 지난 주말의 일이다. 극장을 나와 핸드폰을 켜니 몇 개의 부재중 전화가 남겨져있어 시네마테크문제와 관련하여 몇 사람과 통화한 다음, 모르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K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KBS로부터 외주를 받은 방송콘텐츠 제작업체의 작가 쯤 되는 것 같았다. 용건은 <워낭소리> 열풍에 즈음한 전문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란 것이 대체로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먼저 밝힌 후 인터뷰 목적을 알리면서 가능여부를 묻는 것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무런 이름이나 소속도 밝히지 않은 채 KBS 프로그램 명칭만 알려주며 인터뷰를 부탁해왔다. 게다가 자신이 작성한 원고 내용에 대하여 동의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크게 잘못된 점이 없다고 여겼기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친 일요일 오후로 인터뷰가 잡혔고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홍대로 정해졌다.

다음날, 약속대로 인터뷰 장소에 나갔고, PD라는 나이 어린 남자가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이 친구 역시 자신의 소속이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전에는 강남의 극장에서 관객을 취재했고, 독립영화 촬영장을 찾아 독립영화감독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몇 마디 나누자 단박에 독립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워낭소리>도 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재미있는 일은 뒤에 벌어졌다. 그러니까 흥미롭게도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써와서는 내게 “대략 이런 내용이 포함된 말씀을 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전날 통화했던 여자가 내게 물어보고 동의를 구했던 내용과 흡사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워낭소리>를 비롯한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로, 관객의 문화다양성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어려운 시대에 감동을 얻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를 독립영화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독립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해달란 것이었다. 물론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문화다양성이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가 맘에 들지 않았다.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일이 문화다양성 측면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자칫 구색 맞추기나 어려운 사람 형편 봐주기, 더 심하게 말하면 불쌍한 놈 떡 나눠주기 쯤으로 가치하락 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뉘앙스가 바뀌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러나 PD라는 친구가 원하는 답을 살짝 틀어 대답하는 것으로 인터뷰를(아주 순식간에) 마쳤다.

예상대로 인터뷰는 편집되었고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한 말들은 다른 원고와 자막으로 이용되었다. 방송 하루 전 미안하다는 전화가 한 통 왔을 뿐이다. 뭐, 전화까지나. 어차피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판국에. 물론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는 화요일 아침 KBS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방송되었다. 내 대신 문화평론가란 사람이 PD가 내게 요구했던 바로 그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독립영화가 한 편 흥행하니까 여기저기서 덩달아 난리다. 독립영화 한 편 본적 없는 사람들까지 독립영화이야기를 해대고, 훈수 두겠다고 설친다. 자신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에둘러 독립영화의 중요성과 지원을 떠들어대고 있는 형국이다. 아는 게 없으니 콘셉트가 올바를 리 없고 기획단계에서부터 갈팡질팡하니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 수면 아래로 잠겨버리고 만다. <워낭소리>는 이 땅의 방송제작자들이 독립영화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날 오후 나는 얼음장 같은 몸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주절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만 깁슨이면 뭐하나! 손가락이 따라주질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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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아무래도 촬영장을 한 번 다녀와야 될 것 같았다. 이미 다른 매체들이 취재해 기사화되었고 우리 역시 꽤 많은 분량의 원고를 준비해놓은 상태였음에도 직접 눈으로 봐야 속이 시원할 것만 같았다는 말이다. 혹여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완곡하게 의사를 타진하니 뜻밖의 답이 날아왔다. “거두절미하고, 일요일 날 아예 (카메오)출연하시죠....신 대표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젠장. 난 그냥 촬영장에 찾아가 덕담이나 몇 마디 던지고 오려고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람. 일찍이 김훈의 『칼의 노래』가 「한국문학의 벼락같은 축복」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았듯이, 까짓것 나라고 ‘한국영화 카메오계의 벼락같은 축복’이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는(그러니까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호기를 부리며 촬영장소인 대학로의 어느 카페로 향했다. 그로부터 4시간 쯤 흐른 후.

이런 경우를 두고 사서 고생한다고 말하던가? “배우가 너무 컵을 일찍 잡은 것 같아. 애초에 컵을 깨기로 작심한 것처럼 보이면 곤란할 텐데.” 진짜로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이 허술해 보이는 것은 분명했다. 극의 흐름 상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모니터를 보던 감독이 조감독을 호출해 다시 찍을 것을 지시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준비한 소품용 설탕 컵이 3개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필 세 번째 테이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스태프의 움직임이 분주해질수록 나는 ‘이게 다 좋은 영화를 위해서야. 귀찮아도 다시 찍으면 훨씬 그럴싸한 그림이 잡힐게 틀림없어’라 자꾸 되뇌고 있었다. 비록 내 발언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지만 눈총이 두렵지도 않았고 눈총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누구하나 불평 없이 자기자리를 잡고 재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컵 대신 주먹으로 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자 소품 걱정은 사라졌다. 하지만 바뀐 설정에 따라 몇 차례의 테스트가 다시 이어져야 했다.

곧이어 재개된 촬영. 그런데 도무지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몇 번의 리허설을 거친 후 슛에 들어가도 만족할 만한 장면 하나를 얻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마당에, 다 찍었다 싶은 신을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는 배우와 스태프, 또 감독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배우의 동선이 맞지 않아 한 번, 배우 배에 그림자가 비춰서 또 한 번, 오버액션 때문에 다시 한 번. “다시 가겠습니다” 조감독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럼에도 감독은 직접 나서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저 모니터를 주시하다가 가끔 한 번씩 나타나서는 연기에 대해 몇 마디 의견을 내놓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하루 종일 그랬다. 현장은 전적으로 조감독에 맡겨져 있었다. 조급해하기는커녕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은 또 없을 터이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감독들, 그러니까 비스콘티와 파솔리니가 그랬고 그리고 베르톨루치가 배우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배우에게 어떤 지시도 주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신이 어떤 연유로 해서 벌어진 것이고 어떤 이야기로 연결될 것인지를 이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촬영감독과도 프레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정도면 족해보였다. 반복촬영을 최대한 절제한 채 촬영감독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무표정함으로 일관하는 그의 카리스마에서 나는 기타노 다케시를 떠올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촬영에 제동을 건 건 엉뚱하게도 빛이었다.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면서 조명등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빛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결국 5번의 테이크 만에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그러나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묵묵히 담배를 입에 문 감독의 지친 표정 위로 고뇌가 배어나온다. 돈과 시간과의 싸움을 지배하지 못하고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의 다름 아닐 테다. 곁에서 눈치를 챘는지 “한 번 더 가시 던지요”라고 촬영감독이 거든다. 말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지만 말처럼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촬영, 분장, 조명, 동시녹음, 편집 등등의 분업화된 스태프의 협조와 4시간 가깝게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던 보조출연자와 배우들을 생각하면 감독 욕심을 앞세우기가 쉽지만은 않을 터. 연출부의 촬영 정리에 이어 기계와 장비들이 하나 둘씩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생면부지인 나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안하게 대해준 정동규씨(나홍진의 <추격자>에서 시장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와 사소한 것까지 신경써준 스태프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알 만한 사람은 벌써 눈치 챘겠지만, 이건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 촬영장을 찾은 후 써내려간 사적단상이다.

신동일의 세 번째 장편 <반두비>의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벵골어로 ‘참 좋은 친구’라는 뜻의 <반두비>는 이주노동자와 여고생 간의 수상쩍은 로맨스를 통해 한국의 사회시스템 전반을 진단해나가는 독특하고 진중하며 경쾌한 영화다. 예정대로라면 9월 24일 경 크랭크업을 하게 된다. 두 번째 장편의 개봉 불발을 딛고 와신상담한 작품이니만큼, 스태프들의 유기적인 협조와 노력이 보태진 만큼 좋은 영화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영화를 위해 <반두비 제작위원회>가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제작위원회라는 것은, 투자 제작 배급을 수행해온 전문 집단이 삼각편대를 이룬 후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투자부터 개봉까지를 관장하는 독립영화의 실험적 제작시스템을 말한다. 2007년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이 그 효시였으니 신동일의 <반두비>는 두 번째 수혜자가 된 셈이다. 이미 2008 상반기 독립영화제작 지원작에 선정된 바 있고, 독립영화배급의 메카인 인디스토리가 배급. 마케팅을 맡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개봉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주인공인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마붑 알엄과 CF모델 출신의 신인 백진희 사이의 수상쩍은 로맨스, 혹은 박혁권과 이일화가 다른 한 축을 이뤄 펼쳐내는 닭살 돋는 사랑 놀음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도 조금만 기다리시라.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반두비>는 후반작업을 거친 후 내년 초 반드시! 여러분과 만나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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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더욱 날선 목소리를 요청하며

9월 18일은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이 땅에 세워진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요즘처럼 자고나면 세상이 바뀌는 시대에 십년 세월이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의 독립영화협회를 일구어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연일 도착한 안내문을 보면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이 준비되어 있는데, 독립영화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3개의 포럼과 10주년 기념식과 <파업전야> DVD발매 기념상영 등, 영화단체이자 시민사회단체로서 독립영화협회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행사로 가득하다.

지난 10년간 기억도 못할 많은 일들이 독립영화계를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독립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개관은 10년 한국독립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특별한 사건으로 기록될 듯하다. 식자들마다 한국영화의 미래가 독립단편영화에 달려있다는 말은 쉴 새 없이 해대왔지만 정작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있어 적은 제작비로 힘겹게 완성시켜도 홍보는 고사하고 상영할 극장을 찾아 나서기도 벅찰 노릇이고, 설사 힘들게 상영관을 잡았다 해도 마케팅의 부재로 찾는 관객이 소수인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의 안정적인 상영 뿐 아니라 지속적인 홍보를 통한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를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전용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독립영화협회 10주년을 맞은 지금에도 ‘독립영화의 현재가 한국영화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편영화 제작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나간다는 점만 놓고 봐도 그렇다. 문제는 상영공간과 배급라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인 법. 독립영화의 발전과 저변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만큼이나 관객의 호응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돌아보면, 장산곶매, 서울독립영화집단 등을 주축으로 8.90년대 만들어진 <판놀이 아리랑> <강의 남쪽> <상계동 올림픽>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의 영화들은, (비록 시대적 요청이었다고는 하나) 그 소재가 민주화로 증폭된 사회계층간의 갈등과 소외된 삶에 편중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낯선 영상과 메시지의 중압감에 부담스러워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졌을 런지도 모른다. 물론 독립영화가 어둡고 음습한 외진 곳의 삶을 조명해만할 이유는 없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투쟁적 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굳건해지는 것도 아닐 터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자유당과 공화당을 거쳐 민정당으로 이어진 독재군사정권 하에서 한국영화산업은 국가정책의 발 빠른 메신저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반공. 계몽. 건전이라는 명찰을 단채 정권의 홍보대사로 격하되기 일쑤였으니, 그 시절 다수의 영화들은 통치자의 대국민 영상편지에 다름 아니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격동의 시대를 뚫고 탄생한 한국독립영화는 태생적으로 영화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까 자본은 물론이고 정치적 목적으로부터의 독립과 부조리한 사회시스템에 항거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도 상영될 수 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시대의 관객이 이러한 태생적 연원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나는 그것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독립영화에의 애정을 과시한답시고 소재와 형식을 상업영화와 비교해 섣불리 재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영화에 관한한 독보적 비평가 중 한사람인 김이환은, 자신의 첫 번째 독립영화인 송혜진의 <안다고 말하지 마라>를 보며 얻은 경험을 교훈삼아 쓴 글에서  「가끔 사람들이 독립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게 될까? 그 기준은 또 얼마나 자주 변할까? 그러니,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말자」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소중히 새겨야할 대목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볼 만한 독립영화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독립영화 전용관뿐 아니라, 인터넷 영화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에서도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다. N 포털 사이트의 경우는 독립영화관이 별도로 개설되어 있고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열정과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독립영화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충만으로 독립영화에의 관심을 증폭시킬 수는 없다. 대중이 관심을 갖고 보고자 할 때, 극장을 찾아 나서며 적극적으로 동조할 때서야 독립영화의 위상이 달라지고 관객과의 만남이 잦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번의 관람과 두 번의 관심이 더해져야 한다.

영화는 가히 21세기 문화산업의 총아로 군림하고 있다. 여기서 방점은 산업에 찍혀야 한다. 환금성 높은 것만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니는 후기자본주의시대에 독립영화라고 예외일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즉 철저히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고 작동하는 산업의 자장 안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독립영화감독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오래오래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는 바람이 그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래도록 영화를 찍자면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족의 주머니에서 나오든 친구 친지에게 읍소해 제공 받든, 아니면 감독과 스태프가 아르바이트로 조달하든 돈이 있어야 영화를 찍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보자. 김삼력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드는 후배에게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 느낌이 다를 수 있겠으나 독립영화인의 현실적 고민이 담겨있는 이 장면에서 나는 오히려 김삼력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본의 독립만큼 중요한 것은 자본의 자립이다. 제도의 장벽과 대작영화의 극장독점이라는 공정성 문제가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자본화 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고 터득해야 한다. 바야흐로, 창작예술이라는 1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 산업적 논리를 대입시키려는 2차원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의 독립영화가 투철한 모험정신으로 세상과 맞서 사회적 모순과 문제를 진단하고 스크린에 상정시켜놓은 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명쾌한 답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현실에 집착하면 상상력이 결핍되기 십상이고 상상력이 앞서면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대의 대안가족에 대하여 곰살스럽게 펼쳐 보인 안슬기의 <다섯은 너무 많아>가 (개인적으로 더 없이 좋았음에도) 더 전진하지 못하고 멈춘 그 지점을 김태용의 <가족의 탄생>이 과감하게 돌파했다는 사실은, 독립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놓치지 말되 풍부한 상상력과 따뜻한 인간미도 두루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립영화의 편견과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실종된 목소리는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영화의 다양한 기능성, 그러니까 영화의 사회적 책무에 버금가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속성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독립영화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용인될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독립영화도 재미있어야 한다.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 속에 영민하게 메시지를 담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독립영화가 더 날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다.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날선 목소리를 독립영화에서마저 들을 수 없다면 진실의 외침이 설자리는 어디라는 말인가.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는 비전향 장기수, 외국인 노동자, 청년실업, 기지촌, 일탈을 꿈꾸는 가족사, 무미건조한 일상 등, 소재의 다양성과 내러티브의 확장성을 시도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걸 맞는 깔끔한 영상과 재미로 관객과 한층 가까워지고 있다. 독립영화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지금이야 말로 <파업전야>의 결기를 독립영화가 다시 이어받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래전 선배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낸 소중한 필름과 그 속에 담긴 뜨거운 시대정신 말이다. 그러니 역사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도는 것을 막기 위한 초석이 되고, 독립영화를 지켜온 많은 땀방울에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을 향해 더 통렬하고 시원한 직격탄을 날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파업전야> DVD에 담긴 상징이야말로 그 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한다는 몸짓이요 영화를 통한 실천적 모험정신을 놓지 않겠다는 새로운 다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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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건영

좀 더 집중할 순 없었을까?

한 인터뷰에서 작가 최인호는 “소설의 소재로 쓰라며 자기이야기를 들려주러 찾아오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고 다른 이들은 절대 상상할 수 도 없는 인생이야기라면서. 하지만 막상 듣고 보면 그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겪는 흔한 고생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또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노를 배우러 온 아이의 부모는 하나 같이 자신들의 아이가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긴 초등학교시절만 해도 교실 뒷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떡하니 붙어있었으니까.

아무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겠냐마는 대게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 재능이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고 이를 이겨내면서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영화의 주인공 ‘수연’은 남달라 보인다. 그러니까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면서도 자신이 재능 없음을 인식하거나 인정할 줄 모를 뿐더러 오히려 콤플렉스덩어리로 가득 차있다는 것. 게다가 특별한 노력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으며 오직 자기의 꿈을 상대에게 설득하고 지원하도록 강변하는데 만 급급한 인물이다. 언젠가는 유학을 갈 것이라고, 단지 남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최면을 걸며 하루를 소비해나가는 이 대책 없는 청춘. 이처럼 뭣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청춘이 열정 하나에 의지해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재능임에도 스스로를 독려하며 이 험난한 세상과 부딪혀야 할 때 그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과연 그녀의 꿈은 이루어질까?

단편 <난 그런 사람 아니에요>로 알려진 이승영 감독은 장편 데뷔작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통해 바로 이러한 청춘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책임감도 확신도 없이 탕진하다시피 소비되는 일상을 읊조리듯 담백한 음악을 통해 매끈하게 묶어내고 있는 데, 때깔만 보자면 독립영화의 틀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만족스럽다. 또한 핸드헬드와 트래킹 사이의 적절한 선택은 몇몇 장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외양에서 만족스런 만듦새를 보여주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주인공이 어떻게 세상과 맞서 자기의 꿈을 이뤄내는지 혹은 실패하는 지를 보여주는 과정일 터. 그러니까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결과론적 탐구에 치중한다면 20대 청춘을 소재로 한 것이 무의미할 테고 원인과 배경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무게감에 짓눌려 독립영화의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보다 어딘가에>가 선택한 것은 어느 쪽도 아니다. 다시 말해 영국 유학에 목을 맨 영화 초반과는 달리 어느 샌가 주인공의 꿈은 현실에 경착륙해버리고 마는데, 이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세 명의 캐릭터를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데 허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감독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동호의 학교생활에 그토록 많은 시퀀스를 할애할 필요가 있었을까? 현의 동거녀를 두 번씩이나 등장시킨 이유는, 그의 이중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는가 아니면 수연의 절박함을 설명하기 위함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둘 다 껍데기만 남은 비루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가? 이렇다보니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수연과 동호와 현이 어떤 사람이었고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명확한 반면 수연의 꿈은 온데 간데 사라져버리고 만다. 솔직히 말해 수연의 행위들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구석이 충분함에도,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궁여지책을 알려주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다.

영화에서 수연은 경제적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모를 떠나 홀로서기를 택하고 있는데,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자신을 좋아하는 동호의 옥탑 방에 얹혀살면서 친구에게 푼돈을 빌리는 것뿐이다. 이처럼 사소한 노력도 성취도 병행되지 않는 수연의 행동으로 인해 꿈이 멀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때문에 유학을 꿈꾸고 음악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함에도 재능은 고사하고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게다가 이기적이면서 히스테리로 뭉쳐진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감독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번번이 패배하고 좌절하는 주인공의 꿈과 현실이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자문하도록 만듦으로써 동시대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려 한 시도가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무기력하고 나태한 청춘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아쉽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능이 없음에도 죽도록 노력하면서 작은 성취를 맛보며 앞으로 나아가던 <아스라이>의 상호나 남루한 현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발견해가는 여정을 그린 <나의 노래는>의 희철과 비교해볼 때, 영화의 주인공 수연은 낙천주의자도 아니고 노력파도 아닌 단순한 몽상가에 지나지 않음이 발견된다는 말이다. 이는 소재가 가진 충만한 에너지를 십분 이용하지 못한 채 인물들의 문제를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한, 그러나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시종 자기합리화로 일관하는 수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난 그런 (재능 없는) 사람 아니에요’를 외치는 것 같아 안타까울 정도다.

만약 수연이라는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면서 홀로 영화를 견인토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예컨대 동호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현은 필요이상으로 음울하며, 수연을 둘러싼 중심인물들의 이야기에 곁가지처럼 끼어든 동호를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현의 동거녀 설정은, 청춘의 꿈을 다루고자한 영화인지, 음악인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영화인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매끄러운 화면과 중독성 가득한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음악은 더 없이 좋았지만 여기에 치중하다보니 결기를 놓쳐버린 아쉬움. 한편으로 이러한 것들은 최근 독립장편영화에서 곧잘 발견되곤 하는데, 얻는 만큼 잃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한 번쯤 되돌아 볼 때가 된 듯하다. 즉 상업영화 못지않은 품질과 독립영화정신 사이에서 한정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말이다.

글을 다 쓰고 나서야 다른 이들의 평을 읽어보았다. 대체로 영화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으나 구체적으로 왜, 무엇이 좋았다는 얘기는 없었다. 독립장편영화라는 것의 강조를 통해 면피하려는 태도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면 고민스럽기 짝이 없다. 젊은 감독의 장편데뷔작 그것도 불과 1억을 가지고 만든 독립영화 앞에 너무 무거운 숙제를 던져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라도 상호부조성 칭찬은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독립영화에서 1억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뿐더러 영화는 감독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영화에 보내는 응원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실망스러웠다기보다는, 너무 세밀하게 그려내려 했던 시도로 인해 더 잘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를 감독 스스로 봉쇄한 것 같아 더욱 아쉬운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선택과 집중의 묘미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감독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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