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추격자]와 단편영화의 힘

필진 칼럼 2008.02.18 17:14 Posted by woodyh98


오랜 만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 나홍진 감독의 상업 장편 데뷔작 [추격자]를 보았다. “물건이 등장했다”는 기자시사회에서 흘러나온 입소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영화는 관객의 바람을 온몸에 안고 쫓는 자와 이러한 기대감을 하나씩 깨뜨리며 쫓기는 자 사이의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미진이 사투하는 모습과 엄중호 곁에 붙여놓은 그녀의 딸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소외되기 쉬운 인물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데뷔작에서 이만한 성과를 거둔 전례가 그리 많던가.

돌아보면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 최동훈의 [범죄의 재구성] 정도가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단의 극찬을 받으면서 데뷔했지만, 관객까지 사로잡은 작품은 [범죄의 재구성]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하드고어에 가까운 스릴러 [추격자]가 보여주는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관람등급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관람 후 만족도 또한 최고치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성급한 언론은 “한국영화의 희망” 이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전형적인 뒷북이다. 알려진 대로 나홍진 감독은 단편영화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단편영화를 찍는 가능성 높은 신인일 뿐이었다. [완벽한 도미요리]와 [한]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의 결과는 그의 말대로 “후회 없이 쏟아 부운” [추격자]로 나타났다. 가히 단편영화의 힘이 상업 장편영화에서 고스란히 발휘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홍진의 등장은 딜레마에 빠진 한국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단편영화를 찍음으로써 영화감독에의 꿈을 시작한다. 그런데, 단편영화라는 것이 그리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다. 길어야 30분 미만인 시간 동안 감독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가운데 압축과 터뜨림을 두루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작비랄 것도 없는 소자본으로 한편에 영화를 찍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로지 필모그래피가 쌓일 뿐이니,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와 재능에 대한 상호부조성 칭찬만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스탭과 배우들에 대한 유일한 보상일 따름이다. 비록 어설프고 허술한 촬영현장이지만 미래의 대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찍은 영화가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담보물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김삼력 감독의 [아스라이]에서 주인공 상호는 자신의 후배가 “영화 좆도 못 만들면서 영화제 돌리지나 말지 쪽팔리게...상금 타먹으려고 영화 찍느냐”고 대들자, “그래도 찍었으면 돌려봐야지, 돈을 구해야 영화를 찍지, 그러려면 작품이라도 부지런히 돌려야지” 않겠냐고 말한다. 재능 없이 열정만 품고 살아온 영화지망생의 서글픈 탄식이지만 그나마 영화제라도 초청 받는 것이 얼마나 운 좋은 일인가. 김삼력 감독만 해도 10년 세월을 단편영화를 통해 내공을 닦으며 때를 기다린 끝에 비로소 상업 장편 [아스라이]를 찍을 수 있었다. 눈을 돌려 보면 주위에 이런 젊은이들이 꽤 많이 있다. 영화제마다 응모해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초청되지 않는 감독들이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들에게 (단편)영화는 삶의 의미이자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단편영화에서 나름의 지명도와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들의 대다수가 상업영화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편영화와 절연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제 앞가림에 여유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더러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이마저도 유명세를 탄 이들에 한정된다. 상업 장편으로 데뷔한 감독이 단편영화 찍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쉬운 대목이다. 차기작을 기다리는 동안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가 단편영화를 통해 초심을 다잡고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점에서 학생시절 인상 깊은 단편 [지리멸렬][백색인]과 [2001 이매진]을 연출했던 봉준호와 장준환이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틈나는 대로 단편영화를 찍어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년 묵은 쑥을 찾는 사내가 있었다. 모친의 병구완을 위해서는 반드시 3년 된 쑥이라야 했다. 대체 누가 쑥을 3년씩이나 묵힌다는 말인가. 세상천지 어디에도 3년 된 쑥은 없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흘렀고 모친은 임종했다. 이 어리석은 남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3년 전에 쑥을 심었더라면 그는 모친을 살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3년 묵은 쑥을 찾을 생각만 했지 쑥을 심어 3년을 기다릴 생각은 안 했던 것이다.

어느 때보다 한국영화가 어렵다는 소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당장 살아남아야하니 자본의 선 순환구조를 위해 자금회수가 빠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참신한 창작물보다 검증된 원본 있는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당연할 테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대작에 한 눈 팔고 흥행의 단맛에 취해있는 동안, 매체들이 스타에 넋이 빠져 여배우의 쇄골 따위를 친절하게 전달하는 동안, 현장비평가들이 구색 맞추기로 독립영화를 언급하는 동안에도 단편영화 감독들은 (너무나 익숙한)경제적 어려움을 당연시 여기며 영화를 만들어 왔다. 나홍진은 이렇듯 척박한 토양이 배출해낸 단편영화의 힘을 상징하는 다른 이름일 따름이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독립영화제를 찾고 졸업영화제에 관심 갖는 것은 될성부른 나무를 찾기 위해서일 터이다. 이왕이면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제작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찾아낸 신인 중에 제 2, 제 3의 나홍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단언컨대 한국영화의 미래는 단편영화에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s://blog.divershigh.com BlogIcon SUPERCOOL.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문화든 기초가 탄탄해야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로 상업영화가 추구할수 없는 새로운 시도등으로 점점 문화는 탄탄해지고 다양해지며 강해질수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잘 봤습니다.

    2008.02.18 17:29 신고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긴장감이었다. 배우는 검은 스크린 속으로 사라지고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도 난 마치 그 현장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렇게 만들었던 살인자와 추격자의 피말리는 전투를 그린 <추격자>. 사실 이 영화는 시사회 전까지 그닥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연기 잘한다는 배우가 있지만 주연은 사실상 처음에 가깝고, 두편의 단편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감독 '나홍진' 또한 장편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과연 신인감독의 작품이란 말인가? <추격자>는 신인이 만든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대단한' 스릴러의 표피를 가지고 있다. 마치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도 맞먹을. 더불어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는 어떠한가? <타짜>와 <용서받지 못한 자>등을 통해 주목할만한 입지를 다지긴 했지만 확실한 임팩트가 없었던 그들에게 이 작품은 최상의 선물처럼 보인다.

같은 목소리를 가진 살인자와 추격자

무엇보다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캐스팅' 그 자체이다. 첫번째 이유는 물론 앞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배우들이 너무나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가 공감할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처음으로 '캐스팅' 얘기를 꺼낸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다. '살인'에 관한 광적인 집착과 잔인한 장면 묘사가 충격을 주긴 하지만 그보다 공포스러웠던 것은 두 배우의 '목소리'였다. 기본적으로 김윤석과 하정우는 저음의 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더욱더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공포속으로 몰아가게끔 만든다. 그리고 울먹일 듯하지만 담담하게 보여지는 외로움의 감정들이 목소리에 묻어난다. 안마시술소를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가족없이 혼자인 '엄중호'(김윤석), 태어났을때부터 혼자였던것처럼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게 굳게 자신의 자물쇠를 가지고 있는 '지영민'(하정우).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장면은 대부분 목소리톤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한사람이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나에겐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살인자'와 그를 '쫓는자'가 실은 사회 정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이다.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을 쫓을 수 밖에 없는. 나는 왜 너의 목소리로 너를 부르는가?

전형성을 극복한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

윤석이 미진의 딸이 있는 입원실에서 묵묵히 앉아있고 창문위로 보이는 먼 산을 보여주는 엔딩 신은 헐리웃 무비의 마지막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철학적으로 보면 중호가 왜 죽을 힘을 다해서 영민을 쫓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여주며 미진의 딸을 통해서 자신의 흔적을 돌이켜보고 왜 사람의 목숨이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어쩌면 그로 인해 자신의 변화를 후에 체험하게 될지도 모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교훈적이고 상투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솔직히 그런 전형적인 장면이 더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극복하고도 남는 '심층적인 이야기의 얼개'이다. 주변인물이 사라지고 중심인물들이 그로 인해 맞부딧히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일부러 그 속에 곁가지 사건들을 심어 놓지 않고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획득하게끔 만든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자주 관객을 시험하는데, 도대체 중호가 찾고 있는 것이 '미진'인지 '영민'인지 아니면 그도 아닌 '돈'인지에 대해 혼돈스럽게 만들며, 영민의 살해 의도가 '성불구'에 관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가지고 있던 악마적 속성 때문인지에 대해서 갈등하게 만든다. 감독은 영민의 살해의도에 대해서 일부러 여지를 심어두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무수히 많은 관객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매춘부'를 상대하면서 느꼈을 '성불구자'로서의 존재에 대한 비참함. 그것은 심문 장면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한다면 '조카'의 머리를 정을 가지고 상처를 준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 것이며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부부를 그렇게도 쉽게 살해하는 것은 또 무슨 의도인가? 이렇게 <추격자>는 알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이 통 답답하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스릴러라는 장르랑 잘 맞아 떨어지는 장치로 느껴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

영민은 가시면류관의 흔적을 그가 죽이는 사람들에게 남긴다. 도구는 정이고 그 방법은 끔찍하다. 또한 교회 앞에 놓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조각한 석재 조각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조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죽음을 당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땅에 묻히거나 어항속에 얼굴을 헌납한다. 예수를 처단한 것은 누구인가? 그 사람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었다. 그러면 지영민은 그런 존재인가? 사회에서 반드시 처벌 당해 마땅할. 어떠한 변명도 동정도 필요없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은 예수를 죽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확실히 찾아서 예수처럼 처단해야한다. 지영민도 그래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존재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살인 사건은 경찰이나 형사가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또한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살인의 추억>은 그래서 분하고 억울한 영화였는데 이 영화 또한 그런 감정을 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예수를 처단한 지영민처럼 우리에겐 그런 존재들이 실제 삶에서 적지 않다. 그래서 더 어지럽고 두려움에 떨어야할 우리의 모습을 <추격자>는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뒤늦게 본 [궁녀]와 ‘미스 호러’

필진 칼럼 2007.11.07 12:35 Posted by woodyh98
2007.11.07

요즘 들어 영화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 안도감이 생긴다. 무슨 얘기냐면, 기자시사회를 포기하고 편한 시간에 극장을 찾아가 관람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면 시사회의 경우 몰입도가 떨어지고 영화가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적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하반기 한국영화 개봉예정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대한 작품은, 이준익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김미정의 감독 데뷔작 [궁녀]와 이명세의 [M]과 원신연의 [세븐 데이즈] 윤성호의 [은하해방전선] 정도였다. 이중 두 편을 제외하고는 이미 개봉한 영화들인데, 시사회를 놓쳤고 개봉 후에도 차일피일 미루던 [궁녀]를 뒤늦게 보았다. 이왕 늦은 거 호젓하게 볼 심산으로 극장을 찾았는데, 새로운 개봉작의 파괴력이 적은 탓인지 개봉한지 3주차임에도 많은 관객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3주차에 접어든 영화가 100만을 갓 넘겼고 그런데도 아직 관객이 많이 들다니. 사극바람 탓일까. 입소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코미디는 이력이 났는데 생각이 복잡해지는 영화는 싫은 때문일까. 그만큼 볼 만한 영화도 적고 한국영화 라인업이 부실하다는 증거일 테다. 시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일 리 만무하지만, 영화판을 지배하는 신이라도 따로 있는 것인지, 아무리 뒤집어 봐도 헤아릴 길이 없음이다. [궁녀]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거론할 수밖에 없는 ‘비밀은 욕망을 먹고 자라난다. 개별적 욕망은 비밀의 메커니즘을 통해 분화하고 조직화 된다.’는 명제.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겹겹이 감춰진 속살을 여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그 장소가 여인의 욕망이 이글거리는 궁궐이고 대상이 궁녀라면 이보다 흥분되는 일도 드물 것이다. 다만,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시작하여 공포로 변질되었다는 이유로 실망스럽다는 세간의 평판이 머리 한구석에서 맴도는 가운데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영화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재의 참신함과 억눌린 욕망을 공간화한 여성캐릭터의 창조 가능성을 통해 감독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점은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드물게 여성캐릭터로 완성된 영화에서 김성령, 김미경, 추귀정의 밀도 있는 연기는 보기 드문 품질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부 언론에서 페미니즘과 결부지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턱 없이 무지하고 영화문법조차 이해 못했음을 공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궁녀]는 궁중여인잔혹사를 잉태한 모방욕망이 남성가부장 즉, 원자책봉과 왕위계승에서 발원하고 있음을 정확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욕망이 욕망하는 것은, 남성이 아니라 남성이 가진 권력 자체이다. 결국 궁녀들의 소망인 승은의 결과물에서 발로된 모성애와 그것의 최종귀착점을 향한 암투와 음모의 피비린내가 거침없는 욕망과 합쳐질 때,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공포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욕망을 이루기 위한 간계와 사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 개입된 스릴러와 공포가 변질되기를 반복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대 여성의 권력이라는 것이 뫼비우스 띠처럼 영겁 순환하는 숙명을 타고난 사생아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감독이 후반부를 공포로 덧칠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폐쇄된 공간에서 피어나는 비밀과 욕망의 서사 위에 긴장감을 쌓아가던 영화가 후반으로 갈 수 록 힘이 떨어지고, 미스터리 스릴러로 출발해 공포로 변질된 것은 분명 감독 스스로 복기해볼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미정 감독의 재능을 감퇴시킬 정도는 아니다. 몇 마디 덧붙여, 김지운이 [달콤한 인생]을 만들면서 ‘우아한 느와르’라는 의미로 ‘우아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면, 나는 미스테리 스릴러에서 출발하여 호러가 되어버린 [궁녀]와 월령 역의 서영희를 ‘미스 호러’라 명명하고 싶다. 무슨 해괴한 요설이냐고? 영화 후반 ‘쥐부리글려’ 시퀀스에서 신참 궁녀들 속에 나타난 서영희의 미소는 근래 드물게 소름끼쳤으니, 여기에 [스승의 은혜]에서 동창을 몰살하는 엽기적 살인행각을 감안한다면 가히 ‘미스 호러’라 불릴 만 하지 않을까?

댓글을 달아 주세요

BLOG main image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영화 비평 매거진 '네오이마주'의 공식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글은 http://neoimages.co.kr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by woodyh98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21)
필진 리뷰 (260)
필진 칼럼 (149)
사람과 사람들 (55)
문화와 세상 엿보기 (10)
그리고... (41)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3,158,697
  • 85

네오이마주(neoimages)와 영화 깊게 읽기

woodyh98'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