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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6 [할매꽃] 세상을 깨우는 한 사람의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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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김미례 감독의 [노가다](2005)와 문정현 감독의 [할매꽃](2007)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식상한 다큐멘터리(그러니까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다큐나 시사다큐)보다도 한걸음 앞서 다른 지점에 있다고 감히 평가한다.

[노가다]와 [할매꽃]은 한 사람에서 시작된다. 그것의 처음은 감독 자신이고, 그 다음은 감독의 지인이다. [노가다]는 한평생을 ‘노가다’로 살아오신 김미례 감독의 아버지에서 출발하고, [할매꽃]은 임종을 앞둔 문정현 감독의 외할머니에서 출발한다. 이 두 영화는 개인에서 출발해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감독과 관객들의 현재에 다다른다.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어쩌면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낸, 그리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얽힌 개인의 자취를 균형을 잃지 않고 전달하려는 감독이 보이는 영화. 그것이 갖는 호소력과 전달력이 이 영화들의 빛나는 성과이자 가치이다.


사적인 기록의 시작

영상매체의 과도한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영상으로 사적인 일들을 더욱 쉽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기능은 놀랄 만큼 훌륭해지고, 휴대폰에 부착된 카메라는 한 인간을 온 국민에게 조롱받게 할 만한 것들을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UCC의 붐이 일고 있는 요즘, 영상의 기록은 전혀 특이할 만한 일이 아니다. 거대 자본 없이 카메라만 달랑 들고 작업하는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자기의 개인사를 조망하는 일은 손쉬워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지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고, 그것은 세상을 깨울만한 큰 이야기를 가져왔다.

지하철에서 사돈과 마주친 아버지는 딸이 창피해 할까봐 옆 칸으로 숨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미례 감독은 ‘노가다’인 아버지의 사회적 위치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 건설현장을 찾아다녔고 그들이 처한 현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이상적인 모델은 없을까 고민하다 이웃나라의 ‘노가다’들을 만나러 일본에도 다녀왔다. 그렇게 영화 [노가다]는 만들어졌고 일제식민시대 때부터 계속되어온 산업사회가 가져온 구조적 모순을 밝히고 있다.

문정현 감독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병석에 누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외할머니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카메라를 들고 어머니의 고향을 찾은 문정현 감독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듯이 침묵하고 있는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희생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좌익이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가족들의 희생의 자취를 따라 그는 삼촌을 찾아 일본에 다녀오고, 북한에서 살고 있다는 이모의 소식도 처음 듣게 된다.


한국 근대 미시사를 다룬 영화

이 두 영화의 구조는 미시사의 연구형태와 비슷하다.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저작 『치즈와 구더기』의 출현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시사는 “원자와도 같이 미세한 개별 사건에 관한 연구”(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를 목표로 한다.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작은 것의 역사’ 혹은 ‘작은 것을 통해 보는 역사’가 될 것이다. [노가다]와 [할매꽃]은 개인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통찰하고 있다. [할매꽃]의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내가 받은 이념 교육과 상반돼서 혼란스러웠다.”는 감상을 남겼고, 문정현 감독 또한 영화 안에서 반공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 교육을 회상한다. [노가다]를 본 관객 중 한명은 ‘노가다’의 현실이 “불편하고 놀라웠다”고 고백한다. 도시 곳곳에 들개처럼 포진해있는 노숙자들의 대다수가 ‘노가다’를 생성한 구조의 희생양이었음을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역사책에 큰 글씨로 새겨진 역사가 아닌 이면의 역사를 우리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어떤 것은 말할 수 없었고(국가보안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가다]와 [할매꽃]은 그런 역사를 짚어내고 있다.

영화와 역사의 관계는 공고하다. 사실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영화 혹은 영상은 진실로 포장되기도 하고 후대의 사람들은 영상물로 역사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역사를 정확하고 신중하게 다루려고 한 수많은 영화들의 고민과 함께, 학자들이나 교육자들이 미뤄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가다]와 [할매꽃]의 역사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


영화 [노가다]는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김미례 감독은 “건설현장의 중층다단계 구조가 지금은 사회 노동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니, 이 작품의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노가다]를 보고 난생 처음으로 ‘노가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놀랍도록 흡사한 일본과 한국의 ‘노가다’들의 현실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치고 “노동자에게는 국경이 없다”고 한 마르크스의 선언을 떠오르게도 한다. 원청 사장들을 찾아가 조용하지만 무섭게 꾸짖던 일본 노가다 할아버지의 선한 웃음에서, 소주잔을 들고 쓴 입맛을 다시는 김미례 감독의 아버지의 앙상한 얼굴에서 그들 세대가 겪은 고난을 곱씹으며 우리가 바꿔야할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힘이 영화 [노가다]에 있다.

영화 [할매꽃]에서 문정현 감독은 마지막 순간, 망설인다. 그는 외할머니의 오빠를 총살한 풍동에 살던 김용식 할아버지의 자녀이자, 어머니의 오랜 친구인 숙자 아주머니를 만나러 가지 못한다. 양반과 상놈이 나뉘어 살던 동네가 있었고, 해방 후 동네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졌고, 전쟁이 나자 좌익은 우익을, 우익은 좌익을 해쳐야 했고, 종전 후 좌익은 죽거나 침묵해야 했던 세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의 역사와 앙금들은 현재형으로 관객에게 놀랍게 다가온다. 문정현 감독의 어머니는 말한다. “너는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려고 하지만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다보니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은 없는 것 같어. 사람에게는 모순이라는 것이 있자녀.”

누군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그 세대가 모두 사라지면, 그런 문제들도 함께 소멸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비극도, ‘노가다’로 평생을 보낸 우리 아버지의 사연도, 평생을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우리 할머니의 사연도 그들이 가고 나면 끝이 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없이는 우리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역사는 쉽게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 [노가다]와 [할매꽃]은 말하고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culturemon.tistory.com/ BlogIcon 몬스터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2009.04.0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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