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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1 폭력의 역사

폭력의 역사

필진 리뷰 2007.08.01 15:18 Posted by woodyh98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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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공개 있습니다. 주의하시기를]

고작 90분 남짓한 시간동안 한 가족의 이야기를 가지고 폭력의 역사를 보여주겠다던 영화의 제목을 보고, '설마'라며 코웃음을 쳤던 나 자신에 대한 용서를 먼저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작품을 감상하신 분이라면 전형적인 장르물의 외형 속에서, 폭력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 작품에 찬사를 던지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리라 믿는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한동안 동어반복으로 연명하는 듯 보이다가, [스파이더]로 획기적 전환점을 맞더니 결국 이런 물건을 만들어냈다. 원더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폭력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본성에서 물리적 폭력이 발생한다. 둘째, 어떤 명분에 의해 그 폭력은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셋재, 이같은 폭력은 순환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순환되며 사라지지 않는다. 넷째, 순환과정에서의 폭력은 강도를 높이며 진화하며 전이되기도 한다. 다섯째, 폭력은 휴지기를 가지지만 계기가 있을 경우 다시 첫번째 단계로 돌아간다.

위와 같이 말했다면 내가 왜 그렇게 정리했는지에 대해 말해주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자, 영화로 돌아가자. 처음 나오는 2인조가 있다. 그들은 어째서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죽인다. 물론 그들도 다른 무언가에 영향을 받았을터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시작점부터 따지자면 그들의 폭력은 본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지." 돈을 주겠다던 톰 스톨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웨이트리스를 죽이려 한다.

이에 톰 스톨은 재빠른 동작으로 그 둘을 제거해버린다. 웨이트리스를 구하려한 행위였기에 그의 과도한 폭력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크로넨버그가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의 잔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죽은 자의 모습을 카메라로 자세히 잡아준다는 것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영웅이 되었다. 정작 자신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덤덤하지만, 그를 영웅으로 추대하는 것은 매스컴이며 그가 속한 사회, 그의 이웃이자 그의 가족이다.

그런데 그 영웅 앞에 마피아가 등장해서, 실은 그 영웅이 못할 짓을 수도 없이 저질러댄 또라이였음을 까발린다. 그리고 그의 평안한 가정생활을 훼방한다. 이에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니 새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그는 마피아들을 제거해버린다. 그 때 내뱉은 말이 또 걸작이다. "너를 그 때 필라델피아에서 죽여버렸어야 했어."
폭력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은 보복이다. 순환고리를 완전히 끊지 않는 한, 폭력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물론 이 순환고리는 은근히 복잡해서, 자식새끼까지 다 죽여버린다고 해도 씨앗을 남길 수 있겠지만.

영화의 두번째 폭력을 겪으며 우리는 재미있는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이유에서 폭력을 저질렀음에도, 심정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그 사람이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따라서 객관적 평가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영화를 두 번 이상 감상하면 이는 더 명확해지는데, 초반부의 자상한 모습조차 섬뜻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실제로 어떤 폭력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보편타당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파르게 경사진 게다가 층층지어진 계단 - 하지만 어떤 방향성은 가지고 있는 - 에서 남성의 상징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모습은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는 폭력을 형상화해내고 있다.

아직도 톰의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모든 순환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자신의 형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폭력은 그 강도를 심화한다. 처음 죽인 사람은 두 명, 그 다음은 세 명, 그리고 마지막은 세 명 이상이라는 것은 비단 영화의 재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의 본질상 당연한 것이다. 폭력은 진화한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점에서 우리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접합시킬 수도 있다. 물론 약한 종이 씨앗을 남기기도 하지만, 자연도 그러하다. 종을 남긴 생물이 결국 진화하는 것이다.

이제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톰은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의 식사.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그 모든 폭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묵인하는 것도 하나의 폭력이라는 말을 덧붙이는건 쓸 데 없는 일일테지. 이미 이 가정은 이전과는 다르다. 폭력은 아들에게 전이 - 앞으로 아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 되었고, 아내는 모든 폭력을 목격했다. 아들과 아내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감상한다면, 간접적으로 폭력을 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말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일까? 글쎄, 아직 전모를 알고 있는 보안관이 있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아가야 할 그들의 삶이 있다. 어떤 계기가 닥치면 그들은 또 폭력을 휘두르게 될지 모른다. 이전에 그랬듯이.

폭력은 그렇게 살아남고, 순환되며, 진화한다. 그리고 전이되어 새로운 씨를 남긴다. 자, 다시 돌아가보자. 첫 폭력이 어디에서 나왔었나? 바로 인간의 본성에서 나왔다. 결국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폭력이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시스템은 폭력을 단순히 방치하는 것, 그 근원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백 번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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