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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누나가 돌아왔다! (4)


누나가 돌아왔다. 한겨울 혹한속에 눈과 바람을 뚫고 누나가 돌아왔다.


"누나! 역시 누나는 멋있어! 이 겨울을 이겨내다니 말이야."
"넌 틀렸어. 내가 이겨낸 건 이까짓 겨울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이야."
몇 년만에 돌아온 누나는,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이기고 돌아온 누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형들은 다 어디간거야? "
누나는 내 말에 잠깐, 하지만 골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형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졌어.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독히 외로웠어."
"그래도 난 상관없어. 어짜피 보고싶었던 건 누나였으니까..."
그리곤 내게 아줌마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지난 여름동안 난 행복했었고, 지금 여기에 올 수 있었던거야."
"하여튼 누나가 다시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해. 정말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임순례 감독이 돌아왔다.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그 긴 시간의 기다림만큼의 대가를 충분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으로 보답했다. 데뷔작 <세친구>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여섯개의 시선>과 프로듀서로 활약했던 <미소>까지 한번도 흥행의 맛을 보지 못했던 그녀는 이번에는 대중에게도 반드시 통할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제 그녀의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못봐서 입소문을 내고 재상영을 요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확신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씁쓸하다. 나만 좋아해야 하는 사람을 꼭 누군가에게도 허락해야 하는 것처럼.

실업계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도, 취업도 하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세친구>(1996)는 김기덕, 홍상수의 데뷔작만큼 특별하고도 주목해야할 작품이다. 적어도 내게는. 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기껏해야 1년에 한두편의 영화를 보는 아직 영화에 눈을 뜨지 못했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이 된 난 우연한 기회가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채 막막한 인생을 살아가는 세명의 소년의 이야기였는데, 난 그들의 연대를 보며 무수히도 많이 울었던것 같다. 특히 선임병의 폭력으로 고질적으로 문제가 있던 귀를 다쳐 의가제대를 하고 다시 돌아온 무소속, 그를 반갑게 마주하고 큰소리치며 달려가는 삼겹과 섬세.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무소속의 표정을 보며 미용사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정체성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앓고 고민하던 섬세의 방에 나타나 '나 머리 자를때 되지 않았냐?"하며 그를 위로하는 무소속. 그 두 장면뿐 아니라 이 영화에는 신파도 아닌데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많다. 아무것도 잘하지 못했던 스무살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볼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특히나 군 입대를 앞두고 이 영화를 보았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그리고 5년이 지난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를 서울 시내의 한 극장에서 보았다. 역시 비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였고, 전작처럼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세친구>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작품또한 굉장히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을것처럼 보였던 임순례의 복귀작인데다, 현실은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 힘든 현실 속에서 가끔은 배신하고 떠나가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 노래 또한 울림이 컸다. 엔딩에서 인희가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면 '마리아'를 부르는 한나보다 더 사랑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단편 <그녀의 무게>(2003)을 거처 <우생순>(2007)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소중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놓았다. 그녀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솔직히 전적으로 이번 새작품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 영화를 풀어놓기 전에 집고 넘어가고 싶다. <우생순>은 충무로 상업작가인 나현이 시나리오를 썼다. 그 시나리오를 보고 마치 내가 쓴 것과같은 느낌을 감독은 받았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영화는 상업적 냄새가 짙게 난다. 전개는 드라마틱하며 중간중간 재치있는 유머와 맛깔스러운 대사가 빛을 발하지만 이 작품이 임순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왠지 어색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전 작품보다 임순례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큰 맹점이다.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뿐 아니라 신예 민지까지 모든 연기자들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황기석의 촬영 또한 좋지만 임순례 특유의 뭔가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아쉬웠던 점.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영화를 옹호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아쉬워하는 점보다 훨씬 많지만 몇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비주류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

우선 그녀가 항시 이야기했던 '비주류'애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다. 이것은 일반 상업영화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소재이고 인물이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궁상떠는 영화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순례는 데뷔작부터 계속 그들의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실업계를 졸업한 아이들(<세친구>,<그녀의 무게>), 밤무대를 전전하는 무명 밴드<와이키키 브라더스>과 올림픽에서는 환영받지만 평소 실업팀 경기에는 관중조차 구경하기 힘든 여자 핸드볼 선수들<우생순>의 이야기까지 한결같았다. 꾸준히 이야기 면에서 한우물을 팔 수 있다는 것은 감독 자신에게 자신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를 계속해서 신뢰할 수 있는 이유이다. 단편이나 독립영화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실제적으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될 수 있음을 임순례는 알고 있는듯하다.



여성에 의한 여성에 관한 영화

더불어 여성감독이 버티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 한국영화계에서 임순례는 벌써 세번째 장편을 만들어냈다. 이정향, 정재은, 방은진, 박찬옥 등 인상적인 데뷔작을 만들어낸 감독이 어려명 되지만 세편을 만든 감독은 드물다. 물론 이 문제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임순례는 현재 이 시점에서 여성감독의 대모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무게>에서부터 여주인공을 전적으로 내세워 여성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갑작스럽긴 했지만 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을 보며 임순례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햇었다. 인희의 노래하는 모습은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녀를 주인공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우생순>에선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진실되고 솔직한 모습들이 영화 곳곳에 나타나 있다. 남자감독이 생각하지 못하는 여선수의 생리부분이라든지, 아이키우기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생생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세 여주인공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감독의 연출력이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감독의 기대에 부흥한 말이 필요없는 배우들의 연기도 발군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이나 그외 다른 남성연기자들의 캐릭터가 전형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동안 영화속에서 잘 볼수 없었던 여성들의 진솔한 모습, 특히 비주류 핸드볼 선수들, 거기다 아줌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최고의 순간을 담은 카메라


결론적으로 최고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카메라는 그녀들의 생생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담아낸다. 은메달을 따고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면 관심에서 벗어날 그들이지만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흘리는 땀한방울과 외치는 화이팅 소리는 심금을 우리게 한다. 이때 카메라는 다른 스포츠영화처럼 역동적으로 다가서려하지 않는다. 그 점이 영화를 더 돋보이게 하는 부분인데 오히려 카메라는 인물들을 가까이 접근해서 잠깐 멈추어 버린다. 이것은 결과야 어떻게 되었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얼마나 그들에게 있어서나,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생순>에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 촬영부분인지도 모른다.



네가 기다린 사람은 나였잖아

이제 나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내 놓아야 할 임순례에 대한 사랑은 괴롭지만 그래도 슬프지 않다. 대중의 사랑을 안고 얼마뒤면 다시 우리 곁을 떠나겠지만 그를 보내고 난 후의 다시 올때까지의 또다른 긴기다림이 때로는 즐거울 수도 있다느 것을 알게 해줄 것이다. 더불어 이제는 당당히 자신이 왔다고 말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네가 기다린 사람은 형들도, 누나들도 아닌 나였잖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ㅎㅎㅎ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글씨체가?? 이쁜 글씨체네요 :)

    2008.01.10 22:00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ruewriter BlogIcon 말씀하시면.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이 리뷰 임순례감독이 보시면 매우 기분좋아하실것 같아요 ㅎㅎ
    네오이마쥬는 항상 눈팅을 했는데 앞으로 자주오겠습니다..ㅎㅎ (홈페이지는 neoimage.com인가요??)

    2008.01.16 01:18
    •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저희 홈페이지는 neoimages.co.kr 입니다. 이 공식블로그 보다 더 많은 글이 있으니 종종 뵙도록 해요. 좋은 글 있으면 올려주시고요...^^

      2008.01.16 11: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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