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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4 '밥은 굶어도 영화는 본다' [대학 영화동아리 탐방] ② 씨네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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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굶어도 영화는 본다.


씨네꼼의 모토에는 어딘가 절박한 구석이 있다. 황야의 이리처럼 학교를 배회하다가 3년 만에 정착한 곳이 씨네꼼이라는 안경배씨(서울대 법학과 04학번)의 말 속에는 절박함이 구구절절 묻어 있다. 그에게 씨네꼼은 안식처였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영문판으로 읽고 있던 홍지로씨(서울대 영문학과 03학번)는 겉은 지적인 이미지로 똘똘 뭉쳐 있어도, 속은 명랑한 영화청년이었다. 장르 영화의 즐거움과 플롯의 무의미를 체득해 나가고 있다는 홍지로씨. 그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보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사실, 이 사람도 영화에 안달난 사람 중에 한 명인 것 같다. 현 씨네꼼 회장인 강산씨(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는 기무라 타쿠야를 닮은 외모 때문에 일단 첫 눈에 빠져드는 남자다. 영화가 그를 유혹한 걸까, 그가 영화를 꼬신걸까? 그는 영화가 자기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가 아니며 안 된다. 그래서 씨네꼼에서는 하루라도 영화를 보지 않고, 틀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첫 눈에 씨네꼼에는 영화가 있고, 씨네꼼 사람들은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영화’라는 우주로구나! 지금 씨네꼼인들은 영화와 열렬한 연애중이고, 영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씨네꼼에는 소 상영실과 함께 30명 정도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상영실이 하나 더 있었다. 대한민국을 뒤져봐도 이런 공간을 가진 대학은 없으리라. 같은 학생의 입장으로서 마냥 부러울 따름이었다. 인터뷰를 주선해 준 안경배씨는 씨네꼼의 자료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면서 수줍은 듯, 그러나 은근 자랑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운영비로 구입한 DVD와 씨네꼼 회원들의 개인소장 자료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자료들만 봐도 영화를 본 것 마냥 뿌듯했다. 700여 편의 VHS와 1000편에 육박하는 DVD 자료는 씨네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앞으로 타 학교 학생들도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추진할 계획이란다. 인터뷰 하는 중에도 소상영실을 예약한 학생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영화를 보러 오는 학생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씨네꼼 회원들을 보고 있으니, 극장 프로그래머와 관객의 관계가 연상된다. 실제로 씨네꼼 회원들은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알았다고 한다. 이들은 씨네꼼에서 영화의 맛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다다익선多多益善 이 아닐까? 좋은 영화자료는 많이 모을수록 좋고, 그것을 공유할수록 더 좋고, 함께 보면 더더욱 좋다. 여기에 큰 스크린과 좋은 영사시설이 갖추어지면 금상첨화. 이 인터뷰에는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명랑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도훈 : 우선, ‘씨네꼼’을 소개해 달라.

강 산(서울대 인문학과 06학번, 現 ‘씨네꼼’ 회장) : ‘씨네꼼’은 엄밀히 말하자면 동아리는 아니다. 보통 동아리들이 동아리 연합회 소속인데, 씨네꼼은 복지과 소속이다. 복지과에서는 학생들의 문화적인 복지혜택에 관한 일을 한다. 복지과에서 하는 일을 예로 들자면 학생회관에 음악 감상실 만들어서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고, 우리 동아리가 있는 건물인 두레문화회관에는 씨네꼼이라는 영화 감상실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씨네꼼은 학생들을 위한 복지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 씨네꼼이 생긴 건 1993년도다. 당시 언론정보학과 학생들이 이 공동체를 만들면서 학교 측에 재정적인 지원과 공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에서는 명목 없이 지원을 해줄 수는 없으니까, 봉사장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한 거다. 봉사장학생은 장학금을 받고 감상실에 오는 학생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자료들을 관리한다. 한 명당 20만원이 지급되는데, 그걸 개인이 갖지 않고 동아리 통장에 입금해서 씨네꼼 운영비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좋은 관행이 오래전부터 굳어져 왔다. 씨네꼼은 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프로젝트에 있는 렌즈가 고장 났다고 하면 갈아주기도 하고, 엠프를 사주기도 한다. 때로는 한 학기 DVD구입비로 일정금액이 지원된다.


이도훈 : 씨네꼼에 가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누구먼저 할까? 학번 순으로 할까?

홍지로(서울대 영어영문학과 03학번) : 내 이야기는 영화와 별 상관없고, 또 울적하다. 1학년 때는 그저 그런 아이였다. 과방에도 안 나갔고, 수업 듣고 나서 공강 시간에는 다음시간 공부하고, 수업 끝나면 사는 곳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아이. 물론 친구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 채팅으로 알던 친구하나가 아는 척을 하더니 나랑 친했다는 것처럼 굴더라. 한 날은, 그 아이가 씨네꼼이란 곳에 가입했다고 말을 했다. 물론 처음부터 내게 들이대지는 않았고.(웃음) 그러던 그 녀석이 다음 시간에는 자기가 무슨 영화를 봤는지 이야기하고, 또 다음 수업시간에는 비디오를 하나가지고 와서는 씨네꼼에서 빌려왔다고 말을 하는 거다. 그게 <이지 라이더>이었다. 나는 그 영화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지. 그러더니 기어코 이 친구가 날 보고 씨네꼼에 가입을 하라면서 넌지시 말하더라.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라는 사람은 정말 비사교적이었다. 나를 잘 알던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오히려 내 이런 성격과 분위기가 씨네꼼과 잘 어울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씨네꼼에 와봤더니 진짜 침울한 게, 쇼킹했지. 내가 제일 말이 많더라. 그래도 공간이 넓고, 아늑한 분위기라서 씨네꼼이 마음에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씨네꼼이 망해가던 때였다. 한 학번에 한 명밖에 없었고, 내 바로 한 학번 윗선배는 탈퇴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유지만 되는 상태였다. 그래도 망해가는 분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도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01학번이 대단했다. 마침 03년도에 새내기가 5명 정도 가입하고, 그 친구들이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세미나가 가능해졌다. 제일 처음 배운 게 토마스 샤츠가 쓴 <헐리우드 장르구조>였다. 물론, 세미나에 참석해도 하나도 이해를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DVD가 덜 보급되었던 때라, 프레디어 아스테어의 뮤지컬을 한 편도 보지 않고서 책에 있는 글만 읽고는 백 스테이지 뮤지컬이 뭔가를 추측해가면서 공부했었다. 이렇게 여차저차해서 동아리에 남게 된 거다. 나란 녀석은 씨네꼼에 가입하기 전에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인생이 꼬이고, 영화에 낚인 거다. 혹시 또, 궁금하신 거 있나?

안경배(서울대 법학과 04학번) : 나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학교 다니면서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그러다보니 학점은 1점대 2점대로 기어 다녔다. 당시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라는 생각만 하고 다녔다. 학생운동도 한 번 기웃거려보다가, 그렇게 방황하기만 3년. 어느 날엔가 길을 지나가다가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메인으로 나온 잡지를 봤다. 올 컬러로 된 잡지면서도 1000원인 게 너무 놀라웠다. 그게 필름 2.0이었다. 당시 정우성이랑 김태희가 <중천> 촬영을 들어갈 즈음이었고, 아마 <브로크백 마운틴>이 서서히 입에 오르기 시작하고, 개봉작으로는 <왕의 남자>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이 있었다. 어 이 영화 되게 재미있겠는데! 하는 생각에 하이퍼텍 나다를 처음 가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을 봤다. 그 영화를 두 번씩 보고. 그 즈음해서 극장에 걸렸던 빔 벤더스의 영화나 짐 자무시 영화를 봤다. 그렇게 감독의 이름을 하나 둘 알아가던 중에, 빔 벤더스 영화 중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보는데 엔딩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이름이 언급되더라. 오즈 야스지로! 그 사람이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에 학교에서 ‘오즈의 칼라 영화’라는 영화제 포스터를 봤다. 그 영화제가 여기 씨네꼼에서 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는 내가 3학년이라서,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영화제가 3월 달에 했는데, 6개월 정도를 가슴에만 담아두다가 어렵게 연락을 해서 찾아왔다. 연락해보니 3학년이라도 대환영이라고 하더라. 근데 막상 와보니, 환영은 무슨. 처음에 왔을 때 왕가위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도 신경도 안 쓰고 끝나고 뒤풀이에 가도 찬밥 신세더라.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왠지 모르게 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꿋꿋이 버텼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곳의 특성상 한 번 발을 들였다가 쉽게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경계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이도훈 : 아니, 두 분 이야기만 들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여기가 너무 우울해 보인다.(웃음)

홍지로 : 아니다. 경배 씨가 들어올 때만 해도 신입회원도 많을 때고, 나름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있을 때다. 원래 씨네꼼의 전통대로라면 처음 오는 신입회원에게는 6개월 동안 말을 걸지 않는다. 원래 그랬었다. 04년도부터 조금 부드럽게 신입을 맞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실패한 거 같다. 오는 사람들마다 따뜻하게 했더니, 사람들이 여기를 사교장으로 영화는 안 보고 사람만 만나고 가고는 하더라. 그 전통을 이어갔어야 했다.(웃음)

강 산 : 나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과 생활보다는 동아리활동을 더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 때는 동아리를 두 개 하고, 2학기 시작하기 직전에 여기 가입했다. 1학기 때 영화가 아닌 다른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영화동아리에 들지 않은 게 내 스스로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학교에 ‘얄라셩’이라는 동아리가 있기는 하지만 제작중심이었고, 또 나는 편하게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동아리 가입하는 곳마다, 내가 가입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늘 06학번은 나 혼자더라. 나 때문에 동아리가 망해가는 것처럼 느껴져서 죄스럽더라.(웃음) 앞의 두 사람의 말을 들서 알겠지만, 씨네꼼 특성이 무관심이다. 내가 처음여기 왔던 때가, 8월 말이었는데 11월말이 되어서야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는 와서 인사 나누고, 선배들은 나는 안중에도 없이 책만 보고, 그러면 나는 굴러다니는 DVD 하나보고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와서 혼자 영화 한편 보고 집으로 가는 식이었다. 본격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하게된 건 왕가위 세미나 때다. 나 역시 이 무뚝뚝한 분위기에 끌려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왕가위 세미나 참석했을 때는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더라. 그런데 사람들이 정말 재미있게 세미나를 해서 그 모습에 약간의 동경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도훈 : 씨네꼼에서 진행하는 세미나가 어떤 것이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해온 세미나를 간략하게 들어보고 싶다.

홍지로 : 이런 소리를 하면 또 고학번이나 꼰대 취급을 받을 것 같은데. 먼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씨네꼼이 제 2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선배들이 주도하는 세미나에는 기본적으로 텍스트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토마스 샤츠의 <헐리우드 장르의 구조>를 같이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새내기들이 모두 영화에 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일단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자체가 힘들었다. 세미나에서 다룰 책을 읽어오고 누군가 발제를 하고 혹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토론을 했다. 이런 작업만으로도 시간이 잘 가더라. 물론 항상 영화보기를 늘 병행했다. 2003년에는 웨스턴, 트뤼포, 필름 누아르, 그리고 나서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주제로 세미나를 했고, 히치콕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약간은 치열하게 2003년에서 2004년 여름을 보냈던 것 같다. 당시 세미나는 텍스트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당연히 그 사이에 <필름아트>라는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내가 군대를 간 건 2005년인데, 군대를 갔다 온 사이에 많이 바뀐 것 같다.

강 산 : 동아리에 들어온 게 2006년이다. 나는 이곳이 작가위주론 위주의 세미나를 하는 곳인 줄 알았다.

홍지로 : 그 부분에 관해서 첨언을 하자면, 2005년 전까지의 세미나는 작가주의를 한 번하고 나면 다음에는 특정 영화사조에 관해서 논의를 했다. 두 가지를 병행한 거다. 그래서 한 학기에 두 번의 세미나를 하고 상영회를 개최했다.

강 산 :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는 타르코프스키, 왕가위, 자끄 따티에 관해서 세미나를 했다. 씨네꼼에 들어와서 타르코프스키나 자끄 따티의 이름을 처음 들은 셈이다. 감독중심으로 진행되는 세미나에만 참여하다보니 “작가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곳이구나”란 편견을 가진 것 같다. 그런 오해가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만 영화를 보는 구나”란 착각도 했었다. 조금 다른 경우는 2006년 겨울에 홍콩무협 영화를 가지고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

홍지로 : 강산 씨가 지금 말한 부분에서 씨네꼼에 약간의 단절이 일어났다. 예전에 씨네꼼 사람들은 군대를 늦게 가는 편이었다. 회장을 하더라도 4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었다. 2005년 여름 즈음해서 기존에 사람들이 군대를 가고, 회장도 임기가 끝나고서는 동아리에 나오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04년에는 열심히 세미나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2005년이 되어서 탈퇴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세미나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진 거다. 그 이후의 세미나는 선배들이 세미나를 진행한 걸 본 약간의 깜냥이 있는 사람들이 세미나를 진행했다. 예전처럼 텍스트를 스스로 선정하고, 영화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로 가입한 사람이 영화를 아주 잘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때부터 세미나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정착한 듯하다. 씨네꼼 세미나에서 텍스트의 힘이 사리지기 시작했다. 아, 물론 영화를 보기 위해서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관련된 텍스트를 읽는 훈련이 없어지면서 연쇄작용처럼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는 습관도 사라진 거다.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체계적으로 사유하는 모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영화를 보고 감상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강 산 : 지금까지 이야기가 2006년까지의 씨네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말을 잇자면, 2007년이 되어서 2005년에 군대 갔던 선배들이 전역을 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이 세미나에 간접적으로 개입을 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다 같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쳤지만, 선배 한 분이 와서는 체계적으로 텍스트를 골라주기 시작했다. 그제야 한 권의 책을 선택해서 세미나를 하기 했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건 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였다. 그리고 나서 작가론으로 기타노 다케시 세미나를 했다. 텍스트로 세미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세미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드웰의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사관리 엄정화’라는 게 우리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사실, 학생들이 희귀한 상황은 다른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학사관리 엄정화’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동아리 생활에도 타격을 준 것 같다.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입회원이 와도, 영화는 정말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데, 오랫동안 세미나를 할 분위기는 조성이 안 되는 거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이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오고 갔다. 회장이 되고 나서는 기존에 남아있던 멤버랑 새로 들어올 사람들 간에 기본 전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사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것보다도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거다. 신입회원들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론을 공부한다거나, 형식적인 분석을 한다고 하면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히는 분들이 있었다. 동아리에는 자료가 계륵(鷄肋)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료를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정회원을 받으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 모임이 계속되어야하고, 동아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모임에 참여할 동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될까? 만약 이 상태에서 더 진지한 세미나를 고수한다면 뒤로는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기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 한 개인의 것도 아닌데. 이런 고민 끝에 올해는 꼭 세미나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내세웠다.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한 편씩 뽑아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걸로 바꾸게 되었다.

(이 때 어디선가 투덜투덜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재 세미나에 대한 불만인가보다.)




이도훈 : 이 상황에서 좀 더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모임의 정체성을 어필해야 할 것 같은데?

홍지로 : 특별히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동아리에서 하고 있는 세미나가, 영화 한편을 소개하고 방식인데, 지난겨울에 있었던 운영회의에서 나온 대안적인 세미나 방법이다. 지난겨울에 보드웰의 <영화의 내fp이션1>을 가지고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서 다음 학기 세미나 운영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 중 한명이 기존의 세미나에 대해서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모두가 영화 평론을 할 사람들도 아니고, 영화를 업으로 할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깊게 파고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회의에서는 그런 의견을 백분 받아들여서 지금의 세미나 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하고 감상평을 나누는 방식으로. 그런데 세미나를 바꾸어도 어차피 나오지 않던 사람은 계속 나오지 않고, 꾸준히 나오던 사람은 세미나가 어떻게 바뀌어도 나오더라.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우리가 <영화의 내레이션 2권>으로 이번학기 세미나를 했어도 결과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같다는 거다. 타 학우들을 생각해서 친화적으로 바꾸어도 변화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나 역시 보드웰의 <영화의 내래이션 2권>을 주장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대다수가 그걸 꺼려하더라. 당시 사람들이 나와 함께 가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냉정하게 주장을 펼 수 없었다. 동아리에서는 사람들간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니까. 평소 세미나에 부담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종의 대안이었다. 가볍게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그러다보면 진지한 사유들이 오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잘 안되었다고 본다.


이도훈 : 씨네꼼은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 보고 싶은 영화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씨네꼼 자체적으로 상영회를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에 어떤 의의를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여기서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홍지로 : 내 입장은 03~04년도와는 조금 달라졌다. 자꾸 꼰대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웃음) 2003~04년에는 저런 상영회를 해도 관객이 많이 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상영회 자체에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트뤼포의 영화를 틀었을 때 관객이 많았는데, ‘필름 느와르'라는 주제로 상영회를 하니 관객이 더 많이 오고, ’뉴 아메리칸 시네마‘때는 살벌한 영화를 트는데도 사람이 많이 오더라. 히치콕의 영화를 틀 때는 그 보다 더 많은 사람이 왔었다. 당시 씨네꼼은 우리가 어렵게 세미나를 하고 나서 그 결과물로 영화를 틀어줬을 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관객 맛을 알았던 거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영화를 틀어주는 우리는 어떤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더라. 이제는 상영회를 해도 한두 명 오는가 하면,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데 관객 친화적인 영화를 틀어도 사람들이 잘 안 오는 건 마찬가지더라. 관객 친화적인 영화라면 뭘 틀어줘야 되는 건가?

안경배 : (불쑥) <반지의 제왕> 같은 거!

홍지로 : 관객에게 더 가깝게 다가기 위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이랑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타인의 삶>을 묶어서 튼 적이 있다. 그래도 사람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강 산 : 지로 씨가 관객의 맛을 알았다면, 제가 동아리에 왔을 때는 상영회 때 관객이 2~3명오는 수준이었다.


이도훈 : 강산 씨는 정말 침체기 때 들어오셨군요. 역시 앞에서 말한 저주가..(웃음)

홍지로 : 이제는 상영회 자체에 의의를 둘 뿐이지 관객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안경배 : 관객의 발길이 뜸해진 건 앞에서 ‘학사관리 엄정화’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외부적인 요인도 작용하는 것 같다. 학사엄정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영화관이 늘어났다는 거다. 90년대 때만해도 영화를 좋아하는 여러 학생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서 ‘문화학교서울’이라는 공간에 모일 필요가 있었다. 그곳에 가야만 구할 수 없는 귀중한 영화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 스폰지하우스, 하이퍼텍 나다같은 예술 영화관들이 많다. 오늘날 희귀한 자료를 구해서 상영회를 열고, 한 공간에서 둘러앉아서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진 거다. 영화관이 다양해지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강 산 :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좀 더 생각한다면 상영회를 하는 것보다, 감상실의 기능을 좀 더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감상실의 기능에 집중하다 보면 동아리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 정말 그렇게 되면 봉사장학생이 운영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내가 군대를 가고, 전역 후에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누구랑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한다.


이도훈 :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아리에 대한 애착을 듣고 싶다. 세미나를 끝나고 나서 얻는 성취감이나 상영회 때 가지는 관객과의 교감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나로서는 이 공간이 대학 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홍지로 : 타이밍을 잘못 맞추셨네. 난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중인데. 나는 여기서 처음 영화를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어마어마하다. 영화가 무엇인지를 씨네꼼에서 처음 배웠고, 그걸 강화시켜 나갈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이 모임이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결속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졸업한 사람이 갑자기 뜬금없이 문자가 와서 “이 영화 죽이더라!” 라고 하면 그 영화에 대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는 조용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결속력이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남아 있는 거다. 나는 씨네꼼의 ‘제2의 전성기’를 함께 한 사람이라서 그 때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이곳에서 영화를 체험하고 배웠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화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한 20명 오게 되면, 그 중에 나같은 녀석도 한 명쯤 나올 거라고 믿고 있다. 덧붙여서 나는 영화를 보여주는데 주목하고 싶다. 혼자서 보는 것보다 내가 본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씨네꼼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으면 한다. 참고로 이번학기 중에 내가 주관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씨네꼼에서 얻는 즐거움은 영화를 공유하는 데 있다.


이도훈 : 보여주는 재미를 위해서라도 세미나를 강화해야한다?

홍지로 : 물론 그렇다.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세미나와 상영회를 하고 싶다. 저는 아직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웃음)


이도훈 : 인터뷰하면서 느끼는 건데, 여기는 다른 동아리처럼 위계질서가 있는 곳은 아닌 듯하다. 내가 재학 중인 학교 동아리만 해도 알게 모르게 군대식의 군기가 있었는데. 전통 이 있다고 하는 동아리는 대다수 선후배간의 질서가 있는데, 여기는 “저사람” “이사람”하는게 평등하다고 해야 되나.

홍지로 : 나 가입할 때도 사람들 사이가 유연했다. 03학번인 내가 08학번과 반말하고 그런다. 나는 강산이 06학번이란 걸 오늘 알았다.(웃음)
강 산 : 나는 00학번까지 말 놓고 있다.


이도훈 :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안경배 씨의 이야기도 좀 들어보자. 씨네꼼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배 : 2007년을 보내면서 주변에서 제일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씨네꼼 사람들이다. 요즈음 한국 학생사회에서 “나는 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영화 친구들 사이에서는 멋있어 보여도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거다. 사실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이기도 하다. 자신의 감수성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다. 자기의 감수성을 드러낼 때 그 감수성을 곧이곧대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반면에 씨네꼼은 내게 아주 관대했다. 씨네꼼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사소한 일상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서 낙오자처럼 살다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에 씨네꼼에 들어와서 안락함을 얻었다. 동아리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다.


홍지로 : 여기에 이상한 디테일이 있다. 내가 새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정기 모임에만 나와서는 절대 씨네꼼에서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거다. 이상한 감정들이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웃음) 또, 여기서 하는 일들은 항상 시간을 탕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동아리에서는 항상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 요즘 같은 효율적인 시대와는 맞지 않는 거지.


이도훈 : 하긴, 요즘은 실용주의 시대다.(웃음)

강 산 : 나야말로 씨네꼼에 들어와서 인생이 낚인 거 같다. (하하) 씨네꼼에 들어와서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영화 뒤에 감독이나, 영화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전에는 극장에서 영화 보고나면 “재미있다” 한마디 하고 끝나는 정도였다.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뒤에 영화 만든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서 너무 뿌듯하다. 덩달아 나도 영화 일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요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중 하나가, 학교가 학원처럼 느껴진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프로젝트식으로 사람들이 모였다가 끝나면 헤어지지 않나, 참 이상하다. 반면에 씨네꼼 사람들은 2~3년째 얼굴을 보고 있다. 가장 좋을 때는 여기 사람들과 같은 영화에 열광할 때다. 저마다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가 다를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리스트에 있는 영화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와 겹칠 때가 있다. 그럴때 굉장히 기쁘다. “이거 정말 좋다”, "이거 다시 보고 싶다“ 하면서 같은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신기하다. 당연히 밖에 나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아이 취급받을 거다. 나 역시 아웃사이더인가 보다.(웃음)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람들이 되게 바쁘게 산다. 학교에서는 저 학번 일수록 바쁘다고 하던데. 반대로 여기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곳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동아리에 자료가 많은 것도 좋고, 서로 영화를 추천해주는 문화가 있어 마음에 든다. 사실, 내게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사는거랑 똑같다고 말한다. 영화가 점점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서 다른 일은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이참에 이 정도까지 왔으니 영화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있다. 덧붙여서 영화로 씨네꼼이 좋은 이유는 영화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도훈 : 경배 씨는 고시를 본다고 하던데, 그럼 영화는 ?

안경배 : 주변에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영화계에도 법조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나름의 타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시에 합격해서 돈을 벌고 영화일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것도 참! 돈을 벌고 나서라는 전제를 두고 한다는 게, 단순히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쪽에서 일을 한다면 제작이나 배급에 관계된 해보고 싶다. 특히 한국영화에서 배급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도훈 : 예전에 서울대 법대 교수 안경환 씨가 쓴 <이카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법정 영화와 관계된 리뷰를 모은 책이더라. 법 정신에 기반 해서 영화를 소개하는 건 어떨까?(웃음) 이제 시선을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 극장에서도 영화를 볼 텐데. 요즘 뜨거운 감자인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다.

안경배 : 정치적으로 불법 다운로드를 반대하기 보다는, 단순히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게 싫다. 씨네꼼 생활을 하다보면 다운받는 영화 수 보다 더 많은 영화가 여기 자료실에 있어서 굳이 다운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홍지로 : 항상 강조하는 건데, 여기가 괜히 영화 공동체가 아니다. 혼자서 영화를 보는 것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은 다르다. 지난번 세미나 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논리적인 고찰의 결과가 아니라 체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씨네꼼에는 상영실이 있고, 매주 이 상영실에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안경배 : 씨네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많이 모여서 다 같이 보면 좋고, 스크린이 크면 클수록 더 좋다는 거다.

강 산 : 여기 가입하기 전에는 불법다운로드 받아 디빅스로 영화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동아리에 들어와서 영화를 같이 보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배웠다. 덩달아 영화에 대한 사랑이 생기고,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저절로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지 않게 되더라.


홍지로 : 최근 본부 학생처에서 씨네꼼의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거기서 내세우는 논리는 “이제는 손바닥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라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참 난감하더라.

강 산 : 휴~(한숨)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늙었던 것 같다. 본부 학생처에서 한 분이 하는 말이 요즘 같은 퍼스널시대에 왜 영화를 상영실에서 보냐는 거다. 학생처에서 씨네꼼 공간을 축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들은 자보를 써가면서 이 공간을 지켜냈다. 씨네꼼의 논지는 많은 문화를 지켜내는 것 중에 영화 문화를 지키는 것도 하나라는 거였다. 영화가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말하면서, 사실은 우리도 사정도 좀 봐 달라는 식이었고, 씨네꼼 같은 공간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있어야 되지 않겠니?” (웃음) 라는 주장이었다. 학생처랑 충돌하면서 정말, ‘말이 안 통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도훈 : 요즘은 PMP나 핸드폰으로도 영화를 보는 시대다. 최근 영화 보는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스크린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그리고 다시 PMP 액정과 같이 더 작은 사이즈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런 세태가 영화 미학을 망친다는 생각이 든다.

홍지로 : 우리 스스로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로 치열한 논쟁을 한 적은 없다. 작은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정말 영화를 본 걸까? 우리로서는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게 너무 당연하다. 가끔씩 새내기들이 TV 드라마랑 영화랑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묻는다. 가장 간단하게 대조를 하자면 일단 볼륨을 끄고 영화나 TV 드라마를 볼 수 있느냐? 영화는 볼륨을 끄고서 봐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반면 TV 드라마는 볼륨을 끄면 볼 수가 없다. 영화라는 매체가 본질적으로 굉장한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씨네꼼 상영실에서 보다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보면 내가 다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젝트나 와이드 TV는 시네마스코프를 틀면 위아래로 좁아진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스탠다드 사이즈가 와이드 스크린이랑 어떻게 다른 건지, 시네마스코프가 왜 시네마스코프인지 이해를 할 수 있다.


이도훈 : 최근 영화 저널이 죽어가고 있다는 쓴 소리가 많다. 씨네꼼 사람들도 각자 영화 글을 쓰고, 영화저널을 읽을 텐데. 특별히 좋아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안경배 : 최근 <씨네21>을 보면서 이 잡지도 광고에 지배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씨네21>은 전영객잔도 있고, 한국에서 비평이 온전히 실릴 수 있는 잡지라서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잡지를 보는 데 광고가 너무 많아서 눈에 거슬리더라. 특별히 좋아하는 글이라면 장병원 편집장의 글을 좋아한다. 예전의 밀양에 관해서 쓴 글을 보고 감명 받은 적이 있다.

강 산 : 특별히 좋아하는 비평가가 있는 건 아닌데, 정한석 기자의 글을 좋아하고 김영진, 허문영 평론가를 좋아한다. 정성일 평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그닥...

안경배 : 정성일 평론가는 되게 빨리 쓰는 것 같다. 읽어나가다 보면 이 사람은 자기가 쓰면서 비문이 나와도 퇴고를 잘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성일은 예전에 정윤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꼭 거치게 되는 평론가인 것 같다.

홍지로 : 정성일은 자기 글에서 오류가 발생을 해도,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 같다. 예를 들어 <괴물> 리뷰를 보면 분명 영화를 잘 못 본 부분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 본 것에서 조차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왜 잘 못 본 것일까?”하는 식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성일이나 어떤 평론가에게도 존경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정성일 글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도, 좋은 글도 많다. 그가 쓴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정말 좋은 책인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임권택의 그 많은 영화 중 달랑 1편 보고서 그 책을 봤는데, 보면서 울었다.(웃음)


이도훈 : 영화 비평을 읽어야 하는 이유,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고 싶다. 사실 영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네이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영화 정보를 얻고 있다.

강 산 : 나 같은 경우에는 영화를 보고 나서 평론을 읽는 편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거나, 같은 영화를 다르게 해석한 시선을 보고 싶을 때, 혹은 영화 외에 다른 정보를 얻고 싶을 때 평론을 읽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도 영화로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기능적으로 소비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태도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평론을 읽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이도훈 : 홍지로 씨에게 영화 비평은 참고서 같은 것인가?

홍지로 : 아니다. 영화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영화 비평이 필요한 이유를 뼈저리게 느낀 것은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다. 히치콕 세미나를 할 때 로빈 우드가 쓴 글을 읽었다. 당시 원서를 번역해서 세미나를 했는데, 그 사람 문장이 번역하기 힘들어서 무진 애를 써가면서 세미나를 준비를 했었다. 내가 번역했던 부분은 로빈 우드가 <이창>에 관해서 쓴 글이었다. 로빈 우드는 아무런 이론도 내세우지 않고, 영화에 나온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나는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그가 글에서 지적한 장면을 보지 못했던 거다. 그런 부분이 나를 감동시켰다. 비평의 기능 중 하나가 영화에서 못 본 장면들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영화는 한 번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사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흘려보내기 쉬운 예술이라서 오늘날 천대받는 예술이 된 것 같다. 영화는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비평은 그 소비흐름을 붙잡는 기능을 하는 것 같다.

안경배 : 아주 어마어마한 단어로 말하면 우리에게 영화라는 건, ‘소통’이다. 예를 들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같이 사람들 중 누군가가 글을 쓰고, 그걸 다른 사람이 읽는 거다. 그러면 글을 읽는 사람은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그걸 통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눌 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홍지로 : 빙 둘러 앉아서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할 수 없는 말들을 글로 쓸 때가 있다. 영화 글은 한편으로는 더 낳은 소통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이도훈 : 개별적인 영화 선호도가 궁금하다. 현재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홍지로 : 재미있겠다. 리스트를 뽑는 건가?


이도훈 : 하하, 너무 식상한가?

강 산 : 내가 이 부분에서는 말이 제일 적을 것 같으니, 먼저 말하겠다.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그 중에서도<쓰바키 산주로>나.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 그리고 셈 페킨파의 영화를 좋아한다.

안경배 : 예전에 키노를 뒤적이다가 본 기사 중에 이와 유사한 게 있던데, 단서를 달더라. 내가! 지금! 좋아하는 영화. 최근 씨네 21에서도 10편을 꼽을 때 몇 년도에서 몇 년도 까지 나온 영화에서만 꼽으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 한정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우디 앨런을 거의 교주처럼 받든 적이 있었고, 버스터 키튼이나 막스 브라더스를 좋아한다. 요즘 관심가지는 영화들 중에는 한국 독립영화도 있다. 한국 독립영화는 우리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잘 아는 언어를 쓰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은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런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전과는 달리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홍지로 :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 인데, 하나는 장르고 다른 하나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르는 신중하고 엄밀하게 말해야한다. 예를 들어 저널들이 <올드보이>를 스릴러라고 갖다 붙이는 식으로 장르의 개념을 쓰는 걸 정말 싫어한다. 내가 의미하는, 그리고 바라는 장르의 개념은 지극히 지역적이고, 산업적이고, 시대적인 개념이다. 1930-50년대 만들어진 할리우드 웨스턴, 갱스터, 멜로드라마, 뮤지컬, 그리고 1960-70년 홍콩 무협영화들, 일본의 찬바라 영화들, 프랑스 범죄영화, 홍콩의 범죄 영화들을 장르 영화라고 말한다. 장르를 처음 볼 때에는 단순히 보는 즐거움만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더라. 그 이유는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이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장르영화들은 산업적인 토대가 없으면 절대 만들어 질수 없는 작품들이다. 정말!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를 수백 편을 찍어내면서도, 항상! 비슷한 배우들이 나오고, 비슷한 영화를 찍어봐서 너무 익숙해진! 기술자들이 뚝딱뚝딱 거리면서 짧은 시간 안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르 시스템. 나는 이 장르 시스템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장르에 관한 생각을 하다보면 한국의 영화광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적고, 영화로 채우지 못한 것을 책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특정 장르에 속하는 영화 몇 편을 보고나서 그 장르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버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장르 영화들은 보면 볼수록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장르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는 특정 장르가 궁금하면 그에 속하는 영화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장르라는 말은 비슷한 영화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그 영화들을 묶어서 부르기 위해서 편의상 나온 개념이다. 영화가 먼저 있고 개념이 나중에 따라 온 셈이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 요즈음 나는 비슷한 유형의 영화들을 모아서 보고 있다.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함께 나오는 영화가 10편 있는데, 그 10편을 한꺼번에 보는 거다. 두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항상 똑같다. 심지어 단 한 편을 봐도 이 영화들의 스토리나 컨벤션을 꿰뚫을 수 있다. 영화가 매번 똑같기 때문에 1편 보고도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출연하는 영화의 중심은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이 1933부터 1949년까지 만든 10편의 영화를 보면 거기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 10편이 영화 속에서 계속 유지되는 컨벤션과 변화하는 컨벤션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10편의 영화를 묶어서 시간 순서대로 보게 되면 그 영화가 나왔을 당시 관객들이 이 두 배우와 함께 늙어가면서 느꼈을 감흥이 재현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내 스스로 영화 보는 기쁨을 찾기도 한다. 또, 요즘에는 21세기 홍콩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연히 두기봉의 영화를 본 순간 홍콩 영화계는 여전히 내가 말한 장르시스템으로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더라. 장르영화 말고는 플롯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건이 별로 없는 영화들, 요즘 영화 리뷰를 보면 줄거리 요약을 하고 스포일러도 말하고 있지 않나. 줄거리를 통해 영화의 맥락을 소개하는데, 과연 그 방법으로 영화의 정서가 온전히 담겨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줄거리로 수렴이 되지 않는 영화, 플롯이 있으면서도 플롯은 핑계일 뿐인 영화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최근에 <와호장룡>을 보았다. 이 영화가 정말 경악스러웠던 것은 정말 뻔한 무협 영화 플롯을 가지고 있다가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척하다가 액션이나 회상구조가 들어가면 영화가 맛이 가버리더라. 등장인물들이 회상하기 시작하면 20분 동안 옛날 일을 생각하는 거다. 20분 동안 회상이 나오다가도 다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말, <와호장룡>은 플롯에 관심이 없는 영화구나! 이 영화의 액션도 무협영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눈요기가 아니라, 영화의 주제가 날아다니는 것 자체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제는 씨네꼼 사람들과 스즈키 세이준의 <문신일대>를 봤다. <문신일대>는 신파 야쿠자 멜로드라마 뿐 인데, 그 틀을 완전히 깨부수는 시네마틱한 박력이 있더라. 이처럼 관습을 깨고, 장르의 틀을 깨부수는 영화들을 보는 체험이 즐겁다. 그래서 장 피에르 멜빌이나 존 카사베츠의 영화를 보면 놀랍고, 즐겁다.


이도훈 : 취향을 물었던 이유는, 우리가 관심 가지고 있는 영화들 속에서 동시성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요즘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지금 20대를 실패한 세대인 것처럼 불쌍하게 보는 게 좀 싫다. 나는 요즘 우리 세대를 대변해줄 영화와 동시대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에 목말라 있다.

안경배 : 윤성호, 양해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는구나! 하면서 말이다. 10대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면서 아직 20대는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은하해방전선>을 봤을 때 흥분했었던 이유는 물론 구성이나 편집도 특이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영화 언어가 출현하고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윤성호를 한국의 고다르라고도 하지 않나. 나는 <은하해방전선>이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봤을 때 어떤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앞으로 이 두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궁금하다.


이도훈 : 독립영화에 가능성이 있다면 충무로는 말 그대로 참담하다. 지금 한국영화를 보면 90년 후반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제자리걸음이다. 한쪽에는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하는 층이 있고, 다른 쪽에는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이 형성하는 지층이 있다. 문제는 전자에만 피가 수혈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동훈과 나홍진의 출현이 반가우면서도 약간 씁쓸했던 건, 이 두 사람의 등장이 코리안 뉴웨이브가 만들어놓은 지층 안으로 흡수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 이후로 포스트 뉴웨이브라고 하던 감독층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매끈하게 장르 영화 잘 만드는 사람들의 층만 두터워지고, 반대로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이 만들었던 영화의 지층은 그대로 인 것 같다. 두 층만으로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볼 만하지만, 아직까지 확신은 생기지 않는다. 물론 내 스스로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김지운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참, 김지운은 싫어하는 쪽이다.(웃음) 그들은 여전히 영화를 잘 만들고 있으며, 한국영화에서는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인 만큼 새로운 감각과 센스를 가진 감독이 나와야 한다. 벌써부터 우리가 감독과 같이 늙어가면서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홍지로 :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기존에 있는 감독들이 잘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최고의 정점에 올랐던 시기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에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안경배 : 1970-80년대 소설이나 시가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이나 8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이 당대 정서를 대변해준 것처럼 우리세대를 대변해줄 새로운 언어가 있었으면 한다. 시대와 세대를 엮어줄 매개체를 찾으려고 했을 때 소설이나 시는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우리세대에게는 영상언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영상언어가 새로운 화법으로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쉬운 점도 있다. 약간 종교적인 믿음 같기도 한데,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홍지로 : 영화관이자 세계관의 차이인 것 같은데. 나는 영화가 나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기대를 가져 본 적은 없다. 심지어 나는 우리 세대가 어떤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세대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을 반영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만드는 사람보다 관객의 입장을 생각하는 편인데, 설령 그 세대를 대변할 영화가 나왔다고 해도 관객들이 찾아서 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도훈 : 누벨바그 세대가 가장 부러운 점은 그들의 작품보다는 시대의 분위기다. 고다르, 로메르, 샤브롤, 트뤼포는 각자 자기를 위한, 세대를 위한, 계급을 위한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더 부러운 건, 그들이 만든 영화에 열광했던 친구들이 많았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한국영화를 생각하면 우울하기만 하다. 플롯과 내러티브는 있어도 언어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니 우울해진다. 최근에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인데,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우리도 저런 영화를 만들어야만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우울한 세상이 오기 전에라도 통쾌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너무 안드로메다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침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회장님 말씀 한 번 듣고 마치기로 하자.

강산 : 앞으로 씨네꼼이 리모델링을 해서 상영실이 두 개 만들어지게 되면 감상실 기능이 더 활발히 돌아갈 것 같다. 거기에 기대를 하고 있다. 씨네꼼의 고유기능인 영화 감상의 기능을 잘 유지하고 살려서, 영화의 매력에 빠질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홍지로 : 우리가 영화를 보여주는 입장인 프로그래머처럼 느껴진다. 다들 영화를 보여주는 사람 같다.


이도훈 : 이러다가 다들 10년 쯤 후에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럼 10년 후를 기대해보겠다.



진행 : 이도훈
참석자 : 홍지로, 안경배, 강 산
정리 : 이도훈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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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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