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필진 칼럼 2008. 6. 9. 06:24 Posted by woodyh98
강민영(편집스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이어 며칠간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 아이러니하게도 빗줄기는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차가운 밤 시간에만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이렇게 시원히 비가 곤두박질치는 것은 아마 이틀째일 것이다. 이틀 동안 하필이면 퇴근시간, 하필이면 하루를 마감하려고 준비하는 바로 그 시간에 비가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펼치고 우비를 입고 종종걸음을 한다. 광화문 앞 사거리는 폭우를 피해 빌딩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집으로 갈지 아니면 남아있을지를 고민하는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런 복잡함과 더불어 빗소리에 숨어 세종로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나의 조그마한 발자국 소리는 작은 영화제가 한창인 인디스페이스 앞에서 멈춘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부상자를 내고 가장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을 보였던 지난 주말, 나는 애인과 함께 시청으로 향했다. 집회는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새벽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시청에서 모여 작은 공연을 나누던 인파는 여느 때처럼 소공동을 돌아 광화문으로 향했다. 시민들은 경찰차로 막혀있는 광화문에서 빠져나와 안국동 쪽으로 향했다. 물론 그곳도 차단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밤이 깊어갈 수록 차들은 뜸해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키고 서있었다. 모두가 피곤한 눈빛으로, 혹은 감정적인 욕설을 토해내며 진남색 경찰복을 반짝이는 앳된 얼굴의 전경들과 마주하고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주말이 끝나갈 때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온 나를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불러 세웠다. 그날 저녁, 그날 새벽의 일은 어머니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 생각했다. 물에 젖고 배터리도 없어서 근 하루를 잠만 자야했던 내 핸드폰을 켜자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성 메시지가 가득히 쌓여있었다. 그리고 힘든 월요일이 밝았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정신없는 강의 행진에 몸을 맡겼다. 지난 주말은 ‘어쩌면’ 잊혀 졌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분이 묘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일순간 공중에 떠버린 나의 일상을 굳건히 잡아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은 2일자 한겨레신문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애인과 나의 모습이 지면에 여과 없이 실린 사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날 아침, 신문을 보았던 지인들은 하나같이 ‘다치지 않았느냐’라는 말을 쏟아냈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고 쓰라렸냐는 물음에 갑자기 사라진 나의 주말이 생각났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 전에 낯익은 얼굴들과 대화, 혹은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조금씩 파리해진 얼굴들. 그들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젖어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시간표를 확인한 뒤 극장으로 향한다. 대부분의 수업은 다섯 시를 전후해서 끝나기 때문에 내가 선호하는 극장 어디를 가도 대충 상영시간은 맞는 편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배창호 특별전’이 막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이제 막 ‘인디포럼’이 편대비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멀티플렉스에 들러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 편 보았던 나는 다음 날인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배창호의 <길>을 보지 못했기에 서울아트시네마에 들러야 했고, 인디포럼의 국내 신작들에 대한 기대감도 증폭되어 <길> 이후의 시간을 인디포럼에 가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늘 그렇듯 안정적인 일요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잠시 산책을 하거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거나 데면데면 인사를 하는, 그런 평소의 일요일을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혹 광화문에서 새벽까지 가두행진을 하더라도, 영화를 볼 여력은 충분히 남아있을 것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월을 시작하는 새벽, 촛불 집회에 참석한 이후 다음 날은 한참을 일어날 수 없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이 든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을 뿐이다. 물론 현장에 늦게까지 있던 애인도 마찬가지였다. 정오가 넘도록 베개를 부여잡고 방구석을 뒹굴다가 이따금씩 뉴스와 인터넷을 뒤지며 지난밤의 상황을 되새김질 했다. 그리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도저히 극장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감기는 눈꺼풀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다시 일어난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이미 인디포럼의 상영이 한창일 시간이었다.

난생처음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 정지 페달을 밟았다. 궁금한 영화들을 보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할 일이 많았는데, 담고 싶은 것들도 마음속에 가득히 차 있었는데 그것을 풀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5월의 마지막 날 저녁, 세종로 앞에서 눈물을 떨구던 친구가 생각났다. 6월의 첫 날 새벽, 오타 가득한 문자로 다급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극장 친구와의 대화, 조심하라던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제대로 보내졌는지 조차 확인할 정신이 없었던 복닥거리는 문자함의 텍스트들을 가만히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말로 표현하기 조차 힘든 폭력과 감정의 곡선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지난 새벽,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던가. 시청 앞에서 하얀 온기를 내뿜던 친구는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영화 같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영화를 떠올리는 것은 웃기지?’라고 묻는 그녀에게, 나는 어색한 말투로 ‘그것도 투쟁, 그것도 대화’라고 말을 건넸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사람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지나간다. 스산해진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본다. 그들은 멀어진지 오래다. 그리고 나도 그 곳을 지나온 지 오래다.

월요일, 연일 퍼붓는 비로 인해 몸을 숨기고 가까스로 찾아간 인디스페이스에서 <국내 신작> 부분 섹션을 보며 눈을 찌푸리기도 하고 노영석 감독의 <낮술>을 보며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다. 두 번의 관람 기회를 놓친 <낮술>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극장을 나섰을 때, 나는 또 한 번 엄청난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방패를 들기 싫다던 그 아이, 그 아이의 목소리가 문득 생각났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을지로 3가의 중앙차선을 가로질러 가는 경찰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기 어딘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서로 복귀하는 그 아이의 눈빛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던 치마에 한가득 물을 머금으며, 그리고 발이 진흙탕에 빠지는 것도 모른 채 멀어져가는 경찰차를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낮술>의 감독에게 서투른 문자를 보냈다. 기다리던 영화를 드디어 보았다는 행복감에 젖어 보낼 수 있는 당연한 문자가 어쩌면 이리도 멀게 느껴질까. 한없이 쏟아지는 빗소리가 야속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몸을 숨기며 극장에 가고, 영화를 본 이후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와 오늘도 어김없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 발걸음을 멈춘다. 최근에 완고를 마친 시나리오 속 한 장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가. 하지만 현실이 영화와 중첩되기를 갈망하는 나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흥건히 젖은 차도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나와 친구들은 물기 가득한 이 차도를 밟고 광화문을 바라봐야만 한다. 어제에는 옳았던 영화가, 어째서 오늘에는 보장되지 못하는 걸까. 시청과 집 앞으로 이어지는 2호선의 간극,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허하기만 하다. 잠이 들기 전이면 자꾸만 그 곳에 무언가를 놔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목이 마르다. 입 안이 텁텁하다. 어쩌면 그 곳에 나의 영화, 그리고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두고 온 것만 같아 자꾸만 가방 안을 열어 확인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스포일러 가능성 많이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며 졸고를 올립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 하루에 몇 번씩은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것 등 귀천이 없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누구나 가위를 든 미용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얌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점묘화 같은 면이 있다. 굵직한 선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감독이 애초에 전달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복잡한 물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우발적 살인과 그에 따른 세 사람의 관계변화를 다루고 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풍성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굵은 내러티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또 다른 무엇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예준과 그의 친구인 재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지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이 영화의 화자는 예준이다. 그러나 영화는 균등하게 세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던 간에 감상의 폭은 전혀 줄지 않는다. 특히 지숙의 위치와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가장 크게 관객의 심리를 파고든다. (필자는 감히 지숙이 근래 한국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예준의 눈높이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


영화는 꽤 고급스러운 거실에 앉아 예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재문과 지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통화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숙박을 제공한 것은 예준인 듯하다. 그렇게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비디오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재문과 지숙은 나란히 예준의 앞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예준의 눈높이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 영화 속에서 예준은 그들에게 지식과 돈을 제공한다. 재문의 대사에 따르면 예준은 군대에서 재문에게 “평등”을 깨우쳐주었고, ‘철학에세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재문과 지숙의 아이 이름으로 ‘민중혁명’의 줄임말 ‘민혁’과 칼 맑스 아내의 이름인 ‘예니’를 주었다.



그들에게 그가 받은 것


지숙과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 지숙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예준은 밥숟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살고 있는데!” 예준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는 동안 그가 그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일까. 외환딜러로 승승장구 하는 예준은 직장 동료들에게 비난 받고 재문에게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예준에게 재문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잔재이고 어떤 부탁이라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막말로 하자면 막 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준은 재문과 지숙의 아들을 죽인다. 물론 사고였지만 재문은 예준의 죄를 스스로 지고 감옥에 간다. 예준은 살인죄를 피했고 친구의 아내를 차지한다.



GIVE & TAKE


미용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간 지숙은 유람선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미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주고 받은 사연을 말한다. 세상은 그렇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는 곳곳에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뿌려두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숙이 켜 놓은 TV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재문과 지숙 사이에서 정신 나간 예준이 있던 회의실에서 예준의 동료들은 한미FTA가 가져올 GIVE&TAKE에 대해 말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혹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것. 이런 정치적 암시가 자연스럽게 예준과 재문, 지숙의 관계에 오버랩 된다.

지숙과 처음으로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저녁, 예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건 내 자리와 이름을 걸고 추진한 겁니다.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예준에게 지숙은 말한다. “예준씨는 힘이 있어요.”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자들의 공평하지 않는 주고 받음에 대한 비꼼을 드러낸다.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남자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지숙이 말한다. “얼마면 되나요?” 남자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다가 지숙이 내민 돈다발을 슬그머니 받아 들고 나간다. 돈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유쾌한 풍자다.



눈높이의 변화


영화 초반, 재문과 지숙은 미국 이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고 있다. 재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씬이 두 번 나오는데 비해 지숙의 눈높이는 변함이 없다. 아이가 죽고 정작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은 지숙이다. 일층의 작은 미용실을 하던 지숙은 미국에 다녀오고 난 후 비싼 동네에 넓은 통 유리로 된 헤어숍을 개업한다. 그 때부터 지숙은 2층 유리 안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돌아온, 몰라보게 달라진 아름다운 지숙이 예준에게 전화를 걸어 개업식에 와달라고 말한다. 지숙의 전화를 받고 나서 예준은 운동기계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그의 눈높이가 추락할 차례이다. 예준은 그 때부터 지숙의 가게 앞에서 지숙을 올려다본다. 재문이 출소하고 같이 떠난 바닷가에서 재문과 예준은 나란히 서있지만 재문은 바위 위에서 예준을 내려다본다. 지숙이 두 남자를 가게로 불러내 결단을 내리던 마지막 밤, 예준은 간이 침대에 누워 묶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예준. 완벽한 눈높이의 변화다.



천장 모서리의 대구법


영화 후반에 천장 모서리가 세 번 나온다. 지숙이 재문을 만나러 치킨가게에 갔을 때 바퀴벌레가 통풍구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고급스런 모텔의 천정 모서리가 나온다. 그리고 불이 나던 미용실 천장의 모서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의 천정은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높아 봤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에 휩싸이는 사각형의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의 아이 민혁이를 화장할 때와 겹쳐진다. 세 선이 만나는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 그리고 예준의 종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숙은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모두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잘못된 우정 때문에 피해를 본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아이보다 자신이 중요해서 프랑스로 날아갔던 지숙도 무고할 수 없었고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그녀가 내린 선택이 다시 그들을 살게 했다고 보여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임신을 한 지숙은 손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가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건네고 받아 드는 재문과 지숙의 행동 위로 묵묵히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모든 인간이 미용사 앞에서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믿기 때문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진실을 알리는 DJ, <톡 투 미>

필진 칼럼 2008. 6. 4. 12:25 Posted by woodyh98
요즘 영화관련 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한국영화 침체와 여름시즌을 대비한 영화들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5월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맥을 못 추던 한국영화를 부활시킬 기대작들이 대기중기라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영화가 죽은 것도 아니요 망한 것도 아닌 마당에 부활 운운하고 빤한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는 해묵은 기사에 짜증이 날 지경이지만 어쩌랴! 관객 대중이 볼 만한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데스크가 그런 기사를 생산해내라)는 데야. 사정이 이렇다보니 박스오피스를 봐도 블록버스터요 한국영화를 살려낼 구원투수라는 막중한 임무를 띤 영화들도 하나같이 대형 영화들이니, 볼 만한 작은 영화는 극장은 물론이고 언론매체에서 정보나 평가를 찾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결국 문화다양성이나 관객의 볼 권리 따위는 한국영화의 부활이란 대명제 앞에서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따름이라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소리 소문 없이 개봉하고는 서울의 단 2개 상영관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있다. 신랄한 입담을 과시하며 교도소 내 방송 DJ로 활약하다 가석방 된 이후 라디오 방송국 DJ로 흑인사회의 크나큰 영향을 끼쳐 라디오 대통령으로까지 불린 실제 인물 랄프 왈도 피티 그린 주니어 Ralph Waldo Petey Greene Jr.(1931-1984)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톡 투 미 Talk To Me>이다.

1966년 버지니아 주 로튼 교도소에서 시작되어 방송국 DJ로 성공하고 연예계로 진출하는 과정 동안 방송인으로서의 피티 그린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는 영화에서, 우격다짐 좌충우돌의 무모함과 배짱하나만으로 방송국 DJ자리를 얻게 된 피티 그린은 입버릇처럼 “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진실을 말할 것이다” “Wake Up!”이라는 말을 던진다.

방송국에 전화를 건 청취자에게 건네던 피티 그린의 말에서 가져온 영화 제목 ‘톡 투 미’에는 단순히 당신의 말을 듣겠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이 있다. 즉, 전과자일 따름인 나도 이렇게 할 말을 하는데, 당신들은 왜 말 못하느냐는 것, 피부 검은 백인이 되려 하지 말고 일어나! 흑인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피티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은 흑인사회의 영향력을 고려해 감히 거론치 못하던 모타운 레코드 사장을 비판하거나 흑인의 현실을 외면하는 방송국의 구태를 신랄하게 고발함으로써 흑인사회의 폭넓은 지지층을 얻기는 동력이 된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는 피티 그린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아련한 라디오시대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에 걸맞게 제임스 브라운의 블루스 앤 소울이 넘실대고 수다스럽기 짝이 없는 피티 그린과 그의 애인 버넬의 행동거지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질 정도이니 그 점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이 영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까닭은 단지 추억을 회고하거나 노스탤지어를 상품화 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절묘하게 조응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피티 그린이 방송국 DJ가 되어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이 벌어진 날 밤. 지도자를 잃은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당시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던 그는 “목사님은 거인이셨습니다. 만약 그런 분을 죽일 수 있다면 여러분도 서슴치 않고 죽일 수 있다는 걸 아셔야”한다며 또 “사람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그가 편안하고 편리한 순간에 있을 때가 아니라 도전과 논쟁의 순간에 서 있을 때 내려진다.”던 킹 목사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폭력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한다. 동족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발로한 피티 그린의 진심어린 호소는 공적 위치에 올라선, 누군가를 선동하고 영향 끼칠 위치에 있는 인물이 가져야할 덕목과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방송국 밖으로 나와 불타는 도시를, 그러나 다행히도 흑인이 모두 돌아가 더 큰 사태를 피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숙연하고 장엄한 그 무엇을 체험했다.

작금의 우리사회 상황을 보자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재협상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는 하나 숨 가쁘게 진행된 지난 며칠 동안, 한 치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정부의 고집은 일부 불법행동에 당위성마저 심어주었을 정도이니 마주보고 달려오는 폭주기관차를 보는 아슬아슬함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리 될 일을 왜 좀 더 일찍 결단하지 못했을까?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이 있다면 이들을 설득하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제 아무리 깊기로 흑백 인종갈등만 할까?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킹 목사의 암살 당시임을 감안한다면, 그럼에도 방송국 DJ로 인해 폭동이 평화롭게 진정되었을 정도라면 도대체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엄밀히 보자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잊지말아야할 것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어떤 경우에도 폭력진압은 없어야 한다. 또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선동적인 목소리를 경계해야 할 것이고 이성적 울림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무수한 담론과 이념의 속박되어 분열된 사회모습을 보아왔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체스추어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 땅의 계층적 질서의 골이 얼마나 깊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의 다름 아니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대미관계와 한미 FTA의 체결 등등 현 정부의 고민을 우리국민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곤란하지만 무턱대고 우리주장만 고집하며 외면하기 힘든 것이 한미관계가 아니던가. “반미면 어떠냐?”던 노무현 정부에서조차 대미관계를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전력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기보다는 정부차원에서 내기 곤란한 목소리를 국민이 대신 외쳐주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깊은 울림을 주던 영화의 한 장면, 파트너십을 이루던 듀이는 피디 그린에게 말한다. “내가 망설이는 걸 대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해. 어쩌면 너도 두려움이 앞서는 일을 하는 데 내가 필요할 거야”

진실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정자도 국민도, 진보도 보수도 하다못해 수구꼴통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현장소식과 ‘무차별 폭력 동영상’ 수천 개가 인터넷을 떠돌던 날, 빗속에서도 촛불이 타오르던 밤, 나는 <톡 투 미>를 보았다. 피티 그린의 목소리를 듣고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에게 피티 그린의 진실 되고 용기 있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www.codistory.net BlogIcon 사춘기 소년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사춘기 소년입니다. 우선 <톡 투 미> 와 같은 쉽게 묻힐 수 있는 영화를 깊이 있게 다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겠지만, 네오이마쥬의 위치는 그래서 상당히 중요하지요.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의 논조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는데요. 필자이신 백건영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무엇인가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소 수입 반대인가요, 아니면 그저 사회적 안정인가요. 문단에서 "무엇보다 선동적인 목소리를 경계해야 할 것이고 이성적 울림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자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평화는 소중하고, 사회적인 안정은 중요하니까?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기보다는 정부차원에서 내기 곤란한 목소리를 국민이 대신 외쳐주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라고도 말씀하셨는데요. 이렇게 순진한 생각이 또 어디 있습니까. 현 정부는 아시겠지만,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합니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FTA 를 체결하는 것이고, 그래서 광우병 소도 수입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이 내기 곤란한 목소리를 내는 국민을 그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할 수 있을까요?

    제가 걱정스러운 건, 다른 게 아니라 백건영씨입니다. 정치적인 생각이 있다면, 영화를 소개하며 에둘러 발언하지 마시고, 그냥 솔직하게 현 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영화를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이며, 읽는 사람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2008.06.04 21:08 신고
  2. 인사이더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생각엔 사춘기 소년님의 논쟁 방식이 더 걱정스럽다. 글쓴이가 자제를 요구한 것이 문제라면 님의 생각은 자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님 말대로라면 닥치고 영화만 쓰거나 아니면 정치에 집중해서 다루라는 것이며, 촛불집회자들의 주장에 동조해야 옳다는 건데. 자신의 정치적 주장은 입도 뻥긋 안 하면서 남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비겁하게 아닌지.

    걱정스러운게 글쓴이가 영화보는 사람에 대해 예의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시간을 뺏어서 인가.자신과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고 여겨서가 아닌가? 에둘러 말하는 건 정작 님 같네.

    2008.06.05 07:51
  3. 진실?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이영화를 진지하게 본사람입니다.
    근데 이걸 촛불과 연관시킵니까?
    그럼 당신들이 진실됩니까?
    재미교포 모두 광우병 걸려야 맞지 않나요?
    저항? 이런말하면 수구꼴통?
    웃기지 마시요
    난 87년도 서울역앞에서 독재타도를 외친 사람이요
    과거 운동권이면 지금 촛불블어야 맞을까요?
    진실을 원하나요?
    전경차부수고 쇠파이프들고 허위사실유포하고
    염산뿌리고..........그게 진실이고 저항입니까?
    이런 감성을 당신들 사기극에 적용시키지 마시요....
    10년정부동안 무엇이 진보하고 무엇이 혁신되었는데요?
    서민인척 사기치며 노조짓하는 게으른 돼지들이 공화국?
    경제정책실패를 친일파 논쟁으로 눈가릴려는 386 정신?
    참 어이가 없소...........그대가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이런 수준높은 감성을 촛불사기극에 팔지 마시요

    2008.10.18 18:02
  4. 위엣님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편의 영화를 보며 우리가 발딛고 선 지금의 현실을 떠올리면 안되는 것입니까? 님께서 87년에 서울 역 앞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해서 '님이 하는 말 = 진실' 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사기극? 뭐가 사기극이라는 거죠? 자신과 다르다 해서 함부로 사기극 운운하시는 님께서도 전혀 지성인 답지 못하십니다. 이런 수준 높은 감성을 본인의 편견과 아집 따위에 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8.10.19 00:14


(스포일러 가능성 많이 있습니다만 하루 빨리 이 영화가 개봉되길 바라며 졸고를 올립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는 것, 하루에 몇 번씩은 화장실을 꼭 가야 하는 것 등 귀천이 없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참 많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누구나 가위를 든 미용사 앞에서는 꼼짝없이 얌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인물들의 관계와 위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점묘화 같은 면이 있다. 굵직한 선 사이로 촘촘히 들어선 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감독이 애초에 전달하려 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복잡한 물건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그만의 마력이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싼 우발적 살인과 그에 따른 세 사람의 관계변화를 다루고 있다.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가 풍성한 상징성을 갖는 것은 굵은 내러티브 사이로 촘촘히 박힌 또 다른 무엇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예준과 그의 친구인 재문, 그리고 그의 아내인 지숙,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이 영화의 화자는 예준이다. 그러나 영화는 균등하게 세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누구에게 초점을 맞춰 영화를 보던 간에 감상의 폭은 전혀 줄지 않는다. 특히 지숙의 위치와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은 가장 크게 관객의 심리를 파고든다. (필자는 감히 지숙이 근래 한국영화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중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곳은 예준의 눈높이이다.



그가 그들에게 준 것


영화는 꽤 고급스러운 거실에 앉아 예준과 전화 통화를 하는 재문과 지숙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통화내용에 따르면 아마도 분에 넘치게 고급스러운 숙박을 제공한 것은 예준인 듯하다. 그렇게 재문과 지숙의 결혼식 비디오가 나오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재문과 지숙은 나란히 예준의 앞에 앉아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예준의 눈높이는 그들보다 위에 있다. 영화 속에서 예준은 그들에게 지식과 돈을 제공한다. 재문의 대사에 따르면 예준은 군대에서 재문에게 “평등”을 깨우쳐주었고, ‘철학에세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재문과 지숙의 아이 이름으로 ‘민중혁명’의 줄임말 ‘민혁’과 칼 맑스 아내의 이름인 ‘예니’를 주었다.



그들에게 그가 받은 것


지숙과 하룻밤을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 지숙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예준은 밥숟가락을 내던지며 소리친다. “이것들이 누구 덕에 살고 있는데!” 예준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는 동안 그가 그들에게 받은 것은 무엇일까. 외환딜러로 승승장구 하는 예준은 직장 동료들에게 비난 받고 재문에게 찾아와 위로를 받는다. 예준에게 재문은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신념의 잔재이고 어떤 부탁이라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막말로 하자면 막 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준은 재문과 지숙의 아들을 죽인다. 물론 사고였지만 재문은 예준의 죄를 스스로 지고 감옥에 간다. 예준은 살인죄를 피했고 친구의 아내를 차지한다.



GIVE & TAKE


미용박람회를 위해 파리에 간 지숙은 유람선 위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미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주고 받은 사연을 말한다. 세상은 그렇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는 곳곳에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뿌려두고 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숙이 켜 놓은 TV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재문과 지숙 사이에서 정신 나간 예준이 있던 회의실에서 예준의 동료들은 한미FTA가 가져올 GIVE&TAKE에 대해 말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혹은 말로 주고 되로 받는 것. 이런 정치적 암시가 자연스럽게 예준과 재문, 지숙의 관계에 오버랩 된다.

지숙과 처음으로 오붓한 대화를 나누던 저녁, 예준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건 내 자리와 이름을 걸고 추진한 겁니다. 절대 번복할 수 없습니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예준에게 지숙은 말한다. “예준씨는 힘이 있어요.” 영화는 어느 순간, 힘이 있는 자들의 공평하지 않는 주고 받음에 대한 비꼼을 드러낸다.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남자가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자 지숙이 말한다. “얼마면 되나요?” 남자는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다가 지숙이 내민 돈다발을 슬그머니 받아 들고 나간다. 돈 있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게 되는 유쾌한 풍자다.



눈높이의 변화


영화 초반, 재문과 지숙은 미국 이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으고 있다. 재문이 하늘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씬이 두 번 나오는데 비해 지숙의 눈높이는 변함이 없다. 아이가 죽고 정작 신분 상승을 하게 되는 것은 지숙이다. 일층의 작은 미용실을 하던 지숙은 미국에 다녀오고 난 후 비싼 동네에 넓은 통 유리로 된 헤어숍을 개업한다. 그 때부터 지숙은 2층 유리 안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숙이 개업식에 예준을 초대하는 전화를 받고 나서 예준은 운동기계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그의 눈높이가 추락할 차례이다. 예준은 그 때부터 지숙의 가게 앞에서 지숙을 올려다본다. 재문이 출소하고 같이 떠난 바닷가에서 재문과 예준은 나란히 서있지만 재문은 바위 위에서 예준을 내려다본다. 지숙이 두 남자를 가게로 불러내 결단을 내리던 마지막 밤, 예준은 간이 침대에 누워 묶인다. 두 사람을 올려다보는 예준. 완벽한 눈높이의 변화다.



천장 모서리의 대구법


영화 후반에 천장 모서리가 세 번 나온다. 지숙이 재문을 만나러 치킨가게에 갔을 때 바퀴벌레가 통풍구를 타고 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지숙이 낯선 사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난 후 고급스런 모텔의 천정 모서리가 나온다. 그리고 불이 나던 미용실 천장의 모서리가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의 천정은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높아 봤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에 휩싸이는 사각형의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의 아이 민혁이를 화장할 때와 겹쳐진다. 세 선이 만나는 모서리는 지숙과 재문, 그리고 예준의 종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같다. 지숙은 그 곳에서 세 사람이 모두 죽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여자, 그리고 어머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필자는 이 영화가 두 남자의 잘못된 우정 때문에 피해를 본 여성의 복수극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아이보다 자신이 중요해서 프랑스로 날아갔던 지숙도 무고할 수 없었고 모든 비극을 끝내기 위해 그녀가 내린 선택이 다시 그들을 살게 했다고 보여진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임신을 한 지숙은 손님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가위질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편지가 도착하고 아무 말 없이 편지를 건네고 받아 드는 재문과 지숙의 행동 위로 묵묵히 가위질 소리만 들린다. 모든 인간이 미용사 앞에서 얌전한 아이가 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를 믿기 때문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동아리 탐방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인터뷰는 연세대학교 영화 동아리 '프로메테우스‘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제 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동아리 위기론‘이라는 말을 프로메테우스 앞에서 꺼내기에는 민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침체기를 겪었던 프로메테우스는 06학번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한 학번 당 10명 내외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4평 남짓한 동아리방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들은 매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주말에도 함께 극장을 서성이며 영화로 수다를 떤다고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선배들이 끌어주고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르는 가운데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핏 듣기에는 여느 동아리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전통적인 동아리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고 있다. 동아리와 학내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선후배간 위계구조를 무너뜨린 일은 혁신적이다. 수직구조는 수평구조로 바뀌었다. 선후배간 터울이 없어져가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선배들이 영화에 갑옷처럼 씌워 놓은 무거운 지식을 벗겨내고 있다. 과거 선배들은 구조주의 기호학이나 심리학에 근거해서만 영화를 분석했고 지나치게 영화 문법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는 문법이나 제반 지식이 없어도 접근 할 수 있는 예술이다. 즉 누구나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예술이 바로 영화라는 게 프로메테우스의 생각이다. 이처럼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영화를 해석하는 획일화된 시선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선을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영화가 나누어주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지금 프로메테우스는 영화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동시에 자신들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를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있다. 기획 인터뷰 막바지에 이르러 아직, 영화 동아리가 건재함을 확인한다. 역시, 절망이 있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나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도훈 : 각자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은 :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06학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1학년 때부터 활동했고 2007년에 회장을 역임 했다.

김지현 :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지난 해 부터 활동했다.

안성용 : 철학과 03학번이다. 1학년 때부터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했고, 전역하고 동아리에 다시 나온 지 3개월 정도 됐다.


이도훈 : 동아리 활동은 어떤 게 있나.

이정은 : 방학 때마다 동아리 회원들이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단편 영화를 만든다. 방학 때 만든 단편 영화로 1학기 초에는 상영회를 한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상영회로, 동아리 회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직접 만든 영화를 함께 본다. 그리고 축제 때가 되면 주점을 하는데, 주점에서 영화퀴즈를 해서 동아리를 소개하고 동아리의 특색을 학교 친구들에게 알리는데 주력한다. 1학기에 큰 행사 하나로 전주국제영화제 참여가 있다. 또 학기가 끝날 때 즈음해서 다 같이 모여서 밤을 새서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방학 때는 스터디를 하는데, 주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사를 맡아서 스터디를 한다. 예를 들어서 작년에는 감독론을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세계를 스터디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이다. 2학기 사업 중 가장 큰 행사는 상영회다. 이때는 동아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작년에는 상영회가 실패했다. 상영회의 목적이 불투명했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홈커밍 비슷하게 동아리 회원의 친구나 지인을 초청해서 상영회를 했는데, 영화제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홍보가 부족했던 것도 실패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게 많은 영화제였다. 후회가 많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올해는 영화제를 크게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도훈 : 매주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은 따로 없나.

이정은 : 매주 목요일 마다 감상상회를 한다. 학기 초에 매주 하게 될 감상회의 간사를 미리 정해놓는다. 간사가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하면, 감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미리 그 영화를 보고 와서 감상회 다 함께 토론을 한다.


이도훈 : 정은 씨가 06학번인데, 지금 활동하는 동기들은 몇 명 정도인가?

이정은 : 아홉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이도훈 : 지현씨는 07학번이다.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몇 명의 동기가 있었고 지금까지 남아서 활동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

김지현 : 원래 동아리 신입생 모집 때는 엄청 많이 들어오지 않나.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던 학기 초에는 대략 30명 넘게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1학기 때 들어온 신입생 중에 남은 사람은 4~5명이었다. 2학기 때 신입생이 많이 들어왔고, 지금까지 활동하는 사람은 모두 19명 정도다.


이도훈 : 와! 놀랍다.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프로메테우스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는 건가? 지현 씨와 정은 씨가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사연을 듣고 싶다.

이정은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 장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했었다. 그 때부터 대학에 가면 영화 동아리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연세대 입학하고 나서 영화동아리를 직접 찾아 나섰고, 동아리 소개지를 보고 가입했었다.


이도훈 :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었나.

이정은 : 연출이나 제작은 아니지만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도훈 : 그럼 왜 영화과를 가지 않고, 영문과를 지원 했나.

이정은 :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영화를 연출할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영화감독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어야 되지 않나.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영화과에 지원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했다. 모험을 하기보다는 우선 대학에서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그 이후에 내 갈 길을 찾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현씨도 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화를 좋아 했나?

김지현 : 고등학교 이전에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누구나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 않나. 공부가 하기 싫을 때면 극장으로 갔다. 내게 영화와 영화가 있는 극장은 일종의 도피처였던 거다. 마침 학교 근처에 씨네큐브나 미로스페이스처럼 예술영화를 틀어주는 곳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대학입학 전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대학에 들어오면 영화 동아리에 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의 첫인상은 어땠나?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영화동아리였을 텐데.

김지현 :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영화를 많이 찍을 줄 알았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학기 중에는 영화를 찍지 않고 방학 때만 찍더라. 왜 좀 더 많이 찍지 않을까? 하면서 조금 아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해보니 동아리 생활과 학업 병행이 힘든 걸 알게 되었고, 지금처럼 방학 때 한 번 찍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1학년 때부터 영화동아리를 했고, 2학년 때는 영화를 하기 위해서 컴퓨터 공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했다던데.

안성용 : 영화가 좋아서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건, 두 친구와 같다. 동아리 활동하면서 내가 얻은 건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내 스스로 영화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고, 처음에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과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후의 비겁한 마음이 내 발목을 잡더라. 힘들게 공부해서 들어온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던 거다. 학벌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 내 나름의 고민의 결과이자 핑계라고 한다면, 영화를 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적인 베이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4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나머지 2년 동안은 연출 공부를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도훈 : 지금까지 세 분께 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했다. 한 학번에 19명이 활동한다거나, 신입생 모집 때 30명이 넘게 온다는 건 90년대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요즈음 영화동아리뿐만 아리나 대부분의 동아리가 신입생을 받지 못할 정도로 침체기라고 하던데.

이정은 : 동아리가 침체기라는 이야기는 조금 들은 것 같다. 다른 동아리 중 일부는 벌써 대가 끊겼다는 소리도 들리고. 전반적으로 동아리가 위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친구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굳이 동아리 모임을 통해서 사람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보다는 편한 친구를 만나서 어울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도훈 : 지현씨가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도 프로메테우스가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나.

김지현 : 내가 동아리에 처음 들어왔던 2007년 1학기 때만해도 동아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 2학기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인 원인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동아리 내 분위기가 편안해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 같다. 보통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주위에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친구들도 영화동아리라고 하면 지레 겁먹으며, 자기는 영화에 아는 게 없다며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겁내더라. 하지만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도 동아리에 들어와서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거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요즈음 신입생들을 바라보면 성용씨가 활동하던 때와 차이점이 보이는지.

안성용 : 일단 잘 논다. 그게 진짜 큰 변화인 것 같다. 나 때만 해도 정말 못 놀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학구적인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 할 때는 영화이야기도 잘 안하지, 영화도 안 봐. 술자리에서는 영화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영화이야기 할 때도 다들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 술 마실 때는 굳이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놀더라. 개인 성향이 바뀐 건지 학교 분위기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지만, 후배들이 매우 활발하더라. 그리고 예전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도 증가한 것 같다.


이도훈 : 프로메테우스 사업 중에서 영화제 관람이 있더라. 언제 생겼고, 몇 명 정도 참석하는지 궁금하다.

안성용 : 공식적인 활동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단체로 관람을 하러 가는 건 내 기수 전부터 있었다. 다른 동아리에서도 부산영화제에 때가 되면 단체로 부산에 내려가지 않나?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매년 부산영화제에 참석했었다. 내가 처음으로 부산영화제에 갔던 것도 선배들 덕분이었다. 요즘도 부산영화제에 내려가면 99학번 선배가 와서 단체로 콘도를 잡아주곤 한다.

김지현 :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통제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인원이 내려갔다. 마침 어린이날이 월요일이라,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나흘간이나 연휴기간이었다. 정확한 인원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30명이상의 내려갔던 것 같다. 너무 많아서 팀을 짜서 내려갈 정도였다.


이도훈 : 이야기를 듣다보니,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다른 영화동아리에서 볼 수 없는 극장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이정은 : 영화 번개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두 번은 다 같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간다.

안성용 : 지현이는 친구에게 수업대출을 부탁하고 영화를 보러 간적도 있다더라. 동아리 애들끼리 수업대출 품앗이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김지현 :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수업이랑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웃음) 원래는 착실하게 수업을 듣는다. 동아리에서 영화 보러 극장에 가는 날도 수업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간다.


이도훈 : 영화는 혼자서도 볼 수 있는 건데, 굳이 주말에까지 시간을 내서 다 같이 영화를 보러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정은 : 영화 번개를 해서 동아리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갈 때는 외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같이 영화보고 나서도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친목도 다진다.


이도훈 : 지현씨는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 싫어서 극장에 갔다고 했었는데, 극장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겠다.

김지현 :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한동안 공부가 하기가 싫었다. 당시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제쳐두고 극장에 영화 보러 갈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친구들은 틀어박혀서 공부나 하고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영화가 있는 극장에 가는 일은 내게 일탈이었다. 당시 자주 갔던 극장이 씨네큐브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씨네큐브에 가면 늘 포근한 기운을 느낀다.


이도훈 : 안성용 씨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들었다. 서울에는 씨네큐브나 스폰지 하우스,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예술 극장이 있어 영화적으로 풍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 있으면서 보지 못했던 예술영화들을 보러 다녔을 것 같은데.

안성용 : 나는 고 3때 영화를 주말에 몰아서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다운로드로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평일에는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영화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주말에 극장에 가서 영화 3~4편을 보는 건 일탈이 아니라, 생명의 희망 같은 거였다. 그 시간이 내게는 오아시스 같은 거였지. 대학에 들어와서 지방에서 접할 수 없었던 예술극장들이 낯설고 새롭기는 해도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극장을 가도 친구들과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게 고작이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주로 흥행작 위주였던 것 같다. 가끔씩 예술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내 습관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주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방을 자주 이용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비디오방에 혼자 가서 영화를 봤다.


이도훈 : 서울에 올라와서 그 전에는 받지 못했던 못했던 영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지는 않았나.

안성용 :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대부분의 영화 제목을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작품 이름뿐만 아니라, 감독 이름까지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늘 생각했던 게, 세상에 볼 영화는 많고 내가 안 본 영화는 너무 많다는 거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고 자책하기 보다는, 단지 아직 안 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예술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새로움과 낯설음이 있었지만 극장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나 동경은 생기지 않았다. 물론 평소 보기 힘든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긴 하지만, 이미 내가 뽑아놓은 봐야할 영화 목록도 많았다. 극장 말고 찾아볼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영화는 비디오나 DVD나 다운 받아서도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도훈 : 극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최근 씨네필들의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일부는 극장에서 영화를 필름이라는 원본의 상태로 봐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또 다른 씨네필들은 영화는 다운 받아서 보는 게 더 수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성용 :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워낙 단점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으니, 나는 장점을 말하고 싶다. 극장이란 공간은 권위적인 구조를 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시선은 스크린의 크기에 압도된다. 관객은 정면만 봐야하고, 미장센 안에서의 취사선택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또한 관객은 영화의 시간에 종속되기를 강요받는데, 두 시간 동안 상상력이 각자 삶의 시간 속에서 발동되지 못한다. 반면에 집에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면 극장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권위적인 면들이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영화를 볼 때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을 잠시 정지 시킨 후, 그 화면의 구석구석을 분석 해 볼 수도 있고, 가끔은 중간을 건너뛰어 결말로 비약할 수도 있다. 지루한 무성영화를 볼 때는 두 배로 빨리 재생하여 영화를 정복하기도 한다. 그 순간 영화적 공간과 시간은 관객의 공간, 시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 그때 영화는 극장이란 공간의 권위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영화는 보는 방식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진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거랑, 집에서 볼 때의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이다. 즉 영화를 둘러싼 공간에 따라서 관객의 감상이 달라 질 수도 있다는 거다. 또 영화가 디지털로 계속 복제되다보면 순수하게 영화 그 자체만 남지 않을까. 영화를 영화의 가능성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작가고, 그 다음이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관객에게 한쪽으로만 감상 방법을 몰아가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화 보는 방법이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영화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길 거고, 디지털로 복제되는 영화 미학에 대해서도 논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그럼 UCC 보듯이 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걱정이 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영화도 싸이월드나 네이버, 유투브에 올라오는 UCC처럼 쉽게 보고 잊어버리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일부 영화 사이트에서는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고, 웹상에서 바로 영화를 재생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있다.

안성용 :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 산업이 돌아가는 기반만 마련된다면, 인터넷으로 영화를 즐기는 수용층이 많아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넷이 충족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극장이 채워 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명화를 책으로 본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명화가 책으로 인쇄되어 나온다고, 루브르 박물관이 없어져야 된다는 건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책으로 볼 때 박물관에서 실제로 그림을 감상했을 때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 있다. 단지 명화의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깨어야 한다는 거다. 원본에 권위를 주는 게 결국 전시형태인데,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도 박물관적인 공간이다. 오히려 UCC가 더 보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모나리자의 권위를 희석시킬 때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의 미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영화도 원본이 가지고 있는 권위를 벗겨내면 영화 매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영화의 미를 가로 막는 안개가 많이 끼어있는 것 같다.


이도훈 : 전통적인 영화 감상과는 반대되는 재미난 의견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지현 : 나도 찾기 힘들고 극장에 걸리지 않는 영화에 한해서 다운받아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 안에는 극장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일전에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나서 후회 막심했다. 극장에서 <아비정전>을 봤을 때 느꼈던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는 단순 영상물이 아니라, 극장과 합쳐질 때 완성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는 주변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의 컨디션과 극장안의 관객들의 상태 등의 외부요인들이 한 데 어우러져서 한편의 영화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앞 사람의 머리도 스크린에 포함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정은 : 다운 받아서 영화를 보면 간편하고 편리하긴 한데, 영화를 제대로 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집에서 영화를 볼 때면 일시정지를 눌러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2시간 동안 영화에 모든 걸 쏟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볼 환경도 극장과 비교해서 그리 좋지 않다. 극장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오로지 스크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도훈 : 극장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함께 보는 곳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감상회역시 영화를 함께 보는데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타 영화동아리의 세미나와 달리 학구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들었다.

이정은 : 프로메테우스는 타 학교 영화동아리와 비교했을 때 감상회나 세미나 활동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영화에 대해서 토론을 하거나 가볍게 이야기하는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감상회를 단순히 가볍다고 볼 수 없다. 우리는 감상회를 통해서 저마다 다른 영화에 대한 태도나, 한 편에 영화를 보고 느끼는 서로 다른 감정을 교환 한다. 옛날 같았으면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만 해서 소외당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감상회가 무게감을 빼버리면서 다양한 친구들이 쉽게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회 이슈나 논쟁거리를 가지고 토론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문제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감상회의 장점인 것 같다.

김지현 : 프로메테우스 감상회의 장점은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고, 철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소양이 부족하지만 감상회 때는 편안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감상회가 가볍고 명랑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신입생들이 감상회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감상회가 가벼운 쪽으로만 흐르는 건 아니다. 때로는 선배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영화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들을 배우기도 한다.



 

이도훈 : 선배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이정은 :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줬던 것 같다. 05학번 같은 경우는 소수의 인원인데도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특히 04학번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05학번 선배들을 보면서 “아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특히 선배들이 감상회를 하는 방법을 보면서 우리가 감상회를 운영할 때 선배들이 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 프로메테우스는 늦깎이 신입생이 많았다. 뒤늦게 동아리에 가입한 고학번들은 동아리 내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처럼 선후배간에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같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저절로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는 복학하면서 영화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고 하던데.

안성용 : 세미나를 부활시켰다기보다는 늘 방학 때 하던 세미나를 학기 중으로 앞당긴 거다.


이도훈 : 원래 학기 중에는 세미나가 없었나?

이정은 : 대가 끊겼던 것 같다. 세미나가 2005년도 까지는 있었다고 하던데, 내가 들어왔을 때는 선배들끼리만 했던 것 같다. 나는 세미나가 있는지 몰랐다.

안성용 : 사실, 우리 때는 아예 없었거든. 내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세미나를 했던 것 같다.


이도훈 : 성용씨가 복학하면서 세미나를 부활시킨 이유가 궁금하다.

안성용 : 내가 1학년일 때 동아리에서 최고 학번은 98학번과 99학번이었다. 당시 군대를 가지 않으면 최고 학번은 01학번이었는데, 군대를 갔다 온 선배들이 동아리에 다시 나오면서 연령대의 폭이 넓어지더라. 동아리 문화에서 남자들이 군대를 가는 건, 연령대가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다. 특히 감상회 할 때 고학번들이 후배들이 알지 못하는 걸 이것저것 가르쳐줘서 좋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선배들이 권위적인 것도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걸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려 하고, 선배들 스스로 자기가 선배라는 걸 드러내놓고 티를 내는 것 같았다. 내가 복학생이 되고, 고학번의 위치가 되었지만 정작 내 위치는 과거 선배들과는 다른 것 같다. 과거와 현재 동아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더 이상 선배들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거다. 학교나 동아리의분위기가 바뀐 건지, 내가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이 권위적이고 꼰대 같은 선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미나는 내가 후배들과 어울릴 방법을 찾다가 동아리에 제안을 하면서 이루어졌다. 복학해서 동아리에 처음 왔을 때, 후배들과 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나도 학업 때문에 바쁘고, 후배들 입장에서 생각하니 나랑 놀기에는 그들 스스로 아쉬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노는 것 보다 영화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스터디를 하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열정 있는 후배들이 많아서 무리 없이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도훈 : 나 역시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선배들과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한국 영화에 대한 세미나를 하면서 김기덕을 발표하는데, 선배들은 김기덕을 모르거나 싫어하는 거다. 특히 98, 99학번은 장선우 이야기만 하더라. 90년대에 장선우는 잘나가는 감독이었지만, 당시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잊혀져가던 존재였다. 김기덕을 지지하는 나와 장선우를 여전히! 지지하는 선배들 사이의 충돌은 선후배간의 단절로 느껴지더라. 선배들이 뒤에서 팔짱끼고 앉아서는 꼰대처럼 후배들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동아리의 고질적인 문제는 선후배간의 수직적인 위계서열인 것 같다. 반면에 요즘의 프로메테우스는 타 동아리와 달리 선후배간의 위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쪽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성용 : 확실히 그렇다. 나와 07학번의 사이를 나랑 99학번 사이와 비교해보면 선배들에게서 권위적인 모습이 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나랑 내 동기들이 변한 것 같지는 않고, 문화 자체가 바뀐 것 같다.

김지현 : 그 문제는 동아리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친구들 중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는 애들이 많다. 그 친구들이 모여서 ‘어떤 선배가 재수 없다, 걔는 너무 권위적이다, 너무 가르치려든다’며 뒷담화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런데 우리 영화 동아리에서는 선후배 사이가 멘토 같아 보일 때가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따라 하고 싶어 하고, 선배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흠모하기도 하고, 본받고 싶어 할 때도 있다.

이정은 : 나 같은 경우는 동아리의 전통을 몰라서 황당할 때가 있었다.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주변에서 동아리에서는 후배들이 선배를 챙기는 거라는 소리를 하더라. 그 말이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 선배라면 후배들보다 동아리 분위기도 잘 알 테고, 익숙한 사람들도 많을 테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동아리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배들이 신입생 환영회 끝나면 선배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더라. 이건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고쳐야 할 고질적인 병인 것 같다. 나는 그냥 다 같이 모여서 편하게 생활하는 동아리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안성용 : 지금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하는 03학번은 나를 제외하고 세 명이 더 있다. 이 세 명은 군대를 갔다 와서 동아리에 새로 가입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다. 재미있는 건, 형들이 자기보다 어린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더라. 그걸 보면서 권위적인 동아리 문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이나 학번 같이 수직적인 질서를 조장하는 요소들이 없어지면 동아리 인원도 늘어나고, 기대 이상으로 얻는 게 많을 거라고 본다. 그러다보면 동아리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도훈 : 지현 씨가 세 분 중 가장 어린데, 올해 신입생을 처음으로 맞이한 느낌이 어떤가.

김지현 : 무지 뿌듯하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07학번 대부분이 영화에 대해서 잘 몰라서 1학년 때 2학년이 될 생각만 하면 불안했다. 선배가 되면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하는데, 정작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거다. 그래서 친구들과 영화 공부도 해보려고 애써봤지만 영화라는 게 순식간에 쌓을 수 있는 교양은 아니지 않나. 올해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기뻤던 건, 08학번 중에 영화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러 분야로 박식한 친구들이 많았다. 정말 똘똘한 친구들이 많더라. (웃음) 되려 07학번이 08학번에게 배우는 게 있을 정도다. 선배라고 해서 무작정 후배들에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다. 그냥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 모르는 걸 일깨워 주는 소통구조가 생길 때 권위라는 게 사그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도훈 : 사실 가벼운 세미나도 좋고, 재미있는 세미나도 좋다. 하지만 가벼운 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 있는 세미나를 해보고 싶을 때는 없었나?

안성용 : 아쉬운 건 많지. 요즘은 1, 2학년 때부터 너무 바빠 보이더라. 이제 영화에 대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할 시기는 지난 것 같다. 영화 공부하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지 않나. 사실 나는 별로 바쁘지 않은데(웃음),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살더라.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고, 평소에 공부하는 인문학이 영화와 연계되는 부분이 많더라. 특히 인문학 공부는 영화 보는 시선과 연결되는 게 참 많다. 평소 영화 비평이나 영화 이론서를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어떤 책을 봐도 영화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문학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사회학 지식으로 영화를 분석할 수 있고, 최근 <아이언 맨>은 공대생들이 좋아할 영화지 않나. 영화를 좋아하고 관심만 있다면 자기 전공을 살려서 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인문학적인 지식으로 읽어내는 방법이 관습처럼 굳은 것 같은데, 영화라는 게 인문학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기술적인 면도 있고 산업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도 영화 문법이나 영화사만 가르쳐주기보다는 다양한 방법이나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방법을 향상해 나가야 한다. 동아리가 영화에 대해서 한 가지 시선만 강요하기 보다는 각자의 관심사에서 영화가 어떻게 읽혀질 수 있는지를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이론만 공부하는 건 좁은 공부일지도 모른다.

이정은 : 나 역시 동아리에 가입할 때 깊이 있는 세미나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시간도 맞춰야하고, 또 아무리 스터디를 한다고 해도 동아리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 깊게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의 감상회는 깊이가 있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식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토론했으면 하는 욕심은 분명히 있다.

김지현 : 워낙 바닥에 깔린 게 없어서 지금으로도 만족한다.(웃음) 그래도 가끔은 아쉬운 게 있다. 감상회가 끝나고 나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조금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으면 하는 미련이 남더라. 이 문제는 프로메테우스가 차차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이도훈 : 민감한 질문을 하나 하려고 한다.(머뭇) 프로메테우스는 축제 때 주점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영화동아리 정체성이 주점과는 별개지 않나. 왜 상영회나 공개 세미나 같은 사업을 하지 않고 주점을 했는지.

김지현 : 올해 회장과 축제를 함께 기획하면서 상영회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었다. 주점을 하되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축제를 준비할 시간도 촉박했고, 가장 큰 문제는 상영회를 하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내년에는 08학번들이 상영회를 해줬으면 한다. 사실 주점에서 영화 퀴즈를 한다고 동아리 정체성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주점을 하고, 거기서 영화 퀴즈를 한다는 것이 구색 맞추고 생색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이정은 : 축제 때 주점을 한다고 해서 동아리의 정체성이 훼손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점을 하면 동아리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축제 때 대부분의 동아리가 하는 일인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우리가 게으르고 노력을 덜 해서 동아리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 동아리라고 해서 축제 때 꼭 상영회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축제 때가 아니라도 상영회를 하고 있다. 다른 동아리처럼 프로메테우스도 축제 때만큼은 회원들끼리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MT나 야유회를 가는 것처럼 축제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활용하면 되지 않나.

안성용 : 도훈 씨의 지적은 영화 동아리에 대한 오해인 것 같다. 동아리 외부 사람들이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일들인데, 내부에서 바라보면 항상 문제가 되더라. 예를 들어서 복싱 동아리가 축제 때 복싱을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영화 동아리도 피차일반이다. 축제라고 해서 영화 동아리만의 정체성을 찾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다른 동아리는 아주 독특한 취미활동을 위해서 만들어진 경우지만, 오늘날 영화 보는 일은 아주 일상적인 게 되었다. 유독 영화 동아리만 정체성 문제에 시달리는 건, 동아리 내부에서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다른 동아리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지만 영화는 딱히 정체성이라고 할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도훈 : 이야기가 조금 무거워졌나?(웃음)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개인 취향을 물어보고 싶다. 다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인데, 자기만의 클래식이라고 할 영화가 있나? 특별히 좋아하는 고전영화나 선호하는 작가가 있다면?

안성용 : 좋아하는 영화는 많다. 타란티노에서부터 다르덴 형제까지.


이도훈 : 그 영화들도 이제는 영화애호가들 사이에는 교양으로 취급받고 있지 않나? 아니면 일종의 고유명사로 통하고 있는 영화인데. 그 외에 성용씨가 선호하는 영화는 어떤 부류인지

안성용 : 영화를 볼 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한다. 간혹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내가 스크린에 푹 빠져서 감독의 의도에 속아 넘어갈 때가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속아 넘어가도 영화가 끝나면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들도 영화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동아리에서 영화사 스터디를 하면서 고전을 보고 있는데, 고전을 보는 이유는 영화에 속지 않기 위해서인 것 같다. 고전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속여 왔고, 관객들이 어떤 영화에 속아왔는지가 보인다. 고전을 보다보면 거짓말을 하는 영화, 나를 속이는 영화를 판별할 힘이 길러지는 것 같다. 고전의 가치는 그런 게 아닐까.


이도훈 : 정은씨와 지현씨의 영화 계보를 듣고 싶다.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푹 빠졌던 영화나 감독이 있었을 텐데.

이정은 : 가족들 모두 영화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를 빌려서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고는 했다. 가족들 취미가 영화였다.(웃음) 그래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고, 나만의 취향이 생겼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게 특별한 영향을 준 영화는 장 피에르 주네의 <아멜리에>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매료되었다. <아멜리에>는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서부터 영화라는 예술에 호기심을 불어 넣어 준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아멜리에>를 보고나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나, 감독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그 때 이후로 더 다양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EBS 시네마 천국을 자주 봤고, 시네큐브 같은 예술극장에서 여러 영화를 봤다. 내게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영화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침체기가 찾아오더라. 선배들이 추천해주는 영화나 책이나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고전을 꼭 봐야한다는 강박이 생기면서부터 힘들었다. 굳이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영화를 억지로 챙겨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영화를 볼 때 강박관념이 생겼고, 영화 보는 일에 회의감이 몰려오더라. 특히 의무감으로 영화를 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요즘에는 내 취향대로 영화를 보는 게 더 즐겁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영화 문법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거나, 영화사를 쫓아가면서 보기 보다는 내 취향과 기호를 따라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사실 지금은 약간 혼란기 같다. 그래서 내 길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할까.

김지현: 우리 집은 어찌 된 게, 영화를 되게 싫어한다. (웃음) 부모님은 내가 영화 동아리 활동하는 것도 이해를 못한다. 집에서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집에서 내가 영화를 보려고 하면 부모님은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라는 식으로 나온다. 또 내 영화 폭은 매우 좁다.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지만 고전은 거의 보지 못했고, 본 영화라고는 현대 영화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못 본 게 허다하다. 하지만 고전을 보고 싶어도 막상 생각처럼 안 되더라. 봐야할 영화가 많아서 그런지 어떤 영화를 봐야한다는 초조함이나 부담감도 있다.


이도훈 : 특별히 매료되었던 영화가 있다면.

김지현 :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예쁘고 아름답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에 스타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내가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그의 작품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지금도 좋아하는 감독이다.


이도훈 : 정은 씨의 말을 들어보니 타인을 의식해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네이버 평점이나 잡지의 영화 리뷰, 별점이 관객의 영화 보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홍수가 나면 먹을 물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볼 영화가 너무 많으면 좋은 영화, 자기 취향의 영화를 골라내기가 힘들 텐데.

이정은 : 인터넷으로 영화를 검색하다가 어떤 영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찾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본 영화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막상 왜 그 영화가 좋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괜스레 다른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들을 반 의무적으로 챙겨본 것 같다. 최근에는 잡지 리뷰를 읽으면서 구미가 당기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있다. 잡지 외에도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내 취향이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랬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나 선호하는 감독이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내 기호가 명확하지 않아서 이 영화 저 영화에 손대보고 있는 중이다.

김지현 : 나 역시 남들이 추천하는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볼 때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봐버린다.(웃음) 주로 영화 스틸 컷이나 포스터를 보고, 딱 이 영화다! 싶은 작품을 본다. 잡지에 실린 기사들도 내 영화 보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남들의 생각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내 몸이 끌리는 영화를 선택한다.


이도훈 : 지현 씨의 말을 들어보면 영화를 선택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

이정은 : 영화를 볼 때 심리적인 게 작용해서 영화안 내용이나 인물에 동화되는 경우가 있다. 그날 자기의 상태나 의식이 작용하면 영화를 보면서 자기와 관련된 요소들을 찾아서 연결 짓는 것 같다. 왜 어떤 영화를 보면 딱 내 마음을 표현한 영화야, 라고 생각 할 때가 있지 않나.

안성용 : 분명 영화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도 있는 것 같다. 영화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참 신기할 때가 있다. 어제 밤에는 <율리시즈의 시선>을 봤는데, 오늘 인터뷰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그 영화 안에 담겨 있더라. 너무 놀랐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숨겨져 있는 최초의 영화를 찾는 이야기다. 어떤 시네마테크의 관장이 최초의 영화를 현상하지 않은 상태로 들고 있었다. 내전이 일어나서 최초의 영화를 현상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여하튼 관장은 최초의 영화를 극장에 가둬두고 있었던 거다. 주인공은 관장을 찾아가 당신은 영화를 가둬둘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오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리시즈의 시선>을 볼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화가 대신 해주는 것 같더라. 나는 영화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라고 해서 극장이나 박물관에 가둬 둘 필요는 없는 거다. 사실 저마다 역할이 있으니, 영화를 보존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여간 <율리시즈의 시선>은 마침 지금 이 인터뷰 전날 보게 되었고, 그 영화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더라. 참 신기했다.


이도훈 : 고다르 말처럼 우리가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우리를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웃음) 그럼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가자.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어떤 게 있나.

김지현 : 나는 요즘에 빔 벤더스의 영화가 좋더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돈 컴 노킹>이 너무 보고 싶어서 수업도 제치고 영화를 보러갔다.(웃음) 그 영화를 보고나서 빔 벤더스의 다른 영화도 찾아보고 싶어지더라.

이정은 : 내게 이렇다 할 영화 취향이 있는 건 아니어서 상업영화니 예술영화니 하는 식으로 영화를 가려가면서 보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은 영화들을 재미나게 봤다. 하지만 요즘 침체기라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영화를 통 못 보고 있다.

안성용 : 나는 예전부터 내가 봐야할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특별히 어떤 영화에 흥미를 가지기보다는, 차근차근 리스트에 뽑아 놓은 영화들을 찾아본다. 물론 개봉작도 따로 챙겨본다.



 

이도훈 :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다보니 시간 너무 많이 지나갔다.(웃음) 슬슬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각자 짧다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을 영화동아리에서 보냈는데, 동아리 생활을 통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정은 : 영화가 내 일상이 되고, 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확실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동아리를 하면서 영화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예전에 혼자서 영화를 볼 때는 딱히 영화 이야기를 공유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누구나 영화를 좋아하지만 단순히 주말에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과 영화를 좀 더 배우고 싶어 하고, 영화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나. 나는 후자 쪽의 친구를 원했었고 동아리 친구들이 딱 그랬다.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과 생활하는 중에 영화 정보를 교환하다가 보면 영화를 좀 더 봐야겠다는 경각심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심도 생기더라.(웃음) 프로메테우스는 여러 가지로 내 영화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이다.

김지현 : 동아리에 들어오기 전만해도 주변에 딱히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웠다. 평소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이야기하면 다들 시큰둥하게 반응하더라. 그런데 동아리에 들어와서는 영화에 대해서 막힘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어떤 영화가 좋았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맞장구 쳐주고, 자기가 좋게 본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동아리도 하나의 사회집단이지 않나. 각자 역할이 주어져 있고,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곳이 동아리다. 원래 나란 아이는 해야 할 일이 있어도 뒤로 제쳐두고, 다 함께 일을 할 때도 적극적이지 못해서 혼자만 뒤로 빠지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동아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보니 나 혼자만 뒤로 빠질 수 없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참여하는 만큼 일에 빠져 들었다는 거다. 평소 같으면 하지도 않았을 일을 혼자 나서서 해보기도 하고, 어설프지만 영화 찍는 일에도 참여해볼 수 있었다.

안성용 : 예전에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였다. 반면에 지금은 온통 영화생각 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은 영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이런 나를 보고 있으면, 정말 영화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님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걱정을 많이 하신다.(웃음)


이도훈 :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은 영화에 푹 빠진 우리를 늘 안쓰럽게 바라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세상 모두가 실용주의를 내세우는데, 영화처럼 쓸모없고 비생산적인 일도 드물다. 가끔 주변에서 영화에 인생을 걸겠다는 친구들의 말이 무모하게 들리더라. 특히 밥벌이로서는 최악의 직업 중 하나가 영화인이지 않나. 지금 학교 친구들은 모두 토익공부하고 도서관 가는 시간에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는데. 그럴 때 괴리감이 발생하지 않나. 앞으로도 영화를 볼 건지?

안성용 : 나는 이제 명료하다. 돈을 벌자. 영화로 돈을 벌어보자! 대부분이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모범답안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대학생활 착실히 해서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거. 하지만 어떤 교수님이 한 말한 것처럼 모범답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이란 게, 마스터플랜이 있어서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길을 무작정 따라 가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자 자기가 하는 방식이 있고, 그 방식에 따라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면 그것도 정답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일도 다른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내 주관을 믿고 영화를 보려고 한다. 내 스스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영화보기를 터득해야 될 것 같다. 그것도 실용주의니까.

김지현 : 엄마, 아빠가 모든 일을 이명박 식으로 사고하신다. 부모님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자라서 내가 영화 동아리에 들었다고 했을 때 무지 싫어하셨다. 영화라는 게 보고 즐긴 다음에 뭐가 남느냐는 식이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과 다르게 생각한다. 공부만 잘하는 학점 퀸, 학점 킹이라는 애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파고 있지만, 나는 그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세상을 본다. 나는 그 친구들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영화를 통해서 보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보는 일이 수동적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라지만, 나는 영화 보는 일은 창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 없습니다!’

이정은 : 나는 예전부터 영화 산업에 종사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내 진로를 확고하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동아리 신입생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학년이 되었지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혼란스러운 상태다. 영화 동아리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여기서 영화에 대한 내 애정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것처럼 지금은 내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앞으로도 영화 일을 해보고 싶다면 좀 더 전문화된 공부를 하거나, 영상제작소 같은 곳에서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봐야 할 것 같다.

안성용 : 영화가 우리네 삶과 가까운 이상, 영화 보는 것도 삶을 갈고 닦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만 영화를 즐긴다면, 그 사람이 영화에서 얻는 효율성은 2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2시간 동안 영화를 즐기고 나서도 영화를 생각하면서 즐거워하지 않나.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얻어내는 효율성은 보통 사람의 2배에 가깝다는 거다. 우리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를 좀 더 실용적으로 즐긴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실용주의니까 환영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이도훈 : 나는 영화로 실용주의를 했으면 좋겠다.(웃음) 그래서 모두가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한다.





 

-연재를 끝내며

영화 커뮤니티, 영화 공동체는 외로운 영화 애호가들을 위로하는 기능을 합니다. 사실, 실용주의시대에 외로움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실에 대처해야하기에 이성이 감성을 억누릅니다. 우리는 사막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각개전투, 약육강식의 생존방법이 삶의 방식이 된 이상, 영화의 존재가치는 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비 만능주의의 시대에 더 이상 영화에 예술적인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으며, 기계 복제되는 영화라는 예술을 너무 쉽게 소비해버리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소비의 대상이 되어가면서 영화로 낭만을 즐기거나 영화로 세상을 독해하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화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 되었지만 우리는 영화를 유령처럼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영화가 우리 곁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요? 공기가 있는 걸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화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 영화동아리는 구시대 유물처럼 남아서 영화를 공유하고, 영화가 우리에게 준 사랑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친구들과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화의 존재를 되새김질하는 진정한 영화 애호가들일 겁니다. 또한 이 친구들은 천대받는 영화에 애정을 불어넣어, 바닥으로 떨어진 영화의 권위를 조금이나마 격상시키려고 합니다. 아마도 영화 동아리 친구들은 우리 시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전사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어리석을 정도로 열정만 앞서서, 그들의 열정보다 앞서가는 시대의 변화 앞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것이 곧 청춘의 미덕이며, 그 청승 같은 어리석음이 언젠가는 낭만이었다고 자화자찬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누구도 성공적으로 영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 영화동아리는 어떤 자들도 이루지 못한 영화 공동체의 원형이기에 오늘날에도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대학영화동아리 탐방기사는 오늘날 20대들이 영화 보기에 관한 질문들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고전적인 일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보고, 좁은 스크린을 통해서 다운받은 영화를 받는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또한, 고전영화와 한국 독립영화에 같은 동시대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으며, 나 홀로족 일색인 요즈음 시대에 한 공간에 모여 영화를 보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영화보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저는 이 기사가 정답을 찍어야하는 OMR카드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논술형 답안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래봅니다. 이 기사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모호한 답은 영화 보기는 행복한 일이라는 겁니다. 저는 아직 영화가 볼 만한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진행: 이도훈
참석: 안성용, 이정은, 김지현
정리: 강민영, 이도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mk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고포상 Naver ckmk1

    2012.04.29 16:57
  2. Favicon of http://lkp.freerunshoesusxa.com/ BlogIcon cheap nike free run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Topics related articles:


    http://worldmc.tistory.com/948 新建文章 7

    http://ybrary.tistory.com/m/post/trackbacks/id/55 新建文章 6

    http://hisfactory.tistory.com/33 新建文章 4

    http://jmerit.tistory.com/76 新建文章 4

    2013.04.25 16:30

◀ Prev 1 2 3 4 5 6 7  Next ▶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158,894
  • 16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