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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가족 영화로 읽기 금지!

필진 리뷰 2009.05.21 13:2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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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불가능한 하층민 계급 연대를 통해 보여준 비극론


<똥파리>의 주요 인물들을 하층민이라고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에 대하서 논란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가령, 가난하지만 희망차게 살아가는 인물을 하층민이란 계급적인 잣대로 구분 짓는 것에 대하여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똥파리>의 경우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하층민 계급의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하층민으로 직시하는 것은 오히려 감독의 의도에 부합되는 시각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보는 불필요한 시각에 강하게 반대한다. <가족의 탄생>같은 대안 가족 형식의 모양새를 결말 부분에서 보여주지만, <똥파리>는 엄연히 계급 구조에 의거한 비극적인 파토스(pathos : 페이소스)를 추구하는 사회 계급론으로 귀결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가족 영화로 오해받기 쉬운 이유가 대안 가족을 이루면서 희망적 메시지를 찾고 있다는 결말 부분 때문인데,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은 바로 이 희망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는 마지막 엔딩 시퀀스이다. 여기서 이 영화는 계속적으로 회자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이 영화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 부분은 하층민 계급의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지점에 있다. 그것이 설령 피로 맺어진 강력한 혈연이더라도 하층민이 이 사회에서 좀 더 나은 삶을 갈구하기 위해서는 같은 하층민을 깔아뭉개고 올라 설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인 요소를 계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복기해보자. 개업식에서 빠져나온 연희(김꽃비 역)가 마주치는 것은 과거 자신의 어머니가 했던 거리 행상을 철거하고 있는 용역 직원의 모습인데, 결국 그 용역 직원이 자신의 오빠인 영재(이환 역)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 둘이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장면이 마지막에 배치된 것은 결국 그런 희망적인 부분 -만식이 하층민을 통해 세를 불려가던 사채업을 접고 고기집을 개업하여 핏줄과 상관없이 어떤 유대적인 관계로 묶인 이들과 화목하고 단란한 집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장면- 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런 사회 구조적인 비극의 부분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는 환경 자체를 보여준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보다는 어떤 사회적 문제에 집중한다. 여기서 가족은 영화의 주요한 테마가 아니라, 집단 공동체로 묶여 경제적인 요소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노리는 부분은 이런 하층민적인 연대를 탈출하기 위해서 다시 하층민을 착취해야 하는 가장 밑바닥 계층의 비극적인 구조이다. 그러니까 다시 이 영화의 관계를 재정립해보자면, 영화의 주인공인 상훈(양익준 역)의 아버지와 어머니 관계는 부부 관계를 전제한 -여기서 부부 관계는 결국 경제적 공동체로서의 하층민 연관 고리를 전제 한다- 착취/피착취 간의 관계이며, 여주인공의 연희와 그녀의 오빠인 영재의 관계 역시 남매 관계로 경제적 하층민 연관 고리를 전제로 한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로 읽어야 하는 것이 맞다. 이 밖에 여러 인물 관계 속에서도 이러한 관계를 읽어 낼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상훈과 만식이 하고 있는 용역업과 고리대금업의 성격이다. 그들은 하층민 계급을 착취하여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의 계속적으로 만식이 상훈에게 “같은 편끼리 때리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런 부분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대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중산층이나 상류층 인물이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는 모두 하층민에 해당하는 인물들 간의 삶의 분투만이 기록되어져 있다. 결국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포괄적인 제약은 하층민이 이 지랄 맞은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대립적인 대상으로 중산층과 상류층 사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뜻하며, 결국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으로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하층민간의 계급 내 갈등으로 결부 되어질 수 없음을 시사한다. 영화는 오로지 하층민 계급 내부안의 착취/피착취 구조 형태에 대해서만 골몰하며, 시작부터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이 부분에만 역점을 둔다. 이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비극의 정서를 발생시키는 파토스의 근본적인 조건이다.


비극에 관하여 가장 고명한 저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비극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의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문예출판사 천병희 역 52페이지에서 발췌) 그러니까 여기서 <똥파리>의 등장인물이 하층민으로 제한 된 것. 그것 자체가 비극적인 설정은 아니지만, 하층민간에 서로 착취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이 비극적인 설정은 행동을 통해 이를 비극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다시 한 번 『시학』을 인용하여 보자. 이번엔 비극의 행위에 대한 분석이다. 「........이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는 당사자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또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을 때는 피해자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그 행동에 있어서나 의도에 있어서나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 점은 당사자들이 친구도 적도 아닌 경우에고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극적 사건이 친근자(親近者)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예컨대 살인이나 기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형제가 형제에게, 혹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혹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혹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행하거나 기도한다면 이와 같은 상황이야말로 시인이 추구해야 할 상황이다.」


이 영화가 만약 하층민과 상류 사회 간의 대립으로 형성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이 불러일으킬 연민은 한 층 더 감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똥파리>는 결국 하층민 간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고 그들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게 함으로써 보는 우리로 하여금 아주 심각한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비극의 기본적인 문법에 아주 충실하고 있다.




이 영화를 가족영화로 보는 것을 일부러 경계하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이다. 이 영화의 비극적인 파토스는 가족 영화로 인식 될 경우 희석되기 아주 쉽다. 여기서 가족이 표상하는 것은 경제적인 하층민 계급을 의미 할 뿐, 굳이 다시 가족이 가지는 정서적인 연대로의 복기를 뜻하지는 않는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결국 핵심은 같은 편, 같은 입장,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이 비참한 구조에 있다. 그것을 가족으로 감쌀 경우 영화는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게 된다. 가족 간의 관계로 이를 재정립 해봤자 결국 하층민 계급 속 서로 다른 가족 간의 착취와 피착취의 문제로 이어질 뿐이지 문제의식 자체는 별반 틀려지지 않는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는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에 분노를 폭발한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는 이런 울화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는 착취자로 해당되는 가해자 남성과 피착취 자에 해당되는 피해자 여성에게도 동시에 분노한다. 이 둘은 서로 연대 가능한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한쪽을 착취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감독이자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그는 양쪽 모두에게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가해와 피해의 상반된 관계가 아닌 잘못된 착취 구조에 관한 일침이다. 감독 양익준은 이러한 비극적인 사회 구조 모순을 제한된 등장인물과 이들의 행동을 통하여 제법 호소력 있게 말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를 가족 영화로 보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양익준이 말한 것을 보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조건을 경제적 공동체 그 이상으로 확대 해석해 읽고, 더 나아가 정서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한 대안 가족으로의 복구로 읽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영화가 보여준 불가능한 하층민 계급 연대가 보여준 비극을 대안 가족 간의 연대로 비극을 완전히 거꾸로 읽게 만드는 오류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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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아주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5.23 22:56
    • sdvsdv  수정/삭제

      좋은 포스트 잘봤습니다.
      영화.드라마.쇼프로.음악 다운받으세요 ㅋ
      무료니까 댓글 짤리기전에 오세요 ㅋ
      www.entos.co.kr

      2009.06.19 16:46
  2. 비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근데 영재는 연희의 오빠가 아니라 동생인데요^^;

    2009.05.2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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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독립장편영화의 촬영감독들을 만나다"의 두 번째 주인공은 이미 너무도 유명해진 영화, <똥파리>의 윤종호 촬영감독이다. 윤종호 촬영감독은 한겨레 영화연출학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김우형 촬영감독(<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오래된 정원>등 촬영)의 촬영부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똥파리>는 그의 첫 독립장편영화이다. 첫 영화가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고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관심과 호응을 받으며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도,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고 조용했고, 또 신중했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똥파리>는 단순히 그의 필모그래피 첫 줄을 채워줄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시작한 이래 내내 가슴에 품어왔던 생각들을 담은 결과물이라서 일까, 그는 나지막한 음색으로 <똥파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 더. 『씨네21』은 양익준 감독의 로테르담 참관기를 실었고 맥스무비는 배우 김꽃비의 로테르담 참관기를 실었다. 이제는 네오이마주가 <똥파리>의 삼인방 중 한 명인 윤종호 촬영감독의 이야기를 할 때다. <똥파리>는 4월 16일 개봉이다.


강연하 (이하 연): 사실 제가 학교 후배다. 알고 있었나.

윤종호 (이하 윤): 아. 들어서 알고 있다. 반갑다.(웃음)


연: 곧 <똥파리>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모르고 시작했는데,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이렇게 국내개봉도 하게 되서 기분이 좋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작업한 영화이기 때문에 더 애정이 간다.


연: 간단한 자기소개와 영화를 시작한 계기를 듣고 싶다.
윤: 원래 집이 전라도 광주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 갔다 와서 뭘 해야 될 거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나의 집안 이야기,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영화를 선택하고, 무작정 대책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하려면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겨레영화학교에 들어가서 수강했다. 근데 연출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웃음) 촬영을 해봤는데 굉장히 재밌고 연출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촬영 쪽 일을 더 열심히 한번 해봐야겠다, 고 생각했다. 한겨레 나오고 나서 바로 충무로 현장으로 들어갔다.


연: 경력이 없는 초보자가 바로 충무로 현장에 들어가기 쉽지 않았을 텐데.
윤: 그 때 최두영(현재 두 엔터테인먼트 대표. 장률 감독의 <망종>등을 제작했다.).... 음 직함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웃음) 여튼 그 분한테 촬영 쪽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고, 그분이 소개시켜준 촬영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감독,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윤: 허우 샤오시엔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도 다 좋아하고. 아, <빌리 엘리어트>도 좋아한다.


연: <빌리 엘리어트>는 이 전에 인터뷰한 유일승 촬영감독도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영화다.(웃음)
윤: 신기하다.(웃음) 사람은 다 욕망이 있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최고의 정점에 올라가는 과정에 대한 꿈이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연: 허우 샤오시엔은 나도 현존하는 감독 중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촬영한 영화 한 편만을 보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어쨌든 <똥파리>는 대부분 거친 핸드헬드 촬영에 컷도 많다. 촬영감독 인터뷰를 하면서 느끼는 건데, 촬영감독은 아무래도 연출자와 영화에 맞추어 촬영을 하다 보니, 실제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화와 직접 촬영한 영화 몇 편들 사이에서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윤: 맞다. 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허우 샤오시엔은 역사적인 것과 가족적인 것을 결합시켜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좋아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흔들리거나 혹은 정적이거나 하는 것과 영화의 시선은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내가 찍은 영화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는 겉모양은 많이 다르지만, 인간에 대한 시선에 대해선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연: 그렇다면 촬영감독으로서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들 촬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 허우 샤오시엔의 초창기 영화는 미장센이 강하다. 그러다 <밀레니엄 맘보> 때부터 카메라가 타이트하게 들어가면서 좀 분위기가 달라진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보면 촬영이 참 유연하다는 느낌이 든다. 늘 인물의 행동이나 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많은 것들이 그 안에 가두어져 있지 않고 자유로워 보인다.


연: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좋아하는 촬영감독은 누구인가.
윤: 이와이 슈운지의 작품 대부분을 촬영한 시노다 노보루 촬영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연: 아. <릴리슈슈의 모든 것> 촬영은 정말 슬프고 좋다.) <하나와 앨리스>가 이와이 슈운지와 함께한 마지막 작품일 텐데, 지금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28일 후> 찍었던 안소니 도드 맨틀도 너무 좋다. 그 분은 너무 뛰어난 테크니션 같다. 영상 자체가 활력 넘친다. <28일 후> 보면서 그런 점에 정말 놀랐다.


연: 아까 말했듯 물론 영화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지만, 특별히 좀 더 선호하는 촬영스타일이나 기법이 있나.
윤: 음.. 기법 같은 것 보다... 나는 연출자랑 영화에 대한 얘기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알아가는 과정이 작업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촬영컨셉을 잡고 라이팅을 어떻게 하고 그런 건 특별히 큰 원칙 없다.



연: 영화아카데미 시절이나 졸업한 직후 몇 편의 단편영화를 촬영한 걸로 알고 있다. 특별히 아끼는 영화에 대한 짧은 소개를 부탁한다.
윤: 음.. 아카데미 졸업작품 중 한 편인데, 제목은 <간의 무게>다. 가족 내에서 큰아들이 갖는 부담감을 그린 영화다. 큰아들이 간을 아버지에게 이식해주는 이야기인데, 그 시선이 아주 담담하다.


연: 이제 <똥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양익준 감독과는 원래 아는 사이인가.
윤: 아카데미 때 동기 작품에 양익준 감독이 배우를 했었다. 그 때 우리가 19기였는데, 양익준을 19기 객원이라고 부를 만큼 친했다.(웃음)


연: 처음에 <똥파리> 시나리오를 읽고 어떻게 생각했나.
윤: 사실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고 받자마자 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참 길구나....(웃음) 한 씬 자체도 길고, 전체적으로 일반 장편 시나리오보다 훨씬 길었다, 근데, 머리로 쓰여진 개념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정말 마음으로 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나리오를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정말 내가 읽어본 것 중 손에 꼽을 만한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연: 사전 콘티 작업이 백 프로 이뤄진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한건가.
윤: 아니다. 콘티는 3주전부터 시작했는데, 집에서도 하고 공원 벤치에서도 하고 사무실에서도 하고... 20씬 정도까지는 핸드헬드가 아니라 꽤 자세히 포지션을 정하고 상황에 맞춰 쇼트들을 짰다. 하지만 그건 정말.. 그냥 '짠 거' 뿐이다. (웃음)


연: 그럼 현장에 가서 다 정한건가. 완성본은 대부분 핸드헬드다. 즉흥적인 느낌이 많이 들고.
윤: 콘티 짜는 작업은 정말 말 그대로 친분 다지기의 일환이었다. (웃음)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것을 한번 더 고민했고. 하지만 그게 직접 영상에 옮겨질 거라고는 생각 안했다. 여러 가지 다급한 상황이 많이 만들어졌고, 그러면서 연기나 영화가 진행되는 걸 보다보니 핸드헬드는 저절로 선택되어졌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이게 우리 영화에 어울릴 거라고 같이 생각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감독이 배우다보니, 감독이 따로 배우한테 "이건 이런 감정이다" 설명하며 리허설 하는게 아니라 리허설이 곧 촬영이나 다름없었다.




 연: 음... 근데 상영본 포맷이 35mm던데, 그런 (즉흥적인) 작업이 쉽게 가능했나.
윤: 아, 촬영은 디지털로 했다. 파나소닉의 hvx200으로 찍었고, 후반작업에서 부산영화제 후반 제작지원을 받으면서 35mm로 blow up 했다.


연: 아- 몰랐다. 그럼 애초에 필름으로 완성본을 낼 계획은 없었던 건가.
윤: 서로 간에 암묵적으로 이걸 35mm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계획은 없었다. 사실 blow up을 하려면 촬영 때 좀 더 신경 써서 조정했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을 못하고 넘어가서 아쉽다.


연: 감독이 주연배우 연기를 같이 겸하는 것이 평범한 경우는 아니다. 특별히 현장에서 느낀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다.
윤: 일반적인 촬영현장의 순서와 일들 있잖나, 감독이 배우한테 지시하고, 나하고 얘기하고, 한 컷 찍고 배우랑 같이 모니터 보고... 이런 과정들이 좀 달랐다. 카메라 앞에 서서 감정 잡힐 때 자기가 "액션~!" 하고, 막 연기하다가, 편집점 생각해서 연기 끝나고 몇 초 있다 자기가 직접 "컷~!" 소리 치고. (웃음) 그리고 배우에 대한 연기연출 같은 방법들이, 본인이 배우다보니까 상당히 다른 배우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더라.


연: 일반적으로 배우와 감독이 둘이 커뮤니케이션할 시간은 많지만, 촬영감독과 배우가 둘이 이야기할 시간은 많지 않다. 근데 이번엔 배우와 일대일로 영화와 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배우와 촬영감독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을 것 같고.
윤: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건 프리 프로덕션 작업 때나 촬영 전날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둘 다 이런 씬에선 연기를 이렇게 할 거고,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일일이 정해놓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정해 진 건 없었다. 감독 본인이 워낙 자신과 밀착된 이야기를 스스로의 몸으로 표현하는 거라 굳이 나한테 의논하지 않고 가는 부분에 대해서도 신뢰감이 있었다.



연: 특별히 자의적이지 않고 드라마와 인물에 충실히 따라가는 촬영이다. 대화 씬 같은 경우도 full shot- o.s- o.s 의 콘티뉴이티로 주로 이루어져 있고.
윤: 촬영을 하면서 그렇게 가는 것이 이 영화에 맞다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클로즈업은 이거다, 하고 앵글을 잡아놓으면, 양익준 감독이 생각하는 클로즈업은 더 타이트하게 들어가는 거였다. 그만큼 감독은 카메라가 인물에 집중하길 원했다.


연: 인상 깊게 보았던 몇 장면들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학생시위현장에 상훈과 그의 패거리가 들이닥치는 장면은 이들의 구체적인 직업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굉장히 현장성 강한 느낌으로 액션장면들을 찍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때 촬영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윤: 촬영 전 날 정두홍 무술감독님 밑에 있는 무술감독님이 오셨다. 사실 그 분도 영화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아무 정보 없이 오신 거였다. 기본적인 큰 동선을 감독과 내가 짠 후, 그것들을 설명해 드리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액션의 동선에 대해 그분이 제안을 많이 해주셨다. 천막을 어떻게 엎을 건지, 책상을 어떻게 엎으면서 이 쇼트를 시작해야 더 박진감 들고... 하는 것들 말이다. 촬영은 카메라 두 대로 진행했다. 주로 한 대는 미디엄 숏을 잡고, 한 대는 타이트한 클로즈 숏을 잡고 찍었다. 백 퍼센트 합을 완벽히 짜고 찍은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액션을 하고 있으면 카메라가 알아서 찍는 식이었다.


연: 많은 컷들을 빠르게 편집했더라. 촬영분을 거의 다 쓴건가.
윤: 거의 다 썼다.


연: 구로, 가리봉 등의 동네 이름이 직접적으로 등장해서 공간의 특성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연희네 집, 오래된 골목길 여러 군데 등이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나오는데, 그 로케이션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윤: 연희네 집은 양익준 감독이 사는 집이다.(웃음) 애초부터 그 방을 생각했다. 대부분의 촬영지는 난곡에서 찍었다. 스탭들 방도 영화에 많이 나온다.(웃음) 상계동, 중계동, 세종대 근처 등등을 돌며 장소를 골라서 감독과 같이 가서 보고 생각했다. 연희와 상훈이 주로 만나서 대화하는 골목 아현동 달동네다. 거기는 양익준 감독이 어릴 때 살았던 곳이라더라.


연: 처음으로 상훈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상훈이 아버지를 구타하는 내용인데, 때릴 때 문이 닫혀진 채 욕과 때리고 맞는 소리로만 영화가 진행되다가, 컷이 바뀌고 문의 반투명 창으로 클로즈업된다.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는다.
윤: 그렇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문틈으로라도 보이는 게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문으로 타이트하게 들어갔을 때 그 폭력의 움직임이 아른아른거리게 나타났으면 했다. 그 장면은... 아직도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연: 문을 닫는 건 차단시키는 건데, 이건 관객에게 이 장면은 보여주지 않겠다, 고 결정한 거다.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뒷부분에서도 상훈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가렸다면 이 영화에 대해 의심을 품었을 것 같다. 보여주기 힘든, 금기시 된 것을 끝까지 가리는 거니까. 하지만 뒷부분에 소름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나오더라. 나는 첫 번째 폭력에서는 관객으로서의 내가 그렇듯,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윤: 음.. 비슷하다. 그 장면은 둘 관계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거다.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막'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엔 영화 자체가 두 번씩 세 번씩 상훈이 아버지를 만나면서 그 막을 거두어들이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 상훈의 연기는 늘 재밌는 리액션들을 동반하더라. 습관적인 욕뿐만 아니라, 대사가 끝나면 빤히 상대 얼굴을 쳐다보다 뺨을 때리거나 머리를 쥐어박거나 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 촬영도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늘 잘 잡던데, 애초에 감독과 이야기했던 부분인가.
윤: 정해놓은 건 아니고, 촬영을 하면서 그런 리액션들이 상훈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디테일로 자리 잡아 갔다. 나는 정해져 있는 것이 많이 없는 상황에서 상훈이 감정에 의해 어떻게 움직이든 그것을 잘 잡아내야 했다. 리액션들이 잘 보였다면 다행이다.(웃음)


연: 재치 있는 three shot들이 눈에 띈다. 만화책 가득한 방에서 상훈과 그 똘마니 고등학생(웃음)이 방주인 남자를 마구 팬 후 함께 짜장면 시켜놓고 먹는 장면과, 후에 다른 집에서 똘마니 고등학생이 마당 가운데 앉아있고 꼬마애들이 양옆에 붙어 앉아있는 장면들. 이 때 보이스오버로 상훈이 꼬마애들의 아버지를 때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폭력적이고 어두운 내용의 씬이지만 그렇게 three shot이 등장할 때만큼은 아이러니하게 웃긴 느낌을 준다.
윤: 아이들이 똘마니 옆에 붙어 있는 장면에서는, 방 안에서는 완전히 난리가 나고 있는 상황이잖는가. 그 와중에서도 아이들에게 좀 편안한 장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짜장면 먹을 때도, 그 폭력이 다 끝나고 난 다음 서로 때리고 맞고 했던 사람들끼리 같이 짜장면 시켜 먹는 게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편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영화하고는 좀 동떨어진 정서인데, 그런 사소해 보이는 장면에서 편안함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연: 인사동 쌈지길 시퀀스와 시장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다. 촬영 중이라는 걸 크게 알리지 않고 다 펼쳐놓고 찍은 느낌이다. 리얼리스틱한 거리 풍경과 정서들이 잘 살아서 보기 좋았다. 또 두 장면 다 동시녹음이나 현장 앰비언스 없이 음악만 잔잔히 깔리더라.
윤: 배우들이랑 나랑 소수로 움직이며 찍었다. 배우들은 감정대로 놀고, 촬영자인 나는 그걸 알아서 찍고, 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다. 촬영 시작, 액션 구호 이런 거 없이 알아서 연기하고 알아서 다 캐치해서 찍고.(웃음) 아, 그리고 실제로도 동시녹음 없었다. 양익준 감독이 거기서는 음악을 조용히 깔고 싶다고 하더라. 인물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기 때문에 좀 도드라지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연: 촬영했지만 편집본에서 빠진 장면 중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장면이 있나.
윤: 상훈이 처음으로 아버지를 구타하고 난 후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꿈 장면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정신없이 막다른 복도를 상훈과 카메라가 함께 뛴다. 문을 열려고 해도 여러 개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다 한 곳의 문이 열리고 상훈이 그 곳으로 들어가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칼이 쥐어져 있고, 그걸로 누구를 찌른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죽은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또 하나가 있다. 상훈과 연희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신후의 상황인데, 둘이 걷다가 연희가 힘없이 쓰러진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연희가 상훈에게 살짝꿍 감정을 표현한다.(웃음) 앞에 보이는 모텔에 가자고 조르고, 상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희를 업고 택시에 타는 장면이었다.


연: 듣고 보니 굉장히 중요한 장면들 같다. 두번째 말한 장면이 개인적으로 아쉽다.(웃음)  음.. <똥파리>가 다가가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센 설정이나 거칠게 표현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그리고 뭔가 희망과 구원의 조짐이 보이다 결국엔 끊을 수 없이 순환되는 폭력의 면모를 보여주며 끝난다. 촬영감독으로서 영화를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작업을 했는지 듣고 싶다.
윤: 사실 콘티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얘기했던 건 사람 얘기다. 우리는 그 때 서로 양익준 감독이 살아온 얘기, 내가 살아온 얘기들을 나눴다. 그 중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내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양익준 감독이 알고, 양익준 감독과 그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알고. 그렇게 서로의 사적인 역사들을 공유하며 영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연: 기억나는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윤: 음... 한강장면이 떠오른다. 야간 촬영에 크레인도 오고 탑차도 오고.. 전체예산 따졌을 때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장면이었다. 근데 찍다 다 못 찍고 비가 와서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감독과 둘이 엄청 속상했지만 할 수 없다, 다음 날 찍자, 하고 담담하게 접고 돌아갔다.


연: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궁금하다.
윤: 연희 동생 영재가 상훈 따라다니면서 돈 받으러 다닐 때, 멍한 영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좋다. 개인적으로, 영재에 대한 부분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재가 상훈에게 행하는 엔딩하고도 맞물려서.


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적인 기억을 투영 시켜 촬영한 것이니만큼, 돌이켜 봤을 때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윤: 내가 하고 싶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간에 경험을 하면서 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개인적인 부분들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진심이 관객들에게도 잘 전달된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연: 이제 연출자와 촬영자 간의 이야기를 해보자. 여러 명의 연출자를 많이 만났을 텐데, 이상적인 연출자와 촬영자간의 관계란 어떤 걸까.
윤: 영화적인 얘기는 사실 간간이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에 대한 성향, 뭘 좋아하는구나, 어떤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연출자가 쓴 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연: 현장에선 카메라 앵글의 각도 같은, 사소할 수도 있는 일로 감독과 촬영감독이 다툴 수 있는데, 양익준 감독과 현장에서 다툰 적은 없는지, 있다면 어떤 문제였는지 궁금하다.
윤: 음.. 연희랑 상훈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다. 조명팀과 나와의 문제와, 나와 감독과의 문제 사이에서 일이 좀 엉켰다. 카메라가 180도 선을 넘어갔을 때 조명이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내가 이야기하면 감독은 아 그런 건 별 상관없다, 고 말하는 입장이었다.


연: 확실히 감독과 촬영감독은 그런 부분에서 좀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친한 사이더라도 현장에서 그런 신경전은 당연히 생기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영화에 더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친해진다는 건 정말 친구로서 친해지는 거다. 하지만 현장은 일하는 곳이고, 연출자와 나와는 친구인 동시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니까, 적절한 긴장감 유지해 가면서 일하는 게 좋다. 사실 나는 말이 별로 없어서 잘 싸우는 편이 아니다. (웃음)


연: 둘이 생각이 정말 다른데, 감독이 나는 이건 꼭 이렇게 찍어야겠다 한다면, 이해가 될 때까지 토론하는 스타일인가, 일단 믿고 따라가는 스타일인가.
윤: 나는 두 번째 스타일이다. 촬영자는 어느 정도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연출자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끝까지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믿고 간다. 믿음이 중요하다.


연: 양익준 감독과 생각이 달랐는데 그 주장을 끝까지 밀고 간 경우도 있나.
윤: 오락실 장면에서 그랬다. 그 날도 아주 작은 의견 차이였다. 풀 샷을 찍었을 때 사람이 이쪽에 있었는데, 뒤집어 찍었을 땐 좀 달라져 있었다. 감독은 이렇게 찍어도 상관없다 했지만 그 때는 내가 우겨서 원래대로 만들어놓고 찍었다.(웃음)


연: 좋은 화면을 촬영자로서 구현하려면 예산을 들여 촬영장비와 조명을 좀 더 동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텐데.
윤: 그렇긴 한데, 나는 좀 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공간에 대한 확보를 좀 더 신경 써서 잘한다면 그런 거 없이도 욕심을 부릴 수 있다.


연: 그런 문제와 연결해서, 독립영화현장에서 특별히 요구되는 촬영감독의 역할은 어떤 걸까.
윤: 상황에 맞는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다. 감독은 자기 이야기, 자기 영화의 어떤 장면이라도 다 찍고 싶어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또 그게 연출자로서 당연한 거고. 이럴 때 촬영자가 판단력을 가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빨리 생각해서 감독과 상의해야 한다.


연: 그 동안 쌓아온 상업영화 경력이 많다. 첫 독립장편영화 촬영과 비교해보면 어떤가.
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장단점이 있다. 책임감이야 둘 다 가지고 있는 거고. 상업영화는 맘 편하게 일할 순 있지만 여러 외부적인 요건이 많이 침범해 온다. 독립영화는 자유롭고 재미있지만, 욕심과 능력보다 늘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고 모자라서 아쉽다.


연: 앞으로도 또 독립장편영화를 촬영할 생각인가.
윤: 이제 개인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하던 촬영부에서도 나왔고. 좋은 영화를 만난다면 장편이든 단편이든 가리지 않고 하고 싶다.


연: 로테르담영화제 참관기를 양익준 감독도 쓰고 김꽃비 씨도 썼더라.(웃음) 촬영감독의 첫 해외영화제 소감과 짧은 참관기를 들어보자.
윤: 나는 일단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동경이 컸다. (웃음) 로테르담영화제에 대한 기대도 컸고. 너무 흥분을 했었다. GV시간에도 같이 나갔었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반응이 솔직한 것 같다. 다른 영화를 보러가서도 느꼈는데, 영화 보던 중간 중간에도 바로바로 들썩이며 표현하더라. 거리에서 만나면 막 우리 영화에 나오는 욕을 서로 하면서 우리한테 먼저 인사하고.(웃음)


연: 재미있었겠다. GV시간에 촬영감독한테는 어떤 질문이 오던가.
윤: 핸드헬드, 망원렌즈를 사용한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감독에게는, 한국에선 정말 저렇게 많이 때리고 욕을 많이 하냐는 질문도 나왔었다.


연: 만약 자신한테 그런 질문이 왔다면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나.(웃음)
윤: 음... "그건 영화적으로 하나의 표현수단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말꼬리를 흐리며) 지금은 그렇진 않다...?" (웃음)



연: 앞으로 특별히 촬영하고 싶은 영화에 대해 듣고 싶다.
윤: 정말 기술적인 영화를 해보고 싶다. 기술적이라는 건, 장르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꼭 해보고 싶다.

연: 듣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한국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윤: 음, <8월의 크리스마스> (웃음)


연: 앞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오직 영화만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윤: 사실 요새 많이 고민 중이다. (웃음) 나는 영화보다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영화야, 내가 잘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필요한 이런 고민을 잘 안 한거 같다. 지금은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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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누굴 때리는 X새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X새끼도 언젠가 X나게 맞는 날이 있어. 근데 그 날이 X같이도 오늘이고, 때리는 새끼가 X같은 새끼네.” 여자를 구타하던 한 남자를 또 다른 남자가 흠씬 패준다. 여자에게 다가선 이 남자, 예상을 비웃듯 따귀를 때린다. “왜 맞고 다니냐, XX년아.” <똥파리>의 상훈(양익준)은 그런 남자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똥파리’마냥, 살면서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간형 말이다. 상훈은 입에 걸레를 물었다. 후배들에게 손찌검은 예사다. 운동권 학생들과 노점상, 철거민들을 깔아뭉개는 것이 본업이다. 그래도 직업 정신은 투철하다. 떼인 돈 받아내는 귀신이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양익준 감독은 이런 상훈의 속내를 들여다보자고 권유한다. 사실 이런 괴물에게도 가슴 한 구석에 투박하나마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다. <올드보이>의 대사를 빌려와보자. “아저씨, 내가요, 아무리 짐승만도 못 한 놈이라도요,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상훈이 이렇게 망가뜨린 연원은 다름 아닌 가정 폭력이다. 어머니와 동생을 동시에 죽음으로 내몰았던 아버지의 폭력은 상훈의 삶을 나락으로 이끌었다. 아버지가 15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지금도 그 사건은 씻을 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양익준 감독은 반복해서 광기에 젖어 좁아터진 부엌에서 칼을 휘둘러대는 아버지들의 얼굴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잡아낸다. 상훈이 우연히 만나 교감을 나누게 되는 여고생 연희네 사정도 크게 다를 건 없다. 베트남 참전 용사이자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버지는 노점상을 하다 용역 깡패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어머니를 잊지 못한 채 계속해서 폭력을 휘두른다.

이렇게 일상화된 폭력과 아버지, 그리고 핏줄은 <똥파리>를 가로지르는 핵심 주제다. 욕지거리부터 구타를 일삼으며 사채 빛을 받아내는 일까지. 상훈은 이미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됐으며, 또한 스스로도 폭력을 일삼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양익준 감독은 클로즈업과 꽉 짜인 앵글을 통해 우리에게 가감 없이, 아니 집요하게 그러한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볼 것을 강요한다. 실상 이 폭력은 전부 아버지 세대에게 물려받은 유물들이다. “이 나라 애비들은 다 X같아. 근데 자기 가족들한테는 꼭 김일성처럼 굴려 그래”라는 상훈의 절규는 그래서 더 크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가정의 일상화된 폭력이 결국은 한국사회의 폭력과 맞닿아 있지 않겠느냐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핏줄을 끊을 수 있으랴. 그렇기에 상훈이 가장 신경 쓰는 존재가 바로 조카 형인이다. 배다른 누나와 그의 아들 형인, 이들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느껴갈 때 즈음,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아버지의 존재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훈이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를 흠씬 패 줄때, 이를 목격한 형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러운 피를 다 빼주고 싶다”던 아버지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조카 형인. 그 아이에게만은 폭력의 고리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의지. 그러나 양익준 감독은 끝끝내 이러한 핏줄은 끊을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상훈의 더러운 피는 대신 아버지들의 폭력을 공유해 버린 연희의 동생 영재에게 대물림된다. 결국 상훈은 영재의 충동으로 인해 벌어진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양익준 감독은 희비를 교차해낸 에필로그를 통해 이러한 폭력의 순환 고리가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사실 <똥파리>의 이야기 구조는 꽤나 전형적이다. 상훈은 우리가 느와르 영화에서 늘상 보아왔던 주인공 캐릭터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잠시잠깐 안식을 맞이한 밑바닥 인생이 맞이하게 되는 예정된 혹은 예상치 못한 파국. 한국영화에 있어 가까이는 <비열한 거리>의 병두가, 약간 멀게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이가 보여준 비극성과 닮아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생짜 신인 양익준은 이러한 전형성을 정면으로 돌파해낸다. 생생한 현실의 질감과 캐릭터들의 리얼함, 그리고 편집의 적절한 리듬감이 이 익숙한 이야기의 상투성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더불어 특히나 연희와 나누는 교감 중요하다. 구조적으로 비극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 동시에 상훈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층 공감하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자실을 기도한 아버지에게 피를 빼 준 상훈, 그리고 칼을 빼든 아버지를 물리치고 상훈을 만나기 위해 한강으로 달려온 연희. 끊어버릴 수 없는 핏줄을 인정한 상훈이 연희의 무릎을 베고 오열 할 때, 관객들은 분명 <똥파리>가 내보이는 진심에 가슴을 열어젖히게 될 것이다.

저예산 영화 <똥파리>는 투박하다. 시종일관 욕지거릴 내뱉지만 그것이 유일한 표현 수단인 상훈이 마냥, 시종일관 은유나 상징과 같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위악으로 가득 찼던 상훈이의 일상과 기억을 담담하게 따라 갈뿐이다. 그리고 팍팍한 현실을 잠시나마 위무한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훈이 환하게 웃는 연희와의 술자리 장면이나 유일하게 상훈을 이해하는 친구 만석과의 쌍욕이 넘실대는 후반부 대화 장면은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물론 공은 그런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라는 듯 카메라를 정직하게 들이댄 양익준 감독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화면 안에서 배우출신 감독이 이끌어낸 배우들 모두의 기교를 부리지 않은 진심어린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분명 독립영화 <똥파리>는 50개관이란 상영관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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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촬영감독은 감독의 눈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감독뿐 아니라 촬영감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촬영감독의 존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하게 반복되는 말들로 이 특집을 기획한 이유를 쓰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보자. 영화를 보면서 촬영감독의 존재를 잊는 일은 평범한 경우이며, 영화가 잘 되었을 때 그 영광이 감독 한 명에게 돌아가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나는 영화에 있어 이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촬영감독이라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한 편의 영화에서 감독과 가장 가까운 공동 창작자임에도 주목 받는 정도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뒷자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으로 영화는 '보는 예술'이다. 관객인 우리가 보는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을 (감독에 앞서) 촬영 순간부터 제일 먼저 보는 사람은 촬영감독이다. 영화의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 관객인 셈이다. 결국 윗 단락 첫 문장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촬영감독의 특권이자 의무인 이 첫 번째 관객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찍혔을 수많은 쇼트들을 가장 먼저 보고 생각했을 사람들.

영화는 많은 예술 장르 중 상당히 테크니컬한 분야이다. 영화는 후기 산업화 시대의 기술 속에서 탄생했으며, 때문에 영화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기계와 기술 하에서 창조될 수 있다. 사실 감독은 추상적인 영감과 생각과 글자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그 추상을 영화라고 하는 실체로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력자가 촬영감독이다. 나는 이것이 참 멋지고 능력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티스트이자, 테크니션이라니.

그렇다면 왜 '독립영화'의 촬영감독인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독립영화 현장이기 때문이다. 아직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충무로의 촬영감독들을 만나기보다는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이야기를 듣고 때로 함께 일하는 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영화계의 차세대 촬영감독 유망주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또 과거 <키노>나 <씨네21> 등에서 늘 일 년쯤에 한 번씩 촬영감독 특집을 하곤 했는데, 독립영화 촬영감독에 대한 정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기회에 "네오이마주"에서 먼저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기획했다.

영화의 선정은 독립장편영화 중 극장에서 정식개봉 했거나 유수 영화제들에서 여러 번 상영한 작품 중 인상 깊게 본 영화들로 먼저 골랐다. 그 후 촬영적으로 좀 더 관심이 가는 작품, 독립영화 진영에서의 위치나 경력, 시의성 등을 고려하여 최종 네 편을 선정하였다. <은하해방전선>(윤성호 연출)의 권상준 촬영감독, <청계천의 개>(김경묵 연출)의 유일승 촬영감독, <마이 제너레이션>(노동석 연출)의 이선영 촬영감독, <똥파리>(양익준 연출)의 윤종호 촬영감독, 이 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두 사람은 (현재까지 발표된 필모그래피로만 보아서는) 독립영화 촬영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만큼 독립영화 진영에서 쌓아온 경력이 상당한 반면, 또 다른 두 사람은 상업영화 현장에서 촬영부로 일하는 중간 중간 독립영화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권상준 촬영감독은 독립영화계의 대표주자인 윤성호 감독과 함께 <은하해방전선> 이전의 많은 단편영화들부터 함께 작업해 왔으며, 이선영 촬영감독은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독립장편영화로 널리 회자되는 <마이 제너레이션> 이전부터 노동석 감독의 단편들을 촬영해 왔다. 이에 반해 유일승 촬영감독은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작업한 독립영화로는 <청계천의 개>가 처음이며, 현재 홍경표 촬영감독(<지구를 지켜라!><태극기 휘날리며> 등 촬영)의 촬영부 제2조수로 있다. 윤종호 촬영감독 또한 김우형 촬영감독(<거짓말><바람난 가족><그 때 그 사람들>등 촬영)의 촬영부 제1조수로 일했으며 동시에 조금씩 독립영화 작업을 해 왔다.

인터뷰는 한 사람당 한 회씩 이루어졌고, 앞으로 총 4회에 걸쳐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평소 독립영화를 관심 있게 보던 독자들이라면 '그 때 인상 깊게 봤던 그 영화', '그 영화제에서 보았던 영화', '보진 못했지만 어느새 알음알음 유명해진 그 영화'의 촬영감독이 누구고 알지 못했던 현장 뒷얘기는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봐도 좋을 것 같고, 독립영화에 특별한 관심 없던 독자들이라면 대체 독립영화 현장이란 일반 멀티플렉스에서 보던 영화와 뭐가 다른지,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일해서 먹고 사는지 같은 호기심을 가지고 살짝 엿보아도 좋을 것 같다. 누가 아는가. 2009년 봄 "네오이마주" 가 소개하는 이 네 명의 촬영감독들이, 몇 년후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OOO' 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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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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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 감독은 최근에는 감독으로 더 이름을 날리고 있으나 독립영화에서의 경력은 배우로 먼저 시작했다. 2002년 [서브웨이 키즈]로 활동을 시작해 [타임머신] [파출부 아니다] [노량진 토토로] [햇살이 머무는 식탁] 등의 영화를 거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양익준은 2006년에 [철수야 철수야 뭐하니]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 [팡팡 퀴즈 쇼 커플 예선전] 등의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그의 매력이 잘 살아나있는 작품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으로 미장센 영화제에서 연기자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바람이 분다] [낙원] [드라이버] 등 수십 편의 독립영화에 출연했으며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강적]이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등에도 출연했다. 2006년에는 감독 데뷔작 [바라만 본다]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감독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 후로 [그냥 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등의 단편을 거쳐 최근에는 [똥파리]라는 장편 영화를 2008년 개봉 예정으로 감독 중이다.

배우 양익준을 대표할 만한 영화 몇 편을 소개해본다면, 워낙 많은 영화에서 고르게 좋은 연기를 펼쳤기 때문에 선뜻 몇 편을 뽑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일단 손원평 감독의 2006년 작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을 거론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캐릭터인 피아노 조율사 용희와 정수기 외판원 영은의 이야기를 다룬다. 양익준이 맡은 캐릭터 용희는 순진하다면 순진하고 눈치가 없다면 눈치가 없는 남자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착한 척 하면서 세상을 살아온 영은(정보훈)에게 용희는 불편한 사람이지만, 정수기를 많이 팔기 위해 영은은 어쩔 수없이 그와 친해진다. 단순히 친해진 것을 두고 서로 속마음을 다 아는 친구라도 된 양 가깝게 구는 용희가 견딜 수 없어진 영은은 ‘왜 그리 세상 물정을 모르냐’고 그를 다그친다. 그러자 용희는 대답한다. ‘영은씨는 정수기를 팔다 보니 사람이 물로 보이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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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사람이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올 만큼 순진한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캐릭터 용희를 과장된 듯 하면서도 섬세하게 통제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묘사한 양익준의 연기는 관객에게 단박에 그의 이름과 얼굴을 각인했다. 서글서글한 표정과 어딘가 어린아이 같기도 한 그의 외모는 과장이 심하거나 코믹한 캐릭터에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실제로 그런 역할을 자주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오히려 무뚝뚝하거나 미니멀한 면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관 감독의 [낙원]이나 이진우 감독의 [바람이 분다]를 그 예로 들고 싶다. [낙원]에서의 그는 대사 한마디도 없이 굳은 표정과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만으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남자의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영화 [낙원]을 관통하는 상실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김종관 감독은 ‘겉으로는 하하 웃지만 조금 친해지면 쓸쓸한 모습이 보이는’ 친구 양익준의 모습에서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진우 감독의 [바람이 분다]에서 맡은 기석역에서도 그의 쓸쓸한 표정이 반복된다. 기석은 예쁜 여자 이주노동자인 레띠하(레띠하)에게 밥을 사주고 같이 바다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약혼자에 의해 계획이 좌절된다. 생일에 홀로 바다로 향한 기석은 추운 바람과 호객꾼을 피하며 차 안에서 차가운 빵을 씹는다. 점퍼와 양말이 드러나는 짧은 작업복 바지를 입고 쓸쓸하게 걷는 기석의 막막한 표정은 영화의 건조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얼마 전 인디스토리에서 그의 영화를 상영하며 그를 가리켜 ‘독립영화계의 브래드 피트’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가 브래드 피트보다도 훨씬 나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 뿐 아니라 양익준 감독의 많은 팬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배우로서의 양익준이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감독으로서의 양익준은 세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데뷔작 [바라만 본다]와, 많이 상영되지는 않은 짧은 습작에 가까운 작품 [그냥 가], 그리고 최근에 발표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세편이다. 세편 모두 사랑 이야기라는 공통점은 사랑을 영화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만드는 양익준 감독의 감수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데뷔작 [바라만 본다]는 짝사랑의 이야기이다. 양익준 감독이 직접 연기한 주인공 준호는 성희(신윤주)를 몇년째 짝사랑하면서도 고백을 못하고 제목처럼 성희를 ‘바라만 본다’. 주인공 준호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나 영화에 등장하는 영화 속의 영화라는 설정은 응시의 대상으로만 머물 뿐 고백을 하지 못해 성희와 소통은 하지 못하는 애타는 감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많은 짝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렇듯, [바라만 본다]도 양익준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담겨있다.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영화만큼이나 영화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솔직하며 그런 솔직함이 매력으로 다가오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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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만 본다]의 또 다른 장점은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는 꼼꼼함이다. 영화는 감정이 거칠게 튀어나오다가, 주춤하다가, 다시 감정이 과잉되기를 반복한다. 예를 들어 영화는 준호와 친구(오정세)가 주고받는 대화 속의 음담패설이나 클라이막스에서 오가는 욕설처럼 관객을 감정적으로 강하게 자극한다. 그의 다음 영화 [그냥 가]도 남녀의 이별을 다룬 짧은 영화인데도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폭력이 나오는 걸 보면 이런 감정적이거나 육체적인 자극은 양익준 감독의 영화에서 사랑에 대한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한 감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상반된 태도의 감정을, 예를 들어 롱테이크나 긴 대화 장면을 통해 관객의 예상보다 훨씬 느리게 씬을 끌고 가기도 한다. 언뜻 들쑥날쑥해 보이는 이 흐름은 사실 감독이 꼼꼼하게 선택한 결과이다. 감독은 영리하게 컷을 나누고 이야기를 압축하는 것 보다는 느리더라도 진득한 태도로 뚝심 있게 밀고나가는 일관성을 영화 전체에 드러냈고, 그래서 영화의 여러 복잡하고 진한 감정을 영화 전체를 둘러싼 분위기인 ‘솔직함’ 안에 두려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러닝타임이 40분이 넘는 이 영화가 결말에서 감정을 안착해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잘 드러나지 않는 꼼꼼한 선택 덕분이다.

그의 다음 영화에서 이런 경향이 어떻게 드러날지가 궁금해진다. 다음 영화 [똥파리]는 일단 길이부터 장편인데다가 이번에는 사랑 이야기 보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거친 삶의 모습이 영화의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대해 양익준 감독과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 있는데, 그때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앞으로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양익준 감독은 [똥파리]를 상당히 어둡고 폭력적인 영화로 예상하고 있었다. 과연 감독이 지치지 않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지 듣는 내가 다 덜컥 겁이 날 정도로 어두운 영화였다. 영화의 어둡고 폭력적인 감성은 [바라만 본다]나 [그냥 가]에서 잠깐씩 등장했던 격한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반영된, 그리고 양익준 감독이 영화에서 아직 보여주지 못한 자전적인 요소도 새롭게 추가된 까닭으로 생각된다. 어떤 이야기가 되었던 그가 여전히 솔직한 태도로 우직하게 영화를 완성하길 바란다.

그는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는 중에도 배우로 열심히 활동 했다. 최근에는 상업영화 [라디오 데이즈]와 [내 생애 최악의 남자]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고, 독립영화 [피크닉] [바라보다家]가 등에도 출연했다. [피크닉]과 [바라보다家]는 상상마당에서 온라인으로 볼 수 있으며, 상업영화는 개봉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에도 감독이자 배우로 열심히 뛰고 있을 양익준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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