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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고등학교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동시상영관이 두 개 있었다. 집 근처에 있던 극장의 경우 그 시절 웬만한 동네라면 하나 쯤 있던 동네극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규모와 수준에 있어 버스 한 정거장 너머의 극장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너머의 극장이 개봉관에서 내려간 지 얼마 안 되는 따끈따끈한 영화를 한 편 정도는 반드시 틀어줬던 데 반해 집 근처 극장은 정체불명의 영화를 두 편 틀어주는 무늬만 동시상영관이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나는 집 근처의 극장만 이용했는데, 이유는 너머의 극장에는 속칭 ‘호모’들이 득실댄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때가 70년대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나와 같이 다니던 친구 녀석은 그 극장 앞을 한 달음에 뛰어서 지나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마음 한 구석을 뜻 모를 불안으로 몰아넣던 동시상영관의 이상한 아저씨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것은 80년대가 저물면서부터였다. 동시상영관이 하나둘 씩 사라진데다가 보다 자유로운 사회분위기 속에서 만난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제고된 탓이다.

호모포비아도 아니거늘, 그 후로도 이상하리만치 퀴어 영화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니까 2006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달궜던 <후회하지 않아>를 보지 못했고, 김조광수가 연출 데뷔를 선언한 <소년 소년을 만나다>역시 놓쳐버렸다. 그렇다고 퀴어 영화를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개봉예정인 <쌍화점>도 보았으니 편견을 가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닐 테다. 다만 최근 기사로 다뤄지는 동성애 코드의 영화들이 하나 같이 만듦새에 있어 기대 밖이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즉 동성애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에는 이야기 전개의 급급함이 드러나고, 그 결과 보편적 사랑이 휘발되어버렸다는 점에서 가능성보다는 한계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동성애 코드를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대중적 관심을 끌어보려는 전략은 오히려 비평적 논의 가능성마저 봉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아쉬운 일이다. 이런 와중에 2007년 당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놓친 후로 잊고 지내다가 느닷없이 보게 된 소준문 감독의 <올드랭 사인>은 근년에 만난 최고의 퀴어 영화라고 단언할 만한 영화다. 불과 25분짜리 단편영화가 내 눈시울을 적실 줄이야.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던 두 남자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나면서 시작되는 <올드랭 사인>은 그들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회한을 하나 둘 씩 끄집어내는 하룻밤 동안,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위치로 승화시켜놓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소준문 감독은 <동백꽃 프로젝트> 중 ‘떠다니는 섬’을 통해 세인의 시선을 피해 보길도로 온 두 남자의 일상을 파고들어 현실과 격리된 사랑의 공허함을 이야기 한 바 있는데, 그런 점에서 <올드랭 사인>은 ‘떠다니는 섬’과 종과 횡으로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오래전 그들이 꿈꾸었던 대로 실행에 옮겼더라면 ‘떠다니는 섬’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지만, 용기가 없었기에 노년에서야 만나게 된 두 남자의 사연들을 담아낸 것이 <올드드랭 사인>이라는 것이다.

두 작품 모두를 통해 감독이 얘기하는 것은 사랑의 보편성이다. 이때 동성애의 일반화를 시도하는 중심기제로 사용되는 것은 노인의 성인데, 동성애도 모자라 이성애에서조차 소외시킨 노인의 성을 전면에 내세운 감독의 배짱은 탄복할 만하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영화의 매혹은 말없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감정의 파동이다. 이를테면 재회한 노인들이 모텔에 묵은 후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감독은 손길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절절한 그리움과 사연을 그들 이마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깊게 뇌리에 각인시켜놓고 있고 그 절절함이 어떤 이야기도 도달하지 못할 지점에 이르고 있으니, 처연하고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는 이처럼 겹겹이 쌓인 소외와 편견의 굴레 속에서 찬란하게 피어나고 있다.

정말로, <올드랭 사인>을 본 후로도 한참 동안 장면 장면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무엇이 이토록 감정을 붙잡아 맸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퀴어 영화들마다 추구했으되 이루지 못했고, 넘어서고 싶었지만 감히 발 떼지 못한 사랑과 이별의 순간을 동시대성이라는 책갈피에 곱게 꼽아놓았다는 사실이다.

독립영화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우회하지 않는 직설화법으로 소수자를 헤아리는 시선이야 말로 독립영화라서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우리가 놓쳐버렸고 지금도 ‘독립영화’라는 변방의 곳간에 한 가득 쌓여있는 영화들. 이제 그것들을 만날 다시없는 기회가 찾아왔다. 12월 11일(목) 저녁, 최대의 독립영화축제 ‘서울독립영화제’가 막을 올린다. 바라기는 독자여러분의 무한한 관심과 관람이 이어졌으면 한다. 얼음장 같은 시대를 무력화시킬 뜨겁게 휘몰아치는 날것의 열기를 온 몸으로 체험하시라.


(추신) 서울독립영화제 이야기를 하자고 학창시절 동시상영관부터 <올드랭 사인>까지 빙빙 돌아 왔으니, (대체 동성애는 왜 나온 거냐?) 요즘 내 상태도 영 아닌가 보다. 너그러이 넘겨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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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원기충만한 영화의 넘치는 에너지에 대비할 것!



올해는 ‘상상의 휘모리’다.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겨울의 첫 자락에서 서른 네 번째 축제를 준비 중이다. 전례 없이 차가운 바람이 쏟아졌던 지난 한 해는 너무나도 힘겨웠다. 냉기 가득 찬 길거리에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오로지 치열했던 지난봄에 대학 기억뿐이다. 각종 포털에서 ‘혹한’ 혹은 ‘혹설’과 같은 단어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상상의 휘모리’는 태연히 종로통에 서서 관객들을 기다린다. 코앞에 다가온 영화제 준비로 분주한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 사무국 문을 열었을 때는 늦은 오후. 하지만 세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막 점심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라는 말로 시작해 ‘오래 기다렸죠!’로 맺으며 회의실을 달려 나오는 서독제 김동현 사무국장은 환한 웃음으로 네오이마주를 맞아주었다.

강민영(이하 ‘강’): 우선 2008년 서독제에 관해서 짧고 굵게 설명해주신다면!

김동현(이하 ‘김’): “서독제는 한 해에 독립영화의 흐름을 모두 볼 수 있고, 다음 해에 독립영화의 비전들을 가늠할 수 있는 영화제다.” 이정도면 괜찮은 건가(웃음)



강: 서독제에 관해 가장 명쾌한 답을 내린 것 같다(웃음). 그런데, 가장 바쁠 때 아닌가?

김: 사실 한 달이나 두 달 전이 더 바빴다. 지금은 사실 정리하는 단계다. 지금시점에서 여유가 없다면 영화제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론 아직 바쁘긴 하다. 그래도 전반적인 것들을 조망하는 것은 다 끝나있는 단계다.



강: 사실 다른 영화제들을 보면, 꼭 영화제 시작 일주일 전에 일이 터지거나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재 서독제 사무국의 분위기는 어떤가? 마무리단계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 프로그램들은 이미 확정이 되어있는 상태라 프로그램 측에서 바쁜 일은 거의 없다. 상영을 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관객들과 마주하는 업무들, 그러니까 그걸 수행해야 하는 기술팀들이 매우 바쁘고, 프로그램팀은 이런 기술팀을 많이 지원하고 있다. 상영본들이나 수급 같은 걸 진행 중이다. 작품정보들은 모두 마무리된 상태고 이제 수정단계를 거치고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해외 초청작들이다. 해외 초청작들은 국내가 아니다보니 일주일 정도 시간을 잡고 프린트를 기다리는데, 아직 오지 않은 프린트가 있다.



강: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프린트가 있나?

김: 올해 같은 경우는 해외 배급사들이 비교적 빠르게 처리를 해주는데, 몇 군데 일을 미진하게 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밤마다 해외프로그래머가 전화하고 있다. 프린트 문제 외에는 홍보팀이 제일 바쁘다. 포스터를 붙이는 등 물리적인 것들과 보도나 기사와 같은 여러 이벤트도 넣고 하다 보니 할 일이 많다. 초청도 진행 중이다. 말하자면 이미 다 짜여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는 단계다. 밑그림을 그리고 나서 집을 짓고 있는 단계. 아직 도배, 장판까지는 못 깔았고(웃음).



강: 개막식 공연을 ‘장기하와 얼굴들’이 한다고 들었다. 최근 장기하는 인디음악의 아이콘이 아닌가. 장기하를 초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 그건 아니었다. 흔쾌히 해주신다고 해서 너무 고마웠다. 처음 장기하를 섭외하기 전, 장기하 동영상을 얼핏 봤는데 다들 너무 호감 있어 하더라. 그래서 개막공연 섭외에 장기하와 얼굴들을 초청하게 된 거다. 그리고 전화를 했는데 오히려 독립영화제를 옹호하고 격려해주셨다. 재밌는 건, 섭외를 하고 난 후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미 시스터즈’가 조영각 집행위원장님과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미미 시스터즈’는 정동진 독립영화제때도 놀러 오셨던 분들이기도 하고. 정말 잘 된 일이다.



강: 서독제 예심위원으로 계셨었는데, 예심을 진행했던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김: 8월 초부터 시작해서 9월 초까지가 공모기간이었다. 예심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간은 공모가 끝나고 테잎이 모두 들어와서 발표하는 기간까지겠지만, 보통 테잎들은 막판 일주일에 몰려서 접수가 된다. 막판 일주일 중에서도 막판 사흘, 막판 사흘 중에서도 막판 하루(웃음). 마지막 일주일 동안 예심의 50% 이상이 들어온다. 때문에 전에 들어왔던 작품의 프리뷰를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본선 심사 발표기간까지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예심을 진행하면서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트러블도 당연히 있었을 법 한데.

김: 물론이다. 엄청난 기 싸움 같은 것들. 나는 예심이 처음이었지만 다른 분들은 많이 진행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룰은 지켜진다. 사실 그런 건 다른 사람과의 갈등보다도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골라야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다른 예심위원과 충돌이 있을 때 상대 예심위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다. 그만큼 자신은 영화적으로 무장이 되어있어야 하는 거다. 어떤 작품들을 보면서 내가 꼭 틀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은 두세 번 더 보기도 한다. 물론 그 작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다른 예심위원들에게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할 때 그걸 설명할 수 없으면 작품을 출품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굉장히 토론을 많이 한다. 치열하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작품이 올라가지 않거나,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았던 작품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납득이 되기 때문이다.



강: 본선 경쟁에 올라온 작품들 중 어떤 경향의 신작들이 나왔나? 경향이라고 명확히 말 할 수는 없지만,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었나?

김: 단편과 장편은 약간 경향이 다르다.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일상의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 등등을 잘 엮어내는 건 기본적으로 형성이 된다. 하지만 단편 같은 경우는 매년 해가 거듭할수록 만들기는 잘 만드는데, 경향을 짚기가 어렵다. 단편은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너무 많고, 특히 예심 과정 속에선 그걸 알아차리기가 너무 힘들다. 다들 잘 만들었는데 깊이 있게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를 고르는 것이고, 올라오지 못한 좋은 작품들도 많지만 본선 위로 올라온 목록을 보면 다들 정말 괜찮은 작품들이다. 장편은 매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제작된다. 예산문제나 운영문제가 덜 한 것이 다큐멘터리고, 전통적으로 독립영화가 다큐멘터리에서 에너지들을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독립장편에서 다큐멘터리가 항상 강세였다. 실제 그런 영화를 하고 있는 발언이 중요하기도 했다. 근데 올해 같은 경우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항상 다큐가 많거나 극과 다큐의 비율이 반반이었는데, 올해는 극영화가 7편이고 다큐가 4편이다.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많았지만 거를 수밖에 없던 이유는 굉장히 잘 다듬어지고 잘 만들어진 극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영화들 같은 경우는 깊이도 있고 내용도 굉장히 세다. 과거의 독립 장편에 비해서는 엄청난 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강: 사실 계속 질문하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다큐멘터리의 선정 비중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서독제는 다큐멘터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반전’수준 아니었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었다. 혹시 ‘상상의 휘모리’라는 슬로건에 맞춰서 극영화를 많이 선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김: (웃음)슬로건에 맞추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다큐와 극영화의 역전 현상이 굉장히 고무적인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숙제를 얹어준 것 일수도 있다. 예전처럼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고, 굉장히 중요한 감독이고 이런 이유로 영화를 상영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강: 예심이 상당히 치열했다고 전해졌기에 예선 탈락한 영화들도 비례해서 많았을 것이다. 예선에서 탈락된 영화들 중에 특별히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거나 경쟁이 치열했던 작품, 턱걸이되었거나 예심 중 논란이 있었던 작품들이 있었나?

김: 여러 작품들이 있었다. 다른 영화제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작품들도 있었고. 사실 아까운 작품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경쟁작이 워낙 한정되어 있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생긴 거다. 그렇다고 단편이나 장편 상영 목록을 바꿔가며 경쟁작을 늘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치열하게 토론을 한 뒤에 모든 예심위원들이 경쟁에서 상영했으면 좋겠다 라는 작품이 결국 경쟁 목록에서 제외된 거다. 무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잘 만들고 무난하다는 이유, 확 더 치고나가는 뭔가가 없는 거다. 영화가 미적지근하게 중간에 있는 경우엔 심사에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제외된 경우도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





강: 서독제에 출품하는 사람들은 나이, 성별, 학력 등을 망라하고 매우 다양하다. 예심 과정 혹은 독립영화 전반이어도 좋고, 요즘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경향이 읽힌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년에는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많이 오고갔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거나 연애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

김: 작년과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연애도 많이 하고, 일기도 많이 쓴다(웃음). 여전히 그런 주제가 많고, 사회적 고민보다 자기 자신의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모 학교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어쩌면 그렇게 연애 영화만 만드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대부분 주제가 다 연애다. 사실 멜로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다. 멜로는 관객층이 매우 많아서 영화의 ‘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괜찮은 작품들마저 가려 버리는 거다. 조금 더 치고 나가줘야 하는데, 멜로라는 것이 무언가 더 확장하고 깊이 치고 나갈 부분이 별로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냐에 대한 것들에 영화가 좌우된다. 영화 속에서 사회적 문제 같은 경우도 인식은 하고 있는데 약간 피상적으로 다루는, 깊게 고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출푸자들 중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공간이라는 부분에서 대부분 재건축, 철거촌 등과 같은 도시에 대한 공간들을 많이 차용한다. 깊이 있게 들어가는 부분은 좀 부족하다.



강: 독립영화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분들 중에는 ‘독립영화’하면 흔히 이주노동자 혹은 계급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을 한다. 딱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도 개념 자체가 그렇게 박혀있기 때문에 전혀 수용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물론 우리가 그런 영화들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들어지는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예전에는 이주노동자 같은 것들을 소재적으로 접근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다. 반면 지금은 재외동포도 많고 이민층도 굉장히 많아졌지 않나. 그러다보니까 그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그냥 ‘친구’가 되어버리더라. 학생들 작품 중에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친구, 옆 집에 사는 친구 정도로 나타내는 것 같다.



강: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서독제도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을 곳곳에 포진해놓고 있다. ‘Sex is cinema’라는 슬로건으로 특별 상영과 세미나를 하는 것도 있고 초청작들 중 군침을 흘릴 만한 것도 많은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촛불영상 상영전’이었다. 진작에 공모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언제부터 기획하게 된 건가?

김: 정동진 독립영화제 일 때문에 정동진에 내려가 있다가 올라왔는데, 조영각 집행위원장님께서 슬쩍 이러저러한 일들을 기획했다고 자랑(웃음)을 하셨다. 그 중에 촛불 영상 이야기가 있었다. 의견을 주셨던 분은 영화인회의에 최현용 사무국장님이셨다. 지난여름 에 한독협회에서 촛불 집회도 많이 나갔기 때문에, 이런 영상들을 모으는 것은 서독제에서만 가능한 일 아니냐 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 안건을 구체화시켜서 진행한 거다. 다들 촛불영상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만장일치의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강: 출품 수는 많았나?

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9편을 상영을 하는데 들어온 작품은 13편 정도다. 그만큼 당시 카메라가 중요한 역학을 했고,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것이 독립영화의 영역으로 넘어오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만들어서 그냥 인터넷에 올리는 게 아니라 편집이나 설정 같은 문제에서 걸림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작품들은 모두 좋다. 우리들이 원하는 작품이 모두 들어와 흡족했다.



강: 촛불 영상 공모가 있을 당시 모바일로 찍은 것까지 허용한다고 했었는데 굉장히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나보다.

김: 형식적인 문제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영화제를 했었던 인디 애니페스트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했던 공모전 중에 ‘날 애니’공모라는 걸 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아니라 손으로 그리는 것들 같은 작품들을 자유로 공모했었다. 그 쪽은 굉장히 치열했다고 한다. 기획도 좋았지만, 과정 자체가 참여자들에겐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나 싶다.

강: 요즘은 영화는 물론이거니와 타이핑만 잘못해도 온갖 테러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친분이 있는 모 감독은 영화 제작시기부터 특정 단체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서독제에서 촛불영상을 준비할 때 외부로부터의 압력이나 압박 같은 것은 없었나?

김: 아직은 없었다. 전혀 없었지(웃음).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야 있었겠지. 하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들어온 것은 없었다. 다만 그런 이야기가 들리잖나, 누구도 전화를 받았다더라, 어떤 이야기를 들었다더라 라는 것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주먹 불끈 쥐고 대항해야하지 않을까.



강: 주변에서 종종 한독협가 지나치게 특정 정치력을 옹호한다는 말들도 듣는다. 한 이웃은 독립영화협회 카페에서 단체쪽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 쪽지에는 이명박 퇴진을 적극 옹호하는 슬로건을 대대적으로 걸어놓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지향하는 정치색이 그 이웃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로 대화를 할 때 싸움이 붙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한독협이 특정 정치력을 지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여 있는 사람들이 비슷비슷하다보니까, 같은 목소리를 만들어 분출할 수는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모이다보니까 덩치가 큰 단체로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일반적인 말이긴 하지만 오래도록 독립영화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그 열정이 강릉시네마떼끄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강릉시네마떼끄에 계시다가 한독협으로 넘어왔고, 작년 함주리 국장이 나가면서 국장이 되셨다고 알고 있다. 처음 독립영화판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다.

김: 독립영화라는 단어를 듣게 된 것은 대학 시절이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이미 독립영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독립’이라는 말을 안 썼는데 90년대서부터 시작되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활동 중에 영화도 있었는데, 물론 영화가 주류는 아니었다. 다만 선배 중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때문에 학교서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영화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해서 학생회에서 진행을 하고, 자연스레 독립영화에 대한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대학생의 투지가 불타오르던 시절이었으므로, 나와 관계있었던 모든 일상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영화 쪽에서도 그런 시선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때는 컨텐츠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우리 때는 정말 <파업전야>가 유일한 독립영화였다. 장산곶매에서 <파업전야>를 필름으로 가져와서 틀어주시고 그랬던 시절이다. <파업전야>이외에도 비디오 샵에 나왔던 작품들 중에서 진보적이거나 내용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가져와 학교에서 틀었다. 그리고 강릉시네마떼끄로 넘어갔다. 나는 강릉에서 학교를 다녔고 96년도에 학교 선배들이 강릉시네마떼끄를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네마떼끄에서 활동을 했다. 당시 시네마떼끄가 생기면서 ‘시네마떼끄 네트워크’구성이 되었는데, 연계가 되던 단체들은 주로 .문화학교서울이나 부산시네마테크였다. 그때 인력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일을 하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곽용수 대표님이나 조영각 위원장님도 알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모이고, 현재가 된거다(웃음).



강: 강릉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면, 나는 아무래도 사는 곳이 서울이다보니, 시네마떼끄 프로그램은 늘 서울아트시네마에 치중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다른 시네마떼끄는 어느 정도 지원에서 어떤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중에 강릉시네마떼끄도 포함되어 있었고. 정동진 영화제를 개최하면서 강릉시네마떼끄의 인지도도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 서울아트시네마와 동등하게 운영되는 건가?

김: 전혀 다르다. 말은 시네마떼끄지만 실제로는 비디오떼끄였다. 초반에 강릉시네마떼끄가 만들어지고 나서 테잎들을 가지고 계속 영화제를 했다. 여러 영화들을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를 틀었다. 비디오들은 대부분 문화학교서울에서 지역에 내려줬다. 문화학교서울에는 번역을 하거나 자막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있었기 때문에 종종 일본에 가서 LD를 가지고 와서 뜨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중간 중간 상영이 멈추는 순간도 많았지(웃음). 하지만 그런 공동체 시네마떼끄의 활동 자체는 한계가 있지 않나. 당시에는 막 일본영화도 수입허가가 나고 예술영화들도 허가가 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우리가 활동할 근거가 사라진 거다. 이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현재도 그렇다. 참, 정동진독립영화제는 98년에 한독협 생기고 나서, 당시 사무국장으로 계시던 조영각 위원장이 지역적으로 영화제를 열면 어떻겠냐고 해서 그걸 넙죽(웃음) 받아서 실행한 거다.



강: 정동진독립영화제 같은 경우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놀러가서 영화도 보고. 바다와 함께 영화도, 술도 술술 잘 넘어갈 것만 같다(웃음).

김: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엄청 힘들다. 처음에는 규모가 가장 큰 서독제 일이 가장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동진은 인력이 없다. 상근자가 없고 가까스로 자원 활동가가 도와주는 실정이다. 이게 사흘간 개최되는 거여서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빡빡하다. 영화보고 술 먹고 바닷가 갔다가 다시 영화보고. 압축적으로 육체를 힘들게 하는 건 정동진을 따라갈 영화제가 없더라.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축제다. 야외이고, 지역이고 하다보니 아이부터 어른까지 관객층도 너무 다양하다. 그게 연계가 되니까 강릉에서는 독립영화 정기 상영회 같은 것들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이제 10년이 되었는데, 10년 지나고 나니까 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강: 강릉시네마떼끄에 현재 회원은 얼마정도 되나?

김: 많지 않다. 한 열 명 정도. 지금은 거기서 다들 가지를 치고 나왔다. 현재는 나도 서울에 있는 상황이고. 하지만 강릉을 거쳐 간 사람들은 많다. 모두들 각지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강: 독립영화계 외에 현재 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대학원 공부도 독립영화 활동에 연계된 것인가.

김: 문화예술경영학과를 다니고 있고, 이번 학기는 휴학을 했다. 대학원은 일을 하면서 다니기가 무난했는데, 올해 처음 사무국장을 맡다보니까 신경 쓸 것도 많고 할 일도 너무 많아서 잠시 공부를 쉬고 있다. 지금 일이 쌓여서 휴학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독립영화 외에 따로 하고 있는 일은 딱히 없고, 대부분 영화 쪽에 관련된 일이다.



강: 독립영화계에서 일을 해오면서 특별히 마음에 남는 순간이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궁금하다.

김: 셀 수 없이 너무 많다. 그런 순간은 매번 상영을 할 때마다 있는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활동을 하거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영화 속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독립영화는 내가 몰랐었던 문제들이나 이슈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기 힘든 정보를 제공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마음으로 지지를 하고 그렇게 영화와 관객이 연계되는 것이 좋았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최근엔 많은 관객들께서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것에 대해 알아주시니까 행복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애착이 가는 것은 정동진독립영화제다. 작년까지만 해도 ‘10’이라는 숫자가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10년이라는 게, 한 사람이 꾸준히 10년이라는 활동을 한다는 게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 마지막으로 서독제에 오는 관객들, 그리고 독립영화를 아직 모르고 있는 미지의 감독들이 영화제를 통해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길!

김: 영화의 에너지, 영화에서 받을 수 있는 힘과 열정 같은 것들을 많이 받아갔으면 좋겠다. 이번 서독제는 충분히 그런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영화들이 곳곳에 포진되어있다. 영화를 통해서 생각의 지표를 넓혀갔으면 좋겠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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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지난 화요일(11/18), 유난히 바람이 매섭게 불어 닥치던 그날, 시계가 오후 여섯시를 가리킬 때 즈음 공덕동엔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목도리를 질끈 두르고 코트를 잔뜩 여민 채, 흡사 멜빌 영화에라도 나오는 듯 겨울의 한기를 잔뜩 분출한 사람들이 속속들이 서부지방법원 뒷골목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 그들이 멈춘 곳은 ‘미자르’라는 지하 호프집 앞이었다. 강추위를 뚫고 호프집에 ‘도달한’ 사람들은 하나 둘 몸을 감싸던 두꺼운 겉옷을 훌훌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을 이겨낸 그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 기자회견이 있는 값진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11월 18일 적절한 저녁 시간이었던 오후 6시, 공덕동 호프집 MIZAR(미자르)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관객들을 기다리는 서울독립영화제의 소개가 이어졌다. 해마다 12월이 오면 ‘한국에서 영화 좀 본다.’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독립영화의 축제가 바로 서울독립영화제. 2007년에는 대통령선거라는 장벽 아닌 장벽에 맞부딪혀, 예정보다 조금 이른 11월에 잔치판을 벌여야 했었던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 다시 ‘12월 축제’라는 정상궤도로 진입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매년 12월에 개최되어 한 해의 독립영화를 아우르는 소중한 시선을 오랜 기간 동안 간직해왔던 영화제. 국내 경쟁 독립영화제이기도 한 서울독립영화제는 올해도 재기 넘치는 감독들의 신선한 작품을 알차게 준비해놓았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동안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서울독립영화제의 얼굴, ‘개막작’이 공개되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2008년의 얼굴을 강미자 감독의 첫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에 맡겼다. <푸른 강은 흘러라>는 중국 연변에서 촬영된 연변 소년 소녀들에 대한 영화로, 청춘과 자본주의에 대한 두 가지 고민을 동시에 안겨주는 영화다. 강미자 감독은 <푸른 강은 흘러라>를 통해 ‘아이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 청춘과 자유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게 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푸른 강은 흘러라>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서울독립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흥미진진한 공연을 준비해두었다. 12월 11일 오후 7시,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개막작과 함께 공개될 개막식 행사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영화배우 권해효와 방송인 류시현이 진행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올해 최고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늦바람’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개막 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동안 두 개의 특별전을 준비해놓았다. 첫 번째는 ‘Sex is cinema’라는 슬로건을 걸어 영화에서 다뤄지는 성적 표현과 성의 미학에 관한 진지하고 사려 깊은 대화다. 과거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거침없이 들이닥치는 것이 영화판이라고 명명되고 있지만 막상 그것이 ‘한국’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나면 좀 더 고된 진통을 겪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국 사회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성적 자유를 누릴 공간과 기회를 박탈당해왔고, 이와 더불어 법적인 문제를 내건 싸움까지도 감행해야 했다. 감각의, 그리고 억압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이번 ‘Sex is cinema’ 특별전은 성의 표현에서 예외성을 보여준 영화들, 그리고 특히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영화들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Sex is cinema’ 특별전의 상영작 목록에는 이미 부산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던 브리안테 멘도사 감독의 <서비스>를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유수의 영화제와 관객의 러브콜을 받아온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숏버스>, 은밀하고 발칙한 영화이기도 한 장 끌로드 브리소 감독의 <남자들이 모르는 은밀한 것들2>와 함께 한국 내에서 성적 소수자에 대한 고찰을 일정 부분 이상 이끌어낸 김경묵 감독의 <얼굴 없는 것들>과 김정구 감독의 <역진화론-갈아 만든 에덴> 등이 상영된다.

두 번째는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들이다. 2008년은 작년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격정의 해인 동시에 수많은 국민들이 수난을 당해야 했던 역사적인 사건들이 속속들이 위치했던 해였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는 많은 국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동시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와야만 했던 사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몇 달 전 ‘거리의 촛불’을 주제로 비경쟁 작품들을 공모했다.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섹션에서 소개되는 9편의 단편들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매체이거나 혹은,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친구, 엄마, 동생, 사촌들이 만들어낸 영상일 수도 있다. 2008년 거리의 촛불은 참여 미디어 운동을 통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나라가 가져야 하는 자질에 대한 동시다발적 질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광화문 한 복판에서 10년 전 잊었던 첫사랑을 만나야 했고, 종로 한 구석에서 20년 전 기억 속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야 했던 사건들은 모두 촛불에 녹아있는 것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재밌거나 혹은 열받거나’라는 키워드를 통해 촛불을 둘러싼 사회 전반에 대한 미디어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조율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시선은 바로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 섹션일 것이다. ‘촛불 영상-재밌거나, 열받거나’ 초청작 섹션은 우리의 지난 현실, 그리고 현재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이밖에 서울독립영화제의 꽃인 경쟁부문도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수많은 작품들을 밤낮 가리지 않고 가려내야 했던 김동현(서독제 사무국장), 김태일(다큐멘터리 감독), 맹수진(영화평론가), 박광수(정동진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강릉시네마떼끄 사무국장), 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위원들의 손에서 떠난 51편(단편 40편, 장편 11편)의 영화들은 메인 상영 시간을 거머쥐고 다시 한 번 심사를 기다린다. 2008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 심사는 강성훈(조명감독), 김미례(영화감독), 김조광수(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장병원(영화평론가) 등의 위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들과 함께 관객들의 투표에 의해 진행되는 시상식에는 다양한 액수의 상금과 상패가 가지런히 마련되어있다.

 



2008년의 마지막, 12월의 초입이 다가온다.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달아오르고 쉬이 내려앉던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힌 한 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은, 우리가 현실에서 숨 쉬고 있는 공간이라는 인지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날카롭다. 수많은 일들에 치여, 혹은 수많은 정치에 치여 만신창이가 되었다면 이제 그 상처를 서로 보듬기 위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가 아니던가. 전주에서, 혹은 부산에서 놓친 ‘그럴싸한’ 한국 영화들이 궁금하다면 당신의 12월 둘째 주 일정을 비워두기를 바란다.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는 12월 11일 목요일부터 19일 금요일까지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중앙시네마, 스폰지하우스 중앙)에서 9일간의 대장정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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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다른 영화를 만나다

그리고... 2007.11.23 14:06 Posted by woodyh98
2007.11.23


명동은 변함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동성당 앞에선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5 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전승일 감독의 <5월 상생(Memory of May)>이 개막작인 ‘서울독립영화제 2007’ 바로 옆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촛불집회라니,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점심을 (이랜드 계열사인) 킴스클럽에서 해결한 나는 뜨끔했다. 앞으론 절대 이랜드 물품은 사지 않으리라…….

공포의 문자가 온 것은 한창 <색, 계> 삼매경에 빠져 있던 때였다. “은경씨께서 개막식과 개막작에 관한 단상을 써주셔야 되겠습니다.” 이런, 공짜 표와 아이디카드의 대가가 무시무시하다. 그러니 이 글은 그냥 한 영화 팬의 ‘독립영화제 감상기’로 읽어주시길.

명동 거리의 북적임 못지않게 중앙시네마 앞도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모두들 아는 사이들인지 반가운 인사들이 한창이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 데선 내가 이방인이라니, 그동안 꽤 인디영화들을 보고 다녔다 자부했는데, 그 영화들은 ‘다른 영화들’이 아니었나 보다. 눈에 익은, 그러니까 유명한(?) 영화인들, 평론가들은―적어도 내 눈에는―보이지 않는다. 한국 영화의 위기, 미래를 부르짖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영화제들이 항상 그렇듯, 제33회 서울독립영화제도 10분 늦게 시작되었다. 사회 없이 처음부터 공연이다. ‘문화노동자’ 연영석 씨의 강렬한 비트의 록 음악이 울려 퍼진다. ‘노동자’를 강조해달라는 이답게 노래 제목도 ‘밥’ 등이다. 옆에는 수화 통역자도 있다. 손과 몸짓으로도 가사를 그렇게 호소력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음악에 맞춰 손과 발을 까딱거린다. 옆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는 ‘리듬’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가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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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니 낯익은 얼굴들이 등장한다. 권해효와 류시현! 아, 맞다. 이들이 7년째 독립영화제의 사회를 맡아오고 있다고 했지. 12월에서 11월로 영화제가 옮겨진 것에 대한 농담―대선을 피하고, 학생들의 시험 기간도 피해서―과 슬로건―다른 영화는 가능하다―이 긍정적이 되었다는 재담을 하는 둘의 호흡이, 몇 년째 사회를 맡아오고 있는 이들답게 척척 맞는다.

임창재 감독(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의 개막 선언이 그 뒤를 잇는다.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축사도 뒤따른다. 김동호,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천, 제주영화제 집행위원장들,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 배우 정찬 등이 소개된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주류 영화인들도 ‘다른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 게스트로는 미국 시라큐스 독립영화제 오웬 샤피로 집행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축하를 보냈다.

1시간 30분의 개막 공연과 개막식에 이어, 30분 남짓한 개막작이 상영되었다. 개막작이 개막식보다 짧은 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개막작인 <5월 상생>은 독특하게 애니 뮤직비디오다. 근데 깔리는 음악이 모두 1980년 5월 광주항쟁에 관한 음악이다. ‘오월의 노래 2’, ‘민주 햇살’, ‘전진하는 오월’, ‘오월의 노래 1’, ‘임을 위한 행진곡’. 내가 아는 노래는 마지막, 가장 유명한 ‘임을 위한 행진곡’ 하나뿐이다. 또 한 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노래에 맞춰 계엄군에 맞아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이 묻힌 무덤, 꽃을 바치는 소녀 등의 애니메이션과 당시 자료화면들이 섞여 흘러간다. 애니메이션의 동작은 거칠고, 자료화면은 오래되어 흐릿하지만 음악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진다.

<5월 상생>을 웰 메이드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혹자는 직설적이고 프로파간다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교하게 내러티브를 직조한 <화려한 휴가>와 <5월 상생>이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서로)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의 가능성 아닐까? 다만 ‘다른 영화’를 너무 강조하여 주류 영화와의 소통의 끈이 헐거워지지는 않기를, ‘다른’을 유지하면서 ‘같은’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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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생명력과 특색을 갖춤으로써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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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의 독립 영화를 결산하는 서울 독립 영화제가 11월 22일부터 독립 영화 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개최된다. 한해의 독립 영화를 총 결산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한국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롭고 역동적인 독립 영화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서울 독립 영화제의 중요성은 규모가 큰 다른 영화제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에 개관한 독립 영화 전용관에서 맞는 행사라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수 있겠다. 올해 33회째를 맞는 서울 독립 영화제를 끌어가고 있는 집행위원장인 조영각씨를 네오이마주가 만났다.


백건영(이하 ‘백’) 서울 독립 영화제가 올해로 33회째이고 그 집행 위원장이신데 서울 독립 영화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조영각(이하 ‘조’) 한마디로 한해의 독립영화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경쟁 영화제이지요. 다큐멘터리, 극, 애니, 실험 영화 등을 포괄하여 시상도 하는 행사입니다. 특히 최근에 독립 장편 영화 부분이 생기면서 이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는 쪽으로 가고요. 어쨌든 그해 경향을 바로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학생 영화들부터 40대 아저씨들이 만든 영화들까지 쭉 포괄되어 있어요. 그 중에서 다른 영화제에서 평가받았던 영화들까지 포함해서 한해를 정리하는 영화제예요. 장편들 같은 경우에는 올해도 스무 편정도 경쟁 비경쟁 포함해서 틀고요.


백: 22일에 시작이죠?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게 어떤 거죠? 아무래도 예산 문제 일 것 같은데.

조: 예산은 다른 영화제에 비해 안정이 되어있는 편이예요. 영화진흥위원회와 공동 주최고 영진위에서 기본적으로 대는 돈도 있고요. 경쟁 영화제다 보니까 비 경쟁 보다 스폰서 붙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기본적으로 해왔던 활동도 있고 인맥도 있고 후원도 많이 따오고 해서 돈이 부족해서 행사를 못하는 건 없고요, 물론 어렵고 풍요롭진 않지만 다른 영화제에 비해선 안정되어 있는 편이예요. 제일 어려운 게 아무래도 장소 문제 인 것 같아요. 최근 영화의 포맷이 다양해졌잖아요. 16미리, DV, HD, 35미리 베타 등, 이렇게 포맷들이 여러 개인데 그나마 제대로 된 포맷으로 상영을 하자면, 그런 것 때문에 장비를 빌린 다거나 장비를 세팅하는 문제, 극장 설비가 거기에 맞나 안 맞나 이런 것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영화를 제대로 틀기 위한 이를테면 16:9 면 16:9 로 2.35:1이면 2.35:1로 틀기 위한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우리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극장 설비하고 장비들이 포함되어 있어야 되니까 이런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게 장비 세팅이예요. 더구나 올해는 3개관에서 하거든요. 1개관에서 시작해서 CGV에서 2개관으로 하다가 올해 3개관으로 늘어났는데. 그렇다고 인력이 늘어나거나 예산이 늘거나 하지는 않은데 욕심을 낸 거죠. 역대 수상작 회고전 같은 거 까지 넣다보니 작품이 105편이더라고요. 해외 초청작까지 포함해서요. 작품이 많아지고 관도 늘어나고 그걸 우리가 과연 커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요. 준비는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부딪혀 봐야죠.


백: 규모가 커진 만큼 걸 맞는 인력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따라줘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대로 중앙시네마에 여러 가지 포맷에 맞는 영사장비가 갖추어져 있나요?

조: 없죠. 그래서 저희가 다 빌리거나, 빔 프로젝트나 테크나 다 빌려야 되고 테스트도 해봐야 되는데 극장에서 영화는 계속 돌아가니까 테스트할 시간은 없고. 그래서 아마 20일 즈음, 행사 임박하면 장비 체크해서 창고에 넣어 놓게 될 것 같아요. 게다가 빌리는 것들이니까 미리 못 들어오잖아요. 기껏해야 전날 아니면 당일 아침에 오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효과적으로 될지 그게 제일 문제 인 것 같아요. 저도 영화제 10년 넘게 했는데 좀 하면 편해 져야 하는데.(웃음) 그리고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만 트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대 행사가 있고 거기서 커뮤니티도 이루어지고, 의사소통도 되고, 이렇게 감독들이 자기 영화를 제대로 틀고 제대로 평가를 받고 이러기 위해서는 여러 기술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더라고요. 뭐 좀 지나고 나면 노하우가 생기고 이래야 되는데 항상 하는 이야기가 10년을 넘게 했는데도 매년 똑같냐는 거죠, 매년 일들이 왜 더 많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백: 서울 독립 영화제 같은 경우는 경쟁 영화제인데 거기에 장르 간 구분을 두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든 단편이든 다큐멘터리든 다 경쟁을 시키는데 그러면서 ‘관객심사단’을 운영하잖아요. 관객 심사단을 도입한 특별한 이유라든지, 효과가 있어서 계속 해올 텐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조: 독립 영화 쪽의 사람들이 대부분 감독 중심이잖아요. 창작자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이것을 지속적으로 보는 관객들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독립 영화는 일년에 수백 편이 나오지만 그걸 꾸준히 보고 올해보고 내년에 보고 한 삼 사 년 동안 쭉 지켜봐 주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독립 영화 하는 사람들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관객들이 이 영화 재밌더라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해의 흐름들을 보고 그 다음 해에도 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독립 영화의 지지군이면서 비평가이면서 그렇게 성장해 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거든요. 활동가로서 또 비평가로서 혹은 관객으로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모집이 잘 안 돼요. (웃음) 저희가 모집을 할 때 자원 활동가는 그냥 자기소개서만 받는데 관객심사단은 영화 평을 받거든요. 그런데 영화 평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봐요. 게다가 독립영화에 대한 평이어야 되고. 예전에 재밌게 봤던 것들을 찾아보기가 어렵잖아요. 독립영화관에서 봤던 것, 작년 서울 독립 영화제에서 봤던 것 이런 영화를 쓰는데 거의 기억에 의존해서 쓰거나. 이 영화가 재밌다 해서 비디오로 다시 빌려 보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봐요. 처음에는 10명씩 모집이 되고 그랬는데 요즘은 5명 뽑아도 거의 다 뽑거나 한두 명 제외하고 이런 수준이라서. 예전에 계속 해왔던 사람들에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게 아쉬워요. 그런 친구들이 좀 쌓여서 커뮤니티가 되고 1기 2기 3기 이런 식으로 해서 스터디도 하고 그런 바람에서 심사단을 만들었죠. 상당히 유의미하고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할 때마다 모집이 잘 안되니까 답답하죠. 독립 영화 평을 쓰라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 평을 써서 내거나 그러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 사람이 생각하는 독립 영화가 이건가 그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백: 지금 말씀을 빗대서 생각을 해보면 그게 독립 영화의 관객 심사단이나 학생이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리뷰를 쓰는 것을 힘들어 할 뿐만 아니라 저널이나 현장 비평가들조차도 독립 영화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비평을 쓰는 사람이 없다보니까 그리고 풍토 자체가 고착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풍토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으실 것 같아요.

조: 그렇죠. 요즘에는 말이 안 된 다는 생각이 들고. 심지어 부산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가 60편이다 하면 그 중의 1/3이 한국 독립 영화거든요. 다큐멘터리나 독립 장편들이 거기서 프리미어를 해요. 그런데 거기서 월드 프리미어를 하는데 기자나 카메라가 한 대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GV를 하는데도. 리뷰도 안나오고.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목받는 영화가 있었지요. 사실 그런 것들은 기자나 평론가들이 만들어 주는 건데. 요즘엔 정말 프로그래머가 찍어준 한 편, 누가 언급을 하거나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게 아니면 아무런 주목을 못 받는 다는 거죠. 뉴 커런츠에서 틀어도 “어 그거 틀었어요?” 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우리가 보도 자료를 보내거나 기자나 평론가분들을 초대하는 이런 작업도 필요한 것 같아요. 아예 관심조차도 없으니까. 최근에는 평론가로서 또는 기자로서 영화를 쭉 보고 발굴하고 이런 기능적 역할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수백 편중에 필수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한국 독립 영화가 아니니까 발견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올해 부산 영화제 언론 사건도 있는데 좀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싶네요. 저널이 각각의 기능이 있잖아요. 전문지면 전문지 일간지면 일간지 인터넷이면 인터넷, 포털이면 포털 등 여러 저널들이 다양한 기능이 있을 텐데 모든 카메라가 똑같이 다 [엠]으로 가 있으니까. [엠]엔 한 삼 백 대 가있고 다른 영화엔 한 대도 없고. 이건 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백: 지금 예심은 다 끝났고 본선진출작이 모두 결정이 됐는데 예심의 중점은 어디다 두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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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올해 슬로건이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이니까 어떻게 다른 시도를 했나. 최근에는 독립 영화들도 너무 주류 영화들하고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경계해야 될 부분인데 그렇다고 다 배제할 수는 없는 거고 그런 나름대로 완성도를 추구하는 이런 이외에 다른 시도를 한 영화들, 그런 거에 중점을 두게 되죠. 사회적인 문제를 표피적으로 다루느냐 아니면 소재주의에 그치지 않고 깊게 내면을 다루느냐 이런 거 가지고 설왕설래를 하는데, 중요한 건 어쨌든 영화들이 중상향 평준화는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버릴 영화도 없고 심사하기엔 더 어려워지는 거죠. 예전에는 보면 이건 아니다, 누가 봐도 아니다 해서 뺄 영화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500편중에 한 200편 이상은 다 논의를 거칠만한 영화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러니까 선택의 폭은 넓어졌지만 상당히 어렵죠. 예심을 하는 분들도 모두 독립 영화를 하시는 분들이지만 그 분들의 개개인의 욕망과 취향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반영되다보면 섞이죠. 뒤죽박죽. 극단적인 경향의 영화들이 같이 상영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영화제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하나의 경향만 이것만 지지한다. 이렇게 갈 수도 있지만 서울 독립 영화제는 그러기보다는 여러 경향과 흐름을 보여주고 이런 것들이 올해의 한국 독립 영화의 흐름이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요. 다른 영화 다른 시도를 한 영화들, 실험적인 시도를 한 영화들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본 영화들에 무게 중심을 두긴 했는데 과연 그런 영화들이 많은가, 슬로건에 맞게 다른 영화는 가능하다 여기에 부합하는 영화는 얼마나 많은가 이런 부분에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 하긴 어려워요. 중상향 평준화는 됐는데 딱히 올해 끝내 준다. 이런 영화는 많지 않아요.


백: 물론 이건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이라 언급할 부분은 아니지만 심사위원들 간에 암묵적으로 “이번에는 이 영화 뜨겠는 걸?” 이런 작품들이 나오지 않나요?

조: 물론 있죠. 올해 부산에서 상 받은 [할매꽃]. 이거는 한국 현대사, 빨치산의 역사부터 좌우익의 대립까지 한 감독의 집안에 다 묻어나 있는 거예요. 감독 자신도 몰랐데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계시니까 어머니가 할머니 좀 찍어봐라 재밌을 거다. 돌아가시기 전에 찍어봐라 하고 찍기 시작했는데 자기도 몰랐던 사실들이 막 나왔데요. 왜 할머니가 혼자 사셨는지 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고 친척 누구 동네 누가 우파에게 총살당하고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감독이 자기도 모르던 집안사가 나오는 영화예요. 극영화 중에서는 다른 영화제에서 공개 안 된 영화가 경쟁에 세 편 있는데, 대단히 뛰어난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20대 초반 30대 초반의 감독들의 에너지가 드러난 단편에선 보기 어려운 [낮술]이라든지 [서울, 귀와 머리칼]은 단편으로 만들었으면 흔한 영화가 됐을 것 같은데 장편으로 밀고 가니까 나름대로 힘과 에너지들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백: 예년에 비해서 응모작 혹은 본선 진출작의 수준이나 올해 특별한 경향이라든지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영화는 중급 이상의 완성도와 나름대로 꼴을 갖춘 영화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말도 안 되는 영화들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보기 민망한 영화들이 좀 있었는데 많이 줄어들었고...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면서 툴을 다루는 솜씨라던가 장비를 다루는 거라든가 기술적인 부분들은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한방이 있는 영화들이 적다는 거고 전반적으로 영화들이 위악스럽고 독한 영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독립 영화라면 치기 어리더라도 공격적이거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뭔가 비수를 드러내는 영화들이 있어야 되는데 별로 없어요.


백: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조: 자기 이야기에 치중하거나 주변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그 세대들. 아니 어떻게 독립 영화는 다 성장 영화일까 그럴 정도로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거죠. 연애 이야기, 그런 것들이 5, 60%이상이 그런 것 같아요. 나머지는 이주 노동자라든가 소수자들을 다루는데 저희가 보기엔 표피적으로 보이고. “이거 신문 사회면에서 본 이야기 아니야? 그대로 찍었네. 어떻게 하라는 거지?” 고민들이 아직 부족한 것 같고...좀 영리하다 싶은 영화들은 충무로를 향하고 있거나 우향우를 향하고 있고. 사회에 어떤 부분들을 강하게 건드리는 게 사실 영리한 건데. 그렇지 않나요? [색, 계]라든지. 이안 감독 보면 정말 영리하잖아요. 그런 영화들이 별로 없지 않나 싶어요. 제가 싫어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도 그렇고 [아스라이]도 그렇고. 그런 영화들이 성장통에 맥이 닿아 있거든요. 자기의 어떤 이야기, 자기의 자의식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드러내는가, 객관적인 사실을 어떻게 자기화 해서 보여주는가. 이런 것들은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 것 같은데 자기 바깥에 있는 어떤 이야기들, 사회에 위악한 문제들을 영화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는 조금 약하지 않나 싶고요. 뭐 저는 독립 영화를 보라고 떠드는 사람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워요.


백: 그렇다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학생도 있을 테고 학생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에서 하는 영화 교육이 예전하고 많이 달라졌든지 아니면 영화 교육 자체가 지향하는 바가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 전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영화과에서 실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데가 있는지. 어쨌든 이 사람들이 장편 극영화를 만들든 방송국 피디가 되던 영화의 기초들이 있는 거잖아요. 웰-메이드 한 것 이전에 가져야 되는 영화의 대한 태도라든가 실험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갖고 있는 힘과 영화의 근저에 있는 기초적인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대학 4학년 졸업할 때까지 교양으로도 안 듣고 졸업하는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전 그게 충격이었고(웃음) 한국영화아카데미나 한국예술종합대학 영상원 같은데도 보면 그냥 충무로 예비 인력을 가르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예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산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보면 딱 드러나는데 영화가 단편에서도 완결된 드라마, 완결된 어떤 기승전결 이런 걸 갖고 있는 것이 대단히 많아요. 그런 게 나쁜 건 아닌데 너무 그런 것에 매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보니 길어지기 마련이지요. 영화들이 평균 25분이예요. 단편 4개 정도를 한 섹션에 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4개 정도를 구성하면 보통 90분이 안 넘었거든요. 70분 뭐 80분 이랬는데 지금은 4개 묶어 놓으면 100분이 넘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단편이지만 하나의 작품인데 25분짜리를 쭉 본다는 게 되게 힘들잖아요.


백: 올해는 예년 수상작 회고전이 있고, 원신연 감독, 류승완 감독 이송희일 감독 등 많은 기성감독들의 초기작들이 나오는데 모두 서울 독립 영화제를 거쳤던 사람들이고. 지금은 그 감독들이 어느 정도 상업 영화도 찍었고 독립 영화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감독들이다 보니까 경쟁작하고 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독립 영화를 접하는 관객들이 관심 있게 봐줬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들이 있으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조: 류승완 감독의 [현대인]이나 원신연 감독의 [빵과 우유]는 아마 독립 영화를 본 사람들은 많이 보지 않았을까 싶고 혹시 그거 보셨어요?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백: 남기웅 감독. 네 봤지요.

조: 그 영화도 2000년에 나온 영화거든요. 60분짜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예측하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딱 나와서 되게 놀라게 했던 영화였어요. 완결성이라든가 구성력이라든가 이런 드라마는 떨어지는데 사회를 공격하는 어떤 시선들이 있다고 생각이 들고...그래서 그 영화를 봐줬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유명한 영화 중에 [경계도시]라고 있어요. 송두율 교수 같은 경우는 [경계도시]가 나온 다음에 들어 왔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국가 보안법으로 잡혀갔잖아요. 저도 정말 충격이었는데, 송두율 교수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송두율 교수가 거짓말을 했다 그건 잘못 아니냐 그러면서 김철수가 맞다 등...본질과 무난한 것으로 논쟁에 휩싸였잖아요. 그런데 홍영숙 감독의 [경계도시2]도 그 과정을 다 찍었거든요. 곧 나올 텐데 [경계도시]도 봤으면 좋겠고. 또 하나는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닌데 [데모크라시 예더봉]이라고 미얀마 노동자들이 와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 이야기예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7년 전인데 지금하고 상황이 하나도 안 변했잖아요. 미얀마 문제도 그렇고 한국의 이주 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최근에 이주 노동자에 관련된 극영화도 나오고 다큐멘터리도 나오고 그러는데 [데모크라시 예더봉] 같은 경우는 7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 지금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주목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어요. 극영화에선 이수연 감독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물안경] 같은 경우도 영화가 이상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이송희일 감독의 [굿 로맨스]는 필견이지요. 제가 보기엔 그의 영화 중에 제일 저예산이고 제일 좋은 영화가 아닐까. [후회하지 않아] 보다(웃음).


백: 이번에 해외 초청작에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이 있는데 이 감독을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조: 아핏찻퐁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 독립 영화를 한다는 사람으로서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도 몇 편 안나오는 태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는데 도대체 이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호기심이 들었죠. 그런 감독이 2명 있어요. 중국의 지아 장커와 태국의 아핏차퐁.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뭐하고 있을까 우리 동료들은 뭐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아 장커 영화 [스틸 라이프]보면서도 그랬고요. 지아 장커는 2004년에 왔었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해외 초청부문이 예전에 CJ에서 후원을 해서 해외 부분을 했어요. 존 카사베츠의 경우도 국내에서는 쉽게 못하는 회고전인데 (왜냐하면 브에나비스타에서 판권을 갖고 있고 다 돈이고.) 해외 부문만 CJ에서 후원을 해주면서 이런 것들도 해보자 해서 존 카사베츠도 하고 했는데. 사실 회고전이 주목받기가 어렵더라고요. 해외 독립 영화를 가져다 튼다는 게 그래요. 한번은 라틴 아메리카 영화를 한 열 편 섭외해서 틀었어요. 그런데 열 편 본 관객이 400명이 안 되는 거예요. 돈은 몇 천만 원 들었는데. 그래서 소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을 하다가 그럼 한 감독의 영화로 가자. 단 동시대 활동하고 있는 우리 또래의 감독들, 가까운 데가 아시아니까 지아 장커나 아오야마 신지나 아핏차퐁이나 작년에 에릭 쿠 까지.


백: 일반 관객들이 서울 독립 영화제를 주목하고 봐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조: 영화가 사실 널려 있잖아요. 컴퓨터에서 있고 CGV에도 있고 메가박스에도 있고 DVD도 있고. 그런데 사실 독립 영화들은 여기서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일단 있고 그런 분들이 영화를 많이 보면 볼수록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리 소문 없이 보면 정말 여기서 밖에 못 보는 영화, TV를 틀면 나오는 영화 CGV에서 하는 영화 말고 다른 영화들이 계속 있었던 거잖아요. 독립 영화라는 이름이든 작은 영화라는 이름이든 예술 영화라는 이름이든 계속 있었는데 그 영역들에 대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발길을 해보고 발견을 해보는 기쁨을 누려야 되지 않겠어요?(웃음) 요즘 관객한테 큰 불만은 없는데 아쉬운 점은 좀 게으른 것 같아요. 게으르다는 표현이 맞는지 몰겠는데 예전에는 찾아서 보고 떼끄에서 가서 보고 어디에서 보고 그러는데 어디 영화제 찾아간다. 이런 건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전 유행어라고 생각하는데 “너 그 영화 봤니?” “응 나, 다운 받아 놨어” 이런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어요.(웃음) 영화를 봤느냐 안 봤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영화를 소유하느냐 혹은 앞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게 너무 만연 되 있는 것 같아요. 각각의 창작자들의 에너지가 있는데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 될 수 있는 게 서울 독립 영화제 뿐 아니라 독립 영화가 아닐까 싶고요. 부산이나 그런 국제 영화제는 규모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여기는 극장 안의 영화의 에너지와 창작자 독립 영화 하는 사람 관객들의 에너지가 형성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군요. 자신이 영화인이 되고 싶으면 그런 공간에서 에너지를 한번 느껴보고 자기 영화가 거기서 상영이 되고 그런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중요 할 것 같아요.


백: 어쨌든 얼마 안 남았는데 준비 잘하시고 성황리에 잘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잘 써드리는 것 밖에 없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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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보지요. 독립 영화에 언제 처음 투신 하셨는지. 그 많은 영화계 일 중에서 유독 힘들다는 독립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조: 처음 관계를 맺게 된 건 95년 인디포럼 때부터고요. 그전에 문화 학교 서울에서 활동했을 때 새로운 영화의 제안, 그러니까 좋은 영화는 좋은 관객이 만든다. 이러면서 나름대로 20대 에너지 있을 때 영화를 틀고 그랬어요. 그런데 거기서 트는 영화를 생각해 봤더니 다 외국의 예술 영화들인 거예요. 그때까지도 생각을 못했는데 한국의 독립 영화가 있는데 왜 우리가 이것을 몰랐을까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싶었지요. 90년대 중반이 지금 생각해보면 독립 영화계의 침체기라고 보여 지고, 그런 와중에 문화학교 서울에 제안이 왔어요. 인디 포럼(아직 이름도 안정해졌을 땐데) 영화제를 하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 내부에서 회의를 하다가 담당자를 정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제가 놀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책임감은 좀 있고 그러니까 인디 포럼 96을 하게 됐고 96준비하면서 95년부터 문화학교 서울에서 독립 영화를 틀기 시작했었어요. 감독과의 대화식으로 류승완 감독 영화도 틀고 홍영숙 감독 영화 뭐 임창재 영화 등을 틀고 감독 불러다가 감독과의 대화도 틀고 지금 아트 시네마처럼 하듯이 매달 한 달에 하면서 관계를 맺게 됐지요. 그 때는 그런 기획자들이 많이 없었으니까요. 영화제도 정성일 선생이 하던 서울 단편 영화제 이런 것들만 있었으니까, 자연히 감독들하고 모일 수 있는 장소와 근거지가 문화학교 서울이 되고, 이러면서 (인디 포럼도 작가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감독들이 맨 날 모여서 토론하고 저는 그걸 조종하고 정리하고 실행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독립 영화 쪽에 발을 딛게 된 거죠. 그런 과정에서 98년 초부터 독립 영화 협회 창립을 준비를 했는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 일을 맡게 되면서 독립 영화 쪽 일을 하게 됐죠. 저는 그런 면에서 운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쓸데없이 다른데 기웃거리지 않고 제 적성에 맞고 잘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을 맡았단 생각도 들고.


백: 독립 영화 일을 시작하고 내가 이 일을 잘했다 보람 같은 걸 느낄 때가 여러 번 있었겠지만, 특별히 잊을 수 없었던 사건들 있으면 소개 해주세요.

조: 아 뭐..(웃음) 잘했다? 이런 거는 영화제도 제가 많이 관여를 했으니까 인디 포럼도 그렇고 서울 독립 영화제도 그렇고. 그런데 제가 지금은 직접적으로 관여는 안 하지만 정동진 독립 영화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독립 영화인 한 100명 모이지만, ‘여기는 순간 최대 관객이 500명이야’ 이러거든요. 야외해서 영화를 트니까 돗자리를 깔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요. 저랑 강릉 친구들이랑 같이 만들었는데, 야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예요. 인디 포럼이나 서울 독립 영화제는 제가 없어도 어떻게든 굴러갔을 텐데 정동진은 제가 그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없었을지도 모르는 영화제인데 지금 8회까지 오고 있어요. 강릉 시네마테크 친구들이 영화제에 애정을 가지고 하는 걸 보면 대단해요. 거긴 전업이 한 명밖에 없거든요. 다 영화제 기간에 휴가 내고 월차 내고 영화제 일을 하고 자원 할동가들이랑 하고, 진짜 지역 영화제로 자리 잡았지요. 예산은 지금도 2500만원 규모지만. 갈 때마다 아 이건 정말 내가 잘한 것 같다, 물론 이건 바라보는 입장이니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 독립 영화제는 지금도 막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해야 되니까 그런 성취감이나 이런 것들이 덜 한데 이건 제가 한발 짝 떨어져 바라보니까 재밌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사건은 [둘 하나 섹스]로 위헌 소송을 냈을 때 아! 이게 가능한거였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법을 바꾼 거잖아요. 감독님은 그거 없어도 되니까 빼자 그랬어요. 감독님 우리는 독립 영화 만들어 놓고 비겁하게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빼면 안 됩니다 하면서 법정 투쟁을 했거든요. 충무로 영화들은 그렇게 안 했잖아요. [거짓말]이든 뭐든 논란은 많이 있었지만 마케팅으로만 활용되고 그냥 삭제하고 문제제기를 안 했지요. 따지고 보면 독립 영화 역사는 표현의 자유의 투쟁의 역사였어요. 한국 영화가 이렇게 자유롭게 나올 수 있는 것도 독립 영화인들이 싸운 덕일지도 몰라요. [올드보이]같은 영화도 관객 300만을 동원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아닌가?(웃음) 그런 면에서 여러 명이 싸운 건 아니지만 싸우면 되는 구나 이런 경험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백: 독립 영화 역사라는 게 80년대 민주화 투쟁 역사와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현실에 대한 혁명적 시선들, 그러니까 ‘장산곶매’나 ‘서울 영상 집단’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지금 한국 영화의 표현의 자유, 여러 가지 소재나 형식의 많은 자양분이 됐다고 봅니다. 그 시절의 독립 영화와 비교했을 때 요즘의 독립 영화나 또는 독립 영화인들이 더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쉽거나 그 때하고 좀 다른 것 같다. 라고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조: 저도 포함되는 이야기인데요, 선배들 보다 전략적이지 못한 것 같아요. 예전에 [파업 전야]를 만들 때 혹은 [낮은 목소리]를 만들 때 보면, 치밀하게 계획을 해서 관객층을 형성을 하고 투쟁을 하고 전 과정에 목적의식이 쫙 있는 거잖아요. 영화 안에도 그게 담겨 있고 영화 만드는 과정에도 담겨 있고. [낮은 목소리]도 한 단체에서 만든 거지만 뱃지를 제작하고 지역 상영까지 쭉 가고. 이미 그게 10년 전 15년 전 선배들이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만큼 계획적으로 하고 있나. 영화감독이 자기 영화를 만들 때 자기 욕망만 투영되는 게 아닌가.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창작자 개인의 욕망만 투영되는 것도 독립 영화의 한 부분이겠지만, 이게 좀 어떤 전략적인 고려가 돼서 어떤 문제를 다룰 때 어떻게 이슈화를 시키거나 이런 전략적인 고민을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제를 한다거나 무슨 행사를 하나 해도 여러 시대적인 것들을 반영하는 전략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데 우리가 좀 그런 기획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건 개인의 욕망이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지금은 독립영화도 지원 구조에 의존 한지가 거의 10년 가까이 되거든요. 영진위 있으면서 작지만 지원 제도들이 생기고 이러면서 거기에 의존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자생력을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잖아요. 서울 독립 영화제도 한 50%이상이 공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거고 인디스페이스도 마찬가지고. 제작되고 있는 독립 영화도 어쨌든 싸워서 더 끌어내야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게 없으면 영화 제작이 안 되거나 다른 활동들이 정지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경계를 해야 되고 자기 성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부분들이 아쉽고 우려스럽죠.


백: 구조적으로 취약하니까 안전판이 있는 것은 필요하긴 한데 그 안전판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안전판이 무너졌을 때 회생이 힘들어진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조: 그렇죠. 그래도 독립 영화가 망할 거라곤 생각하긴 않거든요. 없으면 없는 대로. 제가 스크린쿼터 일인시위를 하는데 피켓 용어를 보냈는데 이 사람들이 그걸 못보고 자기 맘대로 쓴 거예요. ‘스크린 쿼터가 없으면 독립 영화도 없습니다’ 이렇게 써온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이 양반들아 정신이 있어 없어? 스크린쿼터가 없고 극장이 없어도 독립 영화는 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제가 없어지고 우리가 아는 감독은 없어져도 독립 영화는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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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이제 인디스페이스 이야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요. 11월 8일에 독립 영화인들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개관을 했어요. 아무래도 직간접적으로 참여를 하셨으니 감회가 크실 텐데요.

조: 직접적으로 지금 제가 운영팀은 아니고 옆에서 기획에 참여하고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기쁨보다는 이걸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너무 늦었다.(웃음) 지금은 관객, 시장이 붕괴되고 초토화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처럼 모양새가 돼서요. 어쨌든 전용관이 CGV랑 경쟁하는 건 아니잖아요. 멀티플렉스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비상업적인 공간으로 영화의 의미가 있는 걸 텐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이냐는 거죠. 그러나 결국에는 독립영화도 경쟁으로 가야 하는데, 하다 못해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스폰지하고도 경쟁을 해야 되고요.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고 있는 거죠. 관객이 안 들면 전용관 스텝들 포함해서 인건비도 못 받아요. 그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살아남길까. 거기에 영화들이 또 빛을 발하면서 흥행이 될까. 노심초사하게 되죠.


백: 기쁨보다 걱정이 더 크단 말이군요.

조: (웃음) 이왕이면 좀 더 빨리 됐어야 한다는 거죠.


백: 그렇다면 제작이 이미 완료된 영화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나중에 개봉까지 감안을 해서 기획 단계서부터 언론플레이라든지 치밀한 마케팅을 해서 일단 붐을 조성하는 게 관객을 모으는데 유리하겠지요. 아까 중앙 시네마 영사 시설 이야기를 하셨는데 인디스페이스에 상영관외 다른 부대시설이 있나요?

조: 2층에 로비가 있어요. 2층에 사무실이 있고, 로비가 영화제 할 때 유용할 것 같고 인디스페이스 사무실도 거기에 있고 라이브러리가 들어올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소장하고 있는 디브이디나 책을 관람 할 수 있게. 하루 종일 못 봤던 독립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올 거예요. 그래서 모니터 한 3, 4대 해서 신청을 하면 자기가 꺼내서 볼 수 있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뿐 아니라 지금 디브이디들이 계속 나오고 있거든요. 자체적으로 만든 것도 있고 지원 받은 것도 있고 한 40종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영화들을 일정하게 볼 수 있는 시설이나 환경들이 있어요.


백: 유료로 하실 건가요?

조: 유료겠죠, 아마. 비싸지 않겠지만 실비로 2000~ 3000원 받겠죠.(웃음) 그래서 그 쪽도 돌리고 영화 관련 책들 특히 독립 영화 책들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고요. 우리의 목표는 거기가 독립 영화의 메카가 되어서 사람들이 모이고 지나가고 약속도 거기서 하고 만나고, 뭐 이를테면 관객과의 대화를 매일 같이 하자는 생각도 있어요. 일하는 사람이 힘들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그 것 밖에 없지 않느냐라는 거죠. 한번씩이라도 매일 한다거나 말이죠.


백: 독립 영화에도 스타 감독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는데 독립 영화를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고 다른 감독들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개인적인 걱정이 있어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소외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 독립 영화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조: 딜레마죠. 우리가 영화제를 하면서 어쨌든 500편중에 50편을 고르면 나머지 450편을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배제하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영화제는 선택과 배제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그 영화들을 어떻게 할 건가. 또, 예전에 영화제를 하면 어떤 건 80명이 보고 어떤 건 100명이 봤어요. 지금은 어떤 건 200명이 보고 어떤 건 20명이 봐요. 영화제 안에서도 이게 양극화 현상이라 그럴까. 우리 사회 자체가 그렇잖아요. 어떤 건 천 만이 보고 어떤 건 만 명도 안보잖아요. 이런 것처럼 독립 영화 안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더라고요. 관객들도 재밌거나 좀 당기는 영화들은 시놉만 보고도 모르는 영화들이라도 찾아서 보는 눈들을 관객들이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안 알려진 감독들을 어떻게 발굴해서 틀 건가, 효과적으로 틀 건가, 그냥 튼다고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니 어째야 하나, 그런 고민들을 계속 해요.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들은 잘 모르겠어요. 영화제를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각의 영화제에서의 기능들이 다른 것들이 있어야 될 것 같은데 합의하기가 쉽지 않고. 니들은 이걸 틀어라 우리는 이 걸 틀겠다. 이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욕망이,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송희일의 신작을 우리 영화제에서 틀고 싶은 거고, 김종관 감독의 신작을 틀고 싶은 거고. 대신 반대편의 욕망은 어떻게 젊고 새로운 감독을 발굴 할 것인가. 이런 두 가지 고민이 있는 건데. 오히려 저는 무게 중심이 뒤에 있는 것 같거든요.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 그런 것들이. 그런 시도는 계속 하고 있어요. 이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현되게 할 것인가 이런 거는 참 어렵다 생각이 들죠. 전 그런 부분에선 워낙 욕도 많이 먹고 그래서 이골이 났지만요(웃음) 독립 영화계에도 주류 비주류가 있지요. 영화제에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잊혀지는 감독들이 있는 거고. 딜레마 인 것 같아요. 예전처럼 정기 상영회가 있고 그러면 이렇게라도 한번 틉시다. 연락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영화제에도 관객이 안 오는데 그냥 조그맣게 상영회를 하면 돌아버려요. 감독 불러 놨는데 관객이 10명도 안 오니까.


백: 약간 난감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독립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하세요?

조: 비주류 아닌가요?

백 어떤 면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하세요?

조: 일단 시장에서 배제되어있고.(웃음) 무슨 의도가 있는 질문인가?(웃음)


백: 그런 건 아니고요. 소위 독립 영화 관련된 글들을, 저널이든 네티즌이든 글을 볼 때면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수사 중에 하나가 비주류라는 말과 소외되어있다 어렵다 그런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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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저는 그런 비교가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고. 비주류 그 말도 깊게 들어가 보면 대항의 개념으로 생각을 하는 거잖아요. 충무로와 독립 영화. 사실 독립도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이냐.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주류로부터의 독립 이랬는데. 저는 독립 영화 자체가 충무로와 다른 동네에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뭐로부터 독립이냐 이야기하면 난감해 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권력으로부터는, 그렇다고 상업 영화가 권력과 붙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예전처럼 검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본의 문제 혹은 사고의 문제 이런 게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박찬욱 감독이나 이런 사람들이 더 급진적인 사고를 하는 것 같고 독립 영화인들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오히려 더 나이브한 생각을 할 수도 있거든요. 영화가 더 나이브 할 수도 있고. 제 생각에는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진영에 있는 영화, 제작 방식도 다르고 규모도 다르고 영화가 배급되는 방식도 다르고. 그래도 우리는 어쨌든 자극을 주려고 하겠죠. 시장에 진입하려고 하고 CGV에 들어가고 그러잖아요. 주류 시장에 질서를 좀 흔들거나 균열을 내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거죠. 물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중에서는 여기에 어떻게든 가볼까 하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는 49%는 되는 것 같은데(웃음) 나머지 51%가 그걸 유지하고 있는 거고. 갈려고 하는 사람이 51%가 되는 순간 이 판이 재미없어지겠죠. 이전투구의 장이 되겠죠. 그래서 다른 거라는 생각이 들고 떨어져있기보다는 약간의 교집합이 있으면서 교집합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파란을 일으키는 영화계 질서를 흔드는 영화 언어 자체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기능이 있을 텐데 그건 기능 중에 하나지 본질은 아닌 것 같아요. 본질은 독립 영화 자체 그 안에 뭐가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독립 영화가 한국 영화의 미래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독립 영화는 현재의 독립 영화고, 현재가 중요하지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 독립 영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때문에 지원해야 된다보다는 독립 영화의 현재가 어떠냐.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백: 이제 거의 끝나 가는 데 독립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서울독립 영화제 집행 위원장이자 독립 영화 협회에 계신 분으로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조: 독립 영화를 무조건 많이 봐야 되고 많이 보는 게 장땡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단편을 찍으면서 방향은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에게 가 있고 그들 영화는 막 외우고 난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야지 다짐하거나, 홍상수 감독이나 김기덕 감독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제 경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이럴 때는 독립 영화를 봤을 때거든요. 잘 만들었거나 아니면 너무 아쉽거나, 저건 저걸 정말 좋은 소재인데 왜 저렇게 했을까 나 같은 이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은 감정이 생겼을 때 말이예요. 그런 점에서 창작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거는 저는 독립 영화인 것 같아요. 남이 500만원으로 만들었으면 자기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독립 영화들을 많이 봐야 그 영화들의 기운이라든가 흐름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판에서 성공하려면 버티기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웃음) 1, 2년 있다가 가면 아무도 기억 못해요. 계속 영화 만들고 얼굴 내밀고 그래야죠.


백: 몇 년 정도 버티면 될까요?

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죠.(웃음) 그리고 자기가 아는 유명한 감독들도 생활은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진짜 알아야 되요. 이송희일 감독이 [후회하지 않아] 만들기 전에, 지금도 나아진 건 별로 없겠지만, 오기로 했는데 안 나와요. 왜 안 왔냐. 그러면 차비가 없어서 못 나왔데요. 그리고 술 먹다가 저 갈게요 하고 먼저 가요. 왜 가냐 그러면 택시비가 없어서 가는 거예요. 술 값 없어서죠. 다 그래요. 영화제에 튼다고 돈 주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계속 부르지, 왔다 갔다 돈 들어요. 우린 또 악착 같이 회비 걷지.(웃음) 술자리에 돈 없어서 못 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요. 자기 스텝이랑 4명오면 만원씩 걷어서 5만원 내야 되는데 자기가 내줘야 되잖아요. 그러면 나가서 회의하고 들어와요. 어떡할까. 이 돈으로 딴 데 가서 먹을까? 여기 들어와서 회비 내고 여기서 먹을까. 여기 몇 시까지 해요? 물어보고. 영화제 때도 술 먹으면 할증이 풀려야 가요. 전철 다닐 때까지. 어쨌든 다른 사람들도 자기랑 별로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야 되고 버티고 많이 만들어야 되고 많이 봐야 되지요.


백: 조위원장님이 뽑는 독립 영화 베스트5를 알려주세요. 뽑기 힘드시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뽑아주세요. 이건 죽을 때 무덤까지 가지고 갈 만한 것.

조: [오버 미]. 임창재 감독의 96년 단편이거든요. 아마 제가 제일 많이 본 영화일 텐데, 그 영화를 보고 실험 영화라든가 모더니즘이라든가 이런 것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조영각씨는 독립 영화란 비주류 영화가 아닌 그들 특유의 생명력과 특색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독립 영화가 단순히 주류 영화의 그늘에 있는 소자본으로 아이디어와 재기로 승부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 나오는 독립 영화들이 과거에 비해 강렬한 시선과 화법이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80년대를 거쳐 독재 권력과 치열하게 싸워온 독립 영화는 이후 작가 내면으로 파고들면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다소 무디어 졌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다만 독립 영화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 그들은 다소 무디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기존 영화판을 공격하고 균열을 내고 충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독립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그들만의 무기이자 에너지이리라. 이런 에너지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서울 독립 영화제는 1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인디스페이스(구 중앙 시네마)에서 열린다. 보통의 상업 영화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날 것 과도 같은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서울 독립 영화제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일 것이다.


진행 : 백건영(영화평론가) 편집장
정리 : 윤광식(호러무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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