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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9.14 [여름궁전] 사랑과 역사가 남긴 흉터
2007.09.14


[여름궁전]은 사랑과 역사의 공통점을 말한다. 사랑과 역사는 늘 흉터를 남긴다. 누구나 그 흉터를 가지고 있고, 잊혀질 만하면 다시 발견한다. 사랑이나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건 스스로 그 흉터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역사가 되풀이 되듯, 사랑도 기억을 통해서 재생되고 되풀이 된다. 하지만 사랑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보험처리 되지 않는 인간의 사랑은 깨지고 나면 늘 복구 불능 상태가 된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if를 붙일 수 없는 것처럼, 지나간 것들은 반성과 후회만 가능할 뿐 회복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역사와 사랑 앞에 선 [여름궁전]의 인물들은 한숨 쉬듯 말한다. “이제 어쩌지?”. 이 말은 80년대를 정리하지 못한 한 세대의 회한이다. 그들은 지금 이 시대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80년대를 정리해야할 주체다. 로우 예는 영상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궁전]은 천안문 사태가 있었던 1989년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다. 로우 예는 직접적으로 천안문이 사태를 고발하거나 고증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아스라한 풍경으로 남고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중국의 6세대 감독인 로우 예는 문화혁명세대와는 다르게 역사를 풍경삼아 육체에 아로새겨진 상흔을 풀어낸다.

이 때 그는 역사에 무게감을 더하기 보다는, 격변기를 겪었던 자신들의 세대가 가지고 있던 감정을 풀어내는 것에 주력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혼돈 그 자체다. 시종일관 카메라는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거나 화면은 흐리멍텅하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있었던 80년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다. 중국에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일었고, 천안문 사태는 자유를 갈망하는 학생들이 광장으로 모였던 사건으로 기록된다.

그들은 자유를 말하고 있었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와, 자유를 알지 못하는 자들로 양분되었다. 누구나 히피처럼 담배를 물고, 눈이 맞으면 한 침대에 섞여 섹스를 즐겼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육체역시 서로 부대끼고 다투면서 서로의 정체성을 묻기에 바빴다. [여름궁전]은 기억하고 싶은 사랑이야기면서 동시에 기억할수록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한 로맨스 영화다. 로우 예는 그렇게 [여름궁전]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 영화의 서사는 플롯과 스토리가 나란히 진행된다. 플래시백과 같은 시간을 점핑하거나 건너뛰는 장치는 없다. 이야기는 시간을 타고 앞으로 흘러간다. 그 시절 누구는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식으로 정리되는 영화. 그건 일종의 흐름이다. 그 시절 누구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었고, 세상을 뒤바꾸어 놓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또한 그 만큼 시간에 끌려가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여름궁전]의 인물들은 사랑과 진로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순간, 아닐지도 모른다며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반문한다. 설령 사랑에 빠지더라도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애써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사랑받는 것도 벅찬 시대에 상처 주는 건 더 몹쓸짓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혹은 ‘우리가 진정 사랑했을 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름궁전]의 복잡한 로맨스는 정리가 되지 않는다. 인문들도 다양하게 등장할뿐더러, 서로가 엇갈리는 관계가 계속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들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당황한다.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으며 어디에 위치해 있는 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래서 다시금 질문이 되돌아온다. “이제 어쩌지?”

[여름궁전]은 너무 빠르게 도착한 80년대를 다룬 중국영화지만, 그만큼이나 아름답게 다가오는 영화다. 80년대의 후폭풍을 겪은 로우 예 감독은 스스로 그 감정을 대변하듯이 영화를 만들었다. 사랑은 종결되지 않고 육신에 새겨진 흉터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슬퍼하고 있다.

이와 동일하게 중국대륙역시 역사를 새롭게 써야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고 있다. 로우 예의 영화는 ‘비상’이 아니라 ‘추락’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여름궁전]에서 나타난 한 학생의 자살이 추락의 이미지이듯, [슈주]의 인물들도 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날지 못했고, 날개를 펴지 못했다. 그래서 늘 로우 예의 카메라는 흔들린다. 언제쯤 로우 예의 카메라가 안정된 기류를 타고 날 수 있을 까?

그의 카메라가 흔들리고 영상이 흐려질수록 우리들의 마음도 흐려진다. 물론 지금 이 순간 로우 예의 화법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 화법이 전해주는 세상의 슬픈 이야기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 까? ... 로우 예는 지금도 역사가 남긴 흉터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 상처가 아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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