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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영화평론가)
서울토박이라서가 아니라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시는 서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공기가 나쁘고 인심 사나운 교통지옥일지언정,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사는 일을 없을 것이라 다짐하곤 했다. 얼마간의 여행지라면 몰라도 서울 외에 다른 지방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으니, 문화예술 인프라에 관한한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딱 한 곳, 서울에 없는 것을 가진 부산이 부러워졌다. 서울에 없는 것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 그야 때맞춰 내려가면 그만이지. 아니면 세계최대의 백화점 신세계 센텀시티? 패리스 힐튼도 아닌 마당에 나와 무슨 상관인가. 도처에 펼쳐진 바다와 지천에 널린 횟감? 회도 바다도 모두 좋아하지만, 어디 그런 곳이 부산뿐일라고. 파리에도 있고 로마와 뉴욕에도, 서구의 웬만한 도시 마다 하나쯤은 있으며 하물며 부산에도 있는데, 서울에는 없는 것.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이다. 그래서 나는 부산이 부럽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상문화도시로의 발돋움을 기획하고 지속적인 지원을 실행시켜가고 있는 부산광역시 공무원을 가진 부산 사람이 부럽다. 역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살림을 맡고 있는 문화행정가들이 부끄럽다. 아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시네마테크가 뭐 그리 중요하기에 이렇듯 부산과 서울을 단순비교 하면서 호들갑이냐고 말할 런지 모르겠다. 시네마테크는 한 마디로 ‘영화의 집’이다. 영화를 발굴하여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공간으로서의 시네마테크의 시작은, 1930년대 초 유성영화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 즉 토키시대에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를 보존하고 이후 세대를 위한 영화 역사의 전달 임무를 지닌 시네마테크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 알다시피 서구에서 영화는 산업에서 예술의 대상으로 종국에는 문화유산의 대상으로 변해왔다. 이때 시네마테크를 이루는 추동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시네필의 고유한 노력과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국가의 제도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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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상징처럼 알려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Cinematheque Francaise)'를 보유한 프랑스의 경우, 일찌감치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고유한 지위를 부여했다. 프랑스가 문화유산으로서의 영화에 대하여 제도적 지원을 적극 실시했다면, 미국의 경우는 시장에서 비상업적인 방식의 영화 상영을 통해 시네마테크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예컨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재정의 90%가 문화부와 CNC(국립영화센터-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대표적 시네마테크인 ‘필름포럼(Film Forum)’의 경우 이사회를 비롯해 개인, 단체, 기업 후원회원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도 서구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002년 5월 10일 소격동 선재센터에서 개관해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정위탁’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현재까지, 영진위의 재정지원(임대료)과 극장활용수익을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시네마테크를 가진 도시답게 파리에는 약 150개의 독립영화관과 89개의 실험영화관이 있다. 게다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필두로 ‘제오드’, ‘포럼 데 이마지’, ‘퐁피두센터’ 등에서는 고전향취 물씬 풍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네필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것은, 파리시의 영화산업 지원정책이다. 이를테면 상업 활동이자 예술로서, 청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여가활동으로서 영화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영화산업을 행정측면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위해 파리시에서는 프랑스 국립영화연맹 등과 협력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관람 권장 행사를 벌이는 한편, 영화관 현대화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해 분투 중이다.

파리시는 독립영화관들, 오래된 유명 영화관들, 동네 영화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 예술 및 실험영화단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 모임인 ARP가 프랑스 및 유럽영화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직접 '영화인들의 영화관(Le Cinema des cineastes)'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한 파리시의 적극적인 영화예술에의 지원정책에 힘입은 결과다. 정책방향과 정책적 지원주체와 형태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필름 소사이어티’나 ‘시네마테크 온타리오’ 같은 북미의 시네마테크들 역시, 영화산업의 육성 및 보존을 위한 해당 시의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에서 기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문화예술, 좁혀서 영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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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내놓은 2010년 시정 중점 과제 중 하나는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 구현’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구호다. 연중 시청 앞 광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청계천의 밤빛을 배경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의 서울특별시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국의 콘텐츠에는 ‘영화’가 쏙 빠져있다. 아니 영화‘만’ 빠져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편중된 예산편성이다. 즉,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지향하겠다는 서울의 1년 예산 가운데, ‘문화’ 분야 예산이 (일반회계를 기준으로)1.8%에 불과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러니까 2010년 서울특별시 총예산 21조 2853억 중 문화부문 예산은 3,769억 원이고, 이 가운데 ‘문화시설 건립운영 지원’에 242억 원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외적으로 수도서울의 위상을 과시하기 급급한 공공프로젝트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계절스포츠 행사를 치르느라 시설물을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예산을 쏟아 부을지언정, 시네마테크 하나 건립하는 데는 시가 발 벗고 나서는 법이 없으면서, 무슨 재주로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만들겠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화만큼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문화예술분야가 또 어디 있다고.

앞서 말했듯이 파리와 뉴욕의 시네마테크가 너무나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과 단순 수치로 비교할 마음은 없다. 그래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 서울의 일 년 예산 중 문화부문에 배정된 것이 1.8%(3,769억 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떨까? 부산광역시의 2010년 총예산은 7조 2,136억 원으로 서울의 1/3 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이중 문화관련 예산은 3.040억 원이고, 영화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영상센터 건립에 565억 원이, 영상중심도시 지속사업에 650억 원이 배정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영상산업도시 부산’의 면모가 예산편성에 드러나 있다(서울특별시 공식홈페이지 문화국 콘텐츠에는 ‘영화’만! 빠져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6년 4월의 어느 밤, 종로타워 바에서 ‘앱솔루트 트리오’의 리더인 피아니스트 페터 폰 빈하르트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 직업을 알아차린 그는 자신도 영화광 못지않은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대뜸 “기회가 되면 서울의 시네마테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순간 뜨끔한 마음에서 임기응변으로 “유럽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도 시네필의 기운이 살아있는 시네마테크가 있다”고 호기 있게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서울아트시네마 쪽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더라면, 무엇을 보았을 것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수집, 보존, 복원, 연구, 상영의 공간인 우리들의 시네마테크의 뒷모습은, 오랜 벗처럼 겹으로 똬리를 튼 낡은 영사기와 만성적 재정문제라는 검은 그림자가 아닐까.

만성적자와 노후 된 설비와 제대로 된 교육 공간 하나 없이, 이 남루한 하드웨어를 몸에 가난처럼 짊어지고도 우리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8년 세월을 시네필의 성소로 버텨왔다. 그렇다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활동이 외국의 시네마테크에 비해 모자랄까? 천만의 말씀이다. 프로그래밍만 놓고 본다면 뉴욕의 필름포럼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필름아카이브 구축과 현대식 영사시설의 구비가 급선무이긴 하나, 이처럼 기획전과 대관전을 비롯해 교육상영과 포럼, 출판에 이르기까지,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이뤄온 서울아트시네마의 성과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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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산업이면서 예술이고 문화인 동시에 유산이다. 서구의 국가들은 이미 70여 년 전 이를 인식하고는 찬란한 유산을 후대에 남겨줄 공간으로 ‘영화의 집’을 기획하여 실천에 옮겼으며, 이 노력은 각 도시와 구역을 중심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구 1,200만 명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는, 이곳에 ‘시네마테크전용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서울시장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문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양동작전으로 생사여탈권을 휘두르는 야만적 작태를, 자발적으로 시작하여 문화운동을 거쳐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서울아트시네마’의 외롭고 고단한 싸움을 언제까지 외면하고 방치할 것인지를.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관한 공모제가 공표될 날도 머지않았다. 어차피 이치에 맞지 않은 제도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입 아픈 일일 테니 이제는 무시하기로 하자. 설사 그렇더라도 ‘1000만 영화 관객 시대’를 질주하는 한국에서 전용관 하나 구할 수 없어 떠도는 한국 시네마테크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알려야 한다. 2005년 4월 3일 <안녕, 용문객잔>을 끝으로 낙원동으로 이사 온 이래, 시네마테크는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시네마테크전용관’의 필요성을 호소해왔다. 그러나 영진위나 문화부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용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고사하고 기본 계획조차 전무한 집단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셋방살이가 고달픈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부정하고 폄하하려는 냉소적 시선을 못 견디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과 유지 발전을 위해 서울시가 나서야 할 때이다. 지금 발 벗고 나선다 해도 부산보다 10년이나 늦었다. 무엇이 두려운가. ‘일상에서 문화가 흐르는 예술도시를 구현’하겠다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에 걸 맞는 사업으로 ‘시네마테크전용관’ 만큼 확실한 보증수표가 또 있을라고. 시네마테크전용관이야말로 600년 고도(古都)의 문화유산 남대문과 근대화의 상징인 남산타워에 이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확신한다. 서울시가 앞장서서 그 일을 맡는다면, 박수치면서 애써 도울 사람은 천지에 널려있다. 왕조는 무너져도 왕조의 기록은 역사로 남듯이,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성취가 훗날까지 남겨질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만한 것도 없을 터. 정치적 논리를 떠나 문화예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을 가진 기관장의 용기와 실천이 보태진다면, 서울시민도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집’이 필요하다. 그러니 서울시가 나서라!



(추신)
하나. 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뽑게 된 이래로 ‘시네마테크’를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처한 건 아닌지 되물어 봐야 한다. 단합된 힘을 보여주면서 압박도 하고, 새로운 시장선거의 공약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공약이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이면서 서울의 미래를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각인시키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이지만) 정말로 시네마테크를 사랑한다면, ‘관객회원’들은 4,000원의 할인금액이 아닌 오히려 일반 관객보다 단돈 1,000원이라도 더 내고 영화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건 수혜자부담 원칙을 떠나 애정표현의 실질적 방법의 문제이다.ㅡ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추가요금의 부담만큼 다른 혜택으로 보상해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을까ㅡ나는 시네마테크 측이 과감하게 이 문제를 공론화 하고 다양한 경로로 의견수렴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신이 진정으로 시네마테크의 친구이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열혈관객이라면, 회원에 가입하고 더 많이 자주 찾는 것만큼이나 기꺼이 (특히나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가끔씩 어디선가, 이명처럼 들려오거나 매체의 지면으로 접하던 “이 좋은 영화들을 너무 싼 값에 봐서 미안하다”는 말들은 괜한 소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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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를 향한 연애편지

올해로 4회를 맞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위한 준비에 분주해 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한달여의 시간은 또다시 내년을 기약한다. 그리고 동시에 ‘친구들 영화제’의 일원으로 속해있던 나 또한 내년에 돌아올 ‘친구들 영화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3월의 첫날, 나는 ‘친구들 영화제’의 폐막과 동시에 개강을 준비해야 한다. 서른 편 남짓의 영화들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방학을 보냈던 나는 이제 온전히 영화로만 이루어진 달콤한 꿈을 잠시 접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기다렸던 2009년의 겨울은 어느새 봄을 준비하라는 다그침으로 바뀌어 있다.


한국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건 2년, 정확히 횟수로 따지면 3년 만이다.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나는 인도에 잠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인도와 한국, 두 나라는 모두 뚜렷한 사계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의 기후는 조금 차이가 난다. 한국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인도는 하루 종일 비가 퍼붓는 우기를 준비한다. 인도의 최북단 지방은 겨울이 되면 영하 2,30도 안팎으로 떨어지곤 한다.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인도의 거대한 땅덩어리는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에 걸친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비교적 날씨가 안정적인 겨울을 택한다. 나도 좀 더 쾌적한 여행을 위해 겨울이라는 계절을 선택했고, 그렇게 매년 겨울마다 인도에 머무는 ‘못된’ 습관을 들였다. 인도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은 더없이 값진 것들이었지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기회비용은 바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였다. ‘친구들 영화제’는 시네마테크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며 평소 보고 싶었던 감독들과 배우들을 만나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2006년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의 북적거림에 맛 들린 나는 이후 두해의 겨울을 인도에서 보내며 늘 아쉬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작년 겨울, 네팔의 안나푸르나 등반 중에 지인들에게 부쳤던 엽서는 온통 ‘시네마테크’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정글소녀’의 몰골로 3월이 시작될 즈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것 역시 지난 ‘친구들 영화제’의 프로그램이다. 지난 몇 년 간 나에게 겨울이라는 단어는 곧 시네마테크를 의미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기대하던 ‘친구들 영화제로의 귀환’을 무사히 마친 후, 문득 떠오르는 것은 처음 시네마테크를 만났던 순간의 기억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하던 겨울, 시네마테크라는 난생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만났던 영화는 아마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저런 전시회를 둘러보던 나는 우연히 아트선재 밑에 극장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그 길로 내려가 영화를 관람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인사동에서 살다시피 했으므로 그때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종종 시네마테크를 찾곤 했다. 그렇게 혼자만 다니던 시네마테크에 친구 손을 붙잡고 온 것은 그 다음해, 그러니까 대학교 입시가 끝난 해의 겨울이다. 프랑소와 오종의 자극적인 단편들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던 나는 그때 만해도 시네마테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예중, 예고를 거쳐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련된 과나 학원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좋은 영화나 좋은 비평을 발견해도,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영화에 관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은 있어도 영화가 던져주는 텍스트나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할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은 학교 내에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영화를 나누고 싶다는 꿈은 어디에서도 해소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네마테크에 더욱 안착했고 뜻 맞는 동창들 몇 명이 모여 시네마테크에 대한 이야기를 줄기차게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는 나에게 결국 ‘방과 후 수업’과 같은 존재다. 그 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영화 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금의 공간으로 이사하기 직전, 그러니까 소격동 시절에 마지막으로 상영했던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평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아련함을 안겨주었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낙원상가로 이사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극장이 아예 사라진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주 차분히 아트선재의 계단을 쓸며 올라왔었던 것 같다.

극장이 없어지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낙원상가 4층에 새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는 영문 모르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종로 한 복판을 길길이 뛰어다니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때의 철없던 애정이 결국 지금까지 종로 어귀를 전전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한 감독의 영화를 극장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의 희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다. 최근에는 시네마테크를 향한 개인적인 욕심도 하나 생겼다. 2년 전, 시네마테크에서 한 러시아 감독의 특별전을 상영했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그 감독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그 러시아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찾아보았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의 모든 작품을 시네마테크에서 관람하고 싶다. 더불어 ‘관객’으로서가 아닌 ‘감독’으로서 그의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당돌한 소망도 가져본다. 매우 뜬금없는 소망이지만, 그 어느 곳에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백이자, 시네마테크와 함께 자라온 철부지 꼬마의 ‘장래희망’이다.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 사랑하는 영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시네마테크뿐이다. 영화를 보기 위한 단 하나의 공간만을 허락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시네마테크를 선택할 것이다. 나의 ‘당돌한’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네마테크가 영원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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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칼을 갈 차례

필진 칼럼 2009. 3. 5. 06:56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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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사였던 시네마테크 위탁사업의 공모제 전환이 1년 뒤로 연기되었다. 천만다행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다. 표면에 내세운 시행 연기의 이유가 ‘시기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영진위 임의로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고, 공모제로의 전환을 기정사실화하겠다는 방침을 명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애초부터 공포탄을 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첫발은 공포탄이고 실탄 사격은 두 번째부터 아니던가. 언제라도 지원을 끊을 수 있으니 딴 맘 품지 말고 알아서 기라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공모제라는 단어 하나만 던져놓았을 뿐인데, 서울아트시네마와 친구들 영화제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점만 놓고 보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영진위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자평할 수 도 있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의 행정가들이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와 소양의 천박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마저 자본의 발아래 둘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결과물을 목도했다. 또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보여준 무신경한 반응은 철저하게 네티즌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는 영화 담론의 현주소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울아트시네마와 관객들은 침착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시네마테크를 지켜내는 힘은 관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집된 힘을 저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이번 사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재정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하지만 영진위의 위탁사업지원금이 없으면 시네마테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재정자립의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약으로 말하자면) 비타민과 당위정이 골고루 들어있는 처방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관객의 힘이 비타민이라면 재정자립을 위한 안정적 재원확보는 당위정에 해당할 것이다. 제 아무리 애정 가득한 관객의 지원이 차고 넘친다 해도 그것만으로 버틸 수는 없는 법. 누구보다 극장 측이 더 많이 고민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을 터이지만, 시네마테크 공모제전환 반대 서명운동과는 별개로 후원회원을 배가시키는 데 힘써야 할 것이고, 언론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우호적 지원군을 확보하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선량한 후원자를 찾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각계각층을 망라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절실한 때라는 얘기다.

어느 정치인의 말대로,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지난 몇 주간이 목검으로 상대와 합을 맞춰보며 서로의 내공을 시험해본 시간이었다면 바야흐로 진검승부의 시간이 도래하였다. 진검승부를 앞둔 무사에게 녹슨 칼은 무용지물일 터. 칼은 무사만 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몇몇 언론과 매체만이 시네마테크문제를 공론화하며 칼끝을 세웠다면, 이제야말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나서서 칼을 갈 차례다.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합심하여 갈아 놓은 칼을 든 장수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그런 점에서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램인 ‘필름라이브러리 무료상영회’는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서울아트시네마로 달려가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관객회원에도 가입하자.
Now, Were going to Seoul Art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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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필진 칼럼 2009. 3. 3. 09:05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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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의 시간도 거꾸로 가지 않는다.


최근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상영관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상영되고 광장에서는 오늘의 한국이 지난 세월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시간을 건드릴 수는 없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드러나는 시간성을 잠시 밝혀두어야겠다. 영화에서는 '시간'을 소재로 했으나 소재로의 접근 방법은 바로 인간의 삶을 낯설게 보는 행위다.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벤자민에서부터 아기의 모습으로 죽어간 노인 벤자민을 통해 이 영화의 서사와 사건은 유발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꾸로 가는 것은 세포의 활동이고 그것은 벤자민을 특이점으로 남겨둔다.

흥미로운 것은 벤자민의 시간 역시 여주인공 데이지를 비롯한 여타 인간들의 시간과 본질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몸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노인의 세포에서 젊은이의 세포로의 '귀화'라기보다는 '성장'에 가깝다. 또한 삶의 생애까지 선형적인 방식에 의해 '나이듦'에 따라 죽는데, 벤자민의 경우에는 그것을 다룰 개념이 '나이듦'과 '더 이상 어려질 수 없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다룬다는 것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벤자민의 특이점의 의미가 전반에 드러난다. 벤자민은 보통의 인간이라면 낯설지 않을 환경을 낯설게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속도감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는데 영화에서 벤자민의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서의 영화 내 시간의 속도감의 차이는 확연히 두드러진다. 유년기에는 같은 집에 사는 노인들의 일상과 죽음에 많은 포커스가 맞춰진다. 시간적인 흐름과 공간적인 스케일 면에서 가장 협소하고 밋밋할 수 있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속도가 붙는데, 그것은 시간을 잘라내는 편집으로 점프를 하는 수준으로 된다. 벤자민의 유년에 관해 관심이 많다기 보다는 낯선 상황에 가장 낯설음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지는 벤자민에게 말한다. "당신이 마흔 아홉, 내가 마흔 셋. 이제 우리는 딱 맞는 나이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 그것은 마치 서로 기울기가 대칭관계인 두 직선과도 같다. 단 교점이 생성되는 까닭은 각개 직선이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방향을 뒤틀지 않는 개별적인 성질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거스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실제로 시간성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간 속에서 그것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특이점을 잡고 삶에 관해 매 시기마다의 화두를 던진다. 이 시기에 왜 이것을 하지 않았을까, 혹은 나는 지난 시간을 왜 그렇게 보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의 삶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한다. 벤자민이 러시아의 숙박소에서 만났던 부인이 지난 날 해협 횡단에 실패했고, 이후 해협 횡단에 성공한 것 처럼.

그렇다면 이제 시간성 자체의 속성에 관해 절대시간과 상대시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절대시간 자체는 건드릴 수 없다. 이 시간 속에서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물음이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이 면밀히 엮인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왜 살아가고 있을 지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들이 묶여내 진행되는 것이 오늘에 관한 상대시간일 것이다. 오늘의 시간, 곧 나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물어보기 위해서는 '어떤'이라는 속성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겠다.




2. 나는 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지각쟁이 유경씨의 하루.

2월 28일, 토요일. 쾌청한 날이었으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 햇살이 나긋했다. 지난 추운 계절 속에서 폐간된 영화잡지를 읽지 못하는 날이며, 오후 2시 반 무렵에는 서울 아트시네마에서는 아트시네마의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01번 버스가 한강대교를 원활히 지나지 못하고 교통이 꽉 막힌 상태로 대교에서만 10여분을 보낸 토요일이기도 하다. 곧 이을 오후 여섯시가 되면 국민 오락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의 재미있고 친근한 <무한도전>이 방영된다. 본방송으로도 보지 못한다면 인터넷 상영으로라도 볼 것이다. 나의 토요일은 이렇듯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러나 나는 왜 이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늘어지는 설명일지는 모른다만은 짚어보겠다. 지난 집회시기를 지나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는 전경들이 토요일마다 나온다. 언론재단 건물 앞 버스정류장 근처와 청계광장 주변에는 전경버스가 서 있고 그로 인해 버스는 정류장에서 정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도로에서 정차를 한다. 버스가 서고 멈추는 범주에 따라 도로는 진행됐다가 멈추는 파동을 탄다. 그 탓에 광화문과 청계광장에서 북쪽 방향으로는 차가 막히는 기색이 없으나 그 남쪽으로는 도로 교통이 혼잡스럽다. 서울역이나 용산, 혹은 그 이남의 한강대교, 상도터널로 이어지는 동작구와 관악구의 현장에서는 왜이리 차가 막히는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라거나 '토요일 오후라서 그래'라며 애꿎은 시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평소의 거의 2배가 되는 시간동안 버스에 있어야 했고 아트시네마로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먼저 보내야 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 정신감정을 하기로 하는 예고편을 보면서 '이야, 재밌겠는데?'라는 기대감으로 혼자 느긋하게 식사를 한 다음 청계천 변 광교를 걸었고, 동아일보사의 현판에 걸린 '기습 공격을 당한 전여옥 의원'의 기사가 신문 1면에 걸린 것을 봤다. 왼쪽 눈이 깊숙하게 다친 전 의원의 사진을 유심하게 본 뒤 다시금 청계천 변을 통해 하늘을 바라본다. 우울한 생각을 하기에는, 오늘의 이 시간이 참으로 아깝지 않느냐는 생각.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컴퓨터를 꺼낸 것이다. 오늘의 시간을 서술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연들이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핵심요약어는 고통이다.

2007년의 3월의 학교의 저널에서 한 학생 기자가 베를린으로 건너가 송두율 교수를 인터뷰했다. (http://www.snujn.com/article.php?id=1405 ) 그는 지난 대선을 두고 "일단 급하다고 짠 바닷물을 마신 격"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은 오늘로 대치가 됐고 그것은 "도덕이 밥 먹여주냐"는 논리는 "도덕이 있어야 밥도 제대로 먹는다"는 말을 되새기게 해준다. 방송국 파업에서도 마찬가지다. 501번 버스가 지나온 용산 일대에서도 드러난다. 큼직한 유리가 몸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아픔이다. 2008년 2월은 '기습'으로 시작해 '기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트시네마가 순식간에 '세입자'의 현실로 마주하고 2월 26일에는 우황청심환 한 알이 국회의 정의보다 앞서 미디어 법안을 상정하고야 말았다. 2월은 끝나도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끝나지도 않고 재생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재생된다. 오늘날 방송국의 현실에 떨떠름해 하고 대학간 순위 경쟁과 앞으로 부닥칠 수많은 것들에 관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나는 곧 이어 <무한도전>을 보러 갈 것 이다. 분명 나는 누가 제일 못났나, 누가 제일 덜떨어졌나를 보며 박장대소할 것이다. 내일은 <패밀리가 떴다>를 보며 잠자리 '순위'를 매기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제 어떤 불행이 올 지 예측하지 못할 두려움을 <1박 2일>의 복불복 게임을 통해 내 일이 아닌양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가장 못난 사람이 모든 걸 감수하는 것 자체로 웃는 것이 코미디로 통하는 속에서 오늘을 보낸다. 웃게 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오늘을 이렇게 보낸 까닭을 유기적으로 이어보려 했으나, 이것이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곧 이어 아트시네마 포럼도 끝난다. '아트시네마의 친구들 데일리'를 통해 '어떻게'에 관한 소식들이 따끈따끈하게 전해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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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즈음하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사업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꺼낸 바 있다. 중차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안이 첨예하고 민감한데다가, 사실 확인이 모호한 상황에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 내용은 의도적으로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변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쉽게 설명하면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는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미디어 센터 ‘미디액트’와 더불어 영화진흥위원회의 위탁사업 수행기관 중 하나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공간 임대료를 비롯한 기자재 구입비와 운영비는 이처럼 정부지원금으로 조달되어왔고 이것이 서울아트시네마 전체 운영비의 30%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위탁이 아닌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을 불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영진위나 문화관광체육부가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 운영되어온 기관이 아니다. 순수하게 민간이 주도하여 만들고 이어져온 민간 기관이라는 것. 다만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위탁사업의 형식을 통해 운영자금의 일부를 지원해왔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민간이 시작해 힘들게 꾸려온 사업에 정부는 단지 위탁이라는 미명하에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빌미로 이제 와서 그 사업의 주체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 논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뒤에 거듭 말하겠지만, 자칫 영진위가 시도하는 공모제가 시네마테크전용관의 주체를 선정하기 위한 꽤나 정당하고 투명한 절차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는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 참여할지, 어떤 주체가 추가로 공모에 참여할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손 놓고 안이하게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돌아가는 정황이 석연치 않다. 황급히 글을 쓰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래, 솔직히 고백한다. 이것은 선방이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한 피니시 블로우가 아닌 상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잽을 날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전혀 쓸모없는 기우에 불과했기를 바랄 따름이다. 진심으로 내가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떤 우스운 인물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

정부사업에서의 수의계약은 잡음을 만들어내기 일쑤였다. 특혜 시비와 부적격자 선정에 따른 부실문제가 뒤따랐고 여기에는 검은 돈 또는 외압이 개입되기 마련이었다. 공모입찰제로 바꾸고 공개경쟁을 통해 사업의 내실을 기하는 풍토가 확산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사업권자 선정 방법만 바뀌었을 뿐, 공모입찰제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순진한 입찰자들은 자신들이 결정과정의 합법성을 증거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야만했다. 결국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제도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와 사람에 있었다. 

영진위의 시네마테크 사업권자의 공모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진위는 “모든 위탁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라”는 문광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문광부의 주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문광부는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고 지침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어느 쪽의 말이 맞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제까지 민간 주도하에 운영해 온 시네마테크를 공모에 붙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데 있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의 주체가 아니라 그 알량한 정부지원금의 대리 집행기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서 공모제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컨대 민간사업에 정부가 관여하여 간섭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아트시네마 측이 항변하자 영진위는 “어차피 공모할 주체가 없으니 빨리 응모할 수 록 서울아트시네마에 유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설득하려 했다. 이 말은 마치 서울아트시네마 이외에 시네마테크전용관 위탁사업을 수행할 만한 자질과 경험을 가진 단체가 없어 보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제를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행정처리지침의 일환이요, 요식행위이니 서류만 제출하면 끝날 일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영진위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특정 단체가 공모하고 심사 결과 서울아트시네마가 공모에서 탈락한다면? 결과는 간단하다. 지금의 장소에 머물 명분이 없으니 현재의 형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만약 다른 단체가 공모한다면 어떤 곳일까? 현재로써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표면상 드러난 주체가 없는 마당에 섣부른 추측은 위험하다. 하지만 가늠되는 것이 없지도 않다. 사실 2008년 이후 영화계 일각에서는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에 대한 사업권자 교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곤 했다. 세간에서는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대체할 사업자로 특정 단체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었다.

이쯤에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간 서울아트시네마가 펼쳐온 사업을 그 화려한 고전의 향연을 지금 그 어떤 단체가 순조롭게 해낼 수 있겠느냐고. 물론 나 역시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달리 보면 지극히 순진하고 위험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업자 선정의 대상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박하는 것은 상대의 술책에 말려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분명이 알아야 할 것은, 시네마테크전용관은 영진위의 산하 기관도 아닐 뿐더러 공모를 통해 선정되기만 하면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지난 7년간 해온 사업을 되살펴 볼 필요도 없이, 이제껏 우리들이 보아온 시네마테크는 비록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성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간의 프로그램과 상영실적에 있어 시네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무던히 애써왔다. 또한 고전 걸작의 상영에 그치지 않고 젊고 역량 있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지원해왔으며 교육기관과의 연대를 통한 고품격 영화문화의 창달에도 힘써왔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통해서 뿌리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은 지금도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때문에 오직 서울아트시네마만이 시네마테크의 주체이고 이것이 이 논란의 부질없음을 증명하는 이유가 된다.

문화예술이란 것이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의 진보정권 시절 보수ㆍ우익 예술인이 상대적으로 소외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좌우 이념 논쟁을 부추기는 언론플레이로 ‘실리’를 챙기겠다는 ‘꼼수’를 부렸던 이들이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까지 노린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영화계에 발붙이고 있는 이들이 행할 도리가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관객의 욕구에 부합할 만한 영화를 찍을 자신이 없으니까, 뱃속 편하게 고전영화나 틀면서 추억에 젖겠다는 건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세월까지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화헤게모니는 그런 경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한국영화가 걱정스럽고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빈약한 논리로 한 풀이를 도모하기 이전에 영화를 찍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모름지기 감독이란 영화로 말을 해야 하지 않나? 그럼에도 허황된 욕심이 피워내는 고약하고 불온한 냄새가 진동하니 그래서 노탐(老貪)이라고 하는 거다.


영화광이라면 저마다 자신의 영화적 고향 또는 모태로 삼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70.80년대의 영화광들이 프랑스문화원과 독일문화원을 거점삼아 영화의 사회성을 고민했다면, 90년대의 영화광들은 문화학교서울(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터득했고, 이후 세대들은 시네코아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영화전용관을 두루 섭렵하면서 자신의 영화적 소양을 쌓아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배웠다”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울아트시네마는 단순한 영화관이 아니다. 사당동에서 소격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영화지망생들이 꿈을 키워온 성소(聖所)에 다름 아닌 곳이다. 비록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는 격변의 시기일지라도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의 주체만큼은 특정집단의 입김과 이념의 제물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영진위의 시네마테크전용관 사업자 공모 계획은 전면 백지화 되어야 한다.

시네마테크는 문화헤게모니의 거점이 아닌 문화유산이요 영화의 거처이고 기억의 장소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거대한 진실이다. 정녕, 문화관광체육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앙리 랑글루아를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직에서 해임했던 앙드레 말로의 전철을 밟겠다는 것인지,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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