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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람 환경에 대한 또 다른 생각


극장. 극장에서 우리는 연극을 보거나 혹은 연주를 듣거나 또는 영화를 본다. 극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극장은 오로지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극장의 경제적 물적 토대를 소유한 사람에게도 역시 그러하다. '극장주'라는 사람은 극장을 가졌으되, 그것을 끊임없이 극장을 찾는 이들에게 내놓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혹은 그런 척 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예를 들자면 멀티플렉스에서 관객이 받게 되는 살갑도록 따가운 '친절함‘같은 것들.

이야기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제한시켜서. 영화가 관객을 최종적으로 만나는 곳은 극장이다. 관객이 영화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언제나 관객을 찾는다. 영화를 보고 '거기에 영화가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기억할 수 있는 관객을 찾는다.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극장이다. 관객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 극장은 그러니까 영화의 최전선이 된다. 그곳은 전장이며 애틋한 사랑이 맺어지는 곳이다. 악다구니를 치며 촬영한 현장에서, 편집기사와 끊임없는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편집실에서, 기획 단계에서의 투자자와 기획사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들. 그런 지난한 과정들을 통해 영화는 만들어진다. - 서두르지 말자. 영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 영화는, 최종적으로 자신에게 합당한 관객을 만나야만 한다. 그 때 정말로 영화는 완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최초의 감독의 혹은 기획자의 머릿속에서 상상되었던 영화와, 극장에 최종적으로 걸리는 영화는 같은 것일까.


영화는 위대한 타협과 우연의 산물이다. 그 타협이 행복한 것이 될 수도, 또 그 우연이 구차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흔히 감독들은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개봉한 극장에서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화면비와 음향 때문이다. 공들여 짜맞추어낸 화면이 개봉 극장에서는 자신의 의도대로 보여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조금 감안하고 이야기하자면, 일반적으로 관객석에 경사가 있는 극장은 그 만큼 화면의 외곡과 유실이 크다. 영사기와 화면의 높이가 차이 날수록, 관객이 볼 수 있는 화면의 손실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론적으로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은 영사막에 90도의 각도로 조사되어야 화면의 왜곡이 최소화된다. 또한 영사기는 화면정중앙에 위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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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멀티플렉스가 이런 기준을 준수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무엇보다 건물 설계 과정에서 영사기의 위치와 극장 내부 설계가 함께 진행되어야 하지만, 멀티플렉스는 안전한 입지 확보를 위해 상가건물에 함께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극장 전용의 건물로 설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이 경우, 건물의 내구성 확보를 위한 기둥과 자잘한 설비 배선으로 인해 영사기가 화면 정중앙에 위치할 수 있는 확률은 적어진다. 기둥을 피하거나, 또는 배선 관계로 인해 영사기가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심하면 영사기의 치우침으로 인해 화면 왼쪽에 들어가는 자막의 포커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반대로 자막의 포커스를 맞추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화면의 포커스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예가 아닌, 실제로 영업중인 어떤 멀티플렉스의 경우이다.

신촌에 위치한 멀티플렉스 아트레온의 경우 심한 키스톤 현상으로 인해 농담처럼 '스타워즈 극장'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심하게 좁아지는 화면은 마치 스타워즈의 오프닝 시퀀스를 떠올리게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웃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최초 설계 단계부터 잘못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리 만곡 스크린을 사용하고, 스크린 아래쪽을 조금 들어 올려서 영사각도를 맞춘다 해도, 근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심하게 경사진 멀티플렉스 상영관은 이러한 왜곡 현상을 제어 할 수 없다. 결국 이것은 아트레온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에 예로 든 사운드의 문제도 있지만, 관객이 보는 것만으로 국한 시켜 이야기 하자면, 결국 관객은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화면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것 역시 처음에 이야기한 '위대한 타협과 우연'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극장 측에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다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의 화면 사이즈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비스타 비전(1.85:1)과 시네마 스코프(2.35:1) 두 가지가 있다. 멀티플렉스는 이 두 개의 화면 사이즈를 기준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영화에는 다양한 화면 사이즈가 있다. 4:3, 1.33:1, 1.37:1, 1.66:1, 1.75:1, 1.85:1 이렇게 다양한 사이즈의 화면 모두를 지원하는 극장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맞는 렌즈와 관련 부품이 구비되어야 하며, 영사막의 다양한 세팅이 가능해야 한다. 여기에 영사기사의 실무교육과 운용능력 배양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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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대중영화는 비스타 비전과 시네마 스코프 둘 중의 하나로 만들어진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대중영화의 시각은 위의 두 개의 사이즈로 ‘표준화’ 되어 있다. 물론 표준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표준화는 영화처럼 다양한 ‘공정’을 거쳐야만 하는 작업의 효율성을 더해준다. 그러나 만드는 이의 시야와 보는 이의 시야가 이렇게 단촐하게 표준화 되는 경우,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보는 세계의 더 다양한 시각적 가능성들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 이 글의 핵심. 구스 반 산트는 몇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데뷔 이후 계속해서 4:3의 비율로 영화를 촬영했다. 그것은 자신의 영화가, 자신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세계가 관객에게 4:3의 비율로 보여지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그의 데뷔작 <말라노체>는 4:3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봉된 <말라노체>는 1.85:1, 비스타 비전 사이즈의 <말라노체>다. 결론적으로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다. 왜냐하면 화면의 아래위가 (거기에 더해 양 옆 까지) 잘려나간 그것에서 우리는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수입했으면서 또한 상영주체이기도 한. 그러니까 수입사이면서 극장 운영 주체이기도 한 스폰지 측에서 말 한 것처럼 이 영화의 해외 배급을 총괄하는 회사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상영권고방식'이 특별히 없는 경우 해당 극장의 사정에 맞추어 상영을 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 '문제는 되지 않는다.' 라는 부분에 주의 - 그러나 상영권고방식을 예로 들어 해명 할 수 있는 것은 '영화사이자 수입사 스폰지'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극장으로서의 '스폰지 하우스'라면 좀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위에 장황하게 늘어놓았듯이, 극장은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최전선이다. 극장은 영화를 감독의 의도에 최대한 가깝도록 상영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특별한 상영권고방식에 대한 부분이 없었다 하더라도, 극장에서 실제로 상영되는 화면을 검토해서 4:3 화면이 무리 없이 전체적으로 1.85:1의 화면 속에서 소화가 될 수 있는지의 범위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러나 <말라노체>속의 세계는 아래위가 좁은 1.85:1의 화면에 들어가기엔 지나치게 가깝고, 가파르다. 이 영화는 인물들의 표정보다는 그 들의 몸이 가지는 세부의 흔적들을 스케치하듯 스쳐가는 것처럼 잡아내었지만, 그 모두를 보기에 우리가 만나고 있는 시야는 너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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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전의 <라스트 데이즈>가 그러했으며, 스폰지 하우스가 아닌,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렸던 '팡테옹 드 시네마' 특별전에서 상영된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가 그러했다. 장 폴 벨몽도와 진 셰버그가 함께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가는 유명한 롱테이크 장면에서, 벨몽도의 춤추는 것처럼 주름진 멋들어진 이마는 영사막의 위쪽, 어둠속에서 넘실거렸으며, 도망자의 것 치고는 지나치게 여유작작한 발걸음은 자막 아래 어디쯤에서 사라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광화문 시네큐브는 아트플러스 라인에 등록되어 있는 극장이며, 흔히 말하는 ‘예술 영화’를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상영 환경은 일반 멀티플렉스 극장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결국 광화문 시네큐브, 또는 스폰지 하우스 모두 일반적인 멀트플렉스 수준의 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아니, 이 보여준다는 단어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있는가. 극장은 영화를 ‘제대로’ 보여주어야만 한다. <말라노체>는 1985년, 미국 포틀랜드의 어느 거리에서 촬영 되었다. 그 후로 이십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서울의 한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본다. 그 만큼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감독이 보고, 생각하고, 꿈꾸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 그것은 영화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기쁨이면서 동시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신비이기도 하다. 하나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지구 건너편의 누군가와 동일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감독의 의도한 사이즈, 감독의 생각한 세부가 포함된 화면을 최대한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극장이 '하는' 것이며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일이다.

- 이 글은 스폰지 하우스 카페 혹은 또 다른 관련 공간에 등록할 수도 있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한 영화사 스폰지측에서는 더 이상의 의견 개진에 대해 난색을 표명했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이 건에 대한 회원들의 게시물은 아예 올라오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적어도 스폰지하우스 카페라는 온라인 공간에서는)더 이상 이야기 되어서는 안되는 문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다.

이 글이 이러한 '정책'에 대한 우회 공격,혹은 뒤통수치기 같은 것이 될 수 있을까? 받아들이는 쪽에 따라서는 그렇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극장 스폰지 하우스뿐만 아니라, 이 땅위의 모든 '극장'이라면, 그것도 예술 영화 전용관을 표방한다면 더욱 더 짚고 넘어가야만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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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집근처 위치한 롯데시네마에서 <그랜 토리노>를 보던 지난 일요일의 일이다. 관객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번째로 큰 상영관의 70%이상 들어찬 관객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이름값이 무색할 정도로 국내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체인질링>이 그랬고 <아버지의 깃발>도 마찬가지였으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아예 개봉조차 되지 않았으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보러온 젊은 관객이 이토록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물론 영화가 그러했지만)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은 즐거워 웃고 뒤집어졌다는 점이다. 몇 장면에서 키득거리는 것에 그친 나와는 달리 분명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그들. 아마도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 옆자리의 앉았던 커플은 나를 ‘월터 코왈스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웃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다름 아닌 코왈스키의 모습에서 오래전 작고하신 내 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실향민이었던 내 아버지 역시 극우의 보수주의자였고 전쟁으로 고향을 등진 탓인지 몰라도 소위 빨갱이라면 치를 떨었으며 타인의 이유 없는 친절을 경계하면서 극도로 축소된 공간 안에서 평생을 머무르셨다. 그에 반해 극장을 찾은 젊은 커플들의 아버지는 아마도 코왈스키보다는 한참 젊은 세대일 것이고 때문에 그의 고약하고 위험천만한 행동이 단순히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대체 이 많은 관객은 뭐고 이들이 합심해서 영화에 몰입하고 정서적으로 동참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홍보를 많이 했던가? 아니면 입소문이 났나. 이도저도 아니면 평단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일까? 정작 놀라운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관객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인데, 1972년형 그랜 토리노가 해변도로에서 멀어질 때 즈음 이미 불이 켜졌는데도 그러했다. 그날의 관객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의도는 없지만 정말로 이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멀티플렉스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니.

후배평론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했다고 말했다. 코왈스키에게서 영기(靈氣)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평생을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다 생의 마지막 날에서야 고해성사를 한 국수주의자의 주검은 스스로를 못 박아 인류를 대속한 예수처럼 온전히 십자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온 몽족과 그 옛날 유럽에서 건너온 코왈스키의 선조가 겪었던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두 후손의 화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드라마틱한 장면 하나 없이도 허허실실 감정의 파동을 쥐락펴락해대니 어느 관객이라고 매료되지 않을 것인가. 과연 몽족의 거처가 되어버린 도시에 남아 팍스아메리카나의 보안관을 자청한 코왈스키의 처연하지만 감동적인 최후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의 고해성사로 치환되는 순간, 젊은 시절 허리춤에서 신속하게 뽑아들던 총을 버리고 자신의 피로 일그러진 아메리카의 초상을 지우려는 노거장의 진심이 관객에게 전달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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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드몽단테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 이틀째 날에 보았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애와 사상이 정리된 느낌이었습니다. 손으로 총을 쏘는 흉내내는 장면에서 옛날 마카로니 서부영화의 주인공 장고의 모습이 머리속에 오버랩되더군요.

    2009.03.25 18:44
    • 100살하고도10년더  수정/삭제

      마카로니 웨스턴 '장고'의 주인공은 프랑코 네로 라는 이태리 배우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법자 3부작에서 한 번도 장고 라는 이름으로 출연한 적이 없습니다. 혹시 영화 '장고'에서 프랑코 네로가 손가락 총을 쏘는 장면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에서 왜 장고가 오버랩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래는 무법자 3부작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배역

      황야의 무법자- 죠
      석양의 건맨- 몽코
      석양의 무법자(극장명:석양에 돌아오다)- 블론디

      2009.03.31 14:40
  2. Favicon of https://freesopher.tistory.com BlogIcon freesopher™  수정/삭제  댓글쓰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죽음을 감지했다, 는 말이 인상깊게 남는 평이었습니다. 저도 <그랜토리노>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트랙백으로 걸어둡니다 :) 잘 읽었습니다.

    2009.03.25 20:30 신고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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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신한은행이 반포에 첫 영업점을 개설했을 때의 일인데, 이 지점 은행원들이 어찌나 친절했던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일이 다 그렇듯 과유불급이라, 이 친절함이 문제에 봉착했다는 얘기다. 국내 유수의 여성단체 회장이 이 지점에 처음 방문해서 본 광경, 즉 손님이 들어올 때 마다 전 행원이 일어나 머리를 90도로 조아리면서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모습은 낯설음을 넘어 거부감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소위 유명인사라는 나 같은 사람도 과도한 친절에 적은 돈은 감히 예금할 엄두가 나질 않는데, 서민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적당한 친절을 은행장에게 주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뜬금없이 은행이야기를 꺼낸 것은 서비스업의 과잉친절이 때론 부담스럽다 못해 짜증까지 유발할 경우가 많음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얼마 전 꼭 봐야 할 영화가 있어 멀티플렉스를 찾았던 적이 있다. 길이 막혀 상영시간에 임박해서 허겁지겁 도착하고 말았는데, 문제는 매표창구에서 벌어졌다. 다름 아닌 매표직원이 표를 쥐고는 갖은 설명을 해대는 바람에 하마터면 영화의 시작을 놓칠 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찌감치 도착하지 못한 나의 책임도 크지만) 촉박한 시간을 감안해 조금 빨리 처리했더라면 상영관까지 달리기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이 땅에 들어 온지 10여 년이 되었다. 강남의 대기업 극장체인을 중심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유서 깊은 강북의 극장들까지 옷을 갈아입는 지경에 이르렀다. 멀티플렉스가 보여준 이전 시대 극장들과의 확연한 차이점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있다. 단관 개봉시절, 매표소 직원을 비롯한 극장 종사자들은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멀티플렉스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훈련된 서비스정신을 바탕으로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는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가장 큰 덕목은 친절일 테니까 말이다. 비단 서비스업 뿐 아니라 모든 상행위 종사자가 친절해야 함은 당연한 일일 터. 다만 도가 지나쳐서 서비스 받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안겨줄 정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옥외 매표소가 있는 강북의 몇 군데 극장을 제외하고 멀티플렉스 매표직원의 친절함은 도가 지나칠 정도이니 인터넷으로 예매하여 자동발매기를 이용하지 않는 바에는 누구라도 다음과 같은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이다.

관람할 영화와 시간을 선택한 후 매표소 앞에 서는 순간, 당신은 꼼짝없는 매표소 직원의 서비스 대상으로 포획 된다. 이제 그녀는 당신에게 원하는 좌석위치를 물어보고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확인 한 후 발매할 것이다.

“OO카드나 OO포인트 카드, OO멤버십 카드, 저희 극장회원카드 갖고 계신 거 있으신가요?” (꼭 대답해야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비스티 보이즈> 오늘 1회 11시 30분 영화 맞으신가요?” (대답하자. 바로!) “보시는 화면에서 황색 표시된 곳이 가능한 좌석인데, 이쪽 어떠십니까?” (난 맨 뒤에서 보고 싶다. 무례한 녀석들의 발길질로부터 안전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소리와 잡담에서도 비교적 평온한 자리, 맨 뒷자리를 달라)

이제 영화표가 발매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표는 아직 그녀의 손에 있질 않은가. 그러므로 이어지는 그녀의 목소리.

“구매하신 좌석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4관 1회 11시 30분 영화 <비스티 보이즈>구요. 좌석은 R열의 왼쪽에서 세 번째 줄입니다. 또 다른 궁금한 점 있으십니까? 즐거운 영화관람 되십시오.” (네! 라고 반드시 대답하자)

그렇다고 이것으로 끝인가? 아직 더 남아 있다. 극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팔락팔락 손가락을 흔든 후 색연필로 입장권에 하트 무늬를 그리는 퍼포먼스가 끝나야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된다. 그제야 상영관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서비스를 끝내면 아쉬울 터. 상영관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유사한 절차를 거치고서야 나의 좌석을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토록 친절하다니, 아무리 서비스업이라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서비스에 익숙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억지스러운 미소와 몸놀림으로 과잉친절을 베푸는 매표소 직원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장광설을 견뎌야 하는 시간은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는지. 게다가 상영 5분전이나 상영시간 임박해 겨우 도착해서 숨 가쁘게 표를 끊는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앞서 내가 경험한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던져도 좋고 날려도 좋으니 표를 빨리 건네줬으면 좋으련만, 세상에! 저 긴 멘트를 다 듣고서야 겨우 표를 받을 수 있다니. 융통성이란 이럴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친절도 원칙도 복무규정도 결국은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간절하게 바라는 나의 주문, 조금 덜 친절해도 좋으니 입장만이라도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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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역지사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인은 늦게 도착한 사정을 배려해달라는 글을 쓰면서, 하루종일 서서 웃는 얼굴로 서비스를 하는 영화관 직원들의 사정을 배려하지는 않는군요. 이런글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상처받아요. 왜 이글이 메인에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영화 시작할때, 광고시간있으니 조금 늦어도 줄거리에 큰 지장 없지 않나요? 서비스에 대해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과유불급이네요. 극장들, 이렇게 친절해도 되구요~ 그렇게 삐딱한 사고로는 그런 친절 받을 자격 조차 없는 사람이란 소리 밖에 못 들어요.

    2008.05.08 17:02
  3. 홀리데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극장이 적당히 친절했으면 합니다. 친절하되 절차를 간편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2008.05.08 18:50
  4. 모래성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개월 극장에서 일했었는데요.. 글쓴님처럼 시간이 촉박해도 할건 다 해야해요. 사람을 대하는 곳이다보니 변수가 많은 곳이거든요. 어떤 손님이 어떤사유로 클레임을 걸지 몰라요. 그러니까 정해진대로 빠뜨리지 않고 모두 알려드려야해요. 글쓴님.. 과잉친절 받고 싶지 않으시다면 극장에서 설치해놓은 무인발권기를 이용하시거나, 인터넷예매를 해서 휴대폰으로 다운받아 상영관으로 들어가세요. 아.. 그리고 부득이하게 직원에게 예매할경우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발권하세요.

    2008.05.08 22:19
  5. Favicon of http://blog.daum.net/polelate BlogIcon Arti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절하게 대하는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군요. 표 받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에 대한 불만이군요.
    극장 직원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습니까? 다 교육받은대로 하는것이겠죠.
    윗글의 모래성님 말씀처럼 하나라도 빠뜨렸을 경우 밀려오는 고객 클레임에 대한 사전조치이겠지요.
    CGV는 시간을 단축시킨다는 이유로 색연필 코스를 삭제한다고 하던데요.
    글쓰신 분은 작은 규모의 영화관이나 무인발권기를 이용하셔야겠네요.

    2008.05.08 23:09
  6. 하이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접도 받을 사람이 따로 있다는거지요.

    일찍가서 여유있게 서비스를 즐겨보삼. 그러면 서비스 다 듣고
    "고맙습니다" 라고 호의도 베푸는 매너도 배우게 됩니다.

    시민의식이 부족한 사람이 바로 글쓴이 당신입니다.

    2008.05.08 23:28
  7.  수정/삭제  댓글쓰기

    윗분들 말씀대로 친절이 아닌....... 클레임을 줄이기위해 고객의 확인을 받는것입니다.

    2008.05.09 00:55
  8. ㅁㄴㅇ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예근성이구만..

    뭐 일기에 적을만큼 잡스러운 얘기는 아니지만 공감가지는않네


    노예근성에 빨리빨리..

    립서비스받는시간 1-2분더 일찍입장한다고 영화더 빨리시작하는것도 아니고


    윗사람이 쓴글처럼 감사합니다.. 라고

    가식적인 친절이지만 .. 아휴 쓰기귀찮아..

    2008.05.09 02:37
  9. 서비스직종 안 해보셨군요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비스직종에 한번이라도 종사해본사람이라면 저걸 당연히 해야하는거 공감할겁니다.
    친절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윗분 말마따나 클레임이 없게 하기 위해섭니다.
    표 빨리 달라고 해서 직언이 표를 휙 던져주면 기분 좋으세요?
    멤버쉽카드 있냐고 안 물어봤는데 계산 다 끝나고 카드 꺼낸다면 직원은 어찌해야합니까?
    그리고 촉박하게 온건 당연히 손님 잘못인데 표 빨리 안준다고 짜증내면 그 직원은 참 기분 좋겠네요.
    이 글이 왜 메인에 떴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2008.05.09 03:01
  10. 허허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옹졸한듯...
    확인 안하고 보냈다가 착오라도 생겨서 클레임 들어오면 책임은 누가 지죠?
    시간이라 해봐야 당신에겐 1분이지만
    그 사람에겐 직장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지요.
    조금만 넉넉한 마음 가져보면 어떨까요?

    2008.05.09 03:49
  11. 글 보다가 열받아서 한글 적습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대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보다보니 참 답답해서 리플같은거 안달지만 꼭 남겨야 겠네요..
    아시겠지만 요새 우리나라 사람들 클레임을 굉장히 좋아하죠.. 휴대폰 서비스 같은경우에도 월정액/일할계산/적용시점.. 등등 여쭤보았을시 기본적으로 안내해줄 사항이라는게 있습니다. 물론 휴대폰이 아닌 다른 서비스업 모두 마찬가지겠죠.
    저희도 이런 안내를 해주면 좀 길다고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기본안내를 다 해줘도 난 그런 안내를 받은적이 없다며 요금을 환불해 달라는 식이나 다른 민원은 제기하시는 분들도 있구요, 혹시라도 기본적인 안내를 빼먹었다가 민원제기를 하면 그건 무조건 환불처리를 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거죠..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진상인 분들 참 많이 계십니다.. 오죽하면 이런걸 노리는 사람들도 있을정도라니 참...
    저도 극장을 이용해 보지만 극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더구나 극장의 안내는 정말 기본적이며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정도 인것 같구요...
    위에 다른분이 말씀하신것처럼 인터넷 예매도 더 편리하며 저렴하니 인터넷으로 이용을 하셔야 될꺼 같으시네요.

    2008.05.09 04:09
  12. 일기는 일기장에.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기는 일기장에.

    2008.05.09 08:34
  13. 과연...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리빨리정신에 시간안지키는 코리안타임,
    거기다 자기에게만 필요없는 절차라고 무시하는 마인드
    자기는 뒤에 앉고 싶은데 그냥 매표직원이 아무자리나 줘버리면 그것가지고 뭐라 했겠지
    극장들,이렇게 친절해도 되는걸까?
    이렇게 친절해야 되는거다.

    2008.05.09 08:38
  14. 일기는 일기장에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글이라고 볼수도 없고, 왜 여기 올라온거지?

    하여튼 일기는 일기장에

    2008.05.09 09:34
  15. name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 많으신 분들이나 부모님 뻘되시는 분들은 영화관을 자주 안가시니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거죠~
    젊은 사람들 위주로 생각하시면 곤란한듯.

    2008.05.09 09:37
  16. 한숨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나름 깊게 생각하고 몇번이나 고쳐가며 쓴글일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한숨만 나오는군요..

    당신은 무슨 일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당신의 고객이라면 난 다른곳을 찾겠습니다..

    2008.05.09 09:37
  17. 후앙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뭐;;; 친절해도 불만이시네요 ;;

    2008.05.09 09:50
  18.  수정/삭제  댓글쓰기

    손님들 시간만 잡아먹는 서비스는 지양해야 합니다. 서버스업이라면서 숙련된 경력자보다 싸고 젊고 경험없는 초짜들만 항상 서비스하니까 느리고 굼뜨고 융통성이 없습니다. ARS기계같은 친절은 진짜 친절이 아닙니다. 손님입장에서 빠른시간내에 처리해주는게 진짜 서비스죠. 기계같고 지루한 서비스로 꼴랑 손님 5명있는데 10여분이나 잡아먹어서 상영시간을 놓친적 있습니다. 1분이 지나갔기때문에 컴퓨터에 매표가 안뜬다고 몇시간후에 보라고 하던데, 옛날같았으면 방금 시작했으니까 보실려면 보시라고 표줬겠죠.
    차타고 기껏왔는데 느려터지고 멍청한 직원때문에 시간 놓친거 생각하면 극장업의 서비스는 삼류라고 생각함. 진짜 서비스가 아니라 책잡히지 않을려는 방어적인 서비스는 진정한 서비스가 아님.

    2008.05.09 11:08
  19.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고로 저는 서비스업종인 호텔에서 일해봤던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SBS에서 하는 생활의 달인같은거 본 적이 있을겁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달인이 초짜보다 적게는 2배에서 10배이상의 일을 해내는것을 본적이 있을겁니다.
    그런데 그 달인들이 그만큼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 1년이상의 경력자라는겁니다.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박봉이라서 1년도 되기전에 사라지는 작업이라 그런 경력자가 상당히 드물다는겁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일잘하는 만큼 돈을 더주지 않는다는거 그게 바로 현대 한국사회의 문제인겁니다.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라서 경력자가 일을 처리하면 몇배나 빨리 처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장직원들 보면 임금이 싼 알바생들만 내세우니 빠른 일처리가 불가능하죠.
    진정한 서비스는 겉으로 보이는 인사가 전부가 아닙니다. 손님이 원하는것을 처리해주는게 진짜 서비스입니다. 현재처럼 싼맛에 비정규직만 고용하는 형태로는 진정한 서비스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참고로 저는 호텔 데스크에서 3년이상 일한 경험자입니다. 어중이 떠중이 단순히 몇개월 알바정도 한게 아닙니다. 서비스업도 최소한 1년이상 해봐야 경험치가 팍팍 늡니다.

    2008.05.09 11:20
  20. 아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쁘면 매표소서 서 있지말고 자동발급기로 뽑으쇼
    초딩이 썼나?

    2008.05.09 11:28
  21. 호루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요한건 소비자 입장이겠지만, 간과하기 쉬운건 서비스 제공자인 영화관 종사자들입니다.

    아마 이러한 과잉 친절은 그들도 힘들겁니다. 자본에 의해 강제하는 서비스, 서비스를 받는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서비스, 개선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이마트 종사자들에게 의자를! 운동이 얼마전에 있었지요? 같은 맥락이라 봅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나 제공받는 자나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돈에 의해 강제되는 친절이 아닌 사람으로서 느끼는 친절이 중요할듯 합니다.

    2008.05.09 17:43

이제라도,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필진 칼럼 2007.10.20 16:58 Posted by woodyh98


그날 밤, 나는 경북 칠곡의 어느 한적한 소읍을 향하고 있었다. 연고하나 없는 지방으로의 주거이동이 주는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감정을 추스르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도대체 서울에서 이곳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곳에 문화 편의시설이 얼마나 있을까?’ 라는 의문 속에서 지도를 펼치는 일이었는데, 황당하게도 아무것도 없는 등고선과 지형도를 봤을 때의 허망함이라니. 정확하게 말해서 2003년 10월의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이후 2년 여 동안 주말이면 어김없이 동명과 칠곡을 거쳐 대구 시내로 향하곤 했는데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가능했으니, 숨 막히는 시골을 떠나 동성로 일원에 즐비한 극장들을 순례하며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던 시절이었다. 서울과는 달리 예술영화나 단관개봉작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역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마주친 동성아트홀은 내게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만나는 작은 매표구, 첨단 시스템으로 좌석을 지정해주는 상냥한 안내원의 미소 가득한 멀티플렉스가 창궐하는 시대에 그 옛날 동네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또는 시골의 시외버스 정류장의 매표소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구멍이라니. 20여 년 전 쯤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좌석은 물론이고 허름한 매점을 지키는 맘씨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까지. 분명 21세기 극장의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였다. 어쨌든 놀라움과 신기함에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연신 주위를 둘러보다 나온 것이 내가 만난 동성아트홀에 대한 첫 기억이다. 혹자는 ‘동성아트홀을 지원사격하려는 것이냐’고 물을 런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지금 4년 전 동성아트홀과의 첫 대면을 떠올리면서, 진즉에 그랬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음을 고백하려는 것이다. 또한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표명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예술(작은)영화전용관을 살려야 하고, 독립영화를 육성해야 하며, 작은 영화를 보호해야 하고, 한국영화도 지켜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계획과 정책만 난무할 뿐 정작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은 미미한 상태다. 꼭 1년 전 2006년 10월 발표된 '영화산업 중장기발전계획’에 따르면 예술영화전용관을 70개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관객을 어떻게 유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한 양적 증가만으로 영화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전시행정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직 예술영화전용관이 없는 지자체가 114개에 이른다는 점은 문화정책입안자들의 사고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비록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아트플러스의 예술영화전용관에 관한 선정, 지원책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의심할 나위 없이 예술영화전용관은 아직도 더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예술영화전용관들이 홈페이지 외에도 인터넷 카페나 클럽, 공식 블로그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건상 대규모 마케팅을 펼칠 수 도 없거니와 시장의 규모가 빤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은 인터넷을 통한 회원 모집과 관리 등 나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멀티플렉스의 숲을 뚫고 오늘까지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특히 몇몇 극장의 공식 커뮤니티는 일반극장의 그것들과 비교해 역동적이면서 멤버의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행사와 상영일정과 이벤트가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며 극장주와 관객회원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모 극장의 공식카페의 실망스러운 운영방식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마치 그곳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영화인 양, 작은영화전용관이 대단히 숭고한 장소인양, 남들 안 하는 사업에 뛰어든 모험적 선각자인양 관객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운영주체의 사고가 이렇다 보니 비판적 관객의 언로를 봉쇄함으로써 극장운영방침에 맞도록 길들이려는 시대착오적 발상도 횡횡하는 지경이다. 세상에나! 바로 여기가 아니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영화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관객이 극장의 눈치를 보고 마치 공짜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찬일변의 태도를 요구받다니. 게다가 기회 있을 때마다 특별전 형식으로 몇 번 씩이나 우려먹는 프로그래밍을 무조건 반겨야 할까? (물론 명분은 좋다. ‘놓친 영화를 다시 한 번!’)

이렇듯 노출된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씨네큐브와 동성아트홀 등의 예술영화전용관이 보여준 회원모집과 극장운영 및 관리방식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결국 카페나 유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영화마니아들이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며 추억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관객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극장운영자의 겸허한 태도와 배려가 더해질 때 예술영화전용관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양의 눈이 대구에 내린 2004년 크리스마스 전야를 기억한다. 도무지 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을 걸어 내려와서야 버스를 타고 시내까지 나갈 수 있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동성아트홀로 찾아들어가는 일이었다. 대구를 떠나 서울로 복귀한 지 벌써 2년이 넘어선 지금에도 대구 시절을 생각하면 동성아트홀 밖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군가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로 영화 두 번 보기를 말했다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작은 영화와 내 지역의 작은영화전용관을 사랑하는 것도 반드시 그중에 포함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 사랑은 단순히 온라인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에 앞서, 극장을 찾아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그 작은 극장에 정부지원이라는 단비가 내려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볼 일이다. 혹여 멀티플렉스의 화려함이 없다고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고, 조악한 매표구가 의심스러워 발길을 돌렸다면 이제는 웃으면서 표를 받고 오래된 상영관 속에 예술영화 속에 자신을 맡겨보자. 정말로 작은 영화관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자. 왜 그래야 하는가? 그곳에 가면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영화’가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하며 한국영화의 미래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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