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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0 [샤인 어 라이트] ‘롤링 스톤즈’를 모른다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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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샤인 어 라이트>는 명쾌하게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는 영화다.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관심이 넘치거나, 혹은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거나. 보통의 뮤지션을 다룬 영화들은 으레 그렇듯, 상반된 두 개의 클리셰로 구분된다. 가장 관습적인 방법은 뮤지션(혹은 뮤지션들)의 일대기를 그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틀어 하나로 엮는 ‘전기적’ 구조는 이후 신화가 되거나 패배자가 되어버린 무대 위의 한 인간을 그리기 안성맞춤인 방법이다. 보통 이런 형식으로 음악가를 다룬 영화들은, 극적인 기승전결을 연출해야하므로 90퍼센트의 픽션에 10퍼센트의 논픽션을 섞는다. 때문에 어떤 때는 실제의 인물과 전혀 다르게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과 허구의 정당성을 떠나 픽션과 배우의 적당한 연기가 섞인 뮤지션 영화들은, 대상을 신격화하는 동시에 인간 승리 혹은 극복 가능성이라는 거창한 문구로 관객을 사로잡기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은 영화가 창조한 또 하나의 스타에 열광한다.

뮤지션 영화가 픽션을 넘어 두 번째로 차용하게 되는 방법은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시종일관 주인공들에게 말을 걸거나 몸짓을 건네며 그들과 함께 영화를 꾸려간다. 카메라와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뮤지션으로의 사생활, 혹은 그들이 가져다 준 열정 이상의 감정적인 것들. 거기에 크고 작은 규모의 콘서트가 더해지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일정 수준의 작위적 태도를 가지게 될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여과 없이 카메라는 돌아가므로, 필름에 담겨진 주인공들의 모습은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8할의 성과를 이룬다. 그리고 여기서 다큐멘터리는 주인공과 감독(혹은 카메라)의 관계가 아닌, 카메라와 주인공의 종속관계에 놓인다.

영화가 음성, 혹은 악기로 대변되는 어떤 대상을 담고자 할 때, 군더더기 없이 온전히 카메라 안에 대상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연 실황’을 기록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는 것은 뮤지션들에게는 일상인 동시에 또 하나의 가면놀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천의 얼굴과도 같다. 땀으로 범벅이 된 그들을 잡는 현란한 카메라와 관중들의 함성소리는 모든 것을 떠나 주인공이 존재해야만 하는 공간의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엔 픽션과 논픽션의 갈등보다 큰 제약이 따른다. 카메라는 뮤지션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연출’과 ‘상황 전개’라는 두 평행선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두 가지로 분리된 카메라는 음악에 심취한 그들을 ‘극’으로 담아야 할지, 혹은 적나라하게 ‘나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주종관계가 성립하는 순간이다.

뮤지션 영화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다가는 진부한 획을 한 줄 더 그을 수도 있는 인간극장식 테마로 치장될 것이 뻔하고,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너무 편협한 내러티브로 놀이판을 벌인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니 말이다. 특정 인물을 음악으로 소화해낸 ‘잘 빠진’ 영화를 찾아내기는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하지만 스콜세지의 ‘롤링 스톤즈’에 대한 다큐멘터리 <샤인 어 라이트>는, 이들 사이에서 힘들고도 경이롭게 ‘다중 토끼 사냥’에 성공한 영화다.

<샤인 어 라이트>는 롤링 스톤즈의 현실에서 시작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롤링 스톤즈의 공연을 담기 위해 과거를 비추는 대신 현재를 직시한다. 나이든 믹 재거와 아련하게 롤링 스톤즈의 음악이 깔리려는 찰나, 스콜세지의 카메라는 그들을 가로막는다. 요란하게 움직이는 그의 워킹은 롤링 스톤즈 멤버들 간의 단절을 낳고, 나아가 관객과 롤링 스톤즈라는 뮤지션 사이에서 제 2, 제 3의 간극을 형성한다. <샤인 어 라이트>는 롤링 스톤즈를 신격화, 혹은 영웅화 하는 대신에, 스크린 속의 배우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을 통해 뮤지션 영화가 가진 한계를 지나친 상태에서 출발점을 잡는다.

영화는 2006년 롤링 스톤즈가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운 자선 공연인 ‘비거 뱅뱅(Bigger bang)투어의 일부였던 뉴욕 비콘 콘서트의 실황을 다룬다. 약 두 시간 동안 <샤인 어 라이트>는 원활한 플롯을 제공하는 대신 롤링 스톤즈를 코앞에서 만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관객에게 부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쳐 심혈을 기울인다. 잘 빠진 라이브 무비를 위해 엄청난 와트의 조명을 설치하고, 총 16대의 카메라가 바쁘게 움직이며, 이 모든 상황을 스콜세지는 무대의 한 구석에서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있다.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는 감독의 뒤에서 카메라와 서로를 번갈아 보며 장난을 치고, 필름에 완벽한 롤링 스톤즈를 담아내기 위해 감독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다. 숨 가쁘게 울리는 전화벨, 무심하지만 폭발하기 직전인 스콜세지의 표정은 공연을 몇 시간 앞둔 롤링 스톤즈의 멤버들과 대비된다.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카메라는 바쁘게 움직이고, 스탭들은 초조하게 스콜세지의 지시를 기다린다.

<샤인 어 라이트>에서 롤링 스톤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원했다면 당신은 스콜세지의 카메라에 적잖이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온전히 롤링 스톤즈와 소통하기를 원했다면, 이 영화는 당신에게 지상 최고의 콘서트를 보는 감격을 알려줄 지도 모른다. 롤링 스톤즈의 공연이 시작되고 믹 재거의 음성이 공연장 높이 울려 퍼질 때, 스콜세지는 비로소 공연에서 그들이 부를 노래의 목록을 받아든다. 숨 가쁜 목소리로 스콜세지는 ‘액션’을 지시하고, 모든 음향과 조명, 그리고 카메라가 순조롭게 준비된 상태에서 롤링 스톤즈의 공연은 시작된다. 바로 이때부터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기는 나머지 시간을 달려 마지막 바로 직전까지, <샤인 어 라이트>의 카메라는 마틴 스콜세지라는 감독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다시 말해 영화는 롤링 스톤즈의 연주에 귀를 가누기 힘든 공간, 즉 현실의 시간을 완벽하게 포장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샤인 어 라이트>는 뮤지션 영화에 대한 괴리와 고민을 인정하지 않는 영화다. 카메라가 관객에게 대화를 건네는 유일한 의도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롤링 스톤즈의 노래를 듣는 경험을 안겨주기 위함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순간도 호흡을 잃지 않고 공연에 매진하는 백전노장들의 쾌활한 에너지를 화면 가득히 보는 순간, 왜 ‘롤링 스톤즈’가 아직까지 거론되느냐에 대한 의문은 명쾌하게 사라진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십 수 대의 카메라들은 믹 재거, 론 우드, 키스 리차드, 찰리 워츠를 중심으로 한 편의 흥미진진한 ‘서바이벌 무비’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가시성을 확고하게 지켜내기 위해, 롤링 스톤즈가 젊은 시절에 녹화되었던 인터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짜여진 <샤인 어 라이트>라는 라이브 무비는, 완전히 관객의 눈과 귀에 목적을 둔 영화인 동시에 아무런 작위적 장치없이 롤링 스톤즈라는 뮤지션을 소개한다. 때문에 설사 롤링 스톤즈를 ‘모른다’해도 상관없다. <샤인 어 라이트>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길만한 재미가 넘실대는 영화다.


<샤인 어 라이트>가 내러티브를 토해내기를 포기한 채 롤링 스톤즈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했음을 알게 된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 걱정은 스콜세지의 모습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두 번째 걱정은 카메라가 갑자기 열광하는 관중을 비출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었다. 롤링 스톤즈에게 모든 것을 맡긴 스콜세지가 주인공을 자처해 극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후자의 경우는 좀처럼 납득할 수 없고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것임이 분명했다. <샤인 어 라이트>에서 롤링 스톤즈가 ‘Sympathy for the devil’을 부를 때 나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모든 카메라가 전적으로 무대 위의 악동들에게 치중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스콜세지의 농밀한 카메라 놀이는 이러한 ‘피 말리는’ 바람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샤인 어 라이트>의 카메라가 마이크에서 베이스로, 베이스에서 드럼과 키보드로 넘어갈 때 불현듯 든 생각의 초점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영화 속의 관중들이었다. 엄청난 소리로 롤링 스톤즈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중들의 표정은 분명 가슴 벅찬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들의 표정이 롤링 스톤즈가 존재하는 가장 타당한 이유라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샤인 어 라이트>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이런 관객들의 클로즈 샷이 나온다면 이 영화는 ‘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땀을 흘리며 노래하는 주인공들 뒤로, 그들에게 화답하듯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관중들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잡힐 때, 영화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동영상’으로 전락해버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샤인 어 라이트>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스콜세지는 한 번도 관객의 흥분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샤인 어 라이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심지어 스콜세지가 ‘위대하게’ 보이는 순간이 바로 이것에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주인공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고 크게 울리는 지를 측정하기 위해서 관객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잡는 것은 결코 넘겨짚을 수 없는 달콤한 유혹과도 같다. 무아지경인 가수와 그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팬의 장면은 주인공에게 동등한 위치가 아닌 신격화 된 작위를 수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 완벽한, 그리고 뮤지션 영화에서 피해야만 하는 샷 리버스 샷이 작용하는 순간, 영화는 ‘극’이 아닌 ‘실황 중계’라는 탈을 벗어낼 수 없다. 스콜세지는 1인칭의 시점으로, 철저히 관객 대 뮤지션의 역할을 카메라가 해주기를 원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모든 콘서트에서, 누가 다른 사람이 무대 위의 인물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며 옹호하고 있느냔 말이다. 노래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순간만큼은 양 옆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뮤지션만 남게 된다. 만약 뮤지션 영화에서 관중 하나가 고개를 돌려 자신과 같은 처지인 다른 관중을 보고 그를 얼싸안는다면, 이것은 분명 지독히 간지러운 휴먼 드라마로 내동댕이쳐지고 말 것이다. 가장 쉬운 공식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단순한 방법을 간파하지 못한다. <샤인 어 라이트>가 아름다운 것은 어줍잖은 지름길로 달려가지 않고 올곧게 바닥에서부터 최정상으로 끌어가는 기본을 지키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롤링 스톤즈를 담는다고 했을 때 기대만큼 많은 기우가 앞섰다. 하지만 <샤인 어 라이트>를 보고 난 지금, 사상 최고의 악동들의 조우에 ‘기우’라는 단어 자체를 걸었던 것을 완벽하게 후회한다. 스콜세지의 감질나는 라이브 무비 <샤인 어 라이트>는, 8월 20일부터 열리는 신디영화제의 ‘심야 섹션’을 통해 관객 앞에 처음으로 선을 보인다. 밤새도록 신명나는 놀이판을 크게 벌려보고 싶은 락키드들에게 <샤인 어 라이트>는 엄청난 만족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영화라는 것을 ‘절대’ 부인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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