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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09.10.17 부산에서 부치는 잡담 하나
  2. 2009.10.16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in PIFF
  3. 2009.10.16 부산에서 본 몇 편의 영화
  4. 2009.10.07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 (1)
  5. 2009.01.09 워낭소리

부산에서 부치는 잡담 하나

필진 리뷰 2009.10.17 21:1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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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부산국제영화제의 피크였던 지난 주말 저녁, 나는 뒤늦게야 부산에 도착했다. 돈 좀 아껴보겠다고 탔던 버스는 장장 6시간을 달려 새벽 세 시경 해운대 앞바다에 나를 뱉어놓았고, 북적거리는 해운대를 뒤지고 뒤져 겨우 찾아낸 숙소에 거의 뻗다시피 누워버렸다. 애초에 사람 많은 주말을 피하고, 사람 없는 평일을 이용해 보고 싶은 영화는 다 보자는 심상으로 내려왔던 부산이기에 그런 수고쯤은 참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는 모두 평일에 몰려 있었고, 어떤 영화들은 상영 일정이 두 세 번씩 겹쳐 잡혀있기도 했다. 표를 하나도 구하지 못해 게스트/프레스 스크리닝으로만 영화를 봐야했던 일요일을 보내고,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적한 평일이 찾아왔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영화로 인해 보상받으면 다시 의기충전 으쌰으쌰 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의 묘미지만, 부산에 내려와 몇 편의 영화들을 보았던 지난 주말은 나에게 거의 수련의 나날이었다. 내려오기 전부터 좋지 않았던 몸 상태는 제쳐두고, 내가 선택했던 영화들이 나를 힘 빠지고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부산에 내려온 첫 날 상영작이었던 <심볼>, <킥 오프>, <안녕 할아버지>는 모두 비등비등하게(그중 압권은 <심볼>이었지만) 지루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탈진할 수준이었던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날 다시 몇 편의 영화들을 봤다. 영화제에 가게 되면 으레 정말 궁금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봉 예정인 한국영화들은 보지 않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 몇 편에 관한 솔깃한 소식이 들려와도 귀를 닫고 참아냈다. 내가 두 손 모아 기대하고 기대했던 상영은 모조리 화요일에 몰려 있었기에 지루하고 복잡스러웠던 상영 일정을 모두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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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부산에서의 사흘째 아침, 그러니까 바로 13일인 '오늘'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제 예매해둔 상영 시간표를 보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졌다. 첫 상영인 고란 파스칼리에비치의 <허니문>에 이어 미카엘 하네케의 <하얀 리본>, 그리고 라야 마틴의 <인디펜던시아>, 마지막은 차이밍량의 새 영화 <페이스>로 짜여 져 있는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시간표.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첫 영화를 보고, 미카엘 하네케의 맹신자인 나를 영화제 훨씬 전부터 설레게 만들었던 하네케의 신작 <하얀 리본>을 보고 난 후, 오후 다섯 시에 있을 다음 상영을 기다리며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애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하네케의 영화는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이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것 또한 하네케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불과한 것일까. 조금씩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광기에 대한 묘사는 탁월했지만, 결말로 갈수록 그 불안한 기운이 폭발적인 작용을 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얀 리본>을 졸지 않고 보기 위해 거의 세 시간동안 트리플 에스프레소를 손에 들고 홀짝 거렸던 탓일까, 윗배 아랫배 할 것 없이 찾아오는 복통에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정신만은 말짱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하얀 리본>을 보지 못하면 해운대 앞바다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리'라 생각했던 영화를 말끔하게 해치워서인지,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놓아버릴 수는 없다. 라야 마틴에 이어, 내가 하네케에게 느끼는 맹목적 사랑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애정을 과시하는 감독인 차이밍량의 신작이 마지막 상영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래저래 심심한 영화들에 치였던 그간 일정에 대한 보상과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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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쇼케이스 in PIFF

필진 리뷰 2009.10.16 13:49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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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버진]


<버진>은 이슬람 문화 아래 여성의 ‘순결’ 즉, 처녀성을 이란 사회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여성의 처녀성에 대해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다뤄왔던 담론을 ‘처녀 증명서’라는 법적인 문제로 까지 명시해 놓은 이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방면으로 접근하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처녀성을 가지로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지만, 그 보다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왜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느냐 일 것이다. 여성의 순결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여성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남성도 포함되어야 마땅한 일인데도 말이다. 성경험이라는 것이 남,여가 함께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성경험이 없다면 부끄러운 일이고, 여성이 성경험이 없다면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게 현실 사회의 풍조이다. 그러면서 남성들은 왜 여성의 처녀성을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남성들의 욕망은 당연한 것이고, 여성이 욕망을 가지면 부정한 것인가. 이란의 현실은 우리의 현실보다 더 가혹해, 법률로써 정해놓고 여자가 처녀가 아닐 때 마땅히 이혼이 가능할 정도다. 즉 ‘처녀성’의 법적 권리가 남성에게 있는 것이다. 여성은 항상 남성의 전리품인양 여겨져서는 안 된다. 똑같은 인간, 그러기에 욕망 또한 똑같은 것이다. 아무리 그 사회의 관습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현재에 와서는 인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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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바람]


나이 칠순이 다되어서 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있다. 그간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 형제의 그늘에 가려서,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할머니들이 농번기엔 밭과 들에서 일을 하고, 농한기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는 한글을 배우고, 영어를 배운다.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그간의 세월을 살아낸 통찰력 또한 느껴진다. 영화는 할머니들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내러티브 위주의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형식에 맞춰 감정의 진폭이 예상가능하다. 또, 자식들에게 헌신해 백그라운드로 밀려나 있던 할머니들을 조명함으로써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나 이미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발언을 하며 충실하게 삶을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이라는 단어는 한 템포 뒤에 온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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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 view]

다큐멘터리의 장르를 넘어서 영화의 포괄적인 시선의 문제를 사유하게끔 하는 영화로,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찍는 자, 찍히는 자, 보는 자의 트리오 구성을 명확히 드러나게 한다. 이들은 모두 서로에게 타자이며, 타자의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는 내러티브 위주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비선형적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내전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네팔의 포악한 모습과 한국 현대 가정의 회색빛 모습을 반 스토리텔링으로 말하고 있다. 두 개의 상반되면서도 연관성이 없는 이미지들은 이분법적 사고의 기호들을 내포하고 있고, 인터뷰를 하는 찍는 자는 이제 카메라에 찍혀 관객 앞에 나타나게 될 찍히는 자에게 찍는 자를 보지 말고, 보는 자를 볼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찍혀진 정면 숏은 섬뜩하기도 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느껴지는데, 이러한 시도들이 궁극적으로는 ‘소통’을 말하는 듯하다.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럼으로써 ‘시선’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사유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바닥에 놓인 카메라와 카메라를 찍고 있는 감독의 그림자가 보이는 엔딩 신에서, 이내 감독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카메라의 그림자만이 남는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마지막까지 힘 있게 끌고 나간, ‘소통’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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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본 몇 편의 영화

필진 리뷰 2009.10.16 13:43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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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2박 3일의 짧은 일정으로 부산을 다녀왔다. 예년과는 달리 영화를 챙겨보자고 다짐했고 대체로 계획대로 되었다. 당초 꼭 보고 싶었던 몇 편의 영화들, 이를테면 <채식주의자> <특별시사람들> <파주>는 인연이 아닌 듯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괜찮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제가 아니면 경험해보기 힘든 일이다. 서울서부터 작심했던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는 “과연” 유쾌하면서도 진중함까지 갖춘 영화였다. <계몽영화>를 제외하고 리뷰랄 것도 없이 세 편의 간략한 느낌을 적는다.

[우물] 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 감독

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 이름을 외우기도 쉽지 않은 이 낯선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우물>이라는 제목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부산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뉴-커런츠 출품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화는 이모의 결혼식에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큰 축으로 삼아 삶과 죽음을 통해 꽤나 철학적인 주제를 탐색한다. 이를테면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통해 감독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당연히 그렇다고 믿어온 고정관념을 넘어설 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물은 관습화된 생각을 가둬두는 장소이면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관문인 셈인데, 이 영화를 사촌 ‘나차켓’의 죽음 앞에서 방황하던 ‘사미르’의 성장담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많은 인도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 전반을 수놓으면서 이따금 지루해질 법한 시간마다 터져주는 높은 영역의 소리와 느슨해진 관람자의 마음을 팽팽하게 당기는 음악은 인상적이다. 쿨카르니 감독은 인도인의 추레한 생활상과 장쾌한 자연 풍광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삶 그 이상의 것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가 살면서 보아온 것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영화 <우물>, 양치기 노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찾는 다면 보이지 않는 것도 쉽사리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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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피아] 타릭 살레 감독

상영일 아침까지도 이 영화 대신 다른 영화에 눈길을 주면서 발권창구를 기웃거렸더랬다. 만약 다른 영화를 보았다면, (물론 그 영화도 좋았을지 모르겠으나) 정말로 후회할 뻔 했다. 타릭 살레 감독의 <메트로피아>는 그렇게 이번 부산행을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한 영화였다.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 멋진 작품은 2024년 지하철만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남은 유럽을 무대로 음모와 배신과 감시체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회사원의 하루 남짓한 이야기를 통해, 기술발전이 가져온 디스토피아를 그려냄과 동시에 잔잔한 위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에서 재탄생한 친근하고 사실적인 캐릭터와 촘촘한 플롯과 장르영화의 문법이 조화롭게 펼쳐짐으로써 극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데는, 빈센트 갈로와 줄리엣 루이스의 목소리도 한 몫 한다. 그러니까 (대단치 않다고 여겼던)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 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것이 사실적 재현과 세밀한 캐릭터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리하여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메트로피아>가 단적으로 증명해보였다는 것. SF필름느와르와 할리우드 가족드라마를 뒤덮는 북구유럽의 우울한 정조를 두루 맛보기에 이만한 텍스트도 드물 것이다. 어둡고 무거운 화면 위에 에로티시즘과 인간미를 그지없이 우아하게 그려내면서 따뜻한 결말로 이끄는 감독 타릭 살레가 진정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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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몰라요] 고바야시 마사히로 감독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난 몰라요>는 <아무도 모른다>의 청소년 버전에 다름 아니다. 영화의 전반부가 가난에 내몰린 소년 카와이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엄마의 죽음 이후를 다루는 후반부는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소년의 선택과 결정을 극단적으로 던져놓으면서 사회적 책임과 성인들의 도덕적 책무를 묻는다. 컵라면과 빵을 허겁지겁 먹는 카와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면발을 단숨에 넘기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배고픔이 무엇인지, 삶에 대한 안간힘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을 터. 감독이 심연에서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비극적 장면 앞에서, ‘삶을 위무하는 리얼리즘’ 따위의 수사는 사치스러울 따름이다. 영화제가 아니라면 도저히 만나기 힘든 영화지만,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언덕을 오르는 카와이를 롱 테이크로 잡은 엔딩에서 만나는 ‘재생의 공기’야 말로 <난 몰라요>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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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

필진 칼럼 2009.10.07 07:0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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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2분 45초, 2분 28초, 2분 4초, 1분 35초. 이 숫자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를 모토로 하는 올림픽 기록이 아니다. 역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개막작들이 예매 시작부터 매진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첫 한국영화 개막작은 1999년 4회 때 선보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었지만, 그 시절엔 온라인 예매가 없었고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온라인 예매는 30분대에 매진이 됐다. 2004년에서야 4분 54초 만에 개막작이 완전 매진 돼 화제였는데, 이젠 1분 30초대를 유지하는 분위기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의 매진시간이 얼마나 단축되는가는, 올림픽 기록갱신만큼이나 화제가 될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그만큼 영화제의 예매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영화광의 가슴을 도리질할까?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힘든 노동도 드물다. 표구하기가 귀성전쟁을 방불케 하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이고 아이디카드 소지자에게도 쉽사리 입장을 허락하는 법이 없다는 것. 그렇다 해도 영화를 안 보고 영화제를 이야기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배우 뒤태만 쫓아다니지 말고 영화를 보라는 얘기다. 트란 안홍의 신작도 정성일 평론가의 감독 데뷔작도 또 놀라운 몇몇 기대작도 궁금하고 가슴 설렐 테지만, 목표했던 작품이 아니어도 실망하긴 이르다. 무엇을 보던 기본은 할 것이라는 믿음만 있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터. 내 경우가 그랬다. 근래만 해도 이명세의 <엠>을 놓친 대신 본 <말도둑>과 <집결호>를 대신한 <웨이터>는 아쉬움을 보상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 비우고 나와 인연이 되는 영화를 찾으러 간다.

부산영화제는 영화인들의 총동문회 격이다. 그러니까 평소 공사다망을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이들이라도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다보면 어디서건 반갑게 조우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남발한 술 약속과 공수표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올해는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지 기대감이 한껏 부푼다. 그렇다고 두주불사하다가는 인사불성을 못 면한다. 낮에는 영화에 빠져들고 밤이 오면 술과 사람과 바다에 취하는 수순을 몇날 며칠 밟다보면 몸은 쇠진하고 간은 부어오르니 스스로 컨디션조절을 할 일이다. 영화제에서 버티는 첫 번째 덕목이 체력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무엇보다 올해 부산영화제가 남다른 것은, 영화제를 침몰시키려 그토록 발버둥친 일부 보수 원로영화인들의 분탕질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외연을 확대하면서도 질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프로그램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오래된 정원> 속 윤희의 말처럼 “의젓하고” 든든하며 다행스럽다. 한편으로 영화제 기간 중 보수 원로영화인들이 ‘영화기관 부산이전 반대 투쟁’의 일환으로 산발적인 시위계획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라고 했던가. 노추(老醜)와 노탐(老貪)이 쌍쌍파티를 벌인다면 딱 이 꼴일 게다. 설사 시위를 벌인다고 해도 일부 몰지각한 매체들이 호떡집에 불난 듯이 앞 다투어 설레발만 치지 않는다면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에 불과할 것인즉, 이래저래 이번 영화제는 영화와 해운대 풍광 말고도 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듯싶다.

매진이 되던 말든,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든 말든, 누구는 술에 허우적거리다 밤바다에 입수하건 말건, 또 어떤 이는 머리띠에 피켓을 들건 말건, 영화를 사랑하는 자 일단 부산으로 향할 일이다. 어차피 부산역에 터미널에 공항에 내리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와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동시다발로 펼쳐질 것이니 영화 같은 한 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부산국제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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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고 다니 더욱 기다려지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2009.10.07 13:31

워낭소리

필진 리뷰 2009.01.09 15:3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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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의 힘은 단연 토픽의 선정에 있다. 신산한 삶을 함께 해 온 팔순 노인과 그의 마흔 살 먹은 소. 논과 밭을 가는 것은 물론이요, 다리가 부실한 할아버지의 달구지가 되어주는 이 소의 일상을 고정된 카메라로 잡아내는 것만으로 <워낭소리>는 단단하고 뭉클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일중독에 가까운 할아버지와 그를 위해 평생을 소답게(?) 일 해 온 중년의 소, 그리고 이 두 사람을 애증(?)에 가깝게 지켜봐야 하는 할머니의 사연이 속도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아버지의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유도해 낸다. 혹자는 너무 드라마틱하다고, 연출이 지나치다 타박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리얼리즘을 길어내는 다큐멘터리란 장르야 말로 편집의 미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그러한 다큐멘터리의 장점이자 약점을 까맣게 잊게 하는 이야기와 영상미학의 결합을 시종일관 자랑하고 있다. 잠깐 동안의 휴식 동안에 담배를 물고 논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역시나 그렁그렁한 눈을 드러낸채 꼴을 먹는 소. 상징적인 이 컷만으로도 <워낭소리>의 가치는 차고도 넘쳐 보인다. 1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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