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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5 원기충만한 영화의 넘치는 에너지에 대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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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원기충만한 영화의 넘치는 에너지에 대비할 것!



올해는 ‘상상의 휘모리’다.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겨울의 첫 자락에서 서른 네 번째 축제를 준비 중이다. 전례 없이 차가운 바람이 쏟아졌던 지난 한 해는 너무나도 힘겨웠다. 냉기 가득 찬 길거리에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오로지 치열했던 지난봄에 대학 기억뿐이다. 각종 포털에서 ‘혹한’ 혹은 ‘혹설’과 같은 단어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상상의 휘모리’는 태연히 종로통에 서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코앞에 다가온 영화제 준비로 분주한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사무국 문을 열었을 때는 늦은 오후. 하지만 세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막 점심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는 말로 시작해 ‘오래 기다렸죠!’로 맺으며 회의실을 달려 나오는 서독제 김동현 사무국장은 환한 웃음으로 네오이마주를 맞아주었다.

강민영(이하 ‘강’): 우선 2008년 서독제에 관해서 짧고 굵게 설명해주신다면!

김동현(이하 ‘김’): “서독제는 한 해에 독립영화의 흐름을 모두 볼 수 있고, 다음 해에 독립영화의 비전들을 가늠할 수 있는 영화제다.” 이정도면 괜찮은 건가(웃음)



강: 서독제에 관해 가장 명쾌한 답을 내린 것 같다(웃음). 그런데, 가장 바쁠 때 아닌가?

김: 사실 한 달이나 두 달 전이 더 바빴다. 지금은 사실 정리하는 단계다. 지금시점에서 여유가 없다면 영화제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론 아직 바쁘긴 하다. 그래도 전반적인 것들을 조망하는 것은 다 끝나있는 단계다.



강: 사실 다른 영화제들을 보면, 꼭 영화제 시작 일주일 전에 일이 터지거나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재 서독제 사무국의 분위기는 어떤가? 마무리단계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 프로그램들은 이미 확정이 되어있는 상태라 프로그램 측에서 바쁜 일은 거의 없다. 상영을 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관객들과 마주하는 업무들, 그러니까 그걸 수행해야 하는 기술팀들이 매우 바쁘고, 프로그램팀은 이런 기술팀을 많이 지원하고 있다. 상영본들이나 수급 같은 걸 진행 중이다. 작품정보들은 모두 마무리된 상태고 이제 수정단계를 거치고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해외 초청작들이다. 해외 초청작들은 국내가 아니다보니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고 프린트를 기다리는데, 아직 오지 않은 프린트가 있다.



강: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프린트가 있나?

김: 올해 같은 경우는 해외 배급사들이 비교적 빠르게 처리를 해주는데, 몇 군데 일을 미진하게 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밤마다 해외프로그래머가 전화하고 있다. 프린트 문제 외에는 홍보팀이 제일 바쁘다. 포스터를 붙이는 등 물리적인 것들과 보도나 기사와 같은 여러 이벤트도 넣고 하다 보니 할 일이 많다. 초청도 진행 중이다. 말하자면 이미 다 짜여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단계다.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집을 짓고 있는 단계. 아직 도배, 장판까지는 못 깔았고(웃음).



강: 개막식 공연을 ‘장기하와 얼굴들’이 한다고 들었다. 최근 장기하는 인디음악의 아이콘이 아닌가. 장기하를 초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 그건 아니었다. 흔쾌히 해주신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 처음 장기하를 섭외하기 전, 장기하 동영상을 얼핏 봤는데 다들 너무 호감 있어 하더라. 그래서 개막공연 섭외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초청하게 된 거다. 그리고 전화를 했는데 오히려 독립영화제를 옹호하고 격려해주셨다. 재밌는 건, 섭외를 하고 난 후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미 시스터즈’가 조영각 집행위원장님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미미 시스터즈’는 정동진 독립영화제때도 놀러 오셨던 분들이기도 하고. 정말 잘 된 일이다.



강: 서독제 예심위원으로 계셨었는데, 예심을 진행했던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김: 8월 초부터 시작해서 9월 초까지가 공모기간이었다. 예심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간은 공모가 끝나고 테잎이 모두 들어와서 발표하는 기간까지겠지만, 보통 테잎들은 막판 일주일에 몰려서 접수가 된다. 막판 일주일 중에서도 막판 사흘, 막판 사흘 중에서도 막판 하루(웃음). 마지막 일주일 동안 예심의 50% 이상이 들어온다. 때문에 전에 들어왔던 작품의 프리뷰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본선 심사 발표기간까지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예심을 진행하면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트러블도 당연히 있었을 법 한데.

김: 물론이다. 엄청난 기 싸움 같은 것들. 나는 예심이 처음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많이 진행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룰은 지켜진다. 사실 그런 건 다른 사람과의 갈등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골라야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다른 예심위원과 충돌이 있을 때 상대 예심위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다. 그만큼 자신은 영화적으로 무장이 되어있어야 하는 거다. 어떤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꼭 틀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은 두세 번 더 보기도 한다. 물론 그 작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다른 예심위원들에게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할 때 그걸 설명할 수 없으면 작품을 출품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굉장히 토론을 많이 한다. 치열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작품이 올라가지 않거나,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작품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강: 본선 경쟁에 올라온 작품들 중 어떤 경향의 신작들이 나왔나? 경향이라고 명확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나?

김: 단편과 장편은 약간 경향이 다르다.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일상의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 등등을 잘 엮어내는 건 기본적으로 형성이 된다. 하지만 단편 같은 경우는 매년 해가 거듭할수록 만들기는 잘 만드는데, 경향을 짚기가 어렵다. 단편은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너무 많고, 특히 예심 과정 속에선 그걸 알아차리기가 너무 힘들다. 다들 잘 만들었는데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를 고르는 것이고, 올라오지 못한 좋은 작품들도 많지만 본선 위로 올라온 목록을 보면 다들 정말 괜찮은 작품들이다. 장편은 매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제작된다. 예산문제나 운영문제가 덜 한 것이 다큐멘터리고, 전통적으로 독립영화가 다큐멘터리에서 에너지들을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독립장편에서 다큐멘터리가 항상 강세였다. 실제 그런 영화를 하고 있는 발언이 중요하기도 했다. 근데 올해 같은 경우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항상 다큐가 많거나 극과 다큐의 비율이 반반이었는데, 올해는 극영화가 7편이고 다큐가 4편이다.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많았지만 거를 수밖에 없던 이유는 굉장히 잘 다듬어지고 잘 만들어진 극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영화들 같은 경우는 깊이도 있고 내용도 굉장히 세다. 과거의 독립 장편에 비해서는 엄청난 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 사실 계속 질문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다큐멘터리의 선정 비중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서독제는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반전’수준 아니었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었다. 혹시 ‘상상의 휘모리’라는 슬로건에 맞춰서 극영화를 많이 선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김: (웃음)슬로건에 맞추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다큐와 극영화의 역전 현상이 굉장히 고무적인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숙제를 얹어준 것 일수도 있다. 예전처럼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고, 굉장히 중요한 감독이고 이런 이유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강: 예심이 상당히 치열했다고 전해졌기에 예선 탈락한 영화들도 비례해서 많았을 것이다. 예선에서 탈락된 영화들 중에 특별히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거나 경쟁이 치열했던 작품, 턱걸이되었거나 예심 중 논란이 있었던 작품들이 있었나?

김: 여러 작품들이 있었다. 다른 영화제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작품들도 있었고. 사실 아까운 작품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경쟁작이 워낙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긴 거다. 그렇다고 단편이나 장편 상영 목록을 바꿔가며 경쟁작을 늘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치열하게 토론을 한 뒤에 모든 예심위원들이 경쟁에서 상영했으면 좋겠다 라는 작품이 결국 경쟁 목록에서 제외된 거다. 무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잘 만들고 무난하다는 이유, 확 더 치고나가는 뭔가가 없는 거다. 영화가 미적지근하게 중간에 있는 경우엔 심사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





강: 서독제에 출품하는 사람들은 나이, 성별, 학력 등을 망라하고 매우 다양하다. 예심 과정 혹은 독립영화 전반이어도 좋고, 요즘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경향이 읽힌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년에는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오고갔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거나 연애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

김: 작년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연애도 많이 하고, 일기도 많이 쓴다(웃음). 여전히 그런 주제가 많고, 사회적 고민보다 자기 자신의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모 학교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어쩌면 그렇게 연애 영화만 만드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주제가 다 연애다. 사실 멜로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다. 멜로는 관객층이 매우 많아서 영화의 ‘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괜찮은 작품들마저 가려 버리는 거다. 조금 더 치고 나가줘야 하는데, 멜로라는 것이 무언가 더 확장하고 깊이 치고 나갈 부분이 별로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냐에 대한 것들에 영화가 좌우된다. 영화 속에서 사회적 문제 같은 경우도 인식은 하고 있는데 약간 피상적으로 다루는, 깊게 고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출푸자들 중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공간이라는 부분에서 대부분 재건축, 철거촌 등과 같은 도시에 대한 공간들을 많이 차용한다. 깊이 있게 들어가는 부분은 좀 부족하다.



강: 독립영화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분들 중에는 ‘독립영화’하면 흔히 이주노동자 혹은 계급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을 한다. 딱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개념 자체가 그렇게 박혀있기 때문에 전혀 수용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물론 우리가 그런 영화들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예전에는 이주노동자 같은 것들을 소재적으로 접근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반면 지금은 재외동포도 많고 이민층도 굉장히 많아졌지 않나. 그러다보니까 그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그냥 ‘친구’가 되어버리더라. 학생들 작품 중에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친구, 옆 집에 사는 친구 정도로 나타내는 것 같다.



강: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서독제도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을 곳곳에 포진해놓고 있다. ‘Sex is cinema’라는 슬로건으로 특별 상영과 세미나를 하는 것도 있고 초청작들 중 군침을 흘릴 만한 것도 많은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촛불영상 상영전’이었다. 진작에 공모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언제부터 기획하게 된 건가?

김: 정동진 독립영화제 일 때문에 정동진에 내려가 있다가 올라왔는데, 조영각 집행위원장님께서 슬쩍 이러저러한 일들을 기획했다고 자랑(웃음)을 하셨다. 그 중에 촛불 영상 이야기가 있었다. 의견을 주셨던 분은 영화인회의에 최현용 사무국장님이셨다. 지난여름 에 한독협회에서 촛불 집회도 많이 나갔기 때문에, 이런 영상들을 모으는 것은 서독제에서만 가능한 일 아니냐 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 안건을 구체화시켜서 진행한 거다. 다들 촛불영상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만장일치의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강: 출품 수는 많았나?

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9편을 상영을 하는데 들어온 작품은 13편 정도다. 그만큼 당시 카메라가 중요한 역학을 했고,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것이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넘어오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만들어서 그냥 인터넷에 올리는 게 아니라 편집이나 설정 같은 문제에서 걸림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작품들은 모두 좋다. 우리들이 원하는 작품이 모두 들어와 흡족했다.



강: 촛불 영상 공모가 있을 당시 모바일로 찍은 것까지 허용한다고 했었는데 굉장히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김: 형식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영화제를 했었던 인디 애니페스트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했던 공모전 중에 ‘날 애니’공모라는 걸 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라 손으로 그리는 것들 같은 작품들을 자유로 공모했었다. 그 쪽은 굉장히 치열했다고 한다. 기획도 좋았지만, 과정 자체가 참여자들에겐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나 싶다.

강: 요즘은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타이핑만 잘못해도 온갖 테러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친분이 있는 모 감독은 영화 제작시기부터 특정 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서독제에서 촛불영상을 준비할 때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압박 같은 것은 없었나?

김: 아직은 없었다. 전혀 없었지(웃음).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야 있었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들어온 것은 없었다. 다만 그런 이야기가 들리잖나, 누구도 전화를 받았다더라,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더라 라는 것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주먹 불끈 쥐고 대항해야하지 않을까.



강: 주변에서 종종 한독협가 지나치게 특정 정치력을 옹호한다는 말들도 듣는다. 한 이웃은 독립영화협회 카페에서 단체쪽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 쪽지에는 이명박 퇴진을 적극 옹호하는 슬로건을 대대적으로 걸어놓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지향하는 정치색이 그 이웃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로 대화를 할 때 싸움이 붙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한독협이 특정 정치력을 지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여 있는 사람들이 비슷비슷하다보니까, 같은 목소리를 만들어 분출할 수는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모이다보니까 덩치가 큰 단체로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일반적인 말이긴 하지만 오래도록 독립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그 열정이 강릉시네마떼끄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강릉시네마떼끄에 계시다가 한독협으로 넘어왔고, 작년 함주리 국장이 나가면서 국장이 되셨다고 알고 있다. 처음 독립영화판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다.

김: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듣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이미 독립영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독립’이라는 말을 안 썼는데 90년대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활동 중에 영화도 있었는데, 물론 영화가 주류는 아니었다. 다만 선배 중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때문에 학교서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영화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해서 학생회에서 진행을 하고, 자연스레 독립영화에 대한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의 투지가 불타오르던 시절이었으므로, 나와 관계있었던 모든 일상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영화 쪽에서도 그런 시선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는 컨텐츠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우리 때는 정말 <파업전야>가 유일한 독립영화였다.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를 필름으로 가져와서 틀어주시고 그랬던 시절이다. <파업전야>이외에도 비디오 샵에 나왔던 작품들 중에서 진보적이거나 내용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져와 학교에서 틀었다. 그리고 강릉시네마떼끄로 넘어갔다. 나는 강릉에서 학교를 다녔고 96년도에 학교 선배들이 강릉시네마떼끄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네마떼끄에서 활동을 했다. 당시 시네마떼끄가 생기면서 ‘시네마떼끄 네트워크’구성이 되었는데, 연계가 되던 단체들은 주로 .문화학교서울이나 부산시네마테크였다. 그때 인력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을 하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곽용수 대표님이나 조영각 위원장님도 알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모이고, 현재가 된거다(웃음).



강: 강릉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면, 나는 아무래도 사는 곳이 서울이다보니, 시네마떼끄 프로그램은 늘 서울아트시네마에 치중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다른 시네마떼끄는 어느 정도 지원에서 어떤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중에 강릉시네마떼끄도 포함되어 있었고. 정동진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강릉시네마떼끄의 인지도도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서울아트시네마와 동등하게 운영되는 건가?

김: 전혀 다르다. 말은 시네마떼끄지만 실제로는 비디오떼끄였다. 초반에 강릉시네마떼끄가 만들어지고 나서 테잎들을 가지고 계속 영화제를 했다. 여러 영화들을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틀었다. 비디오들은 대부분 문화학교서울에서 지역에 내려줬다. 문화학교서울에는 번역을 하거나 자막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있었기 때문에 종종 일본에 가서 LD를 가지고 와서 뜨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중간 중간 상영이 멈추는 순간도 많았지(웃음). 하지만 그런 공동체 시네마떼끄의 활동 자체는 한계가 있지 않나. 당시에는 막 일본영화도 수입허가가 나고 예술영화들도 허가가 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우리가 활동할 근거가 사라진 거다. 이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현재도 그렇다. 참, 정동진독립영화제는 98년에 한독협 생기고 나서, 당시 사무국장으로 계시던 조영각 위원장이 지역적으로 영화제를 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걸 넙죽(웃음) 받아서 실행한 거다.



강: 정동진독립영화제 같은 경우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놀러가서 영화도 보고. 바다와 함께 영화도, 술도 술술 잘 넘어갈 것만 같다(웃음).

김: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엄청 힘들다. 처음에는 규모가 가장 큰 서독제 일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동진은 인력이 없다. 상근자가 없고 가까스로 자원 활동가가 도와주는 실정이다. 이게 사흘간 개최되는 거여서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다. 영화보고 술 먹고 바닷가 갔다가 다시 영화보고. 압축적으로 육체를 힘들게 하는 건 정동진을 따라갈 영화제가 없더라.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축제다. 야외이고, 지역이고 하다보니 아이부터 어른까지 관객층도 너무 다양하다. 그게 연계가 되니까 강릉에서는 독립영화 정기 상영회 같은 것들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이제 10년이 되었는데, 10년 지나고 나니까 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 강릉시네마떼끄에 현재 회원은 얼마정도 되나?

김: 많지 않다. 한 열 명 정도. 지금은 거기서 다들 가지를 치고 나왔다. 현재는 나도 서울에 있는 상황이고. 하지만 강릉을 거쳐 간 사람들은 많다. 모두들 각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강: 독립영화계 외에 현재 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학원 공부도 독립영화 활동에 연계된 것인가.

김: 문화예술경영학과를 다니고 있고, 이번 학기는 휴학을 했다. 대학원은 일을 하면서 다니기가 무난했는데, 올해 처음 사무국장을 맡다보니까 신경 쓸 것도 많고 할 일도 너무 많아서 잠시 공부를 쉬고 있다. 지금 일이 쌓여서 휴학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독립영화 외에 따로 하고 있는 일은 딱히 없고, 대부분 영화 쪽에 관련된 일이다.



강: 독립영화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순간이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궁금하다.

김: 셀 수 없이 너무 많다. 그런 순간은 매번 상영을 할 때마다 있는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활동을 하거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영화 속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독립영화는 내가 몰랐었던 문제들이나 이슈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기 힘든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마음으로 지지를 하고 그렇게 영화와 관객이 연계되는 것이 좋았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최근엔 많은 관객들께서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대해 알아주시니까 행복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것은 정동진독립영화제다. 작년까지만 해도 ‘10’이라는 숫자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10년이라는 게, 한 사람이 꾸준히 10년이라는 활동을 한다는 게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 마지막으로 서독제에 오는 관객들, 그리고 독립영화를 아직 모르고 있는 미지의 감독들이 영화제를 통해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길!

김: 영화의 에너지, 영화에서 받을 수 있는 힘과 열정 같은 것들을 많이 받아갔으면 좋겠다. 이번 서독제는 충분히 그런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영화들이 곳곳에 포진되어있다. 영화를 통해서 생각의 지표를 넓혀갔으면 좋겠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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