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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21 [자유로운 세계] 동정 없는 세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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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이주노동자 직업 소개회사에서 일하다 해고당해 졸지에 실업자가 된 싱글-맘 앤지는 룸메이트 로즈와 함께 ‘앤지 앤 로즈’ 직업소개소를 차리고는 값싼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수용을 경쟁력삼아 틈새시장을 노린다. 일감도 제법 잘 들어오니 그만하면 출발치고는 괜찮아 보이는데, 한편으로 저임금에 불법마저 서슴지 않는 앤지. 하지만 기계가 아닌 이상 열악한 노동환경에 임금체불까지 견딘다는 건 한계가 있을 터. 과연 그녀는 이 자유로운 그러나 살벌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좌파리얼리즘의 대명사,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자유로운 세계>는 피고용인에서 고용인으로 신분상승한 평범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하지만 켄 로치라면 여기서 그칠 리가 만무할 터. 다시 말하자. <자유로운 세계>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 한 인간이 내부구조의 모순을 돌파하지 못한 채 이를 악용했을 때 벌어지는 비극적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회구조가 어떻게 한 여성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직설화법으로 비판하는 켄 로치식 노동백서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알려졌다시피 켄 로치의 영화는 말랑말랑하고 속살대는 보편적 삶의 양태와는 궤를 달리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급진좌파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켄 로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분류되기 이전에 휴머니스트로 불려야 마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록 그의 영화는 언제나 서슬 퍼런 목소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눈은 한 없이 따뜻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한 세계와 그늘진 세상을 고발하는 광야의 소리를 자처했음에도 언제나 자신의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빠뜨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와 노동환경은 켄 로치 영화의 단골소재였으니, 이주노동자 이야기에 국한시켜놓고 보더라도 2000년 할리우드로 건너가 만든 <빵과 장미>에서 인간사회의 먹이사슬에 대한 눈부신 통찰을 보여준 그였다. 당시 시카고 선타임즈의 평자들이 “오스카 투표자들이 말끔히 청소된 건물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카데미상을 선사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영화는 신자유주를 신봉하는 미국에서마저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켄 로치의 영화를 견인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영화마다 어김없이 드러나는 인간애이다. 살육의 격전장에서도 생존투쟁의 노동현장에서도 그의 영화를 끌고 가는 동력은 언제나 다툼과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길어 올린 끈적끈적한 인간애였다. 그러니 때로는 샘솟는 감동으로 또 때로는 유머와 눈물로 악다구니 가득한 이 세상을 그려내곤 했음을 기억하자.

<자유로운 세계>의 후반부, 그러니까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고도 모자라 더욱 탐욕을 부리는 앤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제 아무리 켄 로치의 영화라 해도 이쯤하면 그녀에게 도덕적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때 자신이 은혜를 베푼 이란인 가족을 포함한 불법이민자의 트레일러를 당국에 고발하는 장면에서 “네가 못할 짓이 뭐니?”라고 묻던 로즈의 넋 나간 표정에서, 무엇보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짐을 싸라던 앤지의 냉정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소름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과연 무엇이 이 여자의 삶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인생이지만, “30년 동안 한 직장만 다닌” 앤지의 아버지가 “서른 번도 넘게 직장을 바꾼” 그녀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일흔 두 살의 거장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앤지가 직업소개소를 차린 것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함이었다. 그녀 말대로 스물네 살에 실직한 이후 집에 처박혀 TV만 보는 남편에게 자신과 아이의 인생을 맡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뒤늦게 뛰어든 노동시장의 시스템은 그녀를 도덕불감증으로 이끌고 만다. 일에 대한 경험은 많았으되 시장 환경과 노동시스템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없었던 탓이다. 살아남기 위해 사회시스템에 복속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켄 로치의 날선 목소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노동생산성 향상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든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노동생산성 향상에 일차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작업환경이라는 것이다. 앤지의 소개소를 통한 노동자들은 언제나 최악의 사업장으로 송출되었고 당연하게도 최저임금을 감수해야했다. 박리다매로 인한 외형의 증가만큼, 그로인한 부작용 역시 동반상승했으며, 결국 그녀는 양날의 검 위에서 춤추듯 위태로운 게임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것은 애초부터 부메랑이 되어 사용자 자신을 향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왜곡시킨 노동경쟁력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에게 독배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질 낮은 근로자가 상품경쟁력을 증대시킬 리 만무하고 악덕기업에 우수한 근로자가 남아있을 턱이 없으니, 결과는 기업도산으로 이어지고 임금은 체불되며 기어이 가계파산으로 귀착되기 일쑤다.

<자유로운 세계>가 전하는 이야기는 비단 영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민족사회로 접어든 오늘의 한국사회가 귀기울여야할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말이다. “불법이민자를 고용하면 숨소리하나 내지 않기에 일시키기 편하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범법을 서슴지 않는 앤지의 모습 위로 탐욕과 야만으로 가득한 이 땅의 악덕기업주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희망찬 미래를 위한 오늘의 희생’이라는 대명제를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에게 부여한 후, 개인의 노력만으로 진정한 자유로운 세계를 도모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폭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 하더라도 먹이사슬처럼 엮인 노동시장 환경은 그들에게 최저임금마저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 점에서는 앤지의 처지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한다하더라도, 앤지가 제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기회불균등과 시장진입장벽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자유로운 세계란 영원히 도래할 수 없다는 것을 켄 로치는 역설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빵과 장미>에서 “언제 장미를 얻는 줄 아십니까? 구걸을 멈추고 단결할 때”라고 말하던 노조원의 대사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유럽에서 끌어 들여온 오백만 불이 채 되지 않는 적은 제작비와 열혈동지들과 함께 게릴라처럼 미국에 입성한 켄 로치가 1990년대 초 미국 내 유색인종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모델로 미국 자본주의의 폭압을 고발한 영화 <빵과 장미>를 보았다면, 아니 보지 못했을지라도 <자유로운 세계>는 반드시 보기를 강권한다.

엄격하게 말해서 <자유로운 세계>는 켄 로치가 <빵과 장미>를 통해 상정한 내부의 구조적 문제, 즉 계급적, 인종적, 성적 맥락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억압하고 통제하는 주체가 백인 자본가가 아닌 그들과 동일한 쁘띠 부르주아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논제에 대하여 가장 멀리 밀고 나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영화는 건조하고 분노를 자아내는 동시에 이 동정 없는 세상의 구석진 삶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짚고 넘어갈 것은, <자유로운 세계>가 비록 <하층민들>이나 <빵과 장미>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처연하고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빵과 장미>에서 L.A에 거주하는 중남미 이주노동자들의 “We need Bread. But Roses, too.”라는 외침 속에는 선택적 희망이라도 있어보였다. 그러나 <자유로운 세계>에 이르면 빵만 구하기도 힘겨워 보이는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장미까지 얻겠다는 말은 공허해진다. ‘빵과 장미’가 단어의 상징성에서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앤지와 로즈’가 결국 한 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골이 너무 깊은 까닭이다. 그래서 더욱 공허하고 스산하다. 영화의 마지막, 체불임금을 갚기 위해 동구권노동자 직업알선에 나선 앤지의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자력으로 일을 그만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빚을 갚는 만큼 또 다른 빚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희망을 부여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 무섭고 섬뜩하다.

<자유로운 세계>는 다수가 좌초한지 오래라고 믿는 사회주의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과 초 자본주의로 재편을 거듭하는 현 세계에 대한 신랄하고 실천적인 비판 의식, 노동 계급에 대한 충직한 온정으로 의식의 굳은살을 키워온 켄 로치가 아니면 흉내 내기도 힘든 강력하고 소중한 영화이다. 자신의 신념을 영화적으로 승화시켜온 거장의 솜씨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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