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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9 품격이 사라진 시대 유감

품격이 사라진 시대 유감

필진 칼럼 2009.01.29 13:37 Posted by woodyh98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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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감독 중 하나인 비스콘티의 걸작 [레오파드]는 이탈리아 국토회복운동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장면 장면마다 비스콘티 특유의 빼어난 미장센으로 눈을 유혹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품격’의 소중한 가치를 알려주는 교범으로 읽어낼 수 도 있다.


먼저 의미심장한 장면 하나. 때는 가리발디의 회복운동의 기운이 왕성하던 19세기 중엽. 시칠리아로 내려온 대지주 살리나에게 북부 토리노에서 사람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는 새로운 통일시대를 맞아 시의원이 돼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이 이를 거절하면 비열하고 저속한 이들이 판치는 사회가 된다는 것” 그러나 살리나는 이런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결국 살리나의 집안일을 돌보던 눈치 빠른 졸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의 쓸쓸한 퇴장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과거와 지나치게 친밀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던 살리나와 그의 추천으로 시의원이 된 졸부의 차이는 ‘품위’라는 한 단어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레오파드]는 품격 높은 삶의 양식이 대우받던 시대에 바치는 헌사라고 불려도 무방한 영화다.


살리나의 시대로부터 대략 150년이 흘렀다. 세상은 변했지만 사실 하나도 변한 건 없다. 귀족의 시대는 사라졌고 그 수하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떠나면서 바로크풍의 저택은 폐허가 되어갔다. 산업혁명은 전통적 계급을 붕괴시킴과 동시에 자본에 의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저택을 돌보던 하인들이 저마다 공장으로 몰려들었으나 그들이 부자가 될 수는 없었다. 이처럼 신흥 자본귀족의 탄생이 빚어낸 또 다른 계급의 비극은 세상이 변하더라도 사실은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따름이다.

북부에서 온 사람은 “사자나 표범이 떠난 자리를 약삭빠른 자칼이 차지할지 모른다”고 살리나를 설득했지만, 결국 그의 말대로 자칼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마지막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살리나의 뒷모습에 숙연해지는 것도, 이 영화의 제목 ‘표범’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게 [레오파트]는 지금의 시대와 조우하고, 영화를 통해 나는 이 시대의 우울한 초상을 본다. 품격과 품위가 아무런 소용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는 불행하다. 사자와 표범이 떠난 공간에 자칼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라 권력자의 교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수상하고 도무지 대한민국과 이 나라의 시민정신이 애초에 이랬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사자와 표범이 필요한 시대이고, 살리나의 품위가 그리운 시절이다.


-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를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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