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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8 전주별곡 ② 벨라 타르, 그리고 [사탄 탱고] (1)



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남과 동시에 영화제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지난 3일부터 이어지던 기나긴 휴일에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은 부모들, 그리고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봄을 만끽하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주말을 이용해 영화제에 다녀간 수많은 게스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출근, 혹은 등교를 위해 전주를 비운다. 전주영화제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렀고, 일정의 반을 훌쩍 넘기는 중간 지점에 위치했던 지난 주말은 그야말로 북적거리는 두터운 열기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다소 뜸해진 전주는 여전히 영화제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주를 시작으로 매진에 매진 행렬을 거듭하던 상영관 사정은 꿀 같은 휴일이 끝나며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길거리는 다시 노란색 옷을 맞춰입은 지프지기들로 뒤덮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일찍 상영관을 기웃거리는 영화광들의 모습은 어제도 오늘도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로 뒤섞여진 주말에는 볼 수 없었던 반가운 얼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영화가 재밌었더라, 이건 끝내주는 걸작이다, 이 영화는 전작보다 못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가 보았던 영화에 대한 간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득 전주가 슬슬 아쉬워진다. 거리에서 안면이 있는 분들을 만나 커피라도 나눠마시며 막 보고 나온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서울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이런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뛴다. 매년 느낄 수 있는 열기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열기는 아니다. 평소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사람들 옆에 가만히 앉아서 한 두 마디를 건네보기도 한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영화를 보는 하루는 24시간만으로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지난 4월 제 9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이 발표되기 한참 전, 이미 굵직한 줄기는 홈페이지의 메인에 올려져 있었다. 해마다 전주영화제가 열리는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의례적으로 회고전과 특별전의 감독이 누구인지부터 펼쳐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으므로, 거의 아무 정보도 열려있지 않은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를 열심히 새로고침해가며 눌러댔던 나날이 얼마나 되었던지. 그러던 와중에 벨라 타르의 이름을 읽은 것이다.

벨라 타르는, 거스 반 산트가 오마주를 바친 감독으로 이미 동시대의 수많은 감독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첫 번째 선을 보일 때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상영했었고, 당시 심야상영이었던 영화에 대한 호평은 끊이지 않았다. 물론 2000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내가 <사탄 탱고>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전주의 소식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러닝타임 7시간'을 자랑하는 <사탄 탱고>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잠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줍잖게 만났던 <사탄 탱고>는 결과적으로 내게 갈증만 더해준 꼴이 되었다. 그때 나는 <사탄 탱고>를 스크린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못을 깊게 박았다.

때문에 이번 전주영화제에 벨라 타르의 주요 작품들을 포함한 거대한 상영에 <사탄 탱고>가 들어있었으니,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 앞섰다. <사탄 탱고>의 상영 시간동안 서 너 개의 영화를 챙겨볼 수 있었겠지만, <사탄 탱고>가 상영되는 단 하루, 5월 6일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 영화를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난생 처음 접하는 벨라 타르의 다섯 편의 영화에 그토록 시끌벅적했던 어린이날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5일 저녁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를 관람하고 상영 후 조촐한 술자리에 참석하고 나서인 화요일 아침, 멍멍한 머리를 가라앉히고 '결전의 날'이 왔음을 실감했다.

<사탄 탱고>의 상영시간은 약 7시간 정도로, 영화 상영 도중 두 번의 휴식시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사탄 탱고>의 상영을 몇 분 앞둔 전주 CGV 앞 휴식공간에는 벌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탄 탱고> 하나만을 보기 위하여 서울에서 전주까지 달려온 영화의 동지들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렸다. 긴 상영시간에 대비해 눈을 부릅뜨며 쓴 커피를 홀짝이는 친구도 있었다. 혹 영화를 보다가 졸지는 않을지, 뛰쳐나가고 싶지는 않을지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상영관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소망은 딱 하나, <사탄 탱고>의 상영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벨라 타르는 흑백을 사랑해 언제나 영화에 색을 입히는 것을 꺼리는 감독이다. 벨라 타르의 이런 개인적인 기호는 <사탄 탱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은 색과 흰 색의 대비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내야만 하는 신비스러운 흑백필름의 미학을 감독은 꿰뚫고 있었다. <사탄 탱고>는 분명히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였으나, 원작만큼의 내러티브를 기대하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여러 가지의 챕터로 구성되어 등장인물들의 순환을 바꿔가는 영화에서 주된 내용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인과응보, 혹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인 틀 만을 바라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너무나도 간단한 이야기다. 영화는 식상한 표현을 앞세워 말하자면, '인간의 인생은 복잡하다'라는 식의 화두를 던져놓고 꼬인 상태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나의 현상이 던져지고, 그것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장조에서 단조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치 오래된 헛간의 거미줄이 솎아내기 힘들 정도로 얽혀있듯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창조해낸다. 그들은 '주점'이라는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천천히 리듬 속으로 몸을 던진다. 탱고의 12스텝을 토대로 6스텝은 앞으로, 6스텝은 뒤로 발걸음을 옮기며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극한의 공간을 노래한다.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잿빛 아코디언과 검은 색 피아노가 노래하는 세상의 끝, 인류의 바닥을 달리는 변주곡이다.

상영 시간이 긴 영화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소문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성만으로 알려진 영화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러닝 타임이 극에 달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긴 시간 만큼 허점이 보인다는 평을 얻고 있지만, <사탄 탱고>는 이런 영화들과 별개다. 두 번의 휴식시간, 그리고 한정적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비참한 아름다움은 단 한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을 선사한다. <사탄 탱고>의 엔딩 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에 동참하며, 같은 마음으로 <사탄 탱고>를 기다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확신은 '영화 완주'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었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한 영화는 휴식시간과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포함해 11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막을 내렸다. 하루 종일 상영관에 틀어박혀 벨라 타르 특유의 어두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대하는 바깥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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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worx.egloos.com BlogIcon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DVD를 구하는 것조차도 힘든 벨라 타르의 작품들. 이제 다시 <사탄탱고>를 대형 스크린으로 접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까요?

    2008.05.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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