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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박찬욱, 그렇다.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드롬』 (이하 『비디오 드롬』)의 저자 박찬욱이 바로 그 박찬욱이다. [올드보이]로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을 수상한 직후 촬영한TV 광고에서 "나는 나를 뛰어넘었다"라고 말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영화 감독 박찬욱. 지금은 흥행과 작품,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빠른 속도로 거장이 되어가고 있는 영화 감독이지만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참패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는 <스크린>, <티비 저널>등의 잡지에 영화평을 게재하였었고 그렇게 써냈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편찬해내게 되니 그것이 바로 『비디오 드롬』인 것이다. 그러니까, 『박찬욱의 오마주』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개정증보판 대신, 굳이 시중에서 찾아 볼 수도 없는 『비디오 드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은 미래를 점칠 수 없었고 흥행에 실패한 데뷔작 한 편이 전부인, 초라한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던 어느 영화광 출신 연출자의 초짜 시절을 보다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다는 것. 훗날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게 될 영화감독으로서의 위용은 아직 싹을 틔우기 전이지만 미래의 명감독을 꿈꾸던 어느 열혈 영화광의 무한한 애정과 자양분, 그리고 그 출발점을 확인하기엔 더 없이 좋은 자료가 될 만한 책이다.


때는 1994년. 두 번째 작품의 연출 기회를 잡기 위해 애쓰던 어느 영화 감독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만약 박찬욱이 계속 필봉을 휘두르며 평론 작업만 했었더라도 그는 제법 유명한 평론가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야 한국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게 될 시기는 한참 늦춰졌을 터. 박찬욱이 펜 대신 카메라를 잡게 된 것은 분명 대한민국 영화계의 대단한 축복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들만큼은 아니더라도 평론집 또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우선 자신이 만든 영화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박찬욱의 글들은 대단히 재미있다. 그는 현학적인 문구들을 마구 남발해가며 자신의 지적 우월함을 뽐내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광다운 애정과 열정으로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글들을 뽑아내며 그 속에서 거의 문화탐식증이라 할만한 다양한 식성의 취향들을 풀어놓는다. 한마디로 오만하지 않되 충분한 깊이를 지녔고 그 속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넘쳐나는 글이었다. 그는 영화평이 지식인의 난해한 말장난이 아니라 애호가의 감성으로 충만한 지적 유희임을 자신의 글로 입증해냈었다. 리뷰의 대상으로 선정된 영화들이 영화사의 고전걸작뿐 아니라 당시에 모두 비디오로 출시된 작품들이고 아직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던 홍콩제 액션영화에도 당당히 비평의 한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시도를 했던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첩혈쌍웅] 뿐만 아니라 개봉 당시 처절한 실패를 겪어야 했던 [영웅본색3]에까지 예의 그 풍부한 문장력을 할애한 것으로 보면 그의 필력은 이미 너비와 깊이를 두루 겸비한 수준이었다. 킬링타임용으로 치부되곤 하는 할리우드 오락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샘 레이미 감독의 [다크맨]에서 그는 허구의 아이덴티티가 견뎌낼 수 있는 한계시간을 이야기 했었고 [빽 투 더 퓨쳐2]를 통해서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논했다. [첩혈쌍웅]의 그 과장된 총격전을 심한 건망증에 비유해서 이야기 할 때는 다소 건조한 다른 평론가의 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는 문학적 감수성까지 맛볼 수 있다. 별 넷 걸작, 별 둘 졸작, 하는 식의 단편적인 평가를 벗어나 박찬욱의 평론은 영화를 보는 다양한 시선과 영화관람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데 더 주력했다고 할 수 있겠다.


쓰여진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박찬욱의 문체는 여전히 신선하다. 이 책과 [달은 해가 꾸는 꿈], 그리고 [삼인조]. 박찬욱이라는 영화 감독이 어떻게 단련되어 왔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그가 겪은 실패들, 그가 선배들의 영화로부터 배운 것들.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 3부작, 그리고 개봉을 앞둔 [박쥐]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세계를 구성하는 근간에 대한 것들이 이 책에 실린 그의 평론과 앞선 두 편의 영화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국제영화제에서의 환호성만을 기억하기 보다 이렇게 지금까지의 행보를 찬찬히 되 집어 보는 일 또한 영화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 아닐까. 지금도 DVD를 돌려보고 인터넷에 영화평을 쓰고 있을 수많은 대한민국의 영화광들을 위하여,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90년대 영화광의 발명자로 떠오른 타란티노의 이야기만 읊어대지 말고 우리에게도 그 못지않은 영화광이 있었음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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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bcd68.tistory.com BlogIcon hee68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의 책에 나왔던 여러 영화를 애써 찾아봤었습니다. 제 입맛에 맞는 영화들이였죠. ㅋㅋ

    2009.04.22 09: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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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뷔페>는 당대를 대표하는 신사들이자 유명배우들이었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미셸 피콜리, 필립 느와레, 그리고 우고 토그나지가 실명을 내걸고 서로 다른 직업의 부유한 남성들로 분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집단에 속한 이들 네 남성은 유복한 중년의 삶을 지내고 있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삶을 정리하고 은밀한 별장에서 쾌락과 소비로 인해 죽음을 기다리는 모임을 가진다. 오랜 시간을 들여 엄청난 양의 재료를 준비하고 신선한 고기들을 구입하는 별장 속의 네 남자, 자신의 생계와 계급이 존재했던 파리라는 도시를 떠나 그들이 택한 마지막 여행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들에 기댄 것이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음식들과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며 수다를 떠는 남자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그랜드 뷔페'의 호화찬란한 만찬을 연상시킨다. 남성들은 최고급의 재료를 공수해 방대한 양의 음식으로 가득찬 식탁을 차려놓고 거나한 식사를 즐긴다. <그랜드 뷔페>의 초반, 네 남자가 별장으로 완전히 숨어들기 직전까지, 영화는 음식이라는 단어를 익히 알고 있는 기본적인 에너지의 수단으로만 설정한다.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을 것을 씹어 삼키는 필립이나, 그런 그가 배고프지 않도록 음식을 마련하는 필립의 유모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필립이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서는 순간, 그는 지금까지 꽤나 규칙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완전하게 붕괴시켜버릴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미셸을 비롯해 별장에 모인 네 남자는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고, 게걸스럽게 식탁 위를 청소한다.

자유분방한 성 생활을 즐겨온 파일럿 마르첼로에 의해, 별장의 '만찬'에는 여성들이 초대된다. 여성들은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지만, 한 번의 모임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풍족한 식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진저리친다. 끊임없이 음식을 위 속에 밀어 넣어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몸 져 누운 미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 창녀를 비롯한 두 여성이 별장을 떠나버리지만, 학교 선생인 안드레아는 네 남자의 마지막 파티에 동참하기로 마음먹는다. 안드레아가 연일 이어지는 무절제의 축제에 함께 하면서부터 네 남성의 식탁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 섹스까지 추가된다. <그랜드 뷔페>는 안드레아라는 여성의 등장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랜드 뷔페>는 부르주아 계급층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조롱의 탈을 쓴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쓸데없이 음식을 소비하며 임종을 맞기를 바라는 괴상망측한 게임을 하는 대상은 모두 번지르르한 계급을 소유한 대상들로,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역겨움을 남김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비판’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그랜드 뷔페>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생리학적 갈망이 녹아있다. 영화 속의 남성들은 풍만하고 살 진 몸매의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며 거침없는 섹스를 즐긴다. 맵시 있는 옷을 입은 날렵한 여자, 혹은 마른 여자 따위는 그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남성들은 품에 안기 버거울 정도로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안드레아에게 찬사와 아름다움의 미사여구를 보탠다.

네 남성들보다 체구가 거대한 안드레아는, 그들이 갈망하며 부러워하는 몸매, 즉 어머니의 이상형이다. 남성들은 안드레아를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그리고 걱정해주는 모성애와 같은 애정의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남자들은 안드레아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파스타를 그녀의 앞에 밀어놓고,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자신들의 앞에서 모조리 먹어치우기를 바란다. 네 남자의 기대와 호응에, 안드레아는 단 한 번도 괴로운 내색을 띈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녀는 남성들보다 훨씬 더 식욕의 쾌락을 즐기는 인물로 변해간다. 결국 안드레아는 남성들이 남긴 잉여 생산물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며 그들을 돌보는 완전한 에너지의 여성으로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노의 몫이었던 음식을 만드는 일에 안드레아는 관여하기 시작하고, 안드레아의 엉덩이로 반죽해 만든 ‘안드레아 파이’를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장면에 이르러 안드레아의 지위는 정상에 다다른다. 과식으로 인해, 혹은 기타의 사고로 인해 한두 명씩 죽어 나가는 광경을 마주하면서도 그녀는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별장에 처음 초대되었을 때 안드레아는 필립의 사랑이었지만, 그녀는 네 남자와 섹스를 나눈 기이한 관계를 유지한다. 외부와 차단된 별장 안의 삶은 결국 그들이 살던 파리의 삶에서 역행해 고대의 시기를 향해 달려 나간다. 모든 것을 어머니가 책임지고 보살피던 모계 사회 속 군주의 모습을 한 안드레아 앞에, 네 남성들은 하나 둘 씩 칭얼거리는 어린이로 변해간다.

마르첼로와 필립, 미셸, 그리고 우고 네 남자가 시작했던 게임의 승자는 결국 필립이 되고, 매우 건강이 악화된 필립을 위해 안드레아는 음식을 준비한다. 때마침 요리할 고기를 제공해주기 위해 정육점 차가 정원에 들어서고, 안드레아가 고기들을 받으러 간 사이 필립은 안드레아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는다. 안드레아의 가슴과 꼭 닮은 풍만한 두 덩이의 케익이 반쯤 없어졌을 때, 필립은 괴로운 표정으로 숨을 거둔다. 시간을 무시하고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 벌어진 부르주아 계층의 엄청난 판타지는 필립의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다. 영화는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배 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어야 했던 광기 넘치는 부유층의 후회와, 허약해진 남성들을 마지막까지 돌보아 주었던 안드레아의 모습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랜드 뷔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싶을 정도로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묘사한 풍자 코미디를 보여주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별장에서 살아남은 인물은 결국 안드레아 혼자라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안드레아를 살려둠으로써 또 다른 희망, 혹은 타락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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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창작 없는 예술가지"

[밤 그리고 도시(The Night and the City, 1950)]에서 해리는 영화의 주인공이요, 메리는 해리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지만 매번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해리에게 희생을 하는 인물이요, 아담은 그런 메리에게 애심을 품었다. 일을 저지르고 난 해리가 메리에게 5만 파운드를 요구하자 메리는 아담에게 돈을 빌리러 가서 해리의 '예술성'을 핑계삼는다. 아담은 메리의 부탁을 들어주나 촌철살인과도 같은 한 마디, "그래. 해리는 창작없는 예술가지.(Harry's an artist without an art.)"라고 말한다. 걸작이다.

영화는 오늘날까지 두어번 리메이크되고 최근 서울아트시네마의 <2009 친구들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의 선택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등의 예술성을 거뒀다. 극에서 '창작없는 예술가'는 일종의 비극이며 영화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잠재된 가치인 셈이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일까. 바로 어제, 2월 10일에도 유사한 형태의 예술은 있었다. 그것은 눈뜨고 일어나보니 검색어 순위에 올라와 있었다. 충격인지 파격인지, 그 경계를 세우지 않은 신해철의 입시학원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것이 '똘끼'로 똘똘뭉친 퍼포먼스의 일종이기를 바랬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면 광고에서 발견한 문구가 자녀교육과 입시교육이 서로 맞는지 여부를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소 신해철이 말하던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성적을 촥! 올려드리겠다는 화살표와 신해철의 '포스있는' 몸짓이 이미지로 들어가 있다. 강한느낌의 화살표이긴 하지만 평면인쇄임을 감안할 때 보는 사람의 반대방향으로 제시돼 있다. 그래서 그것이 총체적으로는 격렬한 반어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모자이크 지워진 광고를 접했으므로 어느 학원 이름이 나왔는지는 모른다. '시간이 나면 내가 글을 올리든가 할테니 읽어보시라'라는 신해철의 '쿨한' 혹은 의중을 알 수가 없는 해명을 읽었다. 그것을 읽은 뒤 나는 신해철은 어쩌면 정말로 머리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연이어 떠오른 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거나 뒤샹의 '샘물'이었다. 광고 표면에서 어떤 이미지를 우리는 봤는가.

우리가 화두로 삼아야 하는 것은 "신해철이 입시학원 광고에 나왔다더라."가 아니다. 오히려 신해철이 왜 입시학원 광고에 나왔으며, 광고 자체에서 '우리 학원으로 오세요'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숨겨두었다고 믿고 싶은) 다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 광고 자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문구 혹은 타이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기존의 입시학원 광고가 우리에게 준 전형성대로 그 광고를 인식하지는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신해철이 '시간이 없어서' 자신의 해명 글을 조금 더 늦게 발표해줬으면 한다. 광고의 붉은 색 처럼 이 문제가 더 달아오르길 바란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입시교육에 대한 직언적인 난투는 극에 달해 더이상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한계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해철의 광고를 일종의 예술로 보고 싶은 것이다. 해명글이 발표됐을 때, '내가 돈에 눈이 멀어서 그렇게 됐수다'식의 글이라면 이 글을 쓴 나는 망연자실할 것이다. 허나, 그는 그렇게 '개념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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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mintong.org BlogIcon 하민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 만물과 세상 만물이 작동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어린아이의 옹알거림 하나에도 우주의 이치가 들어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기로 신해철의 학원 광고에서 르네 마그리트를 찾고 뒤샹을 찾고 예술씩이나를 찾는 건 오버겠다는.

    2009.03.03 14:48

고민을 멈추고 그곳으로 가자

필진 칼럼 2009.01.21 14:3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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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작년 이맘 때 즈음일 것인데, 2008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한 글에서 나는 ‘꿈처럼 꿈꾸듯이’ 고전영화의 향연 속에 빠져보라고 권한바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은 그 꿈에서 너무 쉽게 깨어나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면, 공교롭게도 친구들 영화제를 기점으로 신상의 변화가 생기는 바람에 시네마테크와의 꿈꾸기에 열중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한들 사고체계의 작동패턴마저 변하지는 않는 법. 그러니까 12월 서울독립영화제로 막을 내리는 영화저널리즘의 여정은 언제나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로 시작되곤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게 친구들 영화제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진군 나팔소리와도 같은 행사인 셈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올해 영화제는 극심한 환율여파로 인한 프린트수급비용 상승 때문에 예년보다 적은 상영편수로 운영된다. 하지만 괜히 시네마테크이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인가. F.W.무르나우의 <선라이즈>로 열고 로버트 알드리치의 <캘리포니아 돌스>로 닫는 이번 영화제는 라인업만 보더라도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푸념이 엄살로 들릴 만큼 알찬 섹션으로 구성되었을 뿐 아니라 개별 작품 또한 만만한 것이 없으니, 맘 푹 놓고 가서 보고 즐기고 탐닉하면 될 일이다.

몰락한 감독으로 출연해 자신의 처지를 완벽하게 연기한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의 <선셋대로>와 그가 연출한 걸작 <탐욕>에서부터 태국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까지, 여기에 공효진과 서우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스크린에서 재회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지 않나? 아!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 또한 놓치면 후회할 작품이고, 숨이 멎을 정도의 매혹적인 금발미녀 로렐라이로 변신한 마릴린 먼로의 속삭임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줄스 다신의 <밤 그리고 도시>와 르네 클레망의 <들판을 달리는 토끼>가 가장 구미를 당기고, 이탈리아영화 마니아 아니랄까봐 난니 모레티의 <4월>과 마르코 페레리의 <그랜드 뷔페> 또한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중에는 DVD로 소장하고 있어 필요하면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작품도 상당수이다. 이미 보았고 더러는 기억에 가물가물한 영화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네마테크에 갈 것이다.

누군가 굳이 이들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세월의 연륜으로 겹겹이 쌓인 포장지 위에 극장관람용이라는 당위성까지 보태어 매듭지어진 의심할 바 없는 고전이라고, 그리고 그것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시네마테크뿐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예컨대 <카비리아의 밤>에서 흥겹게 연주하는 소년들에 둘러싸인 줄리에타 마시나의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어찌 작은 화면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비록 꿈같은 밤이 지난 후 비루한 현실에 다시 침잠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영화의 존재 이유라면 기꺼이 꿈꾸고 싶어 하는 동종의 관객과 함께 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직도 무슨 영화를 볼지 어떤 감독과 만날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만 멈추기를 권한다. 2009년 2월 시네마테크에서 보낸 한 철이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 무엇을 보더라도, 영화이외의 것들까지 풍성하게 담아올 수 있을 테고 우리가 할 일은 설레는 마음 담긴 낙원동으로 나가는 발걸음이면 족할 터이니, 다른 영화관들과는 도저히 혼동할 수 없는 유일한 그곳,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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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영영 가지 않을 것만 같던 2008년이 지나고 2009년이 시작되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으레 그렇듯 사람들의 마음엔 희망과 다짐의 각오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극장을 전전하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서 새해가 밝았다는 건 곧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도 어김없이 ‘친구들 영화제’는 연초를 밝힌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일 년 중 가장 북적이는 시기, ‘2009년 친구들 영화제’는 1월 29일부터 3월 1일까지 약 한 달동안의 촛불을 밝히며 관객을 기다린다.

지난 15일 오후 3시, 인사동 리틀 차이나에서 네 번째 ‘2009년 친구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반적인 기자회견 장소보다는 다소 작고 오붓한 장소에서 분주하게 영화제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김홍록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사무국장, 그리고 박찬욱 감독, 전계수 감독이 참석하여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슬로건이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것을 발표한 후 영화제와 더불어 시네마테크의 1년 사업계획을 간략히 설명했다.


박찬욱: 일 년 내내 이 날을 기다리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즐겁고 행복하고 마음 설레는 시간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 영화를 골랐을지, 나는 어떤 영화를 선택해서 관객과 함께 웃고 떠들며 볼지를 고민하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무엇보다 함께 영화를 보는 자체가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안성기: 시네마테크에서 한국영화를 볼 기회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지나간 한국영화를 통해 우리 영화가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갈 것인가의 길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영화를 가지고 계신 분, 영화를 볼 분들이 모두 시네마테크에 함께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변영주: 시네마테크의 영화들은 꼭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속에 우리보다 먼저, 우리보다 일찍 세상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선배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고, 그런 영화들은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에는 20여명의 친구들이 시네마테크를 위한 열렬한 사랑을 보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특별히 영화감독을 프로그래머로 초빙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박찬욱, 오승욱 감독이 객원 프로그래머가 되어 가장 좋아하는 악당들에 대한 ‘최선의 악인들’이라는 섹션을 선보인다. 이 섹션은 박찬욱 감독과 오승욱 감독이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으로, 언젠가는 악인들의 영화를 대규모 상영하고 싶다는 각 감독들의 포부가 녹아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이번에는 배우 이나영씨를 포함해 정재영, 김주혁, 신하균, 박해일, 김강우, 하정우씨가 참여한 배우들의 후원모임인 ‘시네마엔젤’이 후원기금을 조성해 프린트로 구매한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트>를 상영한다. 시네마테크의 ‘시네마엔젤’은 매년 후원을 통해 고전 명작 프린트를 구매해 지속적으로 상영을 할 것이라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운영을 시작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이다. 이미 시네마테크에서는 지난 2008년 고전 영화의 발전을 위해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 네 편을 프린트로 구매했고 기획전을 가졌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은 이에 대한 연장으로, 정성일 영화평론가, 김영진 영화평론가, 오승욱 영화감독 등이 작품 선정에 참여했다.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의 영화들은 <선라이즈>, <분노의 포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실물보다 큰> 등이다.





매년 관객의 직접 투표로 선정되는 ‘관객들의 선택’에서는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열대병>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상영된다. 또한 영화 상영 외에 시네마테크가 야심차게 준비한 부대행사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소개되는 ‘서울아트시네마 후원 사진전’이 열린다. 영화제 기간 내내 아트시네마를 밝힐 사진전 또한 다양한 영화인들로 꾸려져 있어 영화에 대한 따듯한 애정을 한가득 보여줄 예정이다.





2009년의 시네마테크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제법 분주하게 움직일 예정이다. 시네마테크는 교육적, 문화적 목적의 영화상영이라는 본연의 활동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2007년부터 운영해왔던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는 앞서 말한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구축하여 영화제 기간에 맞춰 상영한다. 2009년에는 이를 확대해 6편 이상의 작품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후원기금으로 조성된 ‘시네마엔젤’ 또한 지속적인 고전영화 애호를 밝힐 예정이며, 올해에는 ‘시네마테크 네트워크 지원센터’를 설립해 연 4회 가량 진행되던 지역순회상영을 확대하고 지역 시네마테크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영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시네마테크의 오랜 바람인 ‘시네마테크의 공간’ 확보를 위한 노력도 추가된다. 아직까지 많은 제약이 따르는 전용관 설립에 관해서는 추가로 연간 연구사업과 해외 사례를 토대로 영화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쓴다. 아울러 현재의 공간인 낙원상가를 긍정하기 위한 일환으로, 서울 최초의 전문음악영화제인 ‘낙원음악영화제’를 매년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감독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배창호, 변영주, 오승욱, 이명세, 이현승, 전계수, 정가형제(정식, 정범식), 정윤철, 홍상수, 영화배우 권해효, 안성기, 하정우, 영화평론가 김영진까지 모두 17명의 친구들이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관객과 함께 참석한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 정한 영화에 대한 짤막한 소개와 더불어 관객에게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많은 영화인들의 사랑을 담은 영화제는 ‘친구들 영화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그들이 입을 모아 시네마테크의 영화를 옹호하는 것은 분명 너무나 매혹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겨울, 영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이곳 시네마테크에서 매서운 한파에 대항하는 자세를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가장 든든한 친구 ‘영화’가 당신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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