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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목) 제 35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시작된다. 독립영화계 최대의 축제이자 한 해를 결산하는 서울독립영화제를 목전에 두고 관객심사단(단장 이도훈)에서 초청작에 관한 8편의 프리뷰를 보내왔다. 먼저 읽고 관심 있는 영화를 찜해두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영도다리]_전수일

주인공 인화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피붙이 없이 부산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미혼모다. 곧 산통이 온몸으로 퍼져오지만,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줄 사람은 없다. 그녀는 홀로 영도다리 위를 걸어가지만, 산통은 점점 심해져 가고 그대로 쓰러진다.

세상에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19살의 소녀. 그렇기에 축복을 받아야 할 아기의 탄생은 그녀의 삶의 무게를 더하는 환영을 받지 못할 존재다. 인화는 결국 입양센터에 아기를 보내기로 하고 간직하고 있던 탯줄마저 버린다. 그녀가 아기 엄마임을 증명하듯, 가슴에서 모유가 새어 나오지만, 어린 나이에 ‘미혼모’라는 수식어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또한, 인화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폭력, 학대, 죽음 등에 대해 회피하거나 방관적이다. 유독 그녀가 유심히 지켜보는 어느 꼬마가 있다. 대화를 주고받는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담배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동질감을 소통한다.

따듯한 가족애를 느껴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인화에게 과거를 떠올리는 시점이 찾아온다. 그녀는 우연히 바닷가에 빠진 시신을 찾는 인부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검은 그물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신발을 보고 멈춰 선다. 그 신발을 보고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졌던 슬픈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산통의 표식이 된 수술자국과 핸드폰 사진에 찍힌 아기의 얼굴을 보고 죄책감에 빠져든다. 그 뒤로 인화는 입양센터로 아기를 찾기 위해 나선다.


아기를 향한 인화의 모성애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녀는 입양센터의 직원에게 아기를 돌려달라고 막무가내로 말하지만, 절차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며 거절당한다. 몇 번이고 찾아가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직원은 냉정하게 뿌리친다. 결국, 인화는 맥주병으로 직원의 머리에 내리치며 위협하듯,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아기가 있는 프랑스로 찾아가는 그녀. 낯선 나라의 어느 마을 어귀에서 양부모의 집을 찾는다. 아기의 집에 도착한 그녀는 파란 눈의 여인에게 “I came..."이란, 미처 끝나지 않은 문장을 반복한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모든 아픔을 흘려보내듯, 아이를 향한 그녀의 간절한 마음은 모성애라는 초월적인 힘을 보여준다.

‘하루에 두 번씩 영도다리 끄덕끄덕..’영도다리 노래의 한 구절이다. 영도다리는 사람들의 한과 슬픔,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의 상징물이라고 한다. 이 영화 속에도 지역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역사성도 나타낸다. 영도다리는 주인공 인화를 통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이다. 그녀의 과거가 슬프고 외로웠다면, 앞으로 만들어갈 현재와 미래는 아이를 찾게 되면서 변화하는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버린 그녀의 제2의 인생 여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작품이다. (관객심사단_ 박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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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_신수원

음악과 영화가 만났다. <레인보우>는 음악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 지망생의 이야기다. 주부인 그녀는 홍대 인디밴드와 자신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시나리오의 키워드를 잡는다. 이 영화는 음악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의 음악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음악의 열정과 그 열정을 불식시키는 못난 상업영화계를 대차 대조해 보인다.

취재차 방문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여자가 주목한 것은 무대 아래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 미친 듯 춤추는 사람들, 화장실 줄을 서며 몸 흔드는 사람들 등. 모두가 서 있는 곳이 무대다. 취재차 만난 인디밴드 '레인보우'도 스스로 무대를 만들 줄 안다. 그들은 관람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공연한다. 연습 공간은 따로 없다. 구경꾼 없는 길 위에서도 연습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편의 근사한 공연이다.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주체적인 이 모습은 실로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상업영화계는 정반대다. 상업적인 영화 전선에 있는 한 시나리오는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인다. 상업영화사는 대중의 시선을 끌 만한 이야기 소재, 장르, 구조를 요구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돈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는 기계적이다. 갈등 지점이 명확해야 하고 주인공은 중산층이어야 하며 장르는 판타지같이 예외적이면 곤란하다. 이 획일적인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 영화계는 저 음악의 현장과는 다분히 다르다. 무대의 주인공은 이윤 창출을 보장하는 대중성이다. '사람이야기'가 우선인 여자는 퇴출당한다. 돈과 교환되지 못하는 한 무대에 설 자격은 없다.

대립하는 두 개의 국면에서 영화는 스스로 태도의 차이를 보인다. 페스티벌의 현장에서 관객의 모습은 종종 캠코터의 화질로 대체된다. '레인보우'의 길거리 연습 장면도 여자가 들고 찍은 날것 그대로이다. 그들에 대한 애정이 오롯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은 여자가 지향하는 것에 대한 영화의 지지이기도 하다. 여자의 환상을 꾸짖는 PD 또한 여자의 시선으로 화면에 담긴다. 그러나 이때 PD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자의 위치에 서 있다. 올려 보는 카메라 앞에서 그녀의 '거지같은 상상'을 매도할 때 상업영화계의 위압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결국 여자의 이야기는 상업영화사를 관두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의 다음 목적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영화는 '꾸준히 걷기'라는 태도를 마침표로 정한다. 그 행보의 방향은 영화가 긍정한 인디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고 꾸준히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열기가 그들의 서사일 것이다. 영화 <레인보우>는 열정의 이미지를 단지 소비하지 않는다. 뜨거운 현장에서 삶의 태도를 성찰한다. 신나고 든든한 영화다. (관객심사단_ 정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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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기원]_김응수

김응수 감독의 보폭이 넓어졌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여정을 다룬 <천상고원>(2006)은 한 개인의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작품이었다. 곧이어 1986년 전방입소 반대 시위에 관한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2007)로 386세대의 부채의식을 다룬 바 있다. 개인에서 세대로 이야기 범위는 넓어졌지만, 감독은 일관된 화두를 던졌다.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 부재한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현대사다. 감독의 발자취를 고려해본다면 신작 <물의 기원>은 숙명에 가까운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개인, 세대, 역사는 한 자리에서 조우한다. 마치 예정된 순서인 양.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사연도 기구하다. 김응수는 고향인 충주댐을 산책하던 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시위 중 사망한 고 김중배씨의 무덤을 발견했다. 감독은 죽은 자 앞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체감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장면마다 죄의식과 회한 그리고 1965년 6.3사태를 영화화하겠다는 한 예술가의 사명감이 감돈다. 그러나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기록과 증언에 충실한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영화는 연극과 신화의 형식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한 극영화다.

1부라고 할 수 있는 전반부에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눈다. 여자는 남자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말한다. 남자는 1965년, 그때 그 사건을 회상한다. 헌데 두 사람의 표정은 석고 가면을 씌워 놓은 듯 얼어붙어 있다.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 처리와 독백식의 대사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이런 모던한 연출은 장 마리 스타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의 작품들만큼이나 급진적이다. 2부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 남자가 30년 전 어머니가 그렸던 그림 속 숲을 찾아 떠난다. 전설에 의하면 평범한 남자가 나타나 파괴자를 물리친다는 곳이다. 초목이 우거진 숲, 거기서 먹이를 찾는 승냥이마냥 떠도는 남자, 그리고 남자를 무심히 쳐다보는 카메라. 어딘지 모르게 아핏차풍 위라세타쿤의 영화 <열대병>과 닮은 데가 있다.

곧이어 남자의 고행이 시작된다. 남자는 ‘순수’를 찾는 방랑자다. 그가 떠나온 세상은 오염된 곳이다. 오염의 주범은 과거 친일행적을 일삼고 지금은 호의호식하는 자들, 무소불위의 힘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시민들의 지도자다. 반면 자연은 세계로부터의 도피처이자 마지막 남은 비상구이며 순수의 마지노선이다. 남자는 원류로의 회귀하듯 강을 끼고 있는 숲으로 들어간다. 충주 댐에 고인 물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온함을 간직한 곳이며, 숲은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장소다. 그러나 숲은 남자를 거부한다. 그는 길을 잃고 한 자리를 맴돈다. 동물들은 그에게 적대적이다. 그는 상처를 입는다. 남자는 맹수에게 다리를 물려 거동이 힘들어지고 새에게 눈을 공격 받아 앞을 보기 힘들어진다. 그의 몸에 난 생채기는 인간의 만행에 대해 자연이 주는 응보의 결과물이다. 남자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은 피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던 예수의 육신, 새에게 눈이 찔려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의 공격을 받던 프로메테우스의 육신과 진배없다. 희생 없이 구원도 없다는 걸, 영화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물의 기원>은 숭고한 희생을 그리는 영화임에 틀림없을 거다. (관객심사단_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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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예 그 일을 사랑

    2012.08.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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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0일 저녁, 명동의 ‘시네마 호프’에서는 2009서울독립영화제 사전 감독모임이 열렸다. 한 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독립영화 최대의 축제의 서막을 알리고자 만들어진 이날 행사에 출품 감독과 독립영화인들이 총집합한 것. 다만 한국독립영화협회 인근에서 열렸던 예년 모임과는 달리 장소가 주는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술과 출품작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이전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했다고나 할까.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가 공시되었다. 그러니까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지정위탁 형태로 3년 째 맡아 운영하던 전용관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것인데, 2008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받아 온 특정단체 지원 방식의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업수행 성과를 1년 단위로 평가한 후 매 1년 계약기간의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 논란 때도 언급했듯이,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즉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은, 영진위의 정책입안을 통해 지원을 시작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과 활발한 활동의 결실로 얻어낸 것이었고 그래서 ‘지정위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공모제의 (독립영화진영을 배제하려는 불을 보듯 빤한) 의도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례가 있어 정부, 감사원 및 지원기관으로부터 주위, 경고 또는 제재를 받은 단체(법인 등)」 이라고 명시된 ‘지원신청의 제한’ 항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1년간 독립영화진영은 숱한 감사와 조사를 받았다. 심지어 한 독립영화인은 감사원에 11차례나 불려갔을 정도로 독립영화협회와 산하단체를 향한 십자포화는 그칠 줄 몰랐다. 이렇게 볼 때 감사 과정에서 티끌이라도 드러난 단체는 전용관사업자로 선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므로 오랫동안 독립영화계에 떠돌던 이야기가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여 가슴 답답하다.

2009년은 <워낭소리>가 사상초유의 관객을 동원했고 <똥파리>와 <낮술>이 소기의 흥행을 거두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과 만난 한 해였다. 그러나 독립영화계가 거둔 놀라운 성과 이면의 그림자 또한 짙고 어두웠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인가 보다. 예년에 비해 담담한 표정의ㅡ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ㅡ집행위원들과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거뭇한 수염에서, 올 한해 지친 발걸음을 힘겹게 떼며 걸어온 독립영화계의 진짜배기 모습이 보인다. 2009서울독립영화제의 개막이 아직 보름가량 남았지만 이미 시작된 거나 진배없다. 참으로 힘든 한 해였겠지만 그래도 부탁한다. 힘내서 꿋꿋하게 ‘치고 달리자’ 독립영화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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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술 권하는 여행

필진 리뷰 2009.01.02 11:13 Posted by woodyh98
빈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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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모두 그놈의 술때문


차고도 넘친다. 휘청되고 흔들린다. 그날 그 곳에서 얼마나 주저리 주저리 난 내 자신을 허비했는가? 비틀거리며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던 순간들. 이것이 다 술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도 피곤한 일이다. 이것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마도 모두 해당될 것이다. 얼마전, 근사한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는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더 힘든 건, 고된 야근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회식자리의 술이라고 털어 놓았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좀 우울해졌다. 가끔은 누구나가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강요받아서 된다거나, 자주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고된 일일까? 개인적으로 난 술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 마시는 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 번의 회식자리에서는 어딘가로 날아오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때가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남자들 세계에서 술이라는 존재는 사람을 용기롭고 강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다 그런척하게 만들뿐이다. 사실은 술로 인해서 바보가 된다는 것을 모를리 없다. 기형도의 <그집 앞>에서도 '나'는 술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어 그동안 연정을 품었던 여인에게 고백하지만 그로 인해 겹겹이 쌓아왔던 여인을 향한 감정 또한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이게 모두 술 때문이다. 술.


낯설고 폐쇄된 공간속에 갇힌 무기력한 자아의 모습


노영석의 <낮술>은 '이게 모두 술 때문이야.'라고 말하진 않지만 혁진이라는 인물은 술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쓰디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애초부터 혁진이 그렇게 고생을 하게된 것도 술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강원도 여행을 약속하지만 다음날 정말로 강원도에 가 있는 것은 혁진 그 자신뿐이다. 그를 위한 위로여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아무도 그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다. 문제는 모두가 취했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던 혁진의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빗나간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술을 강요하는데 그로 인해 사건은 점점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허나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에게 술을 강요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할일없는 백수처럼 혁진은 아무것도 할게 없는 모텔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그에 용기를 빌어 <그집 앞>의 '나'처럼 옆 방 여인과 집에서 가져온 와인을 함께 먹으려고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낯선 여인과의 만남은 그 이후로도 기이하게 연결되어, 버스에서 만난 괴이한 여자와 트럭 운전사 등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결같이 술을 권하는 사람들 틈에서 혁진은 잘 거부하지 못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처럼 그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관계의 일부분이라면 혁진은 그 관계의 원만성을 위해서 그들이 권하는 술을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술은 과하게 되면 실수를 부르고 종국엔 만신창이가 된다는 것을 영화는 혁진이라는 순하디 순한 인물을 통해 경고한다. 그는 별로 욕심도 없어보이고, 악한 면도 없는듯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그에게도 '술'이라는 것은 그에게 내재된 욕망들을 분출해 내어서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술 권하는 혁진의 여행은 거부할 수도 없고,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미로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강원도라는 낯설고 폐쇄된 공간과 연결되어 무기력한 자아를 되돌아보게 한다.



소주에 뜨거운 라면국물

술 권하는 여행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그래도 이 영화는 독립영화치고는 꽤나 잘 만들어졌고 배우들의 호연이 있어서 보고 난 뒤에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정선터미널에서 <봄날은 간다>를 흉내내는 장면이나 취중대화 장면은 키득키득 웃음을 유발시킨다. 더불어 별다른 인상적인 배경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정선, 경포대 등으로 이어지는 혁진의 여정을 한번 따라가보고 싶게 만든다. 특히 혁진 역을 맡은 송삼동이라는 특별한 이름만큼 꼭 기억해야 할 배우로 남을듯하다. 송삼동은 금방이라도 보호해 주고 싶을만큼 소심한 혁진역을 기막히게 소화해 내었다. 그의 표정은 <낮술>이라는 영화처럼 낯설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역을 인지도 높은 다른 배우들이 맡았을 경우를 전혀 상상할 수 없게할 정도로 영화 전체에서 강하게 부각된다. 작은 영화이기 때문에 혹시나 감독이 배우들과 함께 그냥 강원도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레 술을 마시며 배우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찍 그저그런 영화로 이 영화를 취급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낮술>은 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임을 모두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매혹적인 여인의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소주에 뜨거운 라면 국물이 생각나는 작품인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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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notsool2009 BlogIcon 낮술한잔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낮술> 공식 블로그에서 왔습니다-.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저희 <낮술> 공식 블로그로 출처와 함께 담아갑니다.
    혹 안되는 거라면 말씀 주세요.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
    http://blog.naver.com/notsool2009

    2009.01.15 21:02
  2. Favicon of https://allak123123.tistory.com BlogIcon allak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보고 트랙백도 걸고갑니다:)

    2009.02.10 09:50 신고

서유경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을 보고 나오면서 티켓을 매만졌다. 각각의 영화들에 대한 명사적인 이름은 넘겨두고, 그 영화들이 제시한 형용사적인 느낌은 잠시 증발시키고, 그저 나는 영화를 '봤다'는 동사 행위만을 기억하기로 한다. 그것은 내가 앞으로 쓸 글과 맥락을 같이 하는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나는 독립된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라고 불리는 것을 봤을 뿐이니,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장기하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장기하 노래가 좋다. 그는 달이 차오르니 어딘가로 가자는 권유를 해준다. 비워진 달이 채워진다는 아주 기하학적인 발상, 그리고 머물러있는 곳에서 가자는 것. 빈 것에서 채워진 것으로 달의 심상이 변하는 동안 나의 동선까지 고려해주고 있다. 개인의 생활 안에 달의 움직임을 넣어주는 셈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사실상 그 목적지는 말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자는 말은 피상적인 것이고, 실상은 내가 머물러 있는 곳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 내가 '싸구려'를 마시는 생활을 하고 있고, '가자'는 권유를 들으니 '머물러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달아가는 셈이다. 이런, 그에게 공감적인 지지를 보내는 심리적인 근거가 다 있었다.





그렇게 인간은 합의들을 했나보다. 사랑과 관심은 피상적인 언어로서 치유를 해준다. 그래서 결국에는 원초적으로 갖는 욕망과 생각들이란 공유되는 것이고, 사람들은 그걸로 상처를 받는 동시에 치유를 할 요량으로 이야기들을 생성해낸다는 것. 그것들을 유려한 재능과 솟구치는 희망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다시 사랑과 관심에 대한 피상적인 언어들로 돌아올런지 모른다. 아주 진솔했던 경험들은 개인의 필터링을 거쳐 스크린에 상영된다. 내 외피를 겉돌며 내 안의 불안과 마주할 것을 권유해낸다. 피상성은 그렇게 내 안으로 다가와 공유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유의 촉매제는 시련에 대한 공감형성이다. 그것은 나의 가치가 짓밟히고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들에 의해 나의 가치들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시련의 씨앗이 어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마음에 있던가. 외적인 상황이 그 씨앗이 되는 것이라면, 그 씨앗이 '외부'에 있다는 인식을 한다는 것이 '내'가 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여기에서 독립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아주 흥미로운 개별성이다.

내적인 주관을 옹호한다는 건 그것을 억눌러버린 것과 관련지어지는 자연스런 운명일 것만 같다. 억눌러지지 않았더라면 다른 표출법에 의해 제기되었을 개별성. 그러한 흥미로운 개별성에 대한 실험들은 젊은 순환이다. 달은 차오르고 기운다. 밤도 깊어지고 날이 샌다. 독립 안에서 개별성은 은근히 공유성을 지향한다. 그래서 나는 서독제 관람 티켓을 매만지면서 그런 생각에 빠졌다. 각자의 개별성 끝에 완전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특히나 가장 무시당했던 욕구들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고양된 의식의 영역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따라서 파괴와 야만성을 주었던 시련의 맥락은 개별의 필터링을 거치며 이겨내야 할 시련으로 거듭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감흥은 비록 피상적이어서 곧 잊어버리는 것이라 하더라도 재생으로 수렴할 수 있는 순환구조라는 것에 이르기 까지. 어디 독립이 괴리와 유사한 뉘앙스였던가. 나는 남과 다르다고 외치는 구호 중의 하나였던가. 독립이란 정체성으로 영화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독립된 개체로서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소홀하게 여겨졌던 개인을 되살리는 힘이 자신의 주관이고 독립인 셈이다.

생에 적응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다. 그 중에서 현명하게 여겨지는 방법은 바로 자신의 갈망들을 변덕스러움, 감정, 미신 등의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혹은 그것들을 조율을 해내야 하는 것이 과거(라고 믿고 싶은 시대)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다소 맥락이 바뀌기는 했으나 여전히 내적인 관심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을 것과 눌러버려야 하는 것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갈망들은 자아가 아니라 부추겨지는 충돌인 셈이다. 그게 본질이었겠나 싶은 생각에 회의가 들 즈음 떠올랐던 생각은 그 자체로서 구별하려는 잣대로 하여금 자신의 개별성들을 발견해가는 것에 의미가 있겠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배제됐던 주관성들은 다시금 고려될만큼 너무도 중요했고, 중요했던 것들은 다시금 드러날 양태를 닦고 있었던 셈이다.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땅들이 건물들에 의해 길로 만들어진 셈이다.

빛없는 어둠은 있어도 어둠없는 빛은 없다고 했다. 본능으로부터 유발된 세계에 명암의 호오가 뚜렷한 빛줄기가 형성되면 내면세계는 희미한 지각을 해내간다. 그 빛이 연약하다면 윤곽을 잡을 것이고, 강렬하다면 형태의 색채와 표면의 그늘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립 안에서 개별성은 은근한 매력으로 공유된다고 서술해놓고는 조심스럽게 공유해야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싶다. 각 개인들의 방정식들은 끝내 항등식으로 수렴할 것이다. 가장 복잡다단한 것은 단순한 매커니즘이 엉키는데서 유발된다. 지엽적인 설화와 부분적인 상처는 전체적인 이야기를 설명해낼 수 있겠다. 주관적인 상황과 독립이라는 매력이 현대인들을 설명해내는 신화요소를 담고 있을지 모르겠다. 각개가 얼마나 동의하든, 각개가 얼마나 홀로 있든, 각개가 얼마나 멀리 위치하고 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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