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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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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인기는 당시로서는 세계적이었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는 4,50년대에 유행했던 B급 모험 영화의 분위기를 활용해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경쾌한 오락 영화를 만들어 냈고 이런 류의 모험 영화를 별로 접해보지 못했던 당시의 관객들은 쉴새 없이 전개되는 활극적 쾌감에 탄복했던 것.

당연하게도 이런 <인디아나 존스>의 캐릭터를 빌어 만들어진 아류작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당시 이런 식의 B급 영화들을 만들어 짭짤한 성공을 거두고는 했던 캐논 그룹의 모험 영화로는 TV 스타였던 리처드 챔벌레인을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로 출연시킨 <킹 솔로몬 King Solomon's Mines, 1985>과 <쿼터메인 (Allan Quatermain And The Lost City Of Gold, 1986> 시리즈가 있었다. 샤론 스톤이 출연하기도 했던 이 영화는 물론 '인디아나 존스'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는 아닌데, 실은 앨런 쿼터메인이라는 캐릭터가 '인디아나 존스'의 선조격에 해당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앨런 쿼터메인은 영국의 모험 소설가 H. Rider Haggard의 소설에 등장했었고 이미 191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영화화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캐릭터는 2003년의 범상한 슈퍼 히어로 블록 버스터 <젠틀맨 리그>에서는 숀 코넬리가 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기도 하며 2004년의 TV 방영용 영화에서는 패트릭 스웨이즈가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캐논 그룹의 영화들은 두 편 모두 국내 수입되었고 본 것 같기도 한데 거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글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성공은 위에 서술한 <쿼터메인>같은 비교적 제대로 된 영화들 외에도 각종 B급 모험 영화의 양산으로 귀결되었고 사실 대부분은 기억 저편에 있다. 하여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모험' 컨셉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홍콩식으로 컨버젼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배우 자체가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용형호제, 1985>와 <용형호제2-비응계획, 1986>이 대표적일 것이다. 두 편의 영화에서 성룡은 중국인 모험가로 분해 특유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모험 영화의 틀과 결합시킨, 자신만 가능한 액션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또 제목부터가 추구하는 장르를 뚜렷하게 선보이는 정소동의 <모험왕, 1995> 역시 조금 연대는 뒤쳐지지만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추종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모험왕>은 영화 자체가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다. 이들보다 앞서 좀더 선도적인 모험-환타지 영화가 존재하는데 <위슬리전기, 1985>가 바로 그런 영화다.


국내에 출처가 불분명해 보이는 DVD로 출시된 <위슬리전기>는 이미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는데, 이 영화 역시 홍콩 느와르와 왕조현의 팬덤 현상이 극에 달하던 시점에 뒤늦게 개봉되어 소모된 느낌이 강한 영화 중 하나다. 물론 <위슬리전기>라는 영화 자체가 그리 완성도가 뛰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조금 눈높이를 낮추면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이야기 전개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는 당시 중화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허관걸이 맡고 있는데, 허관걸은 <미스터 부>시리즈로 소개된 허관문의 광동어 코미디의 허씨 형제들 중 가장 스타성을 갖춘 인물로 서극 제작의 탁월한 코미디 액션 영화 시리즈인 <최가박당>의 큰 성공으로 중화권 내부에서는 커다란 인기를 끌어모은 바 있었다. 허관걸의 경우에는 '광동 코미디' 분야의 이미지가 강한 스타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는 편이었으며 그건 무협영화 <소오강호, 1990>의 상업적 실패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영호충으로 분했던 이 영화의 실패로 속편인 <동방불패, 1991>에는 영호충으로 이연걸이 캐스팅되게 된다.

<위슬리전기>에서 허관걸은 판타지 소설 작가인 타이틀 롤 위슬리로 분해 네팔과 이집트 그리고 홍콩을 종횡무진하며 모험 액션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 길에 왕조현과 왕조현의 오빠인 적룡이 참여하게 된다. 어쨌든 <위슬리전기>의 결말부는 당대에는 꽤 황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결말이 많은 현재로서는 창의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한데, 문제는 이 영화가 당시 홍콩 영화의 강박 즉 '뭔가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빠르게만 전개해 나가는 스피드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참을성 있게 캐릭터의 개연성을 설명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액션이나 볼거리를 보여주겠다는 강박이 심한 편인데, 이런 경향은 당대의 범상한 홍콩 영화들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일종의 집단 강박같은 것이었다.

물론 <위슬리전기>는 그럼에도 꽤 야심이 큰 영화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모험 액션 영화의 틀을 지니면서도 SF 장르와의 접속을 시도하는 특이한 경향을 선보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용이 사실은 외계의 우주선이었다는 설정은 황당할 수도 있지만 무척 재치있게 느껴지기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위슬리전기>는 캐릭터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인데, 특히 부유한 집안의 장자와 동생으로 나오는 적룡과 왕조현의 경우에는 영화 속 행위의 개연성이 많이 떨어진다. 가령 왕조현이 사실 위슬리의 열렬한 팬으로 쉽게 호의를 보낸다던가 적룡이 '여의주'를 차지하려는 목적들은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위슬리전기>는 완성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당대의 오락 영화로서는 적절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영화다.





* 태적라빈 Teddy Robin Kwan

이 영화의 연출자인 '태적라빈'이 생소해 자료를 뒤져보니 80년대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왜소증을 지닌 인물로 등장했던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여러 영화들에 배우로 등장하기도 했고 <위슬리전기>를 비롯해 원표와 홍금보가 등장하는 액션 모험 영화 <상하이 상하이, 1990>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분야는 <감옥풍운>, <최가박당>, <협도고비>, <흑협> 등에서 선보인 영화음악가로서의 재능이다. 현재까지도 영화의 제작자로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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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킨 피닉스는 한때 리버 피닉스의 형제로 먼저 알려졌지만 이미 그 이야기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배우들이 영화제목 앞에 '누구누구의-' 라는 형용사를 붙일 정도로 하나의 보증상표가 되었지만 내게는 와킨 피닉스가 그렇다. 배우로서의 얼굴이 만약 있다면 그는 정말 그런 얼굴이다. 에드워드 노튼이 마치 백지같은 얼굴 속에 수많은 다층적 인물을 숨기고 있어서 하나씩 카드를 뒤집어 보여준다면, 와킨 피닉스는 강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창백한' 표정을 보여주기에 오히려 어떤 캐릭터도 그 안에서 가능하다. 특히 [글래디에이터]에서의 코모두스와 [퀼스]의 신부 역할을 맡았을 때의 와킨 피닉스의 창백한 에너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얇은 입술은 강인하면서도 불안하고 예민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에 걸맞았다.

[위 오운 더 나잇]의 바비 그린 역할도 그런 역할들과 궤를 같이 한다. 아버지와 형이 모두 뉴욕 경찰의 수뇌부임에도 바비는 인기 나이트클럽의 지배인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문제는 바비의 고용주이자 유사 아버지와도 같은 러시아 마피아 출신 사장이 마약유통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바비의 아버지와 형은 바비를 가운데 두고 마약소통 작전을 펼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비는 러시아 마피아 일당이 생각보다 크고 강한 조직임을 알게 되고 형이 공격을 당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형 편에 서서 경찰의 작전에 가담하게 된다.

마약을 사이에 둔 경찰과 조직의 대치는 새롭지 않은 구도지만 그 사이에서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어대는 바비의 심리상태는 영화의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경찰쪽에 정보를 주기로 마음먹으면서 바비는 여자친구의 보호를 위해 둘은 경찰관의 보호아래 비밀리에 모텔을 전전하는데, 이 역시 마피아들이 곧 알아내고 따라붙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어느 나라나 범죄조직 앞에서 공권력은 무기력하다손 치더라도, 아버지와 형이 경찰 수뇌인 바비의 입장에서는 화 조차 낼 수 없는 상태다. 여자친구는 서서히 지쳐가고, 바비는 다시 짐가방을 싼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속에 그들은 또다른 모텔로 장소를 옮기느라 매우 지쳐버린 상태에서 출발하지만 이 때 마피아들의 차가 따라붙고 만다.

비 속에서 보여주는 이 자동차 추격씬은 매우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에너지로 가득 찬 여느 헐리웃 범죄영화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범죄를 소탕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찬 경찰/형사와 악질적인 에너지(악당 역시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로 폭발할 듯한 상대편이 서로를 밟아죽이지 못해서 총을 쏘아대고 차를 따라붙고 도로의 사방이 자동차 폭발과 전복으로 가득 차 버리는 그런 헐리웃식 에너지가 여기에는 없다.

다만 끊을래도 끊을 수 없고, 마치 그림자 밟기처럼 끝이 없이 맴맴 도는 범죄와의 악순환에 지쳐버린 탈진의 에너지가 여기에 있다. 한순간 [살인의 추억]에서 비를 맞고 망연자실하던 송강호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져버린 바비와 그의 애인,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도록 막다른 데로 몰린 그들이 뿜어내는 지친 탈진의 에너지가 80년대의 혼란스럽고 붕 떠 있는 뉴욕의 분위기와 중첩된다. 이 자동차 추격신 전까지 영화는 액티브 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추격신이 나오기전까지 쌓아온 인물들의 심리적인 피곤과 갈등때문에, 이 추격신은 정점에서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헐리웃 영화들 속에서 자동차 추격신은 웬만한 폭발과 충돌을 동반하지 않으면 시각적인 충격조차 주기 힘든 요즘이다. 그러나 이 추격신은 그렇게 물량공세를 퍼붓지는 않는다. 다만 폭우 속에서 직접 핸들을 잡은 듯 인물들의 흔들리는 시야가 충분히 느껴지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성과 판단력마저 흔들리는 상황이 감각적으로 만져진다.

영화의 결론은 바비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교훈적일 수 있는 선택이지만, 아무튼 모두가 '범인은 독 안에 든 쥐' 라고 하며 손을 털고 나왔을 때 바비가 끝내 자신의 손으로 상대편을 처단하는 모습은 인간의 '피폐한 밑바닥'을 보여준다.

와킨 피닉스는 매우 안정적이고 꾸준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지만, [위 오운 더 나잇]은 [앙코르]에 못지 않게, 그의 고유한 얼굴이 매우 가까이 드러난 영화중 하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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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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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그건 가난한 동네, 특히 집창촌이 있던 동네에 살던 여자애에겐 당연한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어느 날 집에 찾아온 형사가 나에게 가끔 과자를 주곤 했던 어떤 언니가 살해당했고, 그게 동거하던 남자의 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를 해줬던 일도 있다.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며 어떻게든 그 동네를 벗어나겠다고, 딸을 가진 엄마들은 더욱 억척같이 일을 하던 그 동네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멋도 모르고 가게들이 빼곡이 들어선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교양있는 동네에서 섹스는 보다 음습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지만 가난한 동네에서 섹스는 노골적이기 마련이다. 머리와 눈을 '나보다는 윗쪽' 사회에 두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 섹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 특히 영화는, 그저 어른들과 관련된 일일 뿐만 아니라, 더럽고, 심지어 무서운 것이기도 했다. 섹스와 가난이 합쳐지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삶과 세상에 대한 공포는 두 배가 아니라 세 배, 네 배가 된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아이들도 미아리의 그 가게들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그 동네에 살던 다른 아이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그곳은 별로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언니들이 드레스를 입고 깡충깡충 뛰어가는 곳이기도 했고, 공포와 위험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표지판이 깜박이는 듯 느껴지기는 곳이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알아서 공부를 했던 건, 가난한 집안의 첫째딸에 외모도 볼품이 없으면서 공부까지 못 하면 저 언니들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내 또래 남자아이들이 사춘기의 호르몬의 폭발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시상영관에 드나들며 에로영화들을 보다가 우연히 뇌에 충격을 주는 영화를 발견하고 점차 영화광이 되어가는 수순을 밟았을 그 나이에, 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키워나갔다. 용돈이 따로 없었고 영화관에 따로 갈 돈도 없었던 데다 영화는 그렇고 그런 저질스러운 오락이라 여겼던 만큼, 내가 충무로 키드나 헐리우드 키드가 될 일은 만무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집에서 구독하던 조선일보에 실리던 영화평은 가끔씩 읽곤 했던 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불편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궁금증과 매혹을 느끼던 금지된 어둠의 세계를 대표해주는 것이 내게는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단,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을 또렷이 인지하고 있던 내게는 매혹보다는 공포와 불쾌감이 더 압도적이었지만.

2.
한국영화에 대해 저런 식의 편견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던 건 그저 하필 그런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의 특이한 비극이겠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기 위해 스크린, 섹스, 스포츠(이른바 3S 정책)를 장려했던 당시 시대상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리라. 점심을 500원짜리 학생회관 라면으로 때우거나 선후배한테 빌붙고는 그 돈으로 비디오방에 쳐박혀 영화들을 보거나, 그 당시부터 시작된 시사회라는 것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얼추 94, 5년 대학 시절 때부터다. 문화원 세대인 내 윗세대들과 달리 나는 PC통신 영화동호회 세대로, 동호회 사람들과 시사회 정보를 공유해 달려가거나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상영회’라는 형식으로 카페를 빌려 누군가 어찌어찌 구해온 불법 복사판 비디오를 틀어놓고 다 함께 둘러보았다. 세상에, 영화에 누벨바그니 뉴 저먼 시네마니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저 뒷골목에서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채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자들만 보며 경멸감을 갖던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게다가 어떤 영화들은, 나이를 꽤 먹어서까지 순진함을 버리지 못했던 나보다 더 소녀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었다.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처음 보았던 상영회가 아직도 기억난다. 당시 동호회 시솝이던 형은 누벨바그와 그 이후에 대해 40분에 가까운 설명을 했고, 나는 ‘즉석에서 저런 얘기를 저렇게 길게 할 수 있다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움과 감탄어린 눈으로 그를 보았다. 막상 영화를 보면서는 저게 대체 뭐냐 싶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가슴이 벅차서 창가에서 한참동안 담배를 피우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옆동네 하이텔 영화동호회의 어떤 영화소녀의 일화를 들으며 무려 ‘열등감’ 씩이나 느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내게는 그런 영화를 보며 그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 양지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들이나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거다.

영화를 보다 본격적으로 보고 한국영화사에 대해 이것저것 주워듣기 시작하면서, <어우동>의 이장호와 <깊고 푸른 밤>의 배창호 같은 감독들이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사람들로 치부되는 것이 적응되지 않았다. (나중에 비디오로 본 <어우동>은 격렬한 심리적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꽤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스스로 당황했다.) <깊고 푸른 밤>이야말로 그러니까, 어린 마음에 뒷골목에서 그런 식으로 '말없이 얘기되는' 듯한 섹스영화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겠답시고 10여 년 전에 <깊고 푸른 밤>과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비디오로 챙겨보았을 때, 다른 두 작품엔 놀라고 감탄하면서도 저 <깊고 푸른 밤>만큼은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내게는 장미희의 상당히 양식화된 연기와 발성이 그저 거북살스럽기만 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여전히 순진했을 뿐 아니라 완고한 도덕율을 가지고 있던 내게, 장미희가 연기했던 제인이나 안성기가 연기한 호빈이 곱게 보일 리도 없었다. 넌 왜 그러고 사니, 이게 둘을 향한 내 반응의 고작이었다.

3.
배창호 감독의 전작을 상영할 거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오래 전 비디오로 보면서 감탄했던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드디어 필름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감격했다. 두 영화와 함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꼬방동네 사람들>과, 당대 최고의 흥행작이자 배창호 감독을 80년대 최고의 흥행술사 자리에 확고하게 올려놓은 <고래사냥>을 확인하는 게 당시 내 계획이었다. <러브스토리>는 오랜만에 다시 봐야겠다 싶었고, 다른 작품들은 시간 되면 보고 아니면 말고. <깊고 푸른 밤>을 다시 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며, <적도의 꽃>을 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황진이>는 말하자면, 그저그런 영화들만 있었고 의무감으로라도 별로 보고싶지 않다는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을 깨준 최초의 영화였기 때문에 필름으로 꼭 봐야만 했다. 물론 제작된 연도상 <황진이>를 ‘옛날영화’로 분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내게는 무조건 ‘옛날영화’로 구분되곤 한다. 사실 배창호 감독이 한창 한국영화를 주도하던 80년대는 내가 고작해야 국민학생, 중학생이던 때다. 배창호 감독은 나보다는 내 바로 윗세대의 감독이었다. <천국의 계단>과 <젊은 남자>의 개봉 사이에는 불과 3년의 텀이 있을 뿐인데도, 내게는 어쩐지 <천국의 계단>은 옛날영화, <젊은 남자>는 현대영화로 구분되는 듯 느껴지니까. <젊은 남자>와 <러브스토리>를 비디오로 처음 봤을 때, 그저 나쁘지 않구나, 그래도 옛날 감독은 어쩔 수 없나봐, 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건 내 편견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 버렸지만.

번역자들 사이에서는 작업이 어렵기로 악명이 자자한 모 영화제의 영화 번역을 하느라 특별전의 첫 주를 날려먹은 후,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배창호 감독의 영화들을 보았다. 총 17편 중 내가 본 건 11편.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360도 회전이동 샷, 컷을 하지 않고 패닝으로 시간의 흐름이나 장면전환을 하는 샷 같은 건 이제는 마치 감독의 인장처럼 느껴진다. <고래사냥>의 진정한 속편이 <고래사냥 2>보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흥미로웠고, 영화 내내 고정컷이다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단 두 컷에서 카메라가 움직인다거나 시네마스코프가 아닌 비스타비전 비율인 대신 화면의 ‘깊이감’을 활용하며 공간의 입체성을 보여주는 <황진이>의 컷들도 신비로웠다. <러브스토리>는 너무 시대를 앞질러 나온 선구적이면서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영화였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보다 이명세 조감독의 터치가 더 많이 보이는 듯해서 또 재미있었다. <고래사냥>은 거의 열광을 하면서 보았는데, 특히 이미숙의 연기에 눈물을 꽤 쏟았다. <정>은 이 감독이 내 편견대로 80년대의 영화가 아니라, 계속 그 영화세계를 확장해가고 진화시켜가고 있는 ‘현재의’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그런데, 애초에 서너 편 봐야지 했던 걸 열한 편이나 보게 만든 영화, 그게 바로 <깊고 푸른 밤>이다. 정확히 하면, 비디오로 봤던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름으로 상영된 <깊고 푸른 밤>.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 밤>을 보며 ‘건졌구나’ 싶었다. 솔직히 두 영화 모두 이제 다시 보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건, 전적으로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배창호 감독이 독립영화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 전까지 작품 중에서는 여전히 <황진이>와 <기쁜 우리 젊은 날>, 거기에 이번에 처음 본 <고래사냥>이 가장 좋고, 내 정서도 다소 이런 예쁘고 고운 쪽에 맞다. 그럼에도 저 두 작품이 내게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비로소 한국영화에 대한 내 편견의 두 번째 장벽이 깨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래 전 <황진이>를 보면서 편견의 첫째 벽이 깨진 바 있지만,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비열하고 계산적인 인물들이 어둠의 포스를 한껏 몸에 두른 채 쾌락과 욕망을 좇다가 추락한다는 본격적인 ‘어른영화’ 중 품격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깊고 푸른 밤>에서의 안성기는 딱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니로를 연상시키는, 지독하게 섹시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안성기의 전신누드 씬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비슷한 시기 다른 영화에서의 안성기는 예의 그 사람좋고 순한 표정을 드러내지만, 이 영화에서만은 차갑고 비열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젊은 남자’의 매력을 선보인다. 차이나타운을 걷는 장면에서의 안성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영문포스터 속에서 자켓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는 로버트 드니로와 똑같다. 안성기가 연기한 백호빈이라는 캐릭터는 <젊은 남자>에서 이정재가 맡은 캐릭터인 이한의 전신인 한편, 이한보다 훨씬 비열하고 사악하다. 그러나 역시나 360도 회전이동 씬으로 표현되는,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백호빈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 단단하고 비열한 외피 안에 숨어있는, 순수와 선을 향한 지향과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그 끝없는 욕망과 꿈이 얼마나 가련한지, 그럼에도 얼마나 절박한지, 또 이것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피로한 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바로 그 씬에서 이 남자가 쥐고 있는 도덕적 딜레마를 더욱 대비시켜 드러낸다. (그는 수동적으로 딜레마에 처해있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그 딜레마와 모순을 쥐고 있다.)




4.
한국의 수많은 시네필들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미국의 영화사에서 자신의 영화적 영감과 영향을 찾으면서 정작 한국영화의 과거와는 철저히 단절돼 있다. 단순히 사대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선배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던 당시 가해진 탄압과 억압의 역사를 우리는 다시 되새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 상처의 역사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형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더욱이 이 반쪽짜리 영화 만들기의 역사는 영화를 ‘딴따라’로 취급하며 자료 보존과 정리에 있어 소홀히 했던 외적인 환경과 맞물린다. 제대로 시스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 오락거리로서 괄시받았던 영화라는 이 매체가 문화의 일부, 혹은 예술의 일부로서 재평가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다. 나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내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의 분위기와 관련해 영화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첫인상을 기술했고, 이는 한국영화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특별한 인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특별한 인상이 가능했던,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반은 불과 20년 전 우리의 한국영화가 사고되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독은 고작 임권택 감독 한 명에 불과했다. 일부 평론가와 진지한 관객이 임권택 감독에게 그토록 연구를 집중하는 이유, 그리고 많은 숫자의 일반 영화팬들이 임권택 감독을 그렇게도 모질게 외면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임권택 감독은 저 상처의 역사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서) 고스란히 증언하는 존재인 것이다. 게다가, 그 임권택 감독의 영화마저도 100편을 모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편수의 문제가 아니라 프린트 유무의 문제에서.

배창호 감독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펴낸 김영진의 [이장호 vs. 배창호]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를 읽었다. 그 책들에 의하면 ‘배창호 특별전’을 통해 재발견한 ‘현재의 감독’ 배창호는 실은 이장호 감독과 연결돼 있고, 그 이장호 감독은 다시 신상옥 감독과 연결이 돼 있다. (이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장호 감독이 아닌 배창호 감독의 전작전을 먼저 한 것도 전적으로 프린트 수급과 상영허가 확보라는 아주 물리적인 부분에서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마저 전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마도 여기에서 배창호 감독의 존재가 왜 특별한가, 의 이유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배창호 감독은 80년대에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재’의, 한국의 현대영화를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감독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배창호 감독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는, 어쩌면 저 단절된 과거와 지금 현재 사이를 잇는 가교적 존재, 혹은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현목 감독과 이만희 감독, 이두용 감독, 신상옥 감독은 이미 과거의 감독이고, 이장호 감독 역시 과거 속으로 떠밀려진 채 다시 현재로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이명세 감독은 너무 현대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배창호 감독이 있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전편을 필름으로 보는 게 어쨌건 가능하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에서 우리는 지금 동시대에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과 이미 활동을 접은 옛 배우들을 동시에 보며, 그 중 일부는 여전히 ‘젊은 배우’로 활약 중이다. 봉인된 한국의 과거영화에 대한 탐색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겠구나, 라고, (좋아하는 감독 리스트에 배창호 감독을 추가하면서) 중얼거리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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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 식탐이 세상을 구한다

필진 리뷰 2008.06.10 08:22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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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면 먹어야 하는 우리의 포는 팬더다. 뒤뚱뒤뚱한 걸음걸이는 불안해 보여도 두 손으로 배를 들었다 놓을 때 출렁이는 살들은 귀엽다. 포는 22시간을 자야 움직일 수 있는 팬더다. 그는 아버지의 가업인 국수장사를 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머리속으로는 쿵푸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구름 위에 자리 잡은 절이다. 이곳에는 포가 우상으로 여기는 무적 5인방이 수련중이고, 용문서가 용의 전사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포는 평화의 계곡에서 용의 전사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회를 보기 위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뒤뚱뒤뚱 계단을 두어걸음 옮겼을 뿐인데, 숨이 차서 벌러덩 누워 배를 하늘로 내미는 우리의 포가 대회를 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하지만 포는 우여곡절 끝에 대회장에 난입하고, 곧 대사부인 거북의 예언으로 용의 전사로 지목받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어찌 되었건 포는 용의 전사가 되고, 수련에 돌입하면서 타이렁이 감옥에서 탈출하면 평화의 계곡을 지키위해 악당 타이렁과 맞서야 한다. 허나, 잘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포는 팬더기 때문이다. 먹는 건 잘하고, 자는 건 남부럽지 않고, 입 담은 최고지지만 그는 그 뿐이다. 잭 블랙이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현현하고 있는 것 마냥 포는 잭 블랙이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닮았다. 실제 목소리만 잭 블랙이 아니라 포는 잭 블랙 그 자체로 보인다. 이를 테면 [나초 리브레]에서 타이트한 바지위로 툭 튀어나온 배가 그러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좌중을 웃기는 게 [스쿨 오브 락]이랑 비슷하고 쿵푸의 역사를 주욱 꿰고 있고 잡다한 쿵푸사를 다 아는게 마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음악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던 잭 블랙의 모습과 비슷하다. 포를 가르쳐야 하는 사부는 참 난감하다. 포는 호랑이도 아니고, 사마귀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니고, 학도 아니고, 뱀도 아니기 때문이다. [쿵푸 팬더]에서 사부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5인방은 각각 동물에게서 착안한 상형권의 하나이다. 호권(호랑이), 후권(원숭이), 사권(뱀), 학권(학), 당랑권(사마귀)은 들어봤어도 소림사에서 팬더를 보고 무술을 만들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이라서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될터이지만, 관객으로서도 팬더가 우슈를 하거나 정무문을 한다고 하면 참 깝깝하다. 하지만 비밀은 바로 그 아무것도 아님에 있다. 팬더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거듭난다.

사부는 대사부가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말을 되새김질 한다. 팥 심은데 팥나고, 콩 심은데 콩 난다면, 팬더는 팬더가 되어야 한다. 호랑이가 호권을 하지 않고 당랑권을 하며 어딘가 어설퍼 보이듯이 팬더는 팬더의 기질을 살려야 한다. 사부는 어느 날 포가 화가 나서 음식 창고에서 난동을 피우며 음식을 먹어치우는 걸 훔쳐본다.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포는 어딘지 모르게 야성미가 넘쳐 보인다. 그냥 화가 나면 먹어야 한다며 입 안 가득 음식물을 구겨 넣는 한심한 포지만, 주변을 보면 난장판인게 포가 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든다. 부셔지고 깨진 물건들. 이 때 사부는 약간의 실험을 하겠다는 듯 원숭이가 찬장에 과자를 숨겨두었다고 말한다. 포는 기다렸다는 듯이 3m높이에 있는 찬장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 갈짓자로 다리를 벌리고 두 찬장 사이에 끼인 채 과자를 집어 먹는다. 사부는 옳거니 한다. 다른 제자들과 똑같은 수련법은 포에게는 통하지 않고, 오히려 식탐을 이용하여 그를 훈련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는 술을 먹어야 취권이 가능했던 성룡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부는 음식을 줄듯 말듯 하면서 포를 놀리고, 포는 그덕에 무뎠던 몸이 유연해지고 팔굽혀 펴기도 자유자재로 하게 된다. 결국 포는 사부에게서 만두를 뺏을 수 있는 경지에 까지 오르게 된다. 이게 다 배고픈 팬더의 기질 탓이다.

결국 포는 팬더로 거듭난다. 그래도 아직은 2% 부족했던 포는 마지막 관문으로 전설의 용문서를 펼쳐든다. 용문서만 있으면 사악한 타이렁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부와 5인방과 포. 그러나 용문서는 백지였고, 전설을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실망한 포와 사부는 타이렁이 평화의 계곡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에 시민들과 함께 대피한다. 포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포를 반기던 그의 아버지는 포에게 앞치마를 둘러주며 이제 가문을 대를 이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포의 아버지는 가문의 비법인 국수 만드는 비밀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버지가 알려준 국수 만드는 비법은 따로 없었다. 없다는 게 비법. 즉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잘 만들면 된다는 소리. 무안에 도가 있다는 동양적 사상은 이렇게 등장한다. 포는 용문서가 백지였던 까닭을 알게 되고, 있다고 믿는 것이 곧 있음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이는 마음의 평화와 함께 자기를 믿는 것이 유를 창조하는 마지막 단계라는 소리임을 깨닫게 되고 포는 자신있게 타이렁과 맞서 싸우게 된다.


포와 타이렁의 대결은 이 영화의 백미인데, 언뜻 주성치의 [쿵푸허슬]이 생각나기도 한다. 포의 배치기를 맞고 공중으로 튕겼던 타이렁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땅 속 깊숙이 파묻히는 장면은 [쿵푸허슬]에서 여래신장으로 적을 물리치던 장면이 생각나기도 하고, 사실 이 영화에서 시민들을 배려하는 장면을 보아도 [쿵푸허슬]이 스쳐 지나간다.포가 ‘쿵푸 팬더’로 거듭나는 걸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배치기 장면이다. 배치기는 호랑이, 사마귀, 원숭이, 뱀, 학 같은 동물은 절대 흉내내지 못한 팬더만의 특허가 아니겠는가. 이 영화는 일종이 성장담으로 팬더가 쿵푸 팬더로 거듭나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동양사상과, 서양의 영웅사상을 곁들이는 퓨전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 확립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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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obaktoon.tistory.com BlogIcon 호박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빨랑 보러가얄텐뎅..
    포스터만 봐두 울팬더 표정이 압권이에욘^^
    보고있음 미소가 그냥 흐흐흐흐(^-----^) 흐를것 같다는..

    리뷰잘보고 갑니다=3=33
    오늘도 완전 행복하시옵기를.. 아자~

    2008.06.10 12:50 신고
  2. Favicon of https://alltruth.tistory.com BlogIcon 아침의영광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제목 멋집니다 ㅎㅎ

    2008.06.11 12:04 신고
  3. Favicon of http://www.realfolkblues.co.kr BlogIcon 아쉬타카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제목 멋진데요 ^^

    2008.06.11 20:59

비판은 비평의 방패가 아니다

필진 칼럼 2008.06.09 06:2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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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을 업으로 삼다보니 무수한 영화비평 유의 글을 접하게 된다. 애써 찾아내어 읽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영화주간지부터 매일 발행되는 무가지에 이르기까지 또 더러는 인터넷에 올려 진 블로거들의 리뷰를 꼼꼼히 읽기도 한다는 말이다. 대체로 잡지나 간행물에 담긴 내용들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체험사이에서 안전한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관객의 리뷰는 철저히 주관적 체험과 감흥을 바탕으로 보다 솔직하게 쓰여 진다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아마추어의 글에서 번뜩거리는 시선과 예리한 비판이 돋보이는 글, 또는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시각으로 읽어낸 글, 또 더러는 기성 평론가과 매체를 힐책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글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단 거창한 영화평론이 아니더라도 리뷰를 써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처음에는 전체 줄거리를 풀어내고 해설하는 정도에 머물다가 어느 정도 내공과 연륜이 더해지면 장면과 쇼트를 분절하고 해석하고는 비판적 시각을 덧붙이며 훈수두기에 나서게 된다. 사실 누군가를 누군가의 글을 누군가가 만든 영화를 비판하는 일은 칭찬하는 것보다 수월하다. 적어도 내 경우엔 칭찬이 훨씬 힘들었으니까. 게다가 칭찬일색의 심심한 글보다는 까칠한 문체의 비판적 글이 더 재미있게 읽혀지기 마련인데, 여기에 많은 이들의 동조와 지지가 더해지는 순간 글은 힘을 얻어 하나의 권력이 되기도 한다. 영화 평 꽤나 쓴다는 이들의 글에서 영화는 온데간데없이 글 솜씨만 부각되는 것도, 글쓴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까닭도 이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한 관객리뷰어와 그들의 힘은 영화담론의 생성 유포 재생산의 프로세서를 바꾸어버렸다. 많은 이들에 의해 거론되고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진다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다만 문제는 일각에서 보여 지듯이 비판을 위한 비판이 횡횡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밀한 성찰 없이 배설하듯 토로해내는 비판이란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창조적 비판이란 비판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영화와 감독과 배우에 대한 애정이 결여된 비판은 비난과 다르지 않으며 이는 비평의 순기능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판적으로 쓴 다수의 영화리뷰에서 발견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닌 지독한 편견과 혐오증이다. 대체로 이 부류의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방어에 익숙하다. 즉 다수의 지지를 얻을 때는 우쭐거리며 제법 프로처럼 행동하지만 비판의 화살이 빗발칠 때면 ‘나는 그저 아마추어일 뿐’이라는 갑옷을 뒤집어쓰기 일쑤라는 말이다. 이미 비평의 본령과는 거리가 먼 글쓰기이며 비록 전문비평가가 아닐지라도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이의 자세가 아니라 하겠다.

내가 20대였던 시절, 선배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얘기는 “너희는 도무지 비판의식이 없어!”라는 질책이었다. 물론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와 나의 친구들이 민주화와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젊음을 소비했고 세상 속으로 걸어갔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무언가를 외치고 쓰고 말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 유형적 가치창조가 우선되고 무엇보다 인정받지 못하면 도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비판적 어조를 유지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은 불안의 시대, 그러니까 자신을 알리기 위한 존재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일련의 태도와 행동이 도덕적 제약을 받지 않는 세상에 서있다는 말이다. 진본과 진실이 유폐된 시뮬라크르의 범람과 장악.

영화평론을 쓰면서 수없이 “나는 비판적인가? 지나치게 호의적 시선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가?”라는 강박에 시달렸었다. 때문에 한 때, 어떻게 해서든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으려 애쓴 적이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건 비판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강박증에 내가 패배하는 순간, 글은 칭찬과 비판이 절묘하게 결합된 어정쩡한 형태로 완성되곤 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그저 볼만하지만 (비평 관용구로 표기하자면) 2% 아쉬운 영화」 가히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동네구멍가게 식 글쓰기요 김밥천국에 다름 아닌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앞서 말했듯이 나의 20대 시절 앞장서지 못한 과거에 대한 죄의식과 트라우마에 가까운 비판의식 결여에 대한 회복심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전력 때문에라도 요즘 젊은 친구들의 영화 글에서 강박적 비판이 발견되는 것은 왠지 걱정스럽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름지기 비판 정신이란 타협 없는 지사적 순결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정확하고 냉철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비판기능이 상실된 비평은 그 소임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내부, 외부의 유혹에 현혹되지 않았음을 자부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를 막아내는 방패로 “비판 글”을 이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나는 충분히 고민하고 있으며 사려 깊게 생각 중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확인 시켜주기 위해 비판을 비평 무기로 동원한다는 말이다. 이때 비판은 괜한 트집 잡기나 인정투쟁으로 오인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비판은 칭찬보다 더 위험하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진심어린 창조적 비판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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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문성환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씀하셨듯이 창조적 비평, 혹은 생산적 비판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을 때, 애정이 없다면 이해라도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008.06.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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