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하성태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되살린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이 삼성가(家) '홍 여사'의 갤러리에서 그림 찾기에 혈안이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그림을 확보해 놓고도 공개시점과 수위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삼성가의 갤러리가 경기도에 한두 개가 아니라고도 한다. 삼성과 특검이 힘겨루기와 숨바꼭질을 하는 동안 고가의 그림 30여점의 행방이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삼성가 미술품의 근저에 다가선 이들이 있었다. 비록 이 그림의 값어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고스란히 놔둔 채 덜미를 잡히긴 했지만. 도널드 주드의 1980년 산 <무제>를 털려 했던 '더 늙은 도둑'과 '덜 늙은 도둑'이 주인공인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 이야기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던가.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목전에 둔 2008년. 날카로운 풍자극에서 배우들의 개인기가 돋보이는 코미디로 탈바꿈한 <늘근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삼성과 '홍여사'가 되살릴 줄이야.



녹슬지 않은 풍자의 칼날과 코미디 사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는 '대학로의 간장게장'으로 불러도 무방할 스테디셀러다. 맛깔 나는 풍자극으로 유명한 극단 '차이무'의 이상우가 극본과 연출을 맡고 강신일과 문성근이 출연한 <늙은도둑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한 것이 1989년 4월.


 이후 김영삼 정권이던 1996년과 1997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막집권한 2003년까지 명계남, 박광정, 유오성, 정은표, 이대연, 박철민, 최덕문 등 연극판의 실력파 배우들이 거쳐 가며 매진사례를 일궈낸 바 있다.


특히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명계남이 '더 늙은 도둑'으로 두 번째 출연했던 4번째 작품을 관람해 화제를 모았다. 절대 권력인 '그 분'을 가감 없이 풍자하는 이 작품을 보고 대통령이 파안대소 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2008년의 <늘근도둑 이야기>.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극의 구조는 심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도둑질과 사기로 평생을 살아 온 두 노인이 한밤 중, 고가의 미술품이 즐비한 '그 분'의 집에 잠입했다 경비견에게 들켜 붙잡힌다는 내용. 주요 공간도 '그 분' 저택 거실과 취조실 단 두 곳이요, 주요 등장인물도 수사관까지 합이 셋이다. 그러나 이 단출한 연극의 힘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언중유골'의 매력에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대통령을 여덟 분 다 모신 도둑놈이야. 이승만 때는 미군부대 전문적으로 털어먹고, 박정희 때는 금고 전문가로 데뷔해 가지고 전국 수사기관에서 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최규하 때는 꿈에 떡 맛보듯 지나가서 내가 제대로 못 모셨어. 전두환 때는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전국의 부잣집 금고만 털어먹었지. 노태우 때, 김영삼 때, 김대중 때는 죽 안(감방)에 들어가 있었다고!" '더 늙은 도둑'의 걸쭉한 입담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사들은 '절대 권력'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이 정도는 약과다. 금고 털이의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눌까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덜 늙은 도둑'은 이제 그만 헤어지자며 이렇게 외친다. "YS랑 DJ도 헤어지고, 노무현, 정몽준도 헤어지고, 국현이랑 DY는 만나지도 않았어! 인제는 인제, 인제 안돼!" 또, 신윤복 선생과 '학교' 생활을 함께 했다는 더 늙은 도둑이 그의 저서를 '학교로부터의 사색'이라고 바꿔 부른다거나, 시대에 맞게 원더걸스의 '텔 미'로 슬랩스틱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동시대에 대한 풍자와 함께 젊은 관객들과의 호흡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지어 이 풍자의 칼은 <화려한 휴가>로 8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연출가 김지훈조차 피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 아들 중 몇 명이 학교에 갔다 온 줄 아나? 홍업이, 홍걸이, 현철이도 다 갔다 왔다, 자고로 크게 되려면 별을 달아야 한다"고 비꼰다. 그리고는 "<씨네21>이란 잡지를 보면 <화려한 휴가>가 별을 두 개 받았다, 그 감독은 아직도 세 번이나 더 갔다 와야 한다"고 농을 친다.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더 늙은 도둑' 박원상과 '덜 늙은 도둑' 박철민과의 관계를 떠 올린다면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연출인 셈이다.


우리 시대의 '그 분'은 삼성?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며 삼성을 떠올린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누군지 모를 권력자의 집안에 떡 하니 걸린 미술품들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90억을 호가한다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과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이 가장 큰 이슈다. 연극 속 '그 분'의 소장 목록은 현실과 일치하는 주드의 '무제'를 필두로,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 막스 에른스트의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등이다. 팝 아트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홍 여사'의 취향과 딱 맞아 떨어진다. 1980년대의 끝자락 노태우 정권 때 극본을 썼던 연출가 이상무는 이런 취향을 알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하필 1980년에 완성된 '무제'라는 작품이 일치하는 건 우연이라고 치자. 그리고 <늘근도둑 이야기>가 80, 90년대만큼 강력한 풍자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이 '못해먹겠다'고 읍소하는, '반미'가 '용미'로 변모해야 된다는, 1980년 5월 광주를 대중 영화로 소비하는 시대에 '절대 권력'과 정치인들에 대한 비아냥은 이제 인터넷 상의 일상이 되지 않았던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요즘 현실을 돌아보라. 한화 김승연 사장의 폭력사건에서 보듯 초현실적이고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연극 속에서 수사관은 "도대체 거기가 어딘 줄 알았느냐, '그 분'이 누구인 줄 알고는 있느냐"며 다그친다. 거대한 금고를 감춰놓고, 세계적인 명화를 컬렉션 해 놓은 '그 분'은 물론 독재자와 권력에 대한 풍자다. 이는 노태우와 김영삼 정권에 이 풍자극이 무대에 올려졌을 때 더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으리라.


역사는 돌고 돈다. 현명한 이들은 그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고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2008년에 '실향민'인 '더 늙은 도둑'과 '광주' 출신 '덜 늙은 도둑'이 벌이는 풍자극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불분명한 절대 권력은 이제 시장과 자본의 손으로 넘어갔다는 것.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던 '그 분'이 '무제'를 몰래 소유하고 있던 '그 분'들일지 모른다는 것. 코미디로 변모한 <늘근 도둑 이야기>의 의미를 되살려준 것은 삼성과 '홍 여사', 다름 아닌 그대들이다.



덧붙이는 글 | '연극열전'의 두번째 작품인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는 3월 9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에서 상연된다. '더 늙은 도둑'은 박원상, 유형관이, '덜 늙은 도둑'은 박철민, 정경호가 더블 캐스팅 됐으며, '수사관' 역은 최덕문이 연기한다. '연극열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구팬이여 오라. 연인 관객도 오라. 광주의 그 날을 아프게 기억하는 누구라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코끝 찡하다. <화려한 휴가>의 코믹 멜로를 보고 싶다면 더더욱 환영이다. 5일 기자시사회를 연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의 김현석 감독의 세 번째 작품 <스카우트> 얘기다.


야구에다 왠 광주 이야기냐고. 그러니까 모든 것은 김현석 감독 왈, “1980년 광주일고 3학년 선동렬이  있었다”란 한 문장에서 시작됐단다. 각본을 쓴 <사랑하기 좋은 날>과 <해가 서쪽에서 뜬 다면>에서 모두 야구장을 등장시키는 뚝심을 발휘했던 야구광 감독답게 이미 7년 전 이 단 한 줄의 문장에서 국보급 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한 이야기의 얼개를 잡아 놓은 것.


하지만 <스카우트>는 단순히 야구 선수를 데려오기 위한 엎치락뒤치락 소동극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스카우터 이호창(임창정)과 7년 전 캠퍼스커플이었다 호창과 헤어진 뒤 고향 광주로 낙향했던 세영(엄지원)과의 로맨스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 공간적 배경이 80년 5월 18일로부터 딱 열흘 전이다. 그렇다고 초반부 웃기고, 후반부 울리기란 공식을 예상하면 금물이다. ‘이 이야기는 99% 픽션입니다’란 자막을 깔고 간 이유가 다 있기 마련이다.


먼저 야구를 모르는 여성 관객들이라고 해도 겁먹을 필요 없다. 그저 박찬호 이전 한국야구사에 금자탑을 쌓은 투수가 있었단 사실 하나만 알면 되니까. 아 팁으로 일본 야구에 진출했던 이종범이란 선수가 선동열의 후배란 것 하나만 더 알면 더 웃게 되리라. 그 만큼 이 야구광 감독은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보여줬던 아기자기한 개그를 홈그라운드 안에 펼쳐 놓는다.


보너스로 차 한대 얻으려 내려간 호창이지만 왠 걸, 선수시절 앙숙이었던 라이벌 학교의 스카우터와 경쟁하랴, 괴물투수 부모님 모두에게 환심을 사랴, 또 세영에게 연정을 품은 손 씻은 동네주먹 서곤태(김철민)에게 시달리랴 호창은 여전히 바쁘다. 그 와중에 ‘뽀뽀 잘 하는 운동권’ 세영이 왜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는지도 궁금하다. 이 모든 것이 열흘이란 영화적 시간 안에 잘 포개져 있다. 호창이 이별의 이유를 깨닫게 되는 5월 17일까지 관객은 순박한 호창에게 듬뿍 빠져 때로는 박장대소를, 때로는 살포시 미소를 날릴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카우트>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이를 만회하려는 한 남자의 순정에 관한 이야기다. 호창과 세영의 관계는 호창이 TV에 나온 전두환 장군에게 “그래도 남자 중에 남자”라고 한 마디 했다가 눈을 흘기는 세영을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집약된다. 시대에 무관심했던 남자와 그 시대를 끌어안았던 한 여자가 5월 광주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러니까 김상경과 이요원, 그리고 이준기가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던 그 평온함. 거기다 임창정과 박철민이 가지고 있는 개그 본능을 더했다고 보면 딱 일진데 글 초반 <스카우트>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이유는 광주를 다루는 방식과 호창이란 캐릭터의 일관성, 그리고 대중 영화가 빠질 수 있 과도한 신파나 판타지에 함몰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국이 어수선 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일상적이었던 듯 호창의 시점이 딱 그 만큼이다. 대중 영화로서 영리한 선택인데 관건은 호창의 변모 과정을 얼마만큼 설득력 있게 담아내느냐 일 것이다. 스카우트를 성공적으로 마쳐갈 즈음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광주 시내에 공권력이 투입되던 그 순간, 호창의 깨달음은 그 시절 서울에서, 부산에서, 대전에서 광주의 비극을 눈치 채지 못했던 ‘우리들’의 부채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세영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그 영화적인 행동은 클라이맥스의 상승효과와 맞물려 그 부채의식을 달래기 위한 살풀이로 기능한다.


물론 현실적인 맥락을 과도하게 부여하자면 그게 다 광주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초리들이 날아들지 모른다. 그러나 <스카우트>는 호창의 트라우마를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고 또 그걸 오버하지 않은 화법으로 해소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버하지 않는 다는 점. 지난해 같은 시기 개봉한 <그 해 여름>의 취조실 장면을 떠올려 보라. 수애와 이병헌의 빅 클로즈업을 잡고 한껏 가학과 신파의 감정을 끌어올린 것과 비교해 <스카우트>는 서로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호창과 세영의 아픔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김현석 감독에게 박수를.


영약하다고? <YMCA 야구단>의 또 다른 호창을 기억해 보라. 역사 앞에 모두가 투사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호창은 세영을 광주의 참혹했던 봄날 앞에 구해낸 것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한다. 그래서 이현석 감독이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를 멜로 영화라고 설명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재미를 놓쳤다는 건 아니다. 임창정은 <비트> <색즉시공> 등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최선의 연기를 보여줬던 무기인 편안함을 되찾았다. 얼굴만 봐도 웃긴, 혹은 애드립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 사람 좋은 호창을 연기함으로서 다시 한번 좋은 배우임을 상기시킨다. ‘예쁜 배우’ 엄지원은 김현석 감독의 전작들만큼 어느 정도 박제된 여성 캐릭터임에도 제몫을 다해 낸다. 무엇보다 세영은 다시 만나고 싶은 옛 여친임에 틀림없다. 그랬다면 그건 엄지원의 매력인 셈이다.


그리고 박철민. 김현석 감독은 <화려한 휴가>나 <목포는 항구다> 보다 코미디의 수위를 조절함으로서 그를 더욱 부각시켜줬다. 물론 ‘진짜’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남자임에는 틀림없는 배역의 매력에 기인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곤태가 남긴 비장의 시(?)와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비광송’에 웃지 않을 냉혈한은 많지 않을 것임은 틀림없다.


<스카우트>는 또 같은 세트를 제공하고 먼저 광주의 비극을 대중화 해준 <화려한 휴가>에 분명 빛 진 것이 많은 영화다. 그러나 그 비극을 호창의 일상과 캐릭터 안에 온전히 녹여 낸 것에 대한 성취는 분명 칭찬해 주고 싶다. 특히 대중성을 잘 버무린 김현석 감독의 연출력은 오롯이 빛을 발한다.  온전한 야구 영화도, 코미디 영화도, 멜로 영화도 아닌, 그렇다고 막무가내 잡탕도 아닌 독특한 영화로 김현석 감독은 분명 관객의 심정을 들었다 놨다 할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뒷맛 개운하고 깔끔한 한국 상업영화다. 이런 상업 영화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좋아했던 관객들,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differenttastes.tistory.com BlogIcon 신어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가 광주를 배경으로만 하고 있는게 아니라 다루고 있다는 얘길 듣고
    꼭 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임창정도 항상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왔었는데.

    2007.11.07 08:37 신고
  2. Favicon of http://blog2.blogcocktail.com BlogIcon 비트손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역시 신어지님도 비슷해요. 임창정이 출연하는 영화는 항상 저의 기대치를 웃돌곤 하더라구요. 스카우트도 참 기대되는영화중 하나네요. ^^

    2007.11.07 11:08
  3. Favicon of https://neoimages.tistory.com BlogIcon woodyh98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어지님, 비트손님/ 네 임창정은 오버하지 않을 때가 가장 빛나죠. 파송송이니 만남의 광장이니 그의 모든 영화를 지지하지는 않지만요. 하지만 기대에 저버리진 않을 겁니다.

    2007.11.07 18:23 신고

네오이마주 8월 특집은 [화려한 휴가]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결정했다. 그의 일환으로 이영 편집스텝이 ‘80년의 광주’당시 학생이었고 지금도 광주에 살고 있는 정인호, 기형훈 두 분을 섭외해 글을 받았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엄연한 광주 출신의 스물여섯 박유선씨에게 [화려한 휴가]에 관하여 관람 단상을 받았다. 이 세분의 글을 하나로 묶어서 특집 세 번째 기사로 올린다. 글의 분량은 길지만 세 사람의 이야기가 솔직한데다가 각각의 특색이 있음으로 해서, 결코 지루하지 않으리란 생각이다.

80년의 광주를 그린 이 영화를 정작 광주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보았을까? 40대와 20대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그들에게 80년의 광주는 무엇인가? 라는 궁금증에 대하여 단편적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고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을 꾀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바쁜 와중에도 글을 보내주신 세 분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정리: 이영)



하나.  광주에서 정인호(43) 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의례 시원하려니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덮다. 그래서 다른 상상을 한다. 오늘 같은 날, 하일 없는 내 집 마루에 앉아 차 한 모금 향 머금어 마시고 처마 끝에서 그냥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 두울 여섯 방울 하고 세면서 대나무 속에서 휘감아 울리는 맑고 평온한 섬유질 소릴 듣고 싶다.

나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를 학수고대했었다. 왜 그랬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다른 이들에게 이 영화 보기를 권했었다. 그러다 그만두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고자 했었던가? 나 말고 남들은 또 무엇을 보길 바랐을까? 역사적 진실?

나는 내 젊은 날, 그것도 군 제대 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해마다 오월이면 적어도 15일은 자발적인 외박을 했다. 그 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금은 영화 세트장 속에 박재되어 처박힌 그런 곳에서 살았다. 도청에서 금남로로 그리고 망월동에서 아니면 금남로의 어느 허름한 골목길에서 또는 수많은 막걸리 집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그 격렬함 보다 더 뜨겁게 더더욱 비장하게. 왜 그랬을까? 그 때 나는 그냥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년이었다. 현란한 논리도 없고 정치적 야심은 더더욱 없는 그냥 가슴만 뜨거운 그 뜨거움만을 간직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그 뜨거움으로 그 수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보냈다.

나는 잠시 그날의 그 공간이 필요했었다. 그 날의 그 시간이 필요했었다. 나의 중학교 3학년 시절 오월의 그 어느 날도 필요했었다. 자고 나면 대문 밑에 낙엽처럼 쌓여 있었던 그 날의 그 ‘삐라’ 그 함성들이 사라졌다. 나는 그것들을 간직하지 못했다. 그 때 죽어간 내 친구들의 모습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때 어떤 친구는 그 날의 함성을 녹음기로 녹음했었다고 나에게 자랑하듯 늘어놓았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그 함성을 보관하고 있을까? 나도 그날 그 ‘삐라’를 주워 모아 몇 달 동안이나 보관했었지. 그러다, 그러다 어느 날 시나브로 사라졌다. 나는 최근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꼭 ‘죄’를 지은 것 같다.

이것을 ‘죄’로 치면 무슨 죄일까? ‘점유 이탈물 횡령죄’, 아니면 ‘괘씸죄’. 그래 괘씸죄가 맞다. 괘씸죄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냐?”이고 적어도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문제는 아니므로.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내가 괘씸죄 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그 무리들의 죄목은 무엇이지? 오월 그 어느 날 내가 금남로의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서 보도블록을 깰 때, 그들의 죄목을 그렇게 외쳤는데 적어도 27년을 외쳤는데. 작전명 “화려한 휴가”는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자들에 대하여 왜 침묵하지. 하기야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용서가 안 되지만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을 베푸는 것이 세간의 풍속이라서 그러는가? 그렇다면 “화려한 휴가”는 괘씸하다. ‘괘씸죄’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에 해당되는 그 ‘인간’들에 대하여 침묵하는 “화려한 휴가”는 괘씸하다.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비가 오는데 지금 막 연주자가 휘몰이를 연주한다. 이제 곧 연주를 맺으려나 보다.



둘.  서울에서 박유선(26)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1980년 5월 18일.

내가 1981년 12월생이니, 엄마 뱃속에 내가 만들어 지기도 전의 일이다. 내 친지 중에서도 내 이웃 중에서도 이 일로 화를 당한 사람이 없다. 말하자면 나와는 완전히 무관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하면 뜨거운 두부를 식히지 않고 한입에 먹은 것처럼 가슴이 뜨거우면서도 싸해지는 까닭은 왜지?

중. 고등학생 시절 5월은 매웠다. 코가 맵고 선생들의 어투가 맵고 그랬다. 지금은 5월에 광주를 가도 맵지 않지만, 그때는 맵고 그랬다. ‘화려한 휴가’ 속의 ‘광주사태’(아직도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은 낯설다.)는 이런 간접 경험이 다다. 그런데 왜 가슴은 뜨겁지?

‘화려한 휴가’ 속의 캐릭터 들이 다 싫다. ‘드라마’의 전형적인 캐릭터들 같아서다.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 동생의 죽음으로 확 변하는 강민우나 예쁘고 참하며 강인하기까지 한 박신애나,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은 녀석이 급우의 죽음으로 운동에 선두에 설 줄도 아는 강진우도, 옳은 것만을 위해 살 듯 한 박흥수도 다 싫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빠나 엄마가 정말 그랬던 사람일 것 같아서 싫다.

‘화려한 휴가’ 속의 진짜처럼 잘 만들어 논 세트가 싫다. 그때의 도청은 본적 없지만, 여태껏 봐온 도청의 모습을 역으로 돌려가며 기억하다 기억 전을 상상해보면 딱 영화 속 세트다. 아마도 딱 그 모습일 게다. 실제로 총을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는 그 벽에 핏자국이 누구누구의 아빠나 엄마의 핏자국일 것 같아서 싫다.

결국 난 ‘화려한 휴가’ 속 광주사태가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아빠나 엄마인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서 무서워서, 가슴이 뜨거운가 보다.



셋.  광주에서 기형훈 님(46)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화려한 휴가]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화려한 휴가]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마음의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늘 부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주의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여기까지 끌어올린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난 하나도 보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임승차 해왔기 때문이다.

80년 당시 광주 서석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당시엔 시 외곽에 있었다. 세상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이나 관조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학교가 쉬는 내내 광주에 있었으며 광주시내를 전체적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요소요소의 일들은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다. 27년이 지났어도 현장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짧은 평

1. 우선은 내가 광주의 40대를 대변할 수 없다. 경험이 적고 실제로 아는 것이 그다지 없기 때문이다.

2. 518과 관련된 영화, 그것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더구나 그것이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518을 다루었다는데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3. 이 영화의 의도는 사건의 실체화이며 진실성과 시민의 정신이었다고 본다. 그 진실을 그 정신을 우리사회에 아직도 알지 못하며 한 과거의 아픈 기억정도로 만 다루어 왔고, 그 곳에서 한발작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 진실을 다루고자하는 방향성이 설정된 것이며 각오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광주사태하면 폭도요, 고정간첩의 선동이며, 불순분자들의 내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여론조사에서 간혹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권력관계에 연원이 있으며, 지금도 그 권력은 오롯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광주시민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518관련 재단이 생기고 유공자로 대우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시민들의 투쟁의 산물일 뿐이다. 17년의 세월(7년, 5년 그리고 문민정부 5년) 동안 많은 것이 감추어지고 사라지고, 핵심적인 진실에 접근할 자료가 전무하다는데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전체적인 흐름은 광주의 일들을 보여주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사건의 진행과 규모, 그리고 이야기의 깊이가 다소 부족했다. 다만, 그 속에 담겨있는 시대정신을 표현하는데 나름대로 고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폭도가 아닌, 선량한 일반인이었다는 것, 군부의 계획적인 유도에 의한 참극이었다는 점, 무엇보다 자신의 욕심이 아닌 순수함에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 놓은 광주의 정신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왜곡되고 오도된 사실들에 대한 알림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어느 부위를 부각하여 주역으로 하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나라 전체의 정서에는 오히려 소시민의 주역설정은 접근하기에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영화는 12세 관람가 등급으로 허가가 난 것이다. 영화의 상업적인 장면들에 대해서도 이런 접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이제부터가 광주의 시작이 아닐까한다.

4. 좋은 점과 나쁜 점 : 광주는 오직 5.18하면 좋다 나쁘다의 생각은 없고 진실을 알려야한다는 것과 살아있음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히려 광주에서는 518에 대한 논의하기가 더 어렵다. 많은 이들이 경험했고 그것들의 왜곡과 은폐와 악의적인 선전들을 많이 봐왔고, 당해왔기 때문이다.

좋은 점 : 영화에서는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설정이라는 점이 좋았다. 518하면 그저 무겁고 힘들고 아프기 만한 것이 아닌 영화로 제작되면서 서민의 삶과 서민의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 여지들을 담을 수 있었다고 보여 진다.
나쁜 점 : 글쎄, 부분으로만 치우친 경향이 있다. 설정 자체가 극화된 것이기에 그 내용과 진행 상황만을 가지고 논하게 될 때, 자칫 그 속에 머물러 한정된 시각만을 제시하는 틀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518에 대한 영화가 27년이 걸렸다. 광주에 대한 영화가 자주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꼭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이번 영화를 기점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그 진실에 접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그 의의를 체계화 할 수 있는 논의의 완성본이 만들어질지 난 의구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518에 대한 재평가, 연구 그리고 재조명이 더 깊어지고 다양화되면서 보완될 것으로 본다. 518의 완성은 통일로 그리고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6. 광주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는듯하다. 하물며, 타 지역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하나의 유혈극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좀 더 흥행성을 위하여 심하게 표현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이고 흘러간 일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하자고 한다. 광주는 계속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장 먼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광주사람들이다. 그런데 진실을 모르고 있다. 광주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들 스스로가 다짐하고 반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응은 없다. 영화의 액션과 눈물에는 반응하면서 실제 삶 속에서의 애환을 남의 일인 것이다. 광주는 말한다. 광주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평등한 사회, 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경제의 논리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기회균등의 사회 자신의 노력의 대가를 바르게 가져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광주는 힘이 없다. 참 민심의 향배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7. 광주의 사태가 크게 된 것은 그전해의 부마사태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군부는 그리고 권력의 핵심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일들은 시대상활과 긴 맥락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해석되지 않으면 왜곡, 축소와 조작 등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8. 더구나 올해는 대선이 있다. 실제사건을 영화한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며, 자칫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릴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나의 5.18 경험

초기 급박하고 처절했던 1주일의 시간은 그 누구도 정신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1주일의 전의 상황과 그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외지에서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난 고등학교 3학년으로 광주에 그 기간 내내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본 것은 아니다. 도청 앞 상무관에서 관이 늘어져 있는 곳에서 묵념한 것, 도청 분수대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고 토론하던 모습들, 버스를 탄 사람들과 다니면서 ‘전두환이 신현확이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 등 노래하고 종일 돌아다닌 것, 집에 돌아오면 방송국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오는 연속극 그래서 방송국 MBC와 KBS방송국이 타게 되는데 그 장면, 외곽에 갔을 때 처음으로 본 탱크와 그 위에 헬멧을 쓰고 있던 군인의 모습, 요소요소에 나무로 쳐진 바리케이드, 동네를 들어가면 주먹밥, 슈퍼에서 과자나 음료를 자발적으로 제공해주던 분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면서 격려 해주시던 분들, 거리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일그러지고 깨진 얼굴의 사진들, 헬기가 머리위에서 폭도들의 선동에 휘말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계속해서 방송하던 기억들, 아침이면 누구나 어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말하고 분개하고 욕하던 장면들, 동네 아줌마들이 집집에서 가져온 쌀은 가지고 밥을 해서 지나가는 차량에 넣어 주던 주먹밥, 계엄군에 끌려가서 3일 후에 나온 이웃집 누나의 모습, 언제부턴가 시민들도 무장을 하게 되고 길거리에서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가끔 들리는 오발인 듯한 총소리, 그러나 광주에서는 한 달 동안 은행이나 가게 등 강도사건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계엄군이 투입되고 학교가 개학하기까지 정확하게 25일이 걸렸다. 우리학교는 당시에는 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개학 후 우리학교 학생들 중에는 총에 부상을 당한 학생이 몇 명(3학년만 2명) 있었다. 지나고 난 후의 소감이랄까 난 광주에 머물러 있던 기간 내내 힘들다거나 답답한 것이 아닌 오히려 편하고 사람 사는 맛이 난다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방송에서는 폭도들이 점령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했지만...


앞으로 우리는...

518과 관련한 진실성이 확보되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정신을 다루는 일들이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518은 시민의 승리이면서도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국민들이 이일로 인하여 피해를 봤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는데 있다. 그 정신이 살아나고 사회의 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입장, 마지막까지 도청이나 YMCA에 남아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던 이들의 각오, 나아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의 입장에서도 광주가 조망되는 시기가 조속히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광주의 마무리는 통일이 아닌가 싶다.

네오이마주에 올라온 화려한 휴가에 대한 비평에서 ‘영화에서 광주는 고립되어있다’는 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언제나 계속해서 고립되어있었고 지금도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힘들지 않다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생활해 왔다. 일부를 가지고 확대하지 말라.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 뿐이다. 광주를 518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일반화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광주에서도 광주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그 참 뜻이 사그라지고 흩어지고 있다. 역사가 잘못 쓰여 졌고 왜곡되었다. 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오직 가진 자 만의 세상일뿐이다. 40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허허로움이며, 절망감이다. 그래서 광주에서는 선에 대한 영혼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이 팔리는지도 모른다. 현세에서의 아픔을 나의 수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광주는 광주사태(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직도 광주는 진행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때 자신의 경험을 깊이 있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지겹다고 한다. 그만하라는 것이다. 과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현재도 진행 중인 것을...86년 6월 항쟁 때 군 투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다가 광주사태의 경험 때문에 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가 , 감옥에서의 생활, 잡혀간 사람들의 마음, 광주시민의 마음가짐, 마지막 도청과 YMCA를 지켰던 사람들의 애환, 그리고 진압군의 심정에서 다시 쓰여 져야 한다. 나아가 통일로 완성되어야한다.


덧붙이는 말

어쩌면 화려한 휴가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과 흥분이 저 속에서 밀려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 영화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을 다시 곱씹으며 재현해 보면서 그 의미가 뭔가를 찾고자 했으나 쉽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도 이야기하고 고등학교 때 일기장도 펼쳐보고 했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을 움직이질 않았거든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지만, 그 역사의 참의미는 과거의 역사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형이지요, 오직 현재만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실천이 역사를 만들고 현재와 과거를 규정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현재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과거를 현재에 조망하지 않고 반성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되풀이되고 아픔으로 다가설 것이라 여깁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그것을 말하고 있고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에서나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할 바를 큰 틀 속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여깁니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세상은 부족하지 않고 우리 모두는 하나다’라는 글귀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건강하시고 밝은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8월 9일 광주에서 기형훈.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7.08.14

문학이 80년의 광주를 다뤄온 어떤 방식
<봄날>과 [화려한 휴가]의 차이


 ‘아아, 끝내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서울은, 부산은, 대구 ․ 인천 ․ 대전 사람들은 이 순간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왔는데도, 끝끝내 아무도 달려와 주지 않고 마는구나. 아아, 결국 우리들만, 우리들의 도시만 이토록 홀로 처참하게 버림 받고 말아야 한단 말인가……’
(임철우, 『봄날5』, 문학과 지성사, 336p)



80년 5월 항쟁의 막바지, 광주 시민들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27일 새벽, 이 고립된 도시로 그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길 바라마지 않았다. 마침내 공수부대가 도청을 밀고 들어왔을 때, 자신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으리라.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이요원)가 27일 새벽, 가두방송으로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고 절규하던 그 목소리야 말로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투쟁의 요체였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인간 최고의 의무를 타인을 기억하는 데 있다고 했던가. 광주를 기억하는 건 결국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역동의 시대를 살아내 온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것. 거기에서 바로 광주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의 문제는 중요하다. 추억으로 고착화 시킬 것이냐, 여기, 오늘, 현재와 맞닿아 인식하느냐는 큰 차이를 지닌다. 물론 장르의 차이를 인정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에 바로 2007년의 [화려한 휴가]가 지니는 시간차와 우리 문학이, 우리 소설이 견지해 왔던 온도차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

살아남의 자의 슬픔과 참여의식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밀양]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이청준의 단편 소설 「벌레 이야기」는 광주 항쟁의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당혹함을 은유한다. 아들을 잃은 어미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다는 살인자. 이청준은 광주 청문회가 한창이던 1988년, 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 종교로 구원을 받았으니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사건을 화두로 삼았다. 이제는 노작가가 된 이청준은 20년 전, 기가 막힐 정치적 화해 제스추어를 보고 인간 심리의 본질적 문제로 심화 확장시킨 작품을 내놓은 셈이다.

관점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벌레이야기」처럼 80년대 광주를 다룬 소설들은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탄압 앞에서 암울한 은유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은 지성계를 대표하던 두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 강제 폐간하는 것은 물론 고은, 송기숙, 황석영 등 광주와 관련됐거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한수산, 현기영 등을 보안사로 끌고 가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우리 문학은 공히 1980년대 초, 중반까지 오월, 남쪽 등으로 은유적인 형상화 작업을 거쳐야 했었다.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다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김남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중에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 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곽재구, 「그리운 남쪽」중에서

우리 시에 있어 광주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는 아도르노의 테제와 비견될 만하다. 본래 자아와 세계가 일치하는 속성을 지니는 서정시는 물론 80년 이후 우리 시 중 일부는 좀 더 직접적인 운동성을 뛰어왔다. 80년대 초반 발행된 계간지 ‘오월시’를 본거지 삼아 지속적으로 광주를 알레고리로 녹여내던 시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대 분위기를 외재화하며 광주를 직설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고은, 황지우, 김준태, 김용택, 백무산, 조태일 등이 오월을 노래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까지 김남주의 「학살」과 같은 연작시나 광주항쟁 관련 시선집인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나 『하늘이여 땅이여, 아아 광주여』가 묶여져 나온다.

한편 광주와 문학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텍스트가 1985년 소설가 황석영이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함께 발간한 광주 민중항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다. ‘5.18’을 몸소 체험한 200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이 기록은 80년 5월 광주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첫 번째 성과물이다. 이전까지의 소극성과 달리 광주와 관련한 단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 이 시기며, 이후 6월 항쟁과 맞물려 광주를 노동자 계급의 시각에서 재조명한 홍희담의 「깃발」이 발표된 해도 바로 1987년이다.

80년대 후반 광주는 리얼리즘과 노동문학의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쳐버린 소녀의 독백체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진술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장선우의 [꽃잎]을 낳았고, [박하사탕]에서 공수 부대원을 시작으로 참호하게 망가져갔던 영호(설경구)는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에서 시민군인 동생을 사살한 소대장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가 대학생들과 마주하게 되는 공수 부대 출신 만복의 형제와도 같다. 이밖에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초점을 맞춘 「밤길」, 광주출신 소설가로 유명한 공선옥의 「목마른 계절」, 이순원의 「얼굴」, 문순태의 「일어서는 땅」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성과 신진 작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광주를 형상화해 낸 것이다.

물론 그 전까지 광주의 아픔을 꾸준히 다뤄 온 작가는 단연 임철우다. 80년 5월, 전남대 영문과 출신이던 그는 자기 체험의 참혹함을 작품세계에 꾸준히 녹여냈다. 아이들을 낳지 못하는 마을(「불임기」)로 광주를 형상화하거나 수배로 열다섯 곳이나 거처를 옮기거나(「동행」) 마지막 밤 친구의 외침을 묵살하고 미쳐버린 친구(「봄날」)로 천형과도 같은 부채의식을 소설 속에 그려왔다.

하지만 미시사와 개인주의 열풍이 휩쓸고 간 90년대 이후 문학은 더 이상 광주를 기억하는 것에 게을러 진 것도 사실이다. 광주에 관련된 소설이 거의 90년대 초반까지 집중됐으며 2000년 이후 관련된 작품이 홍희담의 소설집 『깃발』, 송기숙의 『오월의 미소』, 황지우의 희곡 『오월의 신부』정도라는 점은 27년이란 세월을 감안해도 아쉬운 지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광주를 놓아 주고 동시대로 시선을 옮긴 것은 무엇보다 1998년 5부작으로 발간된 임철우의 『봄날』이 이루어 놓은 성과 때문이기도 하다.



총체성을 담보로 한 고통의 성과물

“한때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흐린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시간들. 그 시간 속의 목소리, 웃음, 빛깔, 체취, 움직임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을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 오래 전 지상에 머물렀다 떠난 무수한 인간의 꿈과 절망, 사랑과 고통에 생명을 불어넣어 우리들의 눈앞에 되살아나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그들과 다시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나는 꿈꾼다. 그 가당찮은 망상이, 혹은 끝내 버릴 수 없는 소망이 내게 소설을 쓰게 한다.”
(임철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2002.10.09,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서)



5부작 『봄날』은 공간적으로는 광주, 시간적으로 5월 17일에서 27일 새벽, 그 열흘간에 집중한다. 극중 영남대 대학생인 명기의 30일자 에필로그는 다시금 시작해야 한다는 작가의 다짐이며 서울은 공수부대가 광주로 입성하기 직전 필연적으로 등장시키는 동국대가 전부다. 임철우는 그간 단편적으로, 은유적으로, 후일담 형식으로 파편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광주를 정면으로 돌파해내기 위해 10년을 쏟아 부었다. 귀신들의 원혼을 달래어 온 고통의 그 10년.

임철우는 소설적 리얼리티는 물론 총체성을 담보해내기 르포 형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미드’ [24시]의 시간 단위는 아니더라도 마치 황석영의 항쟁 기록에 기초한 듯 날짜와 시간을 명기해 시시각각 급박하게 돌아갔던 당시 광주의 상황을 복원해낸다. 여기에 격렬한 시위의 복판이던 금남로와 도청을 중심으로 광주 시내 지도와 철저히 봉쇄된 언론을 대신했던 ‘투사회보’의 내용, 계엄군의 경고문, 그리고 사망자들의 실명과 정확한 일시, 사망 경위까지. 이 같은 실제 기록은 5권의 막바지 30여 페이지에 달하는 ‘5.18’ 일지와 함께 픽션을 넘어 광주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특히 소설 속 생생하고 세세하게 재현된 참살의 현장을 목도한 뒤, 97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석방될 때까지의 일지를 읽고 있노라면 학살자에 대한 분노는 배가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은 6.25의 비극을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 한원구의 세 아들, 무석, 명치, 명기다. 초반과 말미에 등장하는 한원구가 광주의 비극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맞닿아 있음을 명시하는 인물이라면 집을 나온 일용 노동자 무석, 강원도에서 근무하다 고향인 광주로 차출된 공수부대 하사 명치, 전남대 연극반 단원이자 투사회보 선전 작업에 뛰어드는 명기는 광주 항쟁을 구성하는 세 축을 대변한다. 여기에 계엄군의 비인간적인 폭력에 맞서 항쟁의 한 복판으로 뛰어드는 무석의 노동자 친구들, 실존인물인 윤상원에서 따온 민주재야 세력을 대표하는 들불야학의 윤상현, 무력했던 언론과 지식인을 대표하는 기자 김상식을 비롯한 광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또한 참혹하게 죽어갔던 사망자들의 다성적 목소리도 주변인물과 엮어내 소설적 구성에 무리 없이 담아내고 있다.

『봄날』이 담보해낸 총체성은 열흘간의 대하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다층적인 인물들과 생생한 재현이 전부는 아니다. 명치와 그 동료들의 갈등을 통해 신군부에 꼭두각시였던 계엄군 개인의 혼란은 물론 당시 무능했던 언론이나 민주 재야 세력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서 균형 잡힌 시선을 견지한다. 또 윤상현과 김상섭의 대화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민주 항쟁과 학살을 묵과한 미국의 자국 중심의 이기적 행태도 자연스레 고발된다. 이러한 현실 인식과 함께 ‘5.18’의 시작과 최후까지 저항했던 원동력이 풀뿌리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이었을 분명히 한다.

‘폭동이 아니야, 이 자식아. 이건 항쟁이야. 저 수많은 시민들은 지금 저마다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는 거야. 네 눈엔 저게 폭동으로 밖엔 보이지 않아? 폭동이라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폭동이라는 게냐’
(임철우, 『봄날 3』, 문학과 지성사, 221p.)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니 군중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김상섭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임철우, 같은 책, 229p.)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봄날』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계엄군을 몰아낸 뒤 시민들이 맛 본 해방구의 짜릿함도, 아버지와의 화해의 순간도, 달콤하지만 짧게 끝나버린 첫사랑 때문만도 아니다. 학살의 끔찍한 현장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동안 어쩌면 찰라 일지 모른다. 임철우가 복원해 낸 10년간의 기억은 우리에게 심상한 정서와 뚜렷한 분노, 이 두 감정을 나란히 전달해 준다. 도청에서 사그라져든 목숨들, 그리고 숱한 부상자들. 왜 그들이 자국 군대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 결국은 우리 현대사에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독자들은 분노와 더불어 또 다른 현실 인식을 체험하게 된다. 역사에 결코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진실을 믿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2007년의 블록버스터 영화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에서 김지훈 감독이 작가적 인장을 찍은 단 한 장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라스트 신애의 상상신이다. 죽은 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고 홀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살아남은 자 신애. 임을 위한 행진곡이 깔리는 이 라스트 신은 상업적인 엔딩에서 약간은 비껴나 있지만 광주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란 정의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대로 의롭게 앞서 간 이들과 반면 따르지 못하고 폭도로 내몰려야 했던 산자 신애. 하지만 그 간의 역사적 궤적을 놓고 봤을 때 그들이 하늘에서 웃고 있을까 하는 문제는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5.18’을 100억짜리로 재현된 상업영화 한 편으로 소비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가 말이다. 어쩌면 망각하고 있었지 모를 우리들을 위한 면죄부의 증거로 이 블록버스터를 소환해 낸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너무 늦었거나 너무 타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서울 그리고 지식인들인 어디에 있었느냐를 자기 성찰한 [꽃잎]이 나온 것이 1996년이다. 10년 전에도 발포 순간의 아픔은 소녀(이정현)가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지든 흑백 플래쉬 백으로 충분하지 않았던가. 민우(이준기)가 준우(김상경)의 품안에서 죽어가고, 나주댁(나문희)이 아들의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신애가 준우와 작별하던 그 눈물의 스펙터클을 위해 100억 들였다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는 너무 타협했다. 대중들의 감성에 맞게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유사한 구조로 만들었다지만 영화를 본 고등학생이 왜 사건의 인과관계 빠져있느냐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면(김귀현, “10대들이 말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그리고 '전 장군'”, 『오마이뉴스』, 2007.08.12.) 이건 영화적인 타협이자 불성실한 계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곱씹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정점에 광주가 그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명시했던 [박하사탕]과 비교해도 너무 늦었다. 한 논객이 왜 하필 지금이냐며, 주인공들이 호남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며 대선용 영화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건 전적으로 감독과 제작진의 탓이다.

[봄날]로부터 10년 뒤, 80년 5월로부터 27년 만에 도착한 [화려한 휴가]는 절반의 공과는 가져갈 것이 분명하다. 2시간 동안의 감정의 소비를 통해 공적 기억의 자명종을 울리는 일.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신애의 절규는 아프게 다가온다. 망각은 과거 중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망각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망각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라는 야스퍼스의 전언이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유의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봄날]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필독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화려한 휴가] 침묵하게 하는 영화

필진 칼럼 2007.08.07 13:19 Posted by woodyh98
2007.08.05

해가 뉘엇해지자 사자산 기슭에 있는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나서 우리 가족은 극장에 '화려한 휴가'를 보러 갔다. 노인정에 계시는 할머니를 모셔다가 저녁식사를 급하게 마치고 목포까지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내내 달렸다. 영암을 지나 목포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그 길이 막히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한여름밤은 여전히 더웠다.

엄마와 아빠에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화려한 휴가'와 같다. 살풋이 긴장된 부모님들의 들뜬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을 정도로 영화에 집중하셨고, 언니와 나는 옆에서 키득거렸다. 평소에 말이 많기로 유명한 아빠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내내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80년 오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은 서울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앞에서 둥그렇게 서있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너무 가슴이 아리고 아파서 눈물이 안나오더라. 그 때가 생각이 나서..." 광주,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의 역사. 나는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 극장안의 관객들은 이준기와 안성기가 죽을 때, 안타까움의 탄성을 질렀고 김상경의 마지막 총알세례를 마음을 쥐어뜯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영화안에서 광주와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저렇게 다죽고 끝난거야?"

"응, 그랬나보지."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뭐가?"

"공개사과를 한다던지, 보상을 한다던지..."

"몇 차례 보상을 받고 그러지 않았나?"

...중략(전모씨에 대한 욕설이 오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무섭다야."

"응... 무서워. 불공평해."

내가 고등학생일 때 매년 5월이면 광주에서 5.18관련 행사가 있었다. 전라도 각지에서 학생들과 사람들이 모였고 금남로는 80년 그 때처럼 시민들로 가득했다. 잔뜩 흐린 회색빛 오후,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 그 음울한 분위기에 나는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올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었다. 이발사였던 사람, 택시 기사였던 사람, 집에 가던 학생, 시내에 나온 사내, 길 가던 아주머니, 광주에 있던 누구라도 희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어떤 아저씨는 광주가 고립되고 시민군으로 싸우던 그 몇일 동안, 태어나서 처음 누렸던 자유와 연대의 분위기를 꿈꾸듯 말했었다. 모든 시민이 친구요, 동지였다고. 광주에는 도둑도 없고 사람에 대한 의심도 없고 슬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이상 공동체였다고. 그 힘, 그 에너지는 결국 짓밟히고 끝나버린 걸까.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나는 총알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생각만큼 괴롭지 않았다.(영화니까) 내가 생각하던 광주와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에 80년 5월의 광주가 장식이나 배경처럼 놓여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더 뜨거웠어야 했다. 영화를 보고 다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침묵해야 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적어도 나 자신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감정의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그래서 이제 영화와 역사가 관계를 맺는 것과 영화와 사회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좀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416
  • 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