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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영화를 영화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쇼트(shot)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카메라로 찍은 한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길이와 다른 여러 가지들이 조정된 후 최종적으로 완성된 영화의 한 쇼트가 될 때, 여기에는 감독의 결단이 들어간다. 나는 이 결단의 흔적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영화들이 진정 영화다운 영화라 생각한다. 전주에서 본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는 매 쇼트마다 감독이 내렸을 결단들이 전해져 온다. 결단들은 비장하며, 비장함은 쌓여 슬픔을 낳는다. <멜랑콜리아>는 결코 글로 정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역시 몇몇 쇼트들이 내포하는 결단에 대해 말해야 한다.

여덟 시간 동안 영화 속 90퍼센트 이상의 쇼트들은 인물에게서 멀리 떨어져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다. 사실 롱 테이크와 롱 쇼트의 연속들을 한 시간 넘게 보다 보면, 어느새 그에 익숙해진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와중에도 라브 디아즈의 롱테이크는 가히 엄청나서, 서너 시간이 지나도 적응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감독의 결단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인물과 세계를 관찰하던 카메라가 '관찰하지 않을 때'이다. 황폐한 인물과 더 황폐한 공간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카메라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인물의 뒤를 따를 때, 나아가 인물의 눈이 되어 직접 공간을 볼 때.


영화의 첫 쇼트는 한 여관방에서 힘없이 짐을 푸는 알베르따의 모습이다. 이후 몇 개의 길고 긴 고정 쇼트들이 이어지다가, 매춘부의 옷차림으로 밖을 나선 알베르따의 뒤를 카메라가 걸으며 따르기 시작한다. 다음 쇼트는 모금 바구니를 든 수녀 리나의 얼굴로 넘어간다. 리나는 알베르따처럼 천천히 걷고, 카메라는 리나의 앞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며 뒤로 움직인다. 마치 알베르따의 얼굴이 리나의 얼굴 같고, 둘은 한 사람처럼 보인다. 내 기억으로 이렇게 핸드헬드로 인물을 따르는 쇼트는 이후 두어 시간동안 등장하지 않는다. '창녀와 성녀' 모티브를 눈치 챈다면 불쾌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지만 이 영화에는 잠시 후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몇 시간 뒤 밝혀지는 그들의 상처와 반성으로 인해 저 두 쇼트는 특별함을 가진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 둔 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극복하려 거리로 나선다.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던 소중한 이들은 죽음을 맞았고,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은 사라져 버렸다.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을, 카메라는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기는 힘들다는 듯 따라간다. 동행의 결단. 여덟 시간동안 카메라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영화에서, 시작 후 삼십분도 되기 전에 인물을 따라 걷는 쇼트가 쌍을 이루어 나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감독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함께 옆에서 혹은 뒤에서 그들과 걷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거대한 깊은 우울(melancholia)이 감독과 카메라를 멀리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롱 쇼트의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다시 한 번 쌍을 이루는 특별한 쇼트들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쇼트 중 가장 주관적이라 말할 수 있는 시점 쇼트다. 리나를 죽게 한 자신의 실험이 틀렸다는 것을 안 줄리앙이 보는 흘러가는 강물, 또 다시 사라진 양딸을 찾으며 문득 멈춰선 알베르따가 보는 흘러가는 강물. 그들은 강물 앞에서 무기력하다. 소중한 이의 죽음을 극복하려 발버둥 쳤고 시대와 싸웠던 시간을 긍정하려 노력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흔들리는 시선 속 어둠과 강물에서 나는 그들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좌절을 본다. 난데없는 시점 쇼트의 등장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것을 함께 보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함께 느껴보자고 제안한다. 이 또한 동행과 동조의 결단이다. 힘겹게 멀리서 지켜보는 카메라는 영화의 초반에 잠시 인물을 따르고 후반에 잠시 그들의 눈이 된다. 여덟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감독과 함께 아주 천천히 영화의 인물과 세계에 동화되어 간다.

언급한 주관적인 쇼트들보다 더 결단적인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두 시간, 3부에 나온다. 라브 디아즈는 여기서 카메라를 아예 놓아 버린 듯이 찍었다. 혁명에 실패한 세 남자가 울창한 정글 속에서 쫓기며 은신하는 장면. 화면은 온통 새카맣고 군데군데 하얀 점들만이 보인다. 그들이 잠깐 몸을 움직일 때 하얀 점이 움직인다. 수 분간 이런 장면이 지속된다. 도망자의 숨막힘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이 프레임을 넘어서서 나에게 덮쳐 온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쇼트는 그들이 보는 한밤중 숲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그들이 보는 암흑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결단 내린다. 동시에 그들이 견디는 시간을 우리가 함께 견뎌 내도록 결단 내린다. 이 결단은 세 남자 중 한 명이 연인 알베르따에게 쓰는 편지 중 한 마디, '이 전쟁에서 존재하는 모든 광기는 결국 슬픔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어.' 만큼이나 힘겹고, 슬프다.


영화를 본지 5일이 지나가는 지금에도 영화의 비장한 슬픔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감독으로 하여금 이 정도의 결단을 내려가며 영화를 찍게 만들었을까. 작고 나약한 나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어떤 기운이 여덟 시간 동안 스크린에 서려 있었다. <멜랑콜리아>는 이 기운을 영화가 자신의 생명을 얻는 '쇼트' 라는 것으로 구체화하여 표현해 낸다. 라브 디아즈는 가장 영화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한동안 이 영화를 내게서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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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보통 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첫 주말에 그 정점을 찍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날에 좋은 프로그램과 유명 게스트들이 몰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차례 힘을 빼고 나면, 영화제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게 가라 않는다. 흡사 평일 오후 2시의 시네마테크 모습이랄까? 그곳에는 조용히 영화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관람객의 모습이 다만 하루 전의 왁자지껄 했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5월 5일 전주영화제는 이제 막 일정의 절반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런 차분해 질 기색조차 없다. 한 주 동안 두 번 맞이한 휴일. 게다가 이 징검다리 휴일은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기에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다. 전주 국제 영화제는 살짝 들뜬 기분을 유지한 채 기분 좋게 전진중이다.

중간 점검 리포트를 해보자면, 이번 영화제의 동남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사실을 첫째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스리랑카 특별전이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러 섹션에 걸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영화들이 두루 포진중이다. 특히 두드러진 특징은 이번 영화제에서 필리핀 영화들이 대거 약진했다는 점이다. 3인 3색에 초청된 라브 디아즈 감독을 비롯하여, 약관의 나이를 막 넘어 일약 천재 감독으로 발돋움한 라야 마틴 감독(1984년생) 특별전과 2006년 전주영화제에서 소개되어 다시 돌아온 브릴란트 멘도사 감독, 국제 경쟁에서 상영되고 있는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감독(1984년생)의 <하수구>, 시네마 스케이프에서 소개된 아우라에우스 솔리토 감독의 <소년> 그리고 영화보다 낮 선 부분에서 소개된 카븐 드 라 크루즈 감독(1973년생)의 <짙은 어둠속의 마닐라>까지 모두 총12편의 필리핀 영화가 이번 영화제에서 절찬리 상영 중에 있다.

비단 이것이 프로그램 구상에서만 끝나고 있는 현상은 아닌 듯하다. 5월 4일자 데일리에서는 이미 이 점에 관하여 역점을 두고 한 차례 기사로 다뤘던 적이 있으며, 필리핀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는 후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에는 우선 그 형식의 자유로움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이미 필자가 한 차례 다루었던 라브 디아즈 감독의 경우 상영 시간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라야 마틴 감독의 경우 이색적인 형식과 아이디어를 통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필리핀의 근현대사의 정치적 현실이 영화를 예술적 표출구로 삼고 있다는 사실도 주요하다. 라브 디아즈 감독을 필두로 여하의 필리핀 인디펜던트 감독들이 영화들 통하여 일종의 정치적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음은 그들의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포착된다.

한 편 이번 영화제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중앙 무대의 이전이다. 해매다 중앙무대를 전주영화의 거리 중심 부분에 꾸며진 것이 올해는 중앙 주차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작은 무대를 설치하여 중앙 행사를 치러야 했다. 각 종 지프 센터를 중앙으로 집결시켰던 것 까지는 좋았지만, 중앙 무대가 주변부로 옮겨진 것은 유동적인 관객들을 흡수하기에 다소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예 중앙행사를 보러 온 관객이라면 상관없지만, 영화와 영화 사이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관객에게 이번 중앙 무대는 찾아가기 다소 먼 곳에 위치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앙 무대가 멀어진 대신 게릴라 공연 형식의 무대가 여기저기서 생겨 관객들을 또한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민환기 감독의 <소규모아카시아 밴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예정에 없던 공연을 주차장 부근에서 펼쳐 보여 관객들에게 그 어느 공연보다 높은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중간 점검 리포트로 영화제의 흥망성세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전주는 비교적 성공적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가름 할 수 있다. 작년과 비교해 보아 높은 예매율이라 던 가, 더 많아 진 매진작들 같은 산술적 근거보다, 더욱 깊게 다가왔던 근거는 <멜랑콜리아> 인터미션 도중에 예순이 넘어 보이는 어느 노회한 영화광께서 스물 남짓의 젊은이와 함께 그 잠시 사이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며 영화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을 펼치고는 다시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극장을 향해 들어간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제가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함께하게 해주며 희망을 나누어 주는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을 아무리 마땅치 않은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실패라고 평가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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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슬픔에 대해 영화가 이야기 하는 것 들 [멜랑콜리아]

8시간 동안 영화를 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전히 발전 중 에 있는 영화의 새로운 영역에 대하여 이 영화가 어떤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중간 인터 미션을 제외한 441분을 어둠속에서 숨죽이고 관람한 가운데, 다시 100여분을 감독과의 대화를 거쳐 길고도 긴 9시간 40여분의 대장정의 마무리는 만족감과 동시에 성취감에 도취된 열광적인 박수 속에 마무리 되었다.

<멜랑콜리아>는 보통의 영화들보다 다소 길다. 이 부분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 긴 런닝 타임이 의도적인 동시에 필연적인 결과라는 사실이다. 우선 라이브 디아즈 감독은 극장에 걸리기 위한 상영 시간의 제한을 일찍이 무시했던 전적이 많다. 전작 <엔칸토에서의 죽음>의 경우 9 시간 짜리 영화였으며, <필리핀 가족의 진화>의 경우 12시간이 넘는 대작이기도 했다. 라브 디아즈 감독 말에 따르면, 영화라는 예술이 상업에 규제 받는 것은 개 같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이 부분에서 연신 퍽 킹(fucking!)을 외쳐댔다- 일 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무비 혹은 시네마로 부르지 않고 ‘캔버스’라고 부르는 그의 말 처럼, 그는 영화를 온전한 예술의 형태로 대하고 있다. 그가 택한 포맷 역시 제작 기간과 상영 시간에 상업적인 부담이 적은 디지털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6개월이란 긴 촬영기간 동안 시나리오도 없이 즉흥적인 각색을 통해 촬영된 이 영화는 디지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음이 확실하다.

또한 라브 디아즈 감독의 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긴 런닝 타임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멜랑콜리아>의 시점 샷 몇 개를 제외한 영화의 거의 전부에 해당하는 관찰자 시점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우선 화면이 고정된 상태에서 인물이 프레임으로 들어오기 전까지의 장면과 인물이 프레임을 빠져 나간 후의 장면을 보통의 영화보다 무척이나 길게 오래 지속시킨다. 또한 인물이 프레임에 나타나 사라지기 전까지 혹은 프레임 안의 인물이 행동을 시작하여 행동이 끝 날 때까지 영화는 결코 단 한 차례의 장면 전환을 시도하지 않는다. 지독하다 말한 만큼 영화는 꾸준히 롱 테이크를 유지해 나간다. 하지만 이것은 타르코프스키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유려한 카메라 워크를 뽐내며, 인물을 추적하는 그것과는 다르게, 라브 디아즈 감독은 고정된 장면에서 우선 화면의 구도를 추구하고 그 안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가에 대하여 연구한다. 흡사 인궘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일가족이 화면에서 사라 질 때까지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그 시퀀스를 연속으로 8시간 동안 관람하는 것과 같다. 이런 쇼트의 특징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밖 에 없게 만든다.

영화의 몽타주 효과는 영화의 쇼트 길이를 점차로 더 짧게 분절시켜 놓았다. 화면 오른쪽에서 등장한 인물이 화면의 왼쪽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 인물의 이동을 끝까지 주시할 필요는 없다. 출발 장면을 찍고, 이동하는 인물의 이동 장면을 이어 붙이고, 도착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넣으면, 관객은 그렇게 믿게 된다. 더 간단하게 하려면, 인물이 이동하는 장면을 풀샷으로 잠깐 인서트 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라브 디아즈 감독은 이를 고집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체워 넣는다. 한 쇼트 한 쇼트에 절대 응축의 화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쇼트에는 인물이 등장하기 이전의 배경이 필수적으로 존재하고, 인물이 프레임에 사라진 후에도 사라진 인물의 체취가 느껴지는 공간의 모습이 여전히 남는다. 편집의 힘으로 이를 간단하게 표현하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모든 표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공을 기울인다. 또한 이러한 쇼트의 여유는 심지어 시적인 운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누가 그랬던가.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라고.





이 영화의 백미는 단연 세 번째 파트이다. (긴 런닝타임으로 두 번의 인터미션을 가졌고, 이 글에서는 필자 임의 대로 이 영화의 인터미션 사이의 영상을 각각 1,2,3부로 나누겠다. 그렇다고 이를 필자 마음대로 나눈다는 것은 아니다. 인터미션은 감독의 의도에 의하여 나뉘어졌고, 각기의 부분은 과거, 현재, 과거 이전의 과거라는 시제로 독립적으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혁명을 기도하다 이가 실패하자 정글에 잠입하여 위태로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실패한 혁명 전사들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긴 롱테이크는 이 부분에서 진가를 들어낸다.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에 대한 공포는 고정된 화면 프레임이 그 공포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등장인물의 불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묘사하는 장면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 중에서 최고라 말 할 수 있는 장면은 일체의 조명도 사용하지 않은 체 정글 안에서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대로 영화에 담은 감독의 과감함이다. 화면은 심하게 어두워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음향과 간간이 번쩍이는 극소량의 빛이 선사하는 감추어질 수 없는 감정이 퍼져 나오면서 우리를 정말이지 극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장장 8시간에 이르는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의 줄거리를 여기서 모두 설명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애초에 이 영화의 첫 번째 파트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2시간여의 줄거리를 모두 전복시켜 버린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 쇼트 한 쇼트가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가치와 이 모든 쇼트들이 모여 만드는 영화의 강렬함일 것이다. <멜랑콜리아>는 전적으로 슬픔이란 감정에 귀착하여, 모든 이야기의 원인을 지목한다. 모든 예술은 사람들의 슬픔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며, 영화는 사람들이 가진 슬픔이란 정서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진 힘에 의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하여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멜랑콜리아>는 대작이다. 단순히 러닝 타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영화는 슬픔에 관한 실존적인 질문에 대한 상당히 성실한 대답인 동시에 필리핀의 현대사를 영화사를 통하여 조망하는 문제의식 또한 뛰어난 이 시대 거장의 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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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FF 2009] 이제, 슬슬 즐겨볼까?

필진 칼럼 2009.04.30 10:11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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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기


간다. 결국 올해도 간다. 그것도 6박 7일의 대장정으로 말이다. 뭐 시기가 시기인 만큼 뻔히 짐작하겠지만, 전주 국제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벌써 4년째, 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왜냐하면, 영화제 측으로부터 프레스 아이디카드를 발급받아 참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이 프레스 카드 때문에 나는 적잖이 흥분해있는 상태이다. 그 동안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고백하건데 솔직히 나는 좀 외로웠다. 좋은 영화가 넘쳐나는 곳이라면, 함께 그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즐거움을 배가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난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매 해, 전주 영화제를 혼자 유량하면서 영화에 대해 할 이야기는 넘쳐나는데도 그것을 받아 줄 마땅한 창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그 마음을 삼키고,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노트에 나열해야만 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난 내게 갇혀진 이 얘기들을 해방하기로 했다. 자유를 찾기 위한 이 담론들은 네오이마주라는 길을 통해 떠나보내 질 것이니 기대하시기 바란다.

그러기에 앞 서 내가 이번 영화제에서 무엇을 볼 것이며,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가에 대한 간략하게 일정 소개와 이번 영화제에 대한 소회를 밝혀보고자 한다. 일종의 사전 안내서인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대리 경험을 통한 즐거움의 전이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주는 가장 극명한 즐거움은 그 계획에 있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을 분께서 전주에 가시지 못하더라도, 이 글을 통해 필자의 여행 계획에 잠시 동승해보시길 바란다. 실지로 그곳에 가지 못한다고 씁쓸해할 필요는 없다. 이미 당신은 설렘으로 충분히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5월 2일부터 폐막식인 5월 8일까지 필자는 총 이레 동안 전주에 머무를 예정이다. 유독 전주 영화제를 여타 다른 영화제보다 편애하는 이들이 많은데, 필자도 그 중에 대표적인 한 명이다. 이유는 전주가 다른 지역들보다 축제의 성격을 가장 잘 살린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옹기종기 모여진 극장들과 한 골목을 막아놓고 펼쳐놓는 영화의 거리에는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넘실된다. 또한 지근거리에 위치한 상영관과 중앙 무대는 상영관을 벗어난 우리를 유혹하기에 안성맞춤이며, 길거리 곳곳에서는 영화제 관련 행사가 수시로 벌어지기도 한다. 전주 영화제 기간 그곳은 잠시 별천지인 다른 세상이 된다. 부산/ 부천/ 충무로 등등 일련의 이제는 제법 성장하여 그 자리를 옹고하게 갖춘 영화제들도 이건 못한다. 가장 큰 부산 영화제도 극장을 벗어나 조금만 걷다보면 우리는 단순히 여행객이 되어버린다. 다시 영화제를 즐기기 위한 씨네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린 피곤한 몸을 버스 혹은 지하철에 던져버린 후, 잠시 숨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상영관에 도착하면 우리는 숨겨왔던 영화 애호 환자들의 기질을 슬며시 끄집어 놓는다. 누군가는 영화제 카탈로그를 끄집어 놓고 이후의 스케줄을 짜기에 바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트를 끄집어 내어 열심히 무언가를 적곤 한다. 혹 피곤에 지친 어떤 이는 좁디좁은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어 칼잠이라도 자면서 잠시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주는 극장과 더불어 이 외부의 거리마저도 영화 애호 환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을 격리시켜 그들의 중독성 질병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만드는 센스. 여하튼 나는 전주가 좋다. 음식과 잠자리까지 세심히 챙겨주는 이 영화제가 소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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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영화 외적인 부분에 대하여 상찬을 그려내다 보니, 마치 전주 영화제의 프로그램이 별로일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 하지만 안심하시라 전주 영화제의 프로그램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전주 영화제는 국제적으로 주목할 만한 발견과 동시에 국내 작품의 발굴에도 상당히 열정적이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의 전주 영화제의 성과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상영회에서는 ‘JIFF가 발견한 감독 열전’, JIFF 수상자들의 신작을 살펴보는 ‘수상자들의 귀환’ 그리고 관객들이 선정한 다시보고 싶은 지난 상영작들을 모아 ‘다시 보고 싶은 JIFF’를 통해 영화제의 과거를 회상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필자는 당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JIFF 우석상을 수상한 이후 일약 거장으로 떠오른 이제는 칸느의 심사위원상에 빛나는 태국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데뷔작 <정오의 낯선 물체>와 551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영시간을 자랑하는 중국 왕빙 감독 <철서구>를 관람할 예정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발음하기조차 힘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대표작 <열대병>을 보고 내가 이를 확실히 이해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난 그의 영화에서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일견 판타지로 보이기도 또는 다큐멘터리로 보이기도 하는 이 영화는 분명 불분명하다. 나는 그의 시작을 확인해 이 불분명한 지점의 시발점을 목격할 작정이다. 한 편,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가장 긴 상영시간 때문에 언론에 다소 많이 소개된 <철서구>의 경우 긴 상영시간에만 그 관심이 몰린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다. 자이 징커에 대하여 그토록 호들갑을 떨던 영화 정론지들조차 정작 자이 징커의 효시격인 왕빙 감독의 <철서구>에 대해서는 이토록 묵묵부답인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 시간이라면 또 둘째가라면 서러울 감독이 있다. 그가 바로 필리핀의 거장 라브 디아즈 감독이다. 라브 디아즈 <멜랑콜리아>10시간 30분이라는 기록적인 런닝 타임의 영화-최종판은 540분으로 재편집되었다- <필리핀 가족의 진화>로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라브 다아즈 감독은 최근작 <멜랑콜리아>를 통해 전작에 비해 상당히 압축된 480분의 런닝 타임으로 상당한 친절(?)을 베풀었다.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용기를 필요하게 만들 것 같은 이 영화는 <철서구>가 중국의 현대사를 반영하고 있듯이 필리핀의 오늘을 오롯이 반영한고 있다. 다만 480분의 상영 시간이 다소 압박이긴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이런 영화를 접해 보겠는가? 게다가 이번 영화제의 개인적인 최대의 관심작이자 전주영화제 전매특허의 아이템 ‘삼인삼색’에 라브 디아즈 감독이 포함되기도 했으니 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거리가 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해보자면, 나는 <해변의 연인> 이후의 홍상수와 <모리가리의 숲> 이후의 가와세 나오미의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노골적으로 변화를 강론한 <해변의 여인> 이후의 홍상수는 <밤과 낮>으로 변혁의 시동을 걸었고, 이제는 그 변화의 진실성을 보여줄 시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거의 동시에 진행된 이 영화를 통해 홍상수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또한 <모리가리의 숲>을 통해 그녀 필모그라피 상의 정점을 새겨 넣은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또 어떤 고점을 그려낼 수 있을까 매우 흥미롭다.

참고로 필자가 이번 전주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섹션은 다름 아닌 마스터 클래스이다. 해마다 다양한 영화 관련 장인(마스터)들을 초빙하여 강연을 열고 있는 마스터 클래스는 올해 그 화두로 평론가를 지목하고, 이에 세 명의 평론가들을 초빙하였다. 5월 3일 강연을 펼치는 프랑스의 레이몽 벨루와 5월 4일 각각 강연을 하는 미국의 리처드 포튼과 호주의 에이드리언 마틴은 모두 영화 잡지의 편집장을 맞고 있으며, 유명한 평론가들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강연 형태가 토론 포맷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해외 평론가들과의 담론 교류는 매우 유익하다. 또한 이 강연에서 만나게 될 평론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영화학도들과의 심심치 않은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도 매우 뜻 깊다.


이상으로 필자의 개괄적인 영화제 일정 소개를 마칠까한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영화제 관람 계획을 미리 짜지 않았다.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좋으나, 너무 욕심만 앞선 나머지 체력적인 안배를 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다간 자칫 컨디션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술 약속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다음날 오전 스케줄은 공치는 게 다반사이다.) 그 때 그 때, 적당히 상황에 맞게 계획을 조정하는 일도 영화제에선 필요하다. 욕심만 너무 앞서 영화만 꾸역꾸역 보다가는 이를 채 소화 시키지 못하고 다 토해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또한 너무 영화를 방기하고 즐기는 영화제는 영화제의 기존적인 취지를 모르는 의미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영화에 미친 환자들이여, 때론 적당히 즐기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선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많이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또한 사람을 만나고 흥청망청 취하여 즐긴다고 마냥 즐거운 일만도 아니다. 이후에 당신에게 남겨진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자. 이로써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이 가득한 이 사전 안내서를 마친다. 비록 이 취향에 동의할 분이 많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의 이 여행 계획서에서 여행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느껴졌기를 바란다. 이 계획서는 내 취향에 대한 호소문이 아니라, 영화제를 기대하는 어느 영화 애호 환자의 비교적 소극적인 간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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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umorzoa.tistory.com BlogIcon 유머조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보러가야 겠어요..

    2009.04.30 11:59 신고
  2. 헐크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주에 3년째 살고 있습니다.
    회사내 동아리 게시판에 전주를 홍보하기 위해 옮겨가겠습니다.
    혹 옮겨 가는것이 불편하시면 삭제하겠습니다.
    미리 허락을 받는게 순서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 그냥 퍼감니다.

    2009.04.30 13:39
  3. 지연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월요일에 떠납니다. 사실 처음 영화제에 참석하는거라 어떻게 일정을 짜야 하는지 몰라 이리저리 검색하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정말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에 식견이 전혀 없는 관계로 어떤 영화가 좋은지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해답이 없네요.. 혹시 4일 5일 추천작 있으신가요?^^ 5일은 거의 매진이라 현장발권밖에 안 될듯 합니다..ㅠㅠ

    2009.05.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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