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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4 [돌려차기] 이토록 뜨거운 순간

[돌려차기] 이토록 뜨거운 순간

필진 리뷰 2008.01.14 09:59 Posted by woodyh98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기억들 하시는가? 1990년대를 들썩거리게 했던 초히트 만화 [슬램덩크]의 그 주옥 같은 명대사를 말이다. 산왕공업 고등학교와의 경기 도중 치명적인 등 부상을 입고 벤치로 물러난 우리의 강백호는 자신을 스포츠맨의 길로 이끈 소연이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저렇게, 승리에의 의지를 불태웠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백호군의 나이는 기껏해야 열 여섯 아니면 열 일곱. 창창한 미래가 있고 그 한 경기로 선수생활 끝낼 것도 아닌데 강백호는 선수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등 부상을 무릅쓰고 기어이 코트로 나서고야 만다. 자신의 영광의 시대는 바로 지금이라는, 단호한 결의에 찬 한마디와 함께. 자 이쯤에서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파이브 장면에서 느꼈던 뿌듯한 감동에서 벗어나 그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감독과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선 경기, 어쨌든 절대강자에게 불의의 1패를 안겨주며 유종의 미를 거뒀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성장 중인 십대 소년이 당장의 승부를 위해 무리한 출전을 감행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한 확률 낮은 도박이 될 수 밖에 없다. 단 한 경기를 위해 구만 리 같은 선수로서의 미래와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갉아먹을 것인가? 게다가 한참 뛰어다닐 나이에 겪게 되는 재활훈련이란 육체의 한계 보다 더욱 참기 어려운 인내의 한계를 실감케 할 지도 모른다.

머나먼 미래도 아니고 안 봐도 눈에 선한 바로 코 앞의 상황들에 아랑곳 않고 경기에 나간 백호의 선택은 과연 올바른 것이었을까?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영광의 시대’라는 거창한 명분 하나로 감당하기에는 위험도 크고 잃는 것 또한 많다. 그러나 백호는 상관 없다 말한다. 막무가내에 어리석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열정이란 것이, 또 젊음이란 것이 때론 그렇게 사람을 무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청춘이란 [슬램덩크]같은 열혈 스포츠 만화에서나 가능한 판타지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음직한 판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정적인 청춘을 다루는 영화, 드라마 혹은 만화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돌려차기](2004)도 그 중 하나이다.



 



역시나 스포츠 영화. 질풍노도의 시기, 그 한 복판을 관통하는 젊음의 열정을 보여주기에는 누가 뭐라 해도 땀 내음 물씬 풍겨나는 스포츠만한 게 없는가 보다. 게다가 엉겁결에 모이게 된 오합지졸이 우여곡절 끝에 공동의 목표를 완수해 낸다는 이야기는 이 방면의 고전적인 테마이기도 하다. 단번에 결말이 짐작될 만큼 뻔하긴 해도 보편적인 주제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스포츠 영화의 강점일 터. [돌려차기]는 여기에 우리가 수 차례 보아왔을 법한 스포츠 성장 만화의 감수성을 흩뿌려 넣는다. 사연 많고 개성도 뚜렷한 인물들의 결합, 그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들, 그리고 가슴 찡한 결말까지. 그 중에서도 주인공 용객(김동완 분)은 여러모로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연상시킨다. 거칠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정직한 열정으로 넘쳐나기에 난생 처음 발 들여놓은 스포츠의 세계에서 짜릿한 성취의 희열을 한껏 맛보게 되는 열혈 소년. 그가 바로 [돌려차기]의 주인공 용객이다.

당연히 용객이도 강백호가 그러했듯 스포츠를 통해 좀 더 어른스럽게 성장하게 된다. [슬램덩크]도, [돌려차기]도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보던 이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주목한다. 화가 나도 코트 위에서의 충돌만큼은 피하는 백호, 매트 이외의 장소에서 벌이는 싸움을 거부하며 상대방의 폭력을 그대로 참아내는 용객이. 겉잡을 수 없는 성장기의 막연한 분노가 ‘스포츠’라는 매개체 하나로 쉽게 잠재워질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해도 자기완성의 도구를 찾아낸 아이들의 악전고투에는 분명 그 만큼의 감동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무작정 해피엔딩에 박수를 보내자는 얘기는 아니다. [돌려차기]는 분명 새로울 것 하나 없고 딱히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는 학원 스포츠 영화일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힘은 서툴러도 진심으로 넘쳐나는 어떤 순간들에 있다.


[돌려차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질풍 노도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쿨한 청춘들이 아니다. 등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을 감행할 때는 어리석었을지 몰라도 의연한 표정으로 소연이에게, 또 안 감독에게 한마디씩을 건네는 백호는 충분히 멋졌다. 그것은 분명 각고의 노력으로 얻어낸 성장의 단계별 완성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돌려차기]는 성장의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속담을 이토록 활기찬 영상으로 직접 보여준 영화가 또 있었을까? 태권도부 주장 민규(현빈 분)와 용객의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기 위해 감독이 내세운 것은 굳게 잡은 두 손 위로 오가는 멋진 대사가 아니라 치고 받는 두 소년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손꼽히는 주먹패답지 않게 태권도로 싸움을 거는 용객, 거기에 태권도부 주장답지 않게 막싸움으로 응수하는 민규. 이 두 소년이 동시에 태권도 대련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한 화면에 담기는 순간은 팽팽한 자존심 대결이 최고조로 달하는 때이기도 하지만 반목하던 그들이 마침내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기세를 직접 느껴보고 나서야 그를 인정하는 지극히 수컷다운 방식. 그러나 상대방을 이해하려 들기 보단 기어코 몸으로 부딪혀 본 뒤에야 어느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에서 아직은 미숙한 아이다운 방식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려 하는 아이의 제어되지 않는 에너지는 마지막에 가서 폭발하게 된다. 용객이 또한 부상 따위 아랑곳 않고 몇 수 앞의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것을 내걸어버리는 무모함을 내보인다. 하지만 결투에 임하는 무사처럼 결연한 얼굴로 좌중을 압도시키는 백호와 달리, 용객이의 표정에서는 멋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차라리 궁상스럽다. 기권하려는 감독 앞에 무릎을 꿇고 “태권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심히 한 것이고 여기서 그만두면 평생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울먹이는 용객이의 한마디 한마디는 이제 막 첫사랑을 경험한 소년의 뜨거운 고백과도 같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그 뜨거움을 어찌 조절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의 모습. 분명 모두가 말리는 승부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상황 그 자체는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 꿈만 꿔봤을 판타지이며 판에 박힌 장르 고유의 관습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돌려차기]가 보여주는 것은 의연하고도 단호한 결의가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만 같은. 그래서 더더욱 통제할 수 없는 찰나의 절박함 그 자체이다. 따지고 보면 며칠만 지나도 싫증 내게 될지 모를 장난감을 기어이 사달라며 떼를 쓰던 아이의 심정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터. 이런 감정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경험해 왔고 앞으로도 경험해 나갈 공통의 감정이 아닐까? 성장이란 듬성듬성 박혀 있는 특별한 순간들을 지나며 서서히 이뤄지는 것일 테고 용객이의 가슴 벅찬 눈물이 환기시켜주는 것도 결국 저 듬성듬성한 순간의 한 부분인 것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무덤덤해질지 몰라도 그때만큼은 어느 무엇보다 뜨거웠던 바로 그 순간. 그래서 난 주인공이 시합 내보내달라며 눈물까지 쏟아내고 마는, 작위적이라면 작위적일 수 있는 라스트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용객이의 아이처럼 솔직한 열정에 있기도 하고 ‘가수출신’이란 꼬리표에 아랑곳 않고 연기에의 첫정을 아낌 없이 쏟아 부으며 청춘을 뜨겁게 불태운 ‘배우’ 김동완의 진심 어린 호연에 있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딱 한 단어로 요약된다. 바로 ‘청춘’. 결국 우리들의 청춘도 각종 야사와 실화가 아니라 이토록 뜨거웠던 순간의 느낌으로 각인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단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려차기]라는 영화는,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해서 김동완의 울먹임은 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그 막연한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누가 뭐라던 간에 난 이 영화가 좋다. 가슴이 뜨끈해지는 것 같은 바로 그 느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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