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미리 고백하건대 이 글은 작심하고 어느 영화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쓰여 졌다.)

전주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시나리오 한 편을 꺼내들었다. 작년에 일찌감치 초고가 완성된 바 있는 신동일 감독의 신작 시나리오다. 몇 차례 고쳐 쓰기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최종본이다.

서울을 출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은 엔딩 크레딧 지점에 머물고 있었다. 부족한 잠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를 걱정했던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예상대로 이전보다 밀도감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극적 재미가 배가되었다. 여전히 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겨냥하는 이야기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사람 냄새 또한 그득했다. 휴게소를 거치면서 한 번을 더 읽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저녁에, 신동일 감독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느낌을 전달할 지를 걱정한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는 더 없이 좋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투자를 받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것이며,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멋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준비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동일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단편 [신성가족]으로 2001년 칸 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2006년에 장편 데뷔작 [방문자]로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디렉터스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만큼 외국영화계가 먼저 인정해준 감독이다. 두 번째 장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후 유수의 해외영화제에서 호평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기업과의 합병이후 완성된 이 작품은 원래의 제작자가 여러 사정으로 회사를 떠난 후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아 아직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솔직히 말해서 (신동일 자신도 잘 알고 있듯이) 신동일의 영화는 일반관객이 좋아할 만한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화려한 비주얼과 말랑말랑한 로맨스와 거리를 두고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적 문제를 들고 나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는 점에서, 계급과 자본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때론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또 때론 상처를 후벼 파는 아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영화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분명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한 번쯤 겪을 만한 일들이고 한없이 가벼워져만 가는 시대에 던져진 가족과 인간 본성에의 탐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신동일의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닐까 싶다. 때문인지 외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국내에서 홀대받는 감독들 중 하나로 신동일을 꼽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물론 이 부류의 대표주자는 단연 김기덕 감독이다.)
 
2008년에 들어서 그의 발걸음은 분주해졌다. 두 번째 장편을 기필코 개봉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마음으로 응원하고 글로 힘을 보태준 덕인지 몰라도 지난 2월말 서울의 모 극장에서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개봉을 위한 ‘모니터 시사회’가 열리기도 했다. 호응도 높은 설문결과에 고무돼 신동일은 개봉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 듯 보였고 마침내 책임자로부터 9월 개봉 약속을 받아냈다. 실로 완성된 지 2년 만에 개봉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약속이 뒤집히는 사태가 또 다시 발생하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무기한 개봉연기라는 일방적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적인 호소와 설득의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신동일은 빠지게 되었다.

정말로 운 나쁘게도 그의 영화는 영화상업주의의 첨병 노릇을 하는 제작자가 둥지를 튼 투자사에서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 영화를 오로지 흥행만을 목적으로 제작, 투자하는 이들의 계속된 잘못이 애꿎은 작품하나를 자칫 매장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단골처럼 호명되는 ‘미 개봉 영화들’ 중에서 신동일의 영화가 가장 늦게 개봉한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그의 영화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4월말 인사동에서 다시 만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내 개봉을 위해 분투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판권을 가져갈 뜻있는 투자자를 구할 생각까지 밝혔다. 미 개봉 영화도 개봉해야 하고 신작도 찍어야 하니 맘 쓸 일이 이만저만 아닐 그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 가득하나, 따지고 보면 이 땅에서 영화를 찍는 감독치고 돈 걱정, 개봉걱정 없이 작품에만 집중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의 고난을 어쩌면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천박한 제작자들 수하에 휘둘리지 않는 그 날을 위한 자양분으로 여기자고 다독였다.
 
이런 와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가 다시 관객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서울아트시네마의 5월 작가를 만나다(5월 17일, 토) 편에 초대 상영되고 열성 팬들 성원에 힘입어 DVD도 곧 출시된다는 것이다. 또 문제의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인디포럼에 초청되어 이달 31일에 관객과 한시적이나마 만나게 되었으니 아쉬운 가운데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영화와 영화감독에 관한 글을 써오면서, 영화감독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으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 너무도 많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자신의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는 것이 감독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를 이토록 절실하게 지근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신동일 감독의 덕분이리라.
 
전주에 도착한 날 저녁, 예정대로 고사동의 어느 극장 앞에서 신동일 감독을 만났다.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온 그에게 나는 다짜고짜 “이거 너무 좋아!” “그런데 딱 한 가지, 엔딩 크레딧에 소리를 넣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말로 그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렸다.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그리고 또 다른 자리에서도 나는 신동일과 그의 영화이야기를 해댔다. 그는 나의 후배이고 영화적 동지이며 무엇보다 좋은 친구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방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인 글이네요. 그 감독님 말고도 이 사회에 고통받고 있는 약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개봉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심으로 !

    2008.05.13 18:53
  2. 하얀말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자의 감독에 대한 믿음과 지지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글이네요. 신동일 감독의 작품이 조만간 꼭 개봉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힘을 모아요~!

    2008.05.14 11:22
  3. 박정철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한국사회 정말 뭐가 정답이고 누가 옳은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이 글을 읽고 잠을 이룰수도 없고 생각할수도 없다.
    그저 눈을 뜨고 있다.
    그저 이렇게...

    2008.05.15 01:32
  4. 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영화속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가 개봉되지 못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현실과 다름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쉽지만) 우리나라 예술문화의 수준이기도 하다. 날마다 심각할 수 없듯이 날마다 가볍기도 어려운것이 인생인데, 가끔은 이렇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그러나 그 질문의 근원은 우리삶의 가까운 곳에서 존재하는) 영화도 보고싶다.

    2008.05.15 11:5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폴란드의 거장 크쥐스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영화를 ‘예술’이기보다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매일 새벽, 스탭들을 데리고 촬영장에 나가야 하는 노고가 없다면 영화 예술 또한 없다는 뜻이다. 안슬기 감독은 그렇게 지난한 작업을 ‘행복하게’ 해 오고 있는 ‘선생님’ 영화감독이다. 스물아홉에 영화를 시작한 늦깎이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밑천삼아 방학을 이용해 촬영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편집을 하는 그의 열정은 대한민국 독립영화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런 안슬기 감독이 경쾌한 듯 진중하게 대안 가족을 응원했던 장편 데뷔작 <다섯은 너무 많아>에 이어 <나의 노래는>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희망도 없고, 가족도 붕괴된 스무 살 희철(신현호)의 일상과 분노, 희망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자신 있는 카드 중 하나일지 모른다. 교사로 재직하며 살을 부대껴왔던 그 제자들, 후배들의 이야기를 흑백에 담은 이 응원가는 상업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심심할지언정 무시 못 할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안슬기 감독이 있다. 만약 <나의 노래는>을 보고 자신의 스무 살, 그리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미 촬영을 마친 세 번째 장편 <지구에서 사는 법>이 벌써 궁금해 질 것이다. 비일상적인 SF적 요소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의 조합이라니.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라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예술’하는 ‘선생님’ 안슬기 감독은 이렇게 전진하는 중이다.






편집 때문 바쁘실 텐데 시간 뺏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개봉이 다음주죠?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나의 노래는>을 만날 기회는 있었는데요. 그 동안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웃음)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고 그러진 않아서 읽기가 쉽진 않네요.

혹시 영화제 등지에서 상영된 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객들 평은 읽어 보나요?

네, 다 읽어 봐요. <다섯은 너무 많아>를 본 관객들은 역시 그 작품을 생각하나 봐요. 제 입장에서는 영화 톤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관객들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장편 데뷔작인 <다섯은 너무 많아>은 성공이라 부를 만큼 많은 지지를 얻어냈는데요.

전국 관객 3천 명인데 성공이라 부르기에는(웃음).

이번 영화는 경쾌하기도 하고 바로 차기작이 잡힌 상태라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닌가 생각도 했거든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죠. 제가 큰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면 모르겠는데 <다섯은 너무 많아> 경우도 소박한 영화고 전반적으로 단편도 그런 컨셉이었고요. 자꾸 <지구에서 사는 법>이랑 붙어서 얘기 되고 제작비도 거의 10배 차이가 나니까 그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거 같아 그런 부분은 안타깝죠.

전작들을 보면 단편 같은 경우도 다 칼라였어요. 이번에도 칼라 부분이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찍었는데, 이유가 있다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여러 가지를 다 해 보고 싶은데 이번엔 흑백으로도 해 보고 싶었고요.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캐릭터 하나를 두고 그 아이한테 집중하는 스타일을 정해 촬영감독님에게 흑백으로 가자고 했죠. 핸드헬드에, 흑백에, 클로즈업 많이 써서 인물이 보이게끔. 우리가 커버하지 못하는 색깔은 뺏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그 결정이 미학적인 건가요, 아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인가요.

미학적인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100억짜리 영화도 똑같을 거 같아요. 그 예산 안에서 어떻게 뽑아낼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거 같고. 더 좋은 조명에 더 나은 환경에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가 찍고 싶겠죠. 그 안에서의 미학을 생각해야 하고 컨트롤을 해야죠. 작품도 칼라로 찍을 수 있었고 그럼 더 다큐 같은 느낌이 날 수 있었을 거예요. 오히려 전 리얼리티 보다 극적인 느낌이 나려면 인물에 집중해야 하니 흑백으로 간 거 같아요. 심하게 얘기하면 칼라로 찍었을 때 현실감이 더 있고 더 격할 수 있었지만 그냥 (흑백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죠. 원래 세미 다큐로 가려고 했었는데 극영화로 옮기면서 흑백을 선택했어요.

영화 카메라가 희철을 바라보는 화면만 칼라로 찍었습니다. 근데 희철의 점퍼를 보면 청색, 초록색이에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도 유달리 초록색 톤을 자주 썼다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 색을 상당히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색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전작에서도 미술 감독이 스타일이나 창틀이나 결정하는데도 초록색 분위기를……. 초록색이 붉은색 느낌은 아닌데도 차갑게 보이지 않는 안정감을 주고 블루 계열인데 따뜻한 느낌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배우 옷 입은 것도 그렇고 버스는 섭외 환경 상(웃음).

이번에도 일반 통념과 거리가 있는 가족이 등장합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그랬지만 이번에 할머니나 아빠도 그렇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건가요?

(웃음) 가족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처럼 되 버려서요. 전작은 가족을 뛰쳐나와서 ‘이 사람들도 가족이 될 수 있어!’고 <나의 노래는> 그 전 단계인 거 같아요. ‘참을 수 없으면 나와, 그것도 가족이냐?’ 아니면 ‘참지 말고, 꼭 거기 있을 필요는 없잖아. 찢어져!’ 뭐 그런 느낌이 있긴 하죠.

실제로 그럴 의향이 있는 건가요? (웃음)

저의 집은 굉장히 화목합니다(웃음). 누구나 그런 생각이 있을 거 같아요.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가 다 있을 거고, 저한테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 가족이나 부모를 증오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학교에서 얘들을 봤을 때 부모에 대한 감정은 더 세요. 애를 낳아놓고 자식으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렇게 되네요(웃음).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옳다는 부분에 반감은 있는 거 같아요.

<나의 노래는> 후반부에 할머니가 교회 앞에서 희철을 돌아보는 장면은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엄마가 돌아볼 때의 기괴한 느낌과 표정이 살아 있어요. 그걸 보면서 거창하게 얘기하면 프로이트의 ‘언캐니’, ‘친숙한 낯설음’을 던져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 사람들에 대해 못 믿는 거 같아요.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와요. 성모상이나 할머니나. 어떻게 보면 없는 ‘엄마를 찾아 달라’거든요. 엄마의 부재가 자꾸 성모상 할머니, 원래 친구였던 미나, 걔가 가니까 연주한테 넘어가고요. 그리고 새 여자가 생기고.

(희철이가) 복이 많던데요(일동 웃음)

복이 많죠(웃음). 근데 기존에 성모상이나 할머니는 범접할 수 없는 모성애잖아요. 근데 사실 그럴까 하는 거죠. 모성애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자기 살기 바쁘고.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애가 학교 안 왔는데 ‘그럼 어쩌라고’ 이렇게 전화 받는 엄마들. 갑갑하죠. 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내가 지금까지 많이 희생하면서 먹여주고 살려줬던 아이. 객관적으로 보면 해 준거 없는 거 같은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거죠. 엄마들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을 거 같고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아요. 아빠도 그렇고. 왜 자꾸 그렇게 되지? 우리 어머니가 성당을 다니는데 (영화를 보고) 제일 불만이 그거에요. ‘왜 할머니가 애를 버리고 나가냐(웃음). 그러고도 성당을 다니느냐.’ 그걸 뭐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는 다르고 그런데서 페이소스가 더 느껴지는 거 같아요.

단편들을 보면 모두 가족, 결혼, 사랑 이야기에요. 실제 규범화된 관계를 재구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어찌 보면 가족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자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만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단편들을 다 보셨나요? 꼭 무슨 청문회 하는 느낌인데요(웃음). 그렇죠, 뭐. 저한테 뭔가 있겠죠.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었어요. 대학도 청주에서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기숙사 생활하다 자취 했고요. 근데 아버지가 교사신데 그 중간에 순환 근무 때 일부로 서울에 와서 제 자취방에 함께 살았어요. 그게 정말 싫었거든요(웃음). 단칸방에서 같이 자취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 그랬을까, 왜 자꾸 벗어나려고 했을까는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는 그 분들이 안쓰럽고 그래요. 그런데 그걸 왜라고 물어보면 다 얘기해야겠죠, 술 마시면서 밤새도록(웃음).

희철이의 영화 속 궤적을 따라가 보면 분노를 배우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다섯은 너무 많아>에 비해 드라마가 부족하고 심심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요즘 스무 살 아이들이 분노를 못 참는다고 하는데 희철이는 굉장히 잘 참으면서 분노를 풀어가거든요. 그런 건 학교 선생님으로서의 경험이 이어진 건 아닌가 싶어요. 제자들을 염두에 뒀다는 생각도 들고요.

네, 그런 학생들. 제가 폐교 문제로 이슈화 됐던 동호공고에 있다가 신림동에 있던 당곡 고등학교에 있다가 작년부터 서울산업정보학교라고 직업반 가르치는 학교로 옮겼는데, 계속 봤던 아이들이에요.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얘기를 했는데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게임이라든가 당장 하고 싶은 건만 하는 거죠. 차라리 랩 하는 아이들은 좀 나은데 랩은 열심히 하지만 제가 보기엔 잘 못해요. 저걸로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 거 같고. 고3인데. 근데 1년 내내 공부 안하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한심스럽다기보다 쟤들은 어떻게 살까 그런 생각을 해요. 졸업해서 찾아오는 얘들 보면 아르바이트 하는 얘들 많고, 군대 가서 말뚝 박을 거라고 하고(웃음). 그런 류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뭐가 되고 싶었는지 그런 생각을 했었죠. 선생이니까 아주 꼰대 같은 생각을. 또 분노를 폭발하는 건 처음부터 시나리오 상에서 그렇게 잡았어요. 근데 리뷰를 받아봤더니 다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는 일이 없다, 수동적이다. 전 우겼죠. 그게 이 영화의 컨셉라고.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펼쳐 보여주면서 점점 움직이다 한 번에 폭발하는 게 컨셉이라고 밀어 붙였죠.

캐릭터만 보면 감독님이 현직 선생님이니까 생생한 면도 있지만 기존에 많이 보아왔던 영화적인 캐릭터로 읽을 수도 있거든요. 온순하다 마지막에 분노를 터트리는. 그게 다큐에서 극으로 옮기면서 의도를 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다큐도 비슷했을 거 같아요. 다큐도 이미지적인 걸 통해 편집을 했을 거 같고. 처음에는 막 사는 모습, 갈등, 그 다음에는 희망. 짜여진 대로 같을 테고 그게 전형적인 드라마트루기고요. 캐릭터나 전형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진 않았고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랩을 하는 친구들을 언뜻 생각하면 활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근데 희철은 그걸 배반하는 캐릭터니 재미있으면서도 왜 그런 인물을 택했을까 궁금했거든요.

랩을 잘 하는 친구도 아니고요(웃음). 동아리에서도 랩 하는 걸로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하고 그런 친구라. 우리가 보기에는 춤 잘 추고 랩 잘하는 친구들은 잘 보이는데, 사실 그 주변에는 안 그러면서 ‘깔짝’ 거리는 얘들도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민을 간 민하(주민하) 역이 좋았어요. 글을 쓰신 걸 보니까 <리틀 미스 선샤인>도 언급했던데요. 올리브가 오빠 드웨인 어깨에 기대 말없이 지지해 주는. 마찬가지로 영화 이전 얘기가 있었다면 그런 위치로 민하가 희철 옆에 있었던 거 아닌가 싶은데요. 영화적으로는 이민을 가는 구조인데 너무 일찍 퇴장시킨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웃음)그랬다면 갈등이 더 생겼겠죠. 삼각관계 같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자꾸 부재를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 편의점신 같이 (관계를)보여주고 나서는 빼자고 했었어요. 누구부터 뺄까. 점점 잃어가는 친구고 원래 없었는데 더 잃어가고 아버지처럼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은 오고. 지금 생각하면 잘 한 건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도 그랬고 관객들도 누가 더 예쁘냐고(웃음).

이민가기 전에 민하가 희철에게 보낸 문자가 압권이었어요. ‘빙신아, 나 내일 떠나’였나요?

안: 걔네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희철이도 (민하를)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괜히 모르는 척 하잖아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할 수도 없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또 그런 걸 안타깝지 않은 척 지나칠 수밖에 없고 그걸 둘 다 알고 있고 그런 거죠. 나중에 관객들이 안타까움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돌려보죠. 한겨레 영화제작학교에서 영화를 배우셨죠? 어떤 계기로 영화를 하게 된건지.

원래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영화관에 많이 갔었어요. 옛날에 학생지도 같은 거 있었잖아요. 극장 관계들을 다 아니까 무조건 아버지 손잡고 들어가서 <소림사> <디어 헌터>도 보고. 그 기억이 강렬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 한다고 하고 주말에는 집에도 안 가고 영화 보러 다니고. 그때는 야한 영화들이 유행이었어요. <먹다 남은 사과>, <여왕벌> 이런 거. 그런 거 보러 다니고 소풍날 되면 얘들이랑 영화 보러 다니고. 영화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었죠.

그럼 결혼 후에 한겨레 영화제작학교를 다닌 건가요?


네, 대학 가서 하려 했으나 시절이 하수상하야. 군대 같다 왔더니 나이를 먹고 힘들어서 직장이 있어야겠다 싶어 공부해서 임용고시 붙고 그 다음에 영화를 했죠. 스물아홉에.

예전에 작가를 만나다 때 한 얘기를 보면 교사라 대출이 편해서 영화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은행이 투자자인 셈인가요?

그렇겠죠.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니까 결국은 은행돈이죠. 아직 회수는 안 됐고요.

이번엔 회수가 될 거 같나요? 어떻게 예상하는지.

안 될 거 같은데요(웃음). 원래는 필름으로 안 가려고 했는데 부산에서 지원을 받는 바람에 여차저차 B프린트 뽑고 사운드 쪽에 돈이 들어가서요. 프리 프로덕션 포함해서 1,500만원 들었고, 나머지 후반 작업에 또 1,500만원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마케팅 팀에서 외부에 얘기할 때 3,000만원 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그거라 이왕 싸게 가자고 했죠(웃음). 제 지분이 43% 정도 되고 나머지는 스탭들하고 배우들 지분이에요. 결국은 7천 이상 든 거죠. 제작자니까 그 수익이 나야 배우들 다 나눠주고. 제 수익이 날 수가 있나요(웃음).

역시 케이블 판권이 중요해요. EBS에도 팔아야 되고요(웃음).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방학 끝나기 전에 촬영과 편집을 마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니에요. 자꾸 그 쪽으로 몰아가니까 그런데요, 촬영만 방학 때 하고 편집은 6~7개월에 걸쳐서 해요. 장편 3편을 했는데 세 편 다 겨울 방학 때 촬영은 마쳤는데 편집은 <다섯은 너무 많아>가 7개월, <나의 노래는>은 6개월 걸렸어요.

오해인 거네요. 방학 때는 촬영만 집중적으로 하는 건데요.

전주국제영화제 때문에요. <다섯은 너무 많아> 찍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촬영은 며칠까지 하고 편집은 3월 말까지 한다. 그때는 장편 편집이 뭔지 몰랐죠(웃음). 그랬더니 전주에서 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때 촬영감독, 조감독하고 셋이서 4일 동안 밤을 샜어요.

한정된 시간 안에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더 찍고 싶은데 못 찍는 거? 그렇죠 뭐. 현장에서 제가 스탭들한테 뭐라 못하는 이유가 제 원죄가 많거든요. 며칠까지 끝내야 하는데 계획을 짜 놓으면 제 입장으로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안 그러면 3월 달에 찍어야 되는데 말이 안 되는 거고. 장소도 빌리더라도 전체 틀 속에서 빌려야 하니까 더 힘을 줘야 되는데 2~3일 안에 끝내야 되니까 몰아서 이틀 안에 60컷을 찍기도 하고. 많아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설정을 외곽지역으로 한 건데요. 실제로는 왕십리 지역에서 찍었고요. 보도 자료를 보면 모텔하나 잡아 놓고 스탭들과 부대끼며 지냈다고 소개했던데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주민들이 많이 도와 줬어요. 크게 무리 있는 촬영도 아니고 조명도 기본 조명이니까. 장소 고민을 별로 안 하고 일단 장소를 잡고 거기에 앵글이나 콘티를 맞추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요. 15일 동안 13회 차 촬영 했으니까요. 스탭들이 거의 같이 살았죠. 여관 잡아놓고 8명, 9명까지 잤으니까. 그래도 배우들은 방을 따로 줬어요. 연출부는 다 때려 넣고, 촬영, 조명팀도 다 때려 넣고. 아침에 일으켜서 찍고, 밥 먹이고 저녁때 해 지면 또 찍고.

힘든 영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안 감독님한테 영화란 무언가요.

꼭 마지막 질문 같은데요(웃음) 영화란, 꿈은, 청춘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 보며 힘들어요(웃음). 전 옛날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10년 전부터 준비해서 찍고 있고 소중한 건데요. 소중한 일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나 보고 영화 찍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란 생각도 들고. 관성이라고 할까요? 산을 타는 사람한테 왜 산을 올라가느냐고 하면……. 저도 이제 10년 됐으니까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담인데 와이프 분이 영화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물은 적 없나요?

아유, 그럼 물어보기도 했죠. 안 물어보면 여자가 아니죠. “영화야, 나야?” 뭐, 이런 거.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 (일동 웃음). 유치원생이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그랬죠.

감독님 영화들 보면 시대가 느껴져요. 반면 치열하다든지 비장하다든지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기운은 없어 보이고요. 한편으론 생활이 비교적으로 안정적인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비장하거나 암울한 영화들은 피하고 긍정적으로 희망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런가 봐요(웃음). 왜냐고 물어본다면 맞는 거 같아요. 하도 그렇게 물어봐요. 보편적인 독립영화 같지 않다, 그런 느낌은 안 든다. 그게 상업영화 같다는 소리는 아니고 무게라든가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다거나, 그 중에서도 아픔이 많이 반영돼서 그런가 봐요. 제가 만든 영화중에 무거운 영화도 있어요. 단편 <사랑 아니다> 같은 경우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장편 두 편이나……. 그래도 <다섯은 너무 많아>보다 (<나의 노래는>이) 무겁지 않나요?

오히려 엔딩을 그다지 희망적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 친구를 현실적으로 탈색시켜서 본다면 그 또래의 스무 살들이 보면 희망적으로 읽을까 싶은 거죠.

네, 지금 스무 살들이 보면 잘 모를 거 같고요. 20대 후반이 봐야 좀 느낌이 있을 거 같은데. 저게 희망일까라는 건 거짓말 하는 거 같았어요. 로또 맞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재능을 발휘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얘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 문제는 그걸 바라보고 매일 그걸 꿈꾸면서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준비안하고 허황된 꿈을 꾼다든지 하는 거. 연예기획사에 돈이나 갖다 바치고 그런 얘들이 태반이니까요. 방송에 잠깐 출연해도 기획사에서 돈도 못 받고. 같은 어른 입장에서 안타깝죠. 사기나 당하고. 그렇게 살지 말고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 정도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걔가 나중에 빌리 엘리어트처럼 무대에서 비상하는 건 거짓말이죠. 내가 바라는 건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늦게나마 하고 싶은 걸 찾고, 언제인지 기억은 못하겠지만 카메라에 대한 생각도 있고. 그걸 사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마이 제네레이션>이 되는 거죠(일동 웃음)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칼라 장면들이 가혹하게도 느껴졌거든요. 과연 희철이가 저 카메라로 영화를 찍을 수는 있을까 싶은.

글쎄요, 뭘 할지는 모르겠어요. 더 우여곡절이 많을 수도 있겠죠. <마이 제너레이션>처럼 돈이 없어서 팔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서 하고 싶은 거 없이 살 때 보다는 나을 거 같아요. 나도 직업이 있는 선생이고 그거 때문에 남들보다 영화를 쉽게 하지만 시작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 그런 거죠. 누구는 저보고 충청도 땅 부자라고 하던데(웃음). 다 빚인데. 빚을 잘 낼 수 있는 거죠. 근데 영화 찍는 친구들 중에는 아르바이트 세 네 개씩 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렇게 돈 모아서 영화 찍고 그런 다음에 빚 갚고. 그런 사람에 비해 전 행복한 거죠. 더 (영화를) 잘 찍어야 되고요.

안 감독님은 연출 말고도 배우를 했어도 충분했다고 봐요. 그해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만 아니었어도 더 주목을 받았을 텐데요. <마이 제너레이션>의 실장 연기는 압권이었고 <나의 노래>에서도 연기를 했는데 그 두 편이 전부인가요?

 <마이 제너레이션>하고 단편은 부탁 받은 거 몇 편 했었어요. 들어오는 역할이 다 그런 거예요, 배 나온 경상도 국회의원. 말도 안 돼는 역할을 시켜서(웃음) 싸가지 없는 과장, 직장 상사. 이번엔 정수기 회사 사장인데 정규직으로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 ‘쌩’까는. <마이 제너레이션>의 그 이미지가 큰 거 같아요. 불러달라고는 하죠. 멜로 연기 한 번 해 보고 싶다고(웃음).

이제 배우로서의 욕심이 슬슬 생기나 보네요(웃음) 이번에 세 번째 작품 <지구에서 사는 법>을 끝냈다고 들었어요. 후반기 개봉이라고 들었는데 그 전에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아직 편집이 안 끝나서요. 편집이 끝나봐야 알겠죠. 정식 개봉은 하반기인데 나오는 거 보고 영화제 고민은 할 거 같아요. 일단은 잘 나와야 되는데 주말만 편집을 하고 있으니까 회사 쪽에서 답답할 거예요. 게다가 <나의 노래는> 개봉까지 맞물려 있어서요.

<지구에서 사는 법>이 3억 5천이라고 들었는데요. 기존 작품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큰 규모인데 제작비가 늘어나서 피부에 확 와 닿는 게 뭔가요?

없어요. 사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6~7천 들어갔거든요. 예산이 커지면 어디다 돈을 들일까 어디다 돈을 더 쓸까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나오는데도 없어요. 게다가 촬영 회차가 더 늘어나고 진행비가 더 들어가고. 또 민망하지만 배우들 인건비도 다 주고 지분계약도 다 하고요. 그거 빠지니까 전작하고 똑같아요. 여하튼 큰 차이가 없어요. 게다가 그립 장비도 들어가고 CG도 들어가고 총도 나오고(웃음). 그 쪽에 예산이 들어가니까 나머지가 괴로운 거죠. 사실 독립영화 쪽에서 찍어도 돈이 좀 들겠다 싶은 시나리오였으니 그 돈으로 맞추려니 미치죠.

촬영 장비나 미술 쪽 얘기를 했는데 전작들하고 스타일이 확 달라질 거 같네요. 앞으로 꼭 다루고 싶은 소재나 형식이 있다면요.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싶어요. 제가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요.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고요. 나중이 되어야지 연륜도 쌓이면서 어떤 스타일이 생길 거 같아요. 그래도 저 밑바닥에 스타일은 한 사람이니까 비슷할 텐데. 딱 한 가지는 모르겠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어요. 100만원 프로젝트라고 하나 있는데, 100만원 들여서 제가 격하게 촬영하고 3일 만에 촬영을 끝내는 프로젝트가 하나있고요. 호러도 생각을 해 보는데 피나 귀신, 효과음 하나도 안 나오더라도 무서울 수 있지 않을까. <큐어> 같은 느낌의. 그리고 이번 <지구에서 사는 법>이 그런 컨셉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 이후 해보고 싶은 게 아주 건조한 일상에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들어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장률 감독님 영화 스타일에 외계인이 서 있으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건조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보일까. 그걸 일상적으로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외계인이 나오는 건조한 이야기.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느낌인데 대단히 건조한.

판타지를 일상으로 데려오는 거죠?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네. 근데 자꾸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거 같아요(일동 웃음). 그런 것도 해 보고 싶고, 그래요.

마지막 질문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는 독립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나의 노래는>을 본 관객들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요.

희철이가 보였으면 좋겠고,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 나이 때의 자기 생각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떤지, 뭐하는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마지막 보면 지지고 볶고 하다가 ‘사랑밖엔 난 몰라’ 부르잖아요. 제가 ‘386세대’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이랑 그거 보고 나오면 짠해서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자’라고 하잖아요. 거기 까지는 안 올라갔지만 그런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번외 질문 하나 하자면, ‘386’ 얘기도 언급했고요. <나의 노래는>의 희철이는 이제 막 ‘88만원세대’로 진입하는 아이들인 거잖아요. 감독님의 제자들이기도 하고, 그런 친구들에게 보내는 응원가 정도로 해석을 해도 될까요?


네, 맞아요. 그런 거예요.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거고. 와서 나한테 “이렇게 살아요” 그럴 거 아니에요. 2학년 때 자퇴했던 한 녀석도 군대 간다고 친구 커플이랑 마누라랑 애 데리고 술 사 달라고 왔더라고요(웃음). 근데 얘들이 철이 없어요. 갈비 사주고 당구 쳐주고 맥주 사주고, 다 내가 냈네(웃음) 근데 좋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고치고 살 놈 아닌가도 싶은데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웃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fungames.im/games/driving/ BlogIcon Driving Games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50



이번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나는 한국영화의 위기상황에 대한 용어정리,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위기가 아니라 영화산업의 위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의 원인은 무분별하게 판을 키워온 제작자를 비롯한 영화관련 집단 모두에게 있으며, 이들이 한국영화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면서 위기타개의 수단으로 한국영화를 볼모잡고 있다는 얘기도 했었다. 일부 영화제작자들 중에서 영화자체에는 관심조차 없거니와 흥행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넋 나간 사람도 있다. 또 스크린 쿼터 수호를 위해서는 ‘문화다양성’을 내세우며 영화를 예술로까지 격상시키지만, 사업영역에 들어서면 흥행에 거품을 무는 이중성이 제작, 배급업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계는 더 건강해져야 하고 다양한 형식의 영화들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문제는 재창조마저도 수월치 않다는 것에 있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함부로 손대기 겁날 정도인 영화판을 어떻게 하면 체질 건강한 모습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는 제작, 배급업자 집단에 초점을 맞춰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집단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량한 감시, 전달자로서의 책무에 충실하기는커녕, 시장의 왜곡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한국영화위기론의 배후로 전락해버린 언론의 책임 또한 이들과 비교해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즉 부실공사의 책임이 설계, 시공자뿐 아니라 감리자에게도 지워지듯이 부실한 날림 영화를 온전히 비판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입장에 서있었던 언론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영화산업의 부활을 이끌기 위해 영화인의 혁명적 변화 못지않게 언론의 역할 재조정이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례사비평을 날려 온 평단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는 영화산업과 한국영화를 위한 언론매체의 역할과 책임을 거론하려 한다.

잡지나 일간지 인터넷 신문을 막론한 언론매체에게 영화만큼 매력적이고 상시 공급 가능한 콘텐츠도 드물 것이다. 매체 규모에 따라 영화전문 기자가 있는가 하면, 문화부에서 다루기도 하고, 또 더러는 연예기자가 영화를 담당하기도 한다. 매체 성격상, 사실전달에 비중을 두다보니, 기자 개인의 의견과 사고가 개입될 여지가 줄어들기 마련이고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인터넷으로 가면 기사재량권이 조금 더 확대되기는 하나, 2007년 초 뉴시스의 김용호기자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전달과 사적의견 개진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품질 떨어지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기 일쑤다. 이런 환경에서 거창하게 영화판을 헤집어보고 한국영화산업의 미래를 논할 여력이 없음은 자명한 일일 테다. 게다가 개별 영화로 대상을 좁히더라도, 매체 또는 기자의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관련 매체의 기자들 역시 영화산업 자장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거대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영화매체와의 친분을 통해 우호적 기사를 유도하거나 혹은 길들이기를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매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영화전문지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광고지면이 늘어나면서부터 제작 또는 배급집단과 결별할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애초부터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이었다. 매체와 제작이 나란히 가는 것이 굳이 나쁠 것만도 없고 영화매체가 영화와 싸울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문제는 최소한의 비판적 담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현실에 있다. 2007년 [디워]와 관련한 쇼박스의 <필름 2.0> 광고 철회라는 더러운 작태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인터넷 매체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아예 비참할 지경이다. 몇몇 거대 포털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돈 대신 대물변제 형태의 지급조건으로 광고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거니와, 자기네 영화에 대해 비판적기사가 올려질라치면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 수정요구를 하기 일쑤다. 이처럼 비판적 기사를 쓸 수 없는 환경 하에서 건강한 영화담론이 생겨날 리 만무하다. 때문에 제 아무리 쓰레기 같은 영화라도 어떻게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기자의 능력이고 임무요 사명감이다. 급기야 “한국영화 망하는 꼴 보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기자의 의무가 된 형국이라 하겠다. 때문인지 한국영화가 힘들다고 하면 기자들은 사심 없이 응원의 기사를 써주곤 했다. 따져보는 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죽어가는 놈 살려놓고 보자는 심정이었을 게다. 자의반 타의반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보자. 언론매체가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던 한국영화위기와 부활의 사이클, 그러니까 오늘 방금 전까지 곧 죽을 것 같던 한국영화가 몇 편의 선전에 힘입어 부활의 전주곡을 울린 후, 다시 몇 편의 블록버스터가 흥행을 주도하며 쌍끌이 작전에 돌입하여 거둔 한국영화의 부활이라는 장엄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진부하다 못해 바닥패가 보이는 글로는 더 이상 한국영화 구하기에 나설 수 없다는 얘기다.

나는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론자들의 머릿속에 상업 장편영화만이 들어있다고 비판해왔다. 언론매체 역시 이들의 논리에 대한 고민 없이 관객에게 전달해왔다. 각 매체의 개봉작 소개는 블록버스터이거나 스타가 출연한 영화거나 아니면 스타 감독의 영화 위주로 이루어졌으며, 화제작, 문제작, 기대작이라는 단어는 스크린 숫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으니, 독립영화나 소자본 영화, 단관 개봉영화들은 관객에게 알릴 기회조차 박탈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거대제작사와 배급, 홍보사가 일치단결하여 십자포화처럼 쏟아 붓는 보도 자료와 물량공세에 굴복한 많은 언론들은 앵무새처럼 읊어대곤 했다. 이처럼 대형상업영화 위주의 보도관행과 밀어주기성 기사는 기어이 ‘좋은 영화는 반드시 관객이 알아본다.’(그러나 속뜻은 흥행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해괴한 논리를 낳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언론매체들은, 흥행대박을 주도하며 스크린의 독과점과 관객의 관람권리 박탈을 자행해온 영화자본의 시녀가 되어, 이들이 자생력이 취약한 영화시장을 거점 삼아 한국영화산업의 기형적 성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안전판이 되어준 셈이다.

독립영화인들의 숙원이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지난해 11월 개관했다. 이전과 비교하자면 셋방살이 설움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으니 더 바랄게 없겠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독립영화는 매체보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매체기사의 95%이상은 장편상업영화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가 파리를 날리는 시간에도 도심 어느 골목에선가 독립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작고 볼품없어 눈에 띄지 않을 뿐, 게다가 돈이 없으니 내세워 알리지 못할 뿐, 꿈틀대는 열정과 결기로 치자면 상업 장편에 뒤질 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평일저녁 6시 즈음이 되면 인터넷매체의 연예 면은 시사회에 참석한 여배우의 짧은 스커트와 등 파진 드레스 사진으로 도배된다. 그 많은 면을 꼭 모든 매체가 같은 사진과 내용으로 채우는 비생산적인 행위의 끝은 어디일까.

그럼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요컨대 솔직하게 보고 느낀 대로 쓰자는 얘기다. 한국영화계가 어려운 것이 진정 안타까워 되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그럴 수 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무조건 한국영화를 많이 보면 한국영화가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에서 뛰쳐나오라는 말이다. 좋은 영화는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수준미달인 영화는 그에 맞는 평가를 해주면 된다. 다만 칭찬과 비판 어느 쪽이건 해당영화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글로써 전달할 수 있다면, 비판이라고 무조건 거북하게 여길 감독과 제작자는 없으리라. 또한 무턱대고 독립영화를 좋아해주자는 말도 아니요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예비관객에게 존재를 알릴 기회를, 영화에 대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알림의 장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덧붙여 언론과 영화평론가집단을 구분지어 생각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말해 영화기자나 평론가나 모두 영화전문가 혹은 비평가로 뭉뚱그려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평단과는 달리 관객의 마음을 읽어낸다는 아전인수식 기사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론이 평단의 역할까지 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던가.

광고의 핵심은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상품을 구매하도록 소비자를 부추기는 것에 있다. 남이 모두 가진 제품을 가지지 못했을 때 느끼는 결핍은, 가진 자들과 섞일 수 없으리라는 소외불안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광고의 속성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이가 본 영화를 자신만 보지 못했을 때의 느끼는 소외감, 그것을 본 자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되리라고 느끼는 불안감을 촉진시키는 것이 영화홍보 전략의 중요한 키워드라면, 언론까지 나서서 동조하여 붐을 일으켜주고 장단에 춤출 이유가 없다. 언론매체는 영화의 개봉사실과 영화에 대한 평을 솔직하게 전달하면 그만이다. 되도 않는 이슈 따위까지 친절하게 기사화함으로써 홍보도우미로 전락해버린 일부 매체와 질 낮은 기자야 말로 한국영화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다. 한국영화에 상업 장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관객에게 알려주어야 하며, 그것들에서 지금껏 한국영화산업의 무수한 인재가 배출되었음을 언급해주어야 한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좋은 영화가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고루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이 영화를 고를 수 있도록, 언론이 중심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언론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배급, 홍보사의 나팔수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직하게 쓰고 홍보성 기사와 일정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영화의 선택권을 관객에게 돌려주자. 선입견 없이 온전히 자유롭게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드는 풍토만 언론이 조성해주어도 한국영화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모름지기 언론이 당연히 맡아야 할 중차대한 역할이 있는데, 왜 그것을 포기하고 애써 독배를 받으려하는가.



(추신) 속된 말로 “일이 점점 커지고”있다. 당초 2편에 나누어 끝내려고 했던 것부터가 착오였다. 손을 대면 댈 수 록 많은 분야가 튀어나온다. 어쩔 수 없이 뿌리 뽑기로 했다. 이제는 3편에서 끝이 난다는 보장을 못하겠다. 어느 개그맨 말대로 “그래! 가는”거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tjryu.tistory.com BlogIcon 목운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독이 오른 우리 언론에 희망은 없다고 봅니다. 좋은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2008.02.25 17:27 신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편집부








 


“제 생각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독을 품는 사람과 뱉는 사람......”

참, 섬뜩한 말이다. 그런데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딱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서 사랑의 상처를 입어 독을 품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 독을 내뿜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2일)개봉한 독립장편 영화 [내부순환선_Inner Circle Line]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진흥위원회지원작에 선정된 지 무려 4년, 로테르담 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를 돌고 돌아 드디어 개봉하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 편집을 도맡은 조은희 감독을 만났다.

(편집자 주: 인터뷰 내용 중 캐릭터에 관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설명한다. [내부순환선]의 주요인물은, 여자영주(양은용) 남자영주(배용근) 진(정유미) 현(장소연) 이렇게 4명이다.)




백건영(이하 백): 개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조은희(이하 조): 사실 한달 전에는 굉장히 떨렸거든요. 완성한지도 오래됐고, 영화 개시한지 3년이나 되고. 마침내 이런 기회가 와서요. 무엇보다 떨린 건, 사실 한국에선 전주영화제 외에 공개된 적이 없어서 반응이 궁금했어요. 어떤 얘기를 들을까 좀 무섭기도 했고. (웃음) 한 달 동안 홍보팀이랑 준비하고 쇼-케이스도 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려서..지금은 좀 담담해요.


백: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반응이 어땠는지요.

조: 기대 외로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쇼-케이스 하기 전에 어느 기자분이 “동성애와 이성애를 아우르는 사랑 얘기다.” 이런 기사를 써주셨더라고요. 개인적 바람으로는 동성애자 분들이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있었는데 그런 동호회나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많이 퍼 가셔서 광고도 되고, 예상보다 많이 오셨더라고요. 끝나고 질의응답 할 때 남/녀 관객 차이가 있는 거 같았어요. 굳이 나눌 필요는 없지만...질문하는 방식이나 그런 게 약간 차이가 있더라고요.


백: 예를 들면 어떤 거죠?

조: 남자관객들이 감정이입을 잘 못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몇몇 분이 남자 캐릭터에 대해 질문하시더라고요. 2년간 영화제 돌면서 남자캐릭터에 관한 이런 얘기를 들은 게 처음이어서요. 기관사 영주를 소외시킨 느낌이 든다. 거세된 남자 혹은 기운이 없고 힘이 없는 남자 같다. 고 말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볼 수 있겠구나. 굳이 의도된 게 아닌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그게 맞을 수도 있고. 한국 남자 관객들이 이런 질문 해온 게 신선했어요. 스스로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백: 실질적인 데뷔인 셈이데. 1년간 한국에서 촬영하시고, 1년간 미국에서 후반작업. 그리고 해외영화제 순회. 졸업 작품이 글로벌프로젝트가 되어 버렸어요(웃음). 오래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뭐죠?

조: 후반작업비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영진위에서 제작지원을 했는데 그게 벌써 2004년이에요. 마지막 자막 올라갈 때 2004년 영진위 제작 지원작. 이렇게 나오는데 이게 무슨 대작도 아니고.(웃음) 2004년 연말에 펀딩이 돼서 개시를 2005년 연초에 했어요. 사실 이게 2005년 프로젝트라고 보시는 게 맞는데요. 아직 학생신분이니까 어떻게든 학교에 있는 기재로 후반작업을 하자. 몇 년이 걸리든 하겠거니. 하고 의지를 가지고 돌아갔는데...그게 만만치 않더라고요. 제가 단편만 생각했지, 장편영화의 방대한 분량 등은 상상을 못했어요. 일단 후반작업 예산이 없었고. 학교기재를 쓰면 되지만, 기재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편영화 퀄리티를 끌어올리려면, 기재보다는 누가 하느냐 문제거든요. 사운드 믹싱이나 색 보정을 누가하느냐가 중요한건데... 저 혼자 작업을 2005년 여름까지 하다가 거기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사용한 음악이 많으니 음악도 다 사야하고...전문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제가 할 능력이 안 되더라고요. 좀 애매하던 차에 뉴욕에 있던 어느 단체의 워크숍에 제가 참석하면서 후반작업 도와주는 프로듀서를 만나 투자받고 필요한 일들 다 지원받았죠. 2005년 연말까지는 영화 마무리를 했고 영화제는 2006, 2007년 돌기 시작했죠.


백: 개봉을 거의 포기할 수 도 있는 긴 시간인데...

조: 아니요. 전주영화제가 2006년 5월초였는데요. 그때 처음 생긴 게 한국영화의 흐름 부분에 틀었던 영화 중에 CGV개봉영화 지원상을 주기로 했거든요. 막 기대를 했죠. 그때 이창재 감독님의 [사이에서]가 수상했거든요. 그분이 또 시카고대학 선배세요. 한국이 미국보다 시장도 작고 독립영화 규모도 작고해서 좀 만만하게 봤었죠. 그러다가 2006년 말, 곽용수대표님 뵙고, 2007년 영진위에서 아트플러스 개봉작지원도 있었고. 지원받은 시점은 2007년 여름이었는데,,,여기서도 개봉하는 작품들도 계속 있고 해서 스케줄이 미뤄지다 보니 이제 서야 개봉하게 된 거죠.


백: 월드프리미어가 노트르담 영화제였는데...2005년에 개봉했던 거보다 지금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동성애코드 때문인데, 그동안에 [후회하지 않아] 등 다양한 동성애 영화들이 꽤 나왔고. 사회도 많이 변했고요, 3년간이 문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데 숙성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백: 기자시사회 때 장소연씨 제외하고 모든 배우가 참석했고 2006년 전주에서도 양은용 씨 빼고는 다 온 걸로 기억하는데, 배우들과 친목이 돈독하신 거 같아요. 비법이 있나요?


조: 제가 영화 찍고 나서요. 촬영을 하고 나서도 완성이 1년 걸린 데다 첫 상영은 전주에서 2006년 4월에 했고요. 그런 점에서 배우들에게 미안했어요. 전주에서 틀고 한국에서 아무데서도 튼 적이 없거든요. 그게 마음에 걸리고 죄송스러웠죠. 기회만 생기면 항상 모시죠. 배우들도 고생했으니. 왜 한국에서 기회가 없지?(웃음) 이런 질문도 스스로들 하고. 쇼-케이스 때도 다들 반가워하면서 오셨고요. 배우들도 계속 관심이 있으시고. 특별히 친목을 도모했다기보다...그런 죄송스런 마음에 기회만 생기면 오셨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드리곤 했는데, 다행히 기쁜 마음으로 오시네요.


차상윤(이하 차): 연령대가 비슷하신 거 같아요. 배우들과 감독님이 (웃음)

조: 사실은 저보다 오빠예요 (웃음) 남자 영주(배용근) 여자 영주(양은용)는 모두 오빠 언니고, 유미씨랑 소연씨는 동생이고...나이 대는 또래죠. 비슷하죠. 제가 딱 중간이네요 (웃음)


백: 그 사이 양은용씨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스타급 배우로 올라섰어요. 당시 캐스팅 과정을 간단하게 얘기해주세요.

조: 영진위 지원을 받을 당시, 일단 광고를 냈어요. <씨네 21>이랑 <필름메이커>에..그 당시에 캐스팅 디렉터를 소개받았고요. 최철웅씨라고...인디스토리나 다른 상업영화도 하시는 분인데요. 주연배우 두 명 은용씨랑 용근씨는 그분이 소개해주셨고. 소연씨랑 유미씨는 오디션 오셔서 제가 뽑았어요.




 

백: 본격적으로 [내부순환선] 얘기를 시작해보죠. 자전적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셨는데...살짝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조: 물론 영화가 픽션이지만 저의 심리상태나 그 영화를 기획하게 된 그 시기 몇 년 동안.....저만의 러브스토리. 그때 겪었던 인간관계가 조금씩 드러나 있죠. 영주라는 사람이 한명이라면 그걸 두 명으로 쪼개는 거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었고요. 학교 주변에 게이친구들이 많았어요. 시카고 예술학교가 교수, 학생들, 특히 영화과 학생들 중 게이 학생들이 많았어요. 공부하고 영화작업하고 그러면서 그들의 사랑방식이 헤테로섹슈얼이랑 굉장히 다르더라는 걸 느꼈죠.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특히 레즈비언은 남자 게이에 비해 인구가 생물학적으로 굉장히 적어요. 그래서인지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 집착이 굉장하더라고요. 그런 것을 결합시켜 ‘진’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는데, 주변에 있는 친구가 모델이 된 경우예요. 지나고 보니까 더 열정적으로 묘사했어야 하지 않았나. 굉장히 부드럽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레즈비언 캐릭터를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생겨요.


백: 세 번을 봤는데...스토리가 비선형적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라 할 만큼 불균질적인데, 왜 이렇게 만드셨어요?

조: 학풍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은 게...시카고 예술학교가 미술학교이기도 하고 영화, 이쪽 전공이 굉장히 아방가르드하고 실험적인 영화를 많이 선호해요. 내러티브 영화를 타도하는 과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근데 저는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했다보니 그 내러티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고 싶었어요. 다만 제가 일반 스토리, 내러티브. 그런 것에서 잘 매력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극영화적인 것과 회화적이고 실험적인 걸 접목시키자. 어떻게 보면 일부러 쉽게 할 수 있는 얘기를 어렵게 하거나,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삽입하는 시도 같은 거요. 장편데뷔작을 찍으며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고, 일종의 시도이기도 했고요. 디지털 매체라는 게 필름보다는 자유롭잖아요. 촬영을 카메라 두 대로 오픈 되게 좀 즉흥적으로 찍고 편집할 때 붙여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보자. 그래서 편집할 때 좀 고생을 했죠. 많이 찍어놓은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처음에 의도치 않았던 그런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다 들어가다 보니까 의욕이 앞서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백: 여자 영주의 대사 중에서 “상처 받아 독을 품게 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독을 내 뱉는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하필 왜 독인가요? 왜 그렇게 센 대사를 쓰게 되었는지.

조: 글쎄요. 사랑은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에 빠지면...아시잖아요.(웃음) 굉장히 부드러운데 한번 돌아서면 증오의 힘이 강하잖아요. 애증. 극단적인 상처. 거부당한 경험. 그런 증오가 독이 될 수 있겠구나. 저는 증오의 다른 말이 독인 거 같아요. 증오 = 독 =상처 이렇게 할 수도 있고요. 내가 누구한테 상처를 받으면 꼭 나중에 의도치 않더라도 나중에 나도 모르게 주고 쏘고 발사하는, 그런 악순환이 되는 거 같아요, 경험을 해보고 주위를 보니까요.(웃음) 가령 영화 속 여자 영주의 경우도, 그런 것에 시니컬한 상태다 보니 “세상에는 독을 먹는 사람과 주는 사람 둘이 있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잖아요.


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독을 마시고 나면, 해독작용이란 걸 필요로 하고, 상처받을 것을 감수하고 다시 사랑을 하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영화를 보면서는 감독이 사랑에 대해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 있나보다. 그러다가 몇 번 더 보니 사랑예찬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생뚱맞은 얘기인데,,,영화를 세 번 보다보니까 극중 소품인 베개가 짝이 안 맞아요. (일동 웃음) 현이 방의 베개도 그렇고, 여자 영주 방의 베개도 무늬와 색이 서로 달라요.


조: 설마 제가 의도했다고요? (크게 웃음)


백: 그래서 만나보면 묻고 싶었어요. 관계가 어긋날 것임을 암시한 것인지...자꾸 강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홍보용 DVD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순전히 베개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조: 일단 미술감독님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웃음)


백: 남자 영주와 현, 여자영주와 바의 남자 시퀀스는 시점 쇼트가 분명한 반면, 여자 영주와 진, 남자 영주와 진, 여자영주와 남자 영주 시퀀스는 3자 시점 숏이 많은데, 어떤 의미죠?

조: 제 영화에 클로즈업이 많고. 인물 하나하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많이 보이셨을 거예요. 근데 영화가 좀 시끄러워요. 음악도 많고 지하철도 나오고. 그런데, 몇 군데는 좀 빠져서 조용하게 보여주고 싶은 포인트가 있었어요. 그 부분 때문에 지적해주신 거 같은데요. 일단은 처음에 진하고 남자 영주가 커피숍 가서 대화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지 않고) 쭉 가고. 술 취해서 진을 업고 갔다가 성적요구를 거부당한 다음에 담배피면서 원하는 거 줄 거 없다 하면서 “영주, 영주, 영주” 할 때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해서. 별 변화 없이 소리 없이 던져주었던 부분 같아요.


백: 말씀 들으면서 의문이 풀리는데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제일 좋았던 장면이, 남자영주와 여자 영주 그리고 바텐더까지 데킬라를 부딪치는 장면이 좋았어요. 음악도 청명한 테크노 음악이 삽입되었고요.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고나 할까요.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지만 영주가 칼로 남자를 찌르는 것, 유치하다고 하긴 그렇고...

조: 좀 생뚱맞죠?


백: 예, 약간 그랬는데...이 시퀀스는 어떤 의미로 넣은 건지.

조: 쇼-케이스 때도 이 질문을 받았는데, 왜 생뚱맞게 칼로 난자하는 장면이 있느냐. 하시더라고요. 영화상에서 사실 다른 캐릭터들은 심리상태가 어떻고, 원하는 게 어떤지 분명한 편이에요. 남자영주, 진, 현 모두 그렇게 설명이 가능한데요. 여자 영주는 시나리오 상이나, 영화를 볼 때나 별 설명이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우울해보이고 기운이 없고 룸메이트가 있는데 받아주지 못하고. 환상, 판타지로 보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찌르기 직전에 환상으로 넘어갈 때 카페에서 여자영주가 헤어스타일도 다르고, 여자영주라는 애는 과거에 저런 일이 있었고, 그런 증오심이 있는 애구나. 완전히 그 순간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거죠. 여자영주라는 애의 머릿속에. 사전 설명 없이 넣었다 빼서 당황하는 분들이 꽤 되셨는데 여자 영주라는 애가 어떻구나. 심리가 어떤 상태다. 그런 걸 설명하려는 장면이랄까요. 그런 걸 함축한 거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백: 배우들 입장에서 내면의 아픔을 연기해야 하는데.. 어떤 감독들은 배우에게 연기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고 얘기를 해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그런 게 있나요?

조: 리허설 때. 본 촬영 들어가기 전에... 집에서 며칠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개인의 과거. 상처받은 경험. 연애경험. 그런 것들을 얘기했어요. 어떤 장면의 연기연습 보다 자기가 생각하는 캐릭터 구축하기. 실제 경험. 놀란 게 여자 영주 역의 양은용씨 같은 경우는 유사한 아픔이 있는 얘기도 나눴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캐릭터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었죠. 막상 현장에 가서는 다 아는 상태로 오니까 제가 집중한거는...디테일한거죠. 손은 어떻게 놀리고 표정은 어떻게 하고. 그런 것들. 특히 현이 마지막에 남자친구한테 차일 때, 긴 롱테이크. 거기서 배우가 힘들어했어요. 거기서는 구체적으로 주문했어요. “만약 당신이 남자친구가 이런 상황에서 헤어지자고 했다면, 나 같으면 과거에 싫고 좋았고 이 무수한 기억들이 플래시백같이 막 스쳐지나갈 것 같다.” 그걸 한번 생각해봐라. 그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줬어요.


백: 현이 남자영주에게 절교를 통보받는 장면...이 딱 3분짜리 클로즈업 롱 테이크 더라고요.

조: 재보셨어요?(웃음)


백: 네. 그랬는데...전반적으로 지상에서 조금 떠 있는, 환상성으로 가득 찬 영화가 이 시퀀스에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남자영주가 그 동안에 저 얘기가하고 싶었을 텐데 진짜로 남자 영주가 그리워하고 있던 대상은 진이었는데, 다른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죠. 그걸 3분 동안이나 그것도 데뷔작에서! 찍을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죠.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을 한다고 했을 때, 단 하나의 장면을 꼽는다면 이 장면이거든요. 그것이 촬영기법이나 고생 뭐 그런 게 아니라. 그 환상에서 현실로 넘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남자영주, 여자영주가 모두 폐쇄된 공간에 있잖아요. 한 사람은 기관사고, 한 사람은 클럽 디제이고요. 그리고 둘 다 그 공간에서 나오면 현실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거 같아요. 남자는 현의 애정공세 육체공세에...


조: 육체공세? (큰 웃음) 잘 보신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아요.


백: 여자영주 같은 경우는 진의 애정공세가 두드러지고요. 처음 잠자리를 요구하기 전에도 집착하는 장면들이 보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두 영주 모두 대답은 똑같거든요. 남자 영주는 현에게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얘기했고요. 여자 영주도 진에게 "넌 소중한 친구야." 라고 관계를 분명하게 하거든요. 그게 따지고 보면 과거에 상처받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강박적인 얘기가 나온 거 아닌가. 그래서 감독님이 지독한 상처를 받았나 보다..이렇게까지 뱅글뱅글 돌아서 끌어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구나.

조: 정신분석. 심리상담 받는다는 느낌이 갑자기드네요 (웃음)


백: 한편으로는 희망을 찾아 가려는 욕구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조: 저도 막 정리가 되는 거 같아요. 편집장님 말씀 들으면서, 간단히 말하면 이 영화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딱 두 장면에 담겨있어요. 그것도 사실이죠.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지긋지긋함. 아까 언급하신 현의 그 3분간의 롱테이크와 새가 부활하는 장면. 두 장면이요. 이렇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요. 살아가지만 현의 표정을 오래 보여주는 이유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잖아요. 내가 현일 수도 있었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영주의 뒷모습인 순간일수도 있고. 현의 저 애처로운 표정을 보면서 관객들이 느끼기를. 그건 단순하게 하나에요. 우리가 꼭 상처를 줘야 하나. 나를 사랑한 사람에게. 그런 게 영화를 구성하는 커다란 주제였던 거 같아요. 현의 모습. 그 모습이 과거의 여자 영주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관객들이 보면서 맞아 여자 영주도 앞에서 그렇지. 여자영주 모습이 현의 모습과 겹치는구나. 새의 부활은 그런 많은 아픔들... 새가 가지고 있는 단순한 상징들. 모든 아픔,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상처, 집착들이 담겨 있어요.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희망적인 영화에요(웃음) 사람들이 답답하고 비관적으로 보시지만. 그 두 장면에 다 들어있는 거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요. 사랑, 상처, 희망. 얘기들인 거죠.


백: 독립장편디지털 지원 작품인데, 총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죠?

조: 5천만 원에서 6천만 원 정도 들었던 거 같아요.


백: 예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게 있다면요?

조: 이거 공개하면 기분 나빠할 스탭들도 있을 텐데(민망 웃음)..근데 사실 감독의 잘못이라 말해도 돼요.(웃음) 그때 굉장히 스케줄에 쫓겼어요. 미술, 의상 그 부분을 제대로 제가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사실 제가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안 쫓겼을 텐데. 무조건 1월에 찍어야 한다. 저는 이걸 갖고 학교에 갔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강박이 있었죠. 무조건 거기에 맞춘다. 하고 들어갔는데. 사실 디테일 측면에서 미술, 의상 부분도 디테일한 부분이잖아요. 디제이고 레즈비언 기타리스트다보니 스탭들이 의욕을 많이 부렸죠. 화려하고 개성 넘치고 알록달록하고 그런 쪽으로 컨셉을 잡아가는데, 사실은 실제 여자 디제이들이 화려하고 연예인 같고 그러지 않거든요. 힙합바지입고 되게 수수하고. 근데 그런 부분에서 선입관이나 의욕이 넘쳤는데, 제가 조율을 하지 못했어요. 프리작업의 타이트한 스케줄 때문에, 체크 시간이 부족했고요. 미술 같은 것도 이를테면 집 내부 벽지며 바닥이며 식탁...사실 이런 게 리얼리티나 디테일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미술감독에게 맡겼죠. 현장에 가서 침대 시트 색깔도 알고. 암튼 스케줄이 빡빡해서 좀 버거웠죠. 나중에 붙여놓고 보니까 튀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배경이 클럽이고 집도 클럽 같고, 의상도 굉장히 화려하고. 그런 부분들이 좀 아쉽죠. 나쁘진 않지만...리얼리즘이 강한 영화도 아니고, 그걸 중요하게 본다면 중요한 부분인데 좀 아쉬워요.


백: 지하철 찍을 때 ...협조가 잘 됐어요?

조: 협조가 순조로웠어요. 제가 대학원생 신분이기도 하고,,,프로듀서가 영상원 학생이기도 하고...무조건 학생영화라고 해서 무료로 장소협조 받고 무난히 촬영했죠. (웃음)


백: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학생은...

조: 왕입니다.(웃음)





백: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얘기하신 내용 중에 “영화는 회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면서 “ 프랑스, 폴란드 등 답답하지만 아름다운 유럽영화들처럼 시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부분이 있는데요. 회화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 예를 들어 [내부순환선]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궁금해요.

조: 영화의 기본적인 순수한 요소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빛, 색, 리듬, 소리,...소리가 침묵도 소리가 될 수 있고. 그런 순수한 영화적 요소들을 갖고 놀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첫 장편을 찍는 영화학도의 의욕과 열정으로 말이죠.(웃음) 사실 두 영주가 만나서 춤추는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데. 그게 스토리로서의 클라이맥스는 아니고요. 테크노 음악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요. 멜랑콜리 트랜스가 굉장히 꽂혔어요. 처음에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나 이미지 구상을 할 때나. 굉장히 슬픈 음악인데 그걸 들으며 춤을 추는 게 굉장히 아이러니한거죠. 나름대로 카타르시스가 굉장히 부족한 영화지만 음악으로서 카타르시스를 주고 싶었던 거죠. 영화의 순수한 요소로, 영화적 언어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있었죠. 일반적인 영화들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10가지라면 보통 기승전결, 스토리, 캐릭터. 천편일률적인 이런 걸로 가잖아요. 그런 거에서 살짝 벗어나고 싶었어요.

회화적이라 하면 저는 김기덕 감독 영화를 보면 그 분이 스토리구축이나, 캐릭터도 탄탄해요. 물론 감독님 영화를 보면 모든 영화가 훌륭하진 않지만, 저를 소름끼치게 하는 건 영화적인 것을 가지고 노는 능력? 이 부분이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절 공간에서의 붓글씨 같은 거. [활]에서도 음악이 조금 어색하게 들어갔지만 스토리에 맞물리는 사운드의 힘이랄까요. 소름끼치는 그런 조합. 그렇게 하는 방식. 단순히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예로 들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영화만의 요소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 학교 다닐 때 레오 까락스를 굉장히 좋아해서 신 바이 신으로 분석하고 그랬어요. 감독들이 많은 스타일이 있지만.. 그런 리듬, 충돌에서 가장 많이 흥분하는 거 같아요. [나쁜피], [퐁네프의 연인들]. 키에슬롭스키의 [블루]도 좋고요. 제가 어설픈 흉내를 냈지만 잘 표현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연출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자 했다면, 최소한의 말과 영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되게 단순화하려고 노력을 했던 거 같아요. 시각적인 것들.


백: 방금 얘기도 했지만 필름메이커스매거진의 소개된 글을 보니 “ 나는 강렬한 영화를 만들길 원한다”고 하셨더라고요. 제가 본 바로는 [삼색시리즈]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보다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쪽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감독마다 촬영방식이 제각각이잖아요. 가령 빔 벤더스의 경우에는 줌을 쓰지 않는 원칙이 있고요. 물론 안토니오니의 [구름저편에] 참여하면서 생각을 고쳤다지만. 조 감독님만의 원칙이 있을 텐데요?


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굉장히 핵심적인 거. 그런 거를 많이 고민했던 거 같아요. 아직 초짜여서 제 스타일이 어떻고 이런 거 말씀드리는 건 외람된 것 같고요. 신경 쓴 부분은 되게 단순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는 앵글, 샷, 느낌들. 또 하나 영화는 어차피 환상이다. 펀타지이고 픽션이다. 배우가 밉게 나오는 걸 못 견뎌 해요.(웃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왕이면 예쁜 앵글. 배용근이라는 배우가 그렇게 잘생긴 배우는 아닌데. 개인적인 선호도는 배우는 아름답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찍으면서 그런 걸 염두에 둔거 같아요.(웃음) 그래야 우리가 배우들과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나. 앞으로 리얼리티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 된다면 변할 수는 있겠지요.


백: 배용근씨 얘기를 해서 생각이 나는데, 요즘 화제인 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요리] 에서도 나오는데 그때하고는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요. 현하고 일식집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있잖아요. 숟가락을 안 바꿔준다고 투덜거리며 푸념하는 애인을 토닥거리는 장면을 보면서 아름답게 찍혔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배우가 밉게 나오는 걸 못 견딘다. 예쁘게 나오는 게 좋다. 라고 하시니 왕가위 생각이 나는데요.

조: 왕가위가 그런 말을 했나요? (웃음)


백: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장만옥이라는 배우가 미스홍콩 출신이지만 광대뼈도 많이 나오고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닌데요. 왕가위 영화에서만큼은 더 할 나위 없이 매혹적으로 나오지요. 전남편인 올리비에 아사야시가 연출한 [클린]만 보더라도 연기를 떠나,,,왕가위 영화와 비교해보면 여배우를 다루는 비주얼 부분에서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감독이 배우를 다루는 방식이란 게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차: 저는 영화를 아직 못 봤는데요. 포스터나 시놉 보고 난 느낌이.. 왕가위 생각도 잠시 스쳤거든요. 왕가위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 아시아는 잘 모르겠는데,,미국에서는 왕가위 영화 같다. 라는 사람이 간혹 있었어요. 글쎄요. 사실 왕가위 감독이 프랑스 영화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말하시던데요. 사실 저는 레오 까락스 영화를 좋아하고 프랑스 영화, 유럽영화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그게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어떤 유사성이 생겼을 수도 있겠죠. 근데 미국 사람들은 많이 아는 사람이 왕가위니까 저랑 그렇게 비교하기도 하고 하는데, 왕가위 영화 좋죠. 좋은데. 존경한다. 그렇기보다는 굉장히 스타일리스트인데...저도 그렇게 되고 싶고, 그런 면에서 비슷할 수도 있겠죠.


백: 궁극적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세요? 레오 까락스 얘기를 하셨는데, 모델로 삼고 싶은 영화나 감독이 있는지요.

차: 덧붙여서 저도 하나 질문하자면, 영화감독들은 좋아하는 영화와 찍고 싶은 영화 사이에서 충돌을 많이 할 거 같은데요. 감독님은 어떠신지?


조: 워낙 좋은 영화가 많으니까....(웃음) 저는 그게 일치하는 거 같아요. 최근에 본 최고의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숨]이었는데요. 한국에서는 좀 평가절하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여자를 다루는 방법에서 초기작 몇몇 작품이 불쾌했던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감독님이 좀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만드셨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요. 굳이 한국에서 한분을 꼽자면 그런 스타일을 닮고 싶어요. 인간의 감정이나 욕구를 극단까지 밀고 가는 힘은 아무도 못 따라가는 거 같아요. [숨]이라는 영화도 굉장히 뜬금없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핵심적인 하나의 주제를 갖고 영화를 구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파워풀 하잖아요. 굉장히 좋고, 전율을 느꼈죠. 이제 막 시작한 감독으로서 그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가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죠. 저만을 위한 영화를 해도 상관이 없다면 김기덕 감독님보다 더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것으로 갈 수 있겠지만. 영화는 관객을 위한 것이잖아요. 저만을 위한 것이라면 회화, 음악 이런 거를 하겠죠. 영화라는 매체는 관객과의 소통을 간과해서는 안 되니까요. 제가 다음에 할 영화들은 더 많이 관객과 소통하고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갈 수 있는 지점들 을 고민해야겠죠. 이제 막 시작한 초짜 감독이라...아직 잘 모르겠어요.


백: 부산영화제 아시아펀드영화펀드 지원작 [꽈리]를 준비 중 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진척되었나요?

조: 시나리오 완성됐고요. 프로듀서 하고 펀딩, 파이낸싱 기다리고 찾고 있죠. 배경이 여름이에요. 계절이 여름이라 그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사실 올해 6~7월에 꼭 찍어야 하거든요. 굉장히 맘은 급하고 조급하고 그런 상황이에요.


백: 드디어 마지막 질문이데요. [내부순환선]은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조: 첫 번째 바람은, 보신 관객 분들이 경험한 사랑이 기쁨일수도 아픔일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되고, 이 부족한 영화를 보고 치유까지 가능하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죠.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듯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같이 힘차게 다시 사랑을 합시다. 했음 하는 그런 바람이 첫째 있고요. 어려운 영화는 아니지만 친절하지 않아서, 실망도 하실 수 있고, 황당해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신선한 영화를 봤구나. 이런 느낌. 이제껏 봐오지 못한 새로운 느낌. 그런 느낌을 받고 극장을 나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부순환선]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순환의 관계망 속에서 사랑을 아파하고 갈구하며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현란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이 있고 절절한 욕망이 있으며 지리멸렬한 일상도 있다. 사랑을 얘기하되 속살거리는 것 하나 없이 현실적이지만, 환상으로의 탈주선은 언제라도 열려있다. 물론 희망도 준비되어 있다. 멜랑콜리 테크노와 어우러진 이 모든 것들이 당신에게 사랑의 쓴맛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지는 마시라. 내러티브가 비선형적이라고 해서 횡설수설하는 영화는 절대 아니니까. 오히려 긴 터널을 빠져나온 뒤의 여운과 트임이 동시에 남는 영화다.



진행: 백건영(편집장)
사진.정리: 차상윤(편집스텝)



댓글을 달아 주세요


특유의 생명력과 특색을 갖춤으로써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을 만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 한해의 독립 영화를 결산하는 서울 독립 영화제가 11월 22일부터 독립 영화 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한해의 독립 영화를 총 결산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한국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고 역동적인 독립 영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서울 독립 영화제의 중요성은 규모가 큰 다른 영화제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에 개관한 독립 영화 전용관에서 맞는 행사라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겠다. 올해 33회째를 맞는 서울 독립 영화제를 끌어가고 있는 집행위원장인 조영각씨를 네오이마주가 만났다.


백건영(이하 ‘백’) 서울 독립 영화제가 올해로 33회째이고 그 집행 위원장이신데 서울 독립 영화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조영각(이하 ‘조’) 한마디로 한해의 독립영화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경쟁 영화제이지요. 다큐멘터리, 극, 애니, 실험 영화 등을 포괄하여 시상도 하는 행사입니다. 특히 최근에 독립 장편 영화 부분이 생기면서 이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쪽으로 가고요. 어쨌든 그해 경향을 바로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생 영화들부터 40대 아저씨들이 만든 영화들까지 쭉 포괄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 다른 영화제에서 평가받았던 영화들까지 포함해서 한해를 정리하는 영화제예요. 장편들 같은 경우에는 올해도 스무 편정도 경쟁 비경쟁 포함해서 틀고요.


백: 22일에 시작이죠?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게 어떤 거죠? 아무래도 예산 문제 일 것 같은데.

조: 예산은 다른 영화제에 비해 안정이 되어있는 편이예요.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 주최고 영진위에서 기본적으로 대는 돈도 있고요. 경쟁 영화제다 보니까 비 경쟁 보다 스폰서 붙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기본적으로 해왔던 활동도 있고 인맥도 있고 후원도 많이 따오고 해서 돈이 부족해서 행사를 못하는 건 없고요, 물론 어렵고 풍요롭진 않지만 다른 영화제에 비해선 안정되어 있는 편이예요. 제일 어려운 게 아무래도 장소 문제 인 것 같아요. 최근 영화의 포맷이 다양해졌잖아요. 16미리, DV, HD, 35미리 베타 등, 이렇게 포맷들이 여러 개인데 그나마 제대로 된 포맷으로 상영을 하자면, 그런 것 때문에 장비를 빌린 다거나 장비를 세팅하는 문제, 극장 설비가 거기에 맞나 안 맞나 이런 것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영화를 제대로 틀기 위한 이를테면 16:9 면 16:9 로 2.35:1이면 2.35:1로 틀기 위한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우리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극장 설비하고 장비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되니까 이런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게 장비 세팅이예요. 더구나 올해는 3개관에서 하거든요. 1개관에서 시작해서 CGV에서 2개관으로 하다가 올해 3개관으로 늘어났는데. 그렇다고 인력이 늘어나거나 예산이 늘거나 하지는 않은데 욕심을 낸 거죠. 역대 수상작 회고전 같은 거 까지 넣다보니 작품이 105편이더라고요. 해외 초청작까지 포함해서요. 작품이 많아지고 관도 늘어나고 그걸 우리가 과연 커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요. 준비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부딪혀 봐야죠.


백: 규모가 커진 만큼 걸 맞는 인력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따라줘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 중앙시네마에 여러 가지 포맷에 맞는 영사장비가 갖추어져 있나요?

조: 없죠. 그래서 저희가 다 빌리거나, 빔 프로젝트나 테크나 다 빌려야 되고 테스트도 해봐야 되는데 극장에서 영화는 계속 돌아가니까 테스트할 시간은 없고. 그래서 아마 20일 즈음, 행사 임박하면 장비 체크해서 창고에 넣어 놓게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빌리는 것들이니까 미리 못 들어오잖아요. 기껏해야 전날 아니면 당일 아침에 오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효과적으로 될지 그게 제일 문제 인 것 같아요. 저도 영화제 10년 넘게 했는데 좀 하면 편해 져야 하는데.(웃음) 그리고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대 행사가 있고 거기서 커뮤니티도 이루어지고, 의사소통도 되고, 이렇게 감독들이 자기 영화를 제대로 틀고 제대로 평가를 받고 이러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더라고요. 뭐 좀 지나고 나면 노하우가 생기고 이래야 되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가 10년을 넘게 했는데도 매년 똑같냐는 거죠, 매년 일들이 왜 더 많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백: 서울 독립 영화제 같은 경우는 경쟁 영화제인데 거기에 장르 간 구분을 두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든 단편이든 다큐멘터리든 다 경쟁을 시키는데 그러면서 ‘관객심사단’을 운영하잖아요. 관객 심사단을 도입한 특별한 이유라든지, 효과가 있어서 계속 해올 텐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조: 독립 영화 쪽의 사람들이 대부분 감독 중심이잖아요. 창작자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을 지속적으로 보는 관객들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독립 영화는 일년에 수백 편이 나오지만 그걸 꾸준히 보고 올해보고 내년에 보고 한 삼 사 년 동안 쭉 지켜봐 주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독립 영화 하는 사람들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관객들이 이 영화 재밌더라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해의 흐름들을 보고 그 다음 해에도 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독립 영화의 지지군이면서 비평가이면서 그렇게 성장해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거든요. 활동가로서 또 비평가로서 혹은 관객으로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모집이 잘 안 돼요. (웃음) 저희가 모집을 할 때 자원 활동가는 그냥 자기소개서만 받는데 관객심사단은 영화 평을 받거든요. 그런데 영화 평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봐요. 게다가 독립영화에 대한 평이어야 되고. 예전에 재밌게 봤던 것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잖아요. 독립영화관에서 봤던 것, 작년 서울 독립 영화제에서 봤던 것 이런 영화를 쓰는데 거의 기억에 의존해서 쓰거나. 이 영화가 재밌다 해서 비디오로 다시 빌려 보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봐요. 처음에는 10명씩 모집이 되고 그랬는데 요즘은 5명 뽑아도 거의 다 뽑거나 한두 명 제외하고 이런 수준이라서. 예전에 계속 해왔던 사람들에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게 아쉬워요. 그런 친구들이 좀 쌓여서 커뮤니티가 되고 1기 2기 3기 이런 식으로 해서 스터디도 하고 그런 바람에서 심사단을 만들었죠. 상당히 유의미하고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할 때마다 모집이 잘 안되니까 답답하죠. 독립 영화 평을 쓰라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 평을 써서 내거나 그러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사람이 생각하는 독립 영화가 이건가 그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백: 지금 말씀을 빗대서 생각을 해보면 그게 독립 영화의 관객 심사단이나 학생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리뷰를 쓰는 것을 힘들어 할 뿐만 아니라 저널이나 현장 비평가들조차도 독립 영화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평을 쓰는 사람이 없다보니까 그리고 풍토 자체가 고착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풍토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으실 것 같아요.

조: 그렇죠. 요즘에는 말이 안 된 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부산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가 60편이다 하면 그 중의 1/3이 한국 독립 영화거든요. 다큐멘터리나 독립 장편들이 거기서 프리미어를 해요. 그런데 거기서 월드 프리미어를 하는데 기자나 카메라가 한 대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GV를 하는데도. 리뷰도 안나오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목받는 영화가 있었지요. 사실 그런 것들은 기자나 평론가들이 만들어 주는 건데. 요즘엔 정말 프로그래머가 찍어준 한 편, 누가 언급을 하거나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게 아니면 아무런 주목을 못 받는 다는 거죠. 뉴 커런츠에서 틀어도 “어 그거 틀었어요?” 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우리가 보도 자료를 보내거나 기자나 평론가분들을 초대하는 이런 작업도 필요한 것 같아요. 아예 관심조차도 없으니까. 최근에는 평론가로서 또는 기자로서 영화를 쭉 보고 발굴하고 이런 기능적 역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수백 편중에 필수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한국 독립 영화가 아니니까 발견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올해 부산 영화제 언론 사건도 있는데 좀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싶네요. 저널이 각각의 기능이 있잖아요. 전문지면 전문지 일간지면 일간지 인터넷이면 인터넷, 포털이면 포털 등 여러 저널들이 다양한 기능이 있을 텐데 모든 카메라가 똑같이 다 [엠]으로 가 있으니까. [엠]엔 한 삼 백 대 가있고 다른 영화엔 한 대도 없고.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백: 지금 예심은 다 끝났고 본선진출작이 모두 결정이 됐는데 예심의 중점은 어디다 두셨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 올해 슬로건이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이니까 어떻게 다른 시도를 했나. 최근에는 독립 영화들도 너무 주류 영화들하고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경계해야 될 부분인데 그렇다고 다 배제할 수는 없는 거고 그런 나름대로 완성도를 추구하는 이런 이외에 다른 시도를 한 영화들, 그런 거에 중점을 두게 되죠. 사회적인 문제를 표피적으로 다루느냐 아니면 소재주의에 그치지 않고 깊게 내면을 다루느냐 이런 거 가지고 설왕설래를 하는데, 중요한 건 어쨌든 영화들이 중상향 평준화는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버릴 영화도 없고 심사하기엔 더 어려워지는 거죠. 예전에는 보면 이건 아니다, 누가 봐도 아니다 해서 뺄 영화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500편중에 한 200편 이상은 다 논의를 거칠만한 영화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상당히 어렵죠. 예심을 하는 분들도 모두 독립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지만 그 분들의 개개인의 욕망과 취향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반영되다보면 섞이죠. 뒤죽박죽. 극단적인 경향의 영화들이 같이 상영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영화제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하나의 경향만 이것만 지지한다. 이렇게 갈 수도 있지만 서울 독립 영화제는 그러기보다는 여러 경향과 흐름을 보여주고 이런 것들이 올해의 한국 독립 영화의 흐름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요. 다른 영화 다른 시도를 한 영화들, 실험적인 시도를 한 영화들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본 영화들에 무게 중심을 두긴 했는데 과연 그런 영화들이 많은가, 슬로건에 맞게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여기에 부합하는 영화는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부분에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 하긴 어려워요. 중상향 평준화는 됐는데 딱히 올해 끝내 준다. 이런 영화는 많지 않아요.


백: 물론 이건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이라 언급할 부분은 아니지만 심사위원들 간에 암묵적으로 “이번에는 이 영화 뜨겠는 걸?” 이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나요?

조: 물론 있죠. 올해 부산에서 상 받은 [할매꽃]. 이거는 한국 현대사, 빨치산의 역사부터 좌우익의 대립까지 한 감독의 집안에 다 묻어나 있는 거예요. 감독 자신도 몰랐데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계시니까 어머니가 할머니 좀 찍어봐라 재밌을 거다. 돌아가시기 전에 찍어봐라 하고 찍기 시작했는데 자기도 몰랐던 사실들이 막 나왔데요. 왜 할머니가 혼자 사셨는지 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고 친척 누구 동네 누가 우파에게 총살당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감독이 자기도 모르던 집안사가 나오는 영화예요. 극영화 중에서는 다른 영화제에서 공개 안 된 영화가 경쟁에 세 편 있는데, 대단히 뛰어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20대 초반 30대 초반의 감독들의 에너지가 드러난 단편에선 보기 어려운 [낮술]이라든지 [서울, 귀와 머리칼]은 단편으로 만들었으면 흔한 영화가 됐을 것 같은데 장편으로 밀고 가니까 나름대로 힘과 에너지들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백: 예년에 비해서 응모작 혹은 본선 진출작의 수준이나 올해 특별한 경향이라든지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영화는 중급 이상의 완성도와 나름대로 꼴을 갖춘 영화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말도 안 되는 영화들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보기 민망한 영화들이 좀 있었는데 많이 줄어들었고...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면서 툴을 다루는 솜씨라던가 장비를 다루는 거라든가 기술적인 부분들은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한방이 있는 영화들이 적다는 거고 전반적으로 영화들이 위악스럽고 독한 영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독립 영화라면 치기 어리더라도 공격적이거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비수를 드러내는 영화들이 있어야 되는데 별로 없어요.


백: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조: 자기 이야기에 치중하거나 주변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그 세대들. 아니 어떻게 독립 영화는 다 성장 영화일까 그럴 정도로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연애 이야기, 그런 것들이 5, 60%이상이 그런 것 같아요. 나머지는 이주 노동자라든가 소수자들을 다루는데 저희가 보기엔 표피적으로 보이고. “이거 신문 사회면에서 본 이야기 아니야? 그대로 찍었네. 어떻게 하라는 거지?” 고민들이 아직 부족한 것 같고...좀 영리하다 싶은 영화들은 충무로를 향하고 있거나 우향우를 향하고 있고. 사회에 어떤 부분들을 강하게 건드리는 게 사실 영리한 건데. 그렇지 않나요? [색, 계]라든지. 이안 감독 보면 정말 영리하잖아요. 그런 영화들이 별로 없지 않나 싶어요. 제가 싫어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도 그렇고 [아스라이]도 그렇고. 그런 영화들이 성장통에 맥이 닿아 있거든요. 자기의 어떤 이야기, 자기의 자의식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드러내는가, 객관적인 사실을 어떻게 자기화 해서 보여주는가. 이런 것들은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 것 같은데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이야기들, 사회에 위악한 문제들을 영화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는 조금 약하지 않나 싶고요. 뭐 저는 독립 영화를 보라고 떠드는 사람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워요.


백: 그렇다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학생도 있을 테고 학생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에서 하는 영화 교육이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든지 아니면 영화 교육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 전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영화과에서 실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데가 있는지. 어쨌든 이 사람들이 장편 극영화를 만들든 방송국 피디가 되던 영화의 기초들이 있는 거잖아요. 웰-메이드 한 것 이전에 가져야 되는 영화의 대한 태도라든가 실험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힘과 영화의 근저에 있는 기초적인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대학 4학년 졸업할 때까지 교양으로도 안 듣고 졸업하는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전 그게 충격이었고(웃음) 한국영화아카데미나 한국예술종합대학 영상원 같은데도 보면 그냥 충무로 예비 인력을 가르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예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산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보면 딱 드러나는데 영화가 단편에서도 완결된 드라마, 완결된 어떤 기승전결 이런 걸 갖고 있는 것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 게 나쁜 건 아닌데 너무 그런 것에 매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보니 길어지기 마련이지요. 영화들이 평균 25분이예요. 단편 4개 정도를 한 섹션에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4개 정도를 구성하면 보통 90분이 안 넘었거든요. 70분 뭐 80분 이랬는데 지금은 4개 묶어 놓으면 100분이 넘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단편이지만 하나의 작품인데 25분짜리를 쭉 본다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백: 올해는 예년 수상작 회고전이 있고, 원신연 감독, 류승완 감독 이송희일 감독 등 많은 기성감독들의 초기작들이 나오는데 모두 서울 독립 영화제를 거쳤던 사람들이고. 지금은 그 감독들이 어느 정도 상업 영화도 찍었고 독립 영화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감독들이다 보니까 경쟁작하고 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독립 영화를 접하는 관객들이 관심 있게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조: 류승완 감독의 [현대인]이나 원신연 감독의 [빵과 우유]는 아마 독립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많이 보지 않았을까 싶고 혹시 그거 보셨어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백: 남기웅 감독. 네 봤지요.

조: 그 영화도 2000년에 나온 영화거든요. 60분짜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예측하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딱 나와서 되게 놀라게 했던 영화였어요. 완결성이라든가 구성력이라든가 이런 드라마는 떨어지는데 사회를 공격하는 어떤 시선들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그래서 그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유명한 영화 중에 [경계도시]라고 있어요. 송두율 교수 같은 경우는 [경계도시]가 나온 다음에 들어 왔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국가 보안법으로 잡혀갔잖아요. 저도 정말 충격이었는데, 송두율 교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송두율 교수가 거짓말을 했다 그건 잘못 아니냐 그러면서 김철수가 맞다 등...본질과 무난한 것으로 논쟁에 휩싸였잖아요. 그런데 홍영숙 감독의 [경계도시2]도 그 과정을 다 찍었거든요. 곧 나올 텐데 [경계도시]도 봤으면 좋겠고. 또 하나는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닌데 [데모크라시 예더봉]이라고 미얀마 노동자들이 와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 이야기예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7년 전인데 지금하고 상황이 하나도 안 변했잖아요. 미얀마 문제도 그렇고 한국의 이주 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최근에 이주 노동자에 관련된 극영화도 나오고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그러는데 [데모크라시 예더봉] 같은 경우는 7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 지금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주목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극영화에선 이수연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물안경] 같은 경우도 영화가 이상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는 필견이지요. 제가 보기엔 그의 영화 중에 제일 저예산이고 제일 좋은 영화가 아닐까. [후회하지 않아] 보다(웃음).


백: 이번에 해외 초청작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있는데 이 감독을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조: 아핏찻퐁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 독립 영화를 한다는 사람으로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도 몇 편 안나오는 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는데 도대체 이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호기심이 들었죠. 그런 감독이 2명 있어요. 중국의 지아 장커와 태국의 아핏차퐁.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뭐하고 있을까 우리 동료들은 뭐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아 장커 영화 [스틸 라이프]보면서도 그랬고요. 지아 장커는 2004년에 왔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해외 초청부문이 예전에 CJ에서 후원을 해서 해외 부분을 했어요. 존 카사베츠의 경우도 국내에서는 쉽게 못하는 회고전인데 (왜냐하면 브에나비스타에서 판권을 갖고 있고 다 돈이고.) 해외 부문만 CJ에서 후원을 해주면서 이런 것들도 해보자 해서 존 카사베츠도 하고 했는데. 사실 회고전이 주목받기가 어렵더라고요. 해외 독립 영화를 가져다 튼다는 게 그래요. 한번은 라틴 아메리카 영화를 한 열 편 섭외해서 틀었어요. 그런데 열 편 본 관객이 400명이 안 되는 거예요. 돈은 몇 천만 원 들었는데. 그래서 소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하다가 그럼 한 감독의 영화로 가자. 단 동시대 활동하고 있는 우리 또래의 감독들, 가까운 데가 아시아니까 지아 장커나 아오야마 신지나 아핏차퐁이나 작년에 에릭 쿠 까지.


백: 일반 관객들이 서울 독립 영화제를 주목하고 봐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조: 영화가 사실 널려 있잖아요. 컴퓨터에서 있고 CGV에도 있고 메가박스에도 있고 DVD도 있고. 그런데 사실 독립 영화들은 여기서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일단 있고 그런 분들이 영화를 많이 보면 볼수록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리 소문 없이 보면 정말 여기서 밖에 못 보는 영화, TV를 틀면 나오는 영화 CGV에서 하는 영화 말고 다른 영화들이 계속 있었던 거잖아요. 독립 영화라는 이름이든 작은 영화라는 이름이든 예술 영화라는 이름이든 계속 있었는데 그 영역들에 대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발길을 해보고 발견을 해보는 기쁨을 누려야 되지 않겠어요?(웃음) 요즘 관객한테 큰 불만은 없는데 아쉬운 점은 좀 게으른 것 같아요. 게으르다는 표현이 맞는지 몰겠는데 예전에는 찾아서 보고 떼끄에서 가서 보고 어디에서 보고 그러는데 어디 영화제 찾아간다. 이런 건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전 유행어라고 생각하는데 “너 그 영화 봤니?” “응 나, 다운 받아 놨어” 이런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요.(웃음) 영화를 봤느냐 안 봤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영화를 소유하느냐 혹은 앞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게 너무 만연 되 있는 것 같아요. 각각의 창작자들의 에너지가 있는데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 될 수 있는 게 서울 독립 영화제 뿐 아니라 독립 영화가 아닐까 싶고요. 부산이나 그런 국제 영화제는 규모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여기는 극장 안의 영화의 에너지와 창작자 독립 영화 하는 사람 관객들의 에너지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군요. 자신이 영화인이 되고 싶으면 그런 공간에서 에너지를 한번 느껴보고 자기 영화가 거기서 상영이 되고 그런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중요 할 것 같아요.


백: 어쨌든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 잘하시고 성황리에 잘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잘 써드리는 것 밖에 없지만.(웃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지요. 독립 영화에 언제 처음 투신 하셨는지. 그 많은 영화계 일 중에서 유독 힘들다는 독립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조: 처음 관계를 맺게 된 건 95년 인디포럼 때부터고요. 그전에 문화 학교 서울에서 활동했을 때 새로운 영화의 제안,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 이러면서 나름대로 20대 에너지 있을 때 영화를 틀고 그랬어요. 그런데 거기서 트는 영화를 생각해 봤더니 다 외국의 예술 영화들인 거예요. 그때까지도 생각을 못했는데 한국의 독립 영화가 있는데 왜 우리가 이것을 몰랐을까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싶었지요. 90년대 중반이 지금 생각해보면 독립 영화계의 침체기라고 보여 지고, 그런 와중에 문화학교 서울에 제안이 왔어요. 인디 포럼(아직 이름도 안정해졌을 땐데) 영화제를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 내부에서 회의를 하다가 담당자를 정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제가 놀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책임감은 좀 있고 그러니까 인디 포럼 96을 하게 됐고 96준비하면서 95년부터 문화학교 서울에서 독립 영화를 틀기 시작했었어요. 감독과의 대화식으로 류승완 감독 영화도 틀고 홍영숙 감독 영화 뭐 임창재 영화 등을 틀고 감독 불러다가 감독과의 대화도 틀고 지금 아트 시네마처럼 하듯이 매달 한 달에 하면서 관계를 맺게 됐지요. 그 때는 그런 기획자들이 많이 없었으니까요. 영화제도 정성일 선생이 하던 서울 단편 영화제 이런 것들만 있었으니까, 자연히 감독들하고 모일 수 있는 장소와 근거지가 문화학교 서울이 되고, 이러면서 (인디 포럼도 작가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감독들이 맨 날 모여서 토론하고 저는 그걸 조종하고 정리하고 실행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독립 영화 쪽에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런 과정에서 98년 초부터 독립 영화 협회 창립을 준비를 했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일을 맡게 되면서 독립 영화 쪽 일을 하게 됐죠. 저는 그런 면에서 운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쓸데없이 다른데 기웃거리지 않고 제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을 맡았단 생각도 들고.


백: 독립 영화 일을 시작하고 내가 이 일을 잘했다 보람 같은 걸 느낄 때가 여러 번 있었겠지만, 특별히 잊을 수 없었던 사건들 있으면 소개 해주세요.

조: 아 뭐..(웃음) 잘했다? 이런 거는 영화제도 제가 많이 관여를 했으니까 인디 포럼도 그렇고 서울 독립 영화제도 그렇고. 그런데 제가 지금은 직접적으로 관여는 안 하지만 정동진 독립 영화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독립 영화인 한 100명 모이지만, ‘여기는 순간 최대 관객이 500명이야’ 이러거든요. 야외해서 영화를 트니까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저랑 강릉 친구들이랑 같이 만들었는데, 야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예요. 인디 포럼이나 서울 독립 영화제는 제가 없어도 어떻게든 굴러갔을 텐데 정동진은 제가 그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없었을지도 모르는 영화제인데 지금 8회까지 오고 있어요. 강릉 시네마테크 친구들이 영화제에 애정을 가지고 하는 걸 보면 대단해요. 거긴 전업이 한 명밖에 없거든요. 다 영화제 기간에 휴가 내고 월차 내고 영화제 일을 하고 자원 할동가들이랑 하고, 진짜 지역 영화제로 자리 잡았지요. 예산은 지금도 2500만원 규모지만. 갈 때마다 아 이건 정말 내가 잘한 것 같다, 물론 이건 바라보는 입장이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 독립 영화제는 지금도 막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해야 되니까 그런 성취감이나 이런 것들이 덜 한데 이건 제가 한발 짝 떨어져 바라보니까 재밌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사건은 [둘 하나 섹스]로 위헌 소송을 냈을 때 아! 이게 가능한거였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법을 바꾼 거잖아요. 감독님은 그거 없어도 되니까 빼자 그랬어요. 감독님 우리는 독립 영화 만들어 놓고 비겁하게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빼면 안 됩니다 하면서 법정 투쟁을 했거든요. 충무로 영화들은 그렇게 안 했잖아요. [거짓말]이든 뭐든 논란은 많이 있었지만 마케팅으로만 활용되고 그냥 삭제하고 문제제기를 안 했지요. 따지고 보면 독립 영화 역사는 표현의 자유의 투쟁의 역사였어요. 한국 영화가 이렇게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것도 독립 영화인들이 싸운 덕일지도 몰라요. [올드보이]같은 영화도 관객 300만을 동원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아닌가?(웃음) 그런 면에서 여러 명이 싸운 건 아니지만 싸우면 되는 구나 이런 경험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백: 독립 영화 역사라는 게 80년대 민주화 투쟁 역사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현실에 대한 혁명적 시선들, 그러니까 ‘장산곶매’나 ‘서울 영상 집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지금 한국 영화의 표현의 자유, 여러 가지 소재나 형식의 많은 자양분이 됐다고 봅니다. 그 시절의 독립 영화와 비교했을 때 요즘의 독립 영화나 또는 독립 영화인들이 더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쉽거나 그 때하고 좀 다른 것 같다. 라고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조: 저도 포함되는 이야기인데요, 선배들 보다 전략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예전에 [파업 전야]를 만들 때 혹은 [낮은 목소리]를 만들 때 보면, 치밀하게 계획을 해서 관객층을 형성을 하고 투쟁을 하고 전 과정에 목적의식이 쫙 있는 거잖아요. 영화 안에도 그게 담겨 있고 영화 만드는 과정에도 담겨 있고. [낮은 목소리]도 한 단체에서 만든 거지만 뱃지를 제작하고 지역 상영까지 쭉 가고. 이미 그게 10년 전 15년 전 선배들이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만큼 계획적으로 하고 있나. 영화감독이 자기 영화를 만들 때 자기 욕망만 투영되는 게 아닌가.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창작자 개인의 욕망만 투영되는 것도 독립 영화의 한 부분이겠지만, 이게 좀 어떤 전략적인 고려가 돼서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어떻게 이슈화를 시키거나 이런 전략적인 고민을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제를 한다거나 무슨 행사를 하나 해도 여러 시대적인 것들을 반영하는 전략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데 우리가 좀 그런 기획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건 개인의 욕망이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지금은 독립영화도 지원 구조에 의존 한지가 거의 10년 가까이 되거든요. 영진위 있으면서 작지만 지원 제도들이 생기고 이러면서 거기에 의존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자생력을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잖아요. 서울 독립 영화제도 한 50%이상이 공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거고 인디스페이스도 마찬가지고. 제작되고 있는 독립 영화도 어쨌든 싸워서 더 끌어내야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게 없으면 영화 제작이 안 되거나 다른 활동들이 정지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경계를 해야 되고 자기 성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부분들이 아쉽고 우려스럽죠.


백: 구조적으로 취약하니까 안전판이 있는 것은 필요하긴 한데 그 안전판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안전판이 무너졌을 때 회생이 힘들어진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조: 그렇죠. 그래도 독립 영화가 망할 거라곤 생각하긴 않거든요. 없으면 없는 대로. 제가 스크린쿼터 일인시위를 하는데 피켓 용어를 보냈는데 이 사람들이 그걸 못보고 자기 맘대로 쓴 거예요. ‘스크린 쿼터가 없으면 독립 영화도 없습니다’ 이렇게 써온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이 양반들아 정신이 있어 없어? 스크린쿼터가 없고 극장이 없어도 독립 영화는 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제가 없어지고 우리가 아는 감독은 없어져도 독립 영화는 있는 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 이제 인디스페이스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요. 11월 8일에 독립 영화인들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을 했어요. 아무래도 직간접적으로 참여를 하셨으니 감회가 크실 텐데요.

조: 직접적으로 지금 제가 운영팀은 아니고 옆에서 기획에 참여하고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기쁨보다는 이걸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너무 늦었다.(웃음) 지금은 관객, 시장이 붕괴되고 초토화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처럼 모양새가 돼서요. 어쨌든 전용관이 CGV랑 경쟁하는 건 아니잖아요. 멀티플렉스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비상업적인 공간으로 영화의 의미가 있는 걸 텐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냐는 거죠. 그러나 결국에는 독립영화도 경쟁으로 가야 하는데, 하다 못해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스폰지하고도 경쟁을 해야 되고요.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고 있는 거죠. 관객이 안 들면 전용관 스텝들 포함해서 인건비도 못 받아요. 그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살아남길까. 거기에 영화들이 또 빛을 발하면서 흥행이 될까. 노심초사하게 되죠.


백: 기쁨보다 걱정이 더 크단 말이군요.

조: (웃음) 이왕이면 좀 더 빨리 됐어야 한다는 거죠.


백: 그렇다면 제작이 이미 완료된 영화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나중에 개봉까지 감안을 해서 기획 단계서부터 언론플레이라든지 치밀한 마케팅을 해서 일단 붐을 조성하는 게 관객을 모으는데 유리하겠지요. 아까 중앙 시네마 영사 시설 이야기를 하셨는데 인디스페이스에 상영관외 다른 부대시설이 있나요?

조: 2층에 로비가 있어요. 2층에 사무실이 있고, 로비가 영화제 할 때 유용할 것 같고 인디스페이스 사무실도 거기에 있고 라이브러리가 들어올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소장하고 있는 디브이디나 책을 관람 할 수 있게. 하루 종일 못 봤던 독립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올 거예요. 그래서 모니터 한 3, 4대 해서 신청을 하면 자기가 꺼내서 볼 수 있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뿐 아니라 지금 디브이디들이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자체적으로 만든 것도 있고 지원 받은 것도 있고 한 40종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영화들을 일정하게 볼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들이 있어요.


백: 유료로 하실 건가요?

조: 유료겠죠, 아마. 비싸지 않겠지만 실비로 2000~ 3000원 받겠죠.(웃음) 그래서 그 쪽도 돌리고 영화 관련 책들 특히 독립 영화 책들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고요. 우리의 목표는 거기가 독립 영화의 메카가 되어서 사람들이 모이고 지나가고 약속도 거기서 하고 만나고, 뭐 이를테면 관객과의 대화를 매일 같이 하자는 생각도 있어요. 일하는 사람이 힘들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 것 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거죠. 한번씩이라도 매일 한다거나 말이죠.


백: 독립 영화에도 스타 감독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독립 영화를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고 다른 감독들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걱정이 있어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소외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 독립 영화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조: 딜레마죠. 우리가 영화제를 하면서 어쨌든 500편중에 50편을 고르면 나머지 450편을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배제하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영화제는 선택과 배제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그 영화들을 어떻게 할 건가. 또, 예전에 영화제를 하면 어떤 건 80명이 보고 어떤 건 100명이 봤어요. 지금은 어떤 건 200명이 보고 어떤 건 20명이 봐요. 영화제 안에서도 이게 양극화 현상이라 그럴까. 우리 사회 자체가 그렇잖아요. 어떤 건 천 만이 보고 어떤 건 만 명도 안보잖아요. 이런 것처럼 독립 영화 안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더라고요. 관객들도 재밌거나 좀 당기는 영화들은 시놉만 보고도 모르는 영화들이라도 찾아서 보는 눈들을 관객들이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안 알려진 감독들을 어떻게 발굴해서 틀 건가, 효과적으로 틀 건가, 그냥 튼다고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니 어째야 하나, 그런 고민들을 계속 해요.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들은 잘 모르겠어요. 영화제를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각의 영화제에서의 기능들이 다른 것들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합의하기가 쉽지 않고. 니들은 이걸 틀어라 우리는 이 걸 틀겠다. 이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욕망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송희일의 신작을 우리 영화제에서 틀고 싶은 거고, 김종관 감독의 신작을 틀고 싶은 거고. 대신 반대편의 욕망은 어떻게 젊고 새로운 감독을 발굴 할 것인가. 이런 두 가지 고민이 있는 건데. 오히려 저는 무게 중심이 뒤에 있는 것 같거든요.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 그런 것들이. 그런 시도는 계속 하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현되게 할 것인가 이런 거는 참 어렵다 생각이 들죠. 전 그런 부분에선 워낙 욕도 많이 먹고 그래서 이골이 났지만요(웃음) 독립 영화계에도 주류 비주류가 있지요. 영화제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잊혀지는 감독들이 있는 거고. 딜레마 인 것 같아요. 예전처럼 정기 상영회가 있고 그러면 이렇게라도 한번 틉시다. 연락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영화제에도 관객이 안 오는데 그냥 조그맣게 상영회를 하면 돌아버려요. 감독 불러 놨는데 관객이 10명도 안 오니까.


백: 약간 난감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독립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하세요?

조: 비주류 아닌가요?

백 어떤 면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하세요?

조: 일단 시장에서 배제되어있고.(웃음) 무슨 의도가 있는 질문인가?(웃음)


백: 그런 건 아니고요. 소위 독립 영화 관련된 글들을, 저널이든 네티즌이든 글을 볼 때면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수사 중에 하나가 비주류라는 말과 소외되어있다 어렵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 저는 그런 비교가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고. 비주류 그 말도 깊게 들어가 보면 대항의 개념으로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충무로와 독립 영화. 사실 독립도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주류로부터의 독립 이랬는데. 저는 독립 영화 자체가 충무로와 다른 동네에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뭐로부터 독립이냐 이야기하면 난감해 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권력으로부터는, 그렇다고 상업 영화가 권력과 붙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예전처럼 검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의 문제 혹은 사고의 문제 이런 게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박찬욱 감독이나 이런 사람들이 더 급진적인 사고를 하는 것 같고 독립 영화인들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더 나이브한 생각을 할 수도 있거든요. 영화가 더 나이브 할 수도 있고. 제 생각에는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진영에 있는 영화, 제작 방식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고 영화가 배급되는 방식도 다르고.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자극을 주려고 하겠죠. 시장에 진입하려고 하고 CGV에 들어가고 그러잖아요. 주류 시장에 질서를 좀 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거죠. 물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중에서는 여기에 어떻게든 가볼까 하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49%는 되는 것 같은데(웃음) 나머지 51%가 그걸 유지하고 있는 거고. 갈려고 하는 사람이 51%가 되는 순간 이 판이 재미없어지겠죠. 이전투구의 장이 되겠죠. 그래서 다른 거라는 생각이 들고 떨어져있기보다는 약간의 교집합이 있으면서 교집합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파란을 일으키는 영화계 질서를 흔드는 영화 언어 자체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기능이 있을 텐데 그건 기능 중에 하나지 본질은 아닌 것 같아요. 본질은 독립 영화 자체 그 안에 뭐가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독립 영화가 한국 영화의 미래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독립 영화는 현재의 독립 영화고, 현재가 중요하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 독립 영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지원해야 된다보다는 독립 영화의 현재가 어떠냐.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백: 이제 거의 끝나 가는 데 독립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서울독립 영화제 집행 위원장이자 독립 영화 협회에 계신 분으로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조: 독립 영화를 무조건 많이 봐야 되고 많이 보는 게 장땡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단편을 찍으면서 방향은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에게 가 있고 그들 영화는 막 외우고 난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야지 다짐하거나, 홍상수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제 경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럴 때는 독립 영화를 봤을 때거든요. 잘 만들었거나 아니면 너무 아쉽거나, 저건 저걸 정말 좋은 소재인데 왜 저렇게 했을까 나 같은 이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감정이 생겼을 때 말이예요. 그런 점에서 창작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거는 저는 독립 영화인 것 같아요. 남이 500만원으로 만들었으면 자기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독립 영화들을 많이 봐야 그 영화들의 기운이라든가 흐름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판에서 성공하려면 버티기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웃음) 1, 2년 있다가 가면 아무도 기억 못해요. 계속 영화 만들고 얼굴 내밀고 그래야죠.


백: 몇 년 정도 버티면 될까요?

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죠.(웃음) 그리고 자기가 아는 유명한 감독들도 생활은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진짜 알아야 되요. 이송희일 감독이 [후회하지 않아] 만들기 전에, 지금도 나아진 건 별로 없겠지만, 오기로 했는데 안 나와요. 왜 안 왔냐. 그러면 차비가 없어서 못 나왔데요. 그리고 술 먹다가 저 갈게요 하고 먼저 가요. 왜 가냐 그러면 택시비가 없어서 가는 거예요. 술 값 없어서죠. 다 그래요. 영화제에 튼다고 돈 주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계속 부르지, 왔다 갔다 돈 들어요. 우린 또 악착 같이 회비 걷지.(웃음) 술자리에 돈 없어서 못 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요. 자기 스텝이랑 4명오면 만원씩 걷어서 5만원 내야 되는데 자기가 내줘야 되잖아요. 그러면 나가서 회의하고 들어와요. 어떡할까. 이 돈으로 딴 데 가서 먹을까? 여기 들어와서 회비 내고 여기서 먹을까. 여기 몇 시까지 해요? 물어보고. 영화제 때도 술 먹으면 할증이 풀려야 가요. 전철 다닐 때까지. 어쨌든 다른 사람들도 자기랑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야 되고 버티고 많이 만들어야 되고 많이 봐야 되지요.


백: 조위원장님이 뽑는 독립 영화 베스트5를 알려주세요. 뽑기 힘드시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아주세요. 이건 죽을 때 무덤까지 가지고 갈 만한 것.

조: [오버 미]. 임창재 감독의 96년 단편이거든요. 아마 제가 제일 많이 본 영화일 텐데, 그 영화를 보고 실험 영화라든가 모더니즘이라든가 이런 것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조영각씨는 독립 영화란 비주류 영화가 아닌 그들 특유의 생명력과 특색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독립 영화가 단순히 주류 영화의 그늘에 있는 소자본으로 아이디어와 재기로 승부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나오는 독립 영화들이 과거에 비해 강렬한 시선과 화법이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80년대를 거쳐 독재 권력과 치열하게 싸워온 독립 영화는 이후 작가 내면으로 파고들면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다소 무디어 졌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독립 영화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 그들은 다소 무디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기존 영화판을 공격하고 균열을 내고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독립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무기이자 에너지이리라. 이런 에너지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서울 독립 영화제는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인디스페이스(구 중앙 시네마)에서 열린다. 보통의 상업 영화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날 것 과도 같은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서울 독립 영화제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일 것이다.


진행 :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정리 : 윤광식(호러무비 칼럼니스트)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706
  • 1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