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모던 보이] 박해일만 보고 싶었다

필진 리뷰 2008.10.06 14:57 Posted by woodyh9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민영


<모던 보이>를 보고 나온 직후, 뾰로롱 울리는 문자 메세지. 익숙한 번호가 내게 묻는다. '그래서 정지우, 기본은 했드나?' 나는 바로 답장을 똑똑 거리며 입력했다. '재밌는데 김혜수는 좀 아니야. 김혜수는 미스 캐스팅 같아.' 영화가 끝난 직후, 스탭롤에 묻혀가는 것은 조난실의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잊게 하는 것은 이해명의 잔상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오로지 박해일의 모습만 보고 싶었다.

해명은 사랑을 통해 광복을 꿈꾸고 난실은 사랑을 통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고부터 각자가 목표해오던 삶을 내동댕이 칠 만큼의 파워를 얻는다. 하지만, 영화는 본질적으로 변해버린 두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변모하는 과정을 담는다. 때문에 난실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올곧이 실행한다. 영화에서 가장 큰 변화를 끌어낸 인물은 해명이다. 시종일관 유쾌하지만 어리버리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그의 얼굴엔 '조국'이나 '해방'과 같은 단어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일원으로 매일 근무를 충실히 하고, 어려서부터 일본인이 되고싶다고 하던 소년이었으며 일이 끝난 후엔 친한 일본인 검사와의 한 잔 술에 만족하는 남자다. 해명의 중점은 단 하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는데 공을 들이는 방법이 다. 젠틀하고 신남성적인 면모가 풀풀 풍기는 그의 양복 사이로 어느 날 난실이라는 여성이 손을 내민다. 난실, 혹은 로사, 혹은 나타샤를 만난 해명은 그 순간부터 자신이 제외되었던 역사 속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해명과 난실의 로맨스가 광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돌파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모던 보이>는 적재적소에서 눈물을 자극하는 연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결코 간드러지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태극기와 일본이라는 소재를 통해 연인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상황은 결국 피를 끓게 하는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이다. 해명은 난실을 향한 애정 하나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권력을 배반당하고 도둑질당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마음 속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것은 대한민국의 해방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살게 했던 것도 자신이 태어난 조국의 자유가 아니다. 경성의 지도를 펼쳐 난실과의 데이트 코스를 짜는 해명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여자만 존재한다. 해명이 스스로 테러리스트를 자처해 천황 앞에서 태극기를 뽑았다면, 그것 역시 난실의 그림자가 해명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모던 보이>는 친일정권과 반일정권을 앞세운 독립 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는 해명이라는 인물을 이용해 비참한 현실과 과거를 보여주는 것 대신, 한 남자의 자각을 다룬다. 만약 이 영화가 독립열사에 대한 명백한 정보와 비장한 각오를 다짐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감칠 맛나는 박해일의 연기는 저멀리 묻혔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던 보이>는 안정적인 굴곡으로 이야기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부담없이 관객의 눈과 귀로 파고든다. 곱씹어 볼 맛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모던 보이>의 모든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그리고 유일하게 옹호할 수 없었던 것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가진 난실의 캐스팅이다. <시카고>에서의 캐서린 제타존스를 생각나게 했던 그녀의 외모는 분명 해명이 정신을 빼앗길 정도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리따운 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난실은, 특별한 춤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남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러나 난실과 해명, 그러니까 김혜수와 박해일이 투 샷으로 잡히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난실이라는 인물의 캐스팅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해명이라는 인물과 난실이라는 인물, 따로 떨어져있을 때는 너무도 완벽하게 빛을 발하는 주인공들이지만, 정작 두 사람이 합쳐질 때 난실의 기류는 해명을 누른다. 이 순간만큼은 박해일의 위트도 소용이 없다. 시선이 해명에게 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산된다는 것이다. 고혹적인 여성의 역할을 하기에 여전히 김혜수는 제격이라는 평을 얻지만, <모던 보이>에서만큼은 아니었다. 그녀의 열연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박해일과 김혜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극장을 나오면서 차라리 엄지원을 캐스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명이 감당하기엔 난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이건 연기력의 우위를 따지자는 말이 아니다. 독립 투사로 평생을 살아온 난실이라는 여성의 이미지를 김혜수가 연기하기엔 조금 버거운 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타짜>와 같은 이미지를 바랬던 관객들은 상당수 후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박해일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한 표를 던진다. 애초 인상 팍 쓰고 모자 꾹 눌러쓴 박해일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들어갔던 나는 뜻밖에 폭소를 자아내는 그의 표정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모던'한 사내가 제법 어울리는 박해일의 연기를 보기 위해 <모던 보이>를 찾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엄청난 만족을 선사받고 극장을 나섰을 것이다. 가볍지만 진부하지 않은 로맨스, 혹은 역사물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를 추천해 마지 않는다. 아니, 사실 <모던 보이>를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보조출연으로 단상에 오른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개인적인 경우에는 난실 역을 맡은 김혜수, 그녀가 걸리지만 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파를 뚫고 2층으로 구성된 세트장을 들어서니 취재인의 탄성이 쏟아진다. 1층 150평, 2층 50평의 세트 규모가 우선 시선을 압도한다. 몽환적 분위기를 위해 피워 올린 스모그 사이로 재현된 1937년 경성의 비밀 지하 댄스 구락부. 일본산 삿뽀로 맥주부터 다양한 양주와 와인병, 세심하게 장식된 촛대와 데카당스한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갖가지 형광등까지.


실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신문 기사가 났을 정도라는 당시 경성의 모던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정도면 77억이라는 제작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 할리우드 여배우들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는 물론 기모노와 중국풍 원피스 등 갖가지 의상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때, 화려하고 퇴폐적인 ‘모던’ 바에 스윙재즈가 울려 퍼지고 이날의 주인공 김혜수 등장. 취재진과 스탭들의 눈과 귀가 온통 바 중앙으로 쏠린다. 여기는 경기도 파주의 아트서비스 세트장, 김혜수, 박해일의 <모던보이>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검은색 턱시도도 김혜수의 섹시함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남성 댄스단과 격렬하고 역동적인 춤사위를 펼쳐 보이는 김혜수의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 몇 번의 테스트를 무사히 마치고 취재진을 위해 깊게 눌러썼던 모자를 벗어던지자 야릇한 미소와 눈빛이 압권이다. 댄스단의 대리가수부터 댄스단 리더까지 다양한 직업으로 미스터리한 매력을 뽐낼 조난실 역할을 위해 “3개월간 전문가들에게 춤과 노래를 전수받았다”는 김혜수의 열정이 200% 발휘되는 순간이다.


바 2층에서는 박해일과 이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자들의 로망일 뿐 아니냐고? 30년대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박해일의 헤어스타일을 보라. 아줌마 파마와 더불어  핑크색 양복이 파격을 더 한다. 그 옆 일본인 신스케 역의 신예 이한은 검은색 슈트와 완벽하게 빗어 넘긴 기름진 헤어와 콧수염으로 당대 자료에서 보아왔던 ‘근대인’이 걸어 나온 듯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해명, 신스케! 큐 사인을 음악에 맞출 테니 알아서 타이밍을 맞춰보세요.” 존대 말을 고수하는 점잖은 정지우 감독의 주문에 따라 두 사람이 2층에서 연출해 낸 장면은 조난실, 김혜수를 처음 발견하는 감격적인 순간. 남장을 했음에도 숨길 수 없는 조난실의 은밀한 매력에 감탄한 이해명. 그 순간의 감격을 박해일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잡아먹을 듯 껄렁한 눈빛을 자아내며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피엔드>, <사랑니> 등으로 진중한 시선을 견지해 온 정지우 감독의 세 번째 작품 <모던보이>는 소재와 규모, 캐스팅으로 일찌감치 충무로의 기대작으로 떠오른 작품. 제5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이지형의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수 있겠니>를 원작으로 1937년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걸과 당대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다. 조선총독부 서기관으로 근무하는 로맨티스크 이해명(박해일)이 비밀구락부에서 한 눈에 반한 여인 조난실(김혜수)을 만나 벌이는 꿈같은 연애와 해명의 성장 과정을 통해 그간 선입견에 젖어 왔던 식민지 시대의 생활상을 기발한 상상력과 발칙함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거의 해결됐지만 식민지 상황이 고착돼 미래가 없는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이라고 고 1937년을 정의하는 정지우 감독은 “그 속에 퇴폐하고 음란한 문화가 생성됐던 독특하고 흥미로운 첫 번째 시기다. 표피적이고 소재적으로 다룰 생각은 없다. 해석하고 고민하고 성찰이 담긴 캐릭터로 분명히 다른 영화를 보여드리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껄렁한 젊은이 이해명이 변화하는 “일종의 성장영화”라는 <모던보이>는 또 제작비의 상당부를 시대를 재현하기 위한 세트와 CG 작업에 투여, 당대의 시대상을 세심하게 재구성한다는 각오다.


댄서, 양장점 디자이너, 가수 등 다양한 직업과 열개가 넘는 이름, 그야말로 미스터리란 단어가 적격인 조난실이란 캐릭터는 고스란히 근대와 식민지 조선이라는 경계를 표상할 인물. “시나리오 작업 내내 조난실을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답답했다”는 정지우 감독의 시름을 덜어준 이가 바로 김혜수다. <타짜>이후 선택한 첫 작품이라는 김혜수는 “분장, 미술, 의상 등 영화계 최고 스탭들이 모여 영화적인 새로움을 곁들이고 있는데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며 기대했던 정지우 감독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표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캐스팅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혜수에 비해 일찌감치 이해명 역으로 낙점된 박해일은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보여줬던 그 천진난만함에 발칙함을 더 한다. 죽어도 로맨티스트로 남고 싶은 이해명 역을 위해 우선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지만 외양적인 것이 다는 아니다. “지금의 해일씨 그 시선 그대로 시대에 뛰어 들어가는 건 어떨까라는 감독님의 제안대로 재미있게 연기하고 있다”는 박해일은 “껄렁한 1차원적 이미지 내면에 인물에 대한 물음을 인지하고 촬영 중이다”라며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현실에서 행복 하고픈 남자가 불우한 시대를 어떻게 이겨 내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모던보이>는 11월까지 모든 촬영을 마칠 예정. 과연 ‘모던보이’ 이해명이 식민지 현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은 2008년 초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코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대되는 자품입니다. 박해일씨 머리 굿~

    2007.11.19 15:05
  2. sk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혜수 춤 넘 잘춰요^^ 동영상 보고왔음.good!!

    2007.11.19 15:38
  3. Favicon of https://humorzoa.tistory.com BlogIcon 유머조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혜수, 정말 멋져요..

    2007.11.19 15:55 신고
  4.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하하ㅏ 박해일 머리에서 웃으면 되나?

    2007.11.19 18:10
  5. 09각삼돌이  수정/삭제  댓글쓰기

    딱 한번만이라도 좀 자빠뜨려봤으면 원이 없겠네....

    2007.11.20 02:16
  6. ^^;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혜수씨를 싫어하지는 않은데, 사실 춤을 잘 못추시는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태권도까지 하신분인데. 꿈뜬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좀 마니 아설픈 느낌이었습니다.

    2007.11.20 11:21

2007.09.22


들어가면서.

영화를 통해 사랑의 담론을 거론한 예는 많았다. 하지만 시간의 담론을 불러낼 만한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삶 자체를 구성하고, 생멸을 넘어서는 무한공간 속에서 현실과 부딪히거나 이상을 꿈꾸는 시점은 언제나 시간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봄날은 간다]이후 오랜만에 시간을 끌어들여 사랑의 담론까지 형성한 영화를 만난다. 한재림 감독 연출의 [연애의 목적]이다.

필자는 이 영화가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를 넘어서는 담론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글은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성에 대한 사유와, 그들의 삶이 아픈 과거와 불신의 벽을 넘어 어떻게 현실화 되는지를 살피는 데 주력할 것이다. 또한 성 담론이 등장하는 한국영화 속 여성캐릭터를 끄집어내어 그녀들의 사고 뒤에 숨겨진 방어본능과 채홍의 그것을 비교하게 될 것이며, 시간의 구조 속에 담겨진 유림과 홍의 성향과 행동이 서로에게 전달되는 방식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은 개인적이고 더러는 공통적 경험과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와는 다른 개념으로 평가했음’을 밝힌다.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자. 유림은 자신이 내뱉는 대사처럼 대책 없이 밝히는 호색한인가? 채홍은 상상을 초월하는 앙큼함과 발칙함으로 무장한 부도덕한 정신이상자인가? 몸이 정신보다 우선하는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그들은, 섹스에 목매거나 내숭이나 떨면서 ‘사랑은 없다.’고 장광설을 늘어놓는, 쿨한 인생을 빙자한 자유연애주의자들일까?

도대체, 처음 본 여자에게 “젖었어요?” “나 지금 섰는데”라고 말하는 남자가 있을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차마 말은 못해도 그런 맘을 먹는 남자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어차피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에도 사대부들이 풍류를 빙자하여 음탕한 농지기를 서슴지 않았고 여염집 규수들의 규방대화나 기방을 드나들던 한량들의 질펀함은 지금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지 않았던가. 벤치에서의 짧은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그들 앞에 점점 크게 다가오는 커다란 학교건물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넘어야할 첫 번째 벽이다. [연애의 목적]의 오프닝이다.


그 남자 유림, 그 여자 홍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거니와, 처음 본 여자(남자), 좀더 정확히 말하면 스쳐지나가며 본 매력적인 여자(남자)와의 섹스까지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저 맘속에 꽁꽁 가둬놓고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섹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이며, 여자 싫다는 남자가 또 어디에 있으랴. 남녀를 막론하고 성에 대해 한번 쯤 꿈꿔볼 만한 백일몽을 누가 마다하겠냐마는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스럽고 눈치 채지 못하게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할 것이다.

영화에는 두 명의 남녀가 나온다. 유림과 홍, 정교사와 교생으로 만나 어쩔 수 없이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이가 되었기에 그들은 매일 접하고 수시로 대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림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유형의 인간이다. 일단 필이 꽂히면 섹스를 하고 보자는 식이다. “나는 다른 조개를 먹고 싶은데”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우리 저기서 키스나 하고 갈래요?”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홍은 또 어떤가. 집요하게 치근대는 유림에게 “나랑 자고 싶으면 50만원을 내라”며 한 술 더 뜬다. 물론 그녀의 진심은 아니지만, 순전히 자기 방어를 위해 필요이상의 강수를 두는 여성의 대응방식은 자칫 자충수를 불러오기 일쑤이다. 게다가 자꾸 찍다보면 흔적도 남기 마련 아닌가. 급기야 도덕적이고 고상하며 한 때 거룩하다 여김 받던 스승들이 손에 손잡고 모텔을 드나들고 거침없는 연애질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달리 보면 유부남 유부녀도 아니니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게다가 영화는 대낮에 모텔을 드나드는 그들의 행위를 중요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텔에 들어가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고, 눈떠보면 방안에 있거나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전 한국영화 속에서 찾기 힘들었던 독특한 캐릭터인, 유림과 홍, 이 두 사람이 동상이몽이 아니요 오월동주도 아닌 한 배를 타고 영화를 끌고 간다. 그들이 가려고 하는 종착점에는 [연애의 목적]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끝까지 대답을 유보한 채 관객 각자에게 답을 맡겨버린다.


외롭고 보수적인 기이한 청춘들

원 나잇 스탠드도 문제가 되지 않을 당대의 세상을 살펴보면 의외로 고루한 사람들이 눈에 띄곤 한다. 아직은 금기시 되어 부끄러운 이야기인 섹스에 대한 담론은 영화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적극적이고 도발적으로 성 담론을 모색해온 영화 속 인물들마저도 보수적인 성의식으로 자신을 묶어놓은 예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성해방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정작 쉽게 상처받고 오래 아파하는 그들. 쉽게 몸을 허락하고 아무하고나 뒹구는 것이 단순히 자유분방한 성의식에서 발로하는 것만은 아니다. 태생적으로 남을 쉽게 믿거나, 사랑 없이 살기 힘든 후천적 외로움강박증에 걸린 이들에게서도 이러한 성향은 쉽게 발견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정신이상 증세와도 맞물린다.

그런데 문제는 유림이 실제로는 고루하고 보수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오히려 홍이 발칙한 여자라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일까? 자신이 좋아했던 조교에게 상처입어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게 된 홍은 밤이 두려워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한 환경에서 탈피하고자 절절한 사랑 없이도 안정을 택해 의사인 약혼자에게 인생을 맡기기로 한다. 그리고는 유림과의 섹스에서 죄의식 없이 깔깔대며 쾌락을 한껏 즐긴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여자, 유림보다 오히려 쿨한 구석이 있다.

유림은 외국학자의 연구결과를 늘어놓으면서 ‘사랑이 가져오는 떨림의 유효기간은 3개월’ 이라고 말하고는 사랑이란 별것이 아니니 그저 마음 내키면 같이 자고 쿨 하게 지내는 것이 낫다고 홍을 유혹한다. 홍은 그렇다 치고, 이런 남자가 보수적이라니! “5초만 넣고 있을게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제 정신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귀엽고 뻔뻔하면서 사실은 나약한 남자다. 한없이 약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같은 남자. 사랑이 뭔지를 모르고 사랑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조교의 신상조사를 자신의 여자에게 부탁하는 어리석음이나, 하필 애인의 선배인 국어선생에게 변명하는 유림의 모습에서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한 남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교육청 조사도중 폭탄선언을 한 홍에게 다가가려던 안타까운 몸부림과 그 눈빛을 기억해보라. 게다가 다시 만난 홍에게 “넌 나쁜 년이야!”라고 윽박지르면서도 결국 여자와 한 이불 속에 있음으로 해서,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용서되는 남자가 유림이다.(물론 그가 그녀의 진심을 알았기에 용서가 됐을 수 도 있다) 또한 보편적 남자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남자의 냄새가 좋고 편안해서 그의 품에서야 비로소 잠들 수 있는 홍이나,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그녀를 좋아하는 유림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요 천생연분인 것이다. 당사자는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들의 행위가 발칙하고 도발적으로 보이기는커녕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보수적이고 허약한 정신이상자들이 깔끔한 섹스나 트라우마에 푹 빠져 스크린을 활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쿨함과 아픈 과거를 버리고 다시금 연애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은 몸으로 먼저 상대를 느꼈고, 그것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홍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몸이 정신을 우선하는 사랑이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섹스 혹은 몸의 기억

[그랑블루_ Le Grand Blue]에서 엔조는 말한다. “17살 때 사랑에 빠져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어. 그런데 2년이 지나니 이름도 기억나지 않더군.” 처음만나 사랑을 싹틔우다가 자연스레 섹스에 이르는 것이 적절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섹스를 먼저 하고 묘한 예속감에 젖어들어 관계를 지속하면서 사랑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섹스를 했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진실한 사랑에 대해 논하고 순결과 정신적 교감을 중요시 여기는 인간들일 수록 사랑에 대해 고루하고 이기적이며 의외로 몸에 대해 집착하고 몸의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몸의 율동이 서로에게 쾌감을 준다고 해도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랑,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섹스 속에 사랑이 있을 수 없고, 그 섹스가 온전히 만족될 수 없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한결같이 여자의 마음을 섹스와 연관지어 읽어낸다. ‘몸을 허락했느냐 아니냐.’로 구분지음으로써 애정과 기억을 송두리째 말살시킨 채 몸이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는 데만 집중한다. 또한 섹스 유무를 소유의 존재증명과 결부시키는 어리석음도 가지고 있다.

홍의 약혼자는 만나서 함께 하기 좀처럼 힘든 유형의 남자다. 정신적 사랑은 가능할지 몰라도 건강한 여자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 보인다. 홍은 섹스기피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즐기고 그 맛을 아는 여자다. 자기의 여자를 만족시키지도 못하는 홍의 애인 역시 섹스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 섹스란 상대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 따름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절교를 선언하는 그녀에게 긴말을 생략한 채, “잤어?”라고 만 묻는다. 누구를 좋아하더라도 섹스만 하지 않았다면 괜찮다는 논리이다. 반면에 유림은 고결하고 애틋한 정신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편안한 체취와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여자를 사로잡을 줄 아는 남자다. 게다가 귀여운 구석도 있다.

「이성(理性)적인 계기로 피어오른 사랑이란, 때로는 감정적 육체적 경지로 이르지 못할 때도 있다.」던 미셀 푸코의 말을 기억하자. 물론, 홍이 유림의 몸만을 기억한건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여자라는 틀에 묶여 적정한 선에서 방어와 허용을 거듭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다. 적어도 오랜 시간의 굴레를 깨버릴 확실한 모티브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의 자유를 표방한 계산된 자기방어

영화 속 여자들의 성 담론은 지극히 자기 방어적 형태를 보여 왔다. 성의 파격적 담론으로 화제를 불러왔던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성에 대해 가장 자신 있게 얘기하던 순이가 정작 남자경험이 전무한 여자였다는 아이러니를 기억해보자. 또한 “따뜻하고 정열적인 섹스는 없는 거냐?”라던 자유주의자 호정 역시 유부남과의 간통에 휘말리자 “난 정말이지 상처받기 쉬운 여자가 아니었다구!”라며 자기변명에 몰두한다. 또한 [싱글즈]의 동미는 “사랑은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거나 “니가 내 맛을 알아?”라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아이를 갖고는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미혼모의 인생을 시작한다. [아메리칸 뷰티]속 화려한 남성편력을 떠벌이며 자랑하지만 정작 숫처녀였던 안젤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영화 속 여자들이 드러내는 성적 자신감으로 포장된 이중적 자아는, 외부의 침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겉으로는 강하고 성에 대해 도가 튼 듯 말하지만 그녀들은 결국 남자의 따뜻한 품과 제도권안의 보호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애정을 가득 담아 안아주는 손길을 느끼고서야 섹스에 응할 수 있는 소심함으로 인해 결코 성의 해방주의자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홍이 ‘돈 안 받고는 안 한다’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대체로 이러한 여자들의 성향은 겉으로는 사랑을 불신하는 듯 하나 절대적인 사랑신봉주의자이며 백번의 건조한 섹스보다 단 한번의 열정적이고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버림받은 사랑에 대해서 처절하고 파멸찬 복수를 해대는 것도 이런 부류의 여자들이다. 대중은 그런 여자들에게 ‘팜므 파탈’혹은 ‘요부’라는 이상한 명찰을 달아주기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홍 역시 전에 있던 불미스런 일로 인해 팜므 파탈의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여기서, 유부남 조교를 스토킹하고 유림을 유혹해 욕정을 채우고는 기어이 파멸로 이끄는 여자로 왜곡되어 가는 홍의 이면에 자리한 말 못할 기억과 아픔은 사랑을 시간의 담론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녀의 방안에서 흘러나오던 녹음기의 목소리는 전율 넘치는 스릴러의 한 장면과 흡사하지만 그것은 공격이 아닌 자기 방어적 태도일 뿐이다. 게다가 유림에게 “정신병원에 같이 가보자”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다. 물론 그녀를 정신병자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조교와의 불륜도, 유림과의 연애도 모두 그녀 스스로가 자신을 내놓고 방기해버린 결과로 벌어진 것들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고하고 행동해야만 한다. 그 단초는 유림과의 만남이며 그들 사이에 섹스가 개입되고 있음이다. 아픔을 불러온 과정의 반복 속에서 홍은 결단을 내려야한다. 동등한 위상으로의 재정립 혹은 수학여행지에서 벌어진 기억의 폐기를 위해서 유림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만약 눈물이 감정의 극단적 고양 상태에서 치솟아 오르는 존재라 할 때,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 줄기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깨달음의 사유 과정(이성)이 분노와 암담함의 카타르시스(감정)로 극적 변환을 이룬 것인가? 교육청 조사 씬을 뒤로하고 유림은 쓸쓸하게 퇴장하면서 영화가 반전드라마로 변질되려는 찰나이다. 그들은 지루한 줄다리기를 끝내고 마침내 연애의 목적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인가.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사랑의 담론

(가장 앞에서 논했어야 할)이야기를 맨 뒤에 배치하면서 긴 글의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로부터 인간의 기억은 장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시점(과거 현재 미래)은 모두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의 현재는 ‘직관’이고, 미래의 현재는 ‘기다림’이다. 그러하기에 현재와 과거를 구분지어 두 남녀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일은 자못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방식을 통해 그들이 연애라는 한 배를 탈 수 있는 가‘라는)미래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홍은 철저하게 과거에 집착하는 여자다.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고, 남자를 믿지 않는다. 그녀의 집은 추억의 집합소이다. 옛 사랑과의 통화내용이 담긴 녹음기, 빛바랜 사진들, 그녀가 한 때 그렸던 그림들이 그러하다. 그녀에 대해 영화가 알려주는 정보 역시 과거에 일어난 이야기 뿐 이며 핸드폰 속 남겨진 수신부호 역시 모두 과거형이다. 게다가 먼저 전화를 걸지(거는 장면을 보여주지)않는다. 따라서 수동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홍의 현재모습은 영화 속 어디에도 비춰지지 않는다. 수업하는 장면 하나 없이 철저히 과거 속에 유폐된 그녀는 유림 앞에서만 현재형 인간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유림과의 만남은 홍의 삶을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유림을 알게 된 이후, 홍의 현재는 언제나 기억되는 현재(과거)와 상충되며 마찰을 빚는다. 집요하게 그녀 주위를 맴도는 과거를 물리쳐야 하고, 아픈 기억을 떨쳐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그녀에게 현재의 현재란 존재할 수 없으며 유림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홍에게 있어 유림은 현재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림은 현실적인 인물이며 현재에 모든 걸 건 사람이다. 섹스를 하고 싶어 몸부림치지만, 그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이어야 한다. 직관에 따라 움직이고 오늘에 충실하려는 사람이다. 섹스가 아니면 키스라도 해야 하고, 모텔이건 차 안이건 가리지 않는다. 보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자동차 백미러를 부숴서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기다릴 줄 모르고 성급한 남자가 유림이다. 그는 홍의 전화번호 속 수신내용을 실수로 지워버린다. 사실 먼저 전화 걸 일이 없는 그녀에게 그다지 필요한 기능도 아니다. 이 장면은 영화문법이 극단적으로 사용된 영리한 연출이다. 유림이 전화번호를 지워버림으로써(과거의 현재를 없애버림으로써) 그녀를 현재만 남겨진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지도 못한 그녀가 작위적 방법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폭로를 이용한 반전을 결심하게 되고 이 사건을 통해서 유림과 홍은 상징적 동격이 된다.

영화가 좀더 진행되어 그녀가 약혼자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에서 이르면 처음으로 홍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과거의 현재와의 단절을 결심하는 대목이다. 과연, 그녀는 약혼자를 만나 절교를 선언한다. 미적거리던 홍이 적극적으로 현재를 수용하면서 오히려 유림을 밀어붙이는 종반부에 이르면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과거의 현재를 극복한 그녀는 “내가 책임질게” “나 이제 잘 자”라고 말하며 얄밉도록 생글생글 웃어댄다. 참으로 무서운 여자가 아니던가. 모질게 괴롭히던 과거와 안녕하고는 바로 돌아서서 현재에 몰두할 수 있는 여자. 그래서 정작 발칙한 쪽은 홍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연애의 목적]은 과거의 아픈 기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홍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 유림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사랑의 담론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의 현재와 현재의 현재가 만나 미래를 엿보는 이러한 방식은 일견 복잡하고 어렵게 읽힐지는 몰라도, 대다수 영화에 관습적으로 쓰이고 있는 설정중 하나이다. 이제, 솜에 물이 스미듯 두 사람에게 감정이 생기면서 섹스가 연애로 발전하기 이른다.


나가면서.

[연애의 목적]은 두 남녀의 사랑과 애증의 이야기를 적나라한 대사를 통해서 흥미롭게 끌고 가는 멜로영화이다. 요컨대 영화는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와, 사랑이 필요 없는 남자가 만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연애의 목적이 결국에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 하고 있다. 여우같은 여자와 늑대 같은 남자의 치열한 연애질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적나라한 대사 속에서 펄떡거린다. 거리낌 없이 여관을 들어가던 남과 여. 그들은 자신들이 연애를 시작했던 상징적 장소인 모텔을 나와 첫눈을 밟고 걸어간다. 첫눈을 밟던 홍의 발에 맞춰진 카메라는 그녀가 과거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현재를 밟고 미래로 향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쿨한 섹스와 아픈 사랑을 뒤로하고 목적 있는 발걸음을 딛는 그들은 연애에 성공할 것인가. 자못 후일담이 궁금하다.



후기 - 연애의 목적 혹은 싸이더스의 목적

한 때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싸이더스 픽처스는 2004년 후반기,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모두 외면당했던 [역도산]에서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하더니 야심작 <남극일기>마저 기대이하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리곤 2005년 여름 [연애의 목적]을 통해서 원기회복을 모색하게 된다. 물론 결과는 원기회복 못 했음이다. 어쨌든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거쳐 [싱글즈]에 이르기까지 이미 성 담론에 관한한 진일보 된 영화를 기획. 제작했던 경험을 가진 싸이더스가 전작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의도는 관객을 움직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진부하게 섹스를 논하기보다는 노골적이고 유쾌하면서도 현실성 짙은 성 담론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굳이 필요하지 않은 설정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점과 필요이상의 노골적인 대화는 유사한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감독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여겨진다. 이를테면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나 날리면서 쉽게 자고 쉽게 헤어짐이 쿨한 것’으로 읽혀진 것은 관객의 보편된 정서와 연출 사이의 괴리감 탓으로 보인다는 것. 그러니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결국 시원한 감칠맛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영화가 불러온 개운치 않은 뒷맛이라니! 이런 와중에도 영화 내내 흐르던 스페인풍의 기타소리는 기막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7.08.06

찌는 공기 피할 수 없는 태양. 마루에 대자로 누워서 에어콘이라도 틀고 계속 물을 마셔댈 수밖에 없다. 전기세를 걱정하며 선풍기로 종목을 바꿔보지만 불쾌지수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에는 1.저절로 잠이 오는 아주 두꺼운 양장본 책, 2.가슴 서늘해지는 호러물 or 뇌가 즐거운 각종 추리물, 3.생맥주 or 각종 먹거리, 4. 마지막으로 죽부인이 있으면 좋다. 오늘 독자의 머리를 시원하게 해줄 토종 추리극 한 편이 있다. 자 그럼 <극락도 살인사건>과 함께 이름도 낯선 섬으로 때늦은 피서를 가보자.



1. 모든 사건은 다른 모든 사건과 구별 된다.

한 명 죽는 정도로는 만족 못한다면 한 17명 쯤 어떤가. 영화는 핏자국만 남기고 통째로 실종된 섬 주민에게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시간을 돌려 재구성한다. 첫 번째 사건 발생 후 학교교실에서 모여서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닥쳤는지 열심히 추리해 나가는 사람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는지 아무리 말을 맞추어 보아도 짚이는 데가 없다.


23.학교교실 안 (밤)
...(중략)...
상구: 그라믄 내일 일찍 다시 찾아봅시다요. (판수를 쓰윽) 누 말대로 파묻은 자국이 사라지믄 안된께로.

사람들, 어수선 일어나는데...
<태기엄마, 그란디? 타살이믄 시방 우리 중에 살인범이 있단 말 아니여??>
<판수, 뭐시여!? 그라믄 얼른 신고혀야 쓰겄네이!> 사람들 술렁술렁...

우성: 죄송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귀남: !!

우성, 무전기를 고치다 쓰윽 돌아보면,
(태기도 우성과 같은 표정으로 따라 돈다)
에? 사람들, 다시 일제히 집중.

상구: (피식) 혹시 살아있다고 생각하시는 게라?
우성: 아니요. 저 역시 살아있다면 차라리 밖으로 도망가지 숨어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태기: (끄덕끄덕)
상구: 그럼 뭐당가요?
우성: ...그냥 자살이 맞습니다.
귀남: !

INSERT#23 -8 괴로운 듯 흐느끼며 땅을 파헤치고 나오는 덕수...
<뭐란당가? 다시 자살이랴.. 뭐시라?> 사람들 다시 술렁...

귀남: (상기) ...왜죠?
...(중략)...


약간 바보스러운 말투와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이들 주민을 무시했다가는 그 다음날 시체로 발견될 지도 모른다. 특히 띨띨해 보이는 사람들을 주시해서 봐야한다. 눈치 빠른 관객은 첫 시퀀스가 지나기 전에 사건의 원인은 짐작이 가능하지만 이후의 전개를 가늠하기는 힘들다. 동기가 있는 연쇄살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36. 학교관사 (밤)
...(중략)...
춘배가 뭔가에 집중, 스크랩에 진지하게 풀칠 중... 잠시후 베시시... (펭귄에 크게 X자 치고) 59회차 숨은그림찾기를 (일련 회차 순으로 다 쓴) 어린이 스케치북에 탁! 붙여 넣는다. 그리고 60회차 숨은그림찾기도 (이미 다 찾아) 다음장에 붙이려는데...
문득 다음 자리에 이미 붙어있는 낯선 쪽지를 발견, <이장이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놨다>

춘배: ...!?

CUT TO 36-2
백열전구아래... 춘배가 눈이 빠지게 뜯어낸 쪽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장이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놨다>
춘배, 몹시 혼란스런 표정...

춘배: ...대체 요거시 뭐까이??

춘배, 불안한 표정... 이때 부뚜막에서 달그락 소리!
...(중략)...


외부의 혹은 내부의 특정인에 의해서 관찰되어지고 통제되어진다고 여겨지는 섬 주민들. 관찰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은 흘러가고 사건 또한 수습할 수 없게 커져버린다. 모든 우주의 일들에는 법칙이 있고 질서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에 의해서 형성된 근대이후의 과학관이 여기서도 적용이 된다. 하지만 근래에 수많은 실험 혹은 가설을 통해서 -특히 소립자 분야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입증된 바는 이렇다. 모든 사건은 다른 모든 사건과 구별이 된다.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면 수차례 실험을 통해서 적절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종래의 가설과 충돌한다-


2. 무질서의 증가에 대해서


 

59. 이장 집 (오전)
...(중략)...
순간, 느닷없이 판수가 상구를 덮친다.
상구, 엽총을 뺏기지 않을려고 몸부림... 탕!

판수: (고꾸라지며) 으메! 이게 아닌디!

상구가 잔뜩 당황! 조기사와 이기사가 다시 덮친다.
실랑이... 결국 상구, 총을 놓치고, 핑그르르... 춘배 앞으로 떨어지는 엽총..
우성이 긴장하며 총 쪽으로 다가서는데..
춘배,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있다 총을 줍는다.
총 내려놓으세요! 우성의 조심스런 말.
하지만 춘배, 덜덜 떨며 계속 총을 들고 우성을 겨누고,
우성 뒤로 물러서면, 춘배, 이번엔 이장을 향해 총을 겨누고,

태기 엄마: (놀라며) 오메오메! 자가 왜 저런다냐? 피하소이 다들!!!
이장과 함께 아수라장으로 뭉쳐있던 마을 사람들 총구 방향 따라 우르르...저르르...
상구 뒤로 모두들 숨는데... 졸지에 상구 앞에 서고...

상구: (확! 짜증이 난다) 저 병신새끼가! (버럭) 니 얼른 총 안 내려 놓냐!
우성: (나서며) 어서 총내려 놓으세요! 어서요!

춘배, 뒤로 주춤, 발밑에 판수가 밟힌다. 아이고! 판수가 꿈틀!
으악! 놀란 춘배가 넘어지며 방아쇠에 힘이 가고 만다. 탕!

사람들: ...!
...(중략)...


섬에서의 사건은 왜 예측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며 점점 커진 것일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이론을 빌려오겠다. 일명 엔트로피라고 불리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 유용한 상태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 SF도 아닌데 웬 과학? 상관도 없는 ‘엔트로피’ 이론을 영화와 관련지으려는 무리한 혹은 무뢰한 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도 날이 더워서 재미삼아 지루한 이론하나를 적용시켜 보려고 했다면 용서가 될까. 하여튼 엔트로피를 다시 해석해보면 이렇다. ‘우주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상태로 나아가며 이것을 거꾸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쥬라기 공원>의 뒤에 90년대에 유행한 ‘카오스’ 이론이 있었던 것처럼 <극락도 살인사건>의 뒤에는 ‘엔트로피 법칙’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에는 너무 순박하기만 했던 섬마을 사람들. 판수의 마지막 말처럼 으메 이게 아닌데.... 어째쓸까나.

참고서적: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706
  • 1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