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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태

이런 시국에 예술이니 영화니 논하는 건 솔직히 진이 빠지는 일이다. 그래도 1년 365일, 24시간 촛불을 들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일도 하고 재충전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보다야 시의 적절한 영화 한 편 씩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인디 존스’ 박사는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장년층 관객들까지 몽땅 흡수하는 분위기다. 추억에 젖게 해 줄 존스 박사와 만났다면 현실을 환기시킬 영화들도 필요할 터. 그래서 준비했다. 이름하야 지금 대통령이 봐줬으면 하는 옛날 영화 혹은 대통령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 말이다.

장르를 구분해 봐도 블랙코미디, 정치스릴러, 블록버스터, 사회드라마, 호러까지 다채롭기 그지없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예술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소망과 열망을 담고 있을 지도 모를 영화들이다. 그리고 덤으로 연일 왜곡과 과장을 일삼고 있는 보수 언론도 봐주면 감사할 영화들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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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브라더’를 뚫어 낸 시민 혁명 <브이 포 벤데타>

27일 공안대책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2년 만에 긴급 소집된 이 자리에서 나온 대책이라곤  ‘불법시위’, ‘엄정대처’, ‘전원사법처리’ 등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뿐이란다. 바야흐로 생뚱맞은 공안정국이다.

<한겨레21>이 보도한 문화부 홍보지원국의 교육 자료는 더 가관이다. 게시판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 공간이라 멍청한 대중은 세뇌와 조작이 가능하단다. 이해찬 세대가 생각도, 원칙도 없다거나, 인터넷이 저급 선동의 공간이라는 고급한(?) 발상은 정부가 포털 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들로 인해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다.

입맛에 맞는 언론들과는 ‘프레스 프랜들리’하고 열린 인터넷과는 조기대응반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 액션 블록버스터 <브이 포 벤데타>에도 매스미디어를 장악하려는 파시즘 정권이 등장한다. 그래픽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가 묘사하는 2040년 제3차 세계대전 후 영국 정권의 폭압과 언론 통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 속 ‘빅 브라더’에 버금간다.

완벽한 픽션인 이 작품은 그러나 400년 전 실존했던 인물 가이 포크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1605년 11월 5일 영국의 제임스 1세 정부의 독재에 맞서기 위해 화약을 숨겨 의회 지하에 화약을 숨겨 잠입하려다 체포된 인물. 주인공 V(휴고 위빙)는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며, 폭압적인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2040년 11월 5일 ‘화약 음모 사건’의 날에 시민들을 집결시키려 노력한다.

꽤나 정치적이고 암울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브이 포 벤데타>는 평범한 아가씨 이비(나탈리 포트만)이 V에 의해 변화하는 궤적을 조명한다. V의 영웅적 면모를 과시하는 것으로 잔재미를 주면서도 CCTV로 국민들을 감시하고 매스미디어를 통제하는 감시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어마어마한 군중들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과 두건을 그대로 착용하고 광장에 나서는 라스트 신이다. 군인들의 총 앞에서도 굳건히 땅을 딛고 선 시민들의 무리가 무언의 한 목소리를 내며 승리를 일궈내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결코 세뇌와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신념”을 성취해 낸 시민 혁명을 그리고 있다.

꽤나 불편하시다? 대한민국은 절대 영화 속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니냐고? 그런 분들에게는 만화 원작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로 즐기시길 권장한다. 이비와 청계천에서 촛불을 든 10대 여학생들이 크게 달라보이진 않을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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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정치 <맨 오브 더 이어>

이제 겨우 3개월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20% 대란다. 혹자들은 그것도 높다고 아우성이다. ‘이명박 OUT’이라는 피켓이 촛불문화제 현장에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다. 그래서 소개한다. 국내 개봉은 못 했지만 작금의 정서라면 지지를 받고도 남을 미국산 정치 블랙코미디 <맨 오브 더 이어>의 대통령은 대통령 직을 과감히 벗어 던진다.

내용은 다소 황당하다. 시작은 “정치계에 실망했어요. 대통령 선거에 직접 출마해 보시면 어때요”라는 젊은 여성 방청객의 한마디였다. 인기 절정의 정치 풍자 토크쇼 진행자 톰 돕스(로빈 윌리엄스)가 대선에 뛰어들게 된 것은. 돕스는 그날 정치인과의 대화에서 이 얘기를 꺼낸 뒤 3시간 만에 400백만 통, 그 다음주 몇 번 더 언급한 뒤로 8백만이 넘는 출마 권유 이메일을 받게된다.

그리고는? 기성 정치에 신물이 난 “인터넷의 힘과 서민의 사랑”에 힘입어 돕스는 출마를 결심하고 기적적으로,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대선에 당선된다. 물론 영화는 지극히 ‘영화’답게 이 결과가 새롭게 도입된 전자 투, 개표 시스템의 오류임이 한 프로그래머 엘로너(로라 리니)에 의해 밝혀 놓고 시작한다. 시스템을 개발해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본 회사 측은 사실은 은폐하려 들고 엘로너는 이를 돕스에게 알리려 백방으로 뛰어 다닌다.

사실 이 영화가 대단히 완성도를 높은 작품은 아니다. 정치인의 부패와 정체, 부당한 전쟁, 서민들의 빈곤한 삶과 같은 미국 현실에 대한 자기비판은 수박 겉핥기다. 또 엘로너에게 마약을 부지불식간에 투여한 회사의 음모가 폭로되는지라 살짝 스릴러 형식도 가져온다. “정치인들은 기저귀와 같습니다. 자꾸 바꿔줘야 하니까요”나 “국방장관은 브루스 스프링스턴” 따위의 농담이나 현실에서는 없을 짜릿한 TV 토론이 미소를 짓게 하지만 어떠한 성찰을 이끌어내긴 역부족이다. 

<굿모닝 베트남>의 ‘짝패’ 로빈 윌리엄스와 다시 만난 <레인맨>의 베리 레빈슨 감독은 <웩 더 독>과 같은 정치 풍자 영화를 만든 바 있다. 그러나 그가 주창하는 주제는 이번에도 보편적이기 그지없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통령과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 영화 속 돕스가 지지를 얻는 이유는 국민을 동일한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실천 가능한 정책을 제시하는 소통가능한 눈높이 정치를 약속했다는 데 있다.

영화 속 돕스는 결국 양심선언을 하고 당선 3주 만에 “정세를 뒤 흔들 뿐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현실 속 대한민국에서는 그러나 손석희 교수가 대선 출마를 즉흥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영화 속이나 현실이나 국민들은 다만 상식적이고 소통 가능한 대통령을 보고 싶을 뿐이다. <개그콘서트>를 직접 보실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반매카시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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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방송된 MBC <PD수첩>이 보수 언론의 이중적 행태와 편파 보도를 꼬집었다. 대통령이 광우병 사태에 대한 민심을 ‘괴담’ 수준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광우병 검역과 관련해 ‘눈 가리고 아웅’식의 말 바꾸기를 자행하고 있는 걸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신뢰를 잃은 언론의 미래야 눈에 선한 것이지만, 미국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작금의 상황은 우리에게 참 언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가 마무리 멘트였다. 드라마 <스포트라이트>가 조명하고 있는 방송사와 언론간의 세 다툼으로 치부하기엔 곤란한 상황이다. 드라마 보듯 뒷짐 지고 감상할 때가 아니다. 지금 소개할 두 편은 대통령과 ‘프레스 프렌들리’할 언론인들에게 ‘강추’하는 작품이다.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 미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위해 활동한 스파이들이 미 워싱턴의 민주당 당사를 도청했던 사건을 발굴,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들 이름이다. 먼저 닉슨 대통령을 현직에서 낙마하게 만든,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스캔들로 비화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명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단순한 절도 사건을 취재하던 두 기자가 거대한 음모에 맞서 진실을 폭로한다는 내용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특종으로 불리는 역사적 현실 그대로다. 그 실화 자체를 건조하게 따라가는 영화는 그 자체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절대 권력자의 부정과 정권 차원의 압박, 공화당 지지자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편집권을 사수했던 두 기자와 워싱턴포스트지의 자세는 미 언론인들이 자랑할 만한 언론의 정도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오늘날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에 있어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책임이다.” 미 CBS의 시사프로그램 ‘See It Now’의 진행자였던 언론인 에드워드 R. 머로우의 말이다. 그는 1950년대 중반 미 전역을 냉전의 광기로 몰아넣었던 J.R. 매카시 상원의원과 맞섰던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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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알고, 말하며, 생각하는 권리야말로 천부의 고결한 인권”임을 강조했던 이 머로우와 그의 방송팀이 매카시즘에 대항하는 과정을 그린 <굿 나잇 앤 굿럭>. 할리우드의 섹시스타이자 좌파 지성인 감독 조지 클루니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미국을 충격에 빠지게 한 “미 국무부에 205명의 공산당원이 있고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맥카시 의원이 주장이 허구였음을 반박하는 보도를 줄기차게 내보냈던 머로우의 곧은 자세를 영화는 흑백화면으로 담담하게 조명한다.

비록 시청률과 자본에 끝내 무릎을 꿇고 몇 년 뒤 방송은 종영된다. 그러나 그건 패배가 아니다. 머로우 같은 선배가 있었기에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도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CBS와 워싱턴포스트와 같이 메이저 언론이었다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의견을 대변하는 미디어는 ‘언론의 정도’ 운운할 가치가 없다. 그것이 좌우를 불문하고 친정권, 친재벌일 때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자기 할 말을 다 하기 전에 먼저 거리로 나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 요구된다. 대통령과 언론인들이 손 맞잡고 함께 관람해야 할 영화가 바로 이 두 편이다.

그리고 분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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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영화들 보다 무언가 강렬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영국산 좀비 영화 <28일후...>를 추천한다. 침팬지의 피와 침으로 유래된 ‘분노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은 멸망하고 생존자들이 좀비가 된 사람들을 피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과 저예산에 빠른 편집, 흔들리는 화면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좀비가 던져주는 시각적 충격과 현실적 공포가 백미인 작품이다.

물론 침팬지가 전한 바이러스라는 설정만으로 광우병을 연상하는 건 지극히 순진한 해석이다. 염두에 둘 것은 바로 ‘분노’ 바이러스다. 영화 속에서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데모 장면을 보며 분노를 키워 온 침팬지가 퍼트린 치명적 바이러스는 인류의 재앙이 어디서 기인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어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 분노다. 왜 이 영국 호러 영화에서 한국의 데모 장면을 목격해야 하는 거에 대한 증거는 좁게는 가두시위에서의 연행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게 왜 거리로 나간 시민들이 분노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걸 불러 온 세력이 누구인지, 그 가두시위의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말이다.

이밖에도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한도 끝도 없다. 9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공권력의 제도화된 폭력을 다분화된 인종과 계급적 시각으로 고발하는 <증오>도 그 중 하나다. 아일랜드판 <화려한 휴가>로 불러도 무방할 <블러드 선데이>도 준비되어 있다. 아이템이 민초들의 봉기라 한다면 동학혁명을 다룬 <개벽>부터 프랑스산 <제르미날>까지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단 한 편을 ‘강추’하라면 단연코 김풀빵의 패러디무비 <뼈의 최후통첩>일 것이다.  상영 시간도 9분 11초로 짧다. 대통령이 <본 얼티메이텀>을 봤을 리 만무하니 안성맞춤이다. 긴박감 넘치는 화면에 액션까지 곁들었으니 재미 만점이요, 외국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기막히게 패러디해 낸다. 게다가 공짜 아닌가.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행여 그 전까지 꽉 막힌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이런 대중 영화들에서라도 보고 배워야 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만 보지 말고 <뼈의 최후통첩>도, 의료보험 민영화 제고를 위해 <식코>도 꼭 챙겨보시길 권한다. 이런 영화들 보며 여가도 즐기고 국민들과 직접 소통도 하란 말이다. 제발 <무한도전>에 출연해 타고난 개그 본능 뽐낼 생각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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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lan9.co.kr/tt2 BlogIcon 주성치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008.05.28 10:56
    • Favicon of http://license119.com/newki BlogIcon 자격증무료자료받기  수정/삭제

      이해찬 신매카시즘글 잘 보았습니다.. 아래 자격증관련 정보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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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5 14:37
  2. 김혜민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해상도와 관련이 있나요?
    처음엔 글씨가 작게 로딩되어 줄간격도 이상하네요..잘 읽고 싶언데요ㅠㅠ

    2008.05.28 12:59
  3.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8.05.28 13:12
  4. 좋은 글입니다  수정/삭제  댓글쓰기

    브이 포 벤데타 요거케이블에서 많이하길래 봤는데
    잘만든 영화더군요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지고요..

    2008.05.28 19:42
  5. Favicon of http://badnom.com BlogIcon w0rm9  수정/삭제  댓글쓰기

    브이 포 벤데타 이거 극장에서 봤었는데....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장관이죠.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요즘 생각이 많이 나는 작품입니다.
    사상영화로는 최고죠!

    2008.05.28 20:13
  6. Favicon of http://www.mayspider.com BlogIcon 메이스파이더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비평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와 지금의 상황에 빗댄 님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작짝 영화를 좋아하는 외출검색 메이스파이더도 호프만과 레드포드가 나온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감명깊게 보았는데 여기서 그 영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네요..정의가 아름다운건 그것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정의가 흔한 사회가 되어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하루빨리 왔으면 합니다.

    2008.05.28 22:33
  7. Favicon of https://nowatlast.tistory.com BlogIcon finicky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DVD 를 사다가 청와대로 부쳐야 겠어요 ㅋ

    2008.05.28 22:54 신고

하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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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졸지에 부자가 된 홀아버지(이원종) 밑에서 자란 연수(박정아)가 주인공 ‘날나리’ 되겠다. 오프닝에서 주얼리의 ‘one more time’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던 그녀는 택시에서 두고 내린 핸드폰 때문에 만나게 된 범생이자 종가집 후손 정도(박진우)에게 한 눈에 반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혼전임신으로 종가집 종부가 될 운명에 처한 백조 연수의 파란만장 시집 적응기가 <날나리 종부전>의 이야기다. 

이 어이없는 영화의 장르를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있을랴. 컬트 로맨틱 조폭 가족 코미디 정도? 그러니까 환경이 각자 다른 두 집안의 좌충우돌 컬쳐 쇼크에 철지난 조폭 개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등 잡다한 장르 영화들의 클리쉐를 차용한 이 영화는 간만에 만나는 B급, 아니 C급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2년이나 묶은 영화니만큼 아이템도, 개그도 다 철지난 것 뿐이란 얘기다.

사실 기본 구조만 놓고 보면 꽤나 전통적이다. 물론 <못말리는 결혼>이 벌써 김수미 카드를 들고 100만 관객을 훌쩍 넘는 의외의 성공을 보여줬지만 이질적인 두 집안의 결합이란 구조는 온지구 관객들에게 먹히는 소재다. 거기다 한국적인 ‘종가집’이란 설정은 장년층에게는 더 친숙하게 다가설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긴 플롯 구조를 가리기에는 에피소드의 단순한 나열은 TV 시트콤 보다도 못하다.  철지난 조폭 개그의 남발은 둘째치고라도 클라이맥스에 펼쳐지는 조폭들과 종가 사람들과의 전투(?)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화면과 감정에 선행되는 음악이 평면적인 캐릭터들의 매력 없음을 가려주지도 못한다. 클로즈업의 남발을 비롯한 촬영 또한 잘 만든 영화과 단편 영화만도 못한 수준이니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수칠때 떠나라>에서 일정정도 연기를 보여줬던 박정아지만 ‘은초딩’도 울고 갈 나레이션이 계속되는 터에 제대로된 연기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수준이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110분을 상영시간을 참다 보면 느껴지는 바가 있으니, 어쩌면 <날나리 종부전>은 작정하고 만든 B급 컬트영화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클라이막스에서 조선시대에서나 봄 직한 대포가 터지는 상황에 다다르면 이 종가집은 전설적인 컬트영화(?) <천사몽>에서 봤던 미래 도시가 아닐까 하는 환각이 살짝 든다.

<날나리 종부전>은 개봉 첫 주 150여개 상영관에서 8만을 넘기는 흥행 성적을 보여줬다. 존스 박사가 맹위를 떨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더 큰 비애는 이 영화가 한창 눈먼 돈들이 한국영화에 쏟아져 들어오던 바로 그때 완성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뒤늦게 지각 개봉을 한 작품이란 점이다. 가뜩이나 한국영화가 어려운 지금 한국영화계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꼴이랄까.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는 <여고생 시집가기>, <카리스마 탈출기>를 잇는 가수출신 주연배우의 무개념 영화로 폄하되거나 B급 컬트영화의 만신전에 오르는 상반된 평가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관람가

주얼리 혹은 박정아의 광팬이라면!!!

관람불가

이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기대치가 높아진 당신!

그런데 상영시간은 왜 이렇게 긴 거야?

박정아가 아버지 앞에서 신음을 내뱉는 장면의 당혹스러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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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딜가나 "Made in China"이다. 정말이지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산품 생산에 있어서는 최강국처럼 느껴진다.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숨막힐 것 같은 대량의 제품들이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적은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충분한 노동력때문에 어느덧 중국은 약속의 땅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옷'의 생산에 관해서는 말할나위 없이 황금지대다. 그렇게 생산된 옷들은 세계 각 나라에 전해지고 우리는 상표에 표시된 "Made in China"라는 마크를 통해 우리가 입는 대부분의 옷의 생산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지아장커는 특이하게도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관리자가 아닌 노동자)을 관찰한다. 누구도 잘 관심갖지 않는 공장 노동자들을 포착하는 순간부터 <무용>은 시작된다. 카메라 속에는 마치 신경숙 소설의 <외딴방>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들이 핏기도 없는 얼굴로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고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삶의 무료함'이 묻어난다. '하고 싶어서 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함'이라고 써진 표정들은 닫혀진 문을 문틀과 문틀 사이로 넘고, 비좁은 구내식당에서 서서 점심을 청하며, 고질적인 병으로 보건의에게 상담을 받는다. 지아장커는 생산라인에 서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패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카메라 또한 그들처럼 무심하다. 패닝을 통해 라인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이동해 나가지만 오히려 똑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것처럼 그들에겐 웃음의 꽃이 없다. 웃음없이 만들어진 옷들은 이동하고 이동해서 노동자들을 결코 구원할 수 없는 중산층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연을 닮은 옷만들기를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마커의 일상으로 향한다. 그녀는 한참 파리에서 자신의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대량생산으로 똑같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지 않은 공산품은 그녀에게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녀는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서 흙내음이 느껴지는 옷들을 만들고 그것을 '무용'이라는 브랜드로 승화시켜 사회에 내놓으려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거름진 땅은 우리가 입는 옷이 놓여질 공간이 되고 하나하나의 옷에 의미를 더하게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친환경주의'적인 태도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연에 맞닿은 자연을 보존하는 옷을 통해 혼탁해진 지구의 환경을 구하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만들어 낸 옷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작인 <동>에 이어서 아티스트 2부작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커를 지아장커 역시 결코 옹호하려 들지 않았음을 난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반론인 두번째 이야기는 옷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광산마을 '샨시성'으로 흘러간 마커의 고급스러운 차를 바라보고 있는 한 광부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끝이 난다.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를 몰고 있는 마커에서 이야기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철저하게 그녀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진행될거라 믿었던 관객들은 순간 의아해 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 그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 바로 그가 태어난 샨시성의 외딴 곳을 비추고 있다.

광부는 표정이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고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는 어떠한 고단함보다는 평범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무언가가 들어있는 봉지를 가지고 그는 길을 걷는데, 얼마 후 그가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수선집이다. 옷수선을 하기 위함이다. 수선을 마치고 2위안을 달라고 하는 주인앞에서 그는 3위안을 주려고 하면서 웃지만 그렇다고 주인은 더 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속에서 지아장커의 여유가 묻어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들이었고,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옷도 만들었다는 한 광부와 그의 아내는 이제는 돈이 없어서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평범한 삶이 제 옷에 맏기 때문에.

남성의 몸을 다루는 데에 이미 익숙한 지아장커는 석탄가루로 인해서 온 멈이 까맣게 된 광부들의 샤워장면을 통해서 굉장한 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동'과 비슷한 것이다. 손톱까지 까맣게 된 광부들은 마치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밀고 있는 것처럼 몸을 닦고 있다. 그들의 더럽혀진 몸에서 살아가는 흔적이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전혀 누추해 보이지 않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전율은 그들이 벗어난 작업복에 카메라가 비추어졌을 때 '절정'을 이룬다. 그들의 작업복은 매일같이 더럽혀져 빨아도 빨아도 소용없을 만큼 색깔이 변해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는데 정말로 필요한 보물인 것이다. 마커의 눈에는 무시의 대상이었던 같은 표정의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업복이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땅의 흙이 묻어있고 땀내가 가득한 꼭 있어야 될 물건이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카메라는 역시 무심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자는 이미 떨리고 있다. 그래서 마커가 이야기 했던 '무용(쓸없음)'이라는 브랜드는 여기서 철저히 '무용지물'이 되고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작업복이 '유용(쓸있음)'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작 지아장커가 전율의 순간을 세번째 이야기에 와서야 포착해 내는 것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가난한 민중들의 소세계에 가깝다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무용'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디자이너 마커는 동명의 브랜드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지만, 실상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뿐이고,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옷이 아니라 누군가가 편히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옷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난 지아장커가 왜 엉뚱한 길을 계속해서 가려고 할까 의문을 가져봤다. 누구보다도 중국의 급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그가 예술가에 대한 3부작을 이어나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용>은 완전히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반성하게끔 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자기가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사실적으로 정리하려고 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씻는 샤워실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땀내 가득한 옷이 절실히 쓸모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분명 누군가는 맘 속 깊이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를 누구도 제1의 시네아스트에서 내려놓지 않는 이유이다




이제는 어딜가나 "Made in China"이다. 정말이지 중국이라는 나라는 공산품 생산에 있어서는 최강국처럼 느껴진다. 그 많은 인구수만큼이나 숨막힐 것 같은 대량의 제품들이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적은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충분한 노동력때문에 어느덧 중국은 약속의 땅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옷'의 생산에 관해서는 말할나위 없이 황금지대다. 그렇게 생산된 옷들은 세계 각 나라에 전해지고 우리는 상표에 표시된 "Made in China"라는 마크를 통해 우리가 입는 대부분의 옷의 생산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지아장커는 특이하게도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관리자가 아닌 노동자)을 관찰한다. 누구도 잘 관심갖지 않는 공장 노동자들을 포착하는 순간부터 <무용>은 시작된다. 카메라 속에는 마치 신경숙 소설의 <외딴방>에서나 등장할 법한 사람들이 핏기도 없는 얼굴로 생산라인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적으로 고단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들의 표정만으로도 '삶의 무료함'이 묻어난다. '하고 싶어서 함'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함'이라고 써진 표정들은 닫혀진 문을 문틀과 문틀 사이로 넘고, 비좁은 구내식당에서 서서 점심을 청하며, 고질적인 병으로 보건의에게 상담을 받는다. 지아장커는 생산라인에 서서 반복적으로 똑같은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을 패닝으로 보여주는데 그 카메라 또한 그들처럼 무심하다. 패닝을 통해 라인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카메라가 이동해 나가지만 오히려 똑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선것처럼 그들에겐 웃음의 꽃이 없다. 웃음없이 만들어진 옷들은 이동하고 이동해서 노동자들을 결코 구원할 수 없는 중산층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연을 닮은 옷만들기를 이상으로 가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마커의 일상으로 향한다. 그녀는 한참 파리에서 자신의 패션쇼를 준비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대량생산으로 똑같이 만들어지고 인간의 숨결이 들어있지 않은 공산품은 그녀에게 악취를 풍길 뿐이다. 그녀는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서 흙내음이 느껴지는 옷들을 만들고 그것을 '무용'이라는 브랜드로 승화시켜 사회에 내놓으려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거름진 땅은 우리가 입는 옷이 놓여질 공간이 되고 하나하나의 옷에 의미를 더하게 한다. 하지만 난 그녀의 '친환경주의'적인 태도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연에 맞닿은 자연을 보존하는 옷을 통해 혼탁해진 지구의 환경을 구하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만들어 낸 옷들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작인 <동>에 이어서 아티스트 2부작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 마커를 지아장커 역시 결코 옹호하려 들지 않았음을 난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첫번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공산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반론인 두번째 이야기는 옷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광산마을 '샨시성'으로 흘러간 마커의 고급스러운 차를 바라보고 있는 한 광부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끝이 난다. 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를 몰고 있는 마커에서 이야기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고 철저하게 그녀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진행될거라 믿었던 관객들은 순간 의아해 할 것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 그의 영화에 등장시키는 마음의 고향같은 곳. 바로 그가 태어난 샨시성의 외딴 곳을 비추고 있다.

광부는 표정이 없지만 그렇다고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고난한 공장 노동자들의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그에게는 어떠한 고단함보다는 평범한 삶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무언가가 들어있는 봉지를 가지고 그는 길을 걷는데, 얼마 후 그가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수선집이다. 옷수선을 하기 위함이다. 수선을 마치고 2위안을 달라고 하는 주인앞에서 그는 3위안을 주려고 하면서 웃지만 그렇다고 주인은 더 받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속에서 지아장커의 여유가 묻어난다. 생각해 보면 그의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가난한 서민들이었고,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옷도 만들었다는 한 광부와 그의 아내는 이제는 돈이 없어서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이미 평범한 삶이 제 옷에 맏기 때문에.

남성의 몸을 다루는 데에 이미 익숙한 지아장커는 석탄가루로 인해서 온 멈이 까맣게 된 광부들의 샤워장면을 통해서 굉장한 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동'과 비슷한 것이다. 손톱까지 까맣게 된 광부들은 마치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밀고 있는 것처럼 몸을 닦고 있다. 그들의 더럽혀진 몸에서 살아가는 흔적이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전혀 누추해 보이지 않고 아름다워보이기까지 한다. 전율은 그들이 벗어난 작업복에 카메라가 비추어졌을 때 '절정'을 이룬다. 그들의 작업복은 매일같이 더럽혀져 빨아도 빨아도 소용없을 만큼 색깔이 변해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살아가는데 정말로 필요한 보물인 것이다. 마커의 눈에는 무시의 대상이었던 같은 표정의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업복이 그들에게는 살아가는 땅의 흙이 묻어있고 땀내가 가득한 꼭 있어야 될 물건이라는 것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카메라는 역시 무심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자는 이미 떨리고 있다. 그래서 마커가 이야기 했던 '무용(쓸없음)'이라는 브랜드는 여기서 철저히 '무용지물'이 되고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작업복이 '유용(쓸있음)'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작 지아장커가 전율의 순간을 세번째 이야기에 와서야 포착해 내는 것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 가난한 민중들의 소세계에 가깝다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무용'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디자이너 마커는 동명의 브랜드를 창조해 내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쓰지만, 실상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소수뿐이고,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환경을 생각하는 옷이 아니라 누군가가 편히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옷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난 지아장커가 왜 엉뚱한 길을 계속해서 가려고 할까 의문을 가져봤다. 누구보다도 중국의 급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던 그가 예술가에 대한 3부작을 이어나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용>은 완전히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반성하게끔 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자기가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사실적으로 정리하려고 함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씻는 샤워실에 아무렇게나 올려진 땀내 가득한 옷이 절실히 쓸모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분명 누군가는 맘 속 깊이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를 누구도 제1의 시네아스트에서 내려놓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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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sdrain.tistory.com BlogIcon Samuel's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아장커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전주국제영화제때 보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군요. 마지막편의 이야기는 스틸라이프의 감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추억이 담긴 영화였습니다.

    2008.05.26 09:19 신고
  2. keisuke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지아장케의 영화는 어느 한 순간 필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한참 후에도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구요. 대개 그러한 장면은 감독이 무심한 듯 카메라를 들이댄 장면인데도 말입니다. 그의 시선은 지금 중국의 영화감독 중 매우 소중한 시선으로 여겨집니다.그의 영화작업이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바래봅니다.
    기회가 닿으면 이 영화를 한번 감상하고 싶네요.

    2008.08.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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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굶어도 영화는 본다.


씨네꼼의 모토에는 어딘가 절박한 구석이 있다. 황야의 이리처럼 학교를 배회하다가 3년 만에 정착한 곳이 씨네꼼이라는 안경배씨(서울대 법학과 04학번)의 말 속에는 절박함이 구구절절 묻어 있다. 그에게 씨네꼼은 안식처였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영문판으로 읽고 있던 홍지로씨(서울대 영문학과 03학번)는 겉은 지적인 이미지로 똘똘 뭉쳐 있어도, 속은 명랑한 영화청년이었다. 장르 영화의 즐거움과 플롯의 무의미를 체득해 나가고 있다는 홍지로씨. 그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실, 이 사람도 영화에 안달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다. 현 씨네꼼 회장인 강산씨(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는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 때문에 일단 첫 눈에 빠져드는 남자다. 영화가 그를 유혹한 걸까, 그가 영화를 꼬신걸까? 그는 영화가 자기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가 아니며 안 된다. 그래서 씨네꼼에서는 하루라도 영화를 보지 않고, 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첫 눈에 씨네꼼에는 영화가 있고, 씨네꼼 사람들은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영화’라는 우주로구나! 지금 씨네꼼인들은 영화와 열렬한 연애중이고,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씨네꼼에는 소 상영실과 함께 30명 정도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실이 하나 더 있었다. 대한민국을 뒤져봐도 이런 공간을 가진 대학은 없으리라.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서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주선해 준 안경배씨는 씨네꼼의 자료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면서 수줍은 듯, 그러나 은근 자랑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운영비로 구입한 DVD와 씨네꼼 회원들의 개인소장 자료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자료들만 봐도 영화를 본 것 마냥 뿌듯했다. 700여 편의 VHS와 1000편에 육박하는 DVD 자료는 씨네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앞으로 타 학교 학생들도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란다.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소상영실을 예약한 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를 보러 오는 학생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씨네꼼 회원들을 보고 있으니, 극장 프로그래머와 관객의 관계가 연상된다. 실제로 씨네꼼 회원들은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알았다고 한다. 이들은 씨네꼼에서 영화의 맛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다다익선多多益善 이 아닐까? 좋은 영화자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그것을 공유할수록 더 좋고, 함께 보면 더더욱 좋다. 여기에 큰 스크린과 좋은 영사시설이 갖추어지면 금상첨화. 이 인터뷰에는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명랑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도훈 : 우선, ‘씨네꼼’을 소개해 달라.

강 산(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 現 ‘씨네꼼’ 회장) : ‘씨네꼼’은 엄밀히 말하자면 동아리는 아니다. 보통 동아리들이 동아리 연합회 소속인데, 씨네꼼은 복지과 소속이다. 복지과에서는 학생들의 문화적인 복지혜택에 관한 일을 한다. 복지과에서 하는 일을 예로 들자면 학생회관에 음악 감상실 만들어서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고, 우리 동아리가 있는 건물인 두레문화회관에는 씨네꼼이라는 영화 감상실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씨네꼼은 학생들을 위한 복지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씨네꼼이 생긴 건 1993년도다. 당시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이 이 공동체를 만들면서 학교 측에 재정적인 지원과 공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에서는 명목 없이 지원을 해줄 수는 없으니까, 봉사장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한 거다. 봉사장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감상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자료들을 관리한다. 한 명당 20만원이 지급되는데, 그걸 개인이 갖지 않고 동아리 통장에 입금해서 씨네꼼 운영비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좋은 관행이 오래전부터 굳어져 왔다. 씨네꼼은 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프로젝트에 있는 렌즈가 고장 났다고 하면 갈아주기도 하고, 엠프를 사주기도 한다. 때로는 한 학기 DVD구입비로 일정금액이 지원된다.


이도훈 : 씨네꼼에 가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누구먼저 할까? 학번 순으로 할까?

홍지로(서울대 영어영문학과 03학번) : 내 이야기는 영화와 별 상관없고, 또 울적하다. 1학년 때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과방에도 안 나갔고, 수업 듣고 나서 공강 시간에는 다음시간 공부하고, 수업 끝나면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 물론 친구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채팅으로 알던 친구하나가 아는 척을 하더니 나랑 친했다는 것처럼 굴더라. 한 날은, 그 아이가 씨네꼼이란 곳에 가입했다고 말을 했다. 물론 처음부터 내게 들이대지는 않았고.(웃음) 그러던 그 녀석이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이야기하고, 또 다음 수업시간에는 비디오를 하나가지고 와서는 씨네꼼에서 빌려왔다고 말을 하는 거다. 그게 <이지 라이더>이었다. 나는 그 영화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지. 그러더니 기어코 이 친구가 날 보고 씨네꼼에 가입을 하라면서 넌지시 말하더라.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정말 비사교적이었다. 나를 잘 알던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오히려 내 이런 성격과 분위기가 씨네꼼과 잘 어울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씨네꼼에 와봤더니 진짜 침울한 게, 쇼킹했지. 내가 제일 말이 많더라. 그래도 공간이 넓고, 아늑한 분위기라서 씨네꼼이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씨네꼼이 망해가던 때였다. 한 학번에 한 명밖에 없었고, 내 바로 한 학번 윗선배는 탈퇴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유지만 되는 상태였다. 그래도 망해가는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도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01학번이 대단했다. 마침 03년도에 새내기가 5명 정도 가입하고, 그 친구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세미나가 가능해졌다. 제일 처음 배운 게 토마스 샤츠가 쓴 <헐리우드 장르구조>였다. 물론, 세미나에 참석해도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DVD가 덜 보급되었던 때라, 프레디어 아스테어의 뮤지컬을 한 편도 보지 않고서 책에 있는 글만 읽고는 백 스테이지 뮤지컬이 뭔가를 추측해가면서 공부했었다. 이렇게 여차저차해서 동아리에 남게 된 거다. 나란 녀석은 씨네꼼에 가입하기 전에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인생이 꼬이고, 영화에 낚인 거다. 혹시 또, 궁금하신 거 있나?

안경배(서울대 법학과 04학번) : 나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학교 다니면서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그러다보니 학점은 1점대 2점대로 기어 다녔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라는 생각만 하고 다녔다. 학생운동도 한 번 기웃거려보다가, 그렇게 방황하기만 3년. 어느 날엔가 길을 지나가다가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메인으로 나온 잡지를 봤다. 올 컬러로 된 잡지면서도 1000원인 게 너무 놀라웠다. 그게 필름 2.0이었다. 당시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중천> 촬영을 들어갈 즈음이었고, 아마 <브로크백 마운틴>이 서서히 입에 오르기 시작하고, 개봉작으로는 <왕의 남자>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이 있었다. 어 이 영화 되게 재미있겠는데! 하는 생각에 하이퍼텍 나다를 처음 가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봤다. 그 영화를 두 번씩 보고. 그 즈음해서 극장에 걸렸던 빔 벤더스의 영화나 짐 자무시 영화를 봤다. 그렇게 감독의 이름을 하나 둘 알아가던 중에, 빔 벤더스 영화 중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는데 엔딩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이 언급되더라. 오즈 야스지로! 그 사람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에 학교에서 ‘오즈의 칼라 영화’라는 영화제 포스터를 봤다. 그 영화제가 여기 씨네꼼에서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3학년이라서,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영화제가 3월 달에 했는데, 6개월 정도를 가슴에만 담아두다가 어렵게 연락을 해서 찾아왔다. 연락해보니 3학년이라도 대환영이라고 하더라. 근데 막상 와보니, 환영은 무슨. 처음에 왔을 때 왕가위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끝나고 뒤풀이에 가도 찬밥 신세더라.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왠지 모르게 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꿋꿋이 버텼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곳의 특성상 한 번 발을 들였다가 쉽게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경계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이도훈 : 아니, 두 분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여기가 너무 우울해 보인다.(웃음)

홍지로 : 아니다. 경배 씨가 들어올 때만 해도 신입회원도 많을 때고, 나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을 때다. 원래 씨네꼼의 전통대로라면 처음 오는 신입회원에게는 6개월 동안 말을 걸지 않는다. 원래 그랬었다. 04년도부터 조금 부드럽게 신입을 맞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실패한 거 같다. 오는 사람들마다 따뜻하게 했더니, 사람들이 여기를 사교장으로 영화는 안 보고 사람만 만나고 가고는 하더라. 그 전통을 이어갔어야 했다.(웃음)

강 산 : 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과 생활보다는 동아리활동을 더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때는 동아리를 두 개 하고, 2학기 시작하기 직전에 여기 가입했다. 1학기 때 영화가 아닌 다른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영화동아리에 들지 않은 게 내 스스로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학교에 ‘얄라셩’이라는 동아리가 있기는 하지만 제작중심이었고, 또 나는 편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동아리 가입하는 곳마다, 내가 가입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늘 06학번은 나 혼자더라. 나 때문에 동아리가 망해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죄스럽더라.(웃음) 앞의 두 사람의 말을 들서 알겠지만, 씨네꼼 특성이 무관심이다. 내가 처음여기 왔던 때가, 8월 말이었는데 11월말이 되어서야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는 와서 인사 나누고, 선배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책만 보고, 그러면 나는 굴러다니는 DVD 하나보고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와서 혼자 영화 한편 보고 집으로 가는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게된 건 왕가위 세미나 때다. 나 역시 이 무뚝뚝한 분위기에 끌려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왕가위 세미나 참석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더라.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게 세미나를 해서 그 모습에 약간의 동경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씨네꼼에서 진행하는 세미나가 어떤 것이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해온 세미나를 간략하게 들어보고 싶다.

홍지로 : 이런 소리를 하면 또 고학번이나 꼰대 취급을 받을 것 같은데. 먼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씨네꼼이 제 2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선배들이 주도하는 세미나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토마스 샤츠의 <헐리우드 장르의 구조>를 같이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새내기들이 모두 영화에 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일단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세미나에서 다룰 책을 읽어오고 누군가 발제를 하고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토론을 했다. 이런 작업만으로도 시간이 잘 가더라. 물론 항상 영화보기를 늘 병행했다. 2003년에는 웨스턴, 트뤼포, 필름 누아르, 그리고 나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주제로 세미나를 했고, 히치콕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약간은 치열하게 2003년에서 2004년 여름을 보냈던 것 같다. 당시 세미나는 텍스트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당연히 그 사이에 <필름아트>라는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내가 군대를 간 건 2005년인데, 군대를 갔다 온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

강 산 : 동아리에 들어온 게 2006년이다. 나는 이곳이 작가위주론 위주의 세미나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홍지로 : 그 부분에 관해서 첨언을 하자면, 2005년 전까지의 세미나는 작가주의를 한 번하고 나면 다음에는 특정 영화사조에 관해서 논의를 했다. 두 가지를 병행한 거다. 그래서 한 학기에 두 번의 세미나를 하고 상영회를 개최했다.

강 산 :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는 타르코프스키, 왕가위, 자끄 따티에 관해서 세미나를 했다. 씨네꼼에 들어와서 타르코프스키나 자끄 따티의 이름을 처음 들은 셈이다. 감독중심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만 참여하다보니 “작가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곳이구나”란 편견을 가진 것 같다. 그런 오해가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만 영화를 보는 구나”란 착각도 했었다. 조금 다른 경우는 2006년 겨울에 홍콩무협 영화를 가지고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홍지로 : 강산 씨가 지금 말한 부분에서 씨네꼼에 약간의 단절이 일어났다. 예전에 씨네꼼 사람들은 군대를 늦게 가는 편이었다. 회장을 하더라도 4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었다. 2005년 여름 즈음해서 기존에 사람들이 군대를 가고, 회장도 임기가 끝나고서는 동아리에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04년에는 열심히 세미나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2005년이 되어서 탈퇴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세미나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진 거다. 그 이후의 세미나는 선배들이 세미나를 진행한 걸 본 약간의 깜냥이 있는 사람들이 세미나를 진행했다. 예전처럼 텍스트를 스스로 선정하고, 영화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 가입한 사람이 영화를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때부터 세미나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정착한 듯하다. 씨네꼼 세미나에서 텍스트의 힘이 사리지기 시작했다. 아, 물론 영화를 보기 위해서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련된 텍스트를 읽는 훈련이 없어지면서 연쇄작용처럼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는 습관도 사라진 거다.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체계적으로 사유하는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영화를 보고 감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 산 : 지금까지 이야기가 2006년까지의 씨네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말을 잇자면, 2007년이 되어서 2005년에 군대 갔던 선배들이 전역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세미나에 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다 같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쳤지만, 선배 한 분이 와서는 체계적으로 텍스트를 골라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 권의 책을 선택해서 세미나를 하기 했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건 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였다. 그리고 나서 작가론으로 기타노 다케시 세미나를 했다. 텍스트로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세미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드웰의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사관리 엄정화’라는 게 우리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사실, 학생들이 희귀한 상황은 다른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학사관리 엄정화’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동아리 생활에도 타격을 준 것 같다.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입회원이 와도, 영화는 정말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데, 오랫동안 세미나를 할 분위기는 조성이 안 되는 거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오고 갔다. 회장이 되고 나서는 기존에 남아있던 멤버랑 새로 들어올 사람들 간에 기본 전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사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것보다도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거다. 신입회원들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론을 공부한다거나, 형식적인 분석을 한다고 하면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있었다. 동아리에는 자료가 계륵(鷄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료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정회원을 받으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 모임이 계속되어야하고, 동아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모임에 참여할 동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될까? 만약 이 상태에서 더 진지한 세미나를 고수한다면 뒤로는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한 개인의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 끝에 올해는 꼭 세미나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내세웠다.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한 편씩 뽑아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걸로 바꾸게 되었다.

(이 때 어디선가 투덜투덜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세미나에 대한 불만인가보다.)




이도훈 : 이 상황에서 좀 더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모임의 정체성을 어필해야 할 것 같은데?

홍지로 : 특별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동아리에서 하고 있는 세미나가,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 방식인데, 지난겨울에 있었던 운영회의에서 나온 대안적인 세미나 방법이다. 지난겨울에 보드웰의 <영화의 내fp이션1>을 가지고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다음 학기 세미나 운영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한명이 기존의 세미나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모두가 영화 평론을 할 사람들도 아니고, 영화를 업으로 할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회의에서는 그런 의견을 백분 받아들여서 지금의 세미나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고 감상평을 나누는 방식으로. 그런데 세미나를 바꾸어도 어차피 나오지 않던 사람은 계속 나오지 않고, 꾸준히 나오던 사람은 세미나가 어떻게 바뀌어도 나오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가 <영화의 내레이션 2권>으로 이번학기 세미나를 했어도 결과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같다는 거다. 타 학우들을 생각해서 친화적으로 바꾸어도 변화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나 역시 보드웰의 <영화의 내래이션 2권>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대다수가 그걸 꺼려하더라. 당시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냉정하게 주장을 펼 수 없었다. 동아리에서는 사람들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니까. 평소 세미나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종의 대안이었다. 가볍게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러다보면 진지한 사유들이 오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안되었다고 본다.


이도훈 : 씨네꼼은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씨네꼼 자체적으로 상영회를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에 어떤 의의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여기서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홍지로 : 내 입장은 03~04년도와는 조금 달라졌다. 자꾸 꼰대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웃음) 2003~04년에는 저런 상영회를 해도 관객이 많이 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상영회 자체에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트뤼포의 영화를 틀었을 때 관객이 많았는데, ‘필름 느와르'라는 주제로 상영회를 하니 관객이 더 많이 오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때는 살벌한 영화를 트는데도 사람이 많이 오더라. 히치콕의 영화를 틀 때는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왔었다. 당시 씨네꼼은 우리가 어렵게 세미나를 하고 나서 그 결과물로 영화를 틀어줬을 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관객 맛을 알았던 거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영화를 틀어주는 우리는 어떤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더라. 이제는 상영회를 해도 한두 명 오는가 하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관객 친화적인 영화를 틀어도 사람들이 잘 안 오는 건 마찬가지더라. 관객 친화적인 영화라면 뭘 틀어줘야 되는 건가?

안경배 : (불쑥) <반지의 제왕> 같은 거!

홍지로 :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기 위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이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타인의 삶>을 묶어서 튼 적이 있다. 그래도 사람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강 산 : 지로 씨가 관객의 맛을 알았다면, 제가 동아리에 왔을 때는 상영회 때 관객이 2~3명오는 수준이었다.


이도훈 : 강산 씨는 정말 침체기 때 들어오셨군요. 역시 앞에서 말한 저주가..(웃음)

홍지로 : 이제는 상영회 자체에 의의를 둘 뿐이지 관객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안경배 :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건 앞에서 ‘학사관리 엄정화’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학사엄정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영화관이 늘어났다는 거다. 90년대 때만해도 영화를 좋아하는 여러 학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문화학교서울’이라는 공간에 모일 필요가 있었다. 그곳에 가야만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 스폰지하우스, 하이퍼텍 나다같은 예술 영화관들이 많다. 오늘날 희귀한 자료를 구해서 상영회를 열고, 한 공간에서 둘러앉아서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진 거다. 영화관이 다양해지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좀 더 생각한다면 상영회를 하는 것보다, 감상실의 기능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상실의 기능에 집중하다 보면 동아리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봉사장학생이 운영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내가 군대를 가고, 전역 후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누구랑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이도훈 :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아리에 대한 애착을 듣고 싶다. 세미나를 끝나고 나서 얻는 성취감이나 상영회 때 가지는 관객과의 교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나로서는 이 공간이 대학 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홍지로 : 타이밍을 잘못 맞추셨네. 난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중인데. 나는 여기서 처음 영화를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어마어마하다. 영화가 무엇인지를 씨네꼼에서 처음 배웠고, 그걸 강화시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이 모임이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결속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졸업한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이 문자가 와서 “이 영화 죽이더라!” 라고 하면 그 영화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는 조용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결속력이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남아 있는 거다. 나는 씨네꼼의 ‘제2의 전성기’를 함께 한 사람이라서 그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이곳에서 영화를 체험하고 배웠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한 20명 오게 되면, 그 중에 나같은 녀석도 한 명쯤 나올 거라고 믿고 있다. 덧붙여서 나는 영화를 보여주는데 주목하고 싶다. 혼자서 보는 것보다 내가 본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씨네꼼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으면 한다. 참고로 이번학기 중에 내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씨네꼼에서 얻는 즐거움은 영화를 공유하는 데 있다.


이도훈 : 보여주는 재미를 위해서라도 세미나를 강화해야한다?

홍지로 : 물론 그렇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세미나와 상영회를 하고 싶다. 저는 아직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웃음)


이도훈 :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건데, 여기는 다른 동아리처럼 위계질서가 있는 곳은 아닌 듯하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 동아리만 해도 알게 모르게 군대식의 군기가 있었는데. 전통 이 있다고 하는 동아리는 대다수 선후배간의 질서가 있는데, 여기는 “저사람” “이사람”하는게 평등하다고 해야 되나.

홍지로 : 나 가입할 때도 사람들 사이가 유연했다. 03학번인 내가 08학번과 반말하고 그런다. 나는 강산이 06학번이란 걸 오늘 알았다.(웃음)
강 산 : 나는 00학번까지 말 놓고 있다.


이도훈 :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안경배 씨의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씨네꼼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배 : 2007년을 보내면서 주변에서 제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씨네꼼 사람들이다. 요즈음 한국 학생사회에서 “나는 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영화 친구들 사이에서는 멋있어 보여도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거다. 사실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수성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다. 자기의 감수성을 드러낼 때 그 감수성을 곧이곧대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씨네꼼은 내게 아주 관대했다. 씨네꼼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사소한 일상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서 낙오자처럼 살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씨네꼼에 들어와서 안락함을 얻었다. 동아리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홍지로 : 여기에 이상한 디테일이 있다. 내가 새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정기 모임에만 나와서는 절대 씨네꼼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이상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웃음) 또, 여기서 하는 일들은 항상 시간을 탕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는 항상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 요즘 같은 효율적인 시대와는 맞지 않는 거지.


이도훈 : 하긴, 요즘은 실용주의 시대다.(웃음)

강 산 : 나야말로 씨네꼼에 들어와서 인생이 낚인 거 같다. (하하) 씨네꼼에 들어와서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 뒤에 감독이나, 영화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전에는 극장에서 영화 보고나면 “재미있다” 한마디 하고 끝나는 정도였다.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뒤에 영화 만든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서 너무 뿌듯하다. 덩달아 나도 영화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요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가, 학교가 학원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프로젝트식으로 사람들이 모였다가 끝나면 헤어지지 않나, 참 이상하다. 반면에 씨네꼼 사람들은 2~3년째 얼굴을 보고 있다. 가장 좋을 때는 여기 사람들과 같은 영화에 열광할 때다. 저마다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있는 영화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와 겹칠 때가 있다. 그럴때 굉장히 기쁘다. “이거 정말 좋다”, "이거 다시 보고 싶다“ 하면서 같은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신기하다. 당연히 밖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아이 취급받을 거다. 나 역시 아웃사이더인가 보다.(웃음)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람들이 되게 바쁘게 산다. 학교에서는 저 학번 일수록 바쁘다고 하던데. 반대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곳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동아리에 자료가 많은 것도 좋고, 서로 영화를 추천해주는 문화가 있어 마음에 든다. 사실, 내게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사는거랑 똑같다고 말한다. 영화가 점점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서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참에 이 정도까지 왔으니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덧붙여서 영화로 씨네꼼이 좋은 이유는 영화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도훈 : 경배 씨는 고시를 본다고 하던데, 그럼 영화는 ?

안경배 : 주변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영화계에도 법조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나름의 타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시에 합격해서 돈을 벌고 영화일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것도 참! 돈을 벌고 나서라는 전제를 두고 한다는 게, 단순히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쪽에서 일을 한다면 제작이나 배급에 관계된 해보고 싶다. 특히 한국영화에서 배급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도훈 : 예전에 서울대 법대 교수 안경환 씨가 쓴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법정 영화와 관계된 리뷰를 모은 책이더라. 법 정신에 기반 해서 영화를 소개하는 건 어떨까?(웃음) 이제 시선을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 극장에서도 영화를 볼 텐데. 요즘 뜨거운 감자인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안경배 : 정치적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반대하기 보다는, 단순히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싫다. 씨네꼼 생활을 하다보면 다운받는 영화 수 보다 더 많은 영화가 여기 자료실에 있어서 굳이 다운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홍지로 : 항상 강조하는 건데, 여기가 괜히 영화 공동체가 아니다.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르다. 지난번 세미나 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논리적인 고찰의 결과가 아니라 체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씨네꼼에는 상영실이 있고, 매주 이 상영실에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안경배 : 씨네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많이 모여서 다 같이 보면 좋고, 스크린이 크면 클수록 더 좋다는 거다.

강 산 : 여기 가입하기 전에는 불법다운로드 받아 디빅스로 영화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동아리에 들어와서 영화를 같이 보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배웠다. 덩달아 영화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저절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지 않게 되더라.


홍지로 : 최근 본부 학생처에서 씨네꼼의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거기서 내세우는 논리는 “이제는 손바닥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라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 난감하더라.

강 산 : 휴~(한숨)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늙었던 것 같다. 본부 학생처에서 한 분이 하는 말이 요즘 같은 퍼스널시대에 왜 영화를 상영실에서 보냐는 거다. 학생처에서 씨네꼼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들은 자보를 써가면서 이 공간을 지켜냈다. 씨네꼼의 논지는 많은 문화를 지켜내는 것 중에 영화 문화를 지키는 것도 하나라는 거였다. 영화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면서, 사실은 우리도 사정도 좀 봐 달라는 식이었고, 씨네꼼 같은 공간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있어야 되지 않겠니?” (웃음) 라는 주장이었다. 학생처랑 충돌하면서 정말, ‘말이 안 통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도훈 : 요즘은 PMP나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보는 시대다. 최근 영화 보는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스크린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그리고 다시 PMP 액정과 같이 더 작은 사이즈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세태가 영화 미학을 망친다는 생각이 든다.

홍지로 : 우리 스스로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한 적은 없다.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정말 영화를 본 걸까? 우리로서는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게 너무 당연하다. 가끔씩 새내기들이 TV 드라마랑 영화랑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 가장 간단하게 대조를 하자면 일단 볼륨을 끄고 영화나 TV 드라마를 볼 수 있느냐? 영화는 볼륨을 끄고서 봐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반면 TV 드라마는 볼륨을 끄면 볼 수가 없다.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굉장한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씨네꼼 상영실에서 보다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면 내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젝트나 와이드 TV는 시네마스코프를 틀면 위아래로 좁아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스탠다드 사이즈가 와이드 스크린이랑 어떻게 다른 건지, 시네마스코프가 왜 시네마스코프인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이도훈 : 최근 영화 저널이 죽어가고 있다는 쓴 소리가 많다. 씨네꼼 사람들도 각자 영화 글을 쓰고, 영화저널을 읽을 텐데. 특별히 좋아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안경배 : 최근 <씨네21>을 보면서 이 잡지도 광고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씨네21>은 전영객잔도 있고, 한국에서 비평이 온전히 실릴 수 있는 잡지라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잡지를 보는 데 광고가 너무 많아서 눈에 거슬리더라. 특별히 좋아하는 글이라면 장병원 편집장의 글을 좋아한다. 예전의 밀양에 관해서 쓴 글을 보고 감명 받은 적이 있다.

강 산 : 특별히 좋아하는 비평가가 있는 건 아닌데, 정한석 기자의 글을 좋아하고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를 좋아한다. 정성일 평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그닥...

안경배 : 정성일 평론가는 되게 빨리 쓰는 것 같다.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은 자기가 쓰면서 비문이 나와도 퇴고를 잘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성일은 예전에 정윤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꼭 거치게 되는 평론가인 것 같다.

홍지로 : 정성일은 자기 글에서 오류가 발생을 해도,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 같다. 예를 들어 <괴물> 리뷰를 보면 분명 영화를 잘 못 본 부분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 본 것에서 조차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왜 잘 못 본 것일까?”하는 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성일이나 어떤 평론가에게도 존경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성일 글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도, 좋은 글도 많다. 그가 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임권택의 그 많은 영화 중 달랑 1편 보고서 그 책을 봤는데, 보면서 울었다.(웃음)


이도훈 : 영화 비평을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실 영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네이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 정보를 얻고 있다.

강 산 : 나 같은 경우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을 읽는 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거나, 같은 영화를 다르게 해석한 시선을 보고 싶을 때, 혹은 영화 외에 다른 정보를 얻고 싶을 때 평론을 읽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도 영화로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태도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론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이도훈 : 홍지로 씨에게 영화 비평은 참고서 같은 것인가?

홍지로 : 아니다. 영화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영화 비평이 필요한 이유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다.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 로빈 우드가 쓴 글을 읽었다. 당시 원서를 번역해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 사람 문장이 번역하기 힘들어서 무진 애를 써가면서 세미나를 준비를 했었다. 내가 번역했던 부분은 로빈 우드가 <이창>에 관해서 쓴 글이었다. 로빈 우드는 아무런 이론도 내세우지 않고,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나는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그가 글에서 지적한 장면을 보지 못했던 거다. 그런 부분이 나를 감동시켰다. 비평의 기능 중 하나가 영화에서 못 본 장면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영화는 한 번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사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흘려보내기 쉬운 예술이라서 오늘날 천대받는 예술이 된 것 같다. 영화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비평은 그 소비흐름을 붙잡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안경배 : 아주 어마어마한 단어로 말하면 우리에게 영화라는 건, ‘소통’이다.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같이 사람들 중 누군가가 글을 쓰고, 그걸 다른 사람이 읽는 거다. 그러면 글을 읽는 사람은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그걸 통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눌 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홍지로 : 빙 둘러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할 수 없는 말들을 글로 쓸 때가 있다. 영화 글은 한편으로는 더 낳은 소통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도훈 : 개별적인 영화 선호도가 궁금하다. 현재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홍지로 : 재미있겠다. 리스트를 뽑는 건가?


이도훈 : 하하, 너무 식상한가?

강 산 : 내가 이 부분에서는 말이 제일 적을 것 같으니, 먼저 말하겠다.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그 중에서도<쓰바키 산주로>나.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 그리고 셈 페킨파의 영화를 좋아한다.

안경배 : 예전에 키노를 뒤적이다가 본 기사 중에 이와 유사한 게 있던데, 단서를 달더라. 내가! 지금! 좋아하는 영화. 최근 씨네 21에서도 10편을 꼽을 때 몇 년도에서 몇 년도 까지 나온 영화에서만 꼽으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정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을 거의 교주처럼 받든 적이 있었고, 버스터 키튼이나 막스 브라더스를 좋아한다. 요즘 관심가지는 영화들 중에는 한국 독립영화도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우리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잘 아는 언어를 쓰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은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런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홍지로 :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장르고 다른 하나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르는 신중하고 엄밀하게 말해야한다. 예를 들어 저널들이 <올드보이>를 스릴러라고 갖다 붙이는 식으로 장르의 개념을 쓰는 걸 정말 싫어한다. 내가 의미하는, 그리고 바라는 장르의 개념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산업적이고, 시대적인 개념이다. 1930-50년대 만들어진 할리우드 웨스턴, 갱스터, 멜로드라마, 뮤지컬, 그리고 1960-70년 홍콩 무협영화들, 일본의 찬바라 영화들, 프랑스 범죄영화, 홍콩의 범죄 영화들을 장르 영화라고 말한다. 장르를 처음 볼 때에는 단순히 보는 즐거움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더라. 그 이유는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장르영화들은 산업적인 토대가 없으면 절대 만들어 질수 없는 작품들이다. 정말!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를 수백 편을 찍어내면서도, 항상! 비슷한 배우들이 나오고, 비슷한 영화를 찍어봐서 너무 익숙해진! 기술자들이 뚝딱뚝딱 거리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르 시스템. 나는 이 장르 시스템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장르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면 한국의 영화광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적고, 영화로 채우지 못한 것을 책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특정 장르에 속하는 영화 몇 편을 보고나서 그 장르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장르 영화들은 보면 볼수록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장르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는 특정 장르가 궁금하면 그에 속하는 영화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장르라는 말은 비슷한 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그 영화들을 묶어서 부르기 위해서 편의상 나온 개념이다. 영화가 먼저 있고 개념이 나중에 따라 온 셈이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 요즈음 나는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을 모아서 보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 나오는 영화가 10편 있는데, 그 10편을 한꺼번에 보는 거다. 두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항상 똑같다. 심지어 단 한 편을 봐도 이 영화들의 스토리나 컨벤션을 꿰뚫을 수 있다. 영화가 매번 똑같기 때문에 1편 보고도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출연하는 영화의 중심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1933부터 1949년까지 만든 10편의 영화를 보면 거기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 10편이 영화 속에서 계속 유지되는 컨벤션과 변화하는 컨벤션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10편의 영화를 묶어서 시간 순서대로 보게 되면 그 영화가 나왔을 당시 관객들이 이 두 배우와 함께 늙어가면서 느꼈을 감흥이 재현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내 스스로 영화 보는 기쁨을 찾기도 한다. 또, 요즘에는 21세기 홍콩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두기봉의 영화를 본 순간 홍콩 영화계는 여전히 내가 말한 장르시스템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더라. 장르영화 말고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건이 별로 없는 영화들, 요즘 영화 리뷰를 보면 줄거리 요약을 하고 스포일러도 말하고 있지 않나. 줄거리를 통해 영화의 맥락을 소개하는데, 과연 그 방법으로 영화의 정서가 온전히 담겨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줄거리로 수렴이 되지 않는 영화, 플롯이 있으면서도 플롯은 핑계일 뿐인 영화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최근에 <와호장룡>을 보았다. 이 영화가 정말 경악스러웠던 것은 정말 뻔한 무협 영화 플롯을 가지고 있다가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척하다가 액션이나 회상구조가 들어가면 영화가 맛이 가버리더라. 등장인물들이 회상하기 시작하면 20분 동안 옛날 일을 생각하는 거다. 20분 동안 회상이 나오다가도 다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말, <와호장룡>은 플롯에 관심이 없는 영화구나! 이 영화의 액션도 무협영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눈요기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제는 씨네꼼 사람들과 스즈키 세이준의 <문신일대>를 봤다. <문신일대>는 신파 야쿠자 멜로드라마 뿐 인데, 그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시네마틱한 박력이 있더라. 이처럼 관습을 깨고, 장르의 틀을 깨부수는 영화들을 보는 체험이 즐겁다. 그래서 장 피에르 멜빌이나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보면 놀랍고, 즐겁다.


이도훈 : 취향을 물었던 이유는, 우리가 관심 가지고 있는 영화들 속에서 동시성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요즘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지금 20대를 실패한 세대인 것처럼 불쌍하게 보는 게 좀 싫다. 나는 요즘 우리 세대를 대변해줄 영화와 동시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에 목말라 있다.

안경배 : 윤성호, 양해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10대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면서 아직 20대는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은하해방전선>을 봤을 때 흥분했었던 이유는 물론 구성이나 편집도 특이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영화 언어가 출현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윤성호를 한국의 고다르라고도 하지 않나. 나는 <은하해방전선>이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봤을 때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궁금하다.


이도훈 : 독립영화에 가능성이 있다면 충무로는 말 그대로 참담하다. 지금 한국영화를 보면 90년 후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자리걸음이다. 한쪽에는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하는 층이 있고, 다른 쪽에는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이 형성하는 지층이 있다. 문제는 전자에만 피가 수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동훈과 나홍진의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약간 씁쓸했던 건, 이 두 사람의 등장이 코리안 뉴웨이브가 만들어놓은 지층 안으로 흡수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 이후로 포스트 뉴웨이브라고 하던 감독층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매끈하게 장르 영화 잘 만드는 사람들의 층만 두터워지고, 반대로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이 만들었던 영화의 지층은 그대로 인 것 같다. 두 층만으로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하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내 스스로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김지운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참, 김지운은 싫어하는 쪽이다.(웃음)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잘 만들고 있으며, 한국영화에서는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인 만큼 새로운 감각과 센스를 가진 감독이 나와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가 감독과 같이 늙어가면서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지로 :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감독들이 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고의 정점에 올랐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에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안경배 : 1970-80년대 소설이나 시가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이나 8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이 당대 정서를 대변해준 것처럼 우리세대를 대변해줄 새로운 언어가 있었으면 한다. 시대와 세대를 엮어줄 매개체를 찾으려고 했을 때 소설이나 시는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우리세대에게는 영상언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영상언어가 새로운 화법으로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약간 종교적인 믿음 같기도 한데,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홍지로 : 영화관이자 세계관의 차이인 것 같은데. 나는 영화가 나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기대를 가져 본 적은 없다. 심지어 나는 우리 세대가 어떤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세대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을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만드는 사람보다 관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편인데, 설령 그 세대를 대변할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관객들이 찾아서 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도훈 : 누벨바그 세대가 가장 부러운 점은 그들의 작품보다는 시대의 분위기다. 고다르, 로메르, 샤브롤, 트뤼포는 각자 자기를 위한, 세대를 위한, 계급을 위한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더 부러운 건, 그들이 만든 영화에 열광했던 친구들이 많았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국영화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하다. 플롯과 내러티브는 있어도 언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최근에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우리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만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울한 세상이 오기 전에라도 통쾌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너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침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회장님 말씀 한 번 듣고 마치기로 하자.

강산 : 앞으로 씨네꼼이 리모델링을 해서 상영실이 두 개 만들어지게 되면 감상실 기능이 더 활발히 돌아갈 것 같다. 거기에 기대를 하고 있다. 씨네꼼의 고유기능인 영화 감상의 기능을 잘 유지하고 살려서, 영화의 매력에 빠질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홍지로 : 우리가 영화를 보여주는 입장인 프로그래머처럼 느껴진다. 다들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 같다.


이도훈 : 이러다가 다들 10년 쯤 후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럼 10년 후를 기대해보겠다.



진행 : 이도훈
참석자 : 홍지로, 안경배, 강 산
정리 : 이도훈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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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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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영화, 그래도 다시 영화!

영화가 뭐 길래,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될까? 동아리 탐방 첫 번째 취재를 위해서 ‘서강영화공동체’를 찾았다. 한 손에는 기대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불안을 쥐어 잡고 터덜터덜 서강대학교 캠퍼스를 올라 동아리방을 열었다. 스타산실의 서강영화공동체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하여 <범죄의 재구성>, <타짜>를 만든 최동훈 감독,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 <꽃미남 연쇄테러 사건>을 만든 이권 감독, 한예종 영상원 교수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소영,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진형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될 법하다. 하지만 선배는 선배일 뿐. 우리는 좀 더 현재성 있는 대화를 나눌 것을 약속했고, 열린 마음으로 속내를 털어 넣기로 했다. 이들의 고민의 골은 상당히 깊었으며 골이 깊은 만큼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산은 높아 보였다. 예상했던 바지만 듣고 있자니 씁쓸한 맛도 나고 입안에 가시가 돋은 것처럼 불편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서강영화공동체는 영화학교가 아닌 영화 동아리. 동아리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들에게 미래를 짊어지라고 채근하기 전에 우리가 영화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되물어보아야 한다. 영화는 교육이 아니라 놀이이며, 영화가 있는 극장이나 동아리방은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서태지 식으로 말하면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골치 아픈 것들을 제쳐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하자.

한 친구는 영화가 뭐 별거냐는 식의 말을 했다. 검은 안경 너머로 말이 미끄러져 나온 듯했고, 안경 너머 그 친구의 눈동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이것은 희망일까? 절망일까? 그러나 그 친구의 말을 주워 담다가 말속에 뼈가 있음을 직감한다. 문학은 쓸모없음 그 자체에 쓸모가 있다는 역설을 말했던 김현 문학평론가의 말을 되새김질 해본다. 서강대친구들의 말을 듣다보니 오늘날처럼 실용주의시대에 영화의 가치란 쓸모없음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란 겨우 7000원의 기회비용에 다름 아닌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불순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영화가 또 다시 일상으로 소환될 된다. 결국 영화를 찾는 사람은 관객이다. 영화가 우리를 유혹한 적은 있어도 자기발로 관객을 찾아온 적은 없지 않은가.

영화는 잊혀 질 만하면 찾아가고 싶은 친구이자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영화가 미워 죽겠다가도 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을 찾고, 친구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서강영화공동체 사람들. 불안을 이야기해도, 희망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명심하자는 친구들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이곳에 담겨있다.


(※ 애초 인터뷰는 이승은 씨와 이명진 씨, 두 사람이 참석한 상태로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1시간 30분을 넘겨가고 있을 즈음 승해건 씨와 나하나 씨가 뒤늦게 참석해 진행되었음을 밝힌다.)



이도훈 : 우선 두 분 모두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 각자 서강영화공동체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나?

이승은(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7학번 / 現 ‘서강영화공동체’ 회장): 연극동아리랑, 영화동아리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서강영화공동체에 들어왔다. 영화라면 이론에 대한 것은 잘 몰라도 보는 것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좋아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예체능계와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교류를 해보고 싶었지만 학교 특성상 그런 과가 없어서 동아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예술 문화 쪽으로 교류할 수 있는 곳이 동아리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허세 부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피상적으로 접하기보다는 좀 더 심도 있게 파고들고 싶었다.

이명진(국어국문학과 04학번 이명진) :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영화 보는 게 좋아서 동아리에 들어왔지만 대학 와서 영화 보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의 학구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나랑 맞았던 것 같다. 2004년도 학기 초반 동아리 모집을 했을 때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모였다. 30명 넘게 들어왔는데, 동아리가 전통적으로 스터디와 세미나에 주력하다 보니 자체적으로 사람들을 걸러내게 되었다. 서강영화공동체에 들어온 과정을 좀 더 말하자면, 개별적으로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본 이유는 신입생들이 너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면접을 하고나면 단순히 영화가 좋아서 감상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스스로 발길을 돌렸고, 후에 한두 번 세미나에 참석해보고 ‘이게 아니다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동아리를 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04학번에서 영화를 제대로 보고자해서 남은 사람이 총 6명이었다. 사실, 우리 동아리가 적극적인 홍보나 자기 PR을 하지 않는다. 좀 자존심 강한 동아리라고 해야 되나(웃음). 신입생 가두 모집을 해도 홍보를 많이 하지는 않고 유명한 선배들 이름 조금 적어놓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신입생 모집에 실패하지 않았을까(웃음). 물론 예전에는 선배들의 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박찬욱!” 한마디면 애들이 우르르 모이곤 했으니.


이도훈 : 승은 씨가 07학번인데, 신입생 모집 때 몇 명 정도 제출서류를 냈고 최종으로 남은 사람은 몇 명인가?

이승은 : 1학기 신입생 모집 당시 지원자는 7명 정도였고, 끝까지 남아서 활동하는 사람은 3명 정도다. 그리고 2학기 때 들어온 친구들이 합류해서 지금 07학번은 6명이다. 현재 집행부가 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07학번 이론스터디를 주도하고 있다.


이도훈 : 최근에는 최동훈 감독을 거론 할 수도 있겠고,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을 만든?? 의 이름을 내걸어도 신입생이 좀 모이지 않을까?

이승은 : 내가 들어올 당시에도 동아리 홍보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게, 영화동아리가 한 개 밖에 없으니 영화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알아서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거다. 올해도 그렇게 생각해 거리제에 주력하지 않고, 홍보전단만 학교 곳곳에 붙였다. 그 결과 4명이 들어왔고, 지금 모두 나가버린 상태다.(웃음) 지금 신입생은 없지만 2학년 중에 한 사람이 새로 가입했다.


이도훈 : 하긴 요즘에는 세미나 중심으로 동아리고 돌아간다고 하면 살이 떨려서 들어오기 쉽지 않겠다. 자기 발로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 것 같고. 홍보를 많이 해야 되지 않을까?

이승은 : 신입생이 적게 들어와 동아리 내에서도 회의적인 분위기가 맴 돌았다. 몇 일전 스터디에 참석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지금 신입생 없는 동아리가 우리뿐만 아니라, 취직이나 주식투자 동아리가 아니면 신입생이 없는 형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분야에 서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되게 싫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솔직히 영화를 배우고자 한다면 학과를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다.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아카데미에 진학해 볼 수도 있는 거다. 같은 동아리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공부한 이야기들이 네이버 한 마디만 치면 나오는 지식들인데, 그렇게 손쉬운 지식들을 왜 굳이 힘들여가며 모여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그래서 동아리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되, 감상 동아리로 분위기를 유화시키거나 제작을 하고 싶은 사람들도 찾아 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이도훈 : 좀 씁쓸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럼 동아리에서 전통적으로 해오던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이명진 :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스터디를 한다. 두 번 중에 한 번은 이론 스터디고, 다른 하나는 분석 스터디다. 분석 스터디는 영화 한 편을 놓고 샷 바이 샷 등을 통해서 말 그대로 영화를 분석한다. 이론 스터디라는 학기별로 나누어서 1학기는 영화문법, 2학기는 비평이론에 관해서 공부한다. 영화 문법은 ‘필름아트’를 교재로 스터디를 진행한다. 2학기 이론 스터디는 비평이론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 기호학, 심리학, 정치학, 페미니즘이론 등을 바탕으로 비평에 관해서 공부한다. 스터디는 주로 2학년이 주도를 하는데, 2학년이라고 기호학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예전에는 굉장히 잘 운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들만 해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었던 반면에 04학번 때부터 이런 스터디를 왜 하는지 하는 회의를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04학번들이 2학년 2학기 때 스터디를 조금 바꾸었다. 2학기 비평스터디를 영화사 스터디로 바꾸었다. 그런데 영화사를 공부하는 것도 세미나를 준비하는 사람은 재미있어 하는데, 준비과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더라. 영화사 세미나도 진행이 잘 안 되서 그 후에 2학기 스터디를 다시 바꾸어서 장르 스터디를 했었다. 우리 나름대로 2학기 심화과정을 여러 가지로 변모하면서 시도를 해보았다.


이도훈 : 올해 동아리 사업계획을 듣고 싶다.

이승은 : 세미나는 기본적으로 진행하고, 원래 한 학기에 한 번씩 축제기간에 맞추어서 감상회를 연다. 작년 이맘때에는 ‘예술과 외설’이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주제가 조금 선정적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올 줄 알았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앞서 말한 감상회란, 영화 상영 후 관객을 대상으로 영화에 대해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외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동아리의 정체성을 알리고 영화로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형성되었다. 올해는 9월 달에 SUFF(SUFF-rise의 준말: SINCHON UNIVERSITY FILM FESTIVAL-rise로 2004년 연세대, 홍대, 이대, 서강대가 연합하여 개최했던 영화제)를 다시 해볼까 생각했었다. 연세대 영화동아리 ‘프로메테우스’ 회장이 고등학교 동창이고 친한 사람이라 함께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거기도 신입생이 적게 들어온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될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2학기 때는 작년처럼 공개스터디를 진행할 것 같다.


이도훈 : 한 주에 이론과 분석을 같이 하는데. 그럼 예를 들어서 한 주에 정신분석학 중에서 라캉의 이론을 소개한다고 치면 분석 세미나는 그 이론에 맞추어서 진행하는 건가?

이명진 : 예전에는 그렇게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발제자의 자유에 맡기고 있다.


이도훈 : 세미나는 집행부라 할 수 있는 07학번 6명이 돌아가면서 담당하는 건가?

이승은 : 올해 같은 경우 분석스터디는 선배들이 하고, 이론스터디를 07학번들이 준비하고 있다.


이도훈 : 명진 씨는 어떤 세미나를 진행하셨나?

이명진 : 학기 초반에 이론스터디를 한 번 한 적 있는데 내가 할 때 다 나가더라.(웃음) 그게, 기호학이었다.


이도훈 : 예전에 강한섭, 정성일, 김동원, 김소영 씨가 모여서 구조주의 세미나를 했다고 하더라.

이명진 : 우리 때만해도 구조주의 비평을 가지고 영화를 분석했는데, 요즘에는 그게 좀 힘들다. 다들 무거워하니까. 그저 옛이야기라고 해야 되나.


이도훈 : 명진 씨는 선배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세미나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이명진 : 선배의 입장이라서 전통을 고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내 기수부터 선배들과 자주 충돌했고, 무언가를 바꿔보려고 했었다. 전통을 지키자는 입장은 아니고 충분히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SUFF란 영화제를 만든 것도 선배들과 싸워가면서 이뤄낸 것이다.


이도훈 : 지금 07학번이 느끼기에 선배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회장 자리에 있는 승은 씨가 고민이 많을 거라는 생각한다.

승은 : 신입생들이 다들 취직 동아리로 가버리고 있다. 동아리가 침체하게 된 이유가 전적으로 그 탓이라는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영화동아리라고 생각해서 들어왔는데 이론만 하더라, 이런 인식을 주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영화 분석’이라는 게 각자 생각을 교류하는 건데, 개인적으로 이런 건 어디서도 얻지 못할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분석 스터디는 긍정적이지만 이론 스터디는 국문과 수업을 들어도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동아리 전통을 고수해서 이론을 깊게 배우기보다는 영화를 몸소 체험했으면 한다. 영화 이론이 생기기전에 이미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대학생 신분으로 순수하게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도훈 : 몸으로 영화를 느끼는 거라면 제작 워크샵을 의미하는 건가?

이승은 : 이론을 배우고 워크샵을 하기보다, 하고 싶은 사람들 있다면 시나리오 써가면서 서로 수정하가면서 방학 때 영화를 찍었으면 한다.


이도훈 : 예전에도 제작 활동이 있었나?

이명진 : 공식 활동은 아니었고,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친구들이 모여서 만들고는 했었다.


이도훈 : 승은 씨는 공식적인 활동으로 제작을 넣고 싶은 건가?

이승은 : 지난겨울에 공식적인 활동으로 넣고 싶었는데, 원래 자기 구미가 당기지 않으면 하지 않는 법이지 않나. 굳이 공식적인 활동으로 넣어 두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할 사람은 할 거다. 창작활동에 관해서는 강요하지 않고도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직접 은박지로 반사판을 만들어가면서까지 모두 힘을 모아서 20분짜리 단편을 만들었다.


이도훈 :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최근 시네필들의 경향이 양분되고 있다. 물론 이는 시대 현상 중 하나로 보이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 골방에서 다운로드를 받아서 보는 영화인들로 양분되고 있다.

이명진 : 최근 동아리 내부에서도 유사한 문제로 온라인상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도훈 : 누가, 어떻게 도화선을 던진 건가?

이명진 : 영화 동아리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고, 다운받아서 영화를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누군가 문제 제기를 했다.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인지라 누가 논쟁을 유발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이승은 : 지적 재산권 이야기도 나왔고,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면서 영화를 다운 받아서 보아도 되는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와는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말을 했다. 지나간 영화는 어떻게 하나, 불법다운 로드로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그 영화가 영화관에 걸린 것도 아니고, 이미 극장에서 내린 지나간 영화인데. 심하게는 영화 관람료를 대신 내줄 거냐는 식의 감정적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도훈 : 최근 P2P 사이트 업체들이 단합하여 영화 다운로드를 유료화하고,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자는 운동을 펴더라. 나는 극장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다운로드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 이해할 생각도 없으며, 단지 개개인의 취향 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관한 인식과 보는 방법론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부터 극장을 사랑한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얻는 체험을 잊을 수가 없어, 계속 발품을 팔지 않을까?

이승은 : 개인적으로도 영화관에서 보는 것보다 다운받아서 보는 게 많지만, 그게 철지난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소유욕이 많아서 좋아하는 영화는 DVD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있다.

이명진 : 나는 다운로드를 해서 보더라도, 유료로 즐기는 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면 비록 적은 돈이지만 돈을 내고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문제는 개인적인 취향도 결합 되는 것 같다.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이런 영화들을 서울에 있는 몇 예술영화관에서 상영 하긴 하지만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찾아가기도 힘이 든다. 사실 그런 면에서 기회비용을 따지자면 다운로드를 받아서 보는 것이 편하긴 하다.


이도훈 : 요즘에 영화를 점유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컴퓨터에 영화를 잔뜩 채워두고도, 외장형 하드에도 영화로 가득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디로 구워놓기도 한다. DVD 콜렉팅을 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지 않나. 마치 책을 책장에 꽂아 두어야 안심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승은 :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한정되어 있지만, 영화 한 편을 소유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도훈 : 화제를 다시 극장으로 돌려보자. 집에서 볼 때랑 극장에서 볼 때의 차이에 대해서.

이명진 : 지극히 사적인 취향인데, 극장에서 다 같이 관람하는 하는 걸 약간 경계하는 편이다. 큰 스크린과 좋은 음향이 있는 극장은 관객의 감정이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극장 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그렇고, 요즘 대형극장에서 사람들의 감각이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장치가 커지면서 개개인이 느끼는 감동마저 조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없다고 본다. 다시 생각하면 ‘그저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는 작품들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많다.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때는 좀 더 객관적으로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 같다. 물론 극장에서 함께 웃고 떠들면서 영화를 보는 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취향이 오락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태극기 휘날리며> 보았을 때다. 그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를 대하는 주변의 분위기가 파시즘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더 무서운 건 그 당시 나도 그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거다.

이승은 : 영화관에 가면 화질과 사운드가 보장이 되니까. 그래서 극장에 가는 게 좋은 것 같다. 최근에 본 <스피드 레이서>같은 영화는 집에서 보면 영화관에서 느꼈던 것만큼의 감상 경험을 받지 못할 것 같다. <스피드 레이서>의 장점인 컬러풀한 화면과 소리를 컴퓨터나 조악한 환경에서 볼 경우에 원본의 장점을 온전히 구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감독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극장이라고 본다.


이도훈 : 승은 씨는 극장에 걸리는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주로 보는 편인가?

이승은 : 주로 블록버스터. 조금 특이한 경우로는 한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여러 번 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로크백 마운틴>은 극장에서 본 영화를 7번이나 봤다. 내러티브보다 장면 장면에 감동받았는데, 집에서 DVD로 본다면 절대 극장에서 느꼈던 감동을 못 받겠다 싶었다. <애프터 미드나잇>도 너무 좋아서 극장에서 6번을 봤다. 최근에는 <추격자>를 3번 보았다.


이도훈 : 영화를 많이 보고나면 글도 쓰는가? 요즘 네이버나 다음을 통해서 블로거들이 쓴 영화 이야기나, 누리꾼들이 영화를 가볍게 대하는 태도를 많이 볼 수 있다.

이승은 : 그런 사람들을 시답지 않게 생각하면서도(웃음) 사실은 나도 글을 쓴다. 그런데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글을 묵혀두는 편이다.


이도훈 : 동아리 들어와서 영화보기가 바뀐 점이 있다면?

이명진 : (머뭇거리다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데, 영화 보기가 싫어졌다.(웃음) 여기서는 어떤 교육을 받는 것처럼 특정한 스타일로 영화 읽기를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꼭 그렇게만 봐야 되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서 구조주의 시각이나 정신분석학에 입각해서 영화를 쪼개 봤을 때, 내가 느낀 감동의 일부가 증발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처음에 동아리 생활하면서 회의도 많이 느꼈다. 한 편의 영화를 봐도 그냥 못 보겠더라. 영화에 대해 무언가 분석 해야만 할 것 같고. 동아리에서 배운 감상법이 정도 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도훈 : 지금은 동아리 생활을 거의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지금은 어떤가?

이명진 : 당시에는 이론에 입각해서 영화를 분석하고 감상하는 게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공부도 하고, 동아리 외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분석에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감상에서 오는 강박관념이 사라지고 영화 보는 게 조금 자유로워졌다.


이도훈 : 반대로, 승은 씨는 지금 이론 공부를 하는 과정인데, 동아리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환상과 실제로 동아리 생활하면서 느끼는 괴리감 같은 게 있나?

이승은 : 원래 고등학교 때 ‘일탈학생’이었다.(웃음) 지금보다 다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가 영화를 보았다. 거기서 영화 보고 즐기는 게 내 적성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영화 속 화면이 어땠고, 이 화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노트에 긁적거렸다. 동아리 들어와서야 내가 했던 방법이 심화된 게 영화 분석이라는 걸 알게 된 거다. 내게는 동아리 활동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이명진 :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스타일이다.(웃음) 동아리에 남은 사람들은 여기에 들어와서 영화 분석하는 방법을 배운 걸 좋아한다. 자신이 영화를 보고 느꼈던 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영화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건지 알게 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도훈: 세미나를 하면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거에도 도움이 되겠다.

이승은 : 이건 좀 악영향인가?(갸우뚱) 부정적인 것 같진 않은데, 뭔가를 보고 나면 글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예전에는 영화보기가 감상으로만 그쳤는데, 이제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의미를 찾고 분석한 후에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도훈 : 개별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학회에서 학회지를 내듯이 자료집이나 비평집을 내볼 생각은 없나?

이승은 : 지금은 스터디 자료만 쌓아두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작업을 했었다고는 하는 데 지금은 그런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명진 : 요즘 다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해보자는 경향이 약한 것 같다. 다들 자기 세계가 강해서 공부도 따로 하는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개인주의가 대세다. 그런데 우리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닌가?(일동 웃음)


이도훈 : 선배들의 업적이 많지 않나. 그 부분이 긍정적인인 측면도 있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을 거라고 본다. 서강대 영화동아리하면 ‘스타 감독의 산실’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이승은 : 장점은 ‘간지’가 난다는 거.(웃음) 단점이라면 영화계 나간 선배들이 ‘서강대 영화공동체’출신이라고 하면 꺼려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 걸 생각할 때마다 쟁쟁한 선배들에게 연락하기도 좀 꺼려지더라. 학교도 개인주의가 심하고 유대감도 많지 않다. 사실 겉은 화려한데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거.

이명진 : 쟁쟁한 선배들이 많아서 우리가 전통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훌륭한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건데, 우리가 쉽게 바꾸어 놓아도 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우리 스스로 보수적인 경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선배들에 대한 열등감도 조금 작용하는 것 같다. 반면 좋은 점은 선배들 중에서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경우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내가 1학년 때만해도 최동훈 감독이 학교로 찾아와서 자장면 사주고 간 적이 있다. 박진형 선배도 계속 도와주고 있고, 선배들 바빠서 못 찾아주는 경우도 있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해주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다. 특히 영화계에 있는 선배들일 경우에는 현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이도훈 : 조금 전에 나왔던 서프(SUFF)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2004년도에 신촌 일대에 있는 4개 대학이 모여서 만든 영화제라고만 알고 있다.

이명진 : 서강대 영화공동체에서 먼저 의견을 내고 추진했었다. 2004년도 당시 동아리 분위기도 딱딱하고 엄해서, 우리들끼리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신촌 일대 영화동아리들이 모여서 영화제를 해보자고 일을 추진한 거다. 우리 스스로는 기념비적인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당시 여름방학 때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한 학기 내내 준비를 했었다.


이도훈 : 어떤 영화를 상영했었나?

이명진 : 충무로에 있는 영화감독들이 대학생 때 만들었던 단편영화를 메인으로 상영하고 각 학교 동아리에서 자체 제작했던 영화들을 함께 상영했었다. 감독들을 초청해서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참석했던 감독으로는 봉준호, 장준환, 이권 감독 등이 있었다. 극장은 이화여대 포스코관 이었는데, 관객들도 제법 있었다. 특히 마지막 날 봉준호 감독 영화를 상영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


이도훈 : 왜 일회성 이벤트로 그친 걸까?

이명진 : 다시 추진을 했었지만, 각 대학마다 서로 의견차이가 있어서 계속 엎어졌던 것 같다.


이도훈 : 다른 대학과 사업을 추진 할 기회가 있다면, 연대할 생각이 있나?

이승은 : 연락만 온다면 시도를 해보고 싶다. 다 같이 살아남아야 되는 시기니까.

이명진 : 서로 성향이 다른 게 문제 될 수도 있다. 서프가 끝난 후에도 당시 의견차이나 취향문제 때문에 거부감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이도훈 : 세미나에서 선택하는 영화는 주로 어떤 영화들인가?

이명진 : 각자 취향에 따라 다르다. 최근에는 슬래셔 무비를 한 적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도훈 : 세미나를 하기 전에 영화를 같이 보는가?

이명진 : 영화는 먼저 보고 온다. 스터디만 진행해도 2~3시간을 족히 넘기 때문이다.


이도훈 : 동아리유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세미나만을 고수하는 건 힘들지 않은가?

이승은 : 세미나 전통이 오래 전부터 있던 거라서 유지가 되고 있지만, 그 때 만큼 깊이 있는 세미나라고 하긴 힘들다. 작년에 그냥 감상동아리로 전향하자고 했을 때 나는 찬성하는 쪽이었다. 분석이 아니라 이론스터디를 하면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도훈 : 세미나를 하고 나면 묘한 성취감을 얻지 않나?

이승은 : 발제할 때는 그걸 느낀다. 내가 몰랐던 부분을 습득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재미가 있는 반면에 그저 앉아서 듣기만 할 때는 별 다른 감흥이 없을 때도 있다. 스터디 할 때 앉아서 자리만 채우고 가도 다른 사람은 모르지 않나.

승해건: (불쑥) 그 부분이 ‘서강영화공동체’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04학번들이 지금까지 주욱 해오고 있는 고민사항기도 하다. 스터디의 존립 이유를 고민하는 환경자체가, 04학번이 세미나를 주도할 때랑 지금이랑 차이가 있다. 우리 때는 전 세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선배들이 있어서 후배들이 회의에 잠겨도 선배들이 앞에서 확실히 길을 잡아주고 끌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배들인 우리 학번부터 회의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 후배들을 이끌어주어야 하는지 갈팡질팡한다. 지금의 스터디가 실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발제자나 듣는 사람 모두 ‘이걸 왜하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전체 구조를 확 바꾸자 하는 소리도 나왔었다. 확실한건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닌데, 고민은 한결 같으나 정답은 찾기 힘들다는 거다.


이도훈 : 동아리를 탈퇴하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애정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애정인가? 영화에 대한 애정인가, 동아리에 대한 애착인가?

승해건 : 뭔가를 얻고 싶어서 동아리에 들어온 거니까. 물론 단지 특정한 목적만 있는 게 아니고 동아리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 소속감에 대한 기대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 대학생활에서 내 정체성을 찾는 곳이 동아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서 얻을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공간과, 이곳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하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다가 도망가지 말고 다함께 문제의식을 가지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봤으면 좋겠다.

이승은 : 영화에 대한 열정도 있지만, 애초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학교나 학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영화가 좋아서 들어온 사람도 지금은 사람에 메여있는 게 크다고 본다.

승해건 : 나도 영화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남은 경우다. 사실 나는 영화동아리에 들 때부터 영화에 대한 애착으로 출발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나 취향은 개인적으로 있을 수 있어도 동아리 가입 당시에는 여기서 다른 무언가를 얻어가고 싶었다. 지금은 그런 부분에서 한계를 절감한다. 여기서 하는 스터디내용은 다른 외부강좌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동아리에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영화 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


이도훈 :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사회에서는 오프라인 영화모임을 가지기 힘들 거다.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영화에 대한 교류를 하고 있다. 대학 동아리의 장점은 매주 약속하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다함께 모여서 영화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데.

승해건 : 지금까지 해온 스터디의 대부분이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를 빌려와서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제자가 이야기를 하고 나머지는 청강하는 수준이었는데, 다 같이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주입식 교육에 가까웠다. 그래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런 관행을 바꿔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도훈 : 현재로서는 주입식으로 영화이론이나 분석을 강제하기 보다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살려주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이명진 : 과거에는 영화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한 상태에서 이 스터디가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따로따로 영화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던데. 도서관에서 자신이 보던 책을 누가 빌려갔는지 책 뒤에 있는 도서카드를 보고 서로 찾았다고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내공을 쌓고,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이 모인 게 아니다.
나하나 : 오늘날 동아리가 자발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형식만 남은 상태인 것 같다.


이도훈 : 그래도 영화가 좋아서 다들 동아리에 들어온 것 아닌가?

나하나 : 초반에는 동아리가 제작 쪽에는 거리가 멀었고 스터디를 하는 분위기였다. 특히나 동아리를 꾸려 나가는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 같은 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예전부터 다소 무게감 있는 영화스터디와 이론적 깊이를 자랑해왔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선배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발견하고는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전통을 고수하자는 편인데, 안타까운 건 시대가 시대인 만큼 변해야만 하는 길목에 서 있다는 거다. 지키면서 변화하는 게 힘든 것 같다.

승해건 : 군 전역 후 복학할 당시만 해도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동아리에 내부에서 동아리 자체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진 것 같고, 때문에 전통을 지키자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오늘날 사람들 성격이 딱딱한 스터디보다는 재미를 더 추구하는 것 같더라.

이명진 : 그 말대로라면 동아리 정체성을 바꿔야하는데...
이승은 : 박진형 선배(현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예로 들자면, 동아리 활동하면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틀기 위해서 직접 번역을 하고, 자막을 입혀가면서 상영회를 열었다고 하더라. 오늘 날에는 그 정도로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 한편으론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선배들을 따를 경우 전통은 남아도 사람은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도훈 : 기나긴 인터뷰를 버티느라 힘드셨을 것 같다.(일동 웃음) 그럼 마지막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

이승은 : 동아리가 유지 될 수 있으려면 오늘날에는 영화에 집중하는 것만큼 여기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집중해애 한다고 생각한다. 동아리라는 곳이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이 있고 동아리가 있고, 또 영화가 있지 않겠나. 그리고 오늘날에는 어느 영화동아리든 영화에 대해서 원론적인 접근을 하기는 여러 가지 여건 상 힘든 것 같다. 전통에 얽매인 상태에서라면 예전과 같은 열정을 기대하기란 힘든 것 같다.

나하나 : 영화에 대해서 의미 부여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영화를 싫어하다가도, 영화는 우리에게 하나의 꿈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나. 종종 우리는 일상에 억눌려 있을 때 자연스레 영화를 찾는 것 같다. 서강 영화공동체에도 크게 의미를 부여할게 아니라고 본다. 영화는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영화를 보든, 여기서 배운 시각에 젖어서 영화를 보든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명진 : 동아리에서 세미나로 얻는 것들이 다른 수업에서도 들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자발적으로 배우고 동아리에서 얻는 것이 나의 인문학적 토대를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또, 영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영화는 나에게 애증의 존재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해왔는데, 여기 들어와 잠시 싫어진 적도 있었다. 그래도 영화는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애증의 존재.

승해건 : '어떻게 하면 동아리가 발전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자주 한다. 모두가 재미있어 할 수 있는 곳으로 변했으면 한다. 오고 싶은 동아리방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하기 싫으면서도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동아리가 유지 발전되기 위해서는 인식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것도 다들 동아리에 대한 애착이 있으니까 가능할거라고 본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 같은 거다. 쉽게 다가가지는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늘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멀리서 바라만 보는 대상. 그게 영화다. 내게 영화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그러나 친해지고 싶은 존재다.



진행 : 이도훈
참석자 : 서강영화공동체 친구들-이승은, 이명진, 승해건, 나하나
정리 : 이도훈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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