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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남과 동시에 영화제를 찾은 많은 사람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지난 3일부터 이어지던 기나긴 휴일에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을 찾은 부모들, 그리고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봄을 만끽하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주말을 이용해 영화제에 다녀간 수많은 게스트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출근, 혹은 등교를 위해 전주를 비운다. 전주영화제의 열기가 절정에 이르렀고, 일정의 반을 훌쩍 넘기는 중간 지점에 위치했던 지난 주말은 그야말로 북적거리는 두터운 열기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다소 뜸해진 전주는 여전히 영화제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주를 시작으로 매진에 매진 행렬을 거듭하던 상영관 사정은 꿀 같은 휴일이 끝나며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길거리는 다시 노란색 옷을 맞춰입은 지프지기들로 뒤덮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일찍 상영관을 기웃거리는 영화광들의 모습은 어제도 오늘도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로 뒤섞여진 주말에는 볼 수 없었던 반가운 얼굴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영화가 재밌었더라, 이건 끝내주는 걸작이다, 이 영화는 전작보다 못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가 보았던 영화에 대한 간평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득 전주가 슬슬 아쉬워진다. 거리에서 안면이 있는 분들을 만나 커피라도 나눠마시며 막 보고 나온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서울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나 이런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가슴이 뛴다. 매년 느낄 수 있는 열기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열기는 아니다. 평소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사람들 옆에 가만히 앉아서 한 두 마디를 건네보기도 한다. 그들과 이야기 나누고 영화를 보는 하루는 24시간만으로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지난 4월 제 9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영작이 발표되기 한참 전, 이미 굵직한 줄기는 홈페이지의 메인에 올려져 있었다. 해마다 전주영화제가 열리는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의례적으로 회고전과 특별전의 감독이 누구인지부터 펼쳐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으므로, 거의 아무 정보도 열려있지 않은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를 열심히 새로고침해가며 눌러댔던 나날이 얼마나 되었던지. 그러던 와중에 벨라 타르의 이름을 읽은 것이다.

벨라 타르는, 거스 반 산트가 오마주를 바친 감독으로 이미 동시대의 수많은 감독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첫 번째 선을 보일 때 벨라 타르의 <사탄 탱고>를 상영했었고, 당시 심야상영이었던 영화에 대한 호평은 끊이지 않았다. 물론 2000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내가 <사탄 탱고>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전주의 소식을 뒤로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러닝타임 7시간'을 자랑하는 <사탄 탱고>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잠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줍잖게 만났던 <사탄 탱고>는 결과적으로 내게 갈증만 더해준 꼴이 되었다. 그때 나는 <사탄 탱고>를 스크린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못을 깊게 박았다.

때문에 이번 전주영화제에 벨라 타르의 주요 작품들을 포함한 거대한 상영에 <사탄 탱고>가 들어있었으니,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 앞섰다. <사탄 탱고>의 상영 시간동안 서 너 개의 영화를 챙겨볼 수 있었겠지만, <사탄 탱고>가 상영되는 단 하루, 5월 6일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 영화를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난생 처음 접하는 벨라 타르의 다섯 편의 영화에 그토록 시끌벅적했던 어린이날이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 5일 저녁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를 관람하고 상영 후 조촐한 술자리에 참석하고 나서인 화요일 아침, 멍멍한 머리를 가라앉히고 '결전의 날'이 왔음을 실감했다.

<사탄 탱고>의 상영시간은 약 7시간 정도로, 영화 상영 도중 두 번의 휴식시간이 설정되어 있었다. <사탄 탱고>의 상영을 몇 분 앞둔 전주 CGV 앞 휴식공간에는 벌써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사탄 탱고> 하나만을 보기 위하여 서울에서 전주까지 달려온 영화의 동지들도 적지 않았다.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영화 상영 시간을 기다렸다. 긴 상영시간에 대비해 눈을 부릅뜨며 쓴 커피를 홀짝이는 친구도 있었다. 혹 영화를 보다가 졸지는 않을지, 뛰쳐나가고 싶지는 않을지에 대한 농담을 주고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상영관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소망은 딱 하나, <사탄 탱고>의 상영에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벨라 타르는 흑백을 사랑해 언제나 영화에 색을 입히는 것을 꺼리는 감독이다. 벨라 타르의 이런 개인적인 기호는 <사탄 탱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은 색과 흰 색의 대비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내야만 하는 신비스러운 흑백필름의 미학을 감독은 꿰뚫고 있었다. <사탄 탱고>는 분명히 원작이 존재하는 영화였으나, 원작만큼의 내러티브를 기대하기는 힘든 작품이었다. 여러 가지의 챕터로 구성되어 등장인물들의 순환을 바꿔가는 영화에서 주된 내용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인과응보, 혹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본적인 틀 만을 바라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너무나도 간단한 이야기다. 영화는 식상한 표현을 앞세워 말하자면, '인간의 인생은 복잡하다'라는 식의 화두를 던져놓고 꼬인 상태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나의 현상이 던져지고, 그것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장조에서 단조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마치 오래된 헛간의 거미줄이 솎아내기 힘들 정도로 얽혀있듯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창조해낸다. 그들은 '주점'이라는 공간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천천히 리듬 속으로 몸을 던진다. 탱고의 12스텝을 토대로 6스텝은 앞으로, 6스텝은 뒤로 발걸음을 옮기며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극한의 공간을 노래한다. 말하자면 '사탄 탱고'는 잿빛 아코디언과 검은 색 피아노가 노래하는 세상의 끝, 인류의 바닥을 달리는 변주곡이다.

상영 시간이 긴 영화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소문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성만으로 알려진 영화들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러닝 타임이 극에 달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긴 시간 만큼 허점이 보인다는 평을 얻고 있지만, <사탄 탱고>는 이런 영화들과 별개다. 두 번의 휴식시간, 그리고 한정적인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비참한 아름다움은 단 한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을 선사한다. <사탄 탱고>의 엔딩 직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에 동참하며, 같은 마음으로 <사탄 탱고>를 기다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확신은 '영화 완주'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었다. 오후 두 시에 시작한 영화는 휴식시간과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포함해 11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막을 내렸다. 하루 종일 상영관에 틀어박혀 벨라 타르 특유의 어두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대하는 바깥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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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VD를 구하는 것조차도 힘든 벨라 타르의 작품들. 이제 다시 <사탄탱고>를 대형 스크린으로 접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까요?

    2008.05.13 11:37

신태균



 


예전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였는지 소설 비슷한 글을 아주 어설프게 써서 올렸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 문학사이트에 연재를 해보려다 사람들 반응이 없어서 딸랑 1회 연재에 그치고 만 불발탄인지라 확실한 장르를 구분 짓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형편없는 글이었더랬다. 분명 머리 속에는 기가 막힌 로맨스 소설 한번 써내서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보겠다는 야심 찬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문자의 형태로 배출되어 나오니 영 허전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걸작을 마구 양산해내는 예술가가 어디 있을까? 제 아무리 위대한 천재에 대가라 할지라도 때로는 습작을 찍어내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게 완성의 단계에 한발자국씩 다가서다가 성공작도 탄생하고 걸작도 만들어지게 되는 것일 터. 우리가 보아온 예술과 문화의 위대한 유산들은 결국 무수한 습작과 실패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것 아니겠는가? 만약에 내가 글쟁이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과거에 썼던 저 소설 비슷한 요상한 글도 완성을 향한 무수한 시도의 기록 중 하나로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될지 모를 일이다.


누구나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바로 ‘지금’이 있어야 미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온 과거 없이는 현재도 존재할 수 없다. 몇 백만 명의 관객동원, 수십,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해외 수출 및 판권계약들, 거기에 이름난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경력까지. 많은 이들이 현재, 혹은 비교적 근래에 거둬온 한국영화의 성과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무심하다. 한국 영화는 너무도 빨리 과거의 유산들을 잃어버렸다. 오래된 고전들 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중견감독의 데뷔작이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식으로 찾기 어렵게 된 영화 중에 박찬욱 감독의 초기작 두 편이 있다. 물론 그의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린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이지만 오직 성공작만이 예술가의 이력에 대해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이후 TV 광고에 나와 ‘나는 나를 뛰어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그 감독의 다소 서툴렀던 초창기를 목도한다는 재미도 그렇거니와 대한민국 영화광 세대의 대변자가 어떻게 감독으로 단련되어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써도 저 두 편의 영화는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우리의 첫사랑이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여러모로 민망한 습작 수준에 그치고 만 나의 유일무이한 소설을 연상시키는 영화이다. 내 글이 그러했듯 박찬욱의 데뷔작도 머리 속의 설계도는 옹골차나 그것을 매만지는 손길은 아직 덜 여물어 있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에서처럼 화면을 꽉 채워 나가는 박찬욱의 스타일은 아직 태동되기 전이었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처럼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말 그대로, 멋진 영화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은 넘쳐 났으나 연출력은 영 서툴렀다. 마음만 앞설 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첫사랑 같은 그런 영화였다고나 할까? 송승환을 제외한 배우들의 연기는 영 심심하기 그지 없었으며 플롯은 갈팡질팡 하는 데다 영상은 애매모호한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여기에 배우 따로, 성우 따로의 후시 녹음이 주는 그 어처구니 없는 느낌이라니.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 이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본다는 것은 거물이 되어버린 스타 감독이 만들어낸 품절 직전의 데뷔작을 본다는 감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당시 인기 상종가였던 가수의 인기에 영합한 이승철 뮤직 드라마라 불러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악한 영화이긴 해도 [달은 해가 꾸는 꿈]에는 데뷔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울컥하는 감정이 스며있다. 아직은 미미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정체성을 보완해 주는 것은 이때부터 남다른 기미를 보였던 그만의 간담 서늘한 유머감각과 필름 곳곳에 스며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피투성이가 된 무훈을 구하기 위해 형 하영이 애타게 병원을 찾는 순간에 뜬금 없이 가축병원을 소개해주는 장면은 박찬욱이란 감독의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볼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데뷔작에서 느와르 풍의 B급 장르 영화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박찬욱은 특유의 비장미까지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가축병원의 침상에 누워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무훈의 입에서 "인생은 정말 잔인해, 평생 개처럼 살아온 나를 이런 데서 죽게 하다니"라는 대사를 흘리게 함으로써 "개처럼 살기 보단 영웅처럼 죽고 싶다"라는 카피로 대변되던 홍콩 느와르 적 비장미에 카운터 펀치를 꽂아버리는 것이다. 거장들이 대를 이어 작성한 컨벤션에는 경의를, 그러나 그들이 묘사한 역사에는 냉소를 (박찬욱 저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 드롬" 128페이지에서 인용) 보내고자 하는 신예다운 패기라고나 할까. 물론 [달은 해가 꾸는 꿈]은 날카로운 기억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상처뿐인 첫사랑에 불과한 작품이다. 기록적인 흥행참패와 비평적으로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데뷔작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작품은 평생 단 한번뿐일지도 모를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첫사랑, 첫경험이기도 하다. 머리 속을 떠돌기만 하다 손끝을 떠나버린 이미지로써의 영화에 대한 무한한 연정. 그 잡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애틋함이 무훈과 하영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한 은주라는 인물로 육화 되어 표현된다. 무훈의 장례식 이후 떠나버린 은주가 대중의 스타가 되었음이 하영의 나레이션을 통해 설명되는데 남몰래 그녀를 사랑했던 하영은 그저 은주의 이미지만 뒤쫓을 따름이다.

어느 어두운 극장 안. 무훈이 그러했듯 하영도 결코 오지 않을 여자를 기다린다. 스크린에 환영처럼 펼쳐지는 여인의 모습. 살포시 눈물 짓는 그녀. 끊임없이 복제를 거듭하는 허구의 이미지.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남몰래 바라보던 관음적 행위의 완성. 은근한 곁눈질과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던 여인은 마침내 스크린 위의 천사가 되어 사진작가 하영 앞에 재림하게 되는 것이다. 하영은 비로서 바라보기만 할 뿐 만질 수는 없었던 여자 은주를 껴안는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가 투사되는 스크린에 손을 대고 그녀를 느끼기 위해 애쓴다. 이때 영사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하영의 얼굴 위로 나름대로 고뇌에 차서 데뷔작을 완성했을 신출내기 입봉 감독 박찬욱의 얼굴이 겹쳐진다. 당시의 그에게 있어 영화란 깨어지기 마련인 첫사랑, 결코 만질 수는 없었던 여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 비한다면야 민망하기 그지 없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여과되지 않은 채로 터져 나오는 서투른 감정들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달은 해가 꾸는 꿈]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던 신출내기가 쏘아 보낸 수취불명의 연애 편지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진 못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처절했던 외침이었다.


PLAY IT AGAIN CHAN WOOK – [삼인조]

[달은 해가 꾸는 꿈]이 이제 막 데뷔작을 찍은 영화광 세대의 대변자로서 그 특유의 감수성을 보여준다면 [삼인조]는 영화라는 매체와 그 속에서 섭취한 자양분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을 투시해 나가려는 보다 적극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JSA]를 만들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 스타일을 버렸다고 했던 말한 바 있다. 그 말처럼 [삼인조]는 훗날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게 될 그의 취향과 영화적 자양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B급 무비 스타일, 주류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 들이 이 사회에 반기를 들고 벌이는 강탈과 일탈의 도주를 테마로 한 갱스터의 외피를 두른 것을 뜻한다. 외형적 형태뿐 아니라 캐릭터들 또한 장르의 스테레오 타입을 대변하는 인물들로, 총기류를 탈취해 달아난 하드보일드 똘마니, 김민종은 전형적인 사회부적응 갱스터이고 가정에서 무시당하고 경제적 능력 조차 없는 이경영의 나른한 표정과 미지근한 태도는 (화끈한 김민종과 대비되어 더욱 수동적으로 보이는) 어딘가 필름 느와르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근친상간으로 나은 아이에 대한 모성을 보인 다는 점에서 [차이나 타운]의 페이 더너웨이를 연상시키는 정선경은 역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두 남자를 이용하는 필름 느와르의 팜므파탈이다.

여기에 [고래사냥], [세상 밖으로] 등에서 등장했던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팀을 이루는 설정, 결정적인 순간에 흘러나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흘러간 우리 가요, 영화광적인 감수성이 엿보이는 인용과 전복의 오마쥬들. 결국 [삼인조]는 영화광의 애정으로 1990년대 후반에 재구성한 장르 탐방기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 비견될 혁명성과 파격성으로 치닫지는 못했지만 분명 [삼인조]에는 이야기꾼으로서 그리고 한국의 영화광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박찬욱의 특색들이 잘 드러나 있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B급 무비적인 분위기에 적합한 매력을 발산한 배우들 또한 인상적이다. 김민종은 단순 무식하지만 때로는 가련하기도 한 문이라는 캐릭터를 맡아 배우인생 최고의 호연을 보여주며 이경영의 지치고 허무적인 연기와 정선경의 당찬 모습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또 이 영화는 외형적인 면뿐 아니라 시대상을 드러내는 거울로써의 기능 또한 충실하다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영화가 IMF 직전 위기에 처한 일종의 유사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 세 인물은 하나같이 소외 당한 인물들이다.

안은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아내에게도 무시당하며 마리아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문은 그나마 콩가루 같은 가정도 없는 고아이다.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고 서서히 붕괴되는 시점에서 바로 그 붕괴에 의한 상처를 간직한 인물들이 다른 유대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해피 엔딩을 예감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이러한 기대감마저 깡그리 부숴놓음으로써 가속되는 시대의 불안감을 표출해내고 있다. 애초에 문의 억지로 인해 이루어진 유사가족, 그리고 그 내부에서조차 불신이 횡행하니 오래 존속될 리 만무하다. 결국 안은 유사가족이 아닌 혈연으로 연결된 부권의 행사를 위해 떠나가고 남겨진 인물들은 붕괴 속의 붕괴, 소외 속의 소외라는 이중고를 맞는다. 신앙과 믿음의 상징인 성당이 바로 이 배반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은 이래서 의미심장하다. 이에 반해 배반 혹은 비극의 장소로 활용되곤 했던 창고/폐공장은 남은 이들이 재결속을 다진 다는 의미에서 차라리 행복하다. 그 상태로 남아있는 자들의 유대만으로 결속을 이어갈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애초에 이름부터(문, 안, 마리아) 정체불명이었던 이들이니만큼 알 수 없는 운명의 풍랑에 내던져 지는 것 또한 숙명일터. 아이큐 80에 걸맞지 않는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문은 그가 여태껏 살아온 땅 위에 발 디디지도 못한 채 헬기 속에서 창공을 떠돌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두 남자를 이용해 아이를 되찾고 살아보려 했던 마리아는 다시 아이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하게 된다.

그럼 이 유사가족을 붕괴시키고 부성애를 따라나선 안은 어떠한가? 우발적으로 결성되긴 했으되 나름의 신뢰가 있었던 유사가족을 붕괴시킨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살해함으로써 친 가족마저 붕괴시킨다. 비록 자살을 기도하려는 순간에 그의 딸이 살아나긴 하지만 목에 줄을 건채 흔들리는 걸상에 몸을 의지한 위태로운 모습의 그가 딸을 제대로 지켜나가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안의 위태위태한 모습은 분명 [석양의 무법자]에서 목에 줄이 걸린 채 블론디를 외쳐 부르는 투코의 모습에서 따온 것일 터. 허나 그 용도는 판이하게 다르다. 구해줄 이는 없고 까딱 잘못하면 목에 건 줄에 의해 질식사할지도 모르는 이 위기의 순간이 1990년대를 살아가는 아웃사이더의 자화상, 더 나아가 IMF로 붕괴되어버릴 빈민층 가정의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 그러나 영화는 시대와 결부되어 해석되기 마련이고 박찬욱 감독이 추종하던 B급 영화는 단순히 대중의 통속적 취향만 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향유하던 이들의 정서마저 대변하는 것이라 할 때 [삼인조]는 싸구려 문화들을 통해 싸구려 인생의 비애를 이야기한 훌륭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박찬욱 버전의 [비열한 거리]?


용만큼 개천도 중요하다.

누가 뭐라 했든 어차피 선택은 보는 이들의 몫이다. 특정 예술가의 전작을 꿰어야 할 의무 따윈 어느 누구에게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의무처럼 되어서도 곤란하다. 어차피 예술은 취향과 선택이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한민국의 문화 예술적 토양이 누군가의 발전적인 변화를 지켜보는 소소한 재미마저 앗아갈 만큼 척박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슈퍼 히어로의 기원만 되짚어 볼 일이 아니다. 유명 인물의 생가터만 보존 할 일도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왜 정작 용을 잉태시킨 개천은 무작정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것이 훗날을 위해 닦여진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너무도 쉽게 저버리고 만다. 창대한 나중만큼 미약한 시작 또한 중요하다. [달은 해가 꾸는 꿈]과 [삼인조], 이 두 편의 영화는 분명 미약한 시작에 불과했던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지 않아 커다란 족적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혹은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우리는 저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영화들이 영화감독 박찬욱의 시작과 영화광 세대의 행동개시를 알리는 요람과도 같은 작품이었다고 말이다.


PS : 마치 '델마와 루이스'의 하비 키이텔처럼 이들 삼인조를 뒤쫓는 형사로 등장하는 장용, 그리고 불륜을 저지르는 안의 아내 역의 김부선 외에도 [삼인조]에는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이 깜짝 등장한다. 안이 색스폰을 팔러 간 낙원상가 악기상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류승완 감독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함께 등장한 그의 지기 박성빈이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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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sdrain.tistory.com BlogIcon Samuel's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에 대한 지식이 너무 해박하신거 같아요. 높으신 내공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두 영화를 보았음에도 별 느낌없는 1인...

    2008.04.29 02: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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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거장 크쥐스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영화를 ‘예술’이기보다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매일 새벽, 스탭들을 데리고 촬영장에 나가야 하는 노고가 없다면 영화 예술 또한 없다는 뜻이다. 안슬기 감독은 그렇게 지난한 작업을 ‘행복하게’ 해 오고 있는 ‘선생님’ 영화감독이다. 스물아홉에 영화를 시작한 늦깎이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밑천삼아 방학을 이용해 촬영하고, 방과 후와 주말에 편집을 하는 그의 열정은 대한민국 독립영화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런 안슬기 감독이 경쾌한 듯 진중하게 대안 가족을 응원했던 장편 데뷔작 <다섯은 너무 많아>에 이어 <나의 노래는>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희망도 없고, 가족도 붕괴된 스무 살 희철(신현호)의 일상과 분노, 희망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은 어쩌면 그의 자신 있는 카드 중 하나일지 모른다. 교사로 재직하며 살을 부대껴왔던 그 제자들, 후배들의 이야기를 흑백에 담은 이 응원가는 상업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심심할지언정 무시 못 할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분한 목소리로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안슬기 감독이 있다. 만약 <나의 노래는>을 보고 자신의 스무 살, 그리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이미 촬영을 마친 세 번째 장편 <지구에서 사는 법>이 벌써 궁금해 질 것이다. 비일상적인 SF적 요소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의 조합이라니.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라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예술’하는 ‘선생님’ 안슬기 감독은 이렇게 전진하는 중이다.






편집 때문 바쁘실 텐데 시간 뺏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개봉이 다음주죠?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나의 노래는>을 만날 기회는 있었는데요. 그 동안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웃음)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고 그러진 않아서 읽기가 쉽진 않네요.

혹시 영화제 등지에서 상영된 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객들 평은 읽어 보나요?

네, 다 읽어 봐요. <다섯은 너무 많아>를 본 관객들은 역시 그 작품을 생각하나 봐요. 제 입장에서는 영화 톤은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관객들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장편 데뷔작인 <다섯은 너무 많아>은 성공이라 부를 만큼 많은 지지를 얻어냈는데요.

전국 관객 3천 명인데 성공이라 부르기에는(웃음).

이번 영화는 경쾌하기도 하고 바로 차기작이 잡힌 상태라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닌가 생각도 했거든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죠. 제가 큰 영화를 계속 만들었다면 모르겠는데 <다섯은 너무 많아> 경우도 소박한 영화고 전반적으로 단편도 그런 컨셉이었고요. 자꾸 <지구에서 사는 법>이랑 붙어서 얘기 되고 제작비도 거의 10배 차이가 나니까 그쪽에 무게 중심이 실리는 거 같아 그런 부분은 안타깝죠.

전작들을 보면 단편 같은 경우도 다 칼라였어요. 이번에도 칼라 부분이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흑백으로 찍었는데, 이유가 있다면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여러 가지를 다 해 보고 싶은데 이번엔 흑백으로도 해 보고 싶었고요.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캐릭터 하나를 두고 그 아이한테 집중하는 스타일을 정해 촬영감독님에게 흑백으로 가자고 했죠. 핸드헬드에, 흑백에, 클로즈업 많이 써서 인물이 보이게끔. 우리가 커버하지 못하는 색깔은 뺏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그 결정이 미학적인 건가요, 아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인가요.

미학적인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100억짜리 영화도 똑같을 거 같아요. 그 예산 안에서 어떻게 뽑아낼지는 누구나 고민하는 거 같고. 더 좋은 조명에 더 나은 환경에 좋은 배우들을 데려다가 찍고 싶겠죠. 그 안에서의 미학을 생각해야 하고 컨트롤을 해야죠. 작품도 칼라로 찍을 수 있었고 그럼 더 다큐 같은 느낌이 날 수 있었을 거예요. 오히려 전 리얼리티 보다 극적인 느낌이 나려면 인물에 집중해야 하니 흑백으로 간 거 같아요. 심하게 얘기하면 칼라로 찍었을 때 현실감이 더 있고 더 격할 수 있었지만 그냥 (흑백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죠. 원래 세미 다큐로 가려고 했었는데 극영화로 옮기면서 흑백을 선택했어요.

영화 카메라가 희철을 바라보는 화면만 칼라로 찍었습니다. 근데 희철의 점퍼를 보면 청색, 초록색이에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도 유달리 초록색 톤을 자주 썼다는 기억이 나는데요. 그 색을 상당히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색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선택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상하게. 전작에서도 미술 감독이 스타일이나 창틀이나 결정하는데도 초록색 분위기를……. 초록색이 붉은색 느낌은 아닌데도 차갑게 보이지 않는 안정감을 주고 블루 계열인데 따뜻한 느낌이라 선택하게 됐어요. 배우 옷 입은 것도 그렇고 버스는 섭외 환경 상(웃음).

이번에도 일반 통념과 거리가 있는 가족이 등장합니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그랬지만 이번에 할머니나 아빠도 그렇고.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건가요?

(웃음) 가족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처럼 되 버려서요. 전작은 가족을 뛰쳐나와서 ‘이 사람들도 가족이 될 수 있어!’고 <나의 노래는> 그 전 단계인 거 같아요. ‘참을 수 없으면 나와, 그것도 가족이냐?’ 아니면 ‘참지 말고, 꼭 거기 있을 필요는 없잖아. 찢어져!’ 뭐 그런 느낌이 있긴 하죠.

실제로 그럴 의향이 있는 건가요? (웃음)

저의 집은 굉장히 화목합니다(웃음). 누구나 그런 생각이 있을 거 같아요.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가 다 있을 거고, 저한테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제 가족이나 부모를 증오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학교에서 얘들을 봤을 때 부모에 대한 감정은 더 세요. 애를 낳아놓고 자식으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그렇게 되네요(웃음). 사회적으로 보편적이고 옳다는 부분에 반감은 있는 거 같아요.

<나의 노래는> 후반부에 할머니가 교회 앞에서 희철을 돌아보는 장면은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 엄마가 돌아볼 때의 기괴한 느낌과 표정이 살아 있어요. 그걸 보면서 거창하게 얘기하면 프로이트의 ‘언캐니’, ‘친숙한 낯설음’을 던져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 사람들에 대해 못 믿는 거 같아요.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나와요. 성모상이나 할머니나. 어떻게 보면 없는 ‘엄마를 찾아 달라’거든요. 엄마의 부재가 자꾸 성모상 할머니, 원래 친구였던 미나, 걔가 가니까 연주한테 넘어가고요. 그리고 새 여자가 생기고.

(희철이가) 복이 많던데요(일동 웃음)

복이 많죠(웃음). 근데 기존에 성모상이나 할머니는 범접할 수 없는 모성애잖아요. 근데 사실 그럴까 하는 거죠. 모성애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자기 살기 바쁘고. 그런 경우가 있어요. 애가 학교 안 왔는데 ‘그럼 어쩌라고’ 이렇게 전화 받는 엄마들. 갑갑하죠. 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내가 지금까지 많이 희생하면서 먹여주고 살려줬던 아이. 객관적으로 보면 해 준거 없는 거 같은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거죠. 엄마들이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있을 거 같고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아요. 아빠도 그렇고. 왜 자꾸 그렇게 되지? 우리 어머니가 성당을 다니는데 (영화를 보고) 제일 불만이 그거에요. ‘왜 할머니가 애를 버리고 나가냐(웃음). 그러고도 성당을 다니느냐.’ 그걸 뭐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는 다르고 그런데서 페이소스가 더 느껴지는 거 같아요.

단편들을 보면 모두 가족, 결혼, 사랑 이야기에요. 실제 규범화된 관계를 재구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어찌 보면 가족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자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만큼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단편들을 다 보셨나요? 꼭 무슨 청문회 하는 느낌인데요(웃음). 그렇죠, 뭐. 저한테 뭔가 있겠죠. 고등학교 3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었어요. 대학도 청주에서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고 했고. 그래서 기숙사 생활하다 자취 했고요. 근데 아버지가 교사신데 그 중간에 순환 근무 때 일부로 서울에 와서 제 자취방에 함께 살았어요. 그게 정말 싫었거든요(웃음). 단칸방에서 같이 자취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 그랬을까, 왜 자꾸 벗어나려고 했을까는 모르겠는데 그런 게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는 그 분들이 안쓰럽고 그래요. 그런데 그걸 왜라고 물어보면 다 얘기해야겠죠, 술 마시면서 밤새도록(웃음).

희철이의 영화 속 궤적을 따라가 보면 분노를 배우는 과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다섯은 너무 많아>에 비해 드라마가 부족하고 심심하다는 평가도 있었는데요. 요즘 스무 살 아이들이 분노를 못 참는다고 하는데 희철이는 굉장히 잘 참으면서 분노를 풀어가거든요. 그런 건 학교 선생님으로서의 경험이 이어진 건 아닌가 싶어요. 제자들을 염두에 뒀다는 생각도 들고요.

네, 그런 학생들. 제가 폐교 문제로 이슈화 됐던 동호공고에 있다가 신림동에 있던 당곡 고등학교에 있다가 작년부터 서울산업정보학교라고 직업반 가르치는 학교로 옮겼는데, 계속 봤던 아이들이에요.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얘기를 했는데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게임이라든가 당장 하고 싶은 건만 하는 거죠. 차라리 랩 하는 아이들은 좀 나은데 랩은 열심히 하지만 제가 보기엔 잘 못해요. 저걸로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 거 같고. 고3인데. 근데 1년 내내 공부 안하고 그러고 있는 거예요. 근데 그게 한심스럽다기보다 쟤들은 어떻게 살까 그런 생각을 해요. 졸업해서 찾아오는 얘들 보면 아르바이트 하는 얘들 많고, 군대 가서 말뚝 박을 거라고 하고(웃음). 그런 류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뭐가 되고 싶었는지 그런 생각을 했었죠. 선생이니까 아주 꼰대 같은 생각을. 또 분노를 폭발하는 건 처음부터 시나리오 상에서 그렇게 잡았어요. 근데 리뷰를 받아봤더니 다 재미없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는 일이 없다, 수동적이다. 전 우겼죠. 그게 이 영화의 컨셉라고.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펼쳐 보여주면서 점점 움직이다 한 번에 폭발하는 게 컨셉이라고 밀어 붙였죠.

캐릭터만 보면 감독님이 현직 선생님이니까 생생한 면도 있지만 기존에 많이 보아왔던 영화적인 캐릭터로 읽을 수도 있거든요. 온순하다 마지막에 분노를 터트리는. 그게 다큐에서 극으로 옮기면서 의도를 한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다큐도 비슷했을 거 같아요. 다큐도 이미지적인 걸 통해 편집을 했을 거 같고. 처음에는 막 사는 모습, 갈등, 그 다음에는 희망. 짜여진 대로 같을 테고 그게 전형적인 드라마트루기고요. 캐릭터나 전형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진 않았고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랩을 하는 친구들을 언뜻 생각하면 활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근데 희철은 그걸 배반하는 캐릭터니 재미있으면서도 왜 그런 인물을 택했을까 궁금했거든요.

랩을 잘 하는 친구도 아니고요(웃음). 동아리에서도 랩 하는 걸로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하고 그런 친구라. 우리가 보기에는 춤 잘 추고 랩 잘하는 친구들은 잘 보이는데, 사실 그 주변에는 안 그러면서 ‘깔짝’ 거리는 얘들도 많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민을 간 민하(주민하) 역이 좋았어요. 글을 쓰신 걸 보니까 <리틀 미스 선샤인>도 언급했던데요. 올리브가 오빠 드웨인 어깨에 기대 말없이 지지해 주는. 마찬가지로 영화 이전 얘기가 있었다면 그런 위치로 민하가 희철 옆에 있었던 거 아닌가 싶은데요. 영화적으로는 이민을 가는 구조인데 너무 일찍 퇴장시킨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어요.

(웃음)그랬다면 갈등이 더 생겼겠죠. 삼각관계 같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자꾸 부재를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처음에 편의점신 같이 (관계를)보여주고 나서는 빼자고 했었어요. 누구부터 뺄까. 점점 잃어가는 친구고 원래 없었는데 더 잃어가고 아버지처럼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은 오고. 지금 생각하면 잘 한 건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도 그랬고 관객들도 누가 더 예쁘냐고(웃음).

이민가기 전에 민하가 희철에게 보낸 문자가 압권이었어요. ‘빙신아, 나 내일 떠나’였나요?

안: 걔네들은 알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희철이도 (민하를) 좋아하는데 남자들은 괜히 모르는 척 하잖아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아직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할 수도 없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또 그런 걸 안타깝지 않은 척 지나칠 수밖에 없고 그걸 둘 다 알고 있고 그런 거죠. 나중에 관객들이 안타까움을 느꼈으면 좋겠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돌려보죠. 한겨레 영화제작학교에서 영화를 배우셨죠? 어떤 계기로 영화를 하게 된건지.

원래 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영화관에 많이 갔었어요. 옛날에 학생지도 같은 거 있었잖아요. 극장 관계들을 다 아니까 무조건 아버지 손잡고 들어가서 <소림사> <디어 헌터>도 보고. 그 기억이 강렬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 한다고 하고 주말에는 집에도 안 가고 영화 보러 다니고. 그때는 야한 영화들이 유행이었어요. <먹다 남은 사과>, <여왕벌> 이런 거. 그런 거 보러 다니고 소풍날 되면 얘들이랑 영화 보러 다니고. 영화에 대한 생각은 항상 있었죠.

그럼 결혼 후에 한겨레 영화제작학교를 다닌 건가요?


네, 대학 가서 하려 했으나 시절이 하수상하야. 군대 같다 왔더니 나이를 먹고 힘들어서 직장이 있어야겠다 싶어 공부해서 임용고시 붙고 그 다음에 영화를 했죠. 스물아홉에.

예전에 작가를 만나다 때 한 얘기를 보면 교사라 대출이 편해서 영화 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은행이 투자자인 셈인가요?

그렇겠죠.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니까 결국은 은행돈이죠. 아직 회수는 안 됐고요.

이번엔 회수가 될 거 같나요? 어떻게 예상하는지.

안 될 거 같은데요(웃음). 원래는 필름으로 안 가려고 했는데 부산에서 지원을 받는 바람에 여차저차 B프린트 뽑고 사운드 쪽에 돈이 들어가서요. 프리 프로덕션 포함해서 1,500만원 들었고, 나머지 후반 작업에 또 1,500만원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 마케팅 팀에서 외부에 얘기할 때 3,000만원 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그거라 이왕 싸게 가자고 했죠(웃음). 제 지분이 43% 정도 되고 나머지는 스탭들하고 배우들 지분이에요. 결국은 7천 이상 든 거죠. 제작자니까 그 수익이 나야 배우들 다 나눠주고. 제 수익이 날 수가 있나요(웃음).

역시 케이블 판권이 중요해요. EBS에도 팔아야 되고요(웃음).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방학 끝나기 전에 촬영과 편집을 마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니에요. 자꾸 그 쪽으로 몰아가니까 그런데요, 촬영만 방학 때 하고 편집은 6~7개월에 걸쳐서 해요. 장편 3편을 했는데 세 편 다 겨울 방학 때 촬영은 마쳤는데 편집은 <다섯은 너무 많아>가 7개월, <나의 노래는>은 6개월 걸렸어요.

오해인 거네요. 방학 때는 촬영만 집중적으로 하는 건데요.

전주국제영화제 때문에요. <다섯은 너무 많아> 찍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촬영은 며칠까지 하고 편집은 3월 말까지 한다. 그때는 장편 편집이 뭔지 몰랐죠(웃음). 그랬더니 전주에서 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때 촬영감독, 조감독하고 셋이서 4일 동안 밤을 샜어요.

한정된 시간 안에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더 찍고 싶은데 못 찍는 거? 그렇죠 뭐. 현장에서 제가 스탭들한테 뭐라 못하는 이유가 제 원죄가 많거든요. 며칠까지 끝내야 하는데 계획을 짜 놓으면 제 입장으로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안 그러면 3월 달에 찍어야 되는데 말이 안 되는 거고. 장소도 빌리더라도 전체 틀 속에서 빌려야 하니까 더 힘을 줘야 되는데 2~3일 안에 끝내야 되니까 몰아서 이틀 안에 60컷을 찍기도 하고. 많아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설정을 외곽지역으로 한 건데요. 실제로는 왕십리 지역에서 찍었고요. 보도 자료를 보면 모텔하나 잡아 놓고 스탭들과 부대끼며 지냈다고 소개했던데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주민들이 많이 도와 줬어요. 크게 무리 있는 촬영도 아니고 조명도 기본 조명이니까. 장소 고민을 별로 안 하고 일단 장소를 잡고 거기에 앵글이나 콘티를 맞추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요. 15일 동안 13회 차 촬영 했으니까요. 스탭들이 거의 같이 살았죠. 여관 잡아놓고 8명, 9명까지 잤으니까. 그래도 배우들은 방을 따로 줬어요. 연출부는 다 때려 넣고, 촬영, 조명팀도 다 때려 넣고. 아침에 일으켜서 찍고, 밥 먹이고 저녁때 해 지면 또 찍고.

힘든 영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요, 계속 영화를 찍는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 안 감독님한테 영화란 무언가요.

꼭 마지막 질문 같은데요(웃음) 영화란, 꿈은, 청춘은 무엇인가요, 라고 물어 보며 힘들어요(웃음). 전 옛날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10년 전부터 준비해서 찍고 있고 소중한 건데요. 소중한 일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거 안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나 보고 영화 찍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란 생각도 들고. 관성이라고 할까요? 산을 타는 사람한테 왜 산을 올라가느냐고 하면……. 저도 이제 10년 됐으니까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담인데 와이프 분이 영화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물은 적 없나요?

아유, 그럼 물어보기도 했죠. 안 물어보면 여자가 아니죠. “영화야, 나야?” 뭐, 이런 거.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 (일동 웃음). 유치원생이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그랬죠.

감독님 영화들 보면 시대가 느껴져요. 반면 치열하다든지 비장하다든지 많은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기운은 없어 보이고요. 한편으론 생활이 비교적으로 안정적인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비장하거나 암울한 영화들은 피하고 긍정적으로 희망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런가 봐요(웃음). 왜냐고 물어본다면 맞는 거 같아요. 하도 그렇게 물어봐요. 보편적인 독립영화 같지 않다, 그런 느낌은 안 든다. 그게 상업영화 같다는 소리는 아니고 무게라든가 시대상이 많이 반영된다거나, 그 중에서도 아픔이 많이 반영돼서 그런가 봐요. 제가 만든 영화중에 무거운 영화도 있어요. 단편 <사랑 아니다> 같은 경우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그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장편 두 편이나……. 그래도 <다섯은 너무 많아>보다 (<나의 노래는>이) 무겁지 않나요?

오히려 엔딩을 그다지 희망적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 친구를 현실적으로 탈색시켜서 본다면 그 또래의 스무 살들이 보면 희망적으로 읽을까 싶은 거죠.

네, 지금 스무 살들이 보면 잘 모를 거 같고요. 20대 후반이 봐야 좀 느낌이 있을 거 같은데. 저게 희망일까라는 건 거짓말 하는 거 같았어요. 로또 맞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재능을 발휘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얘들이 몇 명이나 있어요. 문제는 그걸 바라보고 매일 그걸 꿈꾸면서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준비안하고 허황된 꿈을 꾼다든지 하는 거. 연예기획사에 돈이나 갖다 바치고 그런 얘들이 태반이니까요. 방송에 잠깐 출연해도 기획사에서 돈도 못 받고. 같은 어른 입장에서 안타깝죠. 사기나 당하고. 그렇게 살지 말고 별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 정도만 바뀌었으면 좋겠다. 걔가 나중에 빌리 엘리어트처럼 무대에서 비상하는 건 거짓말이죠. 내가 바라는 건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늦게나마 하고 싶은 걸 찾고, 언제인지 기억은 못하겠지만 카메라에 대한 생각도 있고. 그걸 사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마이 제네레이션>이 되는 거죠(일동 웃음)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칼라 장면들이 가혹하게도 느껴졌거든요. 과연 희철이가 저 카메라로 영화를 찍을 수는 있을까 싶은.

글쎄요, 뭘 할지는 모르겠어요. 더 우여곡절이 많을 수도 있겠죠. <마이 제너레이션>처럼 돈이 없어서 팔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냥 아르바이트 하면서 하고 싶은 거 없이 살 때 보다는 나을 거 같아요. 나도 직업이 있는 선생이고 그거 때문에 남들보다 영화를 쉽게 하지만 시작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 그런 거죠. 누구는 저보고 충청도 땅 부자라고 하던데(웃음). 다 빚인데. 빚을 잘 낼 수 있는 거죠. 근데 영화 찍는 친구들 중에는 아르바이트 세 네 개씩 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렇게 돈 모아서 영화 찍고 그런 다음에 빚 갚고. 그런 사람에 비해 전 행복한 거죠. 더 (영화를) 잘 찍어야 되고요.

안 감독님은 연출 말고도 배우를 했어도 충분했다고 봐요. 그해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윤종빈 감독만 아니었어도 더 주목을 받았을 텐데요. <마이 제너레이션>의 실장 연기는 압권이었고 <나의 노래>에서도 연기를 했는데 그 두 편이 전부인가요?

 <마이 제너레이션>하고 단편은 부탁 받은 거 몇 편 했었어요. 들어오는 역할이 다 그런 거예요, 배 나온 경상도 국회의원. 말도 안 돼는 역할을 시켜서(웃음) 싸가지 없는 과장, 직장 상사. 이번엔 정수기 회사 사장인데 정규직으로 해 주겠다고 해 놓고 나중에 ‘쌩’까는. <마이 제너레이션>의 그 이미지가 큰 거 같아요. 불러달라고는 하죠. 멜로 연기 한 번 해 보고 싶다고(웃음).

이제 배우로서의 욕심이 슬슬 생기나 보네요(웃음) 이번에 세 번째 작품 <지구에서 사는 법>을 끝냈다고 들었어요. 후반기 개봉이라고 들었는데 그 전에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아직 편집이 안 끝나서요. 편집이 끝나봐야 알겠죠. 정식 개봉은 하반기인데 나오는 거 보고 영화제 고민은 할 거 같아요. 일단은 잘 나와야 되는데 주말만 편집을 하고 있으니까 회사 쪽에서 답답할 거예요. 게다가 <나의 노래는> 개봉까지 맞물려 있어서요.

<지구에서 사는 법>이 3억 5천이라고 들었는데요. 기존 작품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큰 규모인데 제작비가 늘어나서 피부에 확 와 닿는 게 뭔가요?

없어요. 사실 <다섯은 너무 많아>도 6~7천 들어갔거든요. 예산이 커지면 어디다 돈을 들일까 어디다 돈을 더 쓸까 생각을 해보면 그렇게 나오는데도 없어요. 게다가 촬영 회차가 더 늘어나고 진행비가 더 들어가고. 또 민망하지만 배우들 인건비도 다 주고 지분계약도 다 하고요. 그거 빠지니까 전작하고 똑같아요. 여하튼 큰 차이가 없어요. 게다가 그립 장비도 들어가고 CG도 들어가고 총도 나오고(웃음). 그 쪽에 예산이 들어가니까 나머지가 괴로운 거죠. 사실 독립영화 쪽에서 찍어도 돈이 좀 들겠다 싶은 시나리오였으니 그 돈으로 맞추려니 미치죠.

촬영 장비나 미술 쪽 얘기를 했는데 전작들하고 스타일이 확 달라질 거 같네요. 앞으로 꼭 다루고 싶은 소재나 형식이 있다면요.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싶어요. 제가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요. 딱 어떤 경지에 올라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란 생각은 안 들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고요. 나중이 되어야지 연륜도 쌓이면서 어떤 스타일이 생길 거 같아요. 그래도 저 밑바닥에 스타일은 한 사람이니까 비슷할 텐데. 딱 한 가지는 모르겠고 여러 가지 해 보고 싶어요. 100만원 프로젝트라고 하나 있는데, 100만원 들여서 제가 격하게 촬영하고 3일 만에 촬영을 끝내는 프로젝트가 하나있고요. 호러도 생각을 해 보는데 피나 귀신, 효과음 하나도 안 나오더라도 무서울 수 있지 않을까. <큐어> 같은 느낌의. 그리고 이번 <지구에서 사는 법>이 그런 컨셉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 이후 해보고 싶은 게 아주 건조한 일상에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 들어오면 어떨까. 예를 들면, 장률 감독님 영화 스타일에 외계인이 서 있으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건조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데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보일까. 그걸 일상적으로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외계인이 나오는 건조한 이야기.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느낌인데 대단히 건조한.

판타지를 일상으로 데려오는 거죠?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네. 근데 자꾸 일상을 판타지로 데려가는 거 같아요(일동 웃음). 그런 것도 해 보고 싶고, 그래요.

마지막 질문인데 <다섯은 너무 많아>는 독립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나의 노래는>을 본 관객들이 이렇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요.

희철이가 보였으면 좋겠고,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 나이 때의 자기 생각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고요.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어떤지, 뭐하는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마지막 보면 지지고 볶고 하다가 ‘사랑밖엔 난 몰라’ 부르잖아요. 제가 ‘386세대’ 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이랑 그거 보고 나오면 짠해서 ‘우리 진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자’라고 하잖아요. 거기 까지는 안 올라갔지만 그런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번외 질문 하나 하자면, ‘386’ 얘기도 언급했고요. <나의 노래는>의 희철이는 이제 막 ‘88만원세대’로 진입하는 아이들인 거잖아요. 감독님의 제자들이기도 하고, 그런 친구들에게 보내는 응원가 정도로 해석을 해도 될까요?


네, 맞아요. 그런 거예요.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거고. 와서 나한테 “이렇게 살아요” 그럴 거 아니에요. 2학년 때 자퇴했던 한 녀석도 군대 간다고 친구 커플이랑 마누라랑 애 데리고 술 사 달라고 왔더라고요(웃음). 근데 얘들이 철이 없어요. 갈비 사주고 당구 쳐주고 맥주 사주고, 다 내가 냈네(웃음) 근데 좋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고치고 살 놈 아닌가도 싶은데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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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50

                                                                                                                                      백건영

월드컵 열기가 채가시지 않았던 2002년 8월, 한국문학과 문학비평계는 젊은 비평가집단이 쏘아올린 ‘주례사비평’이라는 십자포화를 맞는다. 이명원, 고명철, 홍기돈 등의 1970년 생 문학평론가들이 중심이 된 이들은, 「오늘날 문학과 비평이 처해 있는 위기적 상황을 환기시키는 은유를 통해 이를 대체할 희망의 은유를 찾는 것이 비평 현실」이라는 발문이 담긴 『주례사비평을 넘어서』를 발간해낸다. 이 책에서는 이제껏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베스트셀러작가들-신경숙, 전경린, 은희경-의 소설이 무참히 발가벗겨지며 정과리와 김형중 등 평론가에 대한 비판도 발견된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문학계의 고질적 병폐인 주례사비평과 문학의 위기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는 여전하다.

한국영화의 위기타계를 위한 많은 제언들이 있었다. 제작자와 감독과 스탭을 위시한 영화인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고통분담을 자처하고 나섰고 영화잡지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한국영화계의 위기를 진단하고 개선책을 내놓곤 했다. 이에 뒤질세라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의 제언도 잇달았다. 비록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식상한 것도 있으나 저마다 분석의 잣대와 도출된 결론은 유사했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원인을 누구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해법조차도 공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련의 글과 기획물을 읽으면서 여전히 의문스러웠던 것은, 유독 평단만이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계가 처한 위기상황과 영화평론가를 비롯해 영화비평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무관한 것일까? 이미 틈날 때마다 현장비평가들의 역할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해왔으므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을지라도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글과 관련해 한번 쯤 맥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註: 본고에 표기된 ‘평단’의 범위는 학자인 영화평론가를 비롯한 현장비평가와 영화학자 등을 아우르되, 언론매체의 영화담당 기자는 제외한다)

주지하다시피 제작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꼽은 한국영화 위기의 요인 중 하나는 콘텐츠 부족이다. 즉, 작품성과 상업성 공히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이야깃거리가 고갈되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되물어보자. 고갈된 것인가, 고사(枯死)시켜버린 것인가. 수지타산을 우선시하는 제작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기획의도가 뻔하고 완성도 또한 민망스러울 지경인 영화 앞에서 영화평론가들은 무엇을 하였을까? 그렇지, 매체의 입장이 난처하지 않을 범위 내에서 20자 평을 내밀고는 박한 별점을 주었을 게다. 아니면 입을 꾹 다문 채 무언의 의사표시를 했거나. 임무 끝? 근래 언론매체를 막론하고 한국영화에 대한 매섭고 서슬 퍼런 비판이 있었던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삼류로 단정 지어진 영화는 아예 논박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현실, 몇몇 매체의 전문가가 극찬하면 깃발아래 모여든 일본관광객들 마냥 한 줄로 도열하는 비평의 획일성이 오늘 현장비평의 현실이다. 서열이 엄연한 한국사회에서 동료나 선배나 스승에 대한 지나친 비판은 금기로 여겨져 왔다. 영화전문지에서 논쟁다운 논쟁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매체 안에서 벌어진 동업자끼리의 논박이라 봐야 짜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이켜 보면 1995년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를 놓고 당시 <씨네21>의 주평이었던 이정하와 이현승 감독이 벌인 논쟁은 적벽대전을 방불케 했었으니 비록 이정하가 절필선언을 하면서 일단락되었고 좋은 비평가를 잃기는 하였으나, 그만큼 비평의 소중한 가치와 역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김기덕의 영화를 놓고 강성률과 심영섭이 벌인 논쟁은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함 속에서 수차례 진행되었는데, 이 사건은 강성률이라는 신예 평론가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나 이 마저도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영화비평은 그 대상이 둘로 나뉜다. 도식적 구분을 하자면 영화를 '이론적 학문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 과 영화를 '소비하기 위한 좀 더 나은 지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 들로 나뉜다는 말이다. 이때, 비평가(지)의 역할은 수신자를 분명하게 정하고 대상에 맞는 내용으로 수신인과 소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언어는 허공을 떠돌다가 끝내 수취인 불명이 되어 돌아오고 만다. 죄 없는 네티즌과 아마추어의 글을 비교대상으로 놓고 진군나팔 울려봐야 마스터베이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관객과 영화평론가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황진미가 20자 평에서 “평론가가 호평한 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버려!”라고 썼을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상호 오해가 겹겹이 쌓여 있는 형국이다. 이런 이야기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정설로 굳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좋은 영화를 호평한 평론가를 관객이 욕하는 법은 없다는 점이다. 정말 문제는 수준 이하의 영화에도 갖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중간점을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영화담론 생성과 확대재생산, 유통과정을 냉정하게 살펴보자. 사이버공간에서 기정사실화된 현상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터넷을 뒤지면 어떤 영화라도 제작단계에서 시사회까지 모든 정보가 섭렵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1인 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면서 거의 모든 관객이 리뷰어가 되어버렸다. 전문가 못 지 않은 아마추어가 널렸으며 나름의 발 빠른 소통과 친화력으로 영화흥행의 태풍의 눈이 된지 오래다.」


정말로 그럴까? 얼핏 들으면 맞는 소리 같으나 사실은 착시현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 동호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생산적인 인터넷 영화담론은 1인 미디어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적이고 지나치게 소비적으로 변질되었다. 정보량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질적 향상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내부 소통기능의 향상과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만 이 마저도 철저히 개인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현상의 중심 실체가 모호한 반면 네티즌의 힘을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확대 가공한 후 재생산시키는 실체는 명확하다는 사실이다. 때문인지 네티즌의 힘을 끌어들이고 각색하여 정기적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주체들은 “네티즌의 힘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네티즌에게도 보도 자료를 허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블로거의 이름으로 세미나 또는 컨퍼런스가 개최되는 일은 새롭지도 않을 뿐더러 곧 ‘블로거 영화제’도 열린다. 유념해야 할 것은 저마다 행정기관의 지원을 앞세우지만 결국 기획과 진행의 공과는 개별기업과 이익집단들에게 귀속된다는 점이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만 놓고 보더라도 네티즌의 힘이 영화판을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긴 멀었다고 보여 진다. 아직 태풍의 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평론가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네티즌이 평단을 불신하고 혐오한다거나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의 마음을 얻어지 않고서는 흥행할 수 없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희박하다. 다만, 영화와 관련된 모든 현상에 네티즌을 결부시키려는 언론의 강박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유령이 도처에 출몰하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혼돈의 시절에 평론가집단이 역할을 극대화하면서 위상변화를 이룰 수 있느냐이다. 현실만 놓고 보면 영화평론가들의 위기가 극에 달한 것은 사실이다. 원고료는 바닥이고 지면은 좁아지고, 그나마 강단에 서거나 영화제 일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힘든 현실이다. 평론가의 글을 관객이 신뢰하지 않아서일까? 그보다는 요동치며 변화하는 영화담론의 소용돌이 앞에 소신과 배짱을 갖고 대처하기 보다는 허상에 휘둘리며 인터넷 담론을 지나치게 과소 혹은 과대평가함으로써 자기발등 찍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제까지는 영화비평의 입지 약화를 세상이 가벼워진 탓으로 돌렸더라도, 깊이 있는 글을 읽지 않는 세태 탓으로 돌렸더라도 좋다. 하지만 평단도 변해야 산다. 이전까지 소극적이고 관망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계에 조언해야 한다. 평론가들이 의식적으로 피하고 외면하고 무시하는 동안, 언론과 영화계는 네티즌을 ‘산도 움직일 수 있는 믿음’ 가득한 전사로 키워놓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수 천 년 역사를 가진 문학이 불과 113년 역사의 영화에게 밀려난 이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바로 영화가 단 기간에 대중을 매혹시킨 요인이자 문학이 몰락한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간극을 매우지 못해서 이다. 그 간극을 영민하게 매워냄으로 인해서 문자의 난독성을 영상으로 풀어냈기에 영화는 20세기 중반이후 문화예술의 총아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대중이 원하는 비평은 고색창연한 영화사를 들먹이며 지적 만용을 뽐내는 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값싼 타블로이드 북에나 실릴 법한 선정적이고 얕은 수준의 비평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 영화평론계도 세대교체의 조짐이 보인다. 하필, 한국영화위기론이 최고조에 달한 최근 몇 년 사이 대표적인 평론가들이 하나 둘씩 직함을 안고는 글쓰기에 뜸해져 버렸다. 본인과 후배들을 위해 환영할 일이고 또 당연한 일일 테지만, 문제는 빈 자리를 메울 신예평론가들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이다. 경력이 일천하니 안목이 달리고 안목이 달리니 관점이 불분명하다. 게다가 글쓰기마저 유려하지 못해 읽는 이가 힘들 지경인 글도 부지기수이다. 결국 독자의 마음을 얻기보다는 지면 채우기 급급한 글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예컨대, 생산적인 것은 고사하고 1회용 용기가 되어버리는 비평이 난무한 것도 어찌 보면 비평현실이 아닌 비평가의 위기감과 맞닿아 있다. 스스로 제 발등을 찍어버리고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경이다. 이것을 두고 영화비평이 죽었다고 말하거나 비평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보아서는 곤란하다. 본질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냉정하게 파악하자면, 위기의 대상은 영화비평이 아니라 영화평론가들이다. 학문적 위기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인 지도 모른다. 네티즌 리뷰어가 창궐하고 영화기자가 난무하는 현실이 무슨 문제인가. 어차피 평론가는 그들보다 나은 안목을 무기삼아 글로 승부하면 될 것인데. 분명 충분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외적 요인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영화계의 위기를 논함에 있어 제작자와 감독은 물론이요 그 책임을 관객에게까지 전가시키는 와중에도(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20만을 채 넘지 못한 채 소멸된 데 대한 원인분석을 보라) 눈에 띄는 것은, 평단의 역할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론가들 역시 한국영화와 동고동락하면서 영화를 매개로 종사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도 되는 양 이들을 향한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기야 감히 어느 감독과 제작자가 평단을 향해 쓴 소리를 뱉는다는 말인가!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영화제작 관행과 무수한 구태를 고쳐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영화의 위기가 어디 감독과 제작자, 극장주의 책임만이겠으며, 어찌 거장의 농익은 영화세계를 미처 간파하지 못한 철없는 관객에게 있다는 말인가. 때문에 한국영화계의 위기를 제작, 상영집단의 책임만이라고 몰아붙일 자격이 평단에게 있는지도 자문해봐야 한다.

무릇 평론가의 역할이란, 좋은 영화를 소개하고 꼼꼼하게 읽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 놓치고 지나가 사장되어버릴 영화를 찾아내어 재평가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그간 평단 나름대로 좋은 영화와 재능 있는 감독을 발굴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해왔음에도 여전히 부족하거니와, 이러한 논의가 차고 넘칠 수 록 한국영화를 튼실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한 후 합심하여 지혜롭게 대처해나가려는 의지이다. 좋은 품질로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키워나가기 위해 영화와 관계하는 모든 집단의 힘이 합쳐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럴 때일 수 록 평론가집단이 중심을 잡고 자기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관객에게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눈을 키워주고 나아가 영화제작과 관련한 모든 이들에게 조언과 발전적 비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야말로 비평가의 역할이요 평단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한국영화의 위기, 그 종착점에 이르러 평론가집단에게 바로 이 기능의 올바른 수행을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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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nworx.egloos.com/ BlogIcon moonworx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 비평이 스스로의 중심을 잡고, 관객들도 비평에 열린 자세를 보여 영화에 관한 좋은 대화가 오갈 수 있길 바랍니다.

    2008.03.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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