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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슬러] R.O.H – RING OF THE HELL

필진 리뷰 2009.03.31 09:14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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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본론만 말하겠어. 브록, 진실은 맞아. 내 인생은 그랬어. 굴곡의 연속이었지. 지난 3년 동안 잃은 건 레슬링, 가족, 그리고 황폐해진 내 영혼이었어.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난 새 인생을 되찾았다는 거야. 난 해냈고 지금 여기 사각의 링 한가운데 서 있어. 매일 기도한 덕분이지. 다시 링에 복귀하게 해달라고, 가족에게 존경 받는 내가 되게 해 달라고 반복했어. 자식들을 제대로 못 가르친 죄, 맛있는 음식 사주지 못한 죄, 예쁜 옷 사 입히지 못한 죄, 이제 다 갚아야 할 차례야. 브록, 너의 허리에 찬 챔피언 벨트 반드시 가져가겠어. 난 이제부터 승리에 중독되어 살 거야. 진정한 라티노 히트의 힘을 보여 주겠어"

위의 대사는 지금은 고인이 된 프로레슬러 에디 게레로가 지난 2004년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할 당시의 대립과정에서 했던 말이다. 당연히 TV쇼를 통해 전파를 탄 대사였고 에디 게레로는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마침내 정상에 도전하게 된 의지의 레슬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셈이었다. 사전에 승부를 결정짓고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대립과정을 거쳐 경기를 갖게 되는 프로레슬링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반쯤은 질시와 경멸을 섞어 말하듯이 프로레슬링은 쇼다. 하지만 쇼라고 해서 여기에 그 어떤 진심도 들어있지 않을 것이라 단정짓는 것은 그야말로 무지와 무례의 소산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때때로 과장된 제스처로 잔뜩 부풀려진 가상의 캐릭터를 벗어 던지고 본인 스스로를 연기하기도 한다. 바로 이때가 커다란 근육 속에 꼭꼭 감춰 두었던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흔치 않은 순간이다. 허구이긴 하되 만들고 행하는 이의 사상과 인생이 녹아있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들이 그러하듯이 프로레슬링의 링 위에도 진정성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돌보지 못한 죄를 갚겠다는 저 말은 사전 콘티에 의한 연기임과 동시에 에디 게레로 본인의 고해성사이기도 했다. 그는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낸 사내였다. 약물남용으로 방황의 시기를 보냈고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다. 그리고 힘겹게 돌아온 링 위에 서서 가족을 위해 싸우겠노라며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여기서 진실과 허구를 논하는 것은 더 이상 불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링 위에는 그저 고통을 딛고 한결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사내가 서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영화 [더 레슬러]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에디 게레로에 대한 기억을 먼저 떠올린 것은 프로레슬링이라는 소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키 루크에게서 자기 분야의 정상에 도전하던 에디 게레로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에디 게레로가 그러했듯, 미키 루크도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냈다. 에디 게레로만큼이나, 또 영화 속 랜디 로빈슨만큼이나 실제의 미키 루크도 굴곡이 심한 인생을 살아왔다. 링 위의 에디 게레로에게 그러했듯 여기에도 더 이상의 구분은 불필요할 지경이다. 미키 루크가 랜디 로빈슨이고, 랜디 로빈슨이 곧 미키 루크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때때로 다큐멘터리처럼 랜디의 뒤를 따라 붙는데 이로 인해 [더 레슬러]라는 영화가 정말로 미키 루크라는 개인에 대한 기록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화려했지만 방탕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인생을 개선시키려 노력하는 하류 인생의 이야기가 어디 [더 레슬러] 하나뿐이랴. 그러나 젊은 날의 수려한 외모를 잃어버린 미키 루크가 등장해 거친 호흡을 내뿜는 순간, 그 한숨은 마치 주술처럼 화면을 사로 잡는다. 단지 자신의 인생역정과 꼭 닮은 적역을 맡아서 연기하기가 수월해 보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정말로 스크린 안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낸다. 어차피 영화가 제공하는 랜디 로빈슨에 대한 정보란 지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미키 루크의 잔뜩 주름진 얼굴과 탁한 목소리는 영화의 러닝타임 저 너머에 쌓여 있을 한 남자의 수십 년에 달하는 시간을 가늠케 한다.

오프닝과 함께 흘러나오는 전형적인 1980년대 풍의 신나는 로큰롤이 멈추고 나면 화려했던 랜디의 삶도 바닥으로 내팽개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작될 악몽의 1990년대. 커트 코베인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던 랜디의 탄식처럼 1990년대는 음악마저도 우울했다. 영화 속 랜디의 삶도, 실제 미키 루크의 삶도 그렇게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영화가 랜디의 1990년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드러내고 보여주기 보다는 적당히 감추고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읽어내게 한다. 랜디의 순탄치 못한 현재를 보여주는 것은 격렬했던 경기 후 허름한 락커룸에서 지폐 몇 장을 손에 쥔 채로 앉아있는 그의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플레이스테이션의 3D 게임이 유행하는 시대에 여전히 1980년대의 단순한 프로레슬링 게임을 즐기는 취향만으로도 그의 낙후성은 증명된다. 짧은 전성기의 기억으로 이후의 남루한 삶을 견뎌내는 남자. 그는 한 마디로 자신의 시간대를 놓쳐버린 사내이다. 1980년대의 록음악에 자신의 추억을 묻고, 오래된 비디오 게임의 2D 캐릭터에서 전성기의 흔적을 찾으며, 나름의 화려한 복귀전도 REMATCH라는 진부한 단어 속에 파묻혀 버릴 수 밖에 없는 사내. 그런 의미에서 랜디가 그토록 싫어하던 샐러드 판매일을 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을 주목할 만 하다. 그저 흘러간 올드 스타로서의 자격지심에 남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서 마다 했던 일이지만, 이 일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 랜디에게는 과거에 대전했던 누군가와의 REMATCH가 아니라 새로운 상대와의 NEW MATCH가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샐러드바로 연결된 통로는 경기장의 락커룸에서 링으로 연결된 통로와도 흡사해 보인다.

샐러드바를 향해 걸어가는 랜디의 귀에 마치 환청처럼 팬들의 환호소리가 들리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에게는 덩치 좋고 맘씨 좋은 샐러드 판매원에 착한 딸의 아버지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긴 셈이니까. 그러나 [더 레슬러]가 어느 하류 인생의 인간승리 드라마에 모든 것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미키 루크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이기도 하다. 외형적으로는 한 물간 운동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정미담에 가까워 보일지 몰라도 [더 레슬러]가 다루는 주제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이전 작 [레퀴엠]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프로레슬링의 이면은 여느 스포츠 못지 않게 무시무시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사전에 승부를 정해 놓았다 해서 그 어떤 고통도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되려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프로레슬링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스포츠이다. 자신의 실력이 월등하다면 한대도 맞지 않고 상대를 K.O 시킬 수 있는 다른 격투 종목과 달리, 프로레슬링은 한대도 맞지 않고 이긴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종목이다. 적당히 요령껏 살살 치고 받을 수야 있겠지만 이리 저리 들어 매치고, 몸을 날리며 주먹을 교환하는데 통증이 전혀 없을 리가 만무하다. 거기다 메인 매치라면 더욱 심할 수 밖에.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랜디 로빈슨의 삶뿐만 아니라 프로레슬링의 세계도 처절하리만치 진실하고 정직한 시선으로 담아 낸다. 호러영화를 방불케 하는, 피가 튀고 살이 찢겨 나가는 하드코어매치의 처절한 광경을 보라. 그리고 랜디가 자신의 피니쉬인 램잼을 시전할 때 귓전을 울리는 그 강력한 효과음은 어떤가. 링을 거의 한편의 지옥도처럼 표현한다는 점에서 [더 레슬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를 떠올리게 한다.

또 나이든 운동선수의 복귀담이라는 점에서 [록키 발보아]를, 운동선수와 그의 자식과의 유대관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는 존 보이트 주연의 [챔프]를 각각 연상시킨다. 그러나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세 갈래 갈림길에서 그 어느 쪽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랜디의 NEW MATCH는 여느 프로레슬링 시합과 다르게 사전 콘티가 주어지지 않기에 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시합도중이라도 상대 선수 및 심판과의 의사소통이 수시로 가능한 링의 세계와 달리 링 밖의 세계는 너무도 냉정하다. 그곳에는 REMATCH가 없다, 두 번째 기회도 없다. 어느 누구도 랜디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준다면 멋진 시합을 보여줄 수 있으련만, 흘러가버린, 혹은 놓쳐버린 기회는 매정하게 작별을 고할 따름이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이마에 철심을 때려 박지 않아도, 가시철선이 감긴 방망이를 휘둘러 대지 않아도 소리 없이 가슴을 할퀴어대는 시린 듯한 냉엄함이 존재하는 곳. [레퀴엠]의 남녀 주인공이 금단현상을 못 이기고 순간의 쾌감을 쫓아 다시 마약을 찾는 것처럼 랜디가 다시 링으로 돌아가는 이유 역시 마약과도 같은 팬들의 환호와 육신의 통증으로 현실 세계에서 입은 마음의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우기 위해서이다. 다른 스포츠 영웅들과 다르게 랜디가 링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궁색하되 한결 현실적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링 위에서, 랜디는 캐시디가 서 있던 대기실을 바라본다. 복도의 저 끝에서 작은 불빛을 내고 있는 대기실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랜디가 통로를 지나 환청을 들으며, 샐러드바로 나아가던 그 장면과 댓구를 이루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빛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빛은 너무도 먼 곳에 있다. 손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머나먼 곳에. NEW MATCH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던 사내는 결국 REMATCH를 위해 링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랜디는 자신의 피니쉬인 램잼을 시전하기 위해 탑 로프에 오른다. 클로즈업된 랜디의 얼굴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에 잔뜩 격앙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비탄에 잠긴 것 같기도 하다. 프로레슬링을 본 사람이라면 공중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시전자 본인도 충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과격한 기술이다. 한 마디로 상대방뿐 아니라 나 자신의 고통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프로레슬링의 특성이 가장 도드라지는 기술이 바로 공중기인 것이다. 때마침 랜디의 램잼도 공중기이다. 링 바닥에 누운 상대를 향해 돌진하기에 그것은 곧 비상이면서 추락이기도 하다. 육신의 고통으로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이 사내의 처절한 몸부림은 마치 도돌이표처럼 링 주변을 돌며 반복된다. 비상을 꿈꿨으나 다시 바닥에 처박힐 수 밖에 없는, 이 끊어낼 수 없는 순환의 고리야말로 바로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보여주고자 한 진흙탕 같은 삶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까.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든, 생의 진창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내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감동이라는 진부한 수사마저 넘어선 어떤 숭고함이다. 링의 안과 밖에서, 또 스크린의 안과 바깥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장엄한 스펙터클을 제공해준 그들에게 박수를. 그리고 다시 돌아온 미키 루크에게 경배를.



P.S : 영화 속에 등장하는 프로레슬링 단체는 다 실존하는 단체들이다. C.Z.W는 하드코어매치와 같은 과격한 경기를 주로 보여주는 인디 단체이며 랜디 대 아야툴라의 시합을 주관했던 R.O.H는 현재 미국 내 프로레슬링 단체 중 서열 3위에 해당하는 곳이다. 풀네임은 Ring Of Ho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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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tophead.blogspot.com BlogIcon stophead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2009년이 9개월이나 남았지만 이 영화 정말 올해 본 영화 중에 최고가 될 것 같습니다. 여담으로..그 극중에 하드코어한 경기를 끝내고 랜디가 락커룸에 돌아왔을 때 동료 프로레슬러(실제 프로레슬러들)들이 박수를 쳐준 건 각본에 없던 장면이라고 하죠..미키 루크의 혼을 담은 연기에 감동을 받은 그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미키 루크의 혼신을 담은 복귀 의지가 담겨 있는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 니콜라스 케이지가 원래는 랜디 역에 내정되어 있었다고 하는데(당연히 제작사의 요구..)..그도 훌륭한 배우지만 과연 그가 영화를 찍었다면 감동이 있었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영화의 감동을 되살려주신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2009.03.31 22:30
  2. Favicon of http://cyworld.com/gollum BlogIcon 골룸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인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식료품점으로 향하는 긴 계단의 환청과 댓구를 이룬다는 대기실(캐시디가 있던...)에 캐시디의 모습은 금새 보이질 않는데... 그렇게 링 밖에서는 누구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던 것이군요.

    2009.04.0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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