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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8 미이케 다카시 - 경계선 밖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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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시네바캉스 : 미이케 다카시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 <표류가>,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태양의 상처>, <46억년의 사랑>

미이케 다카시는 1991년 이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이미 70여 편의 영화를 완성한 다작 감독이다. 그는 장르를 이종배합 하고, 영화 문법과 고루한 영화적 상식을 타파하면서 말 그대로 영화를 토해내고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이야기 구조에서 경계를 허문다. 그의 이야기는 처음과 끝의 아귀가 맞지 않다. 그걸 일종의 반전이라고 한다면 다카시의 영화에는 반전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데드 오브 얼라이브>의 초반부는 강렬하다. 피가 철철 넘치는 느와르로 마초적인 냄새가 난다. 중국계 마피아 류이치 일당의 잔혹한 일상과, 그것을 좇는 경찰들의 이야기가 후반부 막판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 피나는 사투 끝에 살아남은 경찰 한 명과 류이치 일당 세 명은 황야의 벌판에서 대결을 벌인다. 이 때 이야기 구조는 초반부의 느와르에서 서부극으로 옮겨가는 가 싶더니, 끝내 만화 <드래곤 볼>에서나 볼법한 기막힌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다카시는 이야기를 뒤엎어 관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가 당황하는 관객을 상상하면서 묘한 쾌락을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은 남성관이 뚜렷하다. <데드 오브 얼라이브>는 야쿠자들의 혈투를 다루고 있으며, <표류가>는 일본 내 불법체류자들의 이야기다. <극도공포대극장 우두>역시 일본 야쿠자들이 주인공이며 <태양의 상처>는 아내와 딸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와 증오를 담고 있다. <46억년의 사랑>은 교도소 내 의문의 살인을 다룬다. 영화 속 남성들은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적과 맞선다는 특징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가 직조한 세상은 손 내밀어도 손잡아 주지 않는 곳이다. 영화 속 남자들은 세상이 모두를 동등하게 보호해준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약자는 살아남기 위해 독기를 품고 강해져야 한다. <데드 오브 얼라이브>는 친구를 믿지 못하는 남자들이 등장하고, <태양의 상처>는 법이 모든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이런 영화 속 인물들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 속 법칙들은 확고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카시의 영화는 남성적이며 어둡다. 단 특이한 작품 중 하나는 <46억년의 사랑>이다.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나머지 작품들과 다르다. 더 특이한 건 이 영화가 하나의 사건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른 작품들처럼 중간 중간 해프닝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의 사건, 교도소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을 다룬다. 극도의 폐쇄성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들이 진중하게 깔리고, 대담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등장인물 중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보다 선이 가는 남성상을 볼 수 있다.

다케시의 '경계'는 인종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불법체류자의 판타지로 보이는 경쾌한 영화 <표류가>는 일본 내에 살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월드 시네마’를 통해 세계화 시대 속 일본의 좌표를 찍는다. 그의 영화들에는 일본 내 브라질인, 일본 내 중국인, 또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불평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내국인과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충돌할 때 폭력이 야기된다.

다카시의 작품이 ‘경계선’의 영화가 되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대립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섯 편의 영화에는 야쿠자와 경찰, 아이와 어른, 남성과 여성, 가해자와 피해자, 산 자와 죽은 자의 대차대조표가 형성된다. 대립을 통한 경계선의 생성은 이야기를 따라감에 있어서도 쉬운 길잡이 노릇을 해준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경계선 자체에 의문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카시의 또 다른 매력은 모호한 경계선. 일상의 부조리함이다.

<극도공포 대극장 우두>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를 묻는 황당한 영화다. 미이케 다카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정색하면서 귀신을 들려준다. <극도공포 대극장 우두>는 각 장면마다 우스운 해프닝이나 멘트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호러 영화에 가깝다. 미나미는 조직의 중간 보스인 오자키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를 죽이러 가는 길에 자동차 사고가 나고 오자키는 죽는다. 이제 시체만 처리하면 되는데, 미나미가 한 눈 판 사이 오자키의 시체는 사라진다. 분명 죽은 시체일 뿐인데, 곳곳에서 오자키의 흔적이 발견된다. 심지어 뜬금 없이 한 여자가 나타나 자기가 오자키라고 우긴다. 이 영화의 백미인 황당한 결말을 두고, 프로이트를 좋아할 정신분석학자들이 무슨 소리를 할지 기대가 될 정도이니, 다케시의 팬이라면 필견의 영화가 아닐까 싶다.

<태양의 상처>는 폭력, 살인, 유괴, 아동범죄라는 이 끔찍한 상황들 집약되어 있다. 어느 날 가타야마는 귀가 길에 노숙자를 폭행하던 중학생들과 다툼을 벌인다. 이 일을 계기로 중학생들 중 우두머리인 카미키는 가타야마에게 원한을 품고 그의 어린 딸을 유괴 살해한다. 사회의 안정망이라고 믿었던 법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법이 죄를 묻지 않고, 처벌을 하지 않는다. 그건 분명 부조리고 아이러니다. 가해자인 카미키는 청소년 보호법에 의거해 소년원에 가게 되고 1년 8개월 만에 풀려난다. 가타야마의 아내는 아이가 죽은 직후 충격으로 자살하고 가타야마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태양의 상처>는 폭력의 주체가 아이들이 될 때, 그리고 그것을 사회가 막지 못할 때 벌어지는 무서운 현상을 폭로하고 있다. 13살 이하는 살인을 해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미성년자는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서 경미한 벌을 받는다. 즉 13살 이하는 정당하게 살인할 권리를 법적으로 허락받는다.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도 끔찍한 상상이다. <태양의 상처>는 청소년 총기사건을 다룬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와 소재면에서 흡사하다. 구스 반 산트가 죄의 원인에 대해서 침묵했다면 다케시는 범죄의 원인을 묻는다. 허술한 법 체계와, 인터넷을 통해서 쉽사리 총과 칼을 구할 수 있는 시대. 영화는 아이들을 보호하려고만 하는 그릇된 사회 체계와 보호 프로그램에 의문을 던진다. 더 나아가 인간의 광기와 사악함은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걸 극단의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고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는 부조리에서 시작했던 이 영화는 참혹한 피를 보여주고서야 허망하게 끝이 난다.

다카시의 영화는 노골적이다. 세상이 추잡하고 비루하더라도 미화시키지 않는다.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이더라도 감추지 않는다. 거짓이 미화되거나, 진실이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대로 드러남. 미이케 다카시의 매력은 현실을 빌려와 상상력으로 변환시켜 그 상상력 안에서 돌려 말하지 않는 솔직함에 있다. 아름다운 걸 원한다면 꽃밭으로 가야겠지만, 때로는 솔직함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괴팍하나 거짓을 미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워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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