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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임권택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많은 수식어가 붙곤 한다. 임권택은 198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작가로 명명되어온 감독으로, 그는 현재 쏟아져 나오는 다수의 역사 영화의 현 상황을 직접 체험해 걸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임권택은 한국 역사와 한국 영화사를 아울러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산 증인’인 동시에 한국 영화에 대한 향수와 비판을 동시에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독이다.

임권택은 수 년 간의 연출부 생활을 바탕으로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액션물을 통해 데뷔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약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임권택은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1년 전이었던 2007년 봄, 꽃이 흐드러지는 계절에 임권택은 자신의 백 번째 영화 <천년학>을 완성했다. 임권택의 <천년학>은 그가 걸어왔던, 그리고 쌓아왔던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완곡하게 열어두는 장치인 동시에 또 다른 결말의 시작이었다. 한 평생을 사회와 혼돈 속에서 묵직하게 지켜온 임권택의 삶은 오로지 그의 영화에만 온건히 녹아있다. 때문에 임권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여기서 ‘이해’라는 말은 여전히 가당치 않은 말이지만), <천년학> 이전, 그리고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취화선>과 <서편제>를 포함한 다른 영화들을 훑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임권택의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시기로 구분된다. 시기로 따지면 1990년대 이전 영화들과 1990년대 이후 영화들이 그것인데, 보통 그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후자에 속하는 작품들이었다. 임권택은 데뷔 당시 다소 폐쇄적인 영화계의 틀을 겪어야 했으며, 이는 곧 감독과 제작사, 그리고 흥행 간의 고려를 통해 지원 유무를 결정하는 값을 낳았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를 통해 스크린에 비로소 감독으로 이름을 보태게 된 임권택은, 이후 상업 영화의 전선에서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특히 <두만강아 잘 있거라> 이후 70년대로 들어서면서 임권택은 엄청난 다작을 했는데, 이는 당시 그가 제작자와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흥행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확인시켜주는 예다. <두만강아 잘 있거라>와 같은 해에 발표된 <전쟁과 노인>, 그리고 그의 전쟁 영화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낙동강은 흐르는가>를 포함한 한국 영화 산업의 붐도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임권택의 초기 전쟁영화들은 대부분 같은 결말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쟁 영화는 대체로 소재의 오락성에 의해 관심을 받기 쉬운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임권택의 전쟁 영화는 동시대, 혹은 전 시대 감독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주로 한국 전쟁 초기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임권택의 70년대 영화들은, ‘소년’의 눈으로 읽힘을 받는 장면이 곳곳에 명확하게 쌓여있다. 그리고 곧 이것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 임권택의 73년작 <증언>은 전쟁 통을 겪은 감독 자신의 체험이 가장 짙게 반영된 작품이다. <증언> 역시 전쟁 초기의 혼란스럽고 악몽과 같은 상황을 서술하는데, 이 영화는 정부 슬하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임권택은 단지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전쟁이라는 단어의 참혹한 경험을 알리는 데 치중한다. 전쟁 영화에서 임권택의 연출은 주로 사격과 진압을 포함한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특유의 서스펜스 영화적 분위기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낙동강은 흐르는가> 또한 임권택이 바라본 전쟁 당시의 직접 체험을 영화를 통해 간접으로 투영한다. 이들은 모두 박진감 넘치는 서사를 꾀하고 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붕괴(<낙동강은 흐르는가>)와 주변 상황의 급격한 변화(<깃발 없는 기수>)를 토대로 철저하게 무너지는 양식을 취한다. 때문의 임권택의 초기 영화, 그 중 전쟁 영화는 폭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유혹적 상황에서 결국 파탄에 이르는, 다시 말해 형언할 수 없는 ‘긴박감’을 낳는다. 이는 한국 전쟁 영화에서 매우 드문 양상에 속하는 것이다.

70년대를 뛰어넘어 80년대로 들어서면서도 임권택은 전쟁에 대한 확고한 시선을 고수한다. 이것은 한국 전쟁 밑바닥에서 시작된 역사와 더불어 그곳에서 파생된 각종 범죄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데, 85년작 <길소뜸>은 정면에서 바라보던 전쟁을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변화를 가져다준다. 시선을 현대로 돌려, 텔레비전의 영상을 통해 이산가족의 현실을 여성의 삶을 통해 풀어낸 <길소뜸>은 자식과 부모간의 근본적인 유대 관계를 건드린다. <길소뜸>의 화영은 역사가 쏟아버린 잔재를 끌어안고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다. 화영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친자를 부인하는 장면에서 <길소뜸>의 점프 컷이 발생하는데, 이는 곧 <길소뜸>을 전후해 쌓아왔던 임권택의 전쟁사를 하나로 폭발시키는 과정의 마지막이다.

90년대로 넘어온 임권택은 그의 영화사에서 두 번째 시기를 맞는다. 90년대 이전의 연출이 임권택에게 있어 실험과 반복을 시도하게 했다면, 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감정과 서사에 충실한다. 임권택은 전쟁,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눌러 담아왔던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의 출발점은 81년작 <만다라>와 91년작 <개벽>이다. 두 작품은 이후 임권택의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도발적인 작품이다. <만다라>는 자신을 지우거나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도는 로드무비다. <만다라>는 이후 <서편제>와 <취화선>, 그리고 <천년학>을 잇기 위해 존재하는 발판과도 같다. <만다라>의 지산 스님과 옥순은 시간을 매개로 간극을 형성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두 사람의 서사는 펠리니의 <길>과 상통되는 사건을 만드는데, 주목할 것은 지산과 옥순의 두 번째 만남에 있다. 옥순과 지산이 처음 만났을 때 욕망과 사랑의 결정체를 낳았다면, 그들의 다음 만남은 자연스레 추억이 전제된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산은 옥순을 다시 만난 후에도 본가였던 종교로의 회귀를 꾀하지 않는다. <만다라>의 결말은 <개벽>의 최시형과 맞닿아 있다. <만다라>의 지산과 <개벽>의 최시형은 역사의 정 중앙을 걸어가는 동시에 도망과 안정점으로의 모색을 보여주지 않는다. <만다라>에서 이어진 애정에 대한 감정은 <개벽>의 결말과 맞닿는다. <개벽>은 역사 영화로서는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상을 입힌 농도 짙은 실극이라 하기 마땅하다. 그렇기에 <개벽>의 이야기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알 수 없는 몰입도를 낳는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벽>이 단순 동학운동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개벽> 이전의 임권택 영화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로맨스의 서술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개벽>은 마지막인 최시형의 총살 장면, 온전한 샷 바이 샷이 아닌 최시형의 부인의 눈으로 봉기의 결말을 선언함으로 막을 내린다. <개벽>의 마지막 은 감정을 증폭시킨 채 어떠한 테크닉도 발하지 않은 순수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이로 인해 완성되는 <개벽>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완벽한 영화다.

<개벽>이후 임권택은 역사의 공간에 서 <태백산맥>을 낳는다. <개벽>에서 화두로 작용했던 인간 본연의 사상,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든 상황들은 <태백산맥>에서 정지된다. <태백산맥>은 <개벽> 이후 현대의 역사를 사는, 말하자면 ‘그 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을 위한 분노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태백산맥>의 서사가 임권택의 역사서중 가장 난해하고 목으로 넘기기 힘든 거친 것이었다면, <태백산맥>과 거의 동시에 제작된 <서편제>는 <만다라>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서편제>는 길의 종착점을 알 수 없는 임권택의 두 번째 로드무비로, 판소리를 매개로 한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서편제>가 임권택의 미학을 완성시킨 것이라는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작용한다. <서편제>는 <만다라>에서 참아 온 한국, 혹은 인간의 정서를 대폭 반영한다. 하지만 영화는 길을 따라 떠도는 세 가족의 모습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소리’를 통해 ‘노래’한다. 진도 아리랑이 길게 울려 퍼지는 <서편제>의 롱테이크는 현실에 상처받은 한 가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다. <서편제>에는 아들과 아버지, 아버지와 딸이라는 부모 자식 간의 형용할 수 없는 정서가 녹아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도 곧이 읽혀서 솎아낼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서사임은 분명하다. <서편제>는 그것을 ‘음악’을 통해 건드려 낸 것이다.

이후 임권택은 <축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고, 동시에 가족을 묻는 방법을 표현한다. <축제>의 기억은 한 사람의 시선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시각을 통해 완성되고, 이는 곧 장례로 이어진다. <축제>와 <창>에서 이어진 <춘향뎐>은 <서편제>와 동시로 임권택의 영화 중 가장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는 영화다. <서편제>의 연장선은 <천년학>이 아닌 <춘향뎐>이다. 임권택의 <서편제>에서 시작된 ‘소리’에 대한 갈망은 <춘향뎐>에서 극대화된다. <춘향뎐>은 서사가 없다. 이것을 조금 더 돌려 말하자면, 임권택의 영화 속에서 지금까지 중요시 되어오던 이야기 자체가 <춘향뎐>에만 유독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권택은 인물을 이루는 환경에 눈을 돌린다. <춘향뎐>은 대사가 아닌 노래로 남는 영화다. 전문 배우가 아닌 신인을 대거 등용해 배우에 대한 파격을 감행한 영화는, 그로 인해 ‘춘향’과 ‘몽룡’의 현실성을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춘향뎐>의 이미지와 소리는 다른 형식과 방식을 빌리지 않은 본연 그 자체로 존재한다.

<춘향뎐>이 한반도 안과 밖에서 외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임권택의 서사 또한 완벽한 안정점(그렇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을 터울 짓게 된다. 임권택의 세 번째 로드무비인 <취화선>은 영화라는 한정적인 시간 안에 속할 수 있는 어떤 ‘인물’의 최대 값을 이미지로 불어넣은 것이다. <취화선>은 오원 장승업이라는 거친 화가의 궤도를 좇기 위해 몇 가지 방점과 전환점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아름다운 영화다. <취화선>은 2002년 칸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사건을 발생시키며 동시에 한국에서 장기간 상영으로 전환된 영화이기도 하다. 이전의 작품들이 하나의 역사를 서술한 것이라면 <취화선>은 앞서 말한 <개벽>과 <서편제>, 그리고 <춘향뎐>의 사건을 하나로 뭉친 결과물이라 하겠다. <취화선> 이후에도 임권택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계속적인 진보는 <하류인생>의 태웅으로 전환되고 마침내 <천년학>으로 귀속된다. <서편제>에서 이야기 하지 못했던 남녀의 정은, 수 년이 지난 후 <천년학>에서 진정성을 달고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오른다. 이제 더 이상 동호는 송화를 그리워하는 것을 숨기지 않고, 송화는 동호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다. <천년학>은 동호와 송화, 그리고 임권택 자신의 환상을 통해 ‘영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짙은 정의를 내린다.




<춘향뎐>이후 연속성을 보이던 임권택의 영화들은 <천년학>을 전환점으로 삼고 회귀한다. 때문에 <천년학>의 시퀀스들은 철저하게 분할되지 않은 채 하나의 원을 이룬다. 임권택의 역사 속에 또 다른 획을 그은 <천년학>은, 그가 걸어온 길만큼이나 굴곡진 영화인 동시에 아련한 기억을 형상화하는 영화다. 임권택의 영화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이론을 단적으로 정의내리는 것들이다. 위에서 열거했던 영화들 외에 임권택의, 이를테면 <티켓>이나 <아제아제 바라아제>, <짝코>, <족보>와 같은 작품들 모두 거듭되는 시간 속에 존재할 때 빛을 발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임권택을 더 이상 거장이라는 명칭으로 국한할 수 없다. 만약 한국에서 ‘옳은 영화’가 그립다면, 그 해답은 임권택의 영화들에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를, 그것도 근작을 아직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감히 말해) 무료로 받는 엄청난 수혜에 가깝다. <하류인생>의 마지막 나래이션은 이렇다. "태웅은 이후에도 몇 년을 더 그 일에 종사하다가, 1975년 전업했다. 그의 인생이 맑아지는 조짐이 보였다." 임권택의 영화는 태웅의 내일을 알 수 없듯이 이미 스크린 밖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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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영화를 만나다 ②

그리고... 2008.07.18 15:28 Posted by woodyh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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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청산도, <서편제>의 세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 속 푸른 섬



장흥을 뒤로하고 완도로 달려와 또다시 찜질방에서 불편한 잠을 청한 나는, 다음날 모기들에게 물어뜯기며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시계바늘은 5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었고 평소 같으면 잠자리로 다시 곤두박질 칠 시간이었지만 청산도로 가야하는 내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완도에서 청산도로 가는 배편은 성수기 때는 오밤중에도 여러 척 다니곤 하지만 비수기 때는 다섯 번 정도밖에 없다. 청산도로 가는 첫 배가 오전 8시에 있고 그 후에는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배가 오므로 청산도에서의 이틀을 꽉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배를 타야했다.

완도 터미널에서 청산도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완도에서 제주도로 넘어가는 배편이 아주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젊은 배낭여행객들이나 외국인들, 관광차 온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제주도로 넘어가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청산도로 가고자 하는 사람은 생필품을 조달하기 위한 업자들과 한국 관광중인 듯한 일본인 아주머니들 정도다. 새벽에 자다가 비가 퍼붓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늘이 많이 흐리다. 배가 뜰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을 했지만 통통배도 아니고 걱정을 붙들어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라던 선장님의 말에 안심하며 청산도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청산도는 완도에서 뱃길로 약 한 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작은 섬이었다. 청산도로 가는 길에 많은 섬들을 지나치며 어떤 섬이 청산도일까 혼자 설레어 하기도 했지만, 남해는 섬이 많은 ‘다도해’라 불리는 곳이므로 미리 청산도의 모습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서울에 비하면 몇 되지 않는 가구들이 사는 섬, 청산도. 벌써 집을 떠나 온지 닷새째였고 집이 그리울 법도 했지만 내가 늘 꿈꾸어 오던 섬에 들어왔다는 생각만으로 또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미리 연락해둔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항구에서 민박집까지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아주머니와 함께 차를 몰고 데리러 오셨다. 산길을 지나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편하게 민박집에 도착한 나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간은 많으니 느긋하게 청산도를 구경해도 좋을 여유가 생겼지만, 서둘러 <서편제>에서 유봉과 송화, 그리고 동호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걸어오던 그 길을 밟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낭 속 짐들을 꺼내서 물통이나 카메라 등 필요한 짐들만 빼서 재빨리 짐을 새로 꾸렸다. 날이 그다지 맑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비를 만날까봐 보성에서 사두었던 몇 개의 우비도 챙겼다.

“민영씨, 비가 올 것 같은데요? 청산도에는 원래 비가 잘 안 오는데 별일이네.”

가벼워진 배낭을 챙겨들고 숙소에서 나오려는 나를 보며 주인아저씨가 말했다. 하늘을 보자 완도에서 한창 하늘을 뒤덮던 검은 구름이 청산도의 끄트머리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우비도 챙겼는걸요. 청산도에는 비가 잘 오지 않나 봐요?”
“북쪽 지방에 폭우가 내려도 청산도는 늘 맑아요. 비가 좀 내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비가 쏟아질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왜 하필이면 오늘 날이 흐릴까?”

민박집은 청산도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었고, 이쪽 하늘을 보니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차하다가 비를 만나면 우비를 입고 계속해서 걸어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웃음을 지으며 걱정하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숙소를 빠져나왔다.

도로를 따라 왔던 그대로 산길을 올라가니 온통 푸르른 논밭이 보였다. 최근에 부쩍 청산도로 흘러오는 사람들이 많고, 그 때문에 여러 가지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청산도는 섬마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콘크리트가 아닌 돌로 올려진 집들과 함께 양쪽 어디를 둘러보아도 초록색 풀들이 시야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터미널에서 청산도 남쪽으로 올 때 지도를 가져온다는 것을 깜빡했지만 어느 길로 가도 <서편제>에서의 소리길이 보일 것이 분명하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천둥소리가 들렸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한 두 방울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리 챙겨둔 우비 하나는 입고 나머지 하나는 배낭과 카메라가방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칭칭 감은 뒤 다시 걸었다. 근처에서 논을 돌보고 계시던 어르신들은 걱정스런 말투로 숙소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셨지만,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빗길을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소리 따라 흐르는 떠돌이 인생. 첩첩이 쌓인 한을 풀어나 보세.” -영화 <서편제> 中

청산도는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린 목적지였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는 전라남도 일대를 두루 걸쳐있으나 영화 내에서 약 6분에 달하는 가장 길고 평화로운 유봉 가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청산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편제>보다는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더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유명한 드라마 한 편의 전체 세트장보다 유봉 가족이 걸어오는 소박한 흙길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더욱 즐겁게 했다.

처음 <서편제>를 만났을 때 나는 어렸었다. 당시 나에게 영화 <서편제>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울 백만명 이상의 흥행을 기록한 쾌거를 이룩했다는 것 외에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했다. 초등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 영화가 주는 이야기의 맛에 매료되어있던 나는 <서편제>가 보여주는 한(恨)의 굴곡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편제>는 소리를 주제로 한 매우 지루한 영화였으며 나의 생각과 내 또래 아이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이 영화를 대할 시간이 점차 늘어났고, 한국 영화사에 쓰여 진 기록보다 마음속에 영화 <서편제>를 담아두기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송화와 동호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일기인양 그들과 나를 동화시켰고 <서편제>를 보면서 흘린 눈물도 적지 않았다.

<서편제>의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있다. 늘 생활고에 시달리는 유봉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남도 천지를 떠돌아다닌다. 유봉은 동호와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쳐 자신이 이루지 못한 득음의 경지를 깨우치고 싶어 하고 그의 기대에 맞게 동호는 북을, 그리고 송화는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내가 <서편제>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는 이 세 사람이 맑은 하늘 아래 진도아리랑을 부르면서 먼 길을 내려오는 장면이다. 송화와 유봉의 소리를 팔아 수많은 잔칫집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세 가족은 어느 날 자신들의 돈벌이가 되는 잔치판을 훌쩍 떠난다. 밥 한 끼를 해결할 돈 없이 여기저기에 붙어사는 생활을 반복하던 유봉은 소리공부를 위해 두 남매를 데리고 배를 타고 청산도로 넘어온다. <서펀제>에서의 가장 유명한 롱테이크, 진도아리랑이 길가에 울려 퍼지는 장면은 그들이 소리를 팔아 하루를 채우던 삶을 잠시 그만두고 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아리랑을 부르며 길을 지나가는 그들의 인생은 그 이후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힘든 생활의 연속이지만 적어도 청산도의 소리길 위에서만큼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유봉과 남매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는 소리길을 얼마 남기지 않고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로 그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고 길가에 그저 서서 고개를 넘어가려던 나는 소리길 옆에 작은 초가집으로 몸을 피했다. 엉겁결에 피한 초가집이 송화, 동호 남매가 어린 시절 유봉에게 아리랑을 배우던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우비는 소용없을 정도로 퍼붓는 빗줄기에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물건이 물에 빠진 듯이 젖었고 그것을 말리기 위해 배낭에 있는 소품들을 모두 꺼내어서 초가집 바깥마루에 늘어놓았다.

한참을 초가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일어나서 시간을 보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잠이 든 지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빗줄기는 여전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를 맞아 퉁퉁 불은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한번 쭉 피고 일어났다. 청산도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고 한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날이 저물고 돌아갈 길이 더욱 힘들 것 같아서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옷을 추스르고 배낭끈을 다시 조였다. 비는 아까보다 더 강하게 쏟아 붓고 있었고 소리길에서는 흙물이 줄기를 이루며 아래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걸음을 빨리 해야 지친 몸을 편하게 누일 수 있었지만, 선자마을의 주막에서와는 같이 마음이 길을 벗어나게 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젖어들고 있는 배낭을 멀리 그늘에 놓고 우비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감싼 카메라 하나를 든 채 소리길을 걸었다. 내가 비를 맞고 있는지, 아니면 비가 나를 맞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고 곧이어 몸에 한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오기로 길을 걸은 지 몇 십분, 갑자기 귓가에 반복해서 울리는 진도아리랑과 빗소리가 내가 걷는 길 위에서 하나가 되자 나는 넋을 잃었다.

“송화야. 내가 니 눈을 그리 만들었다. 알고 있었냐? 그럼 용서도 했냐? 니가 나를 원수로 알았으면 니 소리에 원한이 사무쳤을 텐디 니 소리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더구나. 이제부터는 니 속에 응어리진 한에 파묻히지 말고 그 한을 넘어서는 소리를 혀라.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 영화 <서편제> 中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젖은 옷가지를 모두 빨아 방안에 걸어놓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 해도 지지 않은 이른 저녁이었지만 청산도의 반을 걸어 다녀 피로가 쌓인 덕분에 나에게 시간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중간에 몇 번 깨어서 풀벌레 소리를 듣곤 했지만 곧 깊은 잠이 들어 이튿날 해가 뜨고 훨씬 지나서야 주인아주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차리신 아침밥을 먹고 청산도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밖을 보니 오늘은 어제만큼 흐리지 않고 바람이 선선히 불어 맑은 날씨였다. 남은 여행의 시간이 짧지 않았다면 날이 좋아 하루정도 더 청산도에서 머물고 싶었다. 아쉬움을 몇 가지는 남기고 가야 다음에 청산도로 들어올 때 한결 반가움을 느낀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민박집을 나섰다.

어제 쏟아지던 빗길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땅은 벌써 웬만큼 말라있었다. 빗줄기에 가려 올곧은 길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까닭도 있기도 했고 맑은 길을 보고 떠나고 싶은 마음에 다시 <서편제>의 고개를 찾았다. 날이 좋기 때문인지 북적북적해진 길 위로 사람들은 저마다 덩실 춤을 추며 웃음을 흩뿌렸다. 서편제 길의 시작점이 되는 곳에 올라 가만히 앉아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나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아주 약간의 이야기를 흘려주었다. 몇 몇의 관광객 무리가 길을 벗어나 보이지 않게 될 무렵까지 나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서편제>와 <천년학>이 교차하는 곳, 해남의 유선관

서울로 올라가는, 그러니까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해남에 있었다. 원래 해남은 남도 여행의 일정에 없었던 곳이지만 난생처음 땅끝 마을이라는 곳을 구경하고 싶기도 해서 하루를 해남에 머물렀다. 해남의 일정에 대흥사가 빠져서 되겠느냐며 추천해주시던 군 내 버스기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 문득 대흥사의 입구에 있는 유선 여관이 생각났다.

남도 전체를 중심으로 <서편제>와 <천년학>의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실제로 두 편의 영화가 맞물려 공존하는 공간은 단 한 곳이고 그곳은 해남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유선여관이다. 오래 된 한옥으로 지어진 유선관은 <서편제>에서는 유봉이 부르는 어사출도를, <천년학>에서는 백사노인의 칠순 잔치를 동시에 담고 있다.

대흥사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차를 위해 닦여진 차도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걸어서 절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였다. 두 가지 길 모두 한참을 가야 대흥사에 당도할 수 있는 길이었고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산책로 길을 택했다. 나무가 빼곡하게 드리워져 햇빛이 잘 보이지 않는 그늘을 머리 위로 올리고 반시간을 조금 넘게 걷자 희미하게 큰 한옥집이 한 채 보였다. 올라오는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 대흥사에서 큰 행사가 있다고 쓰여 진 것을 얼핏 보았는데 유선관의 주인 할머니도 그것 때문인지 분주해보였다. 안마당에는 송화와 동호가 놀던 느티나무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잔치가 한창이던 고운 한옥들도 영화 속 그대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대흥사의 행사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 몇 마디에 대답이 없으신 할머니를 뒤로 하고 유선관의 주변을 산책했다. 임권택 감독이 자신의 두 영화에서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천년학>과 <서편제>가 잠시 마주치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해남읍내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목에 또 다른 영화의 환상을 만나다

다섯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려 돌아온 서울의 공기는 탁했다. 단 일주일동안 푸른 벌판을 보며 지냈을 뿐인데 어쩐지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정말 우스운 말이겠지만, 터미널에 내려서 익숙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달려왔던 시간은 일주일. 고작 일주일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여행에 있어서 가장 짧은 시간을 달려온 것이 분명한데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낯선 나라를 다녀온 듯 어깨에선 좀처럼 여행의 바람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영화를 보는 것, 영화를 찍는 것, 그리고 영화에 대해 쓰는 것. 많은 사람들은 영화라는 단어 아래 논쟁을 벌이기도 하며 열정을 분출하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나는 대만에 가고 싶었다. 차이밍량의 영화가 나의 영화적 삶에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이라는 나라에 볼 것은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관광모토로 내세우고 있는지 자세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단지 영화 속 한 장면을 만나기 위해서 대만이라는 낯선 나라에 발을 딛고 싶었다.

나에게 남도는 대만이라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꽤나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다. 다른 나라를 다니던 시간보다 자국의 여행 시간이 짧았던 것을 자책하며 훌쩍 남도로 떠난 이유도 있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영화적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허락된 곳은 남도뿐이었다. 여러 날 두 편의 영화와 한 명의 감독에 대한 상상은 풀숲을 파헤치며 길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판타지는 끝났다. 정확히 서울로 오는 버스에 내리는 순간, 나는 영화적 환상에서 깨어나야 했다. 매번 영화관에 나오며 겪는 약간의 공허함을 또다시 느껴야만 했다. <서편제>와 <천년학>을 오가는 유봉의 삶이, 그리고 송화와 동호의 고리가, 결코 내 것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청산도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많았다. 길을 걸을 때마다 마치 다른 세계의 동물을 보는 듯 염소들과 소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며 나를 불렀다. 청산도는 집집마다 막혀져 있는 담장이나 대문은 없었지만 그와 비례해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모자를 눌러쓰고 길을 걸어 다닐 때마다 스스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혼잣말을 해야 했다. 이따금씩 어릴 때 하던 버릇처럼 작은 풀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는 벌레와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홀로 다녔던 여행이니만큼 누군가 나와 같은 목적으로 청산도를 들렸기를 기대하면서 한참을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삼켜야만 했었다.

판타지는 끝났지만 여전히 또 다른 영화로의 환상은 남아있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 길고 긴 판타지는 나의 테두리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문득 느꼈다. 영화 속으로의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무게를 벗어내기에 아직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임권택이 사랑한 남도의 길을 걸어오며 수 만 가지 작은 기쁨을 느꼈다. 유봉 세 가족이 길 위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처럼, 나도 길 위에서 두 팔 가득 안아야 할 영화들을 생각하며 행복을 느꼈다. 누군가의 삶 일부분을 하나의 이야기로 인해 일정 움직일 수 있다는 것처럼 매력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나온 길처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두 영화를 기억하며 늘 그렇듯 앞으로 걷게 될 것이지만, 때때로 한번 혹은 여러 번 뒤를 돌아 그들을 확인할 것이다. 초여름에 만난 아름다운 남도의 길처럼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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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영화를 만나다 ①

그리고... 2008.07.14 14:41 Posted by woodyh98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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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밟는 남도 땅은 뜨거웠다. 8월의 마지막 주, 서울에서 벗어나 경상남도 진주에서 아는 분과의 조우를 마치고 꼬박 두 시간이 걸려 전라남도의 땅을 밟았다. 단 한 번도 남도로 내려온 적이 없고 함께 여행을 하는 동행도 없던 터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다만 입을 꾹 다물고 내리쬐는 햇빛을 혼자 대하기에는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여름에는 습기와 고온으로 숨이 제법 막힌다는 남도의 더위.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내가 사랑하는 두 영화의 모든 것이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서편제>와 <천년학>은 전라남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굽이굽이 산길과 논밭을 걸어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세월을 읊던 그들의 모습이 문득 눈앞을 가로막았다. 나의 등에 올려진 배낭과 카메라는 조금 무거웠지만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이고 『선학동 나그네』, 영화 <천년학>의 배경이 된 장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십 년 인생을 풀어내는 단 하루의 저녁, <천년학>의 선자마을

보성에서 장흥으로 넘어오는 길은 험했다. 애초에 ‘걸어서 남도를 돌아다녀보자’ 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를 조롱하듯 산길에는 버스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도록 차도가 놓여있었다. 장흥에 도착하자마자 장흥 터미널에서 <천년학>의 촬영지로 유명한 선자마을이 있는 버스를 찾았다. 선자마을은 장흥에서 약 40분을 달려 회진에 내려 다시 30분을 걸어야만 했다.

회진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남도에 내려온 지 이틀 만에 처음으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다. 이곳에 내려와서 느낀 것은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 드신 분들이라는 것과 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좀처럼 젊은이들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길의 고요를 뚫고 버스에서 나는 엔진소리를 들으며 버스 안을 훑었다. 큼지막한 버스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 진 여행객 복장을 갖춘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이 지나자 곧 고개를 돌려 당신들끼리의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버스 내에서도 역시 젊은이는 나 하나 뿐. 새삼 전형적인 시골 땅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선자마을 가는 길이 이쪽 맞나요?”
“선자마을? 선자마을은 뭣 땜시 가려고? 아가씨, 이 더운디 거까지 걸어가려고?”
“네. 제가 선자마을에 볼 일이 있는데 방향을 잘 모르겠네요.”
“이 도로를 따라 쭉 가면 선자마을이 나오긴 하는디, 걸어가기는 좀 힘들 터인데. 가다가 사람들 나오면 또 물어보구 허라구.”





회진읍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무작정 앞으로 걷다가 지나가시는 할아버지께 길을 물었다. 도로를 따라 쭉 가기만 하면 선자마을로 향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라남도를 여행하면서 지도 하나 가져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것도 잠시, 읍내에 군데군데 놓인 표지판은 ‘천년학 촬영지’로 가는 길을 너무나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선자마을로 가는 길은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멀었다. 회진읍내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마을인줄은 알았지만 찌는 듯한 남도의 더위는 매번 앞길을 가로막으려 필사적이었다. 회색 도로에는 화물을 싣고 가는 트럭들이 질주하며 지나갔고 그 위를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흙이 구르는 길로 범벅이었을 이 도로는 <천년학>의 동호가 선학동으로 가기 위해 지나갔던 발자국이 남아있는 길이다. 무미건조한 회색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커다란 고개를 넘어가니 쭈욱 뻗은 도로 한 켠에 작은 건물이 하나 보인다. 눈에 익은 소나무. 익숙한 산의 모양새. 이곳이 선자마을의 주막, 동호가 하루를 묵고 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풀어낸 그 주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포구에 물이 없고 나무가 저 모양인디 학인들 날라 들것소. 하긴 지 마음에 그 시절을 잡아 놓고 학이 다시 날라들기를 기다리는, 그런 한심한 인간도 있으니께.” -<천년학> 中


<천년학>에서 동호의 아버지 유봉은 어린 송화와 동호를 물이 흐르는 선학동으로 데리고 와서 선학동의 주축을 이루는 학 산을 보여준다. 학이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오르고자 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본 딴 듯한 산을 보며 어린 동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선학동에 다시 찾아온 그는 변해진 선학동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며 오랜 애환이 묻은 선학골의 주막에서 평생 주막을 지키던 사내와 술잔을 기울인다.

‘촬영지’라는 간판이 크게 써 붙여진 선자마을 입구의 작은 주막의 뒤로 영화 속 동호가 느꼈던 황량함을 보여주는 곱게 포장된 도로가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회진읍에서 이곳으로 걸어오기를 한 시간. 고개를 숙이며 익어가는 벼들 사이로 지칠 대로 지친 나와 나의 배낭은 망설일 것도 없이 쉬어야만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마을로 가면 시원한 물 한 잔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길에서의 냉수 한 모금은 고급 음식점의 잘 차려진 식탁보다 반갑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조그맣게 보이는 마을의 모습을 한번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고 바깥채 쉼터에 짐을 내려놓았다. 풀들만 무성한 주막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 살 법한 번듯한 집이라고 생각해 조심스레 창문을 닦으며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촬영이 끝나고 발길이 뜸해졌기에 먼지가 수북하게 앉은 작은 집에 지금 숨 쉬고 있는 생물이라고는 풀들을 제외한 나와 벌레들 뿐 인 듯 했다. 마을은 멀리 있고 보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바로 왼쪽에 바다가 있고 배들도 여러 척 있었지만 배 위에 올라있는 사람도, 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에겐 미안하지만 거미줄을 대충 휘휘 저으며 치워버리고 배낭을 베고 먼지더미로 풀썩, 몸을 던졌다.

새벽을 꼬박 지새우던 동호의 눈빛이 떠올랐다. 동호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의 인생의 굴곡을 짐작하게 하는 눈빛 하나밖에 없었다. 그는 남도 천지를 떠돌다가 이 작은 주막에 와서 송화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송화가 다녀갔던 곳과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몇 가지의 이야기밖에는 없었고,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술 한 잔과 묵은 김치 한 그릇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누이 송화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이곳으로 달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동호가 자신의 마음을 넌지시 술잔에 토해내고 있을 그 시간에 송화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몸을 바로하고 앉아 다시 주막을 둘러봤다. 한참을 누워있는 동안 주막 앞의 도로를 지나간 차는 다섯 대가 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장흥근처의 찜질방에서 물을 담아두었던 물통을 꺼내들었다. 미지근하지만 그런 것을 따지기엔 햇볕이 너무 뜨거웠다. 물을 마시다보니 문득 옆에 놓여 진 뒷간이 눈에 들어왔다. <천년학>에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시간은 단 한번 뿐이다. 주막 주인은 밤새도록 동호와의 술자리를 마치고 이른 아침 화장실로 볼일을 보기위해 몸을 옮긴다. 그가 일을 마치고 뒷간에서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동호는 차분히 앉아서 유봉이 자신에게 남긴 북을 바로 세운다. 화장실에서 빠져나오려 했던 주인 사내는 동호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몸을 숨긴다. 동호는 북을 들고 사내는 그런 그를 바라본다. 동호가 북을 치는 순간, 논으로 바뀐 황량한 벌판에는 물이 차오르고 송화는 그의 곁에서 소리를 한다. 그리고 곧, 두 마리의 학이 함께 날아오른다.





<천년학>은 ‘소리’를 아낀다. 송화의 목소리는 <서편제>에서와 같이 여전히 애절하지만 그것 자체가 마음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서편제>를 달려온 동호와 송화의 이야기는 <천년학>에서 이어지나, 사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을 토해내기보다는 서로를 향한 마음을 더 많이 보여준다. 송화와 동호에게 아버지였던 유봉이 가르쳐준 ‘소리’라는 것은,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길 위에서 사랑을 노래한다. 이복누이 송화를 향한 동호의 사랑, 동호를 그리워하는 송화의 마음, 그리고 그 주변에서 그저 자신의 사랑을 태울 수밖에 없던 주막 사내의 이야기가 교차할 때 선학동에는 학이 날아든다. 태풍을 맞고 을씨년스럽게 변한 소나무도, 그리고 동호가 어깨에 짊어진 세월의 굴레 또한 학이 날아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하는 바로 이 순간은 <천년학>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주막 뒤편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는 얼마 달리지 않아 아까 보았던 주인 없는 배들이 있는 작은 방조제 앞에서 멈추었다. 커다란 배낭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이방인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아저씨의 시선을 뒤로하고 다시 한 번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급하게 걸어온 아까와는 달리 제법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주막 주변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었고 잡초라고 살아 있는 것들에도 꽃이 피어있었다. 아까 내가 없애다시피 해버린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던 거미는 열심히 다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동호가 다녀간 이후 이 작은 건물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기둥을 잡고 이따금씩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혹시 <천년학> 때문에 주막을 찾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이곳에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될 수 있다면 내가 앉아있는 이곳에서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별이 뜨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은 움직였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했다. 누군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이 건물에서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하는 나를 본다면 아마도 ‘청승맞다’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마을버스도 하루에 한두 번 들어오는 것이 전부이고 지나가는 사람조차 뜸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존재하던 그들은 선자마을의 주막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겉멋만 잔뜩 들은 것처럼 나도 이 주막에서 조용히 탁주에 작은 안주를 곁들여 밤을 지새우고 싶었다. 동호처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도 이곳에서 풀어내버린 것일까. 오늘 내에 반드시 완도로 넘어가야 하는 나의 일정과는 달리 처음 왔던 그때처럼 발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회진에서 선자마을로 넘어온 지 벌써 세 시간째. 입구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회진으로 갈 예정이면 태워주겠다는 선한 인상의 아저씨가 요란한 트럭소리를 내며 나를 불렀다. 걸어왔던 길이니 다시 한 번 걸어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버스는 이미 끊겼고 힘든 일도 아니니 어서 타라며 재촉했다. 갈등 끝에 트럭에 오른 나에게 아저씨는 어쩐 일로 발길 뜸한 이 동네로 왔냐며 말을 걸었다. 트럭의 백미러로 학산이 어스름히 보였다.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서 덜컹거리는 트럭 뒤로 고개를 내밀어 슬그머니 다시 학산을 눈에 담았다.

(편집자 주: 강민영의 남도여행기는 다음 주 <서편제>의 촬영지로 이동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기대와 열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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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idon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년학을 보지 못했네요 임권택감독님의 영화의 영상은 상상만으로도 가늠이 갑니다 보고 나서 이글을 다시 떠올려야 할듯.......(어릴때부터 일년에 한두번 남도여행을 다녔었는데 차가 있고 부터는 오히려 소홀해 졌네요 버스타고 다닐때 기억만이 남은듯...)

    2008.07.14 16:27
  2. Favicon of http://daumtop.tistory.com BlogIcon TISTORY 운영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티스토리 입니다^^
    회원님의 포스트가 현재 다음 첫화면 카페.블로그 영역에 보여지고 있습니다. 카페.블로그 영역은 다음 첫화면에서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님께서 작성해 주신 유익하고 재미있는 포스트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다음 첫화면에 소개 하게 되었으니, 혹시 노출에 문제가 있으시다면 tistoryblog@hanmail.net 메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티스토리와 함께 회원님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08.07.16 14: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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