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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진보신당 홍보대사로 활약했던 배우 김부선을 만나다


모든 실천은 분노에서 출발한다. 부당한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 진보신당 홍보대사로 위촉돼 이번 총선에서 발로 뛴 배우 김부선도 다르지 않다. 그녀가 대마초 비범죄화를 부르짖고, 한미 FTA 반대 시위에 발 벗고 나섰던 것도 순전히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 탓이다.

이제는 '정치적'이란 수식이 낯설지 않은, '진보신당' 홍보대사였던 김부선을 총선 직후 만났다. 진보신당과 정치권, 방송사에 대해 논리정연하지는 않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분위기에서 왜 그녀가 진보신당 홍보대사직을 수락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체력이 달렸고, 돈이 달렸다... 돈, 정말 필요하더라"

섹시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부각되어 온 김부선은 의외로 인터뷰 내내 비정규직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실제로 '대마' 배우란 주홍글씨가 여전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아 수차례나 캐스팅이 좌절되며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던 경험도 털어놨다.

이제 '정치적'이란 수사를 거부하지 않는 김부선.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한국사회의 피해자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벗어난 배우 김부선의 투쟁은 분명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음은 김부선씨와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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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뒤풀이는 잘했나요.

"중앙당 갔다가 12시에 빠져나왔어요. 안 가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가보니까 아무도 없더라고요. 멋있게 우아하게 웃음 잃지않고 있다가 막판에 기자들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XX, 진보신당 노회찬 보좌관 나와서 무릎 꿇으라 그래' 그랬어요(웃음). 그랬더니 나한테 맞겠다 싶었는지 기자들이 카메라도 철수해서 가버리는 거예요(웃음). 너무 성질이 나는 거예요. 정말 전국으로 열심히 뛰었고 순수한 자원봉사였는데…."

- 자원봉사였어도 분명히 정당 활동이니까 힘든 점이 있었을 텐데요.

"상처요? 그보다 우선 체력이 달렸고, 돈이 달렸어요. 돈은 정말 필요하더라고. 마음 같아서는 빌릴 수만 있다면 500만원 정도만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돈 하고 체력도 달리고….



거기다가 영화는 많은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줄 알잖아요. 그런데 너무 늦게 시작한 신생 정당이다 보니까, 솔직히 조직이 과소평가도 되는 거예요. 애기들이 하는 일이 미숙하고 그런 것처럼, (진보신당이) 아마추어처럼 보이니까, 아주 이기적인 생각으로 난 아직도 가입을 안 했어요. 우리 연예인 자체가 열정적이고 일단 뛰어들면 퐁당 한다고, 순수하게…."

- 총선을 준비하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총선 시작하면서 모든 걸 다 끊고 정치에 중독돼서 뉴스하고 인터넷 검색만 했어요. 그러니까 쏠쏠 알아오는 동시에 분노가 같이 와요. 시대의 부름 같고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으니까 두려운 거예요. 마치 종교에 빠진 광신도처럼. 정치가 그런 중독이 있는 거 같아요. 또 유일한 공통점이 함성에 '뻑'이 간다는 거,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니까 맛이 간 정치인들이 많은 거 같고, 현실을 모르고 환각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표 깎아먹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에 젖어 울기도 했다"

- 진보신당 홍보대사 직을 수락한 건 노회찬 의원과의 친분 때문이었나요.

"당연히 그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어요. '도와주실 거죠?', 그래서 '저 감방 갔다 나오면서 말했잖아요'라고 답하면서 흔쾌히 수락을 했죠. 그게 고마웠던 게 결정적이지만 평소 노회찬 의원 활동이 두드러졌어요.

항상 거리에서 추울 때 (노 의원을) 만났었죠. FTA 문제나 스크린쿼터 축소 때요. 다른 국회의원들은 정당 눈치 보고 대중들 눈치 볼 때, 그 때 민노당 사람들하고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거리에서 보이더라고요. 아, 좀 미안하잖아요. 그 때 영화인들이 밥그릇 문제 되니까 농민들에게까지 관심 갖는 건 당연해요. 저도 2년째 비정규직이고 거리로 뛰쳐나가니까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해가 되고 뭉쳐지는 거죠."

- 홍보 대사 활동을 자체 평가한다면?

"(진보신당 내에서도) 아직은 보수적인 사고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김부선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숨어있는 유권자들이 있거든요. 그 숨은 표를 꺼내야 했는데. 미혼모,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약물 중독자 같은 소수자들 말이에요. 한 집 건너 한 집 연결 안 되어 있는 집이 없을 거예요. 내 친구 딸·아들일 수도 있고. 근데 김부선이가 표를 깎아 먹지는 않을까 하는 엄청난 피해망상에 젖어서 이틀을 울기도 했어요. 결과가 좋다면야 상관없었겠지만. 끔찍한 것이…, 둘(노회찬·심상정 의원) 중 하나는 (당선될 줄) 알았거든요."

- 지방으로도 유세를 많이 다녔더라고요. 힘들진 않았나요?

"전 노회찬 의원밖에 모르고 시작한 거거든요. 또 사실 좀 전에 돈 얘기는, 비례대표 후보들조차 8일까지 명함이 없었대요. 조직 시스템 자체가 체계적이지 못했던 거죠. 제가 부산에서 그날 바로 제주도, 거기서 청주·광주까지 갔다 왔거든요. 이 사람들이 경험이 없으니까 여기 가라면 여기 가고, 저기 가라면 저기 가고…. 난 그저 노원에서 노회찬씨 얼굴마담이나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런 게 좀 힘들었어요. 저만 느끼는 정서나 외로움이 있었죠."

- 아무래도 좀 더 스타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환경 탓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서운하지는 않았나요?

"그럼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고 유치하기 그지없고…. 그 쌈마이 4류 정치인 못지않은 5류더라고요. 의도하지 않게 문소리씨랑 함께 유세를 한 적 있어요.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대중들이 그렇게 많은 자리에 (내가) 갈 기회도 없었고요. 시위 현장에 나가는 것이 꼭 무슨 거창한 정치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외롭고, 제가 요구하는 이슈랑 맞으면 식구 같고 내 편 같고, 그런 게 있잖아요. 일정보다 일찍 가서 시장통에 숨어서 무슨 얘기하나 보고 있는데 심상정 의원이 불러요. (그 때) 문소리씨를 처음 봤는데…, 그 친구도 망설이다가 유세장에 나온 거에요.

(그 이후) 일말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대한민국 배우들, 정치적인 사안에서 몸 납작하게 엎드리는 배우들을 밖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요. 그게 건강해지는 사회 아니겠어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죽어도 금기였잖아요. 자기랑 의견이 맞는 당에 가서 활발하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수잔 서랜든, 얼마나 멋있어요. 제 모델이에요."

- '진보신당' 이름을 걸고 활동하면서 개인적인 의견과 배치가 되는 건 없었나요? 

"정치인들이 항상 반 박자가 늦어요. 감각이 이렇게 대중들보다 늦어서 되겠느냐 싶었죠. 제가 전북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와 만나서 홍보대사들끼리만이라도 만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어요. 변영주·박찬욱 감독, 진중권 교수 등등 있잖아요. 근데 또 그런 여지가 없었었는데 이해해야죠. 시간이 불과 열흘밖에 없었잖아요. 그들이 우리를 잘 이용하지 못한 거죠. 판을 깔아주고 우리 길만 터주면 올인 했을 텐데. 그래서 상처받는 연예인들 많았을 거예요. (두 의원이) 떨어져서…(웃음)."

- 이렇게 정치적인 활동에 열심히 뛰어들게 된 계기는 뭔가요?

"헌법재판관 9명이 전원일치로 합헌 판결을 냈을 때, 전투력이 상승됐죠(김부선은 지난 2005년 대마초 관련 처벌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낸 바 있다). 어떻게 재판관이 모두가 똑같은 의견을 낼 수가 있어요, 공산당도 아니고. 제가 20년 동안 공권력에 억압과 감시를 받고 있는데. 기가 막힌 거죠. 사람들은 여기는 한국이다, 외국 가서 펴라고 하는데…. 그럼 전 여긴 지구다, 우린 지구인이다, 말하고 싶어요."

- 요즘 문화계 돌아가는 분위기는 어떻게 느끼세요?

"유인촌 장관이 자기네가 만들어 놓은 법은 안 지키고 문화예술인들 나가라고 할 게 아니에요. 자기 취향에 맞지 않다고 근거 없이 자르는, 그런 웃분들을 속아내는 게, 이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한나라당 잡고 있는 감독협회 사람들이 다시 한몫해 보겠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죠."

"진짜 '쌈마이' 국회의원 역할 잘할 자신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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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작품 얘기를 해 보죠. 그간 작품 활동이 뜸했던 이유가 드라마 촬영 직전까지 갔다가 퇴출당했다고 들었는데요.

"오늘날 한예슬을 탄생시킨 드라마 <환상의 커플>, 제가 희극 연기에 자신이 있어서 캐스팅이 된 뒤로 준비도 많이 했는데 윗선에서 잘랐대요. 대마초 피우는 배우라 이미지가 안 좋다는 거죠.

시청자들이 왜 저런 여자를 썼느냐는 말에 총대 메기 싫으니까 다른 방송국 가서 한 작품만 하고 오면 자기가 써주겠다고 했데요.

사실 <달자의 봄>이 치명적이었어요. 근데 웃기는 건 KBS에서는 <드라마 시티>에 출연해서 연기상 단막극 연기상 후보에도 올랐거든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뛰고 있는 감독들은 김부선 연기 좋다고 후보에도 올려줘도 높은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대마초 핑계로 대는 거죠."

- 드라마는 막힌 상태라 영화 쪽만 바라보고 있는 건가요?

"아니죠. 한두 달 전에 MBC에서 또 연락이 왔어요. 시즌제 드라마에 출연해 달라고. 이번에도 출연결정까지 다 했다가, 기획한 국장이 저번 그 국장이라, 제가 죄송하다고 안 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제가 자살까지 생각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기획한 드라마 할 수 없다고 했죠. 당장 아쉬워도 그게 저예요. 계산을 못 하겠어요. 잠깐 숙이면 되는데…. 그건 옳지 않잖아요. 뭐 제가 <히트>에도 잠깐 나가고, <별순검>도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 나왔거든요. 절망했다가 이제 분발해야겠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 그런 아픔을 이제는 연기로 풀어야 할 텐데요.

"조만간 영화인들의 창작 욕구가 불타오를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진중권씨가 하는 것처럼 개그 소재를 너무 많이 주기 때문에…. 정치 영화나 블랙 코미디가 많이 나올 거라고요. 그러면 진짜 '쌈마이' 국회의원 역할 잘할 자신이 있어요(웃음)."

- <별순검> 같이 좋은 작품으로 많이 활동해야겠어요.

"그게…, 우리는 '비정규직'이고 (생활이) 불안해요. 일이 없으니까 자꾸 불안한 거죠. 일만 계속 있으면 우울증 증세도 없어질 텐데…. 웃분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 대본 하나 받으면 산 속에 들어가서 대사 하나하나 파고들어요. 다 직업병이죠.

우리 딸이 뭐라고 하냐면, 완전 밑바닥 아줌마나 처량하고 한 많은 여인네를 연기해야 되는데 매번 마담이나 들어온다니까 '엄마가 섹시하고 예쁘니까 그렇지' 그래요. '엄마가 학교에 갔다오고 나서 과 선배들이 엄마가 몸매가 더 예쁘다 한다고, '엄마 대한민국 꽃미남 청춘스타 다 만나봤잖아' 그러면서…. 가만 생각해보니까 비록 영화 속이지만 제가 추레하면 같이 붙이질 않잖아요. 어떻게든 살아날 거예요. 작품은 또 때가 되면 할 수 있으니 초조하지 않을 거고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geodaran.com BlogIcon 커서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부선님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엔 지역구 한번 나오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합니다. 진심입니다. 연예인들 확실히 달려든다면 진보정당의 브랜드 상승효과도 상당히 클 거라 봅니다. 물론 김부선님 자체도 정치적 자질이 대단하시고요. ^^

    2008.04.26 22:37 신고
  2. 뭉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부선님의 연기를 자주 보고 싶네요~
    언젠가 그렇게 될거라 믿어요 ^^

    2008.04.27 00:36
  3.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_top_blogtop=go2myblog BlogIcon 실비단안개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2008.04.27 08:27
  4. 노회찬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부선 하리수가 떨어뜨린거나 마찬가집니다.

    2008.04.27 09:51
  5. 근데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개 지금 뭐하는 거야 ㅋㅋ

    2008.04.27 10:54
  6. 길상초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수고하셨습니다.한 1년만 지나도 김부선씨 찾는 영화감독들 많을 겁니다. MB하는 걸로 봐서는 2,3년도 안걸릴 거 같아요. 지지율이 30% 밑으로 가는 게요... 항상 행복하시길.
    그리고, 소수자의 아픔과 희망을 같이 하지 못하는 자는 지구인으로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완벽한 인간이란 없는 거고 그걸 알아야만 비로소 밥먹을 자격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2008.04.27 11:47
  7. Favicon of https://lahappy.tistory.com BlogIcon smokybear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2011.03.02 15:56 신고

2시간여 남짓한 인터뷰 내내 박효주는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특유의 비음섞인 목소리에 행복이 묻어났다. 배우가 행복한 이유가 무엇있겠는가. 좋은 작품으로 사랑받는 기쁨이 최우선 아니겠는가. <추격자>와 <별순검>으로 시공을 초월한 형사 캐릭터를 소화해낸 박효주는 지금 연기와 목하 열애중이다.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눈물지었지만, 박효주는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절대 변치않으리라 자신한다. 궂은 날도, 맑은 날도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듯, <추격자>와 <별순검> 촬연 형장을 오가며 일에 매진한 2007년은 육체적으로 힘든 한해였다. 하지만 타고난 인복을 바탕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현장은 일터이자 학교였고, 놀이터가 되어줬다.

잠시 '척추분리증'이란 희귀병을 앓았다는 사연이 알려져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궜지만 실상은 발레리나 출신답게 '액션' 연기를 즐길 만큼의 노하우도 쌓았다.  지금 물론 박희주 최대의 관심사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캐릭터 소화. 그러나 속전속결은 금물이다. 뒤늦게 찾아온 연기에 대한 연정을 느긋하게 즐길 작정이니까. 어차피 "따뜻한 할망구"가 될 때까지 할 연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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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이하 ‘하’)
<추격자>자 재미있게 잘 봤어요. 너무 좋던데요. 관객들 반응도 장난 아니고요. 어떻게 출연하게 됐어요?
박효주(이하 ‘박’) 영화 정말 잘 나왔죠? 오형사 역할로 오디션을 봤어요. 저도 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에어시티> 끝나고 <별순검> 하기 직전 <추격자>에 캐스팅 된 거예요.

일정이 겹치지는 않았나요?
같은 주에 같이 시작하는 바람에 초반엔 많이 힘들었어요. <추격자>는 밤 촬영이 대부분이어서 낮에 <별순검> 촬영하고 밤에 <추격자> 촬영하면서 밤을 꼬박 샌 적도 많았죠.

<별순검> 현장도 빡빡했다고 들었는데요.
네, 그래서 작년에 정말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추격자> 현장에서는 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까. 구르고 싸우는 거 말리고 이런 거만 시키니까요. <추격자> 촬영만 갔다 오면 아팠죠. 제 첫 촬영이 산 속에서 시체 찾다가 구르는 신이었어요. 한 다섯 번 정도 굴렀나? 아, 처음부터 만만치 않구나 싶었죠.

몸을 쓰는 연기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재미있어요. 오디션 보고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사실 역할을 떠나 감독님 단편을 보고 어떤 분일까 궁금했었어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영화를 만든다면 참 재미있겠다 싶었죠. 오디션 볼 때도 연기 디렉팅이 남달랐어요. 아무리 작은 역할이고 비중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같이 참여하면 분명히 득이 되겠다는 생각이 컸던 거 같아요.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시켜주세요 그랬죠(웃음).

감독님 성격은 어때요? 영화도 그렇고 굉장히 셀 거 같은데.
네, 한 성격 하세요. 하하. 사실 배우들에 대해서는 별로 세지 않았어요. 항상 서로 얘기하고, 그런 면에서 감사했고요. 현장 진행에 있어서 부딪치는 부분이 있으면 (분위기가) 좀 험하잖아요(웃음). 그게 또 감독님 카리스마인거 같아요. 귀여울 땐 얼마나 귀여운데요.

함께 붙는 신이 많았던 김윤석, 정인기씨는 대선배잖아요. 어떤 모습이 기억에 남던가요?
워낙 선배님들인데다 여자 혼자니까 많이 챙겨주셨죠. 윤석 선배님은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에>에서 함께 했고요, 이 작품과 나 감홍진 감독님을 소개시켜줬어요. ‘82년생 박효주라고 있어’란 문자도 감독님한테 보냈주셨고 선배님 덕택에 더 친밀할 수 있었죠. 윤석 선배님은 그 전 작업도 있었고 워낙 잘 챙겨주세요. 같이 부딪치는 신은 많지 않아도 촬영장에 함께 있는 날들이 많으니까요. 항상 촬영 끝나면 그 다음날 전화 먼저 해서 어땠는지, 어떻게 찍었는지 알려주고. 인기 선배님하고도 재미있었어요. 오형사, 이형사가 항상 붙어 있으니까요. 같이 수다 떨고(웃음).
<추격자>에서 본인 장면이든 아니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서영희 선배 장면인데요, 처음 잡혀가서 욕실에서요. 그렇게까지 나올지 몰랐거든요. 읽으면서도 느낌이 세다고 생각했지만 찍은 걸 보니까 정말 소름 끼치더라고요. 두 배우가 고생한 것도 보이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니까요. 그런 잔인한 장면을 정말 잘 찍었구나. 그리고 전 ‘왜 우리가 항상 골목길에서 촬영을 하지?’ 그랬거든요? 어, 근데 영화 내내 골목길을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대단한거에요. 미로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어휴, 이런 거였어? 좋은데?’ 전 찍을 때는 몰랐거든요. 통제도 안 되고, 힘들어 죽겠는데. 골목길 촬영 때문에 스탭들이 통제하느라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현동, 성북동에서 찍었는데 골목의 느낌이 정말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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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망원동 주민이나 골목길에 사는 분들은 정말 무서울 거예요. 미진이 죽을 때 눈물짓는 컷도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왜 클로즈업을 주지 않았나 싶었는데.
찍었어요(일동 웃음). 원래 엄중호가 소리칠 때 오형사의 얼굴 한 컷이 어떤 타인의 느낌을 주거든요. 관객의 표정일 수도 있고. 제 눈앞에서는 현장 편집을 그렇게 했거든요(웃음). 그런 식으로 빠트린 컷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 부분에 내 바스트 나올 텐데, 내 신 나올 텐데.’ 전 다 아니까요. 근데 흐름상 껄끄러울 것 같다 싶었거든요. 내가 봐도 이건 아닌 거 같고(웃음). 별로 상처받진 않았어요. 어차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할이 크든 작든 모두 한 목소리를 내는 거니까. 어떤 배역이든 조금씩 녹아내야지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제가 잘 못해냈다는 아쉬움은 있어요. 분명히 있었는데 편집에 의해서 설명이 안 되더라고요?(웃음) 감독님 선택이 좋았던 거 같아요.

형사들의 심리는 정인기씨가 연기한 이형사에게 몰려있는 거 같더라고요.
네, 경찰들 부분은요. 감독님이 그 얘기를 했었어요. 영민이가 미진이를 죽이기 전에 잡혔잖아요. 같은 여성인 오형사와 어떤 피드백도 없지만 지영민이란 사람 옆에 여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극의 긴장감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단 하나 ‘생리하셨나봐요’, 그 대사는 영민의 성격을 더 부각시키기 위한 거였고요.

오형사가 확실히 여자라 역할이 작아도 도드라져요. 목소리는 역할마다 조금씩 바꾸는 거 같던데요.
아유, 감사합니다. 역할마다 달라지는 거 같기도 해요. 그런데 오형사는 그냥 가서 제 모습을 찍은 거 같아요. 감독님도 어떤 캐릭터를 뒤집어쓰는 걸 굉장히 싫어했고요. ‘당신 그냥 형사인거 다 알거든요?(웃음)’ 엑스트라 분들한테도 촬영 전에 꼭 얘기해요. ‘제발 설정하지 말고 그냥 있어주세요’ 그런 얘기들. 어떤 캐릭터나 설정을 하면 바로 컷을 불러요. 저도 알아요. ‘이럴 줄 알았어, 딱 걸렸네.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이러면서(웃음).

사실 배우라면 설정에 대한 욕심도 있을 텐데요.
거기서 꼭 욕심을 안 부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상황에 집중해야죠. 그런 배우들도 있어요. 뭔가 설정하고 튀려고 하고. 우리 기동수사대는 하나란 말이에요. 거기서 튀는 행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오형사는 박효주가 짜증나있는 상태의 모습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던 거 같아요.

본인이 보기에도 그래요? 짜증나면 내가 저런 모습인가?
네. 정말 촬영 내내 짜증나 있었어요(웃음).

영화마다 장르의 느낌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그럼요. 정말 다 다르고 삶이 달라져요. 촬영하면서는 밖으로 나가는 거 자체를 거부하고요. 어떤 캐릭터를 만나면 친한 친구 같아요. 같이 있는 동안 충실하고 싶고. <에어시티> 같은 경우는 해피하게 보냈고요. 솔직히 <추격자>는 계속 짜증이 나 있었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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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사는 짜증은 몰라도 실제 박효주와는 꽤나 멀리 간 인간형 같아요. 의식도 많이 했을 거 같은데요.
오은실 같은 경우 그 안에서 공감을 많이 했어요. 선배님들이 엠티를 가서도 그런 조언을 많이 해줬던 거 같아요. “여기 경찰서에 있는 이 사람들은 정의감은 다 사라지고 돈 벌려고 와 있는 거야.” 그 말이 정말 맞아요. 정의감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내가 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공허한 상태의 눈빛. 스스로들 그럴 때가 있잖아요. 공감을 못해서 어렵진 않았어요. 연기를 진짜 사랑하지만,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었죠. 제가 보기에 오형사는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짜증이 난 거에요. 하필이면 그날 생리도 하고, 수산시장에 대충 있다 가면 되는데 사건이 너무 커지니까. 또 그 밤에 가서 삽질하고 굴러야 되니까. 그런 느낌들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형사 역할을 연이어 맡았어요. 어느 인터뷰를 보니 “연약함 속에 숨어 있는 강인함”이란 멋진 말도 했더라고요.
왜 강인한 역할만 맡느냐, 여성스러운 역할도 맡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여성스러움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오형사나 <별순검>의 여진도 강한 여자가 참고 인내하는 모습 속에 피어오르는 여성성이 있잖아요. 아무리 강한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은 아닌 거잖아요.

스릴러나 호러 장르 영화는 잘 봐요?
잘 못 봐요. 근데 <추격자>는 잘 봤죠. 아는 내용이고 아는 사람들이니까(웃음). 공포영화는 진짜 못 보지만 심리 스릴러는 잘 보는 편이에요. 근데 잔인한 장면은 정말 못 보거든요. 예전 <레드 아이>때는 너무 무서워서 소리 지르고 다녔어요(웃음). 그 촬영장이 너무 싫었고 분위기도 공포 영화 찍을 때는 세트장 분위기도 안 좋은 거 같아요(웃음). <추격자> 마지막 부분에서 기동수사대가 시체 찾는 장면인데, 너무 리얼하게 만들어서. 살 느낌이 딱 오는데 아, 진짜 싫더라고요(웃음).

이제 <별순검> 이야기를 해 보죠. 드라마가 너무 잘 돼서 기분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네, 너무 좋고 그 현장이 그리워요. 정리를 좀 하려고 했는데 저번 주에 스페셜 방송 때문에 또 보고나니까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어요. 너무 좋은 분들하고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정말 많이 정을 쏟았고 사랑했던 거 같아요.

어떤 인터뷰에서 류승용씨는 쫑파티 할 돈 있으면 그걸로 스탭들 보너스를 주라고 말 할 만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하던데요.
아무래도 돈이죠. 스탭들이 정말 고생했고요. 하루에 30~40신 찍는 다는 건, 미친 거죠(웃음). 류승용 선배가 “그 기사 너무 건방지게 나오지 않았어?”라면서 과격하지 않느냐고 걱정하던데요?(웃음) 사장님들 보면 화내는 거 아니냐며. 설날 때 <서툰 사람들> 공연 보러가서 만났거든요. 근데 작가들이랑 감독님은 너무 잘했다고, 인터뷰 너무 잘 봤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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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주완씨는 같은 소속사고, 안내상씨까지 네 분 호흡이 정말 좋았을 거 같고요.
류승룡 선배는 인간적이고 너무 따뜻해요. 정말 재미있고요. 같이 촬영하는 신이 사건 현장 나가거나 회의 할 때나 정해져 있잖아요. 가끔 떨어져서 각자 조사하러 나갈 때면 외로울 정도였어요. 혹시 SES나 핑클 같은 댄스그룹들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일동 웃음)

<별순검>의 여진이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똑똑하고 바르고 강인하고.
연기하면서 그녀와 대화를 많이 했어요, 이럴 때 여진이는 어떨까 하면서. 여진이는 꼭 언니 같았어요. 그런 캐릭터를 간절히 원한 시절이기도 했고요. 처음에 시놉시스 읽었을 때도 ‘이거 안하면 난 바보야’ 이랬어요. 그래서 좋은 캐릭터를 내가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도 있었던 거 같고요. 초반에는 혼란도 조금 있었어요.

어떤 면이요? 시나리오 상에서요?
감독님과 제 생각이 조금 안 맞았어요. 이해 못했을 수도 있고, 제 몸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초반부 여진이는 굉장히 들 떠 있어요(웃음). 그런데 마지막 즈음은 아주 달라요. 류승용 선배도 초반에 들 떠 있어요(웃음). 감독님들이 남자라 그런지 여진이는 여성스럽고 밝은 느낌을 요구했었어요. 초반에는 이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확실히 자리가 잡혀 갔어요. 내상 선배 같은 경우 막판 갈수록 더 까불어요(웃음). 시청자들도 초반에는 여진이 도대체 어떤 캐릭터냐고 물어서 힘들었는데, 후반부에는 여진이가 어떤 캐릭터라는 걸 알려주고 끝내서 다행이고 보람도 있었죠.

<별순검> 같은 경우 팬들이 살려냈고 마니아도 많아서 뜨끔 했겠어요.
우리 팬들은 정말 전문적이에요. 깜짝 놀랐어요. 너무나 전문적으로 잘 꼬집어 주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게 만들어줬던 거 같아요.

평소 성격은 어때요? 차분해 보이는 여진이랑 다를 거 같기도 한데.
아니요. 저한테는 여진도 있고 오형사도 있고. <에어시티> 임예원 같은 경우는 밝은 제 모습을 극대화시켜 보여줬어요. 여진의 어두운 부분도 제 안에서 파생됐다고 생각하죠. 오형사는 짜증내는 면이 저 답고요(웃음). 제 성격은 밝고 긍정적이고요, 사람 굉장히 좋아하고 잘 믿고, 상처도 잘 받고.

목소리는 어때요? 평소는 분명 하이톤인데 <별순검>에서는 꽤나 저음이에요.
여진이가 너무 하이톤이면 사건을 얘기하거나 할 때 약해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사극은 기본적으로 힘을 좀 줘야 해요.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헤맸죠. ‘이건 조금 연기 같지 않아?’하는 것들이 사극이니까 가능해요. 그게 저랑 맞지 않아서 불편한 거였고, 그러다보니 목소리 톤도 좀 바꿔야했고요. 목소리는 기분 상태에 따라 바뀌는 거 같아요. 정말 기분 좋을 때는 <에어시티> 예원이처럼 시종일관 하이톤으로 이야기 할 때도 있어요. 어떤 목소리를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다 제 목소리 중 하나에요.

퓨전사극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잘 어울리던데요. 사극은 처음 아닌가요?
제가 사극을 하게 될지 몰랐어요. 현대적이다, 도시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전 알고 있었죠. 예전에 한국무용을 했었기 때문에 안 어울리는 건 아니야(웃음)! 원래 (그런 면이) 있거든?(웃음). 앞날은 모른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중요한 시점에 <별순검>을 하게 됐는데 그게 사극이 될 줄은 몰랐죠. 그 전에 발랄한 역을 많이 했거든요. 배우들은 누구나 다양한 역할에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 하잖아요. 그 전까지 폭이 넓지 않았어요. 아픔도 있고 어두운 부분에 다가간 역할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오만이 아니라 처음으로 그런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거 내가 해!’(웃음).

호흡도 길었고 주요한 캐릭터였어요. 시청률도 좋았고. 연기 면에서 도약이 될 거 같아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랄까요.
네, 확실히 전체를 보는 눈이 더 넓어 진거 같아요. 너무 행복해요. 솔직히 <추격자 >는 몸으로 하는 연기가 많아서 만날 힘들었는데(웃음). 별순검은 지루하지가 않았어요. 원래 한 10부 정도 넘어가면 조금 지겨워지잖아요. 언제 다 찍어, 그러면서. 근데 단 한번도 지겹다는 생각이 안 들고 너무 좋았어요. 여진이를 떠나보내는 것도 너무 싫었고요.

다음 시즌도 꼭 찍어야겠네요.
(웃음) 마무리를 하지 않은 상황에 끝나서 그게 조금 궁금하기는 해요.

이제 인지도도 욕심이 날 시기잖아요. 아직 박효주 하면 <별순검>이 가장 큰데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잘나가고 싶었어요(웃음). 그 마음이 없어진지 오래지만. 그렇다고 못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딱 하나는 있어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작품을 (다양하게) 할 수 있잖아요. 박효주를 모르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니까 버릴 수 없는 욕심인 거죠. 지금은 점점 불러주니 좋아요(웃음). 폭이 넓어지는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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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할 때 보니 옆모습이 진짜 장만옥을 닮았어요.
으흐흐흐.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제 중학교 때부터 이상형이었거든요(웃음). 성룡 영화 나왔을 때부터 챙겨보고 왕가위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죽음’이고요.
제가 장만옥 여사님 광 팬이에요.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우와, 저랑 너무 비슷하다. 홍콩 영화 없었으면 전 배우의 꿈도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첨밀밀>부터 <중경삼림> <2046>까지 홍콩영화 너무 좋아했어요. 저 영상 속에 있는 여주인공이 참 부럽다 하는 막연한 동경도 있고요.

처음 잡지 ‘쎄시’ 모델로 데뷔했다고요? 길거리 캐스팅?
어유, 전 그런 거 없어요(웃음). 누가 저를 길거리 캐스팅해요(웃음). 우연히 아는 친구가 프로필 찾으러 간다고 해서 같이 갔어요. 그 친구에게 감사하죠(웃음). 그때 대표님 눈에 띄어서 돈도 안 든다고 해서 그냥 사진 한 번 찍어 본거죠(웃음).

여배우들 데뷔 얘기 들어보면 항상 같이 갔던 친구들은 잘 안 됐더라고요. 원래 전공은 발레였다면서요.
하하. 그 친구도 정리했어요. 저도 우연히 그렇게 됐네요. 허리가 아파서 고등학교 때 발레에서 한국무용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고3 때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중요한 상황이었거든요. 무용과를 가기도 그렇고 연극영화과를 가기에는 겁이 났고(웃음). 사진과 가고 싶어 사진 학원도 기웃거리고. 저는 목표를 잘 세우고 어릴 때부터 딱 그것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인데 막판에 뒤죽박죽 돼서 혼란스러웠죠.

인터뷰 준비하면서 하도 ‘척추분리증’ 기사를 많이 봐서 내심 걱정을 다 했어요.
이제는 괜찮은데(웃음).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걱정을 해 줘요.

진짜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 들었나요?
아무래도 기회들이 생기잖아요, 오디션도 보게 되고. 솔직히 제가 너무 못 하는 거예요. 무용을 했기 때문에 사진은 잘 찍었는데 연기는 또 너무 다르니까요. 저한테 화도 났고 실망도 들었고. 첫 작품이 장진 감독님 <극단적 하루>에요. 어디 가서 입 뻥끗하는 거 처음이었는데 너무 떨리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바보 같고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뭐 하고 있나 싶은 거예요. 그 때부터 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채찍질을 했고요. 배우를 하면서는 게으르지 않게 사는 거 같아요.

그럼 언제까지 그런 채찍질을 계속 했어요?
나를 달달 볶고 괴롭히고, 어떻게 보면 오기도 있었고요. ‘난 왜 못하지?’ 그런 질문 속에 정신없이 살다 1년 넘게 일을 안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죠. 마음이 확고해졌으니까 과거와 다른 어떤 큰마음이 생겼던 시기였어요. 연극도 해 보고, 오디션도 다 보고. 예전에는 오디션 한 번 떨어지면 미친 아이처럼 울고 그랬어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욕심도 많고 그런데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웃음). 이제는 길게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죠. 연기 말고 다른 게 없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 또 다른 원동력이 생기면서 지탱을 해 나가는 거 같아요.

지금에야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죠. 어느 인터뷰에서 오디션을 300번 정도 떨어졌다고 했어요. 또 1년 반 정도 쉬고 그러면 어렸으니까 굉장히 불안했을 텐데요.
하하, 그럼요. 그런 면이 항상 저를 괴롭혔고 또 일어서게 했던 거 같아요. 잘 울어요. 딱 울고 나면 정신 차리고요. 무엇보다 단 한번도 포기하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속상하고 화가 나도 신기하게 ‘나 안 할래’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연기자로서) 정체성이 완전히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시간들 덕분이었죠.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계기를 꼭 하나만 꼽는 다면요?
전 책이었어요. 그 시기에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어요 .그 책을 읽고 ‘어, 난 이런 고민도 없이 뭘 하겠다고 설친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의지도 되고 제가 많이 바뀐 거 같아요. 그 책이 너무 어려웠는데 또 고교 권장 도서라더군요(웃음). 우리 고등학교 때는 그런 책 없었는데(웃음).

그래요? 그럼 저도 어려울 거 같은데요(웃음). 그렇게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아쉬운 작품은 없었어요?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죠. 딱 하나만 꼬집을 수는 없을 거 같고요. 끝까지 갔다가 떨어진 것도 너무 많고(웃음). 촬영 전날 펑크 난 것도 많고, 정말 책 한권 써요(웃음).

이제 다 지난 일이 잖아요(웃음). 하나만 공개한다면요.
창피해요(웃음). 그 작품들 다 아니까 연상을 하게 될 거 아니에요. 최호 감독님 굉장히 좋아해서 작품에 들어갈 뻔 했는데 막판에 다른 배우가 됐고요. <올드보이> 오디션도 최종 8명까지 뽑혀서 박찬욱 감독님이랑 최민식, 설경구 선배 앞에서 최종 면접을 봤었어요. 그때 박찬욱 감독님이 장만옥 닮았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그때부터 더 미친 듯이 영화들을 찾아 봤죠. 최고의 배우를 닮았다는 건 얼마든지 장점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멋있지 않아요? 너무 좋아요, 막 이래. 너무 멋있게 늙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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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얼굴이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이에요. 극적인 드라마보다 리얼한 드라마에 어울리는. 혹시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전 그렇게 믿어요(일동 웃음). 어렸을 때는 제가 아주 평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모델을 했는데 특이하게 생겼다는 거예요. 연기를 했을 때는 그 특이함이 또 별로 장점이 안 됐고 다양한 역할을 만나지도 못했고요. 거울을 보면서는 항상 스스로를 위로해줬어요. 너무 예쁜 친구들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드라마에 잘 녹아드는 얼굴이라고 저 스스로가 믿었죠. 그런 면이 다양함을 가질 수 있는 배우의 장점인 거 같아요. 물론 그 장점을 받아 들인지 얼마 안 됐지만. 더 빨리 그 장점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겠죠.

<파란자전거> 때도 주변에 있을 법한 친구라는 느낌이었는데요.
네. 전 <파란자전거> 같은 영화가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모나고 날카로운 생각만 했는데, 그때는 그런 시간들이 다 지나고 편안한 상태였거든요. 작품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진. (눈을 만지작하며) 그때부터 눈 꼬리가 이렇게 내려왔던 거 같아요. 옛날 사진하고 진짜 다르다니까요. 성형 없이도 사람얼굴이 변한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좋아하는 걸 하려면 먼저 변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 따뜻한 드라마를 갈구했는데 결국 만나서 다행이었죠.

일반적인 여자들은 스물 넷, 다섯에 가장 예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여배우는 서른이 넘어야 가장 매력적이고 연기력도 물이 올라요.
저랑 생각이 너무 같은데요? 서른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이제는 좀 현실로 다가오지만요(웃음). 배우나 여성이나 서른을 넘겨야 진짜 여자, 여성이고 매력 있는 거 같아요. 그 전엔 사과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면요.

식상한 질문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선배들이 있나요? 롤모델일 수도 있고.
장만옥이 일단 절대적이었고요. 장만옥도 목소리가 많이 바뀌었어요. 목소리도 따라해 봤어요. 원래 앵앵거리는 목소리인데 왕가위 감독 만나면서 바뀐 거 아닌가요? 우리 선배들 중에서는 전도연 선배도 너무 좋고, 이미연, 장진영 선배도 멋있고.

그럼 지금 박효주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캐릭터, 연기가 있을까요?
그 영화 뭐죠? 여자 세 명 나오는 한국 영화인데.

아, 송일곤 감독, <꽃섬>?
(웃음) 네. 김호정씨하고 김혜나씨 나왔던 그 <꽃섬>. 한 동안 방에 포스터도 계속 걸어놨었어요. 그 몽환적인 느낌이 좋아서요. 세 여성 캐릭터가 나이도 다 다르잖아요. 이십대 혜나 씨가 연기한 캐릭터의 느낌을 갖고 싶었어요. 김호정 선배도 주완이가 한 번도 부러웠던 적이 없었는데 <피터팬의 공식>때 너무 부러웠죠. 그 눈, 그 눈빛들을 참 담고 싶어요. 저도 나이 먹어서는 깊은 눈을 가진 배우가 되어야지 그랬어요.

정형적인 연기보다 열려있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역할에 욕심을 내는 거 같아요.
자유로운 영혼이 좋아요. <추격자>는 감독님이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내고 싶어 했어요. <파란자전거> 같은 느낌도 너무 좋고. <별순검> 같은 경우 사극이니까 또 다른 재미가 있었고요. 확실히 부담스러운 건 <에어시티> 예원이처럼 딱딱 정해진 역할. 절대 현실적이지 않잖아요. 팬들은 제일 좋아하는 거 같지만 그런 연기가 공감을 끌어내기는 너무 힘들죠. 제 어두운 면은 보기들 싫어하는 거 같아요.

여배우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들 해요. 김혜자, 고두심 선생님처럼. 그런데 나이 먹은 뒤 본인 모습이 궁금하지는 않나요? 어떻게 늙고 싶어요?
제 인생의 모토가 ‘잘 늙자’에요. 왜냐하면 사람 얼굴을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인다고 하잖아요. 하루하루 진실 되고 충실하게 살수록 할머니 때 제 얼굴이 좋아진다고 생각해요. 또 배우니까 잘 늙는 건 정말 중요하고요. 어쨌건 전 따뜻한 할망구가 되고 싶어요.

그보다 귀여운 할머니가 될 거 같은데요?
네, 웃으면 마음까지 좋게 만드는 할머니들 있잖아요. 손자들, 아이들한테 따뜻한 동상 같은 사람. 따뜻하고 부끄럽지 않은, 따뜻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오늘 하루 삐뚤어진 생각을 하면 주름살이 더 깊어질 거 같고요.

귀여운 할망구 말고 인간 박효주의 꿈이 있다면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부터 좋은 연기자가 되어야지 하는 건 항상 똑같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작업을 하며 ‘진실’에 관해 많이 부딪혔던 거 같아요. 올해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진실하지 않으면 진실한 연기는 할 수 없다’고. 그 동안 내 삶을 진실하게 살지 않았구나 싶어요. 겉핥기 같은 느낌. 더 열어 놓고 더 받아들이고 싶고 더 느끼고 싶고 다 진실한 원액 그대로의 느낌들 있잖아요. 너무 작품과 연기만 생각하다 내 삶을 놓친 거 같더라고요.

작년에 너무 바빴던 거죠?(웃음) 마지막으로 배우 박효주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가 있다면요.
진실은 당연하고요.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어야죠. 캐릭터 안에서 정말 살아 숨쉬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런 배우들. 이번에 윤석 선배님 보며 많이 느꼈어요. 그 분은 (연기가) 정말 살아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제가 너무 정형화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선배님 조언 중에 ‘드라마하게 되면 효주야, 그런 매커니즘에 제발 빠지지 마’가 제일 고마웠어요. 배우는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듯이 살아있어야 돼요. 그게 진실에서 비롯되는 거고요. 윤석 선배님 말씀이 작년의 숙제였어요. 사실 그런걸 노려서 <추격자>를 했고 현장에만 다녀오면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죠.

박효주에게 2007년은 참 버라이어티하고 배운 것도 많았을 듯해요. 차기작은 좀 뒤로 미루고 쉴 생각이죠?
차기작은 아직 결정 안했지만 드라마랑 영화랑 구분은 없어요. 둘 다 너무 재미있고요. 어디가나 연기는 다 똑같은 거 같아요. 대신 빨리 어떤 이야기 속에 살고 싶은 생각이에요. 그 동안 여행도 다녀오고 계절학기도 다녀오면서 푹 쉬었거든요(웃음).

글_하성태
사진_권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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