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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레오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8.19 [옛날 옛적 서부에서] 웨스턴이 시간을 다루는 방법
  2. 2008.07.14 무덤까지 가져갈 단 한 편의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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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균



세 명의 총잡이 사내가 기차 역으로 들어선다. 예의 범절 따윈 쓰레기통에 쳐 박은 듯한 무례한 사내들, 이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그 대상이 다음 도착할 기차에서 내릴 누군가인듯 한데 중요한 것은 세 명의 사내가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상황 자체가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을 묘사하는 방법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차간 배차시간이란 영 지루하기 짝이 없기 마련이다. 그 지루한 시간 동안 카메라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사내들의 너저분한 얼굴을 화면 가득 담아 낸다. 이들에겐 별 다른 움직임도 없다. 파리가 달려들면 그저 미간을 살짝 찡그려 보일 뿐이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모자 챙에 흥건히 고일 때까지 내버려 둔다. 그러고 보면 이 세 명의 사내들은 지저분하고 무례할 뿐만 아니라 게으르기까지 하다. 몇 발짝 옆으로 비켜 서고 팔 한번 휘휘 저어주면 될 것을 그마저도 귀찮다는 듯,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를 않는다. 표 값 내라는 역무원 말에도 댓구조차 없다. 그저 우악스런 얼굴을 찌푸려 보이며 저리 비키라는 무언의 시위만 할 따름이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폭풍전의 고요와도 같은 정적에 화면을 차지하고 들어선 세 사내들의 게으름과 더불어 더더욱 더디게 흘러간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가 필름2.0에 기고한 글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그냥 기다림도 아니고 웨스턴의 기다림이다. 이제 곧 오랜 지루함을 깨고 총성이 울려 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영화의 오프닝은 누군가에게 들이 닥친 죽음 직전의 시간을 묘사한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가장 금쪽 같아야 할 시간들임에도 불구하고 세 총잡이의 마지막 휴식 시간은 전혀 거창하지 못하게, 잔뜩 늘어지다가 속절없이 흘러가고 만다. 한 때 기세 등등했을 그들의 삶은 지루함을 남겨 둔 채 황야의 먼지바람 속으로 파묻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허무한 죽음과 죽음 직전의 별 볼일 없는 시간들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웨스턴의 신화를 바라보는 그 시선과도 일치한다. 미국의 건국신화라는 서부의 전설도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더라는 얘기. 물론 영화의 처음은 여느 웨스턴 무비와 별 다를 것 없이 시작된다.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총잡이 사내가 마을에 들어선다. 여기에 그 사내가 간직한 사연과 그 밖의 사건들이 뒤엉키고 모든 사건이 해결 된 후 사내는 고독한 모습으로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옛날옛적 서부에서]는 일군의 카우보이들이 말 달리며 황야를 가로지르는 류의 호방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 쬐고 사건의 진상은 천천히 드러나며 그 내막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일도 없다. 화면 전체를 휘감고 있는 답답하다 싶을 정도의 느릿함과 건조함은 실은 ‘이들에 대해 그리 긴 이야기 늘어놓고 싶지 않다’라는 감독의 선언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하모니카 사내의 사연은 단 한번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충 짐작이 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카우보이의 실루엣만 반복해서 들이미는 것에는 답답증이 생길 법도 하다.

반면 우악스러운 총잡이 사내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여인 '질'의 이야기는 좀 더 명확하게 설명된다. 밑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강인해 보이는 팔뚝을 지닌 남자와 결혼해서 열심히 살아보려던 이 여인의 꿈은 도착과 동시에 박살이 나버리고 마는데 그 이면에는 철도 부지를 둘러싼 총잡이와 자본가의 시커먼 속내가 숨겨져 있다.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는 땅, 좀 더 정확히는 그 땅을 둘러싼 자본의 흐름이다. 보통 사람의 꿈을 갈취하는 악덕 자본가의 존재도 여전하며 그들 곁에서 떡고물을 받아 챙기며 폭력을 휘둘러대는 무뢰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순히 무력을 앞세워 강도 짓을 일삼던 서부의 무법자들은 이 영화에 이르러 한층 진화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자본가를 등에 업고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이윤 추구를 위하여 철도 부지의 이권 다툼에 적극 개입한 프랭크 일당은 바로 그 진화된 악당들이며 맥베인 일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는 샤이안 일당은 고전적인 형태의 무법자들이다. 여기에 맥베인의 땅에 얽힌 음모를 밝혀내고 막아내는 하모니카 사내는 레오네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등장하는 솜씨 좋고 머리도 좋은 총잡이의 재래라 할 만하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 보다는 해묵은 원한 관계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 그는 구시대와 새로운 시대 양쪽에 한발씩을 걸치고 있는 인물인 셈이다. 자, 이쯤 되면 하모니카 사내의 복수극보다 새로운 삶을 찾아 왔다가 얼결에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질의 이야기가 선행되는 이유를 알 수도 있을 듯 하다.



이 모든 것은 말과 총에 의해 좌우되던 서부시대의 종말의 징후, 세 남자의 물고 물리는 접전은 저물어 가는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한바탕 살풀이 굿판이나 마찬가지며 이곳에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대한 씁쓸한 자조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레오네 감독의 전작들에서 여성 캐릭터가 가련한 희생양이거나 존재감조차 희미했던 것에 반해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질은 총을 든 사내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더러운 기억만 늘어날 뿐 여자는 그런 일로 죽지 않아”라고 맞받아치거나 굴욕을 감수하고서라도 살아남을 만큼 강하고 모진 캐릭터로 거듭난다. 세 남자는 모두 한번씩은 질과 조우하며 그녀의 땅 스위트 워터에 발을 들여 놓지만 어느 누구도, 질과 그녀의 땅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이유도 제 각각이다.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시해서, 단지 힘으로만 정복하려 들어서, 또는 가슴 속에 숨겨진 죽음의 그림자를 거둬내지 못해서.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세 남자가 노동에 의한 건설적인 측면과 그 땀방울 보다는 총성에 의한 파괴와 그것들이 풍겨내는 피비린내에 더더욱 익숙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텅 빈 황야에서 시작된 영화 속의 공간은 뒤로 갈수록 새로운 건축물과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로 채워지게 된다. 물론 그 밑거름이 된 것이 서부 시대의 개척자들이 일궈낸 폭력과 착취의 시간들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바로 그 시간의 흐름이 그들의 퇴장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지막 시간을 늘려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영화 속의 서부개척사 역시 퇴장을 미루며 주저하고 미적거린다.

하모니카 사내가 간직한 사연이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야 겨우 드러나는 것도, 금새 이루어질 듯 했던 프랭크와 하모니카 사나이의 대면이 돌고 돌아 한참 뒤에야 이뤄지는 것도 허망하게 사라져 가는 개척시대의 끝자락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늘어지려는 헛된 몸부림에 불과하다. 마치 영화의 도입부에서 조금 있으면 하모니카 사내의 총탄에 스러질 세 총잡이의 별볼 일 없는 마지막 시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이들의 퇴장이 필연적이라는 또 다른 징후는 철도 건설 현장을 가득 채운 노동자들의 부지런함과 확연히 대비되는 총잡이들의 게으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옛날옛적 서부에서]의 총잡이들은 웨스턴 역사상 가장 게으른 총잡이들일 것이다. 오프닝의 세 사내가 그러했듯이 영화 속의 총잡이들은 하나같이 움직임이 드물다. 속전속결로 끝나는 서부극의 결투가 지닌 특성상 애초부터 움직임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이들에게는 여타 서부극의 총잡이들이 보여주던 기본적인 움직임마저 배제되어 있다. 하긴, 한 건 제대로 올린 다음에 주색잡기에 골몰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일 그들에게서 근면 성실함을 찾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일 터.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고 느릿하게 움직이다 단 한번의 손놀림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이들은 공룡과도 같은 존재들일 뿐이다. 강하고 난폭하되 곧 멸종될 운명을 지닌 슬픈 짐승. 프랭크가 하모니카 사내와의 결투를 위해 돌아오는 게 만든 원동력도 바로 그 짐승의 본능과 흡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죽을 자리를 찾는 짐승처럼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철도 건설 현장을 빠져 나와 텅 빈 황야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간다.

북적대는 건설 현장 보다는 역시 먼지 바람 휘몰아치는 황야가 이들에게 더욱 잘 어울리는 장소일 것이다. 비장한 음악과 마침내 밝혀지는 하모니카 사내의 사연,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결투의 끝. 그러나 그 단발마의 총성은 노동현장의 소음에 이내 파묻혀 버리고 만다. 도입부의 결투 장면이 그러했듯 기다리고 기다렸던 최후의 결투도 그 끝은 다소 허망하다. 마지막 총잡이라고도 할 수 있을 프랭크와 하모니카 사내의 대결이 철도 건설현장에 밀려 화면의 지배자로 당당히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이들의 대결이 시간의 소멸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등장과 퇴장으로 간략히 요약할 수 있는 이 영화가 시종일관 뿜어내는 것은 저물어가는 시대에 대한 아련한 정취이다. 조롱과 향수라는 서부개척사에 대한 상반된 시선은 일견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드는 그 마법의 비결은 복수를 꿈꾸며 살아온 긴 세월을 가슴에 묻은 채 홀로 쓸쓸히 사라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전하는 지독한 여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터. 브론슨 페이스라 이름 짓고 싶은 특유의 찌푸린 인상으로 화면을 활보하는 찰스 브론슨은 친구도, 연인도, 그리고 이름도 없이 서부를 방랑하는 마지막 카우보이 역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 보인다.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무드를 자아내는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마저 굴절시켜 버릴듯한 황량한 사막과 계곡 속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그렇게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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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까지 가져갈 단 한 편의 영화

필진 칼럼 2008.07.14 14:47 Posted by woodyh98
백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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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2008 시네바캉스’의 백미는 단연 스파게티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특별전’일 것이다. 돈만 있으면 우주여행도 가능해진 시대에 말 타고 총질이나 해대는 웬 구닥다리 영화냐고? 자고로 싸움의 백미는 총싸움인 법. 짤막한 권총에 유독 푸른 눈을 지녔던 프랑코 네로와 총구가 긴 권총을 소지했던 신경질적인 광대뼈의 리반 클립과 궐련을 질근질근 문 채 윈체스터를 폼 나게 돌려가며 쏘아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탄생시킨 것이, 세르지오 꼬르부치에서 시작되어 그의 후예 세르지오 레오네가 꽃을 피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면 어떤가!

이렇듯 수정주의 서부극에 B급 감성을 버무려 독특한 영화세계를 일궈온 세르지오 레오네였지만, 그가 필생의 작업으로 여겼던 영화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것이었다. 입버릇처럼 말해왔듯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위대함은 단순히 그의 영화세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B급 서부극이라 불린 레오네 영화에서나 주연일 수밖에 없었던 2류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늘날 거장으로 군림하기까지 레오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레오네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레오네의 영화, 그 중에서도 그의 유작(遺作)을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네바캉스는 절반의 만족을 안겨준 셈이라 하겠다. 이제, 물어보자. 당신을 미치게 만드는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는가? 제목만 들어도 뛰는 가슴을 주체하기 힘든 그런 영화가 있는가. 아님 당신의 가슴을 데워줄 영화가 있기는 한 것인가.

좋은 영화란 셀 수 없이 많다. 이 무수한 영화를 전부 이야기하자면 평생 걸려도 못할 일이기에 단 한편의 영화를 고르라면 누구라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테지만 내겐 그리 고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최고의 영화 한 편만 꼽아보라고 할 때 주저하지 않고 꼽을 영화가 있다는 것. 정말로,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이 영화에 대해서 긴 얘기가 필요 있을까? 어떤 수식어로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다 할 수 있을까. 70 년대에 <대부>가 있었다면, 80년대는 바로 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있다. 물론 90년대에 이르면 <좋은 친구들>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뉴욕 빈민가의 어느 식당, 한 소년이 화장실로 들어가 벽돌 하나를 조심스레 빼낸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채 그 구멍을 통해 옆방을 들여 다 본다. 벽 너머의 공간에서는 소녀가 발레 연습을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이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마치 뽐내듯 발레를 계속하고, 소년이 소녀를 좋아하듯 소녀도 소년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나쁜 길로 빠지려 하고 있음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소녀의 걱정대로 소년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게 되었다. 옛날 옛적 미국에서...」

1920년대 경제 대공황과 금주법시대의 뉴욕 브룩클린을 배경으로, 다섯 명의 소년이 범죄자로 성장하는 과정과 이젠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누들스의 과거회상을 통해 인생과 사랑, 범죄와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누들스와 맥스, 그리고 연인인 데보라를 통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배신의 인생 이야기가 애절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팬플루티스트인 게오르그 장피르의 주옥같은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이 영화는 가히 영화도 영화음악도 모두 최고 걸작 반열에 오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평생 간직해온 ‘드림 프로젝트’였다. 70년대 후반 연출보다는 제작에 더 힘을 쏟았던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기 위해 <대부>의 연출제안을 거절했을 정도였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을 통해 상당히 기묘한 스타일을 지닌 감독쯤으로 인식됐던 레오네는 이 영화를 통해 거장다운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를 정교하게 오가면서 진행되는 사건은 미스터리하면서도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원작은 "HOODS"라는 소설로 당초 10시간짜리 러프 컷을 수정한 레오네의 1차 편집본은 6시간짜리이고 디렉터 컷(현존하는 완전한 감독 공인판)도 229분짜리 분량으로 만들어졌으나, 흥행을 고려한 제작사가 무려 89분을 잘라낸 2시간 19분짜리 필름으로 개봉시켰으니, 결과적으로 평론가들의 악평과 흥행 참패를 겪어야 했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감독 판이 재개봉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명보극장 개봉 당시인데, 132분이라는 (지금으로서는)어처구니없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충격과 매혹은 여전히 기억을 지배할 뿐 아니라 광적 지지자로까지 바꿔놓을 정도였으니, 단언컨대 내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단 한 편의 영화가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일 것이다.

영화에는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꽤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어린 창녀의 환심을 사기위해 슈크림을 사들고 찾아간 ‘짝눈’이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야금야금 핥다가 기어이 다 먹어치우는 장면이라든지, 보석상을 턴 맥스 일당이 훗날 안주인과 재회하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면 등은 가히 레오네 다운 발상으로 여겨진다. 사랑하는 여인보다 손 안의 슈크림이 더 간절한 소년의 심정은 얼마나 절절하던가! 또한 출옥한 누들스가 데보라와 만나 야연을 즐기던 시퀀스도 잊을 수 없으니, 이 장면에서의 대사는 이렇다. “미치지 않기 위해선 바깥세상은 다 잊어야 했어. 하지만 그래도 잊혀 지지 않는 건, 도미니크였어. 총 맞고서 ‘나 넘어졌어.’ 라고 말하던 아이 말이야. 그리고 데보라...너!”

숱한 밤, 나를 갈색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휘파람 불며 브룩클린 다리 밑을 걷던 다섯 명의 소년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제 필름으로, 그것도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판본으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어찌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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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크림을 사들고간 아이는 '짝눈'이 아니라 '펫시' 였던것 같은데요...^^
    파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던 아이...

    2008.07.1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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