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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가 되면, 인문대 과목이 늘상 그러하듯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한다. 굳이 인문대 과목을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전공들을 테크놀로지 위주로 듣는 것은 심심하여 <프랑스 문학과 예술의 흐름>이라는 과목을 신청했다. 자기소개를 하기 보다는 차라리 원탁에 앉아 수업하는 것이 더욱 소통의 의미에서는 더 클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기소개는 상향식이다. 나는 앞 자리에 앉은 학생을 모르며, 그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교수는 우리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나는 교수의 소개서를 못 받아보았다. 72년도 불어불문학과 입학을 하여 거의 34년 선배인 것을 제외하고, 앞으로 수업을 토대로 하여 교수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을 통해 면밀하다면 면밀하게, 편린으로서라면 지엽적으로 알아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생각하다보니 나의 '제언'을 약간 섞어서 자기소개서를 써볼까 생각도 든다.

불어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프랑스 영화를 봤다고 해도 그건 자막을 본 거나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첫 시간에 이야기가 오갈 시는 한국어번역본으로 나왔는데 사실 아쉽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의 맥락이 제한적인 것은 정말로 아쉬운 일이다. 그것이 한국어와 불어의 격차만큼이나, 물론 그것은 통역과 번역과 어학이라는 습득의 장치로 해결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상태'로 규명되기도 어려운 상태로 인식이 시작되면 가슴아픈 상태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통의 불가능성은 소통수단 혹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통로가 있고, 서로가 원하는 것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충돌을 일으킬 때다. 그럴 때 해결을 보기 위해 몇 가지 타협점이 필요한데, 의견의 타협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개념들에 있어서 함께 인식이 가능한 상태로의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학문의 영역에서는 '개념의 조작적 정의'라고 표현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초반부 2단원부터 나오는 걸로 기억한다. 굳이 왜 고교시절의 학습가이드를 들먹이냐면, 소통에 관해서는 일찍 저학년에서부터 (개별 개념지식 자체보다)개념을 상정하는 합의과정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면 우리의 갈등은 조금씩 줄어들까. 우리의 상황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까. 배우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겠느냐는 말에는 나의 오늘의 상황에 대한 한탄이 약간 섞여있음을 밝힌다. 3월 2일과 3일에는 가슴아픈 일들이 있었다. 정작 나는 행복했는데, 주변인들에게는 힘든 일이 다소 있었다. 나로 인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if not, 의 상황이 될 지라도 내 마음대로의 소통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다가 오늘 새벽의 일을 추가하면 그 소통을 보다 '배려'있게 해야한다는 점까지 추가를 하면서 말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봤다. 새학기와 자기소개서, 불어와 한국어, 3월 초반의 개인사와 관련짓기는 자의적이지만, 그러나 나는 나의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있다. 꿈꾸는 상황, 예를 들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해'라든가 '너의 좀 더 다른 모습에 영향을 주기 위해'라는 욕망에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깃들여 있다.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욕망, '파리로 떠나는 것'이 좌절된 다음 솀에게 "꼭 파리가 아니어도 됐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투영된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고 한 것이리라. 그러나 프랭크에게는 '파리로 떠나는 것'의 원형은 투영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신경질적으로까지 '변화'를 외쳤고, 그것을 악다구니 쓰는 단계까지 갔으나 '변화'의 개념적 정리는 공유되지 못했던 것 같다. 프랭크는 그녀와의 극적인 다툼으로 서늘한 밤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낸 다음 날 아침, 오렌지 즙을 짜내 주스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다. 그녀가 묻는 '달걀을 어떻게 요리할까요'에 그는 다시 일상의 느낌을 얻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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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의 미국의 상황, 그 안에서의 에이프릴의 휠러 부인으로서의 삶에 공감한 것은 그녀의 삶이 드러내는 원형이 나의 삶의 원형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3명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디 아워스]를 떠올렸는데, 에이프릴의 추후 극적인 선택은 강물에 몸을 떠내려가게 하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의 것, 로라 브라운(줄리안 무어)의 것과도 농후하게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단 여성 (이 글을 쓰는 나는 여성이다.)에 관한 근본적인 원형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보다 보편적인 형태로 승화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적인 형태란 아주 근원적인 형태로 존재할 것인데, 그것을 지금 어설프게 '소통의 부재', '이상과 좌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대한 소망과는 배치되는 발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의 해결법이 모호한 것, 그리하여 휠러 부부는 '참 좋은 부부였으나' 이혼을 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하는 형태로 그 누구에게도 해결방법을 상식적인 선에서 '긍정적인' 양태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개념의 조작적 정의'에 의해 연구되는 예각화된 사회문제의 논점은 비교적 분명한 해결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인생을 대변하는 문학과 예술과 같은 것들은 고민의 원형을 계승하고 담론화를 시키는데, 갈등의 해결에서는 최우선이 있다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죽는 사람들도 있다. 프랭크라는 인격 개체를 존재시키는 것과 에이프릴이라는 개체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많은 해결짓기 모호한 과정의 인생들이 반영된 논담들이다. 그렇게 해서 기록되고 귀납적으로 재현되는 다층적인 면모들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낳게 한다.

그러면 나는 여기까지 고민하고,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생각하러 가야겠다. 고민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지 않도록 '내가 비록 불어는 못하지만, 선생님으로 하여금 이런 정도의 고민은 해봤습니다'와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쓰려고 하니까 이걸로 통한 소통은 학생들의 편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이 말은 쓸지 말지 고민)'라든가 '필요가 있다면 스피치보다는 차라리 원탁이 더 낫지 않을까요? 다만 학교에는 원탁에서 수업하는 형태는 없겠지만 말입니다'라는 등의 말은 좀 섞어볼 수 있지 않을까? 당황해하시면, 수강변경 기간이니까 다른 전공과목으로 대체해서 들어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다만, 그나저나 내가 하는 방식이 일방통행적인 의사소통방식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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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에 시네마테크를 다시 생각한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일 년을 기다려온 시네필이 앞 다퉈 고전걸작의 향연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것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해온 이들의 온전한 노력 덕분이다. 이 풍성한 잔치를 만들어낸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를 네오이마주와 ‘프레시안무비’가 함께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년간 시네마테크와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영화계 전반의 점검과 친구들 영화제와 미래 발전 방향 등 꽤나 묵직한 주제를 놓고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무겁다는 얘기는 아니니 지레 덮지 마시라.



백건영 네오이마주 편집장(이하 백):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 영화제의 모토가 "시네마테크의 영년" 이었다. 일 년이 지나서 그 때 주창했던 "시네마테크의 영년" 으로서의 2008년 한 해를 결산하고 소회하는 프로그래머의 생각을 듣고 싶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이하 김): 지난해 '영년'을 설정했던 것은 시네마테크의 역할과 공간을 새롭게 구상하는 거였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2007년에 본격화됐고, 2008년에는 좋은 말로 하면 첫 삽을 뜨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것들을 다 지워버리자는 말은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네마테크' 라는 것을 생각해봐야 되지 않겠나. 이런 걸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의미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영년이 된 거 같다. (웃음) 2008년에 기존에 영화정책과 관련된 부분에서 상당한 변화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더니만, 하반기쯤에는 전용관 사업이 거의 백지화됐다. 현상적으로 보자면 백지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원래 설정했던 취지와는 다른 의미의 ‘제로 이어’가 됐다.


김숙현 프레시안무비 기자(이하 숙): 나쁜 쪽으로 제로화가 되어버린 셈이다.

김: 그렇다. 나쁜 쪽으로 (웃음) 이게 오히려 제로 이하의 것이 돼버렸으니까. 2008년도가 끝나갈 때쯤 되니까 그전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 아니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새롭게 정립하자고 했던 게, 아예 새로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시작해야 하게 된 거다. 2007년 12월의 시점만 해도 가능성 있게 구상했던 것이 2008년의 상황에서 이렇게 되리라고는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대신 2008년도에는 새롭게 시네마테크의 컬렉션을 구비했고, 여름 시즌 ‘시네 바캉스’에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를 소개하는 행사를 했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을 소개한다. 이건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작년 하반기부턴 어쨌든 영화제의 재정적인 문제가 제일 부담으로 느껴졌다. 일단 공간이 좀 해결되면 재정적인 보완은 좀 늦어지더라도 공간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관객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했는데. 그런데 전용관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다 보니 재정적으로 문제 또한 해결하기 어렵게 됐다.


숙: 나도 기억난다. 작년에 시네마테크 전용관 문제가 거의 백지가 되었었다. 처음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시작을 한 것도 전용관을 기대하고 시작을 했던 거라고 알고 있다. 올해 다시 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슈화가 되겠구나, 했었는데 결국엔 기대만큼 안 되더라. 어쨌든 올해도 모토를 '공간의 발견, 행복의 시네마테크'로 잡으셨는데, 이렇게 잡으신 데에는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고 계신 게 가장 큰 이유인가.

김: 일단은 그 문제가 가장 컸고. 근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결국 두 가지다. 조건들이 주어지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재의 공간 안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반어법적으로 나온 거다.(웃음) 안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자, 이런 생각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하니 지금이라도 우리 행복해지자,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근데 이게 궁극적인 건 당연히 아니고, 궁극적으로 보자면 전용관 세우기 문제가 남아있는 거고. 전용관 뿐 만 아니라, 지금 많은 상황들이 변화 중인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낙원상가 재개발 문제도 있고. 시네마테크도 2002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8년째다. 십 년 안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작년의 생각이었는데 십 년 안에 해결이 될지 모르겠다.


백: 낙원상가 재개발이 2009년에 한다고 발표난 걸 봤는데 그거 자체도 백지화가 된 거 같다.

김: 그 계획 자체가 아직 구체적이진 않은 거 같다. 얼마 전에 용산 철거 문제도 있었지만 재개발이라는 게 제대로 발표도 안 하고 그냥 진행되어 버리니까.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숙: 재밌는 게, 옛날 서울아트시네마가 둥지를 틀고 있었던 아트선재센터가, 금방 뭘 할 것처럼 시네마테크를 쫓아내고.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다시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는 거다. 씨네코드선재가 생겼는데, 그걸 보는 감정도 그리 좋진 않으실 거 같다.(웃음)

김: 기억이란 게 언제든 장소와 연동이 된다. 그 장소가 연결이 되어 구체적인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래서 처음의 장소가 변경되면 기억의 거주할 곳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다시 그 공간이 활용되는 건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다. 묘하게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설립이 백지화될 것 같은 시기에 예전 쫓겨났던 아트선재 공간이 다른 식으로 변모하더라. 생각해보면 아주 최근의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기억도 쉽게 사라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흔적도 없이... 사람들이 예전에 대한극장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이 대한시네마로 바뀐 걸 보면서 예전에 대한극장이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례들이 서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청광장의 재건축 문제도 있었지 않나. 기억은 어떤 구체적인 공간을 가질 때 보존되고 유지되어져 간다. 그런데 공간이 변경되고 사라지면 그 기억이 떠돌게 된다.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시네마테크는 계속 공간을 찾아다니고 있고 그 시작이 2002년인데, 이제 진정한 기억의 거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환경 안에서는 영화를 둘러싼 기억이라는 거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형성하고 있는 이야기와 역사 자체가 현 시점에선 부정될 수 있다. 영화 뿐 만 아니라 사회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영화 자체가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네마테크의 문제임과 동시에 현실사회의 문제다. 문제해결이 공통적인 노력 아니면 어렵다. 역사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숙: 기억이 부정되는 현상을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이 많이 보인다.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김: 이제는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싸움인거 같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과거를 보존하고 꺼내서 앞으로 나갈 것인가, 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영화제를 하면서 카탈로그를 만드는 것부터 해서 내부적으로라도 그런 기억들을 남겨놓는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가 더 영년의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기도 하더라.


숙: 참 정권이 바뀌자마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 중 전용관 문제가 맨 처음 일어났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시작인거 같고. 더 심각해질 텐데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 시네마테크도 영진위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클 텐데 그것도 줄어들 것 같고.

김: 영진위의 지원은 실질적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필수적인 거니까. 이를테면 공간이 없다면 영화를 당장 상영할 수 없으니. 없는 것과 있는 것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영진위의 지원은 현재로서는 큰 변경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요즘엔 세상의 변화가 결코 예측이 안된다. 가장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화나 예술과 관련한 정책이 예측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야는 신종사업도, 투기사업도 아니고 과거의 역사가 있고 또 보존해야할 부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 점으로 사실 보수적conservative인 면이 있는데, 세상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사고의 기준을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기준에 두고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비현실이 현실에 더 가깝다. 최근에 보면 ‘필름2.0’같은 잡지도 못 나오는 처지이다.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너무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시네마테크도 사실 자명한 거 같진 않다. 지금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위기의 국면이라고 생각한다.


백: 그렇다면 올해 친구들 영화제 모토를 생각해보자. 현재 공간을 긍정한다고 표현 되어 있는데, 새로운 변화의 물결에서, 말씀하셨듯이 일단 현실에서 지금 있는 공간 자체를 지키고 가겠다,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공간의 긍정과 같은 것들이 나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모토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간의 긍정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해 달라.

김: 시네마테크가 그간 해온 것들이 부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미래의 공간이라 여긴 ‘시네마테크 전용관’ 또한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니 현재의 공간을 긍정하는 것이다. 긍정이라는 표현 안에 지금까지 어떻게 해서 이런 공간들이 만들어져 왔고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영화정책과 관련한 가장 큰 불안은, 지금까지 왜 이렇게 되어왔는지를 따져보지 않고 그냥 현재시점에서 모든 걸 다 다시 재구성해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들이다. 시간 안에서 영화가 지속되어 온 건데도 말이다. 그런 부분들을 다시 봐야 어떤 식으로 나갈지를 생각할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이런 일들이 문화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산업에선 몰라도 문화예술에선 너무 위험하다.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공간의 재인지, 재긍정이 필요하다.




 

‘행복의 시네마테크’라는 표현이 다소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사무국장이 이 슬로건을 떠올렸다. 처음엔 이 표현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는데, 몇 번 듣다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추구권 같은 걸 떠올려봤다. 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영화와 함께 이 공간에서 행복할 수 없는가? 아니, 이미 우리는 행복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누군가가 더 행복한 걸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헛된 기대가 언제나 지금의 시간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행복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일 수도 있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거나 상영하는 것, 이러한 것은 영화와 관련해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 않겠나. '행복을 추구해나가자. 불행 안에서도.' 이런 마음가짐이다.


백: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한다. 정권 바뀌면서 문화도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고. 기억의 거처라는 얘기처럼 기억에 담아둘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소멸되어 가고.. 없어지지 말아야 할 공간들도 정치적인, 외적인 이유로 없어지니까 답답하다. 그래도 기자회견 보면서, 긍정이라는 단어 들으면서 안도감을 가졌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이걸 받아들이면서 미래를 도모하고, 현실을 발판으로 삼으면서 준비하는 거 같았다.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자조적인 느낌도 있지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또 질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건 누가 꼭 물어봐 달라 그래서..(웃음)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이 너무 좋아서, 감독들이나 영화배우들이 어떻게 영화를 뽑는지, 어떤 원칙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선정되는지 궁금하다고들 한다.


김: 올해 2009년에는 어떤 콘셉트를 정해볼까 생각을 했었다. 아마 내년에는 공통적인 콘셉트를 정할 거 같다. 주제나 테마 같은 것 말이다. 근데 이 영화제가 ‘후원 영화제’라는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도 후원을 하면서 참여하는 거다.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면 거절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까지 끝까지 요청하진 않는다(웃음). 참여의사가 있으신 분들에게만 한다.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 가장 큰 건 후원의 의미다.

참여하는 분들 다들 영화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하다. 시네마테크를 대중적으로 좀 더 널리 알리는 게 이 영화제의 취지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자체의 콘셉트를 강요하는 자리가 아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로 후원의 취지로 참여해주시면 좋겠다. 영화라는 게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욕망의 자리로서의 영화제는 사실 아니다. 보고 싶은걸 보겠다, 보여 달라 이런 의미보다는 ‘나중에라도 우리가 영화를 보기 위해 후원을 하자’라는 그런 의미로 영화에 참여해주면 좋을 텐데.(웃음)




 

상영작품의 결정은 일단, 참여하는 분들에게 세 편 정도의 복수추천을 받는다. 그 가운데 가능한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건 아시다시피 한 편이다. 영화제 기간이 상영하기 어려운 작품이거나, 그 시기에 필름 프린트를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요즘은 워낙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고 있으니, 영화가 쉽게 주문만 하면 필름으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착각이다. 그러니 프로그램은 언제나 결핍을 품게 되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결핍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필름이 오가고 상영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건 물리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받아 보는 영화는 자기 맘대로 선별할 수 있지만 이건 다르다. 결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훨씬 더 영화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정가형제가 원래 처음 선택한 영화는 안토니오니의 영화였다. 현재로서는 좋은 프린트를 구할 수 없었다. 반면, 가장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 의외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변영주 감독도 여러 편의 역사극을 추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하게 됐다.


숙: 현실적인 문제라고 하면 역시 프린트수급 문제인가?

김: 거의 그렇다. 작년에 이걸 수급하던 시기가 환율이 엄청나게 올랐을 때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를 얘기해 보면, 이번에 선택한 <탐욕>은 원래 할리우드 컬렉션으로 구비하려 했던 영화였다. 구매하는 과정에서 추진을 했는데 현재 가장 긴 버전은 TCM상영버전인데 그건 프린트로 없더라.


숙: TCM은 케이블 방송인가?

김: 그렇다. 외국에서도 비디오 판만 있다. 근데 그것도 완전한 버전은 아니었고, 그래서 결국엔 못 샀던 영화다. 그런데 이번에 추천을 받았고 역시 가능한건 140분 버전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나 했지만, 홍상수 감독도 이걸로 봤다 했고, 더 긴 버전은 과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웃음). 그래서 상영 결정했다. 안성기 선생님은 배우중심으로 세 편 정도를 추천했다. <디어헌터>, <미드나잇 카우보이>, <아마데우스>. 최종적으로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선택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박찬욱 오승욱 감독의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이었다. 원래대로 하면 열편에서 스무 편 가까이 된다. 오승욱 감독이 추천한 게 열두 편이었다. 작년도 기준으로 보면 두 분이서 열두 편정도 가능하겠다 싶었는데, 환율이 두 배로 올라서, 그리고 예산도 없고 해서 편수를 줄이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두 분이 세 편씩, 여섯 편을 상영하게 된 거다.


숙: 기자회견에서 감독들이 "이건 맛 뵈기에요" 했던 게 생각난다.

김: 맛 뵈기란 게 일차적으로 맞다. 진짜 좋은 조건이라면, 맡겨서 여러 편의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게 하면 좋겠다. 그러니 프로그래머로선 언제나 아쉽다. 다들 참여할 때마다 상영 못한 추천작들을 다 얘기한다. 상상의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거다.


백: 내년에도 최선의 악인들 섹션 같은 이런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가?

김: 자주 참여하는 분들이 게스트 프로그래머로 하면 어떨까. 주제를 잡아서. 3년 전 ‘김지운의 B 무비’, ‘류승완의 액션스쿨’이란 프로그램을 했었다. 영화감독 뿐 아니라 평론가, 배우들이 맡아 하는 것도 좋겠다. 원래 해외프로그래머들의 초청 프로그램도 기획했었는데 취소했다. 두기봉 감독의 초청전이나 유럽감독의 초청전도 기획했다가 취소했다. 올해가 심플한 느낌이 더 있다. 더 참여하고 싶은 분들도 있는데, 한계가 있다 보니 이렇게 됐다.


백: 프로그래머 입장에서 꼭 이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영화 몇 편을 말해 달라.

김: 사실 선정작들을 놓고 보니 다 한 번씩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공통적으로 묶을 만한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점들이 많다. <탐욕>이나 <선라이즈>는 시대 안에서 우리들의 감정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보게 해준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라는 게 좋은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잘 살아가면서 꾸려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고 떠올리게 해주는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실물보다 큰>도 그런 영화다. <4월>에는 미디어와 영화의 결투의 흔적들이 있다. 예전에야 영화관에 가서 영상을 봤지만 이젠 텔레비전미디어로 인해 영상이 늘 주위에 있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영상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난니 모레티는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 타종식 영상의 보도와 관련해 문제가 생겼고, 미디어 법 문제도 있고 하니 이 영화가 새롭게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의 포도>도 대공황기에 일어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인데, 형상적으로 보면 존 포드 영화 중 가장 사회적 리얼리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물론 존 포드 감독 머릿속에는 19세기말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했던 선조에 대한 얘기들도 어느 정도 녹아 있어서 같이 겹친다. 동시대적으로 우리 시대에서 재개발과 관련한 경제적 빈곤의 문제, 사회문제들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는 <캘리포니아 돌스>를 상영하는데, 알드리치의 유작이다. <선라이즈>에서 시작해서 <캘리포니아 돌스>로 끝난다. 이 영화의 라스트는 지극히 희망적이다. 곤경 안에서도 어떤 규칙 안에서 게임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최선의 악인들’ 섹션의 영화들에는 이렇게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안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그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의리적인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장르적인 범죄영화를 묶기보다는 그 시대의 흔적- 그게 지금과 연결되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


숙: 유명한 대표작들보단 낯선 상영작들이 많다. 그래서 이거 진짜 한 방이다, 이거 진짜 꼭 봐야지 하는 영화는 없더라, 는 의견이 있었다.

김: 음,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틀수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표작들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숙: 그 감독의 영화세계에서 결정적인 영화가 상영작 중 없다는 게 아닐까.

김: 결정적, 대표적 영화보다는 이런 시국에 어떤 영화를 틀면서 함께 얘기를 나눌까, 라는 생각이 많이 반영된 선택들이라 생각한다. 정윤철 감독의 경우에도 10년전의 이탈리아의 상황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난니 모레티의 <4월>을 선택한 거다.


숙: 역시 시대가 어지러운 것이 친구들 영화제 영화선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김: <란>도 그렇다.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발생하는 허망한 일들이 겹친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영화들을 다 보면 공통적인 멘탈리티가 있는 거 같다. 시대적인 곤경, 고통, 불행 안에서의 사람들의 일들을 다루는 영화가 많다. 영화란 게 현실적으로 한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고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들은 10퍼센트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 같다(웃음)


숙: 근데 박찬욱 감독은 기자회견 때, 흥행성을 고려해서 여러 사람들이 두루두루 좋아할만한 영화를 골랐다고 했는데. (웃음)

김: 물론 그 흥행성도 10퍼센트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게 아닌가(웃음). 근데 과거적 시점에서 보면 90퍼센트의 사람들이 따라왔던 영화도 있다. 현실적으로 10퍼센트의 영화지만, 90퍼센트까진 못 보겠지만, 그래도 10퍼센트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픈 마음에 골랐을 것이다. 영화를 갖고 어떤 부분을 주창해 나가느냐, 는 것은 전체적인 프로그래밍 안에서 고려될 수 있다. 10퍼센트 이상의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그 영화는 금방 쉽게 없어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백: 이제 아카이브가 아트시네마에 들어온다. 좀 더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게 사무실 밖으로 오픈시켜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겠지만.. 이런 걸 뒷받침하게 할 기술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있을까?

김: 공간이 제한적이라 하고 싶어도 어렵다. 전용관이 생기면 그런 점을 가장 많이 염두에 뒀다. 관객은 사실 묵묵히 앉아 영화를 지켜보는 역할이지 않았나. 하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관객을 설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방문자 개념으로. 자유로운 방문자 관객들을 위해선 책이라든가 미디어자료들이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공간 안에선 좀 힘들긴 하지만, 현재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가가 올해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지금도 테이블을 설치하는 공사 중인데, 친구들 영화제에 좀 이용할 수 있게 할 거다.


그리고 재 상영. 첫 상영. 이 두 가지 사이의 배분들을 잘 맞춰 나가야한다. 지금까지 재 상영을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가 현재의 영화 태도를 망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라이즈>를 ‘무르나우 회고전’때 했다. 이번에 또 상영하게 됐다. 어떤 영화는 일 년 전에 틀었기 때문에 관객들이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게 시네마테크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 이상적인 시네필이라면 두 번째 볼 때에는 그 영화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두 배 이상 늘 수 있을 거다. 자기가 봤었던, 중요하다고 판단되어지는 영화들에 대해 글을 쓰거나 알릴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니까. 이게 이상적인 시네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줄짜리 프리뷰, 리뷰 쓰기에 너무 몰두한다. 저널도 그렇게 잘 안 쓰니까. 개인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네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작품에 대해 더 공격적인 이야기를 그들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다시 보는 영화에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서 보는 것과 새로운 영화를 보는 건 병행되어야 한다.





 

숙: 영화라는 게 한번 소비하고 끝나는 걸로 자꾸 인식되어 안타깝다. 아트시네마를 출입하는 관객들은 그걸 알고 있는데, 기본적인 관객들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걸 신기하게 생각한다. 영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

김: 근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네필도 그런 경향이 많다.


백: 관객들의 선택 영화가 <열대병>이다. 개인적으로 좀 의외였다. 난 페드로 코스타 영화에 투표했다. 그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열대병>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트시네마의 시네필들의 취향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관객들의 선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 참여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인데, 첫 번째는 보는 거고, 두 번째는 글로 참여할 수도 있다. 보는 것 이외의 참여도 아주 중요하다. 저널의 역할도 크다. 변화시켜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나마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여기서 퍼져나가는 대중화의 흔적도 보인다. 미국영화들도 5,60년대 영화들을 많이 틀었는데, 알드리치 ,돈시겔, 풀러, 이런 걸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모아 튼다면 좀 더 깊어질 수 있을 거 같다.


백: 북적북적하던 영화제 기간이 끝나고 나면 아트시네마도 공허해진다. 쉬어가는 느낌의 프로그래밍들이 많더라. 올해는 베네수엘라 영화제다. 아 이때 쉬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이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왜 생소한 영화제를 넣었을까 궁금하다.

김: 영화제는 영화제니까. 근데 열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뭔가. (웃음) 이후의 공백이나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실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필름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좀 더 다양해질 순 있을 거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만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스무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서 세 달 동안 웨스턴만 틀고, 필름누아르를 상영할 수도 있다. 물론 DVD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각자 열성적이라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거다.




숙: 천사들의 선택 영화 <무셰트>는 어떤 과정으로 상영하게 된 건가?

김: 처음 그게 시네마 엔젤의 이나영 씨 쪽을 통해 필름기증 형태로 하게 되었다. 이나영 씨가 원래 <무셰트>를 좋아해서 인터뷰에서도 그 영화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래서 그 영화로 진행이 되었다. 알고 보니 이나영 씨를 포함한 다른 배우들도 ‘시네마 엔젤’이라는 함께 참여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한 편씩 그렇게 진행될 수 있을 거 같다.


숙: 좀 놀랬던 게, 이나영 씨는 아트시네마에 자주 온다고 말은 들었지만 아트시네마랑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 배우는 아니었다.

김: 알게 모르게 많이 왔었다. 아트선재시절부터(일동 놀람).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얘기는 안해 봤지만 영화를 많이 보더라. 사실 기증을 하고 그런 게 참 큰일인데...


숙: 이나영 씨가 적극적으로 먼저 제안한 건가?

김: ‘시네마엔젤’쪽에서 먼저 제안해 왔다. 그 곳은 우리 뿐 만 아니라 독립영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숙: 외국배우 들은 영화제 가서 먼저 감독을 알아보고 제안하고 그러는데, 한국배우들은 좀 그런 거랑 멀지 않나 막연하게 오해를 하는데, 이번 일을 보고 놀랐다. 모임을 결성하고 필름을 기증하고.. 멋지다.

김: 영화라는 건 늘 패배해 왔었다고 하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자본이건 권력이건, 국가이든 영화는 늘 그런 것들에 패배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무력감이 있겠지만,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숙: 그 역설이 오히려 희망적이다. 어차피 늘 패배해 왔으니까 지금 패배는 별 거 아니다...

백: ‘웹 데일리’를 맡아서하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띈다. 아트시네마에서 따로 오리엔테이션 같은 것을 했었나.


김: 간단하게 했었다. 프리뷰를 써보고. 함께 얘기하고, 하는 정도다.


백: 그 젊은 친구들도 자발적 참여인가. 그들의 글, 태도를 보는 느낌은 어떤지 궁금하다.

김: 참여를 해줘서 고마울 뿐이다.(웃음) 특별히 보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영화제에 대한 느낌 같은 글도 조금 더 쓰자, 이런 얘기도 하고. 또 보러 오는 사람들이 ‘웹데일리’로 인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촉발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백: 일반관객도 웹 데일리에 쓸 수 있나?

김: 일반 관객은 서울아트시네마의 카페에 글을 올린다. 데일리는 데일리니까, 그냥 내부에서 하려고 한다. 카페나 블로그로 퍼져나가면 좋겠다. 모든 분들이 다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더 자유롭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극장상영엔 제한이 있지만 보고 이야기 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으니까. 영화에 윤리가 있다면 쇼트에 있는 건지, 감독의 멘탈리티에 있는 건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이런 고민 속에서 관객 스스로 자기조절하면서도 자유롭게 쓰게 되면 좋겠다. 사실 현실 안에서 자유가 별로 없지 않나.(다들 웃음)


백: 끝으로 올해의 소망을 듣고 싶다.

김: 아무래도 시네마테크로서는 전용관의 설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언제나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에 상영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의 경우 구로사와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영화 제작의 자본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영화에 돈을 지원한 것은 프랑스였다. 당시 자크 랑 문화성 장관은 구로사와 감독에게 ‘일본에서 구로사와 같은 감독이 영화 자금의 조달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작품에서나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데’라고 의문을 표했었고,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계의 수뇌부는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를 사랑하지도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뇌부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 일본의 뛰어난 감독들은 죽어, 나 혼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은 시간이 오래 묵으면서 깊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영화와 관련해선 어찌된 일인지 언제나 이런 단순한 사실이 부정되곤 한다. 과거를 지워버리면서 산업은 승리한 것 같지만 문화와 예술에서는 언제나 후퇴가 있었다. 지난 8년간, 아니 1999년부터 작가들의 회고전 필름 상영회의 역사를 보자면 이미 십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부언하자면, 뉴욕이나 파리를 제외하자면 니콜라스 레이나 알드리치, 타르코프스키, 존 포드, 무르나우 등의 영화와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도 언제든 쉽게 부정될 수 있다. 거장들이 영화계에서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듯이 말이다. 시네마테크를 전위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반대로 이곳은 후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를 문화로, 예술로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장 뒤늦게 변하는 곳이다. 영화는 산업으로 무성을 버리고, 흑백을 버리고, 필름을 버렸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그런 영화의 유산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배창호 감독님이 ‘장 르누아르는 “영화가 산업과 예술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술은 산업에 졌다’라고 말했던 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시네마테크에 오면 아직 그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소망이라면, 그래, 이랬으면 한다. 모든 불행에도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그나마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 까지다. 시네마테크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는 새삼 이야기하지 말자. 남은 20여 일 간의 영화제 기간 동안 눈 밝게 귀 기울여 고전영화들과 만나고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영화친구들을 만난다면, 먼발치서나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벅찬 희열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시네마테크가 조금은 더 가슴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끔찍할 정도의 열약한 인터뷰 환경으로 인해 소음과 잡음이 뒤섞인 녹취록을 불굴의 신념으로 깔끔하고 매끄럽게 풀어준 강연하 스태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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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식


선배의 꼬임에 빠져 주식으로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된 현수. 억울하면 잠도 못 자는 그의 성격 탓에 독학으로 주식을 공부한 그는 이른바 프로 개미가 된다. 친구의 부탁으로 작전주 하나를 쫓아 대박을 쳤지만 그 주는 용역 깡패 출신 종구의 작전주였다. 종구에게 끌려간 그는 황종구를 리더로 하는 600억짜리 작전주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각계 전문가들이 같이 작전에 참여하면서 판은 커져만 가고 이들은 거대한 음모 밑으로 자신들만의 또다른 작전을 진행한다.

영화 초반. 신용 불량자에서 제법 실력을 갖춘 슈퍼 개미가 된 주인공 현수에게 친구의 전화가 온다. 주식으로 돈을 날렸으니 그 돈을 벌충하기 위해 조언을 부탁한 것. 현수는 절대 남에게 알려주지 말라는 조건으로 황종구가 작전 중인 주식을 알려준다. 그러나 본인만 알고 있으라는 현수의 말은 이내 허공으로 사라지고 화면은 현수의 정보를 받은 친구로부터 순식간에 다른 사람에게로 퍼진다. 이 장면은 사실상 영화 [작전]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는 장면이다. 외형상 주식 사기극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작전]이 주는 쾌감은 장르영화의 쾌감하고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른바 자본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자본, 즉 돈을 쫓는 사람들의 뒤를 쫓는 것. 그리고 그 돈을 쫓는 사람들의 허망한 결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주식하다 지하 본 사람 많다라는 대사가 심상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용역 깡패 노릇을 하던 황종구가 자본 시장에 뛰어든 것도 결국은 돈(거대한 돈)을 쫓는 것이고 그의 작전에 참여하는 인물들 또한 돈을 쫓고 돈을 쓰고 돈을 이용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는 정확히 2009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 만능의 정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터. 그러므로 개미들의 피눈물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에게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현수보다는 오히려 돈에 환장한 황종구가 오히려 실질적인 [작전]의 주인공이다.

주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호재 감독의 말처럼 [작전]은 영화 전개상 꼭 필요하다 싶은 부분에만 전문적인 주식 용어를 쓰고 나머지는 주식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대형 사기극의 흐름에 동참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영화의 전개가 제법 설득력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여기에 각각의 캐릭터들을 세세하게 손 본 감독의 연출력도 나름대로 수준급이다. 깡패 출신 리더와 졸부, 양심은 시장에 팔아먹은 것 같은 애널리스트, 외국물 조금 먹은 듯한 펀드매니저 등 각각의 캐릭터들이 제법 생동감 있고 감칠맛이 난다. 특히 황종구를 연기한 박희순은 [작전]을 통해 [세븐 데이즈]에서 보여주었던 자신의 연기를 더욱 업그레이드해 돈과 권력에 환장하면서 동시에 깡패 시절의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꽤 복잡한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낼 뿐 아니라 등장하는 장면마다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 시킨다. [작전]의 가장 큰 수확을 꼽는 다면 바로 박희순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일 것이다.

반면 영화의 장르적 재미는 다소 무난한 구성 탓에 그리 돋보이지는 않는다. 영화의 내용에 비해 다소 긴 런닝 타임도 주식 시장에 대한 감독의 친절한 설명 때문이라고 볼 수 도 있지만 스피디한 전개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사족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현수와 유서연의 멜로 라인은 현수를 제외한 돈이라면 간도 쓸개도 빼줄 캐릭터들의 집합체에서 너무 튀는 부분이다. 한국의 스릴러들이 권선징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부분. 하지만 외국에서는 흔한 소재인 본격적인 은행 강도나 은행 사기극같은 소재의 영화가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현 상황에서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놓고 본다면 [작전]은 충분히 그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이제 영화 [작전]을 둘러싼 외부의 이야기를 해보자.



'증권’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로 증권과 관련된 용어와 주가조작에 대한 세세한 묘사 등의 이해가 쉽지는 않음. 조폭 출신 인물들이 계속적으로 욕설과 ‘X지랄’, ‘와이로’ 등의 거침없는 비속어 남발. 각목으로 사람 머리를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어 살해하는 장면,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청소년 관람불가.

이는 영상물 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작전]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내리면서 밝힌 등급 결정 사유다. 영등위가 이상한 결정을 내린 게 군사 독재 시절부터 시작해서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 결정은 아무리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욕과 폭력이 난무하는 조폭 코미디 영화에 15세 관람가를 서슴없이 내준 전력이 있는 영등위의 결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주식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다는 이유 또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쉽게 말해 주식 사기극을 소재로 한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야기일텐데 이 아이들이 이 영화 한편 보고 나중에 커서 사기 치고 돌아다닌 다는 말인가, 아니면 욕설과 폭력에 익숙해져 성인이 되어 각목을 휘두르고 다닐 확률이 높단 말인가. 분명히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15세 등급을 내주었던 영등위가 말이다.

영등위가 이런 이중 잣대를 들이미는 건 '혹시' 현 시국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닐까. 인터넷 게시판에 경제 이야기 몇 개 올렸다가 허위 사실로 잡혀간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해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해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 정부에 대해 영등위가 스스로 몸을 낮추고 기어 들어간 게 아닌가하는 것이다. 물론 그럴리야 없을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다. 그러므로 영등위는 자신들이 내린 이중 잣대에 대해 더욱 정확하게 입장 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앞 뒤 말이라도 맞게 다시 청소년 관람불가 사유라도 밝히던가.

ps1. 영등위가 알아서 정부에 숙이고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전혀 없는 나만의 추측이다. 그러므로 난 지금 위의 글을 통해 허위 사실을 '말'하고 '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이 뜨자마자 난 잡혀갈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어려운 상황 하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혹세무민한 죄로.

ps2. 단순히 인터넷에 허위 사실을 조금, '아주 조금' 말했다고 해서 설마 잡혀갈까. 그렇다면 ps1은 명백한 허위 사실인 셈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보고 있는 지금 난 허위 사실(ps1)을 유포한 죄로 잡혀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ps3. ps는 무한 반복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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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


<24시티>는 <소무> <플랫폼> <세계> <스틸라이프> 등을 만든 지아장커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띤 영화이다. 나는 이 영화를 작년 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서 처음 관람했다. 이쯤에서 고백할 것 한가지. 나는 지아장커의 영화들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며, 그가 각종 비평에서 받는 대단한 찬사들에도 크게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24시티>는......보고 나서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좀 지루했다.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유명한 배우들을 마치 청두의 노동자들처럼 연기시켜 인터뷰를 한 작업에 대한 놀라움은 있었지만, 그래서 무엇을 위해 앞서 말한 작업들을 한 거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찜찜한 마음을 영화에 갖고 있던 중 다시 영화를 보았다. 두 번째 관람 후 나는 '아, 두 번 봐야 할 영화였구나.' 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모호했고, 그러나 감동적이었다. 영화는 과거 찬란했던 때 청두에 몸담고 노동했던 다수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식으로 태어나 현재의 중국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사람을 인터뷰한다. 이 중엔 진짜 노동자도 있고 (<색, 계>의)조안 첸, (지아장커의 전작 대부분에 나온)자오타오와 같은 배우들도 있다. 이 지점에서 다큐와 극영화는 기묘하게 서로의 몸을 합친다. 그리고 그 몸에 내러티브의 전개에 분열을 내고 모호함을 더하는 장면들까지 겹쳐진다. 노동자들은 쑥스런 얼굴로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오래도록 서 있고, 어릴 적부터 여기서 컸다는 어린 여자아이는 밤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조용히 응시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말을 뱉어내는 인터뷰이들과 아련함을 자아내는 시들과 또 다른 영상들이 합쳐질 때, 영화는 그만의 리듬감을 갖고 움직인다.

하지만 지아장커는 '영화적 형식'을 혁신하는 데서 멈추는 감독이 아니다. 그에게는 영화만큼 윤리와 예의가 중요하다. 24시티는 우리가 쉽게, 혹은 함부로 영화 속 대상들에게 감정이입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담는 다큐멘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진정한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관객은 참을성 있게 그들의 쉼없이 이어지는 말을 들어야 하고, 때론 흐름을 깨는 여러 장면들에 몸을 맡겨야 한다. 인내심 없는 관객이었던 나는, 첫 관람 때 아마 '듣기'에 실패했을 것이다.

또 하나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과거를 노스탤지어의 감정(만)으로 바라보지 않는 영화의 시선이었다. 과거를 떠올려 재구성하고 추억하는 영화들은 필연적으로 그 시간에게 향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병을 앓고 그를 불러내어 오는 것은 예술가의 숙명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 그 병은 영화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독이 된다. 영화가 존재하는 시점은 '지금 여기', 즉 현재다. 무턱대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지탄할 때 그 영화는 자기부정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지아장커는, 분명 과거를 생각하나 '그래. 그 때가 좋았어.' 식의 단순한 노스탤지어적인 생각으로 끝맺지 않는다. 다만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노동이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시대를, 시간을 추억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리고 이제 과거와는 다른,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을 중립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세대는 "저는 노동자의 딸이니까요" 라고 말하면서, 청두를 허물고 들어서는 최신식 단지 24시티에 부모님을 모실 거라 말하는 세대다. 영화는 이 앞뒤 모호한 발언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청두의 노동자들을 찍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응시한다. 영화의 시선은 현재진행형의 시선임과 동시에, 스러져 가는 과거의 시간들을 찬란한 생명의 시간으로 되돌려 기억하는 성숙한 향수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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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막강한 할리우드 제작자이자 MGM 총수였던 루이스 B. 메이어는 1950년의 어느 날 한 남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는 지금의 널 만들어주고 먹여살려준 산업을 욕되게 했어!” 메이어를 분노케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와 감독 빌리 와일더였다.

할리우드는 1949년을 기점으로 관객이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스튜디오 종사자의 감축을 가져오게 된다. 또한 할리우드는 TV라는 기술적 도전에 직면해야만 했고 미학적으로도 이미 구태를 반복하며 고루한 도식에 안주하고 있었다. 이렇듯 영화와 TV사이에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빌리 와일더는 자신의 영화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데, 할리우드를 둘러싼 위기들, 즉 경제적, 기술적, 미학적 위기를 다룬 자기반영적 영화 <선셋 대로>가 그것이다.

왕년의 대배우의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수영장에 떠있는 남자의 시체인 할리우드의 무명 시나리오작가 조 길리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선셋 대로>는, 저물어가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반추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조명하며 이제는 TV에 밀리고 새로운 영화사조와도 맞서야 하는 할리우드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흥미롭게도 와일더는 왕년의 무성영화스타로 하여금 자신의 처지를 연기하게 만듦으로써 할리우드를 근거지로 살아가는 이들의 인생을 패러디하며 재구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여배우 노마에게, 새로운 물결에 대한 할리우드 감독의 집단적 위기감을 몰락한 감독 맥스에게 투사시킨다는 것. 계단을 내려오는 노마를 위해 카메라를 준비시키고 “액션!”을 외치는 그의 표정이 노마만큼이나 비장한 것도 이런 때문일 터이다. 이처럼 <선셋 대로>는 한 때 최고의 성공을 거뒀던 여자와 한 번도 정상에 서 본적 없는 남자가 만나 벌어지는 로맨스에 스릴러가 보태져 자기반영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성취를 이뤄낸다.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노마와 친구들의 카드게임 장면에 등장하는, 밀랍인형 같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버스터 키튼의 모습인데, 서글프고 잔인한 영화산업의 현실 반영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이렇듯 무성영화의 쇠락과 득의양양하던 유성영화 역시 TV의 보급과 더불어 위기를 맞게 되는 아이러니, 이것이 빌리 와일더가 <선셋 대로>를 통해 바라본 전후 할리우드의 자화상이요, 오늘까지도 <선셋 대로>를 회자시키는 동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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